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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는 여러장수들 에게 말한다
"신 나라군이 완저성에 진을 친 것은 우리가 이곳을 거점으로 북경으로 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 당 할까 두려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완저성을 공격하는척하며 대영(臺營)을 취한다 또 군사 들에게 뗏목 을 2 백여척을 만들어 배를 노지을수있는 병사를 선발 하되 나는 대영에서 우회하여 자정을 이용하여 완저성을 치려고한다 .

그러면 엄우는 군사를 동원 소명을 구하러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의원구(義院口)로 유인 하다가 북대하 상류로 나 갈 것이니 이때 황비 장군은 뗏목을 띄워 엄우가 만들어 놓은 부교를 모두 빼앗아 불을 지르라 .
그와동시 엄우 본대가 들어 오면 엄우군의 진로를 끊는다 .
이때 우리 본대는 적을 기습할것이다 "
모든 장수들이 작전 계획을 듣고 모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재사의 동태를 감시 하고 있던 왕망 군 초병이 날아 가듯이 고구려군의 동태를 엄우에게 보고한다

엄우가 예상치 않은 것은 아니 었으나 고구려군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에 당황 하였다 . 엄우가 급히 모든 장수들을 불러 의논한다
"재사가 엉뚱한 계교를 꾸미고있다. 재사가 완저를 치려고 하는 척 하면서 우리의 진로를 막으려는 수작 일 뿐이다. 의원구로 이동 한것, 뗏목을 만드는 것은 북대하의 상류로 올라가 뗏목을 띄워 하류로 흘려 부교를 불살라 버리고 우리의 후방을 끊으려는술책이다 "

엄우는 황강 장군 비명(備銘)에게 명령을 내린다
"만약 완저성에서 이상한 징조가 보이면 북대하 상류 산중에 군사들을 매복 시켰다가 고구려군이 도착하면 한숨에 박살내라"
엄우는 다시 편장군 사호(査鎬)와 평남 장군 임청(霖菁)을 불러 명령을 내린다

" 너희는 북대하안에 매복해 있다가 만약 고구려군이 뗏목을 타고 오거든 일제히 쏘아붙여서 부교쪽으로 접근 못하도록 하라 "

엄우는 는 다시 소명 태수에게 영을 내린다
'"재사가 완저성에 가까워 지면 길중간에 매복해 있다가 거짓 패해 달아나라 .고구려군은 필히 추격 할것이다 그때 가서 활과 창으로 공격하라 .나는 수륙 양면서 공격할것인즉 차후 명령에 따르라 "
모든 작전 지시를 내린후 엄우는 유유히 완저성으로 떠난다

한편 재사는 우장군 마리에게 완저성을 공격 하라 하고 황비에게는 뗏목을 띄워 부교를 불사르라 하고,좌장군 무골에게는 선봉장으로 하고, 토로 장군 오이에게는 중간대, 후장군 묵거에게는 후대(後隊)를 삼아 북대하로 나섰다.

마리가 완저성을 공격 하기 위하여 성가 까이 접근 할때는 해가 서산에 넘어 가려 하고있었다
왕저성을 지키고 있던 소명 태수가 웬일인지 영문을 버리고 도망간다

마리는 이들이 손 쉽게 도망치는것을 보고 적들이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가 하여 감히 성에 접근 않고 망만 보고있었다 .
이때였다 사방에서 함성이 요란하게 나면서 왼쪽에서는 엄우의 군대가 , 좌편에는 소명이 거느리는 군사들이 몰려나온다 .

포위된 마리가 엄우와 소명 대군을 시살 하면서 포위를 뚫어나가려고 안간힘을 다쓴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미처 피하지 못하여 반은 물에 빠저 죽고 달아나가 왕망군의 칼에 맞아 살아 남는 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다행히 표기 장군 협부의 군마가 나타나 포위망을 뚫고 패잔병을 이끌고 언덕으로 피하게 하였다 .
황비가 군사를 나누어 뗏목을 저으며 부교로 향하였으나 북대하 뚝에 매복 되어있던 사호와 임청의 매복군이 어지럽게 화살을 쏘는바람에 간신히 고구려 진영쪽으로 방향을돌려 목적 달성을 못하였다 .

