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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신부들과 조선인 신자들의 대량 학살 사실을 보고 받은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오스는 북경 주재 프랑스 공사 베로네 에게 알렸고 베로네는 프랑스 본국에 보고하였다 .
프랑스 공사 베로는 발 빠르게 청나라 조정에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조선에 선교활동을 나갔던 신부들의 학살 사건을 조사 하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견 할 것이니 신분 보장을 하여 달라고 부탁 하였다 .

청나라 정부 외교 책임자인 공친왕은 이를 거절하였다
"조선 이라는 나라는 원래가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요 . 그런 곳에 가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니 반발 할수 밖에 없지요 .그런 청은 들어 줄수 없소이다 ."
이 사실을 보고 받은 프랑스 정부는 조선의 버릇을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1866년 8월 12일 경기도 남양만에 군함 두척을 보내어 강화도 쪽으로 시위를 하기로 하였다 .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출현은 조선 왕국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그동안 대원군의 서슬이 시퍼런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날에 큰 소리도 내지 못하던 조정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
더구나 프랑스 공사에게 조선 조정에 대한 압력을 거부 했던 청나라가 프랑스 군함이 조선으로 향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우호적인 뜻에서 이소식을 알려 왔다 .
이 서한이 걸작이었다 .

"조선에 알리노라 , 조선은 대 청국의 신하국으로서 외국인을 네명 씩이나 죽이는것은 외교상 보통 문제가 아니거늘 이런 중대한 문제를 사전 보고 해야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조치는 외교 관례를 무시 하는 것이다 .프랑스 신부들을 죽인 적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 그런연 고로 프랑스 함대가 조선으로 떠났으니 조선은 심사 숙고하여 대처 하기 바란다 "

이 글을 받자 대원군의 얼굴이 편할리가 없었다 . 아무리 독한 이하응이라도 청나라 북경 까지 침공 했다는 프랑스 함대가 아니냐?
더구나 개혁 이라는 칼날이 하찮은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도 얼마쯤 죽이었다고 무디어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
"국내 사건을 가지고 청나라가 미리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간첩이 있어 . 이놈들이 안동 김가들이 틀림 없어 "

대원군은 천주 교도 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도 엉뚱하게도 안동 김씨들을 들먹였다 .
조정내 분위기를 천주교와 안동 김씨 세력을 들먹여 잠재우기 위한 술책이었다 .
자기의 천주교인 학살 사건을 물 타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기도 했다 .
이렇게 대원군이 내부 단속을 하고 있는 동안 프랑스 함대는 어느 새 팔미도 쪽에서 배 한척이 암초에 부디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었다 .
조선의 지리에 어두운 탓이었다 .

프랑스 함대는 암초에 걸린 프리모호만 남기고 기함 탈티프호와 데블드 호만 한강을 거슬러 올라 갔다 .
프랑스 함대는 어느새 행주산성을 지나 서강 입구에 까지 들어왔다 .
이제 남은 것은 조선 정부가 굴복하느냐 아니면 싸우느냐 하는것 밖에 없었다 .
프랑스 함대 사령관은 조선의 심장부에 대포 몇 발만 쏘아 대면 승패는 결정 되게 이미 되어 있다고 생각 하였다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한강 뚝에 수 많은 백성들이 나와서 이상한 배를구경 하느라고 구름 떼 같이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 .
이런 판국에 대궐안의 임금과 왕비는 마냥 한가롭기만 하였다 .
어린 고종에게 왕비가 걱정을 하였다 .
들은 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
"서양배가 마포까지 들어오면 궁궐이 위험하지 않을가요?"
왕비는 어른스러운 얼굴로 고종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하였다
"중전 , 너무 걱정마시오. 별일 있겠소 아버님께서 알아서 하실 터이니 걱정 마세요 "
"............."
시아버지가 조정을 잘 이끌고 있다는 말을 듣고있는 영특한 왕비도 이제는 민씨집안의규수가 아니었다 ,
엄연히 어린 나이 지만 한 나라의 국모였다 .

고종은 프랑스 함대가 천주교 학살을 이유로 파견 된 프랑스 함대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
" 그자들이 돌아 가지 않으면 어쩌겠소? 그냥 돌아 가겠지요"
고종은 너무도 몰랐다 .
어린 왕비는 왕비로 간택 되기전에 사서 삼경을 읽고 대학을 이미 마친 여자였다 .
왕비는 프랑스 함대가 왜 나타났는지를 구중 궁궐에서 알턱이 없지만 상궁을 통해서 어렴풋히 얘기는 듣고 있었다 .

