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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 왕석작(王錫爵)이 있다가  명황제에게 간언한다

"폐하 조선에서의 철수는 불가 합니다 .

 

왜군들이 철수 하겠다는 것은 거짓으로 보입니다,

 왜적들이야 말로 믿을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다시 처들어 올지 모르는 차제에 우리 명군이 철수 한다면 조선은 다시 왜적들의 말발굽 아래 유린될것은 뻔합니다 .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던가 아니면 적이 부산 앞바다에서 완전히 떠나기 까지는 그자들을 믿을수 없습니다 "

강력히 반대 의견을 제시 하였다

 

 

과신(科臣) 허홍강(許弘綱)이 간언한다

"학사께서는 그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까지 우리가 조선 땅에서 흘린피가 적지 않거늘 어찌하여 이이상 희생을 더 해서야 되겠습니까? 왜군들이 조선 땅에서 버틸 힘이 없어 왜군들은 지금 영남해안가에서 저의 나라로 철수 하겠다는 마당에 저이들과 약속한 우리 군이 철수 않는 다면 그 들에게 명분만 더 주게 되는것입니다 , 왜적은 약속대로 철수 합니다 "

 

 

명나라  황제신종이 이 말을 듣고 걱정한다

"과연 왜군들이 순순히 철수 할까?"

"폐하 걱정 마시 옵소서 지금대로만 철수 한다면 수일내로 모두 물러 갈것입니다 "

"듣자니 조선군이  계속 적들의 퇴로를 공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대로 놔두면 적들이 다시 퇴각을 멈추고 공격으로 전환 하지 않겠나?"

"그러하옵니다 .조선군은  자기나라를 황폐화 시킨 왜군을 조선내에서 모두 잡아 죽이겠다는 신념인 것같습니다만 우리 입장은 다릅니다. 다시 적들과 전투가 벌어 진다면 우리군의 손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함부로 뗄수 없는것이 조선전입니다. 그러하므로 적들이 순순히 물러가게 하려면 조선 왕에게 조선 군의 공격을 삼가 해줄것을 요청 해 둔다면 전쟁은 이제 끝날것입니다 "

황제가  다시  묻는다

"조선군이 공격을 멈추라고 했다는데  도대체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는 그장수 이름이 무엇인고?"

" 전라감사  권율이라는 자입니다"

" 병부상서는  조선왕에게  권율이라는 자를  해임시키는 동시  조선군이  왜군공격을 중지 하도록 조치하고 우리 동정군도 철수준비를 하도록 하오 "

이때 병부급사중(兵部給事中)후경원(候慶遠)이 나서서 아뢰었다.

 

 

"폐하 않되옵니다 , 잘못하면 대사를 그릇칠 염려가 있나이다

가볍게 철수만으로 해결될일이 아니옵니다 . 신의 생각으로는 완전 전면 철수 보다도 단계적으로 왜군이 와전 철수 할때 까지 잘 훈련돤 정예군 만이라도 소수만 남겨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것이 옳을듯 하나이다. "

 

 

신종도 이말에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후 급사중 의견도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나 과인이 생각하는것은 설혹 우리가 압록강을 모두 건너온다 해도 일단 물러난 왜군이 현해탄을 건느는것보다도 식은죽먹기보다 더 쉬운일이 아니오?"

"그것은 적들이 바다건너간후 얘기옵니다 "

  "그렇긴 하오 , 병부의 서상서에게 다시 명령하니 그대로 시행하시오 , 전면철수보다도 적들의 동태를 보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철수 하도록 조선에 가있는 경략에게 지시 하되 현지 사정과 의견을 다시 물어 보고 받은후에 시행토록 하오 "

 

 

 

황제의 어명을 받아쥔 송응창은 전면철수가 아닌 단계적 철수라는 과제 만 받고 보니 난감 할수 밖에 없었다 .

차라리 철수 의견을 치계하지 않음만 못하였다 .(부분 정예군이라니.....) 도대체 명군에게는 정예군을 시간상으로 편성할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군사수만 줄어 들면 유사시에 왜군에게 숫적으로 열세에 몰려 막아낼 방법이 없다 .

  더구나 조선군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거느리는 부대는 지난해 한강 방어전이나 임진강 방어전 ,에서 계속 패전만 거듭한 약군이라 믿을수가 없었다.

송응창은  왜군의 동태를 신종에게 보고는 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왜적들은 명군만이 물러 나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명군이 철수 완료 했다고 가정하자 , 조선군이 이들을 막아내면 다행이지만 또 패전만 거듭한다면 황제는 나를 어떻게 생각 할까?그렇게 되면 앞서 세운 나의 공(功)은 어찌 되는것인가?보나 마나 물거품으로 변하게 될것은 명약관화 하다 할것이다.그러나 엎질러진 물이니 걷우어 들이기는 어렵다 )

 

 

소응창은 명나라 황제에게 아래 내용과 같은 상소를 다시 올렸다

  일단 철수를 대원측으로 하되현재 왜군이 철수 하는것을 조선군만으로 감시 하도록하고 명군은 후방에 배치토록하여 조선군의 전투 능력을 시험한다 . 명군의 배치 방법은 병력을 후방여러곳에 분산 배치 한다

 

(撥兵協守)

왜병들이 바다건너 모두 철수 하고 나면 아주 적은 병력이라도 남겨 두어 왜군들이 감히 넘겨 보지 못하도록 한다

 

(量留防守)

라는 내용을 황제의 구미에 맞게 작성 보고 하였다

신종은 별도의 명령을 내려 명군이 전면 철수에 대비 강서(江西)와 절강(浙江)성의 포수(砲手)들 5000명정도를 모집해 놓으라 지시 했다.

 

 

이러한 명나라 신종황제의 계획은 그대로 실천 된바 없지만 만일 명군의 전면 철수가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조선반도는 어찌 되었을까?

왜군의 철수 명분은 철수가 아니라 그들의 피로한 군사들을 경상도 지방까지 철수 시킨후 재 충전의 기회를 갖기 위한 작전상 후퇴란것을 명나라와 조정에서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까지 내려온 왜군들은 서울에서 철수 할때의 왜군이 아니었다.본국에서 새로운 양곡이 도착되고 새로운 무기가 속속 도입이 되고 있었다

 

.

철수라는 약속을 명군과 한것은 한낟 술책이었다는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임진란이 일어 난지 2년이나 되었다 . 송응창은 조선군 에게 함부로 행동 하지 말것을 지시했다 .왜군들이 이제 철수 할것이니 단순히 복수심 만으로 대세를 그르처서는 않된 다는 것이었다 .

 

 

권율은 조방장 조경에게 한탄한다

"음 , 왜적 들을 추격 해야할 지금 명나라 에서나 조정의 체칠사는 적을 보고도 공격을 못하게 하니 참으로 통탄 할일이로다. "

  한시라도 쫓기고 있는 왜군을 지금 추격 하지 않으면 더큰 애로가 닥아 올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금 진행 하고 있는 일본과 명나라간의 강화에대하여는 보통 못마땅한게 아니었다.

 조경이 답한다

"듣기에는 소서행장과 심유경이 서로 결탁 하여 소위 <관백항서(關白降書)>라는것을 만들어 명 조정에다 올렸다 합니다 ."

 

 

"매일 회담만 하면 뭣하겠소 , 왜적들의 속성을 모르는 명나라 조정이 철군을 생각 하고 있는 모양 인데 왜적들을 부산 앞바다로 몰아 내기전에는 협상이란 있을수 없는것이오 . 결국 왜군들이 재 충전하기 위한 음모에 놀아나는 것밖에 않되는것이오 "

 

 

"가등청정(加藤淸正)과 유정(惟政)대사와의 회담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합니다 . 경상도 우병사 김응서가 나서서 왜장과 회담을 하겠다고 나선 모양인데 한번 참여 해보시겠습니까?"

 

권율에게 조경이 넌즛이 묻자

"조방장은 나보고 왜군과 타협 놀이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순간 권율의 눈에 분노의 눈초리가 번뜩었다.

 조경이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실언을 한모양입니다용서 하십시오"

 

"조방장의 뜻을 모르는바는아니오 . 나도 전란을 평화 스럽게 끝나자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왜군들은 믿지 못할 자들이야 , 다시 말해 간교하기가 이를데 없는 자들이란 말이오 그런자들과 협상을 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 "

"하지만 우리조선이 피해자이긴 하지만 명나라 쪽에서 보면 조선측이 너무 감정 대응만하고 있는것 같으니 그렇게 하지 말고 말고 유연히대하여 순순히 적을 몰아내자는 것 같습니다"

 

 

"조방장, 옛말에 可怒而不怒면 姦臣乃作하고 可殺不殺이면 大賊乃發하고 兵勢不行이면 敵國乃强이라 했고

(일국의 군주 된자가 노해야 할자리에 노하지 않으면 간사 한자들이 세력을 키워 란을 일으키고

또 죽여야 할자리에 죽이지 않는다면 마침내 큰도적으로 자라나 더큰란을 일으키고 군사를 일으켜야 할자리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적국의 세력만 키워주는것이다)라 했오 .

 

 

지금 왜적들야 말로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이런 도적 들과 협상이라니 ......."

 

 

"옳은 말씀입니다"

 

 

 

명나라와 조선, 일본 3 자간에 지루한 회담이 지나가는 동안 곤란을 받고 있는것은 조선 백성들 뿐이었다 .

 

징비록(懲毖錄)에서 당시 체찰사로 있던 류성룡은 이렇게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

 

 

"전쟁이 길어 질수록 각 고을의 창고 의 곡식은 텅텅비어있어, 장차 적들과 싸울 려면 전쟁 필수 물자를 징발해야 할터 인데 군량미가 나올곳이 없으니 큰일이로다 .

 

군량미 조달이 않되는데 그까짓 많은 군사와 높은 성(城)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권율은 이러한 백성들의 고충을 직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하병사들이 조금 이라도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단속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장들은 상하가 서로 참된 마음으로 백성 들을 돌보기 바란다. 장수들은 부하 들이 하는일에 무조건 감싸서는 않된다 .잘못된것은 지적 하여, 민폐가 없도록 하고 백성들이 농사철이되면 비록 전란 중이라 하더 라도 안심하고 농사 지을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다가도 왜적이 전투를 벌려 온다면 백성 들도 합심하여 막아야 하는것이다 그래야 위로는 나라가 편안하고 아래로는 부모처자가 안심하고 살수가 있는것이다.

 

"

권율은 전투가 소강상태로 답보상태에 빠지자 훈련이외에는 대민 선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다 .

 

소서 행장은 심유경과의 약속을 어기고 왕자와 종시들을 부산까지 끌고 내려갔다

 

 

 

명나라와 일본간에는 서로 사신이 수차레 왔다갔다 하는 동안 왜군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것이다.

풍신수길은 명나라 신종 에게 애시당초부터 항복할사람이 아니었다 , 소서행장과 심유경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풍신수길이 조선 에서의 패전 원인은 명군이나 조선군이 아니라 군량미 조달 때문으로 결론 지었다.

 

 

 

"호남 곡창 지대를 다시 확보 하자 그러자면 호남의 관문인 진주를 다시 공격하자"

풍신수길은 진주 성을 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선조26년 5월

 

 

조선군은 의령(宜寧)과 선산(善山) 방면에서 조정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일본과의 강화정책으로 인하여 정작 조선과 일본은 전쟁 당사국이면서도 직접적인 강화 회담이 이루어 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명과 왜국이 조선을 소외 시키고 저이들끼리 조선을 요리 하려는 불순한 음모가 깔려 있었다.

 

 

더구나 권율은 적들과의 강화 무용론(無用論)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송응창으로서는 권율이 신경쓰이지 않을수 없었다.

 

권율은 강화에 방해 인물이라는것은 인정하면서도 조선군을 그나마 이끌고 있는 장수 중에는 권율만한 인물이 없음을 누구 보다도 더잘아는 송응창으로서는 견제의 눈초리만 느추지 않고 있는터이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도체찰사 류성룡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장이라기 보다 한낟 문관이나 다름 없는 나약한 장수에 불과 했다 .

 

 

 

명나라 유격장 전세정(錢世禎)최근 권율군 병사가 척후병 5명을 사살 시킨사건이 있었다.

 

왜군 진영에서는 명군에게 이사건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한일이 있었다 .

 

 

이 왜병들은 척후병이 아니라 땔나무와 풀을 베고 있었던 비전투원이라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 전세정은 권율에게 패문(牌文)을 보내 앞으로 왜군에게 이와같은 일을 가지고 보복적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질책 하는 내용이었다.

 

 

 

체찰사 류성룡이 이건에 대하여 전세정을 찾아갔다

"전(錢)유격께서는 조선군이 볼때는 분명히 적의 정탐병이 분명하여 충돌한 사건인데도 이런 사소한 왜군과의 충돌사건까지 도 질책을 하신다면 우리 조선군이 어찌 작전을 마음놓고 하오리까?"

 

 

하고 항의 하자 진세정은 이렇게 답한다

"무슨 말씀이오이까? 왜군과의 강화는 천자(天子)의 명령이오이다. 조선은 자꾸 적과의 전투로만 해결하려 하는데 전쟁이란 피한방울 않흘리고 이길수만 있다면야 그보다 더한것이 없는것입니다 .

 

 

듣자니 이번일도 왜군은 척후병이 아니라 하는데 조선군이 고의적으로 싸움을 걸어 온다는것입니다.

체찰사도 잘 아시지만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이 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조선군이 참고 지켜야할 제일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회담 진행상황을 보면서 천천히복수의 기회를 노려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조선군이 계속 말썽을 피운다면 우리 명군은 철수 하고 말겠습니다 "

 

반 협박조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었다

 

(이사실은 선조 실록37권에 기록 되어 있다)

 

 

 

권율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 전투 상황에서 할일이 없었다.

 

권율군은 지금 까지 조선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연전 연승한 부대 이다 .

 

왜란 초기 관군이 연이은 패배와 그 과정에서 보인 지휘관 들이나 지방 수령들의 비겁했던 모습 과는 찾아 볼수 없는 군대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백성들이 보는 왜란 초에 저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던 장수들의 불신받던 모습은 찾아볼수 없이 달라저 있었다 .

 

심유경과 소서행장은 일본군이 서울철수와 동시 명나라 사신으로 사용자(謝用諮)와 서일관(徐一貫)두사람을 일본에 있는 풍신수길과도 직접 만나보려 하였으나 풍신수길은 직접 만나주지 않고 소서행장에게 심유경과 해결하라는 조건만 내려 보내 회피하였다 .

 

 

그 내용은 조선 8도중 4개도를 일본에 할양하라는것이었다 . 그리고 풍신수길은 조건없이 포로로 잡힌 두 조선왕자와 종신을 먼저 풀어 주는 아량(?)을 베푼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부산에 억류하고 있던 석방되었던 두왕자와 종신들은 석방되었다.

 

 

풍신수길이 아무리 잔꾀를 피운다 한들 명나라가 이에 순순히 조선 4도 할양에 응하는것같은 운운은 말도 않되는 조건이었다 . 오히려 명은 자기네는 대국(大國)이니 소국(小國)인 왜국은 명황제 신종 명의로 풍신수길을 왕으로 봉해줄것이니 그리 알라는 투였다 .

 

 

 

소서행장은 이 내용 조차 태합 풍신수길에게 보고 할수 없었다.

 

 

 

풍신수길은 불명예스럽게 철수만 거듭하고 있는 왜장들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풍신수길은 왜군이 조선 전역을 석권하고도 패전을 하게 된 원인을 명이나 조선군이리기 보다도 왜군을 굶주리게한 군량미 조달 미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

일본 태합 풍신수길은 전쟁초기 부터한성을 치기에 앞서 진주성을 무슨일이 있더라도 먼저 함락시킨 연후에 전라도 지방의 풍부한 군량미 부터 확보 한다음 한성으로 올라갔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일부 왜장들이 조선 왕도 한성을 먼저 점령하겠다는 과욕이 앞서 일을 그르첬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진주성을 공략하고 전라도를 점령함으로써 전세(戰勢)를 만회하고 떨어진 위신을 만회 해야 한다)

 

 

 

풍신수길은 진주성 총공격령을 다시 내렸다.

 

 

진주성 같이 조그만 성 하나 점령하는데 10만 병력을 투입 하기로 하고 진주 방면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총병력 12만 1600명이나 되는 병력이 집중 되었다.

 

 

 

그동안 조.명 연합군이 분산 배치 되었다는 정보를 알아낸 풍신수길이 진주성 만으로의 정면 돌파 작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철수한 것으로만 믿고 있던 조선과 명나라 조정에서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나라 군의 철수론과 분산 배치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왜적들이 다시 진주성으로 진군 한다고 하는데 명나라 동정군은 후방에만 배치 되어 있고 우리 조선군만이 전방에 배치 되어있어 잘 막아내게 될지 걱정이 되오."

 

 

선조가 어전 회의를 열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아뢴다

"전하, 듣자하니 왜군들을 총병력이 모두 전라도 곡창지대로 집중 공략하기 위한것으로 이번 작전의 목표로 세운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 대구에 있는 이제독은 그럴리가 없다고만 하니"

 

 

"전하 명나라 동정군은 전쟁은 않고 왜적을 밀어 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나이다. 한성 수복전 때도 전라감사 권율이 한강변에서 적들을 추격 완전 섬멸 해야 한다고 주장 했는데도 이를 못하게 말린것은 누구 이옵니까? 그때 완전히 섬멸 했어야만 이런 후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왜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는이상 우리 조선군이 앞으로 나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제독이 조선군 단독 작전을 못하게 한다 하지 않소."

 

 

"전하, 그러하기 때문에 때는 이때 입니다. 우리 조선군이 적극적으로 선제 공격 하게 되면 명나라 동정군이라고 가만히 두고 볼수가 있겠나이까? 정면 돌파 하는것이 옳을까 하나이다."

 

 

"정면 돌파 할 장수라면 도원수 김명원이 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되오."

 

 

영의정 최흥원이 나섰다.

"좌상 상황 판단이 옳은듯 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전투 때나 임진강 전투 경력으로 보아 그만한 일을 할수 없을 것입니다.대신 지금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는 전라감사 권율에게 도원수로 제수하여 이 난국을 막아낼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권율은 한성 수복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제일 먼저 성도에 입성한 장수 입니다. 그런 그의 능력을 봐서라도 그를 도원수로 임명하여 적을 물리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일까 하나이다."

 

 

선조는 그렇지 않아도 권율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선조가 좌의정 윤두수가 우의정 유홍을 번갈아 보며

"두 분께서는 어찌 생각 하오?"

하고 물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영상의 말씀대로 권율을 도원수로 제수 하여 적을 막아 내도록 맡겨야 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우상은 어찌 생각하오?"

"저도 영상과 좌상의 말씀대로 시행 하는것이 옳을듯 합니다."

 

 

왕은 결국 권율을 도원수로 삼아 왜군을 막아내도록 조치 하였다.

 

 

 

당초 전라병사 선거이와 황진은 수원성에 있었다. 왜군이 수원성을 빗겨 광주와 용인을 거처 철수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수원성도 이여송의 왜군 추격 중지령이 떨어진 상태 였으므로 선거이는 선뜻 적들의 퇴로를 공격할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치령 전투 이후 전라도 익산 군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황진(黃進)이 수원성에서 선거이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가 권율군이 수원성을 지날때 합세할것을 염두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

 

 

 

왜군이 용인땅 양지현을 통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선거이 황진 진영에 들어왔다 .

 

 

 

 

 

 

 

 

 

 

황진이 주장한다

"선장군, 지금 물러 가고 있는 왜군의 퇴로를 막아 전멸 시킵시다"

 

 

"명나라 이제독이 출전 금지 요청이 왔고 도 체찰사 류성룡 대감의 지시 공문이 와있는 상태 인데 함부로 나갈수 없소이다"

 

 

"그러나 적을 그대로 순순히 물러나게 두실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우리의 천여명의 병력을 가지고는 아무리 퇴각하는 군대라지만 줄잡아 4 만 병력을 갖고 있는 왜군과 대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소이다. 전라 감사를 기다려 봅시다."