파죽지세로 중국 만리장성 넘어 깊숙히 들어 갔던 고구려군이 여지 없이 붕괴 되는 순간이었다 .
재사가 본 진영 대채로 돌아와 장병을 수습하니 죽은 장병이 1000 여명이나되었다
재사는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였다.

협부가 재사를 찾아와 말한다
" 대장군께 들일 말씀이 있습니다 .옛말에 패도(覇道)는 권도(權道)라 했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임기 응변의 조치를 잘 해야 한다는 뜻인줄압니다 .
병서에보면 군사를 일으킴에 있어 장수의 뜻을 중요시 해야지 작전에 까지 군주가 좌지 우지 해서는 않된다 하였습니다.
군대를 출동시키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장수는 전세를 밝게 판단 하고 명령이 추상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고구려군은 신나라 깊숙히 까지 너무 들어와 있습니다 "

재사는 협부의 말에
"나도 모르는 바 아니오, 전하 께서 그냥 몰아 부치는 바람메 여기 까지 와서 결국은 참패 만 당하였소"
하고 금새 재사 답지 않게 풀이 죽는다

"병법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의로운자는 어질지 못한자를 위하여 죽지 않는다 했습니다 .또 지혜 있는자는 우매한 군주를 위하여 꾀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앞의 예는 중국 신나라 왕망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는 당장은 우리와 전쟁에 이기는것처럼 보이지만 왕망은 의롭지 못하게 정권을 찬탈하였기 때문에 얼마나 갈지 모릅니다 . 그리고 두번째로....."
협부는 하던 말을 멈춘다
"두번째는요?"
".............."
"서슴치 말고 말해 보시오"
"우리 고구려를 생각하면 됩니다 "

이 대담한 말에 재사도 깜짝 놀라며 협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늙은 얼굴이 다시 돋보인다 . 부왕의 충신이면서도 곧은 소리를 잘하는 대신이다

재사가 생각 할때 협부의 말대로라면 유리왕은 우매한 군주다
생각 하면 재사가 이번 전쟁에서 결말이 좋지 않게 난것도 모두 유리왕에게 제동을 걸을수있는 용기가 없었기때문이었다 .
재사의 생각으로는 전선을 만리장성 동쪽 이나 육고하(六股河)로 정하고 일단 전진을 멈추고 싶었다 . 왜냐하면 적 깊숙히 들어 간다는 것은 여간 위험한 짓이 아닐 뿐더러 북쪽의 부여나 흉노가 언제 공격이 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때 유리왕으로 부터 명령이 떨어지었다
북쪽의 부여가 심상치 않으니 군사를 육고하 까지 철수시켜 수중성(綏中城)에 일부군만을 주둔 시키고 국내성으로 모두 철수 하라는 지시였다

재사는 당초 자기가 주장한 대능하와 육고하에 고구려 주둔을 강조 했었는데 그대로만했더라면 이번 완저성 사태 까지는 이르러지 않을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젔지만 어쩌랴?
엄우의 신나라 군사들은 고구려군 철수하는것을 추격하다 만가둔(萬家屯)에서 멈쳤다

왕망의 가혹했던 정치는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9 세손인 유수(劉秀)라는자가 하남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어 낙양을 위협 한다는 보고가 들어 왔기 때문에 군사들을 하남성으로 이동 배치 하라는 지시가 왕망으로 부터 떨어 지자 엄우는 육고하 서쪽 고구려 모양으로 일부 경비 병력만 남기고 철수 하였다.

왕망도 고구려 국내성 까지 추격 못한것이 분하기는 했으나 중국 내부의 발등의 불부터 먼저 꺼야했다.중국 각지에서 군웅들이 봉기 하여 온 중국 천하가 시글 벅적 하였기때문 이었다
이리하여 중국과 고구려는 육고하 (六睾河)로 경계로하여 국경으로 정하여지고 말았다

한편 중국 대륙은 하남성 호족과 함께 봉기 한 유수가 하북성, 호북성 까지 차례로 공격하여 하남의 곤양에서 왕망의 군대를 격파하고 낙양(洛陽)에서 즉위하여 한 왕조(漢王朝)를 재건한다
역사는 중국 대륙의 왕망이 반란을 일으켜 잠시 신(新)나라라고 칭하였던 나라를 거꾸려 뜨리고 다시 다시 정권을 잡으니 왕망 정권 이전을 전한(前漢)이라하고 그이후를 후한(後漢)이라한다 .