(서양 사람들이 머나먼 바닷길을 헤치고 마포 강가에 까지 왔다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그냥 관광차 들린 배는 아닐거야)
"전하,서양인들이 그냥 들어 올리가 없을 터인데요"
"걱정 마시오 , 설사 우리에게 해꼬지 한다 해도 우리에게는 방비가 철통 같이 되어 있어요"
한편 한강에 깊숙히 들어온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오즈 제독은 강심이 고르지않은데 다가 강화도의 암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프리모호의 동향도 모르겠고 사방을 둘러보니 강뚝 저쪽으로 산으로 둘러 싸여 완전히 포위된 느낌이 들어 불안 하기 짝이 없었다 .

게다가 리델신부가 재촉 하는 말에 싫증이났다
"로오즈 제독 , 이곳 까지 왔을때는 우리가 청나라를 압박 할때 모양으로 조선왕국에압력을 가하여 선교 활동을 보장 하려 온것 아닙니까? 대포라도 쏘아서 위협을 가해 보십시요. 반드시 협상하려 들것입니다 "
그러나 로오즈 제독은 리델 신부의 생각과 달랐다 .

조선을 포격하고 사죄를 받았으면 얼마나 좋겠나만은 아무래조 포위된 느낌이들어서 선제 포격에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
잘못하여 포격으로 실수 하는 날에는 자기의 위치는 파리 목슴이다 .
(아니야 ,우리가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어)
로오즈는 사태가 불리하다는것을 믿자 부관을 불러 철수령을 내린다 .
우선 강화도에서 좌초된 배를 빨리 빼어야 한다
.
(포격을 가했다가 오히려 우리가 당하는경우에는 우리는 모두가 희생이 된다 .기왕에희생된 신부들 목슴이 아니냐? 지금 이 신부들이내 내 목슴과 자리까지 보장해 줄것이냐?")
로오즈 사령관은 리델 신부의 조선 조정을 문죄하고 선교 활동 보장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을 물리치고 철수령을 내렸다 .
"철수하라"
날카로운 명령이 하달되었다 .
드디어 육중한 함정이 한강 하구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이때까지 프랑스 함대를 눈여겨 보고있던 훈련대장 임태영 옆에있던 군관이 말한다 .
"저놈들이 우리가 무서워 도망칩니다 "
"......................"
사실 임태영은 겁이나있었다 .

프랑스 함대가 포사격이라도 하면 도망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군에게는 프랑스 함대에 대항 할 만큼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즉각 운현궁으로 향하였다 .
프랑스 함대가 물러 갔다는 소문은 금방 온장안에 퍼지었다 .
" 청나라에서도 못 막은 보국함대를 우리 대원위 합하가 막아 내었대"
"정말 우리 대원위 대감 아니면 누가 막아 내겠는가?"
온통 대원군 칭송으로 장안의 화제였다 .
대원군은 싸움한번 않고 프랑스 함대가 물러 난 것에 대한 반응이 돌아오자 헛기침을 하고 훈련대장에게 영을 내렸다 .

"허허허, 제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래도 방심 할수는 없지....훈련대장은 추호도 방심 말고 군비를 튼튼히 하라 "
그런데 대원군의 만족 스러운 모습은 잠간이었다
즉 강화유수 이인기로 부터 급보가 들어 온것이었다 .
사연인즉 쫓겨 간줄 알았던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상륙 했다는 것이었다 .
결국 강화도는 점령 당하고 말았다 .

대원군 이하응은 중신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치었다 .
"이어려운 때를 당하여 강화유수 이인기는 막중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싸우지 않고 도망 치었으니 이런일이 았을수 있소? 오늘자로 강화유수 이인기와 중군 이용희를 파면하도록하오 ,그리고 형조에서는 그자들을 잡아 들이도록 하오, 아울러 이자리에서 강화 유수에는 이장렴을 , 중군에는 박희경을 임명하니 바로 부임하게하라 "
하고 큰소리로 명령하였다 .
모두가 조용하였다 .
이하응은 자기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슬며시 고종을 바라 보며 묻는다 .
"전하,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종에게자기 말을 반 강제로 추인 받으려는 태도였다.
고종이 대답하였다
"대원위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요 "
이날 강화도 통진에도착한 이용희는 강화도에서 물러 가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변무사 지흥관을 통하여 프랑스 사령관 로오즈에게 보내었다 .
로오즈는 이 서한을 받고 코 웃음을 치었다 .
그는 회답을 보내었는데 내용은 선교사들에게 포교 활동을 인정 할것을 요구하는문서였다 .
대원군은 코방귀를 꾸었다 .
"건방진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조선 정부에서는 강화도에서 도망나온 병사들을 포함하여 총병력 6천명이나 동원하여 대대적인 방어에나섰다
대원군 이하응이 앞에는 거칠것이 없었다.

