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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눈이 귀하다. 삼동의 가운데, 대한이 지나도록 큰눈이 오지 않았다. 
눈, 하면 교통난부터 떠올리는 세상에서는 고마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농사를 뒷전으로 물렸을 때의 일이다. 
봄 가뭄을 생각하면, 눈은 귀한 손님이다.


마당바위 어름에서 본 용문봉 능선. 구름이 창조한 산봉우리.
“없는 사람에게는 여름이 낫다”고들 했다.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소리다. 그랬던 어머니는 막상 겨울이 오면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고 했다. 나는 결코 ‘한 입에 두 말’의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그게 세상살이의 진실이다. 요즘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따뜻한 겨울 날씨에 웃자란 보리 같다. 복사뼈 정도만 눈이 와도 언론은 ‘눈 폭탄’이라고 호들갑이다. 서울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가 사라졌어도 한강은 얼지 않았다. 전국 대부분 지역은 건조주의보가 켜진 상태다. 겨울 추위의 ‘제맛’은 아이 같은 감상이 아니다. 용문사의 진정 살아 있는 역사는 은행나무 용문산으로 향하는 아침, 눈발이 흩날렸다. 잠깐 내리던 눈발은 그쳤고, 용문산 아랫마을 신점리(용문산 관광지)는 적막했다. 그렇다. 이곳은 용문사 은행나무가 물들어 환한 가을에야 ‘관광단지’라는 이름값을 한다. 용문사 산문은 용문산으로 드는 대표적인 들머리다. 이외에 용문산으로 오르는 길은 사나골(사나사 쪽), 새수골(백운봉 남쪽), 연수리 쪽인데 모두 용문산 남쪽 자락이다. 용문산 북쪽은 오대산에서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한강기맥)가 성벽처럼 버티어 섰다. 그 너머 북서쪽으로 북한강이 양수리를 향해 흘러내린다. 용문사 산문을 들어서자 다시 눈발이 흩날린다. 사천왕 같은 소나무의 푸른 가지는 잿빛 하늘 속의 햇살이다. 용문사로 오르는 찻길 옆의 넓고 깊은 계곡은 용문산의 풍채를 짐작케 한다. 용문산(1,157m)은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m)에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일대에서는 단연 돋보인다.
용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용문사. 용문산이라는 이름은 이 절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첩첩 산봉우리에 기대어 앉은 용문사의 침묵은 묵직하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흩날리는 눈뿐.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까닭인지 은행나무가 더 우뚝하다. 아마도 속리산의 정2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일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나이가 많다. 1,100살 정도로 추정하는데 키는 42m, 뿌리 부분 둘레는 15.2m이다(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센터 홈페이지). 이 나무의 그늘은 용문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용문산 관광지는 이 나무 덕으로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나무도 벼슬을 했다. 조선 세종 때 당상(정3품) 직첩을 받았다. 사실 이런 역사는 이 나무의 본질과 무관한 인간 욕망의 투영일 뿐이다. 이 나무는 용문사가 몽땅 불타는 큰 재난 앞에서도 무사했다. 이 나무의 위엄이 스스로를 지켰다. 용문사는 913년(신라 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된 햇수가 은행나무의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조선시대에 용문사는 동국제일가람이라 불릴 만큼 큰 절이었다. 왕실의 사찰로서 세조와 그의 비 정희왕후의 후원을 받을 무렵이다. 하지만 정미의병 항쟁(1907) 때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 일본군이 모든 건물을 불태웠고 이후 착실히 중건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탔다. 현재의 가람은 1982년 이후부터 다듬어진 모습이다. 용문사의 진정 살아 있는 역사는 은행나무다. ‘백초(百草)가 다 불모(佛母)’라 했다. 이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가람의 존재 의미다. 용문사에서 용문산 마루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능선길(상원사 방향)과 계곡길이다. 