중국의 대명사 처럼된 한(漢)나라(前漢)의 시조는 유방(劉邦)이라는 사람이다 .
만리장성을 쌓아 천하를 호령 하던 진(秦)나라진시황이 죽자 진시황의 태자 부소를 죽이고 둘째아들 호해를 황제로 추대하여 천하의 권력을 주물렀던 간신 조고와 이사가 정치를 하고나서 부터 중국 대륙은 사방에서 도적이 일어나고 각지에서 서로 제 잘났다고 반란을 일으키는자가 속출하였다

황제가된 호해는 나라의 정치는 조고에게 맡기고 외교관계는 이사에게 맡겨 놓고 질탕 만탕 수많은 궁녀들속에서 음탕하게 놀기에 바빴다 ,조정에있는 신하들은 감히황제를 만날수 없었고 온천하가 내란의 소용돌이속에서 정치가 어떻게 될지모르는데 황제는 각 지역에서 들어오는 장계도 돌볼시간을 유흥으로 빼앗기었다 .환관들이 책상설합에 처박아놓고 거들떠 보지않으니 나라 꼴이어떻게 되겠는가?

이와같이 나라가 시끄러울때 중국 강소성(江蘇城) 패현(沛縣)풍읍(豊邑)이라는곳에 진시황의 묘를 축조 하기위하여 사상이라는 곳의 말단 공직자로 있던 유방(劉邦)이란자가 그 지방에서 징용으로 모집된 장정을 인솔하고 진시황의 묘 공사장으로 패현 현령의 명령을 받고 천리나 되는 길을 가다가 도망하는자가 속출하자 이들을 설득 기반을 다지고 차차 세력을 모아 라이벌인 항우를 해 하전투에서 죽이고 진나라 수도였던 함양에서 천하 제패의 꿈을 이룬다

이렇게 세워진 전한(前漢)의 고조 유방의 9 세손이라고 자칭하는 유수(劉秀)란자가 왕망군을 곤양(昆陽)에서 왕망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한(後漢)의 황제가 된다 .

왕망과 싸움이 있던 이태 후 유리왕은 나이 어린 둘째 아들 무휼을 태자로 세웠다.

그해 유리왕은 오이 마리 두 신하 장수들을 시켜 요하 근방의 부족 국가인 양맥국을 병합시킨 다음 내친 걸음에 대능하와 요하 사이의 왕망의 몰락으로 공백 상태가된 현도군과 대방현 까지 병합 시킨다 .이제 남은 군은 낙랑 밖에 없었으나 중국의 신나라 대신 들어선 후한 광무제가 육구하 서쪽에서 철수 않고 있던 신나라 군현을 후한이 접수한이후로 양국간의 전쟁 없이 소강 상태로 돌아갔다

유리왕은 중국과의 관계는 왕망의 신나라의 전복으로 조용해지었으나 북쪽의 동부여는 골치 거리였다.유리왕은 중국의 왕망과 전투에서 익힌 경험을 살려 부여를 치고싶었으나 부여는 대소왕의 기반이 든든 한데다가 동부여의 백성들은 고구려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피붙이인 고로 잘못 하면 돌아가신 동명왕의 누가 될지 몰라 망설이지 않을수 없는처지였다.

하지만 유리왕으로서는 같은 피 붙이인 백성들 만은 다치지 않고 부여의 대소왕을 무릎 꿇게 하고 싶었다.

선왕을 괴롭혔을뿐만아니라 왕자를 인질로 보내라고 하여 고구려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부여....게다가 조공 까지 바치라는 가했더니 침공 까지 했다가 돌아 가기는 했지만 고구려를 철저하게 멸시했던 한을 유리왕이 모를리 없었다
대소는 폭설로인한 고구려를 침공 하려다 퇴각한 이후로 틈만나면 고구려를 칠 때만 노리고있었다
다행히 대소의 형제들간의 권력 다툼으로 고구려와 왕망간의 전쟁 기간 동안에는 고구려를 넘 볼 시간이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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