 

 

황진은 선거이의 우물쭈물 하는 태도가 못마땅 하였다.

 

이치에서의 기개는 어디로 가고 명나라 제독이나 군사 숫자 탓만 하고 있는 선거이가 볼수록 답답 하였다.

 

 

"선장군, 제가 양지현으로 나가 적들의 동태를 알아 볼 것이니 권장군이 서울에서 도착이 되면은 지원 공격이나 해 주십시오."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 하려고 발진 했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이때, 조정에서 임금이 보낸 선전관이 권율군 진영에 나타났다.

 

임금의 교서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교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권공의 노고를 치하 하노라.

 

왜적이 조선을 떠나 저의 나라로 와전 철수 할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진주 성으로 진군을 개시 했다고 하는바, 공에게 오늘 일자로 도원수(都元帥)로 임명 하니 공은 온 힘을 다하여 왜적을 먼저 공격 하여 공을 세우도록 하라."

 

 

권율은 선조가 내린 교서를 다 읽고나서 도원수 임명에 앞서 마음 부터 비장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선조께서 아직까지 환도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승진 발령 까지 내리시며 당부하는 모습이 삼천리 밖 의주땅 행재소에서 바라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양 어깨가 무거워 지지 않을수 없었다.

(내 기어코 왜적을 물리치리라.)

 

 

권율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핏발이 맺히며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제장들을 불러 놓은 자리에서 조정에서 나온 선전관이 권율에게 도원수 사령장을 전달 하였다. 이자리에서 권율은 의령땅 기강(岐江)을 건너 전진 할 것을 논의 하자 의병장 곽재우와 경기 방어사 도원백이 반대한다

 

 

"적들은 이제 철퇴군이 아닙니다. 공수(攻守)가 바뀐 군대 입니다. 함부로 적중에 뛰어들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습니다. "

.권율이 말한다

"강건너 적들은 적의 주력군이 아니요. 조정에서는 왜적들이 진주성으로 진군할 조짐이 있으니 이를 막으라는 지시외다."

이빈의 종사관인 성호선(成好善)이 나선다

"제장 여러분, 도원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일은 저질러야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권 도원수 께서는 벌써 적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다 알고 계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도 명나라 이제독이 제동을 걸어 못나간 것 뿐인데 마침 조정에서 선제 공격을 하라 하니 못나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적의 주력군은 부산에 모두 집합되어 있는 상태 이므로 지금이 적을 칠 때 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장들께서 않나가신다면 소장이 도원수와 함께 도강 하겠습니다."

 

 

 

권율군은 드디어 함안(咸安)으로 진군 하였다.

왜군들은 권율군이 쳐들어 온다는 말을 듣고 지레 겁을 먹고 성을 비워둔 채로 도망가고 말았다.

 

 

 

6월15일

왜군 10만 주력군이 김해, 창원을 거쳐, 6월16일 권율군이 있는 함안으로 진군해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대군 이었다. 적군의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제1대장 가등청정 2만5천6백명

제2대장 소서행장 2만6천1백명

제3대장 우희다수가 1만8천8백명

제4대장 모리수원 제5대장 소조천군의 예비대 2만2천3백명

제6대장 길천광가 1천명

도합 9만3천명의 대군이었다.

 

 

 

권율진에 보고가 들어왔다.

 

 

"적의 숫자가 10만 여명이나 된다고 하옵니다. "

하고 조병장이 보고 하자 의병장 곽재우가 말한다

"적의 주력군의 숫자가 너무나 우세 할 뿐만 아니라 우리군은 1천여명의 군대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 함안성 에서는 싸우기 어렵습니다. 이곳은 성벽도 허술하고 지형이 좋지 않으므로 일단 지리산 쪽에 진을 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 하는것이 선결 문제 입니다."

 

 

권율도 이점에 대해서는 동감 이었다.

 

함안성은 적군과 성곽전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도 또한 별안간 도원수의 직책을 받기는 했으나 왜군들이 진격해 들어오는 긴박한 마당에 진주성에 있는 조선군은 도원수가 아직까지 김명원으로 알고 있는 이상 일사 분란한 명령 체계를 갖추기는 시기상조 였다.

권율은 곽재우의 권고대로 일단 지리산 쪽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이빈이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곽재우에게

"곽장군 우리가 진주성 으로 들어가 적과 싸워야 할 판에 지리산으로 들어 가다니요?"

하고 좀 격한 말을 하자 곽재우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권자(權者)는 능히 용병(用兵)하고 지자(智者)는 선(善)히요적(料敵) 하는 것이외다. 적들은 이미 패퇴 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요. 새로 충전된 군대 이므로 무모하게 진주성만 고집 하고 있는다 하여 전쟁에 꼭 이기는 것이 아니외다. 하물며 조선의 모든 군사들이 진주성으로 들어가 실패 한다면 모두가 전멸 할 것이므로 앞으로 어찌 할것이오?

 

다시 말하면 내외(內外)의 응원지세(應援之勢)를 잃게 되는 것이오.

 

재우(再佑) 이사람이 마땅히 응원은 할 것이므로 내말이 맞았나 틀렸나는 후세에 더 잘 알게 될 것이오."

이말에 경상우 감사 김륵(金肋)이 화를 낸다

"장군은 대장의 명령을 어떻게 여기고 군율을 따르지 않는것이오?"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이에 곽재우가 말한다

"내 한몸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일뿐이외다 . 그러나 내가 우려 하는것은 적들의 강세에 눌려 만의 하나라도 진주성에 갇히어 패전 이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백전 백승의 내 부하들의 운명은 모두 어찌 되겠습니까? 우매하게 사지에 넣을 수는 없소이다."

 

 

권율은 곽재우의 단호한 소신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전세로 보아 적들은 옛날의 적들이 아니었다. 그동안 충분한 휴식과 수많은 군수 물자를 일본으로 부터 재충전 받아 강할대로 강하게 된 군으로 변하여 있던 것이었다.

 

 

 

당시 진주성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의 진주 목사 서예원(徐禮元)을 불러 군량미를 점검 하는등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권율이 말한다

"두분 말씀 모두 옳으나 내 생각으로는 곽장군의 상황 판단이 더 비중 있는듯 합니다. 사실 만명도 않되는 조선군으로 적의 10만 대군을 몰아 내려면 이런 곳에서 싸워서 이길수 없는 것이외다.

진주성도 중요한 성이기는 하지만은 곽장군의 의견도 존중해야 할것같습니다,

 

 

 

곽장군 께서는 정엄진(鼎嚴津)을 지키도록 하고 나는 일단 지리산 주변 진주성 외곽에 있는 단성(丹城)에 가서 대책을 세울 것이니 황진 장군 만이 우선 진주성으로 들어가 김천일(金千鎰) 장군과 함께 대비 하도록 하시오."

 

 

 

이렇게 하여 일단 모든 부서는 정 해졌다. 이빈은 의령으로 가기로 하고 권율군 휘하 정예 500명을 차출하여 우선 황진과 함께 진주성으로 들여 보내었다.

 

 

 

김천일은 권율이 도원수로 제수 되었다는 소식과 정예군 500명과 함께 용장 황진을 보내어 주자 김천일은 용기 백배 하여 진주성 사수의 의지를 더 공고히 하였다.

 

 

김천일과 최경회(崔慶會)가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고 황진이 순성장(巡城將)이 되었다. 이로서 진주성내에 조선군 병력은 진영이 갖추게 되었다. 주요 조선측 장수들의 배치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창의사 김천일 500명

경사우병사 최경회 600명

충청병사 황 진 500명

의병장 고종후 400명

의병장 이계련 200명

의병장 민여운 200명

의병장 강희보 200명

의병장 이 체 300명

거제현령 김준민 150명

해미현감 전각세 50명

사천현감 장 윤 300명

의병장 오 유 50명

김혜부사 이종인 150명

진주목사 서예원 200명

남포현령 송제지 100명

진주판관 성수겸,

계 3900명

 

 

명나라장수들은 왜적이 진주성을 향하여 몰려들고 있는데도 대구, 상주, 정주, 남원등에 분산 배치되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

 

 

다만 부총병 유정(劉綎)이 왜적이 진주성 공격 풍문을 듣고 왜장 가등청정에게 서신을 보내어 질책 하기만 하였다. 또, 부산소서행장의 진영에 있던 심유겸은 소서행장에게 진주성 공격을 중지 하도록 요청 하였다

"이번 진주성 공격은 가등청정이 관백에게 강력하게 주장하여 하는 것이니 내 힘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피를 않흘리려면 진주성이나 비워 놓으라 하시오."

하고, 심유겸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자 심유겸은 회담이고 뭐고 물리치고 부산 왜진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도원수 해직명령을 받지 못한 김명원과 마주쳤다.

 

 

김명원이 심유겸에게 묻는다

"심유격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 진주성이 위태로우니 힘써 구해 주시오."

하고 간청하자 심유겸이 답한다

"왜적은 작년에 진주성으로 호남을 노렸다가 진로를 한성으로 성급히 바꾸어 큰 실수를 범하였다고 하는 관백의 질책을 받고 진주를 치기로 하여 다시 거병하는 것이외다.

 

이제는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다음 기회로 미룰수 밖에 차후 작전 문제는 이 제독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하고 서울로 향하였다.

 

명나라 장수들은 왜적의 대군이 진격해 온다는 것에 겁을 먹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심유겸과 헤어지던날 김명원은 조정에서 파견된 선전관으로부터 도원수 해직과 동시 한성으로 올라오라는 어명이 있었다.

 

 

 

서울에 머물러 있던 이여송은 심유겸의 보고를 받고 남원 주둔 참장 낙상지(駱尙志)와 유격장 송대빈(宋大斌)에게 명령 조선군의 수성의 합세하라 지시하였으나 두 장수는 왜군에 비해 병력이 워낙 열세라며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유정, 유격장 오유충(吳維忠) 상주에 주둔하고 있는 왕필적(王必迪)의 합동 작전 없이는 대적 할수 없다고 보고하자 이여송은 조그마한 진주성 하나 때문에 대구나 상주처럼 큰 성을 등한시 할수 없다는 핑계로 적의 동태만 감시하라 지시하였다.

 

 

 

경략 송응창이 왜장 소서 행장에게 다시 진주성 진군을 중지 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보내었다. 소서행장은

"그렇지 않아도 작년 진주성 공격을 제대로 않하였다고 하여 관백께서 화를 내시고 있었는데 마침 조선군이 풀을 베는 우리군 병사들을 수명을 죽였다는 보고를 받고 더욱 격분 하시어 진주 함락 지시가 특별히 떨어졌습니다. 저는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하고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송응창은 이에 격분 이여송에게 진주성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지시 하였다. 이여송은 사대수를 남원으로 보내 낙상지와 송대빈에게 질책하자 두 장수는 마지못해 구례까지만 나가 더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권율과 순변사 이빈과 병사 선거이는 운봉현(雲峰縣)에 있으면서 시시각각으로 왜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전라병사 선거이가

"왜군이 저토록 진주성 공략에 집착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하고 순변사 이빈과 권율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던졌다.

 

 

"적은 대병력으로 집중 공략 하고 있지만 우리 조.명 연합군은 모두 여러곳으로 분산 배치되어있어 진주성으로 집결할 시간이 없소이다."이빈이 말하자

두사람 말을 듣고 있던 권율이 말한다

"음, 참으로 어렵도다. 내 생각으로는조.명 연합군이 왜군 본영이 있는 부산을 포위 한다면 왜군들이 함부로 진주성은 넘보지 못하였을 텐데 강화회담을 한답시고 우물쭈물 하다가 이꼴을 당하고 만것이오 ."

권율의 말을 듣고 있던 선거이가 말한다

"그러 하옵니다. 명나라 동정군이 왜적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왜적들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겠습니까?"

이빈이

"하여간, 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이 막연합니다."

하자 권율이

"이제는 어쩔수 없습니다. 적은 벌써 진주성 가까이 접근하고 있고 조.명 연합군은 여러곳에 나누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모으려면 시간이 없소이다. 진주성은 현재 주둔 병력으로 최대한 수성토록하고 조.명 연합군이 적의 배후를 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대책을 말하자 선거이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 만으로는 적의 10만 대군을 막아낼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진주성으로 들어가 김천일 장군에게 설득하여 일단 철수 했다가 조.명 연합군의 힘이 강화된 후에 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하고 곧바로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에는 경기 방어사 홍계남도 와 있었다.

 

선거이와 홍계남은 생각이 같았다. 두사람은 김천일을 찾아가

"적군은 10만 병력이고 우리 병력은 1만도 않됩니다. 진주성은 견고 하기는 하나 많은 희생이 예상되니 일단 후일을 기하여 철수하였다가 같이 조.명 연합군의 힘이 강화된 다음 치도록 재고 하십시오."

 

 

하고 말하자 김천일은 화를 벌컥 내며 죽는 한이 있어도 버릴수 없다고 강경 하였다. 선거이와 홍계남은 권율진에 돌아와 이를 보고하자 권율은

"김 장군이야 말로 기개가 대단한 충장이기는 하오. 그러나 대사는 그르쳐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 兵者詭道也(병자궤도야) 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정의감(正義感)에만 사로잡혀만 있는다면 싸움에 질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법에 强而避地(강의피지)하고 實而備之(실의비지)라고 하였는데 이말은 상대가 팽팽하게 기세를 올릴때는 덮어놓고 이와 대적하는 것은 일단 중지하고 오히려 한걸음 물러나 형세를 관망 하면서 이쪽태세를 정비 하는데 전념 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면 충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

선거이와 이빈은 권율의 속내를 듣고 깊은 뜻을 이해 할것 같았다.

 

 

 

진주성은 4월22일 오전10시부터 시작하여 4월29일까지 왜적과 조선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 되었다.

이전투에서 진주목사 서예원, 경상 우병사 최경회, 김해부사 김종인, 의병장 강희열,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거제 현감 김준민, 사천현감 장윤, 의병장 오유, 이체 등이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모두 전사 하고 말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하고 만 것이다.

 

 

적은 진주성 내에서 몇일을 묵더니 7월5일 전라도 고부 까지 깊숙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유격장 송대빈은 두골봉(頭骨峰)에 1000명을 잠복 시켰다가 싸우지 않고 남원으로 퇴각 하였다.

권율은 도원수로서 중책이 무거우지 않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차라리 전라감사로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명나라와 일본국간에 강화에 관한 빈번한 교섭이 오갔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

 

 

 

조선과 일본과의 직접적인 회담도 가등청정과 유정대사, 경상우병사 김응서와도 회담이 오갔지만 별반 변동이없었다.

조선과 명나라간에는 사신이 빈번히 오갔어도 뾰죽한 해결점이 보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경략 송응창은 고양겸(顧養謙)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병부좌시랑으로 있던 손광(孫鑛)을 경략으로 임명하였다.

 

 

명나라 동정군 도독 유정도 9월11일 서울을 떠나 명나라로 돌아갔다.

 

 

이렇게 온나라가 뒤숭숭한데 백성들은 춘궁기때 후유증으로 추위와 배고픔이 쉬 가시지 않았다.

 

조정에서도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영의정은 류성룡으로 바뀌었고 , 좌의정이 윤두수에서 유홍, 김응남으로 ,병조 판서도 이덕형에서 심충겸으로 했다가 별안간 죽는 바람에 이항복으로 다시 바뀌었다.

 

 

 

일본군도 경상도 해안가로 모두 철수 하여 11개 본성과 7개의 지성을 쌓아놓고 떠날준비를 않고 있었다.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은 서생포, 임랑포, 기장, 부산 , 동래. 김해, 안골포, 가덕도, 웅천, 거제등에 성을 쌓아 4만 3천명이 남아 있었다.임진년 초기에 비하면 반으로 줄었다.

 

 

왜장들도 가등청정, 흑전장정, 협판안치 , 소서행장, 종의지 , 도진의홍, 복도정칙, 같은 왜장들은 조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원수 본영에 경상우병사 고언백이 찾아 왔다 ,

"서생포에 주둔하고 있는 왜장 가등청정이 왜진에 잡혀있던 정연복이라는자를 통해 적장이 도원수와 직접강화 하자는 서신을 갖어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십시요"

하고 서신을 내놓았다.

 읽어보니 내용은 조선과 더싸울뜻이 없으니 강화를 하자는 상투적 글만 쓰여저 있었다.
 

"왜군들은 믿을수 없는자들이오 ,그들이 나를 회담에 끓어 들일 목적은 회담을 핑게로 조선군전체의 전투 의지를 꺾으려는 얕은 꾀에 불과 할뿐이오. "

하고 회담 할뜻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이자리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정이

"그러하오나 명나라 도독이 이것을 알면 왜국과의 화의가 않되는 모든 책임을 권원수에게 전가 할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명나라 조정이 조선조정에 압박이 들어올것이 아니옵니까?"하고 걱정을 했다.

 

 

"그렇다면 고 병사가 직접 유도독에게 찾아가 가등청정의 답변서나 받아다 전해 주시오."

하고 고언백이 직접 전하라고 하였다.

 

 

권율은 처음부터 왜군과 의 뒷거래는 필요 없다고 생각 하고 있는터이었다.

 

 

고언백은 유정을 찾아가 가등청정의 문서만 전달하고 돌아갔다.명장 유정(劉綎)은 답서에다 일본군이 아직까지 물러가지 않는 이유가무엇인가. 하는 힐문(詰問)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등청정과 회담을 계속할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 두고 보내 었다.

 

 

 

권율은 유 도독과 왜장간에 오가는 문서를 일단 원수부에서 알아 내어 점검후 전달 하도록하고 그 상황을 그때 그때마다 조정에 치계(馳啓..왕에게 급히보고)하였다.

 

 

 

유정은 가등청정에게 다시 서신을 보내었는데 풍신수길을 명황제로 부터 일본국왕으로 정식 책봉할것이니 스스로 물러나던가 그렇지 않고 관백이 계속 물러가지 않겠다고 우긴다면 가등청정에게라도 일본왕으로 책봉할 용의가 있으니 풍신수길을 이기회에 실각 시켜 보라는 대담한 문서를 보내었다.

 

 

가등청정이 유정의 서신을 읽어 보더니

"이놈이 관백 각하와 나를 이간 시키려는 음모이다 ....이놈 유정, 내가 네 음모에 넘어갈상 싶으냐?"

하고 흥분하였다.

 

 

 

가등청정은 답변서를 썼다. 풍신수길을 쓰러뜨리고 자기가 관백이 된다는 것은 의리(義理)상 불가능 하다는 내용과 이번에는 왜적이 살려 보낸 두 왕자에게 자기의 편지를 전해달라며 서신을 보내왔다.

 

 

 

조정에서는 권율에게 가등청정과 강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계속 내려왔다.

권율은 왜적과의 강화는 아무소용이 없는줄은 알지만 조정의 지시에는 어쩔수 없었다. 더구나 명나라 도독 유정은 권율에게 지시한다며 왜군과의 강화 회담을 조선군도 직접 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권율 진영에서는 평양 전투때부터 참여 하고있던 승장 석유정이 권율에게 와 있었다.

 

권율의 성격을 잘알고 있던 유정은

"가등청정이 왕자 두사람을 살려 보낸것을 큰 은혜나 베푼 것인양 생색을 내는 모양인데 우선 그자의 의사를 자세히 알아 오겠습니다. 만일 원수께서 왜국과 화의 의사가 없다는 것이 명나라에 계속 보고가 들어가면 모함을 받을까 염려가 됩니다."

유정은 권율이 모함을 당할까 우려하여 자기가 앞장서기로 했다.

