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블로그

조회 수 24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창덕궁.jpg

 

 

대원군 이하응은 형수 이최응의 부인 상중에도 최익현의 동태를 수시로 운현궁 가인 천희연을 통하여 알아 보고 있었다 .
"최익현이 놈이 돈녕부 도정이 되었다면서 ..."
"그렇사옵니다 "
".................."
"최익현이 놈을 어떡 할 갑쇼?"
이하응은 천희연의 말에 화를 벌컥낸다 .
"아, 이놈아 어떡 하다니? 전하의 어명이니 가만히 있어야지 , 어떡 하겠다는 거야? "
천희연은 머쓱 해지었다 .
주먹 한방이면 최익현이 같은 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울수 있는데 말이다 .
그러나 최익현 하나를 해 치움로서 생길 파장을 생각한 이하응은 궁도령시절의 치기를 발동할 처지가 아니었다 .

이하응은 최익현의 상소문과 임금과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
누군가가 최익현을 앞 세워 장난 하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그러나 10 월10 일 고종에게 낸 상소문 내용은 누가 시켜서 낸 상소문 같지는 않았다
대원군 이하응은 고종과 최익현에게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
"
“첫째는 토목 공사를 중지 하는 일입니다. 나라 임금의 급선무는 덕을쌓 아야합나다 공사를 일으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초가집과 흙과 섬돌은 요(堯) 임금이 위대하게 만들었고, 낮은 궁실(宮室)과 변변치 못한 의복은 우(禹) 임금이 흠잡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 이들의 빛나는 자취가 모두 책에 쓰여 있지 않사옵니까?

만일 이러한 모든것을 모두 믿지 않으시겠다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 만약 본 받으니다고 한다면 그 까닭을 깊이 생각해보지 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말을 깊이 생각 하시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공사를 모두 모두 정지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수고를 덜어주소서.

둘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는 정사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재물은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학(大學)》에도 이르기를, ‘나라가 재물을 모으면 백성들이 흩어지고 재물을 흩으면 백성들이 모여든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나라의 예산이 바닥이 났는데도 방대한 역사를 시작하였으므로 형편상 백성들에게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한때의 임시방편의 정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대내(大內)가 완공되어 이어(移御)하신 것이 얼마 전이있지만 원납전(願納錢)의 징수를 지금 정파(停罷)하지 못한다면 장차 어느 때에 가서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셋째는 당백전(當百錢)을 혁파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경비가 부족한 것을 근심하시어 이렇게 의로운 발기를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시행한 지 2 년 동안에 사·농·공·상이 모두 그 해를 입었는데, 그 피해가 되풀이되어 온갖 물건이 축나고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토지에서 생산 되는 것이 전 보다 줄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현 시기의 형편과 세상 인심이 절로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이제 다시 옛날 돈이 통용되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것 같사옵니다 .
모든 백성들이 말하기를, ‘이 돈은 앞으로 없어질 것이다.’라고 합니다 .
그런데도 거리마다 집집마다 세금을 바치라는 방(榜)만을 볼 수 있을 뿐 영구히 혁파한다는 밝은 명을 들을 수 없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의혹이 점점 짙어가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덕음을 내리시어 백성들로 하여금 미혹되지 않도록 하소서.

넷째는 문세(門稅)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당당한 천승(千乘)의 재부로써 이해를 타산하여 이미 백관(百官)과 각 군문에 지급하는 녹봉을 삭감하였습니다. 그 나머지 각 항목의 견감(?減)한 물건도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겨 섶을 팔고 쌀을 파는 사람들에게 한 푼 두 푼 구걸하면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이웃 나라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즉시 통과세라고 부르는 금지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한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상소문 핵심 내용이 다시 떠 올랐다 .
아무리 생각 해도 괫심하였다 .
(그래, 이놈 두고 보자...........)
이하응은 사간 권중록이 최익현을 고도로 귀양 보내자고 발언 했을 적만해도 마음이 덤덤했었다 .
그러나 그자가 돈녕부 도정으로 승진 까지 되었으니 울화가 하늘 끝 까지 치밀수 밖에 없었다 .
더구나 최익현을 두둔한듯한 고종의 발언이 더욱 이하응의 마음을 건드렸다

" 최익현이 네 가지 조항을 과인에게 진달하여 권면(勸免)한 것은 실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을 걱정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매우 가상 하다 할것이다
그러나 토목 역사는 형편상 그만둘 수 없는것이고 . 문세를 거두는 것도 옛날에도 그런 예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고종도 최익현을 구제하는 대가로 대원군의 눈치를 보면서 고종이 경복궁 공사는 계속 되어야 하고 문세도 계속 받아야 한다는 마음에도 없는 발언을 한것이다.
만일 경복궁 공사를 중단 하라는 말 까지 고종에게서 나왔다면 대원군 이하응의 성격상 무슨일이 일어 났을 까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

고종은 대원군의 속 타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연에 참석하여 나라의 앞날에대한 강의 만을 듣고 있었다 .

