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블로그

조회 수 4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대무신왕은 골치 아픈 부여를 섬멸 하자 부족 위주의 5 부를 왕권 위주의 5부로 바꾸었고 대무신왕 아래는 중국의 한(漢)나라모양으로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승상(丞相) 제도를 두지 않고 대무신왕 아래 직접 좌보(左輔), 우보(右輔) 제도를 두어 임금을 돕도록하는 제도를 두었다.

당시 중국의 한(漢)나라 이전인 진(秦)나라 때는 진시황 밑에 좌우승상(左右丞相)을 두어 권력을 진시황이 독점 했듯이 대무신왕도 바로 밑에 권력을 자신이 독점하여 강력한 고구려로 밀고 나가기 위하여 좌우보(左右輔)제도를 두어 권력의 누수를 막았다

이것은 대무신왕의 통치 철학이기도 했다.
대무신왕은 권력을 신하에게 위임 하면 자기는 허수아비가 될 뿐만 아니라 신하의 세력이 왕권을 넘어 서면 신하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신권이 강해지며 권한이 애매하여짐으로 서 신하들은 국가 보다도 사리사욕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권력이 뒤 범벅이 되면 내란이 일어날것이고 고구려는 붕괴 될것 이라는 것이 대무신왕의 왕권 철학이었다 .
대무신왕이 중국의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의 좌우 승상제와 비슷한 좌우보 제도를 택한것도 이런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강력한 왕권으로 천하를 호령 하 기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다.

대무신왕 8 년 봄 2 월 대무신왕은 좌보로 을두지(乙豆智)로 삼고 우보는 송옥구(松屋句)를 삼았다
.
대무신왕 9 년 겨울 이왔다
만주 지방은 보통 추운것이 아니었다 . 태자하 (太子河)상류에 있던 양맥(梁貊)과 서쪽 요양하(繞陽河) 서쪽은 고구려가 통치 하고 있었으나 대능하(大凌河) 남쪽 금주성에 자리 잡았다가 왕망과의 전쟁으로 여아하(女兒河) 상류로 도읍을 옮겼던 비류 백제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비류 백제는 여아하(女兒河)와 육고하(六股河) 상류에서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며 비류가 소국으로 남아 중국의 왕망 정권이 내란으로 요서 지방을 등한시 하고 고구려가 부여와의 전쟁으로 소강상태 로 있는동안 남쪽 온조와의 해상 교통으로 관계를 맺으며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漢)의 요동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비류국을 공격해왔다 .
비류 백제 비류왕은 몸은 늙었지만 아직 혈기는 있었다
비류왕은 1 천명의 군사로 강라현 고개에 진을 쳤다.
비류왕은 10 만 대군의 요동군과 대치 하였으나 1 천명의 군대로는 중과 부적이었다
할수 없이 남쪽에있는 동생 온조와 고구려에 구원 요청하는 병사를 보내 놓고 돌격대세를 갖추었다

"고구려 와 백제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적들이 패수(浿水)를 건느지 못하게하라 "
하고 명령 하였다 .패수란 지금의 육고하 상류를 이른다
그러나 어느새 중국의 요동태수가 대성(帶城)을 함락하고만다
고구려군 요서 수비대가 대성을 공격하여 요동 태수를 쫓아내고 수복 하였을때는 성은 텅비어 요동태수는 만리장성을 넘어 난하로 도망 가고 비류는 고구려군을 기다리다 못해 비류 백제를 버리고 동생 온조가 자리 잡고있는 하남위례성에 가있는 한강으로 가기 위하여 일부 무리를 이끌고 호호도(葫芦島)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미추골에 정착한다 .
지금의인천이었다

비류는 하남 위례성을 찾았으나 온조는 이미 홍성의 금마로 가서 마한(馬韓)을 멸망시키고 비류를 받아 주지 않는다 .
비류는 더이상 발 붙일곳이 없자 어느날 자살의길을 택한다