 

 

 

"대사께서 꼭 다녀 오시겠습니까? 주의 하실것은 왜적이란 간악한 자들입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 할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걱정마십시오. 인간이란 아지랑이 같고 물거품 같은 존재들 아닙니까? 인간이란 물거품 같이 일어났다 사라지듯이 인간도 태어났다 사라지기는 일반입니다. 이 한 목숨 왜적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진의를 알아 오겠습니다."

 

 

 

권율은 할수없이 그를 울산교생 이겸수와 군관 신의인과 함께 서생포에 있는 가등청정 진영에 보내었다.

 

 

여기서 잠깐, 승장 석유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의 호는 잘 알려진 사명당(四溟堂)이다.

 

그의 본래성은 임(任)씨 이다.

 

그의 아버지는 풍천의 문벌인 임수성(任守成)이다.

 

13세때 황악산 직지사에 들어가 귀의했고 명종 16년에는 선과(禪科)에 합격하였고 선조 8년에는 묘향산에 들어가 휴정(休靜)에게서 수련후 8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임진란이 터지자 승병 700명을 데리고 휴정 막하에서 총섭(摠攝)을 맡았다.

 

 

 

스승인 휴정이 늙어 그가 전면에 나섰는데 평양 전투때 공을 세우고 지금은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그를 돕고 있었다.

 

 

 

가등청정은 권율이 나타나지않고 왠 조선의 중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처음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대하였다가 유정의 인품에 감동되어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가등청정은 예상대로 자기가 살려보낸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 자기에게 체포 되었을때 극진히 대접하여서 데리고 있다가 살려 돌려 보내었는데도 의리도 없이 답신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유정은 자기가 한성에 올라가서 그 결과를 알아 주겠다고 하고 별다른 회담없이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두달뒤 2월26일 가등청정이 경상좌병사 고언백을 통하여 권율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내용은 두왕자의 답신을 가져오겠다는 유정이 소식이 없는것을 보면 화해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동태만 알아보려고 왔다간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권율은 이사실을 조정에 보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권율에게 승장 유정과 경상좌병사 고언백과 군관 이겸수를 급히 상경 시키라고 지시하고 비변사에게 명하여 가등청의 요구사항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유정은 가등청정이 전란중 왕자들을 잘 모시었는데도 회답이 없어 섭섭 하다고 불평하더라는 말을 하자 비변사에서는 유정에게

"임혜군은 명나라에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순화군은 서울에 있지만 가등청정의 편지가 중간에 전달이 잘못되었으므로 임혜군이 돌아오는 데로 회신을 보내 주겠다"

라고 하는 답신을 유정에게 주어 보내었다.

 

 

 

권율은 유정이 한성에서 돌아와 비변사의 지시 내용을 듣고는

"조정이나 왜적들 모두 한심하오. 왕자 두사람 문제가 뭐그리 대단하다고 이 중요한 시기에 천리길을 오라가라 한단 말이오. 두고 보시오. 왜놈들이 일을 저지르고 말 것이니...."

하고 걱정스러운 말을 하였다.

 

 

 

다음날 유정이 군관 이겸수와 같이 가등청정에게 찾아와 조정에 다녀온 내용을 이야기하자 가등청정은 그동안 유정을 의심하고 있다가 찾아온것에 감동되어 유정에게

"종의지 라는 놈 때문에 나는 귀국을 침공하기 시작하여 평양 전투와 진주 싸움에서 두번이나 패한 죄로 관백이 나를 좋게 보지 않기 때문에 화의를 하든지 전쟁을 다시 하든지 결과를 맺지 않고는 일본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쟁을 더이상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고 명나라와 화의를 약속 받아 내려다 그것도 않되어 당신네 나라와 그동안의 원한을 품고 화의를 직접 도모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소이다.

나는 당초 권율장군 같은 분과 직접 만나 서로 화의하자는 담판을 벌일려고 했는데 직접 만나주지 않으니 매우 섭섭합니다.

권도원수는 나에게는 적장이시지만 그의 지모와 전술에는 어느누구도 따를자가 없는 분으로 개인적으로는 존경합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나를 소서행장 정도의 졸장으로만 보고 상대를 않는 모양입니다. 그려... 기왕에 귀국과 수교를 맺으려는 마당에 다섯가지 조건만 들어 준다는 결정적인 말 한마디만 해 주신다면 마땅히 관백에게 돌아가 보고하여 소서행장에게도 철수토록 하겠습니다만..... 보시다시피 나는 원래부터 왕자 두분도 깍듯이 모시고 있다가 돌려 보내지 않았습니까?"

 

 

"다섯가지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유정이 물었다.

 

가등청정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명나라 천자의 영식을 관백과 결혼을 성사 시키도록 할것.

둘째 조선의 4개도를 베어 내어 일본에게 떼어줄것.

셋째 앞으로는 조선은 일본과 적으로 지내지 말고 친하게 지낼것.

넷째 왕자 한명은 일본에 보내어 살게 할 것.

다섯째 조선 대신중에 대관 몇명을 일본으로 가서 일본에 들여 보내 당분간 볼모롤 있도록 할것.

 

 

 

유정은 가등청정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식인지인지를 판단할수 없을 정도로 짓껄여 대는 말에 귀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무슨 결정적인 말이 그렇단 말인가? 유정의 터무니 없는 조건에 실소 하고서 권율에게 가등청정의 조건을 보고하였다.

 

 

 

"듣고 보니, 가등청정 이라는 자는 소서행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다 똑같은 자들이오. 왜적들이란 믿을수 없는 자들입니다. 도대체 조건이라는게 말도 되지 않는 말들만 하고 있으니...."

 

 

권율은 가등청정의 조건을 듣고 그런자들과의 회담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더욱 확고히 갖게 되었다.

 

10월3일 조정에서는 왕자의 답신을 권율진에게 내려 보내어 가등청정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내용은 가등청정이 지난날 왕자를 도와 준것에 대하여 감사 한다는 내용과 최근의 인사 못한것은 명나라 천자의 명으로 알현 하고 오는 바람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10월5일 조선조정에서는 일본의 가선대부(嘉善大夫)인 유천조신(柳川調信)에게 유서를 보내 그의 주장인 소서행장에게 대마도로 전 일본군을 퇴각 시키고 난 다음에 화의를 논의하자고 통보 하였다.

 

 

권율은 조정과 명나라 당국으로 부터 일본과의 화의를 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실지 회복을 위한 전쟁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예로 조령의 산성을 새로 쌓고 합천에는 유정으로 하여금 승병들 만으로 이숭산성(李崇山城)을 쌓게 하고 장성에는 입암산성을 현감 이규에게 명하여 승장 법견(法堅) 으로 하여금 쌓게 하였다.

말 부족을 위하여서는 경상감사에게 명하여 진주 흥선도(興善島)에 키우고 있던 말을 끌어내어 대비 시키도록 하였고 경상감사 한효순에게는 정병훈련과 동시 총 화약을 최대한도까지 확보할수 있도록 지시하였다.

 

 

 

그외에 독산성과 경상도 영해에도 산성을 보수케 하고 금천땅에도 금지 산성을 쌓게 하였다.

 

권율은 의병이 너무 산발적으로 활동을 하여 통합할 필요성을 느끼고 각 의병의 통합장으로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에게 지휘토록 하였다.

 

 

 

12월 23일 가등청정이 유정을 만나자고 하여 서생포에서 또 만났으나 가등청정은 앞서 5개 터무니 없는 조건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권율은 보고를 받고

"정말로 가소로운 놈들이로다."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한편, 명나라 군은 삼만명이나 철수 시키고 조선에 남아있는 병력은 겨우 1만6천명만 남게 되었다. 조명 연합군의 배치 상황을 보면 성주에 도독 유정군 1만명 삼가에 유격장 송대빈군 2000명 대구에 부총병 오유충군이 5천명 경주에 참장 낙상지군2000명 등이었다.

 

 

조선군은 대구 도원수 권율군, 의령에 경상도 순변사 이빈군, 한산도에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배치 되었다.

권율이 왜군 재침에 대비하여 종사관(從事官) 황여일(黃汝一)과 함께 산성 수축 상태를 확인 하기위해 전라도 정읍군 입암산성을 돌아보고 오다가 소죽엄재에서 잠간 쉬게 되었다.

 

 

고개 아래쪽 주막인듯한 집에서 도원수 일행이 쉬어 있는 줄모르고 주막에서 막걸리를 드는지 떠들석하고 잠시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

강화냐 전투냐 기로에 서서 강화론이 우세한 이 시점에서 군량만 허비 하고 있다가 잘못 하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감만 갖고 있었던 것이 조선 조정의 전부였다.

 

 

 

나라가 이 지경이니 송유진 같은 도적이 의병을 사칭하며 민심을 교란 시키는 사건이 생기지 않을수 없었다.

 

그 말성 많던 명나라 장수 송응창이 경략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 고양겸(顧養謙)이 새로 부임하여 오더니 부지런히 전방을 돌아보았다

 

 

 

명나라에서는 그도 왜군과의 화의가 지지 부진 하자 명나라 대신중 형부좌시랑(刑部左侍郞)손광(孫鑛)을 임명하였다

 

 

 

조정은 명나라 아니면 조선을 구제 할수 없다고 하여 명나라 군대만 믿고 있으니 조선군은 힘을 쓸래야 쓸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평양전 에서 승리로 이끌었 다고 선조와 대신들은 "나라의 재조(再造)가 오직 평양승첩 때문"이라면서 명나라에 대하여 감읍하고 이여송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우고 그를 모시는 는 생사당 까지 짓기로 했다는 기록이 선조실록 35 권에 나온다

 

 

 

조정은 점점 명군이 빨리 종전을 시켜 줄것만 기대 하고 있었다 .

 

 

권율의 이럴수록 명나라가 추구 하고 있는 화의 의 시간을 끌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다.조선군 단독으로 라도 일본군 공격을 해야 한다고 장계를 올렸지만 회답은 일본군을 함부로 건드려 불씨를 만들지 말 라는 회신만 돌아 왔다.

 

 

이유는 조선군은 일본군의 적수가 않된다는 것이었다.

 

 

명나라 강화가 지속되는 상황하 에서 단독 작전은 잘못 하면 큰 일을 그릇치기 십상 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판국에 백성들 중에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왜병들이 남해안 에서 민가에 분탕질을하여 불안한 데다가 조정에서는 명나라 군대를 먹여 살리랴, 조선 관군, 의병 할것없이 전쟁하는 나라 안에서 만 조달 하려니 백성들이 살수가 없었다 거기다 병졸 징발, 군량미 확보 운반 , 부역등 각종 동원에 시달리니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 더구나 명군들도 장기 주둔 하면서 저의 나라에서 군량미는 전혀 들여 올 생각을 않으니 조선 조정의 고민은 이만 저만 고민이 아닐수 없었다.

 

 

 

한편 조선의 지방 방백 수령 들도 명군의 민폐에 편승 명나라 군대를 접대 한다는 명목 으로 백성 들을 수탈 하는 데다가 업친데 덮친 다는격 으로 흉년과 기근이 엄습 민간 반란이 않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임진란은 전쟁 초기 관군의 연이은 패배와 그 와중에 장수 들은 조정의 전쟁 준비 부재로 계속 왜적 에게 쫓기어 병졸들 조차도 장수 들을 믿지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 들은 관군을 불신 차원을 넘어 경멸 하는 단계 까지 와 있었다.

 

 

 

의병을 일으켰던 유생 들도 쫓기 기만 하던 지방 수령 들을 한심한 존재로 여겨 그들을 매도 하기 까지 이르렀다 ,

 

 

송유진이 의병장을 사칭하며 도적질을 한다 하여 토벌 작전에 투입 시키기는 했으나 정작 송유진 자체는 백성 들로 부터 의적 인상을 풍기 겟끔 행동을 하여 조정 에서도 골머리를 앓지 않을수 없었다.

 

조정은 한때 의병 해산령 까지 고려 하였다 .

 

 

대신 그들을 군사 기능 대신 군량미 공급에 동원 시키는 문제 까지 만 국한 하기로 생각 까지 하였다.

 

도원수는  조정의 이 방침 에는 반대 하였다 ,

 

 

전란을 통하여 의병과 식음을 같이 해온 그로서는 의병의 중요성을 누구 보다도 더잘알고 있기 때문 이었다 ,

 

조정의 시각은 의병이야 말로 골치 아픈 존재로 밖에 보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명나라와 일본간의 협상의 조건이 서로가 먹혀 들수 없는조건이라는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인가 전투가 다시 일어 날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의병 들을 김덕령을 의병 통합장 으로 삼아 어느정도 질서가 잡혀 가고 있는 마당에 해체란 있을수 없다고 조정에 장계 까지 올렸다.

 

의병장 들이 유생 이거나 퇴직 관료 출신 소위 재야신료(在野臣僚)들인 의병장 들에 대하여 현직 신료 들은 탐탁치 않게 생각 하고 있었다.

 

 

 

의병장의 대표격 이라 할수 있는 곽재우에 대하여 김성일은 조정의 권위에 도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글과, 전란 초기 곽재우가 왜적과 싸울 생각은 않고 도망만 다니던 김수를 비난하고 그를 처형하라고 주장했던 글을 보아도 양자간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가를 쉽게 알수 있었다.

 

 

 

어쨋든 의병장 들은 근왕을 소흘히 하는 수령 들을 미워 하고 있었고 또 왜란중 관군이나 의병 공로가 서로 경합 할때는 관군우선으로 표창 하였기 때문에 의병장들의 소외감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조정 대신 들은 조선군나 의병들의 공이 지대 한데도 불구 하고 조선을 구원 한것은 그들이 아니라 명나라군 라는 것을 부각 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자기 들이 임금을 의주 까지 안전 하게 호종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을 끌어 들인것이 자기들의 힘이라는것을 부각 시키기 위함 이었다.

 

 

 

따라서 조선군의 위치는 날이 갈수록 왜소 하게 보일수 밖에 없었다.

 

 

권율은 조정의 이러한 태도에 못 마땅한 시각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전란 초기 왜군 에게 패하고 장수들이 도망 친것은 그렇다 치고 군비 하나 제대로 가추지 못하고 무사 안일에 젖어만 있던 조정이 과연 무엇 했느냐는것이었다 .

 

 

 

일본이나 명나라는 일찌기 외국 문물을 받아 들여 조총이나 화약 대포등 최신 무기를 수입하여 장수 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각종 전투 에서 이길수 있었으나 조선의 대신 들은 장수들이 육탄 으로 적의 조총을 막아 내달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임진란 초기의 전투는 조총과 화살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조 28년 을미년 (임진왜란 4년째)조선군의 배치 상황은 아래와 같았다.

 

 

도원수 권 율(權慄)및 진주목사 박정남 함양에 298명

순변사 이 일(李鎰) 장흥에 500명

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배설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 한산도에 6800명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전라병사 이시언, 조방장,곽재우,김해부사, 백사림등 의령에 2332명

경상좌도방어사겸 충청방어사 권응수(權應銖)경상우도병사 ,고언백,조방장 정희현, 경주부윤 박의장등 경주에 3172명

 

 

 

명군은 유격장 진운홍(陳雲鴻)을 웅천에 있던 소서행장과 회담 하게 했고 ,파총(把摠) 장응룡(章應龍)등은 서생포의 가등청정과 각각 회담 하게 했다

 

 

회담 결과는 뻔했다 왜적 들은 조선의 4개 도를 주지 않으면 철수 않겠다는 것이었다.

 

 

 

4 월 17일

명나라에 사신 으로 들어 갔던 일본 사신 소서비(小西飛) 가 심유경과 같이 조선에 들어왔다.

 

 

 

심유경은 영의정 류성룡 에게 일본의 풍신수길 에게 명 황제의 친서를 전달 하러 일본에 갈려고 하니 조선의 신하중 전에 예조 판서로 명나라에 주청사로 들어 간적이 있었던 윤근수(尹根壽)를 수행 할것을 요청 하였다.

 

 

 

조정 에서는 좌의정 김응남과 우의정 정탁을 심유경 에게 보내 윤근수가 전라도 쳬찰사로 나가 있으니 다른 사람을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 하였다.

 

 

이유는 윤근수가 전라도에 나가 있어 불러 올리는 데 며칠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일국의 재상 까지 지냈던 인물을 한낟 명나라 유격장의 수행원 으로 보내기에는 조선의 자존심이 허락 되지 않기 때문 이었다.

 

 

 

이말을 듣던 심유경의 얼굴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윤 주청사를 수행 하게 하라는 석성 병부 상서의 분부 인데 두분 께서 거부 하는 이유가 뭡니까?"

"거부가 아니 오라 윤의정은 지금 전라도 순찰사로 전라도에 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김응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유경은 말을 끊고

"그럼 두분 께서는 병부상서의 말씀을 거역 하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좌의정 김응남이 심유경에게 간청조로 말했다

"그대신 세자 시강원(侍講院) 황신(黃愼) 학사를 추천 하겠습니다 . 그리고 앞서 문서로 보내 주신 석성 상서의 분부는 실행에 만전을 기 하겠습니다 ."

 

 

 

김응남이 말하는 석성의 문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 조선군은 절대 전투 행위를 중지 할것.

2, 왜군 포로에 대하여 소흘히 대하지 말것.

3, 책봉사들이 강화를 위해 자주 두조선을 드나 들 것인 즉 대접에 소흘히 하지 말것.

등이었다

 

 

 

조선 조정은 모두 자존심에 걸리는 조건이 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모두 들어 주지 않을수 없었다.

 

 

 

심유경은 또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전쟁 상태는 아닌데 왜적과의 강화가 더 급하지 체찰사가 뭐 그리 대단 하다고 일본 까지 동행을 못 한단 말이오 .

 

참으로 알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고 봅시다 ,

 

만일 조선군이 아까 약속한 내용중 첫째 사항인 조선군 단독 으로 조금이라도 일본군과 충돌을 이르킨다면 체찰사 부터 책임을 묻기로하고 그 다음 두분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병부상서에게 보고 하겠소"

 

 

순간 김영남과 정탁의 얼굴이 잠시 굳는가 하였으나 금새 표정을 고치고

"그리 하십시요"

하고 흔쾌히 대답 하였다.

 

 

 

심유겸과 대담을 하고 나오며 김응남이

"참 지독한 자요 , 저렇게 융통성이 없는자가 어찌 외교를 하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하고 정탁에게 말하였다

 

 

정탁은 심유경의 맨 나중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대감 , 점심 때도 되고 하였으니 누추 하지만 우리집으로 가 얘기좀 나눕시다 "

이말에 김응남도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합시다"

하고 정탁의 집으로 향 하였다

 

 

 

점심이나오고 정탁과 김응남이 마주 앉았다

"그런데 아까 심유경이란자가 무슨 책임을 지라는것이오니까?"

정탁이 잘 알면서도 한마디 슬쩍 던지었다.

 

 

"왜적과 강화 회담을 하는동안 충돌하지 말라는 얘기 겠지요"

 

" 먼저에도 왜놈들이 먼저 조선군을 정탐 하러 권율군영에 들어 왔다가 사살 당한것인데 왜적들은 이를 두고 풀을베고 있었다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까?"

"하긴 너무 철저 한것도 탈이외다 .웬만한것은 모른척하고 쫓아 보내면 될것을 사살 시켜 버렸으니 .."

 

김응남의 말에 정탁이 반색한다

"허 좌상 말씀이 진담입니까 ? 왜놈들이 영내 침입을 하는데 그냥둘 장수가 어디 있습니까?'

 

"명나라에서 일본군과 충돌하지 말라는데 어찌 하겠소?"

김응남도 만만치 않았다 .

결국은 충돌하여서는 않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김응남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문제가 있소이다"

"무슨 문제?"

"도원수 권율이 문제요,

 

"

"잘만 하고 있는데 그 무슨 외람된 말씀을 ...."