10월14일 고종의 책상위에는 앞서 발언하였던 권종록의 상소문이 올려지었다 .
"이게 누구의 상소문인고?"
"사간 권중록의 상소문인가 하옵니다"
돔부승지의 말에 고종이
"먼저 어전회의때 할 말을 한것으로 알고있는데 무슨상소야?"
"..............."
고종이 상소문을 펴들었다

"며칠 전에 전 장령(掌令) 최익현(崔益鉉)이가가 무엇 때문에 상소문을 올렸겠습니까?
그가 말한 네 조항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경복궁 공역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고 금융 정책도 지금 바로 잡히기 시작하였는데, 새삼스레 쓸데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면서 공사중지가 한시가 급한 듯이 말하고있으니, 정말 웃기는 얘기입니다 .
문세(門稅) 라는것은 은 어느 나라나 다 통용하는 규례인데, 꽤 할말도 없나봅니다 할 말이 없어서 하필 백성들에게 구걸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까?
어쩌면 그렇게도 최익현은 꺼리는 것이 없습니까?

연전에 이항로(李恒老)가 대궐 공사를 정지 하자고 청한 것은 매우 무식한 말로 이 항로가 자기 이름을 내고 전하의 칭찬을 얻으려는 계책이었습니다.
최익현은 그의 문도(門徒)로서 오랫동안 그를 따르면서 잘알지도 못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모두 드러낸 것입니다.
다만 정말 최익현이가 하는 말대로 하신다면 장차 일어 날일이 끔직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한것입니다
최익현이가 비유한 것 마다 해괴하고 말한 것마다 패악스러우니, 이런 사람을 오히려 사람의 도리와 신하의 분수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상의 도량이 하늘 처럼 크시어 비답하신 전교가 융숭하였으니, 신은 실로 흠모하고 우러르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춘추(春秋)》에서는 역모를 품은 자에 대해서는 죽일 수 있다고 하였으며, 한(漢) 나라 법을보면 불경(不敬)한 경우에는은 나라에서 항상 있는 형벌을 주었었습니다.
불충한 뜻을 품은 것이 저와 같고 윗사람을 범한 것이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최익현을 살려둔다면 이 또한 무례한 자를 엄하게 처벌하는 뜻이 아닙니다.
신의 생각에는 최익현에게 빨리 찬배(竄配)하는 법을 시행하는 것을 결단코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고종은 상소문을 읽고나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
(이놈이 누구를 믿고 과인을 능욕 하는고? )
고종의나이 16 세다 ,
고종이 나이가 어리다고 얕 보고 하는 짓이 분명했다 .
고종은 나이가 16 세이나 임금이된지 벌써 5 년째이다 . 이제는 권종록 따위에게 넘어갈 고종은 아니었다 .

고종은 상소문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상소문이라는 뜻이었다
동부승지가 고종의 심기를 물었다
"전하 사헌부 장령 문제입니까?"
"지금에 와서 따질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최익현의 말이 조금 망령되고 경솔한 면이 있지만, 시골 사람이라 어두운 탓이있으니 깊이 책망하여 견삭(譴削)하는 법을 실시할 필요까지 있겠는가?
계속 이런것을 가지고 점점 계속 분란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실로 나의 뜻이 아니다.”
"................."

고종은 최근 14.15일 양일간 경연을 열어 석학들의 진강(進講)을 듣고 있었다 .
최익현이 낸 상소문을 읽고 자극을 받아 그동안 익히지 못한 학문을 듣고 싶어서였던것이다 .
계속


  1. 21Mar

    勉庵 崔益鉉(68)- 日本과 淸나라 사이에서 -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2. 21Mar

    勉庵 崔益鉉(67)-濟州島 귀양을 마치고-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3. 21Mar

    면암 최익현(66)-日本과의 修交-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4. 17Mar

    勉庵 崔益鉉 (65) -武力과 外交속에서 -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5. 17Mar

    勉庵 崔益鉉(64)-鎖國 政策-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6. 17Mar

    면암 최익현 (63)-大院君의 國防觀- -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7. 17Mar

    면암 최익현(62)-大院君의 苦悶-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8. 17Mar

    勉庵 崔益鉉(62) -復古-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9. 17Mar

    勉庵 崔益鉉(61)-濟州島 流配 生活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0. 17Mar

    광피리 끼니 ~~♡

    Date2016.03.17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11. 16Mar

    When my Dad was young ~~♡

    Date2016.03.16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12. 14Mar

    면암 최익현(60) -귀양 가는 날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3. 14Mar

    면암 최익현(59)-竄配-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4. 14Mar

    勉庵 崔益鉉 (58)-淸貧한 公職者의 條件-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5. 14Mar

    勉庵 崔益鉉(57)-石坡亭의 가을-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6. 14Mar

    勉庵 崔益鉉 (56)-臣下라고 다 臣下가 아닙니다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7. 14Mar

    勉庵 崔益鉉 (55)-揚州 곧은골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8. 14Mar

    勉庵 崔益鉉 (54)- 收布代役-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9. 14Mar

    勉庵 崔益鉉 (53)- 上疏-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20. 11Mar

    When I was young ~~♡

    Date2016.03.11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 241 Next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