계곡길이 조금 더 까다롭지만 나는 계곡길을 따른다. 어느 해 늦은 가을 이 계곡에 든 적이 있다. 그날도 오늘처럼 흐렸었고, 근골 좋은 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계곡으로 가라앉곤 했다. 계곡은 그 모든 것을 묵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계곡은 거대한 바람기둥이었다. 그 기둥 속에 나뭇잎이 회오리칠 때, ‘이것이 용문(龍門)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었다. 용문산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도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근군 산천조(條)에 이렇게 소개돼 있다. ‘용문산의 다른 이름은 미지산인데, 군 동쪽 33리 되는 곳에 있다.’ 지평현 산천 조에는 ‘미지산은 현 서쪽 20리 되는 곳에 있는데, 곧 용문산이다’고 하여 용문산은 양근군과 지평현 모두의 산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용문사’를 지평현의 사찰로 기록했다. “용문사는 미지산에 있다. 산을 ‘용문’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절 때문이다.” 이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미지산이 용문산의 앞선 이름이었고, 용문산은 용문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대체로 그렇듯이 우리나라의 산과 절은 구름과 비처럼 짝한다. 이름 얘기가 나왔느니 한마디 더 보태자면, 오늘 날 양평군이라는 이름은 1908년 당시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병하면서 명명한 것이다. 설핏 눈이 덮인 계곡의 너설은 용의 비늘인 양하다. 조심조심 밟고 오른다. 바위 사이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처럼 나의 맥박도 생기를 더한다. 여울지는 곳의 얼지 않은 물은 맨얼굴을 내밀고 눈송이를 삼킨다. 그렇다. 겨울은 이렇게 살아 내야 한다.
용문산 계곡의 겨울 숨구멍.
계곡 오른쪽으로 용문봉(970m) 능선을 따라 계곡도 허리를 세운다. 문득 구름이 산봉우리를 만들어 낸다. 흐린 겨울날 산을 오르는 매력이다. 눈이 그쳤다. 마당바위를 지나 계곡을 벗어나자 능선으로 오르는 편안한 기슭이다. 빈숲은 숫눈의 기운으로 활짝 밝다. 기분 좋을 정도로 미끄러지는 걸음으로 능선을 오른다. 언제 보아도 좋은 우리 겨울 산의 아름다움 능선에 오르면서부터 암릉이다. 위험한 곳에는 줄을 매어 놓았지만 여간 까다롭지 않다. 차라리 눈이 깊으면 덜 미끄러울 텐데, 살포시 깔린 눈은 온몸의 신경을 두 손과 발에 집중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숨이다. 겨울 산의 가르침이다. 아스팔트길을 걸으면서도 이 걸음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면, 산과 저자가 둘이 아닐 텐데…. 용문산의 계곡은 참나무가 우세한 활엽수림이지만 등성마루 일대는 소나무가 많다. 바위와 짝한 고송은 용문산을 신선과 동무하게 한다. 소나무 우듬지 옆 가지 사이로 용문봉 일대의 등성마루가 눈높이로 걸린다.
하산길 능선에서 바라본 백운봉.
햇살이 목덜미에 가득 내려앉을 즈음 눈앞에 한 봉우리 말고는 하늘이다. 용문산 마루 아래. 가파른 계단이 버티어 섰고 그 위로 가림막과 한국통신 중계기지국의 시설이 보인다. 용문산 정상 일대는 1966년 공군의 방공관제센터가 들어서면서 사람의 발길을 통제했다가 2007년부터 개방했지만 지금도 군부대 쪽으로는 출입이 제한된다. 용문산 마루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용문봉 줄기와 서남쪽으로 백운봉 줄기는 호호탕탕하다. 장대하게 벌어진 품 사이로는 부드러운 산들이 마을을 품고 누웠다. 그야말로 산 모양으로 돌올한 추읍산과 멀리 치악산이 구름과 한몸을 이루고 있다. 이우는 해를 안고 산허리를 미끄러져 내린다. 백운봉의 뾰족 봉우리가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그 앞으로 등성마루 위 참나무 우듬지가 솜털 같다. 마음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산의 손길이다. 언제 보아도 좋은 우리 겨울 산의 아름다움이다. 능선길이 끝나기도 전에 산기슭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다. 어둠 사이로 용문사의 범종 소리가 차오른다. 눈길이 아니었다면 이 소리를 산에서 듣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 한 자락 밝아진다.
1 용문산 마루를 향하는 암릉. 2 용문사 계곡은 품이 넓고 깊다. 산길은 계곡의 너설을 넘나든다
-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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