"도원수는 너무 빈틈이 없어요 , 그는 전쟁시기에나 필요한 인물이지 지금같이 강화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엔 솔직이 말해서 골치 아픈 장수 외다 "

 

 

"그래도 임금께서는 그에대한 말만 나오면 대신들이 말을 못끄내게 하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오만 "

두사람 대화는 앞으로 조선군과 일본군이 충돌 할 경우 자기들과의 관련된 책임이 마음에 걸렸으나 방법이없었다.

 

 

권율이 경주 주둔 조선군 부대를 시찰을 위하여 나섰다 .

 

경상 우병사겸 충청 방어사 권응수가 그를 맞이 하였다.

 

 

 

권응수는 39세때 무과에 급제 진위 장군등 관직에 있었는데 그자리에서 물러나 있다가 임진란이 터지자 의병대장 으로 영천, 학연, 당교 등지에서 왜군을 대파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화공(火攻)의 전문가로서 영천 수복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장군 까지 칭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권율과는 8살 아래로 임란을 맞이 한후 권율과는 기탄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감사 시절보다 어려운점이 많으시지요"

"도원수라는 자리는 좀 애매 하군 ,작전을 일일히 도체찰사와 맞추려니 오히려 더 힘드는것 같아. "

 

"그러시겠지요

 

그래서 옛말에 죽는건 조조 군사 뿐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군사 작전권 만큼은 무관인 군인 들에게 맡겨야지 문관인 도체찰사가 너무 작전에 간섭 하기 때문에 원수가 할일의 범위가 너무 위축 되는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지. 쇠뿔은 단번에 빼라는 말이 있지만 왜적을 몰아내려면 지금이 적기인데도 명나라는 시간만 끌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야"

 

 

" 조심하셔야 합니다, 명군이 하는 일이나 조정을 함부로 비난하다가는 무슨 트집이 미칠지 모릅니다 "

 

이 일로 송대빈이 권율을 좋게 볼리가 없었다.

 

명나라 장수 송대빈은 조선에 나온 장수중에 풍류를 좋아해 도대체 전쟁을 하러 온것인지 유람을 하러 나온 인물인지 모를 정도로 진주성에서 조선군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술자리만 지키고 있던 위인이었다.

 

 

그가 남원성 남쪽에 있는 광한루에서 술자리를 벌리고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는 조경남의 난중 잡록에도 남아 있다

 

戰罷歸來倦綺樓洗兵飮馬大溪頭....이하 생략(싸움 끝내고 돌아와 광한루에앉아 시냇물에 칼을 씻고 말을 물마시게 하니,,,)

 

 

 

송대빈은 권율에 대하여 독산성 과 행주산성의 명장임을 누구 보다도 더잘알고 있었다.

명조정까지 잘알려진 조선의 장수이니 그로서도 권율의 약점을 잡지 못한 이상 무어라 흠잡을수 없는 인물 이라는 것으로, 함부로 대할수 없다는것도 잘알고 있었다

 

 

 

악연의 두 인물,송대빈과 권율이 1년만에 다시 만난것이다

 

 

권율은 인사 정도만 나누고 원수부가 있는 함양으로 말 머리를 몰렸다.

 

종사관 이경함(李慶函)이 말한다

" 명진영에서 나올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명군 복장의 군관인 듯한 자를 보았는데 꼭 김응양을 닮은자를 보았습니다"

 

 

하고 말하자 권율이 김응양이란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누구라고? , 그러면 그때 바로 말하지 확인 해보아야 할것 아닌가? "

"그래도 그자인지 를 정확치 못해서 지나쳤습니다 . "

 

 

"늦지 않았어 갑사 몇명을 대동 하고 가서 그 자가 확실 하다면 체포해오게"

"명나라 진영인데 잡아 와도 될가요?"

"조선군에서 탈영하여 도망 다니는 군관을 조선군 도원수가 잡아 가는데 누가 뭐래? 누가 뭐라 하면 도원수가 지시 했다 하면 될것아닌가?"

"예, 알겠습니다."

 

 

이경함이 수행 갑사 수명을 데리고 오던길로 되돌아 명진영으로 향하였다

 

 

이경함이 명나라 진영에 도착 아까 보았던 장소에서 명나라 사병에게 물어 보았다 .

" 우리는 조선군 권율 장군을 모시고 송장군을 면담차 온 병사들인데 이제 끝나고 돌아 가려던 참이오, 그런데 조선군 군관 한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좀 알려주시오 "

하고 묻자 명나라 병사가 말한다

"조선사람이 몇명 있는데 찾으려는 사람 이름이 무엇입니까?"

"김응양이란 사람인데...."

"아 조선 군관 말씀이요? 저기 입니다"

김응양이 있다는 숙소를 가르켜 주고 명나라군 사병이 사라 졌다

김응양이 있는것이 확실 했다 .

 

 

 

조선군 갑사 네명이 번개 같이 뛰어 들어가 체포하여 나오자 졸지에 잡힌 김응양은 체념 한듯 끌려 나왔다.

 

 

벼란간 소란한 소리에 놀라 나온 명나라 장수가 당황 하여 묻는다

"이게 무슨 짓이요 "

이경함 에게 항의 하자

"이자는 조선 군관으로 군기를 어지럽히고 탈영하여 도망 다니는 수배중인 탈영 군관 이오

 

우리 도원수 명에 의하여 체포하여 가겠으니 그리 아시오"

하고 김응양을 결박 하고 끌고 가려 한다

 

 

 

명나라 장수 가로 막는다

"잠간만 그래도 우리 대장께 보고는 드리고 잡아 가야 하지 않습니까?"

"대장 께서도 군무를 이탈한 탈영 조선 군관을 우리 도원수 께서 체포하여 가겠 다는데 별 이의가 없으실것입니다 . 보고나 하시오 ."

하고 김응양을 권율 앞으로 끌고갔다.

 

 

 

보고를 받은 송대빈이 헐레 벌떡 뛰어 나왔다.

"장군 , 어찌된 일이오니까?"

 

권율이 말한다

"송장군, 이 자는 조선군 을 무단 이탈한 도망다니는 탈영 범죄자로 수배중이었던자 입니다 제가 이 자를 체포하다가 국문 하겠습니다. "

 

 

"장군 김응양이 무슨 죄가 더 있는지 모르나 조선군을 탈영하여 이탈 한것은 큰죄 이긴 합니다만 제 얼굴을 보아서 돌려 주실수 좀 없겠습니까?"

이상 하리 만치 송대빈이 김응양을 감싸며 놓아 줄것을 간청했다 .

 

 

"장군 제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이 자는 군무 이탈 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중죄를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자입니다 ."

 

권율이 놓아 줄이가 만무였다 .

 

권율은 김응양을 포박 한채로 말에 태워 뒤도 안 돌아 보고 떠났다 .

 

 

 

함양에 돌아온 권율은 부하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김응양을 국문하였다.

 

김응양은 체념 한듯 모두를 시인하고 조선의 작전 계획서류는 빼돌리지 않았으나 내용은 소상히 송대빈에게 알려 주었다고 실토 하였다 .

 

 

조선군의 비밀이 모두 명나라에 새어 나간것이다

 

그나마 왜적에게 도망 안 간것 만은 천만 다행이었다.

 

 

 

권율은 두 눈을감고 깊은 생각에 한 동안 잠겼다

일벌 백계를 위해서라도 엄한 처벌을 가하지 않을수 없었다

"참살(斬殺)형에 처하라 "

 

 

김응양은 여러 장수들 보는 앞에서 참살형을 집행 당하였다

 

 

 

송대빈은 김응양을 목 베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 하지 않을수 없었다 .

 

자기에 체면도 체면 이었지만 권율의 전격적인 조치에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김응양의 말만 믿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선군 단독으로 일본군을 몰아 내기 위한 비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명나라 황제에게 보고 했기 때문이었다 .

 

 

 

분명히 명군 수뇌부에서는 권율의 독자 작전 여부를 확인 할것므로 권율이 그 사실을 부인하면 그 사실을 입증할 당사자가 없어저 버렸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허위 보고자로 될 판이니 큰일이었다

 

 

 

송대빈이 잔꾀를 연구 했다.

죽은 김응양의 아버지를 불러 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이 도원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개 하고 있던 아버지는 송대빈이 부르자 그에게 나왔다.

 

"어르신 .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도원수 라지만 죄없는 아드님을 저렇게 죽이다니.."

짐짓 위로 하는척하며 권율에 대한 적개심을 부축였다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

하고 부친이 울먹이자

"어르신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요 , 수일 내로 전라도 체찰사가 이곳을 방문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그분 에게 어굴 하다는 말을 해 주십시요 , 그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 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송대빈의 음모가 시작 된것이다.

전라도 체찰사 윤두수가 송대빈 진영을 방문 한것은 이틀후였다.

 

 

송대빈이 전에 없이 친절 하게 굴었다.

"어서 오십시요 윤 체찰사님 "

"송대장 께서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년 숙성령(宿星嶺)전투때 공적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윤두수의 칭찬말에 어깨가 으쓱하여

"별 말씀을 모두다 체찰사 어른이 도와주신 덕택이지요 "

하고 덕담을 나눌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여 왔다

 

 

각본대로 김응양의 아버지가 윤두수가 나타 날 때를 맞추워 나타난것이었다

 

 

송대빈이 짐짓 놀라는척하며

"게 무슨 일로 밖이 그리 시끄러운고?"

"웬 나이 먹은 노인이 나타나 장군을 찾아 뵙겠다고 합니다."

"들라하라"

명나라 군사가 한 노인을 데리고 들어 왔다 .

 

 

"무슨일로 노인께서 이렇게 오셨습니까"

하고 송대빈이 시침이를 떼었다 .

 

 

 

노인은 두 사람다 들으라는 듯이 번갈아 보며

"세상에 이럴수가 있습니까? 조선군 도원수 가 내 아들이 아무런 죄도 없는데 잡아다 참살 하였는데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고 노인이 하소연 조로 호소 하자 송대빈은

"도원수가 죄없는 아드님을 함부로 죽이다니 무슨 말씀 입니까?"

하자

"내 아들은 원수부에 군관 으로 성실히 근무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고향 근방인 송장군 밑에서 근무하게 되어 잘 되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없는 그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이런 어굴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설명하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옆의 윤두수가 이말을 듣고 있다가

" 금방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하고 묻자 송대빈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아무런 이유 없이 조선군 원수부 에서 잡아다 죽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않 되겠지요 오늘 급한 일로 급히 상경 할것인즉 제가 조정에 가면 알아서 조치 하겠습니다 "

 

윤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대빈 의 눈짓으로 병사가 노인을 데리고 나갔다

 

 

송대빈은 때가 이때라는듯

"들으셨죠?, 권원수는 일에 융통성이 없어요,군사들을 통솔하는데 빈틈을 주지 않고 왜군과는 협상이란 있을수 없다며 전쟁 준비에 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먼저는 내가 남원 부사와 술 한잔 했다 하여 부사에게 곤장 까지 친일이 있어요"

송대빈은 권율을 헐뜯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윤두수는 대꾸할말이 없었다.윤두수는 권율을 누구 보다도 더 잘안다 .권율이 광주 목사로 참전 하여 이치 전에서 의 대승을 기회로 전라감사로 추천한것도 자기였다

 

그런 그가 요사이 유별 나게 조정 대신들이나 명나라 장수들 입에 오르 나리고 있었다

 

강직한 성격 때문이 었다.

 

 

윤두수는 잘 못하다가는 백전 불패의 장수 하나를 희생 시킬지 모른다는 생각 에서 이문제는 공식 거론만은 않고 임금과 독대 알현시 참고 자료로 보고 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무말 없이 앉아만 있는 윤두수가 못 미덥던지 송대빈이 초조한 빛을 띄우자 유두수는

"알겠습니다 , 제가 내일 이 사실을 보고해 적절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하였다

 

 

송대빈은 이말에 답답한 마음이 뚫리는것 같았다.

권율이 한성 판윤(지금의 서울시장) 으로 발령 받은것은 선조 28 년 10 월9 일 이었다

 

 

국내적 으로는 이산해가 가 대제학이 되었고 , 4 개 도에 체찰사제도를 부활 했으며 해주에 있던 왕비가 서울로 돌아 오기도 했다

 

 

대외적 으로는 왜국과 명나라가 회담이 결열 되어 다시 전쟁 의 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다.

 

 

선조는 권율에게 한성 판윤직에서 다시 호조 판서로 발령을 내었다

 

측근에 그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권율에게 비변사 당상을 겸직 하도록 하였다

 

선조는 군사에 관한 중요 사항은 병조 판서 보다도 오히려 권율의 자문을 받기도 했다

 

 

 

권율은 그동안 젊었을 때 닦아 놓은 학문과 무예를 마음껏 누려보는 한가로움 가지 갖게 되었으나 마음 한 구석은 전선에 가있었다

 

 

권율은 솔직이 임진란중 사생활다운 사생활을 한번도 누려본적이 없었다 .

 

 

전쟁 터 에서 반생을 보낸 그는 이제는 환갑 나이 가까이 되어 부인 조씨와 지내는 터 이지만 그에게는 이렇게 지내기는 무료한 날 일 뿐이었다.

 

권율은 이제 늙어서 자식은 꿈도 꿀수 없이 되었다

 

 

 

전쟁터 에서만 보낸 덕(?)에 그에게는 전쟁전 출생한 고명 딸 하나뿐이었다 .

 

그딸도 병조 판서로 있던 이항복의 아내 로서 전쟁중 친정 어머니 조씨를 의주로, 피난을 다니는 일은 모두 딸과 사위 이항복이 맡았다 .

 

 

 

권율 로서는 임진 왜란 이라는 국란이 딸 하나로 만족 해야 했고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낳지 못 했으니 그야말로 나랏 일에 바빠 자신의 사생활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 할 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동안 전쟁과 함께 사느라고 재산 챙길 시간도 없었다 .

 

 

 

때약볕이 쨍쨍 내려 쪼이는 여름 날 이었다

선조가 긴급한 일로 조정 대신 들을 모두 소집 하였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기에 권율은 부지런히 입던 옷 그대로 겉에다 조복을 걸처입고 급히 대궐로 입궐하였다.

 

회의 내용은 명나라와 왜국 간에 강화 회담 결열에 대한 대책 회의였다

 

 

대궐은 아침 부터 찌는 듯이 더웠다 ,

 

회의를 하고 있는 대신들의 조복을 모두 걸친 이마 에서 구슬 같은 땀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러한 대신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 소리만 대궐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 댔다 .

대신들의 몸둥이 에도 땀이 배었 으나 어전 인지라 감히 조복을 벗을수도 없고 회의가 아침에 끝나기를 기다렸 으나 회의는 예상외로 길어지었다.

 

 

병조 판서로 있다 지금은 이조 판서로 있는 이항복이 용기를내어

 

"전하,회의가 오래 갈것 같사 온데 황공 하오나 조복이 땀에 젖어 몸 둘바를 모르겠사오니 조복을 벗 도록 윤허 하심이 타당한줄로 아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항복에 말에 그제서야 임금도 자기가 거기 까지 생각못한것을 생각하고 웃으며

"허... 좋은 생각 이오 과인도 그렇게 생각 하오 조복을 벗고 군신 일체가 되어, 허심 탄회 하게 회의를 하도록 하시오"

하고 모두 벗게 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신 들이 이항복의 재치있는 건의에 조복을 벗기 시작 하였다

 

,임금은 조복 뿐만 아니라 목화(신)까지 벗게 하였다

 

 

그런데 권율은 조복을 벗을 생각을 않고 서있기만 하였다

"아니 , 권판서 께서는 어명 이신데 왜 안벗으시오?"

하고 다른 신하가 조복 벗기를 권고 하였으나 통 벗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

 

 

임금도 의아하여

"권공은 왜 조복을 않 벗으시오? 어서 벗으시오"

권율은

"예 별로 덥지 않아서......"

하고 얼버 무리자 선조가

"별로 덥지 않으시 다니 ...사양 말고 벗으시오"

하고 한번 더 권고 하였다

 

 

" 황공 하옵니다"

"........."

권율이 아주 난처한 표정을 계속 지었다.

 

 

재촉에 못이겨 권율이 조복을 벗기 시작 했다

 

권율이 조복을 벗자 모두 그의 행색에 처음에 놀라고 한편에서는웃는 소리 까지 나왔다

 

 

 

그의 행색은 조복 안에 입는 베 두루마기는 아예 걸치지도 않았고 헌 등거리와 잠뱅이 차림의 가당치 않는 옷차림에 신발은 버선도 신지 않은 상태 였다

 

 

 

어전에 들어 오는 대신의 행색 치고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옷차림이었다.

권율은 알굴을 어쩔줄 몰라하며 고개를 푹숙이고 죄인 처럼 서있기만 하였다 ,

 

 

이 광경을 본 이항복이 당황 하였다 ,

 

장인 에게 망신 주자고 한것이 아닌데 결과가 잘못 된것이다.

 

 

선조는 이 모습을 모른척 하고 회의를 계속 진행 하고 끝내 었다.

회의를 마치자 신하 들이 조복을 다시 입었다

 

 

이항복이 나서서 임금 에게 또 아뢰었다.

"전하 회의 도중 신들의 조복을 벗게 한 무례함을 용서 하여 주시옵소서 장인 어른께서 는 어지러운 난리통 에 전선으로만 동분서주하여 다니셨던 관계로 가사를 돌볼 시간이 없어 조복 한벌 입으실 변변한 베 두루 마기 한벌 못해 드린 신의 불찰이 아닌가 하옵니다 용서 하여 주시옵 소서"

 

 

하자 선조가 미소를 띄우며 인자한 얼굴로

"허,,, 과인이 불찰 이오 , 저 토록 전선을 동분 서주 하며 고생한 충신을 베필이라도 진작 내려 배려 했어야 하는것인데 푸대접했으니 모두가 과인의 허물 이오 도승지는 권공 에게 베 열필을 내리도록 하라 "

하고 즉석 에서 하사 하였다

 

 

왜란은 권율 에게서 개인 생활을 모두 빼았아 갔다 .

 

남들 처럼 모아 놓은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더구나 군인의 사생활은 전시중에는 생각 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다 .

 

어쨋든 그의 반생은 조선을 왜적으로 부터 막아내고 그들을 조선에서 쫓아 내는 일로 거의가 채워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조 29년 병신년 새해가 다시 시작 되었다.

 

 

조정은 밝지 않았다.

내우 외환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가까이 닥아 오고 있었다.

 

 

백성 들이 농사를 지을 틈도 주지 않은 데다 조정 에서는 남자들을 보면 무조건 전선으로 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후방 에서는 언제 왜적이 다시 침공 할지 모르는 상황 하에서 일 손이 제대로 잡힐리 만무였다.

 

 

군대를 기피한 장정들은 수시로 잡으러 오는 나졸 들의 눈을 피하여 산속 으로 피신하여 도둑 으로 변하여 있었다.

백성들 중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도둑질 하다 나중에는 왜군 행세 까지 하려고 왜군 복장을 입고 민가를 습격 약탈 행위를 일삼는가 하면서 또 한편 으로는 의병 행세를 하기도 하여 약탈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선조는 왜국 사정 보다 국내 사정에 대한 좋지 않은 비변사의 보고를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전선은 언제 다시 적들이 처들어 올지 모를 긴박감이 팽배 해 있었다.

 

 

지금 최 전선을 담당할 장수 다운 장수가 없었다 .

 

후방은 후방대로 불안감이 떠나지를 않았다

 

 

 

선조는 뒷 뜰에 핀 부용화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권율을 다시 도원수로 내 보내는수 밖에.....)

 

선조는 최 전선을 맡길 만한 장수로서 권율을 다시 찍고 있었던 것이다

 

권율을 다시 총사령관을 맡기자니 대신 들의 거센 반발을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당장 급한것이 민심을 바로 잡는것도 잡는 것이지만 당장 적들이 언제 다시 처들어 올지 모를 상황 하에서 우물 쭈물 할때가 아니었다 .