대성(帶城)에 남아있던 백제 유민 1천호는 고구려에 귀순한다
한편 고구려에는 부여 대소왕을 단칼에 처죽이었던 괴유가 죽는다
처음에 괴유가 위독 할때 왕은 손수 병문안 까지 가서 그를 위문 하였다 하니 왕은 괴유를 매우 아끼었던 모양이다

괴유가 죽자 왕은 그의고향인 북명산(北溟山 )에 장사 지내주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때에 따라 제사 까지 지내었다고하니 대무신왕으로서는 아까운 인재를 잃은 셈이었다.
대무신왕은 비류가 요동태수의 공격으로 배를 타고 한강쪽으로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좌보 을두지를 부른다

"듣자니 남쪽에 있는 백제는 패수와 살수 상류에 에 있던 비류 백제와 와 같은 핏줄인데도 요동태수가 침범 해왔을때 필히 도움을 요청 했을터인데도 지원을 않는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패수와 살수는 지금의 대능하와 여아하 상류 지방을 일컫는다 .
앞서 비류 백제의 비류가 대성(帶城)을 탈출 하여 배를 타고 남쪽으로 도망 치었다는 말을 듣고 왕은 지금까지 등한시 했던 백제를 생각하게 한것이다
" 바다를 거느기가 힘이들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백제가 바다를 끼고있으니 그런점이곤란 하구먼..."
"하지만 백제는 남쪽은 3 면이바다이고 기온이 온화하여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백제는 지금 마한을 무너뜨리고 나라가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냥 놔 두면 후환이 두렵습니다 "
"백제를 치자는 말이오"
"장기적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서쪽에 있는 한(漢)이 항상 위협 대상 인데 남쪽으로 군대를 돌렸다가 만일 국내성을 점령 당하면 어쩔라고 그러오"

"그래서 국내성은 매우 취약 합니다 .한 국가의 수도란 뒤로는 높은 산과 앞으로는 깊고 넓은강이 흘러야합니다 . 그리고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국가의 환란이 있을때 적들의 진격을 늦추게 할수있고 이들을 격퇴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는것입니다. 비류왕도 남쪽에 있는 온조왕과 자주 왕래하며 그동안 명맥을 유지할수있던것도 패수와 살수 그리고 발해만의 바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신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국내성이 한(漢)과의 전쟁이 또 발생시에는 안전을 장담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좌보께서 말 한대로 이 국내성도 지형적인 조건이 얘기한 내용과 별로 다를바 없는데 무슨 말씀이오"
"국내성은 바다가 멉니다.비류왕을 쫓던 요동태수가 결국은 바다와는 인연이 먼 사람이었기에 포기하고 만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이나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길때 차라리 남쪽 어느곳을 더 생각 해 보았으면 좋았을것을 그랬습니다 .남쪽은 3 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많은군사들 없이도 바다가 방호벽이 될수있기때문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하면 좋겠소?"
"남쪽을 눈여겨 볼필요가있습니다"
좌보 을두지는 최적지로 왕에게 지금의 대동강변 과 한강변을 지목한다
이런 대화가 있은지 얼마후 왕은 좌보 을두지를 다시 부른다

"내 생각해보니 좌보의 말씀이 옳습니다 .남쪽의 좋은 장소를 알아 보도록 하오"
"하오나 남쪽을 치려면 두 나라가 앞을 막고있습니다 .이 두나라를 먼저 정벌해야 두곳을 점령 할수있습니다 "
"그게 어느나라요?"
"개마국(蓋馬國)과 구다국(句茶國) 두나라입니다 "
"당장 치도록합시다"
"개마국은 높은 지형에 있어서 소국이기기는하지만 만만히 볼수 없는나라입니다 . 잘못하면 큰 실수를 범할수가있습니다 "
"그러면 계책을 말해보오"
"개마국은 험한 지형에있어서 성이 견고하고 높아 치기가 어렵습니다 .천상 계책을 써야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개마국왕 하비(霞飛)는 도량이좁고 경솔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경솔하면 또한 생각하고 염려하는것이 부족합니다.신에게 계책이있는데 그대로 하시겠습니까?"
"말해보오"
"우선 성 밖에다가 땔나무꾼으로 가장하여 호위병을 딸리지 않은채 30 명을 투입한후에 이들을 미끼로 삼아 그들을 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다음은?'
"틀림 없이 개마국 병사들이 우리 땔 나무꾼들을 허가없이 나무를 벌채 한다고 성문을 열고 잡아 들이려고 할것입니다 . 이때 매복하였던 우리군이 공격 하면 힘 안들이고 적은 군대로도 점령할수있습니다 "