드디어 강화화도와 맞은쪽 문수산성간의 새로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은 김포 땅에있는 문수 산성을 공격하여 서울을 공격 할 채비를 세우고 공격에 들어갔다 .
양쪽의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 지었다 .
이번에는 공격하는 프랑스군이 쉽지가 않았다
김포는 강화도와 달랐다.
싸움결과는 프랑스군이 불리하였다
철수령이 내리어 지었다
조선측에서 사상자사 3 명이 발생하고 프랑스인도 2 명이죽었다.
문수산성 싸움은 프랑스의 철수로 곧 이어지었다 .

정족 산성에 숨어 있던 조선군이 철수 하는 프랑스군을 덮쳤다 .
프랑스군은 이제 돌아 가는 것 밖에 대책이 없었다 .
강화도를 철수 한 것이다 ,
이 사건을 병인 양요라고 한다.
이 사건도 대원군 칭송으로 이어지었다 .
이하응의 콧대는 더욱 높아지었다
프랑스군의 철수도 대원군의 철저한 방어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의무역선 제너럴 셔먼호가 무역선답지 않게 무장을하고 평양까지 들어와서 장사를 하자고 하였다 .
미국의 상선 제너렬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들어왔을 때 마침 프랑스의 군함이 내침할 것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관원들은 전전긍긍하며 긴장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셔먼호가 평양 경내에 정박하는 것을 보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셔먼호에 사람을 보내어 평양에 온 목적을 물어보았다.

선교사 토머스는 백인들의 국적을 소개하고 내항 목적에 대하여서는 상거래뿐임을 강조하며, 그들이 가져온 비단·자명종 등과 쌀·사금·홍삼·호표피 등과의 교역을 제의 하였다.
그러나 서양 선박의 내항과 통상의 요구는 당시의 국내 사정으로 미루어 조선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또한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절되었고 그들에게 즉시 출국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셔먼호는 끝내 거부하는 조선의 이현익을 붙잡아 감금시키기 까지하였다 그들은 조총과 대완구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돌팔매나 총으로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셔먼호가 양각도의 모래톱에 선체가 걸려 꼼짝못하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셔먼호를 불태우고 격침시키었다 .

후에 이것을 응징한다며 .미국 정부는 군사를 동원하여 손돌목과 광성진을 점령하였다.
조선 군사가 400명이나 죽었다.
처음에는 미국도 강화도 점령을서둘렀으나 국내 사정으로 포기하고 물러갔다 .

이두 차례에 걸친 외국과의 충돌에서 외국군들이 자진 철수하자 대원군 이하응은 자신만만 하였다 .
그런데 이러한 자만에 빠저 있던 그에게 치욕적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
독일인 옵페르트 라는 자가 조선정부에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충남 덕산에있는 대원군의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다가 도망친 사건이 발생하였다 .
"이런 불한당 같은놈들이있나?"

이하응은 서양인들이라면 이를 갈았다 .
그는 백성들에게 힘을과시하기 위하여 전국에 비석을 세웠는데 서양에서 쳐들어왔을때 싸우지않고 화친하는것은 나라를 파는것이다(洋夷 侵犯非戰卽禍 主和賣國)라는 주문과 그 다음 작은글자로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 적었다.

이하응은 아집에 빠저 세계 정세를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
당시 국제 정세는 열강의 제국주의 확장으로 인해 세계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청나라를 굴복시키더니 한반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으며, 불응 하는경우에는은 무력도발도 서슴치 않으려 했던 세계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일본은 약삭 빠르게 이 외세를 받아 들여 서양국과 교역을 하며 그들과 어깨를 겨누려는속셈으로 내실을 기하고 있을때인데도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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