  계속

  대학사 왕석작(王錫爵)이 있다가  명황제에게 간언한다

"폐하 조선에서의 철수는 불가 합니다 .

 

왜군들이 철수 하겠다는 것은 거짓으로 보입니다,

 

왜적들이야 말로 믿을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다시 처들어 올지 모르는 차제에 우리 명군이 철수 한다면 조선은 다시 왜적들의 말발굽 아래 유린될것은 뻔합니다 .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던가 아니면 적이 부산 앞바다에서 완전히 떠나기 까지는 그자들을 믿을수 없습니다 "

강력히 반대 의견을 제시 하였다

 

 

과신(科臣)허홍강(許弘綱)이 간언한다

"학사께서는 그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까지 우리가 조선 땅에서 흘린피가 적지 않거늘 어찌하여 이이상 희생을 더 해서야 되겠습니까? 왜군들이 조선 땅에서 버틸 힘이 없어요 .

 

더구나 왜군들은 지금 영남해안가에서 저의 나라로 철수 하겠다는 마당에 저이들과 약속한 우리 군이 철수 않는 다면 그 들에게 명분만 더 주게 되는것입니다 , 왜적은 약속대로 철수 합니다 "

 

 

신종이 이말을 듣고 걱정한다

"과연 왜군들이 순순히 철수 할까?"

 

 

"폐하 걱정 마시 옵소서 지금대로만 철수 한다면 수일내로 모두 물러 갈것입니다 "

"듣자니 조선군중에 전라감사 권율군이 계속 적들의 퇴로를 공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대로 놔두면 적들이 다시 퇴각을 멈추고 공격으로 전환 하지 않겠나?"

 

 

"그러하옵니다 .권율은 자기나라를 황폐화 시킨 왜군을 조선내에서 모두 잡아 죽이겠다는 신념인 것같습니다만 우리 입장은 다릅니다.

 

다시 적들과 전투가 벌어 진다면 우리군의 손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함부로 뗄수 없는것이 조선전입니다. 그러하므로 적들이 순순히 물러가게 하려면 조선 왕에게 권율군의 공격을 삼가 해줄것을 요청해둔다면 전쟁은 이제 끝날것입니다 "

 

 

"병부의 석성 상서는 조선왕에게 권율군의 왜군공격을 중지 하도록 조치하고 우리 동정군도 철수준비를 하도록 하오 "

하고 신종이 완전 철수 쪽으로 기울었다.

 

 

이때 병부급사중(兵部給事中)후경원(候慶遠)이 나서서 아뢰었다.

 

 

"폐하 않되옵니다 , 잘못하면 대사를 그릇칠 염려가 있나이다

가볍게 철수만으로 해결될일이 아니옵니다 . 신의 생각으로는 완전 전면 철수 보다도 단계적으로 왜군이 와전 철수 할때 까지 잘 훈련돤 정예군 만이라도 소수만 남겨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것이 옳을듯 하나이다. "

 

 

신종도 이말에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후 급사중 의견도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나 과인이 생각하는것은 설혹 우리가 압록강을 모두 건너온다 해도 일단 물러난 왜군이 현해탄을 건느는것보다도 식은죽먹기보다 더 쉬운일이 아니오?"

"그것은 적들이 바다건너간후 얘기옵니다 "

 

 

"그렇긴 하오 , 병부의 서상서에게 다시 명령하니 그대로 시행하시오 , 전면철수보다도 적들의 동태를 보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철수 하도록 조선에 가있는 경략에게 지시 하되 현지 사정과 의견을 다시 물어 보고 받은후에 시행토록 하오 "

 

 

 

황제의 어명을 받아쥔 송응창은 전면철수가 아닌 단계적 철수라는 과제 만 받고 보니 난감 할수 밖에 없었다 .

차라리 철수 의견을 치계하지 않음만 못하였다 .(부분 정예군이라니.....) 도대체 명군에게는 정예군을 시간상으로 편성할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군사수만 줄어 들면 유사시에 왜군에게 숫적으로 열세에 몰려 막아낼 방법이 없다 .

 

 

더구나 조선군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거느리는 부대는 지난해 한강 방어전이나 임진강 방어전 ,에서 계속 패전만 거듭한 약군이라 믿을수가 없었다

 

 

 

다만 전라감사 권율만큼은 어느정도 신뢰가 가지만 그도 한지역을 담당하는 감사에 불과 할뿐이었다

 

 

그는 왜군의 동태를 신종에게 보고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왜적들은 명군만이 물러 나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명군이 철수 완료 했다고 가정하자 , 조선군이 이들을 막아내면 다행이지만 또 패전만 거듭한다면 황제는 나를 어떻게 생각 할까?그렇게 되면 앞서 세운 나의 공(功)은 어찌 되는것인가?

 

보나 마나 물거품으로 변하게 될것은 명약관화 하다 할것이다.그러나 엎질러진 물이니 걷우어 들이기는 어렵다 )

 

 

소응창은 명나라 황제에게 아래 내용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일단 철수를 대원측으로 하되현재 왜군이 철수 하는것을 조선군만으로 감시 하도록하고 명군은 후방에 배치토록하여 조선군의 전투 능력을 시험한다 . 명군의 배치 방법은 병력을 후방여러곳에 분산 배치 한다

 

(撥兵協守)

 

 

왜병들이 바다건너 모두 철수 하고 나면 아주 적은 병력이라도 남겨 두어 왜군들이 감히 넘겨 보지 못하도록 한다

 

(量留防守)

 

 

라는 내용을 황제의 구미에 맞게 작성 보고 하였다

 

 

신종은 별도의 명령을 내려 명군이 전면 철수에 대비 강서(江西)와 절강(浙江)성의 포수(砲手)들 5000명정도를 모집해 놓으라 지시 했다.

 

 

이러한 명나라 신종황제의 계획은 그대로 실천 된바 없지만 만일 명군의 전면 철수가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조선반도는 어찌 되었을까?

 

 

 

왜군의 철수 명분은 철수가 아니라 그들의 피로한 군사들을 경상도 지방까지 철수 시킨후 재 충전의 기회를 갖기 위한 작전상 후퇴란것을 명나라와 조정에서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까지 내려온 왜군들은 서울에서 철수 할때의 왜군이 아니었다.본국에서 새로운 양곡이 도착되고 새로운 무기가 속속 도입이 되고 있었다

 

.

철수라는 약속을 명군과 한것은 한낟 술책이었다는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임진란이 일어 난지 2년이나 되었다 .

 

 

 

송응창은 조선군 에게 함부로 행동 하지 말것을 지시했다 .왜군들이 이제 철수 할것이니 단순히 복수심 만으로 대세를 그르처서는 않된 다는 것이었다 .

 

 

권율은 조경에게 한탄한다

"음 , 왜적 들을 추격 해야할 지금 명나라 에서나 조정의 체칠사는 적을 보고도 공격을 못하게 하니 참으로 통탄 할일이로다. "

 

 

권율은 한시라도 쫓기고 있는 왜군을 지금 추격 하지 않으면 더큰 애로가 닥아 올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사실 권율은 지금 진행 하고 있는 일본과 명나라간의 강화에대하여는 보통 못마땅한게 아니었다.

 

 

조경이 답한다

"듣기에는 소서행장과 심유경이 서로 결탁 하여 소위 <관백항서(關白降書)>라는것을 만들어 명 조정에다 올렸다 합니다 ."

 

 

"매일 회담만 하면 뭣하겠소 , 왜적들의 속성을 모르는 명나라 조정이 철군을 생각 하고 있는 모양 인데 왜적들을 부산 앞바다로 몰아 내기전에는 협상이란 있을수 없는것이오 . 결국 왜군들이 재 충전하기 위한 음모에 놀아나는 것밖에 않되는것이오 "

 

 

"가등청정(加藤淸正)과 유정(惟政)대사와의 회담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합니다 . 경상도 우병사 김응서가 나서서 왜장과 회담을 하겠다고 나선 모양인데 한번 참여 해보시겠습니까?"

 

권율에게 조경이 넌즛이 묻자

"조방장은 나보고 왜군과 타협 놀이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권율의 눈에 분노의 눈초리가 번뜩었다.

 

 

조경이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실언을 한모양입니다용서 하십시오"

 

"조방장의 뜻을 모르는바는아니오 . 나도 전란을 평화 스럽게 끝나자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왜군들은 믿지 못할 자들이야 , 다시 말해 간교하기가 이를데 없는 자들이란 말이오 그런자들과 협상을 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 "

 

 

"하지만 우리조선이 피해자이긴 하지만 명나라 쪽에서 보면 조선측이 너무 감정 대응만하고 있는것 같으니 그렇게 하지 말고 말고 유연히대하여 순순히 적을 몰아내자는 것 같습니다"

 

 

"조방장, 옛말에 可怒而不怒면 姦臣乃作하고 可殺不殺이면 大賊乃發하고 兵勢不行이면 敵國乃强이라 했고

(일국의 군주 된자가 노해야 할자리에 노하지 않으면 간사 한자들이 세력을 키워 란을 일으키고

또 죽여야 할자리에 죽이지 않는다면 마침내 큰도적으로 자라나 더큰란을 일으키고 군사를 일으켜야 할자리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적국의 세력만 키워주는것이다)라 했오 .

 

 

지금 왜적들야 말로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이런 도적 들과 협상이라니 ......."

 

 

"옳은 말씀입니다"

 

 

 

명나라와 조선, 일본 3 자간에 지루한 회담이 지나가는 동안 곤란을 받고 있는것은 조선 백성들 뿐이었다 .

 

징비록(懲毖錄)에서 당시 체찰사로 있던 류성룡은 이렇게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

 

 

"전쟁이 길어 질수록 각 고을의 창고 의 곡식은 텅텅비어있어, 장차 적들과 싸울 려면 전쟁 필수 물자를 징발해야 할터 인데 군량미가 나올곳이 없으니 큰일이로다 .

 

군량미 조달이 않되는데 그까짓 많은 군사와 높은 성(城)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권율은 이러한 백성들의 고충을 직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하병사들이 조금 이라도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단속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장들은 상하가 서로 참된 마음으로 백성 들을 돌보기 바란다. 장수들은 부하 들이 하는일에 무조건 감싸서는 않된다 .잘못된것은 지적 하여, 민폐가 없도록 하고 백성들이 농사철이되면 비록 전란 중이라 하더 라도 안심하고 농사 지을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다가도 왜적이 전투를 벌려 온다면 백성 들도 합심하여 막아야 하는것이다 그래야 위로는 나라가 편안하고 아래로는 부모처자가 안심하고 살수가 있는것이다.

 

"

권율은 전투가 소강상태로 답보상태에 빠지자 훈련이외에는 대민 선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다 .

 

소서 행장은 심유경과의 약속을 어기고 왕자와 종시들을 부산까지 끌고 내려갔다

 

 

 

명나라와 일본간에는 서로 사신이 수차레 왔다갔다 하는 동안 왜군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것이다.

풍신수길은 명나라 신종 에게 애시당초부터 항복할사람이 아니었다 , 소서행장과 심유경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풍신수길이 조선 에서의 패전 원인은 명군이나 조선군이 아니라 군량미 조달 때문으로 결론 지었다.

 

 

 

"호남 곡창 지대를 다시 확보 하자 그러자면 호남의 관문인 진주를 다시 공격하자"

풍신수길은 진주 성을 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선조26년 5월

 

 

조선군은 의령(宜寧)과 선산(善山) 방면에서 조정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일본과의 강화정책으로 인하여 정작 조선과 일본은 전쟁 당사국이면서도 직접적인 강화 회담이 이루어 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명과 왜국이 조선을 소외 시키고 저이들끼리 조선을 요리 하려는 불순한 음모가 깔려 있었다.

 

 

더구나 권율은 적들과의 강화 무용론(無用論)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송응창으로서는 권율이 신경쓰이지 않을수 없었다.

 

권율은 강화에 방해 인물이라는것은 인정하면서도 조선군을 그나마 이끌고 있는 장수 중에는 권율만한 인물이 없음을 누구 보다도 더잘아는 송응창으로서는 견제의 눈초리만 느추지 않고 있는터이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도체찰사 류성룡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장이라기 보다 한낟 문관이나 다름 없는 나약한 장수에 불과 했다 .

 

 

 

명나라 유격장 전세정(錢世禎)최근 권율군 병사가 척후병 5명을 사살 시킨사건이 있었다.

 

왜군 진영에서는 명군에게 이사건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한일이 있었다 .

 

 

이 왜병들은 척후병이 아니라 땔나무와 풀을 베고 있었던 비전투원이라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 전세정은 권율에게 패문(牌文)을 보내 앞으로 왜군에게 이와같은 일을 가지고 보복적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질책 하는 내용이었다.

 

 

 

체찰사 류성룡이 이건에 대하여 전세정을 찾아갔다

"전(錢)유격께서는 조선군이 볼때는 분명히 적의 정탐병이 분명하여 충돌한 사건인데도 이런 사소한 왜군과의 충돌사건까지 도 질책을 하신다면 우리 조선군이 어찌 작전을 마음놓고 하오리까?"

 

 

하고 항의 하자 진세정은 이렇게 답한다

"무슨 말씀이오이까? 왜군과의 강화는 천자(天子)의 명령이오이다. 조선은 자꾸 적과의 전투로만 해결하려 하는데 전쟁이란 피한방울 않흘리고 이길수만 있다면야 그보다 더한것이 없는것입니다 .

 

 

듣자니 이번일도 왜군은 척후병이 아니라 하는데 조선군이 고의적으로 싸움을 걸어 온다는것입니다.

체찰사도 잘 아시지만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이 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조선군이 참고 지켜야할 제일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회담 진행상황을 보면서 천천히복수의 기회를 노려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조선군이 계속 말썽을 피운다면 우리 명군은 철수 하고 말겠습니다 "

 

반 협박조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었다

 

(이사실은 선조 실록37권에 기록 되어 있다)

 

 

 

권율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 전투 상황에서 할일이 없었다.

 

권율군은 지금 까지 조선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연전 연승한 부대 이다 .

 

왜란 초기 관군이 연이은 패배와 그 과정에서 보인 지휘관 들이나 지방 수령들의 비겁했던 모습 과는 찾아 볼수 없는 군대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백성들이 보는 왜란 초에 저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던 장수들의 불신받던 모습은 찾아볼수 없이 달라저 있었다 .

 

심유경과 소서행장은 일본군이 서울철수와 동시 명나라 사신으로 사용자(謝用諮)와 서일관(徐一貫)두사람을 일본에 있는 풍신수길과도 직접 만나보려 하였으나 풍신수길은 직접 만나주지 않고 소서행장에게 심유경과 해결하라는 조건만 내려 보내 회피하였다 .

 

 

그 내용은 조선 8도중 4개도를 일본에 할양하라는것이었다 . 그리고 풍신수길은 조건없이 포로로 잡힌 두 조선왕자와 종신을 먼저 풀어 주는 아량(?)을 베푼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부산에 억류하고 있던 석방되었던 두왕자와 종신들은 석방되었다.

 

 

풍신수길이 아무리 잔꾀를 피운다 한들 명나라가 이에 순순히 조선 4도 할양에 응하는것같은 운운은 말도 않되는 조건이었다 . 오히려 명은 자기네는 대국(大國)이니 소국(小國)인 왜국은 명황제 신종 명의로 풍신수길을 왕으로 봉해줄것이니 그리 알라는 투였다 .

 

 

 

소서행장은 이 내용 조차 태합 풍신수길에게 보고 할수 없었다.

 

 

 

풍신수길은 불명예스럽게 철수만 거듭하고 있는 왜장들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풍신수길은 왜군이 조선 전역을 석권하고도 패전을 하게 된 원인을 명이나 조선군이리기 보다도 왜군을 굶주리게한 군량미 조달 미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

일본 태합 풍신수길은 전쟁초기 부터한성을 치기에 앞서 진주성을 무슨일이 있더라도 먼저 함락시킨 연후에 전라도 지방의 풍부한 군량미 부터 확보 한다음 한성으로 올라갔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일부 왜장들이 조선 왕도 한성을 먼저 점령하겠다는 과욕이 앞서 일을 그르첬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진주성을 공략하고 전라도를 점령함으로써 전세(戰勢)를 만회하고 떨어진 위신을 만회 해야 한다)

 

 

 

풍신수길은 진주성 총공격령을 다시 내렸다.

 

 

진주성 같이 조그만 성 하나 점령하는데 10만 병력을 투입 하기로 하고 진주 방면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총병력 12만 1600명이나 되는 병력이 집중 되었다.

 

 

 

그동안 조.명 연합군이 분산 배치 되었다는 정보를 알아낸 풍신수길이 진주성 만으로의 정면 돌파 작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철수한 것으로만 믿고 있던 조선과 명나라 조정에서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나라 군의 철수론과 분산 배치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왜적들이 다시 진주성으로 진군 한다고 하는데 명나라 동정군은 후방에만 배치 되어 있고 우리 조선군만이 전방에 배치 되어있어 잘 막아내게 될지 걱정이 되오."

 

 

선조가 어전 회의를 열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아뢴다

"전하, 듣자하니 왜군들을 총병력이 모두 전라도 곡창지대로 집중 공략하기 위한것으로 이번 작전의 목표로 세운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 대구에 있는 이제독은 그럴리가 없다고만 하니"

 

 

"전하 명나라 동정군은 전쟁은 않고 왜적을 밀어 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나이다. 한성 수복전 때도 전라감사 권율이 한강변에서 적들을 추격 완전 섬멸 해야 한다고 주장 했는데도 이를 못하게 말린것은 누구 이옵니까? 그때 완전히 섬멸 했어야만 이런 후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왜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는이상 우리 조선군이 앞으로 나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제독이 조선군 단독 작전을 못하게 한다 하지 않소."

 

 

"전하, 그러하기 때문에 때는 이때 입니다. 우리 조선군이 적극적으로 선제 공격 하게 되면 명나라 동정군이라고 가만히 두고 볼수가 있겠나이까? 정면 돌파 하는것이 옳을까 하나이다."

 

 

"정면 돌파 할 장수라면 도원수 김명원이 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되오."

 

 

영의정 최흥원이 나섰다.

"좌상 상황 판단이 옳은듯 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전투 때나 임진강 전투 경력으로 보아 그만한 일을 할수 없을 것입니다.대신 지금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는 전라감사 권율에게 도원수로 제수하여 이 난국을 막아낼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권율은 한성 수복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제일 먼저 성도에 입성한 장수 입니다. 그런 그의 능력을 봐서라도 그를 도원수로 임명하여 적을 물리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일까 하나이다."

 

 

선조는 그렇지 않아도 권율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선조가 좌의정 윤두수가 우의정 유홍을 번갈아 보며

"두 분께서는 어찌 생각 하오?"

하고 물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영상의 말씀대로 권율을 도원수로 제수 하여 적을 막아 내도록 맡겨야 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우상은 어찌 생각하오?"

"저도 영상과 좌상의 말씀대로 시행 하는것이 옳을듯 합니다."

 

 

왕은 결국 권율을 도원수로 삼아 왜군을 막아내도록 조치 하였다.

 

 

 

당초 전라병사 선거이와 황진은 수원성에 있었다. 왜군이 수원성을 빗겨 광주와 용인을 거처 철수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수원성도 이여송의 왜군 추격 중지령이 떨어진 상태 였으므로 선거이는 선뜻 적들의 퇴로를 공격할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치령 전투 이후 전라도 익산 군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황진(黃進)이 수원성에서 선거이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가 권율군이 수원성을 지날때 합세할것을 염두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

 

 

 

왜군이 용인땅 양지현을 통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선거이 황진 진영에 들어왔다 .