"좋소 ,그대로합시다"
을두지의 계책 대로 고구려군은 1 만군사를 비밀히 진군하여 성 외곽에 매복하였다 .
예상 했던대로 고구려 평민복을 입은 병사들이 성문 밖 산이 보이는곳에서 나무를 자르기시작하였다
"이놈들, 너희들은 어느놈 들인데 나무를 함부로 베느냐?"
성안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개마국 경비병이 소리친다
밖에서는 이소리를 무시하고계속 벌채 하여나간다

개마국 병사들이 북문을 열고 이들을 잡으러 나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숲속에 숨어있던 1 만병력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간다 .삽시간에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개마국왕 하비는 미쳐 도망치지 못하고 살해당한다
개마국은 손쉽게 점령되었다.
대무신왕은 개마국 백성들에게 위안을하고 병사들에게는 노략질하는일이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의 군현으로 삼았다

이 소식을 듣고있던 국다국왕 현저(賢邸)는 개마국을 대무신왕이 안정 시키고 노략질하는 일 없이 고구려의 군현으로 정한것을 보고 나라를 바치고 스스로 항복해왔다 .
이로서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북대하(北戴河) 북쪽으로는 선비 , 남쪽으로는 대동강 상류 , 동쪽으로는 읍루와 접하여 동북아의 대제국으로 첫발을 디디게 된다

계속

  1. 08Aug

    고구려(47)-漢四郡 정벌-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2. 08Aug

    고구려(46)-호동 왕자의자살-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3. 08Aug

    고구려(45)-대무신왕이 죽다 -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4. 08Aug

    고구려 (44)-두마리 토끼 사냥-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5. 08Aug

    고구려(43) -낙랑공주와 호동 왕자 -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6. 08Aug

    고구려 (42회)-낙랑군 태수 최리-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Read More
  7. 08Aug

    고구려(41)-낙랑정벌-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Read More
  8. 08Aug

    고구려(40)-漢나라의 침입-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9. 08Aug

    고구려(39회)-비류의 도망-

    Date2015.08.08 By권영환 Reply0
    Read More
  10. 08Aug

    전주 영양 돌솥밥 먹고 성경공부 가요 ~~♡

    Date2015.08.08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11. 07Aug

    폭포 앞에 광피리 ~~♡

    Date2015.08.07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12. 05Aug

    죽어라고 먹는 광피리 ~~♡

    Date2015.08.05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13. 04Aug

    삼계탕 먹고 힘이 넘치는 광피리 ~~♡

    Date2015.08.04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14. 04Aug

    올해의 생존 목표 - 냉장고 문을 자주 열자 ~~♡

    Date2015.08.04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15. 03Aug

    고구려(38회)-부여..... 무너지다

    Date2015.08.03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6. 03Aug

    고구려(37회)-부여 정벌의 길

    Date2015.08.03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7. 03Aug

    고구려(36회)-비류강

    Date2015.08.03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8. 03Aug

    고구려 36편

    Date2015.08.0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9. 02Aug

    광피리 점심 ~~♡

    Date2015.08.02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20. 01Aug

    광피리 밥먹고 성경공부 가요 ~~♡

    Date2015.08.01 By광피리 Reply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 241 Next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