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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33

고구려(21)-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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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여는 서쪽으로는 선비 남서쪽 요하 서쪽으로는 중국의 낙랑, 임둔 ,지번,대방등 소위 한사군(漢四郡)과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해 있으면서 틈만 나면 고구려를 쳐 없애려는 속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

지난 날 고주몽을 시샘하며 괴롭혔던 대소가 왕이 되자 이번에는 유리왕에게 여러가지 요구를 해왔다 . 고구려의 윗 나라이니 해마다 사신을 동부여에 보내어 종주국인 동부여에 속국인 고구려가 그때 그때 마다 예물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오이가 (烏伊)아뢴다
"지난날 선왕을 괴롭혔던 대소왕이 이번에는 우리를 자기네 속국인양 조공(朝貢)을 바치라니 그런 망발이 어디있습니까? 차제에 동부여를 공격하여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
"..........."
유리왕은 오이의 건의에 대답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유리왕은 중전과 화비,치희간의 불화로 신경이 다른곳에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왕이 귀찮은 듯이 말한다
"동 부여에 사신을 보내고 조공을 합시다 . 예물 좀 바치기 로서니 우리가 자기네 꼭 속국이라 할수 있겠소?"
오이가 다시 아뢴다
'전하 ,어찌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조공을 받친다는 말씀입니까? 동부여는 고구려의 윗 나라이니 너희들은 무엇이던지 우리의 지시를 받으라는 얘기 밖에 안됩니다 "
유리 왕은 귀찮다는 듯이
"조공을 받치고 사신을 보내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 하다고 그러시오 .우리 고구려는 아직 동부여를 칠 만큼 되지 못하였소 .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직접 챙길 터이니 제신들은 동부여와의 외교 문제 만큼은 이의를 달지마오"
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유리왕은 동부여를 치기에는 아직 고구려는 여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신들은 이러한 유리왕의 태도 때문에 고구려를 멸시하는 동부여의 횡포가 더 심해질것으로 내다 보았던것이다 .

사신을 보내고 조공을 받치자 부여는 점점 더 오만해지었다 .
이번에는 1년에 한번 보내던 사신도 세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좀더 많은 조공을 받기 위해서였다 .
이런 판국에서 유리왕은 정사에 관심이 없는듯했다. 신하들은 이제 처음 왕이 되었을때 의욕에 가득 찼던 유리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태자를 내 세워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한다 "
대신들은 유리왕의 이러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서로간에 약속이나 된 듯이 자연스럽게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후계자라면 당연히 맏 아들 도절(都切)왕자가 되어야지요 ......."
신하들은 임금에게 태자로 도절로 정할것을 간언한다 .
도절은 죽은 첫부인 송씨의 유일한 아들이다 .임금은 그렇지 않아도 맏 아들인 도절을 태자로 책봉하려 마음은 처음부터 먹고 있었다 .

도절을 태자로 책봉 하자는 대신들의 의견이 정론화 되자 중전 송씨는 언니의 동생이지만 평소부터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조카 도절을 태자로 책봉 하려는 왕의 생각을 돌리기 위하여 별의 별소리를 다하였다 .
"전하 ,공부는 하고 싶은 사람에게나 시킬 일이지 싫다는 사람을 왜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
왕은 느닷 없는 중전 송씨의 말에 어리둥절 하였다
"누구를 가지고 하는 말이오?"
"도절 왕자 말씀입니다"
"그 아이가 어떻다는 말이오?"
"공부는 않고 사냥만 다니는 모양인데 그래 가지고 한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겠습까?"

왕은 중전의 말을 무시한다
"태자가 되려면 글만 잘해서 않되는것이오 .무술도 익혀야지 ..."
후비 화비도 도절을 헐 뜯기에는 마찬 가지였다
"도절 왕자의 성깔이 거칠어서 앞날이 걱정입니다 "

왕은 도절을 태자로 책봉 할것을 결정한 이상 왕비들말이 귀에 들어오지않았다 .아버지가 비류 온조를 태자로 삼지않고 장남인 자기를 왕으로 책봉해 해주었듯이....
다만 치비만 도절을 애틋하게 생각하고있었다