 

 

 

 

 

 

 

 

 

 

황진이 주장한다

"선장군, 지금 물러 가고 있는 왜군의 퇴로를 막아 전멸 시킵시다"

 

 

"명나라 이제독이 출전 금지 요청이 왔고 도 체찰사 류성룡 대감의 지시 공문이 와있는 상태 인데 함부로 나갈수 없소이다"

 

 

"그러나 적을 그대로 순순히 물러나게 두실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우리의 천여명의 병력을 가지고는 아무리 퇴각하는 군대라지만 줄잡아 4 만 병력을 갖고 있는 왜군과 대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소이다. 전라 감사를 기다려 봅시다."

 

 

황진은 선거이의 우물쭈물 하는 태도가 못마땅 하였다.

 

이치에서의 기개는 어디로 가고 명나라 제독이나 군사 숫자 탓만 하고 있는 선거이가 볼수록 답답 하였다.

 

 

"선장군, 제가 양지현으로 나가 적들의 동태를 알아 볼 것이니 권장군이 서울에서 도착이 되면은 지원 공격이나 해 주십시오."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 하려고 발진 했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이때, 조정에서 임금이 보낸 선전관이 권율군 진영에 나타났다.

 

임금의 교서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교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권공의 노고를 치하 하노라.

 

왜적이 조선을 떠나 저의 나라로 와전 철수 할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진주 성으로 진군을 개시 했다고 하는바, 공에게 오늘 일자로 도원수(都元帥)로 임명 하니 공은 온 힘을 다하여 왜적을 먼저 공격 하여 공을 세우도록 하라."

 

 

권율은 선조가 내린 교서를 다 읽고나서 도원수 임명에 앞서 마음 부터 비장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선조께서 아직까지 환도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승진 발령 까지 내리시며 당부하는 모습이 삼천리 밖 의주땅 행재소에서 바라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양 어깨가 무거워 지지 않을수 없었다.

(내 기어코 왜적을 물리치리라.)

 

 

권율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핏발이 맺히며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제장들을 불러 놓은 자리에서 조정에서 나온 선전관이 권율에게 도원수 사령장을 전달 하였다. 이자리에서 권율은 의령땅 기강(岐江)을 건너 전진 할 것을 논의 하자 의병장 곽재우와 경기 방어사 도원백이 반대한다

 

 

"적들은 이제 철퇴군이 아닙니다. 공수(攻守)가 바뀐 군대 입니다. 함부로 적중에 뛰어들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습니다. "

.권율이 말한다

"강건너 적들은 적의 주력군이 아니요. 조정에서는 왜적들이 진주성으로 진군할 조짐이 있으니 이를 막으라는 지시외다."

이빈의 종사관인 성호선(成好善)이 나선다

"제장 여러분, 도원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일은 저질러야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권 도원수 께서는 벌써 적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다 알고 계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도 명나라 이제독이 제동을 걸어 못나간 것 뿐인데 마침 조정에서 선제 공격을 하라 하니 못나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적의 주력군은 부산에 모두 집합되어 있는 상태 이므로 지금이 적을 칠 때 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장들께서 않나가신다면 소장이 도원수와 함께 도강 하겠습니다."

 

 

 

권율군은 드디어 함안(咸安)으로 진군 하였다.

왜군들은 권율군이 쳐들어 온다는 말을 듣고 지레 겁을 먹고 성을 비워둔 채로 도망가고 말았다.

 

 

 

6월15일

왜군 10만 주력군이 김해, 창원을 거쳐, 6월16일 권율군이 있는 함안으로 진군해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대군 이었다. 적군의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제1대장 가등청정 2만5천6백명

제2대장 소서행장 2만6천1백명

제3대장 우희다수가 1만8천8백명

제4대장 모리수원 제5대장 소조천군의 예비대 2만2천3백명

제6대장 길천광가 1천명

도합 9만3천명의 대군이었다.

 

 

 

권율진에 보고가 들어왔다.

 

 

"적의 숫자가 10만 여명이나 된다고 하옵니다. "

하고 조병장이 보고 하자 의병장 곽재우가 말한다

"적의 주력군의 숫자가 너무나 우세 할 뿐만 아니라 우리군은 1천여명의 군대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 함안성 에서는 싸우기 어렵습니다. 이곳은 성벽도 허술하고 지형이 좋지 않으므로 일단 지리산 쪽에 진을 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 하는것이 선결 문제 입니다."

 

 

권율도 이점에 대해서는 동감 이었다.

 

함안성은 적군과 성곽전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도 또한 별안간 도원수의 직책을 받기는 했으나 왜군들이 진격해 들어오는 긴박한 마당에 진주성에 있는 조선군은 도원수가 아직까지 김명원으로 알고 있는 이상 일사 분란한 명령 체계를 갖추기는 시기상조 였다.

권율은 곽재우의 권고대로 일단 지리산 쪽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이빈이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곽재우에게

"곽장군 우리가 진주성 으로 들어가 적과 싸워야 할 판에 지리산으로 들어 가다니요?"

하고 좀 격한 말을 하자 곽재우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권자(權者)는 능히 용병(用兵)하고 지자(智者)는 선(善)히요적(料敵) 하는 것이외다. 적들은 이미 패퇴 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요. 새로 충전된 군대 이므로 무모하게 진주성만 고집 하고 있는다 하여 전쟁에 꼭 이기는 것이 아니외다. 하물며 조선의 모든 군사들이 진주성으로 들어가 실패 한다면 모두가 전멸 할 것이므로 앞으로 어찌 할것이오?

 

다시 말하면 내외(內外)의 응원지세(應援之勢)를 잃게 되는 것이오.

 

재우(再佑) 이사람이 마땅히 응원은 할 것이므로 내말이 맞았나 틀렸나는 후세에 더 잘 알게 될 것이오."

이말에 경상우 감사 김륵(金肋)이 화를 낸다

"장군은 대장의 명령을 어떻게 여기고 군율을 따르지 않는것이오?"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이에 곽재우가 말한다

"내 한몸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일뿐이외다 . 그러나 내가 우려 하는것은 적들의 강세에 눌려 만의 하나라도 진주성에 갇히어 패전 이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백전 백승의 내 부하들의 운명은 모두 어찌 되겠습니까? 우매하게 사지에 넣을 수는 없소이다."

 

 

권율은 곽재우의 단호한 소신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전세로 보아 적들은 옛날의 적들이 아니었다. 그동안 충분한 휴식과 수많은 군수 물자를 일본으로 부터 재충전 받아 강할대로 강하게 된 군으로 변하여 있던 것이었다.

 

 

 

당시 진주성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의 진주 목사 서예원(徐禮元)을 불러 군량미를 점검 하는등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권율이 말한다

"두분 말씀 모두 옳으나 내 생각으로는 곽장군의 상황 판단이 더 비중 있는듯 합니다. 사실 만명도 않되는 조선군으로 적의 10만 대군을 몰아 내려면 이런 곳에서 싸워서 이길수 없는 것이외다.

진주성도 중요한 성이기는 하지만은 곽장군의 의견도 존중해야 할것같습니다,

 

 

 

곽장군 께서는 정엄진(鼎嚴津)을 지키도록 하고 나는 일단 지리산 주변 진주성 외곽에 있는 단성(丹城)에 가서 대책을 세울 것이니 황진 장군 만이 우선 진주성으로 들어가 김천일(金千鎰) 장군과 함께 대비 하도록 하시오."

 

 

 

이렇게 하여 일단 모든 부서는 정 해졌다. 이빈은 의령으로 가기로 하고 권율군 휘하 정예 500명을 차출하여 우선 황진과 함께 진주성으로 들여 보내었다.

 

 

 

김천일은 권율이 도원수로 제수 되었다는 소식과 정예군 500명과 함께 용장 황진을 보내어 주자 김천일은 용기 백배 하여 진주성 사수의 의지를 더 공고히 하였다.

 

 

김천일과 최경회(崔慶會)가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고 황진이 순성장(巡城將)이 되었다. 이로서 진주성내에 조선군 병력은 진영이 갖추게 되었다. 주요 조선측 장수들의 배치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창의사 김천일 500명

경사우병사 최경회 600명

충청병사 황 진 500명

의병장 고종후 400명

의병장 이계련 200명

의병장 민여운 200명

의병장 강희보 200명

의병장 이 체 300명

거제현령 김준민 150명

해미현감 전각세 50명

사천현감 장 윤 300명

의병장 오 유 50명

김혜부사 이종인 150명

진주목사 서예원 200명

남포현령 송제지 100명

진주판관 성수겸,

계 3900명

 

 

명나라장수들은 왜적이 진주성을 향하여 몰려들고 있는데도 대구, 상주, 정주, 남원등에 분산 배치되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

 

 

다만 부총병 유정(劉綎)이 왜적이 진주성 공격 풍문을 듣고 왜장 가등청정에게 서신을 보내어 질책 하기만 하였다. 또, 부산소서행장의 진영에 있던 심유겸은 소서행장에게 진주성 공격을 중지 하도록 요청 하였다

"이번 진주성 공격은 가등청정이 관백에게 강력하게 주장하여 하는 것이니 내 힘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피를 않흘리려면 진주성이나 비워 놓으라 하시오."

하고, 심유겸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자 심유겸은 회담이고 뭐고 물리치고 부산 왜진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도원수 해직명령을 받지 못한 김명원과 마주쳤다.

 

 

김명원이 심유겸에게 묻는다

"심유격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 진주성이 위태로우니 힘써 구해 주시오."

하고 간청하자 심유겸이 답한다

"왜적은 작년에 진주성으로 호남을 노렸다가 진로를 한성으로 성급히 바꾸어 큰 실수를 범하였다고 하는 관백의 질책을 받고 진주를 치기로 하여 다시 거병하는 것이외다.

 

이제는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다음 기회로 미룰수 밖에 차후 작전 문제는 이 제독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하고 서울로 향하였다.

 

명나라 장수들은 왜적의 대군이 진격해 온다는 것에 겁을 먹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심유겸과 헤어지던날 김명원은 조정에서 파견된 선전관으로부터 도원수 해직과 동시 한성으로 올라오라는 어명이 있었다.

 

 

 

서울에 머물러 있던 이여송은 심유겸의 보고를 받고 남원 주둔 참장 낙상지(駱尙志)와 유격장 송대빈(宋大斌)에게 명령 조선군의 수성의 합세하라 지시하였으나 두 장수는 왜군에 비해 병력이 워낙 열세라며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유정, 유격장 오유충(吳維忠) 상주에 주둔하고 있는 왕필적(王必迪)의 합동 작전 없이는 대적 할수 없다고 보고하자 이여송은 조그마한 진주성 하나 때문에 대구나 상주처럼 큰 성을 등한시 할수 없다는 핑계로 적의 동태만 감시하라 지시하였다.

 

 

 

경략 송응창이 왜장 소서 행장에게 다시 진주성 진군을 중지 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보내었다. 소서행장은

"그렇지 않아도 작년 진주성 공격을 제대로 않하였다고 하여 관백께서 화를 내시고 있었는데 마침 조선군이 풀을 베는 우리군 병사들을 수명을 죽였다는 보고를 받고 더욱 격분 하시어 진주 함락 지시가 특별히 떨어졌습니다. 저는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하고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송응창은 이에 격분 이여송에게 진주성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지시 하였다. 이여송은 사대수를 남원으로 보내 낙상지와 송대빈에게 질책하자 두 장수는 마지못해 구례까지만 나가 더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권율과 순변사 이빈과 병사 선거이는 운봉현(雲峰縣)에 있으면서 시시각각으로 왜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전라병사 선거이가

"왜군이 저토록 진주성 공략에 집착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하고 순변사 이빈과 권율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던졌다.

 

 

"적은 대병력으로 집중 공략 하고 있지만 우리 조.명 연합군은 모두 여러곳으로 분산 배치되어있어 진주성으로 집결할 시간이 없소이다."이빈이 말하자

두사람 말을 듣고 있던 권율이 말한다

"음, 참으로 어렵도다. 내 생각으로는조.명 연합군이 왜군 본영이 있는 부산을 포위 한다면 왜군들이 함부로 진주성은 넘보지 못하였을 텐데 강화회담을 한답시고 우물쭈물 하다가 이꼴을 당하고 만것이오 ."

권율의 말을 듣고 있던 선거이가 말한다

"그러 하옵니다. 명나라 동정군이 왜적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왜적들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겠습니까?"

이빈이

"하여간, 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이 막연합니다."

하자 권율이

"이제는 어쩔수 없습니다. 적은 벌써 진주성 가까이 접근하고 있고 조.명 연합군은 여러곳에 나누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모으려면 시간이 없소이다. 진주성은 현재 주둔 병력으로 최대한 수성토록하고 조.명 연합군이 적의 배후를 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대책을 말하자 선거이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 만으로는 적의 10만 대군을 막아낼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진주성으로 들어가 김천일 장군에게 설득하여 일단 철수 했다가 조.명 연합군의 힘이 강화된 후에 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하고 곧바로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에는 경기 방어사 홍계남도 와 있었다.

 

선거이와 홍계남은 생각이 같았다. 두사람은 김천일을 찾아가

"적군은 10만 병력이고 우리 병력은 1만도 않됩니다. 진주성은 견고 하기는 하나 많은 희생이 예상되니 일단 후일을 기하여 철수하였다가 같이 조.명 연합군의 힘이 강화된 다음 치도록 재고 하십시오."

 

 

하고 말하자 김천일은 화를 벌컥 내며 죽는 한이 있어도 버릴수 없다고 강경 하였다. 선거이와 홍계남은 권율진에 돌아와 이를 보고하자

"김 장군이야 말로 기개가 대단한 충장이기는 하오. 그러나 대사는 그르쳐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 兵者詭道也(병자궤도야) 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정의감(正義感)에만 사로잡혀만 있는다면 싸움에 질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법에 强而避地(강의피지)하고 實而備之(실의비지)라고 하였는데 이말은 상대가 팽팽하게 기세를 올릴때는 덮어놓고 이와 대적하는 것은 일단 중지하고 오히려 한걸음 물러나 형세를 관망 하면서 이쪽태세를 정비 하는데 전념 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면 충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

선거이와 이빈은 도원수의 속내를 듣고 깊은 뜻을 이해 할것 같았다.

 

 

 

진주성은 4월22일 오전10시부터 시작하여 4월29일까지 왜적과 조선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 되었다.

이전투에서 진주목사 서예원, 경상 우병사 최경회, 김해부사 김종인, 의병장 강희열,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거제 현감 김준민, 사천현감 장윤, 의병장 오유, 이체 등이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모두 전사 하고 말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하고 만 것이다.

 

 

적은 진주성 내에서 몇일을 묵더니 7월5일 전라도 고부 까지 깊숙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유격장 송대빈은 두골봉(頭骨峰)에 1000명을 잠복 시켰다가 싸우지 않고 남원으로 퇴각 하였다.

권율은 도원수로서 중책이 무거우지 않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차라리 전라감사로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명나라와 일본국간에 강화에 관한 빈번한 교섭이 오갔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

 

 

 

조선과 일본과의 직접적인 회담도 가등청정과 유정대사, 경상우병사 김응서와도 회담이 오갔지만 별반 변동이없었다.

조선과 명나라간에는 사신이 빈번히 오갔어도 뾰죽한 해결점이 보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경략 송응창은 고양겸(顧養謙)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병부좌시랑으로 있던 손광(孫鑛)을 경략으로 임명하였다.

 

 

명나라 동정군 도독 유정도 9월11일 서울을 떠나 명나라로 돌아갔다.

 

 

이렇게 온나라가 뒤숭숭한데 백성들은 춘궁기때 후유증으로 추위와 배고픔이 쉬 가시지 않았다.

 

조정에서도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영의정은 류성룡으로 바뀌었고 , 좌의정이 윤두수에서 유홍, 김응남으로 ,병조 판서도 이덕형에서 심충겸으로 했다가 별안간 죽는 바람에 이항복으로 다시 바뀌었다.

 

 

 

일본군도 경상도 해안가로 모두 철수 하여 11개 본성과 7개의 지성을 쌓아놓고 떠날준비를 않고 있었다.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은 서생포, 임랑포, 기장, 부산 , 동래. 김해, 안골포, 가덕도, 웅천, 거제등에 성을 쌓아 4만 3천명이 남아 있었다.임진년 초기에 비하면 반으로 줄었다.

 

 

왜장들도 가등청정, 흑전장정, 협판안치 , 소서행장, 종의지 , 도진의홍, 복도정칙, 같은 왜장들은 조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원수 본영에 경상우병사 고언백이 찾아 왔다 ,

"서생포에 주둔하고 있는 왜장 가등청정이 왜진에 잡혀있던 정연복이라는자를 통해 적장이 도원수와 직접강화 하자는 서신을 갖어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십시요"

하고 서신을 내놓았다.

 

 

 읽어보니 내용은 조선과 더싸울뜻이 없으니 강화를 하자는 상투적 글만 쓰여저 있었다.

"왜군들은 믿을수 없는자들이오 ,그들이 나를 회담에 끓어 들일 목적은 회담을 핑게로 조선군전체의 전투 의지를 꺾으려는 얕은 꾀에 불과 할뿐이오. "

하고 회담 할뜻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이자리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정이

"그러하오나 명나라 도독이 이것을 알면 왜국과의 화의가 않되는 모든 책임을 권원수에게 전가 할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명나라 조정이 조선조정에 압박이 들어올것이 아니옵니까?"하고 걱정을 했다.

 

 

"그렇다면 고 병사가 직접 유도독에게 찾아가 가등청정의 답변서나 받아다 전해 주시오."

하고 고언백이 직접 전하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왜군과 의 뒷거래는 필요 없다고 생각 하고 있는터이었다.

 

 

고언백은 유정을 찾아가 가등청정의 문서만 전달하고 돌아갔다.명장 유정(劉綎)은 답서에다 일본군이 아직까지 물러가지 않는 이유가무엇인가. 하는 힐문(詰問)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등청정과 회담을 계속할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 두고 보내 었다.

도원수는  유 도독과 왜장간에 오가는 문서를 일단 원수부에서 알아 내어 점검후 전달 하도록하고 그 상황을 그때 그때마다 조정에 치계(馳啓..왕에게 급히보고)하였다.

 

 

 

유정은 가등청정에게 다시 서신을 보내었는데 풍신수길을 명황제로 부터 일본국왕으로 정식 책봉할것이니 스스로 물러나던가 그렇지 않고 관백이 계속 물러가지 않겠다고 우긴다면 가등청정에게라도 일본왕으로 책봉할 용의가 있으니 풍신수길을 이기회에 실각 시켜 보라는 대담한 문서를 보내었다.

 

 

가등청정이 유정의 서신을 읽어 보더니

"이놈이 관백 각하와 나를 이간 시키려는 음모이다 ....이놈 유정, 내가 네 음모에 넘어갈상 싶으냐?"

하고 흥분하였다.

 

 

 

가등청정은 답변서를 썼다. 풍신수길을 쓰러뜨리고 자기가 관백이 된다는 것은 의리(義理)상 불가능 하다는 내용과 이번에는 왜적이 살려 보낸 두 왕자에게 자기의 편지를 전해달라며 서신을 보내왔다.

 

 

 

조정에서는 권율에게 가등청정과 강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계속 내려왔다.

권율은 왜적과의 강화는 아무소용이 없는줄은 알지만 조정의 지시에는 어쩔수 없었다. 더구나 명나라 도독 유정은 권율에게 지시한다며 왜군과의 강화 회담을 조선군도 직접 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권율 진영에서는 평양 전투때부터 참여 하고있던 승장 석유정이 권율에게 와 있었다.

 

권율의 성격을 잘알고 있던 유정은

"가등청정이 왕자 두사람을 살려 보낸것을 큰 은혜나 베푼 것인양 생색을 내는 모양인데 우선 그자의 의사를 자세히 알아 오겠습니다. 만일 원수께서 왜국과 화의 의사가 없다는 것이 명나라에 계속 보고가 들어가면 모함을 받을까 염려가 됩니다."

유정은 권율이 모함을 당할까 우려하여 자기가 앞장서기로 했다.

 

 

 

"대사께서 꼭 다녀 오시겠습니까? 주의 하실것은 왜적이란 간악한 자들입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 할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걱정마십시오. 인간이란 아지랑이 같고 물거품 같은 존재들 아닙니까? 인간이란 물거품 같이 일어났다 사라지듯이 인간도 태어났다 사라지기는 일반입니다. 이 한 목숨 왜적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진의를 알아 오겠습니다."

 

 

 

권율은 할수없이 그를 울산교생 이겸수와 군관 신의인과 함께 서생포에 있는 가등청정 진영에 보내었다.

 

 

여기서 잠깐, 승장 석유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의 호는 잘 알려진 사명당(四溟堂)이다.

 

그의 본래성은 임(任)씨 이다.

 

그의 아버지는 풍천의 문벌인 임수성(任守成)이다.

 

13세때 황악산 직지사에 들어가 귀의했고 명종 16년에는 선과(禪科)에 합격하였고 선조 8년에는 묘향산에 들어가 휴정(休靜)에게서 수련후 8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임진란이 터지자 승병 700명을 데리고 휴정 막하에서 총섭(摠攝)을 맡았다.

 

 

 

스승인 휴정이 늙어 그가 전면에 나섰는데 평양 전투때 공을 세우고 지금은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그를 돕고 있었다.

 

 

 

가등청정은 권율이 나타나지않고 왠 조선의 중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처음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대하였다가 유정의 인품에 감동되어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가등청정은 예상대로 자기가 살려보낸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 자기에게 체포 되었을때 극진히 대접하여서 데리고 있다가 살려 돌려 보내었는데도 의리도 없이 답신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유정은 자기가 한성에 올라가서 그 결과를 알아 주겠다고 하고 별다른 회담없이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두달뒤 2월26일 가등청정이 경상좌병사 고언백을 통하여 권율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내용은 두왕자의 답신을 가져오겠다는 유정이 소식이 없는것을 보면 화해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동태만 알아보려고 왔다간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권율은 이사실을 조정에 보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권율에게 승장 유정과 경상좌병사 고언백과 군관 이겸수를 급히 상경 시키라고 지시하고 비변사에게 명하여 가등청의 요구사항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유정은 가등청정이 전란중 왕자들을 잘 모시었는데도 회답이 없어 섭섭 하다고 불평하더라는 말을 하자 비변사에서는 유정에게

"임혜군은 명나라에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순화군은 서울에 있지만 가등청정의 편지가 중간에 전달이 잘못되었으므로 임혜군이 돌아오는 데로 회신을 보내 주겠다"

라고 하는 답신을 유정에게 주어 보내었다.

 

 

 

도원수는  유정이 한성에서 돌아와 비변사의 지시 내용을 듣고는

"조정이나 왜적들 모두 한심하오. 왕자 두사람 문제가 뭐그리 대단하다고 이 중요한 시기에 천리길을 오라가라 한단 말이오. 두고 보시오. 왜놈들이 일을 저지르고 말 것이니...."

하고 걱정스러운 말을 하였다.

 

 

 

다음날 유정이 군관 이겸수와 같이 가등청정에게 찾아와 조정에 다녀온 내용을 이야기하자 가등청정은 그동안 유정을 의심하고 있다가 찾아온것에 감동되어 유정에게

"종의지 라는 놈 때문에 나는 귀국을 침공하기 시작하여 평양 전투와 진주 싸움에서 두번이나 패한 죄로 관백이 나를 좋게 보지 않기 때문에 화의를 하든지 전쟁을 다시 하든지 결과를 맺지 않고는 일본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쟁을 더이상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고 명나라와 화의를 약속 받아 내려다 그것도 않되어 당신네 나라와 그동안의 원한을 품고 화의를 직접 도모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소이다.

나는 당초 권율장군 같은 분과 직접 만나 서로 화의하자는 담판을 벌일려고 했는데 직접 만나주지 않으니 매우 섭섭합니다.

권도원수는 나에게는 적장이시지만 그의 지모와 전술에는 어느누구도 따를자가 없는 분으로 개인적으로는 존경합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나를 소서행장 정도의 졸장으로만 보고 상대를 않는 모양입니다. 그려... 기왕에 귀국과 수교를 맺으려는 마당에 다섯가지 조건만 들어 준다는 결정적인 말 한마디만 해 주신다면 마땅히 관백에게 돌아가 보고하여 소서행장에게도 철수토록 하겠습니다만..... 보시다시피 나는 원래부터 왕자 두분도 깍듯이 모시고 있다가 돌려 보내지 않았습니까?"

 

 

"다섯가지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유정이 물었다.

 

가등청정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명나라 천자의 영식을 관백과 결혼을 성사 시키도록 할것.

둘째 조선의 4개도를 베어 내어 일본에게 떼어줄것.

셋째 앞으로는 조선은 일본과 적으로 지내지 말고 친하게 지낼것.

넷째 왕자 한명은 일본에 보내어 살게 할 것.

다섯째 조선 대신중에 대관 몇명을 일본으로 가서 일본에 들여 보내 당분간 볼모롤 있도록 할것.

 

 

 

유정은 가등청정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식인지인지를 판단할수 없을 정도로 짓껄여 대는 말에 귀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무슨 결정적인 말이 그렇단 말인가? 유정의 터무니 없는 조건에 실소 하고서 권율에게 가등청정의 조건을 보고하였다.

 

 

 

"듣고 보니, 가등청정 이라는 자는 소서행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다 똑같은 자들이오. 왜적들이란 믿을수 없는 자들입니다. 도대체 조건이라는게 말도 되지 않는 말들만 하고 있으니...."

 

 

권율은 가등청정의 조건을 듣고 그런자들과의 회담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더욱 확고히 갖게 되었다.

 

10월3일 조정에서는 왕자의 답신을 권율진에게 내려 보내어 가등청정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내용은 가등청정이 지난날 왕자를 도와 준것에 대하여 감사 한다는 내용과 최근의 인사 못한것은 명나라 천자의 명으로 알현 하고 오는 바람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10월5일 조선조정에서는 일본의 가선대부(嘉善大夫)인 유천조신(柳川調信)에게 유서를 보내 그의 주장인 소서행장에게 대마도로 전 일본군을 퇴각 시키고 난 다음에 화의를 논의하자고 통보 하였다.

 

 

권율은 조정과 명나라 당국으로 부터 일본과의 화의를 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실지 회복을 위한 전쟁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예로 조령의 산성을 새로 쌓고 합천에는 유정으로 하여금 승병들 만으로 이숭산성(李崇山城)을 쌓게 하고 장성에는 입암산성을 현감 이규에게 명하여 승장 법견(法堅) 으로 하여금 쌓게 하였다.

말 부족을 위하여서는 경상감사에게 명하여 진주 흥선도(興善島)에 키우고 있던 말을 끌어내어 대비 시키도록 하였고 경상감사 한효순에게는 정병훈련과 동시 총 화약을 최대한도까지 확보할수 있도록 지시하였다.

 

 

 

그외에 독산성과 경상도 영해에도 산성을 보수케 하고 금천땅에도 금지 산성을 쌓게 하였다.

 

권율은 의병이 너무 산발적으로 활동을 하여 통합할 필요성을 느끼고 각 의병의 통합장으로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에게 지휘토록 하였다.

 

 

 

12월 23일 가등청정이 유정을 만나자고 하여 서생포에서 또 만났으나 가등청정은 앞서 5개 터무니 없는 조건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권율은 보고를 받고

"정말로 가소로운 놈들이로다."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한편, 명나라 군은 삼만명이나 철수 시키고 조선에 남아있는 병력은 겨우 1만6천명만 남게 되었다. 조명 연합군의 배치 상황을 보면 성주에 도독 유정군 1만명 삼가에 유격장 송대빈군 2000명 대구에 부총병 오유충군이 5천명 경주에 참장 낙상지군2000명 등이었다.

 

 

조선군은 대구 도원수 권율군, 의령에 경상도 순변사 이빈군, 한산도에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배치 되었다.

권율이 왜군 재침에 대비하여 종사관(從事官) 황여일(黃汝一)과 함께 산성 수축 상태를 확인 하기위해 전라도 정읍군 입암산성을 돌아보고 오다가 소죽엄재에서 잠간 쉬게 되었다.

 

 

고개 아래쪽 주막인듯한 집에서 도원수 일행이 쉬어 있는 줄모르고 주막에서 막걸리를 드는지 떠들석하고 잠시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

강화냐 전투냐 기로에 서서 강화론이 우세한 이 시점에서 군량만 허비 하고 있다가 잘못 하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감만 갖고 있었던 것이 조선 조정의 전부였다.

 

 

 

나라가 이 지경이니 송유진 같은 도적이 의병을 사칭하며 민심을 교란 시키는 사건이 생기지 않을수 없었다.

 

그 말성 많던 명나라 장수 송응창이 경략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 고양겸(顧養謙)이 새로 부임하여 오더니 부지런히 전방을 돌아보았다

 

 

 

명나라에서는 그도 왜군과의 화의가 지지 부진 하자 명나라 대신중 형부좌시랑(刑部左侍郞)손광(孫鑛)을 임명하였다

 

 

 

조정은 명나라 아니면 조선을 구제 할수 없다고 하여 명나라 군대만 믿고 있으니 조선군은 힘을 쓸래야 쓸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평양전 에서 승리로 이끌었 다고 선조와 대신들은 "나라의 재조(再造)가 오직 평양승첩 때문"이라면서 명나라에 대하여 감읍하고 이여송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우고 그를 모시는 는 생사당 까지 짓기로 했다는 기록이 선조실록 35 권에 나온다

 

 

 

조정은 점점 명군이 빨리 종전을 시켜 줄것만 기대 하고 있었다 .

 

 

권율의 이럴수록 명나라가 추구 하고 있는 화의 의 시간을 끌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다.조선군 단독으로 라도 일본군 공격을 해야 한다고 장계를 올렸지만 회답은 일본군을 함부로 건드려 불씨를 만들지 말 라는 회신만 돌아 왔다.

 

 

이유는 조선군은 일본군의 적수가 않된다는 것이었다.

 

 

명나라 강화가 지속되는 상황하 에서 단독 작전은 잘못 하면 큰 일을 그릇치기 십상 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판국에 백성들 중에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왜병들이 남해안 에서 민가에 분탕질을하여 불안한 데다가 조정에서는 명나라 군대를 먹여 살리랴, 조선 관군, 의병 할것없이 전쟁하는 나라 안에서 만 조달 하려니 백성들이 살수가 없었다 거기다 병졸 징발, 군량미 확보 운반 , 부역등 각종 동원에 시달리니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 더구나 명군들도 장기 주둔 하면서 저의 나라에서 군량미는 전혀 들여 올 생각을 않으니 조선 조정의 고민은 이만 저만 고민이 아닐수 없었다.

 

 

 

한편 조선의 지방 방백 수령 들도 명군의 민폐에 편승 명나라 군대를 접대 한다는 명목 으로 백성 들을 수탈 하는 데다가 업친데 덮친 다는격 으로 흉년과 기근이 엄습 민간 반란이 않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임진란은 전쟁 초기 관군의 연이은 패배와 그 와중에 장수 들은 조정의 전쟁 준비 부재로 계속 왜적 에게 쫓기어 병졸들 조차도 장수 들을 믿지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 들은 관군을 불신 차원을 넘어 경멸 하는 단계 까지 와 있었다.

 

 

 

의병을 일으켰던 유생 들도 쫓기 기만 하던 지방 수령 들을 한심한 존재로 여겨 그들을 매도 하기 까지 이르렀다 ,

 

 

송유진이 의병장을 사칭하며 도적질을 한다 하여 토벌 작전에 투입 시키기는 했으나 정작 송유진 자체는 백성 들로 부터 의적 인상을 풍기 겟끔 행동을 하여 조정 에서도 골머리를 앓지 않을수 없었다.

 

조정은 한때 의병 해산령 까지 고려 하였다 .

 

 

대신 그들을 군사 기능 대신 군량미 공급에 동원 시키는 문제 까지 만 국한 하기로 생각 까지 하였다.

 

권율은 조정의 이 방침 에는 반대 하였다 ,

 

 

전란을 통하여 의병과 식음을 같이 해온 권율 로서는 의병의 중요성을 누구 보다도 더잘알고 있기 때문 이었다 ,

 

조정의 시각은 의병이야 말로 골치 아픈 존재로 밖에 보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권율은 명나라와 일본간의 협상의 조건이 서로가 먹혀 들수 없는조건이라는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인가 전투가 다시 일어 날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권율은 지금 의병 들을 김덕령을 의병 통합장 으로 삼아 어느정도 질서가 잡혀 가고 있는 마당에 해체란 있을수 없다고 조정에 장계 까지 올렸다.

 

의병장 들이 유생 이거나 퇴직 관료 출신 소위 재야신료(在野臣僚)들인 의병장 들에 대하여 현직 신료 들은 탐탁치 않게 생각 하고 있었다.

 

 

 

의병장의 대표격 이라 할수 있는 곽재우에 대하여 김성일은 조정의 권위에 도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글과, 전란 초기 곽재우가 왜적과 싸울 생각은 않고 도망만 다니던 김수를 비난하고 그를 처형하라고 주장했던 글을 보아도 양자간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가를 쉽게 알수 있었다.

 

 

 

어쨋든 의병장 들은 근왕을 소흘히 하는 수령 들을 미워 하고 있었고 또 왜란중 관군이나 의병 공로가 서로 경합 할때는 관군우선으로 표창 하였기 때문에 의병장들의 소외감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조정 대신 들은 조선군나 의병들의 공이 지대 한데도 불구 하고 조선을 구원 한것은 그들이 아니라 명나라군 라는 것을 부각 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자기 들이 임금을 의주 까지 안전 하게 호종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을 끌어 들인것이 자기들의 힘이라는것을 부각 시키기 위함 이었다.

 

 

 

따라서 조선군의 위치는 날이 갈수록 왜소 하게 보일수 밖에 없었다.

 

 

권율은 조정의 이러한 태도에 못 마땅한 시각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전란 초기 왜군 에게 패하고 장수들이 도망 친것은 그렇다 치고 군비 하나 제대로 가추지 못하고 무사 안일에 젖어만 있던 조정이 과연 무엇 했느냐는것이었다 .

 

 

 

일본이나 명나라는 일찌기 외국 문물을 받아 들여 조총이나 화약 대포등 최신 무기를 수입하여 장수 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각종 전투 에서 이길수 있었으나 조선의 대신 들은 장수들이 육탄 으로 적의 조총을 막아 내달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임진란 초기의 전투는 조총과 화살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조 28년 을미년 (임진왜란 4년째)조선군의 배치 상황은 아래와 같았다.

 

 

도원수 권 율(權慄)및 진주목사 박정남 함양에 298명

순변사 이 일(李鎰) 장흥에 500명

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배설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 한산도에 6800명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전라병사 이시언, 조방장,곽재우,김해부사, 백사림등 의령에 2332명

경상좌도방어사겸 충청방어사 권응수(權應銖)경상우도병사 ,고언백,조방장 정희현, 경주부윤 박의장등 경주에 3172명

 

 

 

명군은 유격장 진운홍(陳雲鴻)을 웅천에 있던 소서행장과 회담 하게 했고 ,파총(把摠) 장응룡(章應龍)등은 서생포의 가등청정과 각각 회담 하게 했다

 

 

회담 결과는 뻔했다 왜적 들은 조선의 4개 도를 주지 않으면 철수 않겠다는 것이었다.

 

 

 

4 월 17일

명나라에 사신 으로 들어 갔던 일본 사신 소서비(小西飛) 가 심유경과 같이 조선에 들어왔다.

 

 

 

심유경은 영의정 류성룡 에게 일본의 풍신수길 에게 명 황제의 친서를 전달 하러 일본에 갈려고 하니 조선의 신하중 전에 예조 판서로 명나라에 주청사로 들어 간적이 있었던 윤근수(尹根壽)를 수행 할것을 요청 하였다.

 

 

 

조정 에서는 좌의정 김응남과 우의정 정탁을 심유경 에게 보내 윤근수가 전라도 쳬찰사로 나가 있으니 다른 사람을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 하였다.

 

 

이유는 윤근수가 전라도에 나가 있어 불러 올리는 데 며칠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일국의 재상 까지 지냈던 인물을 한낟 명나라 유격장의 수행원 으로 보내기에는 조선의 자존심이 허락 되지 않기 때문 이었다.

 

 

 

이말을 듣던 심유경의 얼굴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윤 주청사를 수행 하게 하라는 석성 병부 상서의 분부 인데 두분 께서 거부 하는 이유가 뭡니까?"

"거부가 아니 오라 윤의정은 지금 전라도 순찰사로 전라도에 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김응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유경은 말을 끊고

"그럼 두분 께서는 병부상서의 말씀을 거역 하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좌의정 김응남이 심유경에게 간청조로 말했다

"그대신 세자 시강원(侍講院) 황신(黃愼) 학사를 추천 하겠습니다 . 그리고 앞서 문서로 보내 주신 석성 상서의 분부는 실행에 만전을 기 하겠습니다 ."

 

 

 

김응남이 말하는 석성의 문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 조선군은 절대 전투 행위를 중지 할것.

2, 왜군 포로에 대하여 소흘히 대하지 말것.

3, 책봉사들이 강화를 위해 자주 두조선을 드나 들 것인 즉 대접에 소흘히 하지 말것.

등이었다

 

 

 

조선 조정은 모두 자존심에 걸리는 조건이 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모두 들어 주지 않을수 없었다.

 

 

 

심유경은 또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전쟁 상태는 아닌데 왜적과의 강화가 더 급하지 체찰사가 뭐 그리 대단 하다고 일본 까지 동행을 못 한단 말이오 .

 

참으로 알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고 봅시다 ,

 

만일 조선군이 아까 약속한 내용중 첫째 사항인 조선군 단독 으로 조금이라도 일본군과 충돌을 이르킨다면 체찰사 부터 책임을 묻기로하고 그 다음 두분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병부상서에게 보고 하겠소"

 

 

순간 김영남과 정탁의 얼굴이 잠시 굳는가 하였으나 금새 표정을 고치고

"그리 하십시요"

하고 흔쾌히 대답 하였다.

 

 

 

심유겸과 대담을 하고 나오며 김응남이

"참 지독한 자요 , 저렇게 융통성이 없는자가 어찌 외교를 하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하고 정탁에게 말하였다

 

 

정탁은 심유경의 맨 나중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대감 , 점심 때도 되고 하였으니 누추 하지만 우리집으로 가 얘기좀 나눕시다 "

이말에 김응남도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합시다"

하고 정탁의 집으로 향 하였다

 

 

 

점심이나오고 정탁과 김응남이 마주 앉았다

"그런데 아까 심유경이란자가 무슨 책임을 지라는것이오니까?"

정탁이 잘 알면서도 한마디 슬쩍 던지었다.

 

 

"왜적과 강화 회담을 하는동안 충돌하지 말라는 얘기 겠지요"

 

" 먼저에도 왜놈들이 먼저 조선군을 정탐 하러 권율군영에 들어 왔다가 사살 당한것인데 왜적들은 이를 두고 풀을베고 있었다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까?"

"하긴 너무 철저 한것도 탈이외다 .웬만한것은 모른척하고 쫓아 보내면 될것을 사살 시켜 버렸으니 .."

 

김응남의 말에 정탁이 반색한다

"허 좌상 말씀이 진담입니까 ? 왜놈들이 영내 침입을 하는데 그냥둘 장수가 어디 있습니까?'

 

"명나라에서 일본군과 충돌하지 말라는데 어찌 하겠소?"

김응남도 만만치 않았다 .

결국은 충돌하여서는 않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김응남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문제가 있소이다"

"무슨 문제?"

"도원수 권율이 문제요,

 

"

"잘만 하고 있는데 그 무슨 외람된 말씀을 ...."