도절은 이모인 중전이 자기를 미워 하는것을 평소부터 느끼고 있기 때문에 중전이있는곳이면 될수있으면 피하였다 .더구나 새로 들어온 화비 조차도 자기를 좋지 않는 눈초리라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직 도절은 치비 만이 자기를 따뜻한 정을 보내 주고있다고 생각하고 핏줄은 다르지만 어머니로서의 모정을 대리 만족하고있을뿐이었다 .
치비도 쌀쌀 맞은 두 왕후 사이에서 유일하게도 자기를 따르는 도절을 친 아들처럼 대해주었다
왕이 옆에 있을때는 항상
"도절왕자는 어미를 일찍 잃고도 참으로 씩씩하게 잘 자라 기특 하기도 합니다 .장차 고구려를 크게 일으킬 인물이 될것이 틀림 없습니다 "
하고 도절을 칭찬했다
왕은 치비의 이러한 착한 마음이 왕의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왕은 대신들 앞에서 맏 아들 도절을 태자로 책봉 할것을 선언한다
이때 태자로 책봉 받은 도절은 나이가 12 살이었다

온 나라가 도절이 태자가 된것을 축복하고있는데 유일하게 못 마땅하게 생각 하고있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중전 송씨와 후궁 화희였다 .

유리왕 14 년 11 월 동 부여왕 대소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
"유리왕에게 고하노라 ,나의 아버님이신 금와 대왕과 그대의 아버지인 동명왕은 부자간이나 다름 없다.그런데 그대의 아버지 동명왕은 나의 신하를 꼬드기어 우리부여국의 영토인 졸본에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선왕께서는 그대의 선왕을 탓하지않고 그대 선왕이 나라를 세운것을 축복해주었다 .
하지만 그대들은 어떻했는가?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대들은 배은 망덕을 했느니라
옛 말에도 있지만 장형부모(長兄父母)라는 말이 있듯이 현재 상태로는 지금 고구려가 우리와 부모 자식지간이 아니라 감안 하더라도 우리 부여는 그대 나라와 사이는 같은 피붙이인 맏형과 동생사이의 다를바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맏형의 지위는 부모와 같다는점을 생각 한다면 당연히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그런데도 그대들은 다른 한족이나 말갈족 같이 1년에 한번 사신을 보내어 겉치례만 하겠다니 이런 불손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

나는 그동안 참고 참아 왔노라
그동안 우리는 그대들이 우리 부여땅을 하나씩 잠식 해 들어가고 있는것을 그동안 방관해 온것을 후회하며 한번도 더 충고하겠노라 .
우리는 피흘려 싸우는 전쟁은 원치 않는다 .대신에 조공과 사신 교환은 그대들이 원하는대로 종전같이 1년에 한번씩으로 족하나 대신 볼모로 그대 나라의 태자를 부여로 보내주기 바란다
볼모로 보내준 왕자는 우리가 잘 모시고 있을 것이니라
만일 그렇게 못하겠다면 우리도 생각이 있느니라 .알아서 회답을 바라노라 "
유리왕은 동부여 사신이 들고 온 대소의 편지를 보고 치가 떨리었다
"태자를 볼모로 보내라고?"
당장에 동부여로 처들어가 대소왕의 목을 치고싶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유리왕은 화를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걸리었다.이성을 찾아야지 감정으로만 대처할수 없는노릇이었기때문이었다
왕은마음을 진정 시키고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대소 왕의 편지를 읽도록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도 낯빛이 붉으락 푸르락 하였다
"말해 보시오 ,대책을...."
"................."
모두 꿀먹은 벙어리였다
재사가 나선다
"전하 ,지금 우리가 부여와 맞 붙어 싸우 승산이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지금 까지 우리는 주변 소국(小國) 아니면 말갈이나 선비 같은 미개 국가들과 전쟁 하여 승리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여나 한(漢)나라는 문명국이라 다릅니다.
분명히 부여국은 우리를 얕 잡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부여국의 왕자 볼모 요구라는것도 정의(正義)에 어긋나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옛말에 정의감에만 사로잡혀 우리 자신을 잘 모르는 채로 부여국과 싸움에 함부로 뛰어들수만도 없는일입니다.
정의(正義)도 중요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궤도(詭道)라는 옛말이 있듯이 일단 태자를 볼모로 보내 놓고 충분한 여건을 갖춘후 싸움여건이 가추어진후 치는것이 어떨가 합니다 "
재사가 채 말이 끝나기전에 무골이 큰소리로 아뢴다
" 그러면 이대로 참고 부여를 섬기자는 얘기요? 죽을 때 죽더라도 당장 처부시도록 하옵소서 "
이번에는 유리왕이 말을 못한다
".............."
사실 그동안 전쟁할 만큼 군사들을 훈련을 소흘히 해온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부여국이 아닌가?
유리왕은 마음이 점점 냉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그래 ,시간을 벌자 . 내가그동안 여색(女色)에 빠저 너무나 정사를 소흘히 했구나 )
유리왕은 눈물을 먹음고 태자 도절을 동부여국의 볼모로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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