"도원수는 너무 빈틈이 없어요 , 그는 전쟁시기에나 필요한 인물이지 지금같이 강화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엔 솔직이 말해서 골치 아픈 장수 외다 "

 

 

"그래도 임금께서는 그에대한 말만 나오면 대신들이 말을 못끄내게 하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오만 "

두사람 대화는 앞으로 조선군과 일본군이 충돌 할 경우 자기들과의 관련된 책임이 마음에 걸렸으나 방법이없었다.

 

 

도원수가 경주 주둔 조선군 부대를 시찰을 위하여 나섰다 .

 

경상 우병사겸 충청 방어사 권응수가 그를 맞이 하였다.

 

 

 

권응수는 39세때 무과에 급제 진위 장군등 관직에 있었는데 그자리에서 물러나 있다가 임진란이 터지자 의병대장 으로 영천, 학연, 당교 등지에서 왜군을 대파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화공(火攻)의 전문가로서 영천 수복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장군 까지 칭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도원수와는 8살 아래로 임란을 맞이 한후  기탄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감사 시절보다 어려운점이 많으시지요"

"도원수라는 자리는 좀 애매 하군 ,작전을 일일히 도체찰사와 맞추려니 오히려 더 힘드는것 같아. "

 

"그러시겠지요

 

그래서 옛말에 죽는건 조조 군사 뿐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군사 작전권 만큼은 무관인 군인 들에게 맡겨야지 문관인 도체찰사가 너무 작전에 간섭 하기 때문에 원수가 할일의 범위가 너무 위축 되는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지. 쇠뿔은 단번에 빼라는 말이 있지만 왜적을 몰아내려면 지금이 적기인데도 명나라는 시간만 끌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야"

 

 

" 조심하셔야 합니다, 명군이 하는 일이나 조정을 함부로 비난하다가는 무슨 트집이 미칠지 모릅니다 "

 

이 일로 송대빈이 조선 도원수를  좋게 볼리가 없었다.

 

명나라 장수 송대빈은 조선에 나온 장수중에 풍류를 좋아해 도대체 전쟁을 하러 온것인지 유람을 하러 나온 인물인지 모를 정도로 진주성에서 조선군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술자리만 지키고 있던 위인이었다.

 

 

그가 남원성 남쪽에 있는 광한루에서 술자리를 벌리고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는 조경남의 난중 잡록에도 남아 있다

 

戰罷歸來倦綺樓洗兵飮馬大溪頭....이하 생략(싸움 끝내고 돌아와 광한루에앉아 시냇물에 칼을 씻고 말을 물마시게 하니,,,)

 

 

 

송대빈은 권율에 대하여 독산성 과 행주산성의 명장임을 누구 보다도 더잘알고 있었다.

명조정까지 잘알려진 조선의 장수이니 그로서도 권율의 약점을 잡지 못한 이상 무어라 흠잡을수 없는 인물 이라는 것으로, 함부로 대할수 없다는것도 잘알고 있었다

 

 

 

악연의 두 인물,송대빈과 권율이 1년만에 다시 만난것이다

 

 

권율은 인사 정도만 나누고 원수부가 있는 함양으로 말 머리를 몰렸다.

 

종사관 이경함(李慶函)이 말한다

" 명진영에서 나올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명군 복장의 군관인 듯한 자를 보았는데 꼭 김응양을 닮은자를 보았습니다"

 

 

하고 말하자 권율이 김응양이란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누구라고? , 그러면 그때 바로 말하지 확인 해보아야 할것 아닌가? "

"그래도 그자인지 를 정확치 못해서 지나쳤습니다 . "

 

 

"늦지 않았어 갑사 몇명을 대동 하고 가서 그 자가 확실 하다면 체포해오게"

"명나라 진영인데 잡아 와도 될가요?"

"조선군에서 탈영하여 도망 다니는 군관을 조선군 도원수가 잡아 가는데 누가 뭐래? 누가 뭐라 하면 도원수가 지시 했다 하면 될것아닌가?"

"예, 알겠습니다."

 

 

이경함이 수행 갑사 수명을 데리고 오던길로 되돌아 명진영으로 향하였다

 

 

이경함이 명나라 진영에 도착 아까 보았던 장소에서 명나라 사병에게 물어 보았다 .

" 우리는 조선군 권율 장군을 모시고 송장군을 면담차 온 병사들인데 이제 끝나고 돌아 가려던 참이오, 그런데 조선군 군관 한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좀 알려주시오 "

하고 묻자 명나라 병사가 말한다

"조선사람이 몇명 있는데 찾으려는 사람 이름이 무엇입니까?"

"김응양이란 사람인데...."

"아 조선 군관 말씀이요? 저기 입니다"

김응양이 있다는 숙소를 가르켜 주고 명나라군 사병이 사라 졌다

김응양이 있는것이 확실 했다 .

 

 

 

조선군 갑사 네명이 번개 같이 뛰어 들어가 체포하여 나오자 졸지에 잡힌 김응양은 체념 한듯 끌려 나왔다.

 

 

벼란간 소란한 소리에 놀라 나온 명나라 장수가 당황 하여 묻는다

"이게 무슨 짓이요 "

이경함 에게 항의 하자

"이자는 조선 군관으로 군기를 어지럽히고 탈영하여 도망 다니는 수배중인 탈영 군관 이오

 

우리 도원수 명에 의하여 체포하여 가겠으니 그리 아시오"

하고 김응양을 결박 하고 끌고 가려 한다

 

 

 

명나라 장수 가로 막는다

"잠간만 그래도 우리 대장께 보고는 드리고 잡아 가야 하지 않습니까?"

"대장 께서도 군무를 이탈한 탈영 조선 군관을 우리 도원수 께서 체포하여 가겠 다는데 별 이의가 없으실것입니다 . 보고나 하시오 ."

하고 김응양을 권율 앞으로 끌고갔다.

 

 

 

보고를 받은 송대빈이 헐레 벌떡 뛰어 나왔다.

"장군 , 어찌된 일이오니까?"

 

권율이 말한다

"송장군, 이 자는 조선군 을 무단 이탈한 도망다니는 탈영 범죄자로 수배중이었던자 입니다 제가 이 자를 체포하다가 국문 하겠습니다. "

 

 

"장군 김응양이 무슨 죄가 더 있는지 모르나 조선군을 탈영하여 이탈 한것은 큰죄 이긴 합니다만 제 얼굴을 보아서 돌려 주실수 좀 없겠습니까?"

이상 하리 만치 송대빈이 김응양을 감싸며 놓아 줄것을 간청했다 .

 

 

"장군 제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이 자는 군무 이탈 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중죄를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자입니다 ."

 

권율이 놓아 줄이가 만무였다 .

 

권율은 김응양을 포박 한채로 말에 태워 뒤도 안 돌아 보고 떠났다 .

 

 

 

함양에 돌아온 권율은 부하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김응양을 국문하였다.

 

김응양은 체념 한듯 모두를 시인하고 조선의 작전 계획서류는 빼돌리지 않았으나 내용은 소상히 송대빈에게 알려 주었다고 실토 하였다 .

 

 

조선군의 비밀이 모두 명나라에 새어 나간것이다

 

그나마 왜적에게 도망 안 간것 만은 천만 다행이었다.

 

 

 

권율은 두 눈을감고 깊은 생각에 한 동안 잠겼다

일벌 백계를 위해서라도 엄한 처벌을 가하지 않을수 없었다

"참살(斬殺)형에 처하라 "

 

 

김응양은 여러 장수들 보는 앞에서 참살형을 집행 당하였다

 

 

 

송대빈은 김응양을 목 베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 하지 않을수 없었다 .

 

자기에 체면도 체면 이었지만 권율의 전격적인 조치에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김응양의 말만 믿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선군 단독으로 일본군을 몰아 내기 위한 비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명나라 황제에게 보고 했기 때문이었다 .

 

 

 

분명히 명군 수뇌부에서는 권율의 독자 작전 여부를 확인 할것므로 권율이 그 사실을 부인하면 그 사실을 입증할 당사자가 없어저 버렸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허위 보고자로 될 판이니 큰일이었다

 

 

 

송대빈이 잔꾀를 연구 했다.

죽은 김응양의 아버지를 불러 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이 도원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개 하고 있던 아버지는 송대빈이 부르자 그에게 나왔다.

 

"어르신 .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도원수 라지만 죄없는 아드님을 저렇게 죽이다니.."

짐짓 위로 하는척하며 권율에 대한 적개심을 부축였다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

하고 부친이 울먹이자

"어르신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요 , 수일 내로 전라도 체찰사가 이곳을 방문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그분 에게 어굴 하다는 말을 해 주십시요 , 그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 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송대빈의 음모가 시작 된것이다.

전라도 체찰사 윤두수가 송대빈 진영을 방문 한것은 이틀후였다.

 

 

송대빈이 전에 없이 친절 하게 굴었다.

"어서 오십시요 윤 체찰사님 "

"송대장 께서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년 숙성령(宿星嶺)전투때 공적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윤두수의 칭찬말에 어깨가 으쓱하여

"별 말씀을 모두다 체찰사 어른이 도와주신 덕택이지요 "

하고 덕담을 나눌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여 왔다

 

 

각본대로 김응양의 아버지가 윤두수가 나타 날 때를 맞추워 나타난것이었다

 

 

송대빈이 짐짓 놀라는척하며

"게 무슨 일로 밖이 그리 시끄러운고?"

"웬 나이 먹은 노인이 나타나 장군을 찾아 뵙겠다고 합니다."

"들라하라"

명나라 군사가 한 노인을 데리고 들어 왔다 .

 

 

"무슨일로 노인께서 이렇게 오셨습니까"

하고 송대빈이 시침이를 떼었다 .

 

 

 

노인은 두 사람다 들으라는 듯이 번갈아 보며

"세상에 이럴수가 있습니까? 조선군 도원수 가 내 아들이 아무런 죄도 없는데 잡아다 참살 하였는데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고 노인이 하소연 조로 호소 하자 송대빈은

"도원수가 죄없는 아드님을 함부로 죽이다니 무슨 말씀 입니까?"

하자

"내 아들은 원수부에 군관 으로 성실히 근무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고향 근방인 송장군 밑에서 근무하게 되어 잘 되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없는 그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이런 어굴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설명하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옆의 윤두수가 이말을 듣고 있다가

" 금방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하고 묻자 송대빈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아무런 이유 없이 조선군 원수부 에서 잡아다 죽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않 되겠지요 오늘 급한 일로 급히 상경 할것인즉 제가 조정에 가면 알아서 조치 하겠습니다 "

 

윤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대빈 의 눈짓으로 병사가 노인을 데리고 나갔다

 

 

송대빈은 때가 이때라는듯

"들으셨죠?, 권원수는 일에 융통성이 없어요,군사들을 통솔하는데 빈틈을 주지 않고 왜군과는 협상이란 있을수 없다며 전쟁 준비에 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먼저는 내가 남원 부사와 술 한잔 했다 하여 부사에게 곤장 까지 친일이 있어요"

송대빈은 권율을 헐뜯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윤두수는 대꾸할말이 없었다.윤두수는 권율을 누구 보다도 더 잘안다 .권율이 광주 목사로 참전 하여 이치 전에서 의 대승을 기회로 전라감사로 추천한것도 자기였다

 

그런 그가 요사이 유별 나게 조정 대신들이나 명나라 장수들 입에 오르 나리고 있었다

 

강직한 성격 때문이 었다.

 

 

윤두수는 잘 못하다가는 백전 불패의 장수 하나를 희생 시킬지 모른다는 생각 에서 이문제는 공식 거론만은 않고 임금과 독대 알현시 참고 자료로 보고 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무말 없이 앉아만 있는 윤두수가 못 미덥던지 송대빈이 초조한 빛을 띄우자 유두수는

"알겠습니다 , 제가 내일 이 사실을 보고해 적절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하였다

 

 

송대빈은 이말에 답답한 마음이 뚫리는것 같았다.

권율이 한성 판윤(지금의 서울시장) 으로 발령 받은것은 선조 28 년 10 월9 일 이었다

 

 

국내적 으로는 이산해가 가 대제학이 되었고 , 4 개 도에 체찰사제도를 부활 했으며 해주에 있던 왕비가 서울로 돌아 오기도 했다

 

 

대외적 으로는 왜국과 명나라가 회담이 결열 되어 다시 전쟁 의 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다.

 

 

선조는 권율에게 한성 판윤직에서 다시 호조 판서로 발령을 내었다

 

측근에 그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권율에게 비변사 당상을 겸직 하도록 하였다

 

선조는 군사에 관한 중요 사항은 병조 판서 보다도 오히려 권율의 자문을 받기도 했다

 

 

 

권율은 그동안 젊었을 때 닦아 놓은 학문과 무예를 마음껏 누려보는 한가로움 가지 갖게 되었으나 마음 한 구석은 전선에 가있었다

 

 

권율은 솔직이 임진란중 사생활다운 사생활을 한번도 누려본적이 없었다 .

 

 

전쟁 터 에서 반생을 보낸 그는 이제는 환갑 나이 가까이 되어 부인 조씨와 지내는 터 이지만 그에게는 이렇게 지내기는 무료한 날 일 뿐이었다.

 

도원수도  이제 늙어서 자식은 꿈도 꿀수 없이 되었다

 

 

 

전쟁터 에서만 보낸 덕(?)에 그에게는 전쟁전 출생한 고명 딸 하나뿐이었다 .

 

그딸도 병조 판서로 있던 이항복의 아내 로서 전쟁중 친정 어머니 조씨를 의주로, 피난을 다니는 일은 모두 딸과 사위 이항복이 맡았다 .

 

 

 

도원수 로서는 임진 왜란 이라는 국란이 딸 하나로 만족 해야 했고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낳지 못 했으니 그야말로 나랏 일에 바빠 자신의 사생활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 할 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동안 전쟁과 함께 사느라고 재산 챙길 시간도 없었다 .

 

 

 

때약볕이 쨍쨍 내려 쪼이는 여름 날 이었다

선조가 긴급한 일로 조정 대신 들을 모두 소집 하였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기에 권율은 부지런히 입던 옷 그대로 겉에다 조복을 걸처입고 급히 대궐로 입궐하였다.

 

회의 내용은 명나라와 왜국 간에 강화 회담 결열에 대한 대책 회의였다

 

 

대궐은 아침 부터 찌는 듯이 더웠다 ,

 

회의를 하고 있는 대신들의 조복을 모두 걸친 이마 에서 구슬 같은 땀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러한 대신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 소리만 대궐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 댔다 .

대신들의 몸둥이 에도 땀이 배었 으나 어전 인지라 감히 조복을 벗을수도 없고 회의가 아침에 끝나기를 기다렸 으나 회의는 예상외로 길어지었다.

 

 

병조 판서로 있다 지금은 이조 판서로 있는 이항복이 용기를내어

 

"전하,회의가 오래 갈것 같사 온데 황공 하오나 조복이 땀에 젖어 몸 둘바를 모르겠사오니 조복을 벗 도록 윤허 하심이 타당한줄로 아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항복에 말에 그제서야 임금도 자기가 거기 까지 생각못한것을 생각하고 웃으며

"허... 좋은 생각 이오 과인도 그렇게 생각 하오 조복을 벗고 군신 일체가 되어, 허심 탄회 하게 회의를 하도록 하시오"

하고 모두 벗게 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신 들이 이항복의 재치있는 건의에 조복을 벗기 시작 하였다

 

,임금은 조복 뿐만 아니라 목화(신)까지 벗게 하였다

 

 

그런데 권율은 조복을 벗을 생각을 않고 서있기만 하였다

"아니 , 권판서 께서는 어명 이신데 왜 안벗으시오?"

하고 다른 신하가 조복 벗기를 권고 하였으나 통 벗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

 

 

임금도 의아하여

"권공은 왜 조복을 않 벗으시오? 어서 벗으시오"

 

"예 별로 덥지 않아서......"

하고 얼버 무리자 선조가

"별로 덥지 않으시 다니 ...사양 말고 벗으시오"

하고 한번 더 권고 하였다

 

 

" 황공 하옵니다"

"........."

권율이 아주 난처한 표정을 계속 지었다.

 

 

재촉에 못이겨 권율이 조복을 벗기 시작 했다

 

 조복을 벗자 모두 그의 행색에 처음에 놀라고 한편에서는웃는 소리 까지 나왔다

 

 

 

그의 행색은 조복 안에 입는 베 두루마기는 아예 걸치지도 않았고 헌 등거리와 잠뱅이 차림의 가당치 않는 옷차림에 신발은 버선도 신지 않은 상태 였다

 

 

 

어전에 들어 오는 대신의 행색 치고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옷차림이었다.

 알굴을 어쩔줄 몰라하며 고개를 푹숙이고 죄인 처럼 서있기만 하였다 ,

 

 

이 광경을 본 이항복이 당황 하였다 ,

 

장인 에게 망신 주자고 한것이 아닌데 결과가 잘못 된것이다.

 

 

선조는 이 모습을 모른척 하고 회의를 계속 진행 하고 끝내 었다.

회의를 마치자 신하 들이 조복을 다시 입었다

 

 

이항복이 나서서 임금 에게 또 아뢰었다.

"전하 회의 도중 신들의 조복을 벗게 한 무례함을 용서 하여 주시옵소서 장인 어른께서 는 어지러운 난리통 에 전선으로만 동분서주하여 다니셨던 관계로 가사를 돌볼 시간이 없어 조복 한벌 입으실 변변한 베 두루 마기 한벌 못해 드린 신의 불찰이 아닌가 하옵니다 용서 하여 주시옵 소서"

 

 

하자 선조가 미소를 띄우며 인자한 얼굴로

"허,,, 과인이 불찰 이오 , 저 토록 전선을 동분 서주 하며 고생한 충신을 베필이라도 진작 내려 배려 했어야 하는것인데 푸대접했으니 모두가 과인의 허물 이오 도승지는 권공 에게 베 열필을 내리도록 하라 "

하고 즉석 에서 하사 하였다

 

 

왜란은 권율 에게서 개인 생활을 모두 빼았아 갔다 .

 

남들 처럼 모아 놓은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더구나 군인의 사생활은 전시중에는 생각 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다 .

 

어쨋든 그의 반생은 조선을 왜적으로 부터 막아내고 그들을 조선에서 쫓아 내는 일로 거의가 채워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조 29년 병신년 새해가 다시 시작 되었다.

 

 

조정은 밝지 않았다.

내우 외환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가까이 닥아 오고 있었다.

 

 

백성 들이 농사를 지을 틈도 주지 않은 데다 조정 에서는 남자들을 보면 무조건 전선으로 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후방 에서는 언제 왜적이 다시 침공 할지 모르는 상황 하에서 일 손이 제대로 잡힐리 만무였다.

 

 

군대를 기피한 장정들은 수시로 잡으러 오는 나졸 들의 눈을 피하여 산속 으로 피신하여 도둑 으로 변하여 있었다.

백성들 중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도둑질 하다 나중에는 왜군 행세 까지 하려고 왜군 복장을 입고 민가를 습격 약탈 행위를 일삼는가 하면서 또 한편 으로는 의병 행세를 하기도 하여 약탈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선조는 왜국 사정 보다 국내 사정에 대한 좋지 않은 비변사의 보고를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전선은 언제 다시 적들이 처들어 올지 모를 긴박감이 팽배 해 있었다.

 

 

지금 최 전선을 담당할 장수 다운 장수가 없었다 .

 

후방은 후방대로 불안감이 떠나지를 않았다

 

 

 

선조는 뒷 뜰에 핀 부용화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권율을 다시 도원수로 내 보내는수 밖에.....)

 

선조는 최 전선을 맡길 만한 장수로서 권율을 다시 찍고 있었던 것이다

 

권율을 다시 총사령관을 맡기자니 대신 들의 거센 반발을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당장 급한것이 민심을 바로 잡는것도 잡는 것이지만 당장 적들이 언제 다시 처들어 올지 모를 상황 하에서 우물 쭈물 할때가 아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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