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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내 세우는 소위 내정 개혁 목표는 왕권을 강화하여 왕실의 위엄을 되찾고 그 뿌리를 더 공고히 하여 자기가 야인 생활을 할때 안동 김씨들로 부터 뼈에사무치게 멸시 받던 과거의 한을 푸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그는 우선 안동 김씨들을 몰아 내고 지금 까지 이씨 왕족들은 정사에 관여 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을 빼고 공공연히 그들을 적극적으로 조정에 끌어 들이면서 그동안 괄시 받던 남인계열의 사람들을 등용 하였다
그동안 안동 김씨들을 비난하던 색갈과는 무색 하게도 이씨 일색과 남인 일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

말이야 평등한 인재 등용을 한다고 했다 ,
그러나 이씨 왕족 친인척들과 자기와 친분있는 자들 일색의 조정 구성이 이 어디 공정하고 평등한 인재의 등용이라고 할수 있는 것인가? 그런점에서 사람과 방법만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안동 김씨들 세도 정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조두순의 이항로 발탁을 거부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조두순이 천거한 인물 조차 무시한 사건(?)을 두고 영의정 조두순은 허수아비 일 뿐이고 대원이 대감을 통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안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었다 .

이러한 소문은 이하응의 귀에라고 안 들어 올리가 없었다 .
그이야기는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의 입을 통하여 조대비에게 전해 지었다 .
조대비는 흥선 대원군에게 모든 권력을 맡기었지만 이씨 왕족들 일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에는 귀가 가렵지 않을수 없었다
조대비는 흥선 대원군을 불렀다
"대원군께서 나라 정사를 바로 잡느라고 수고 많으세요"
조대비는 흥선 대원군의 얼굴이 옛날과 달리 화색이 만면 한것을 보니 믿업기도 했지만 걱정 스럽지 않은 점 없지 않았다 .

"대왕 대비 마마께서 수렴청정을 잘 해 주신 탓이지요"
흥선 대원군도 겸양지 예의를 잊지 않았다 .
조대비는 이때다 생각 하고 입을 열었다
"듣자니 조정을 개혁 하시느라고 수고 하신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만 조정 인사가 왕실 친 인척과 남인들 위주로만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던데요 .그래도 괞찬겠습니까"
난데 없는 조대비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하응은 잠시 당황하였다

하지만 조대비의 말에 끄떡할 이하응이 아니었다 .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왕권을 강화하여 왕실의 위엄을 되찾고 그 뿌리를 바로 세우며,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등용하여 개혁을 하자는 인사였는데, 무슨 말씀 이온지..."
" 듣자니 영의정이 천거한 사람 조차 등용을 안 시키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대감만 하는 것이 개혁이고 영의정이 하는것은 개혁이 아닙니까? "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조두순이 얘기가 나오자 이항로 생각이 단번에 떠올랐다
(조 대비가 어찌 알았지?)

흥선 대원군은 조두순이 설마 조대비에게 그런말을 고자질 할 사람은 아니고 분명히 조대비에게 자기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리는자가 있는 것 같아서 잠시 불쾌하였다 .
하지만 이하응은 금방 생각을 바꾸었다 .그 보다 조대비의 말 보다도 더한 김씨들의 횡포에도 수모를 이겨 온 그였기 때문이었다 .

(그래, 아무리 뭐니 뭐니 해도 왕실의 제일 웃 어른이 조 대비가 아니드냐? )
그는 상가집 개 노릇이나 궁도령 시절의 변신을 수없이 변신 해 온 명수였다
"대왕 대비 마마 , 영의정 이라면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했는데 영의정의 하는 일을 임금 이외 누가 말린다는 말씀 입니까?"
"그래서 하는 말씀 이외다 "
일인 지하 만인 지상이란 글자그대로 임금의 말을 받들어 백성읃 다스린다는 영의정에대한 의정(議政)의 지위를 말한다 .

아들이 왕에 올랐지만 아직 까지는 수렴 청정권을 부여 받은 사람은 엄연히 조대비다.
조대비 말대로 라면 대원군이란 한낟 임금의 아버지 일 다름이다 . 그렇다면 나이가 어린 왕을 수렴청정 하는 조대비가 임명한 의정의 모든 권한은 영의정이 갖어야 옳다.
흥선 대원군은 이럴 때는 약삭 빠른사람이다 .
"대왕대비 마마 , 혹시 이항로라는 인물건이 아니온지?"
"이항로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 인지는 모르나 듣자니 중국의 나흥순이라는 사람의 우주론을 반대 하고 조선만의 이기 이원론을 주창하여 존왕양이의 춘추대의의 윤리관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소 .듣기에 이항로라는 사람은 나이도 70을 넘은 학문과 덕행이 출중한 사람인 모양 인데 내가 그가 지었다는 심합 이기설을 잠간 어제 읽어 보았는데 정말 동감이 갑디다 .

그 책 내용을 잠간 읽어 보았는데 임금 사랑 하기를 아버지 처럼 하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집 처럼 하라는 대목에서는 정말 나라사랑과 자주의식을 일깨우는 문구여서 앞으로 임금이 정치를 한다는데 귀감이 될만한 분이외다 "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조대비가 많은 책을 읽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런 국내외 서적 까지 읽고 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까짓 중국의 나흥순 이라는자의 우주론은 무엇이며 심합 이기설은 무엇이냐?
흥선 대원군은 그런 이론을 알턱이 없을 뿐아니라 알 필요도 없었다 .
그는 그렇지 않아고 야인 시절 전국에 흩어저 있는 서원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론은 부처님 공념불 보다도 못하다고 생각 하고 있는 그였다 .

하지만 조대비는 구중 궁궐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한낟 아녀자로만 알았는데 그런 책까지 읽고 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그는 조대비가 공리 공론에 물든 것은 개탄 해야 할 일이지만 우주론이 무엇이며 심합이기설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임금 사랑 하기를 아버지 처럼 하고 나라 걱정 하기를 내집 같이 사랑 하라는 얘기 만큼은 귀에 들어왔다 .

( 이항로의 심합 이기설이라는 것이 별로 나쁠 것은 없구만....)
대원군 이하응은 이제 까지 관심이 없었던 영의정 조두순이 추천했던 이항로라는 인물에 대하여 관심이 가지 않을수 없었다 .
사실 이 마당에 조대비의 마음을 어긋나게 해서는 않된다 .
조대비의 마음을 잡아 놓아야 한다
다음날 이항로는 파격적으로 동부승지로 발탁된다 .

조대비의 한 마디가 영의정의 백 마디 보다 효과가 있었던것이다 .
동부승지란 조선시대 승정원에 속한 정3품의 관직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관 쯤된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국왕의 비서기관으로서 승정원의 여섯 승지가 6방으로 나누어 6조의 일을 담당했는데 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가 있었다 .

흥선대원군이 조대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존왕양이 춘추 대의를 주장 한다는 이항로의 능력을 시험 할겸 임금을 가까이 모시도록 배려한 파격적 인사였다 .
조대비가 이항로를 거론한것은 독단적인 인사를 경계 하기 위하여 한마디 한것뿐인데 이렇게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 지었다는데 조대비 조차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어쨋든 흥선 대원군의 행보는 날이 갈수록 서슬이 시퍼래지었다 .

안동김씨 계열이 아니면서 그가 조금이라도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모두 적당한 벼슬을 내려 주었다 .
엄청난 반전이었다 .
그는 남인들 만을 쓴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하여 북인 계통에서 임백경을 우의정으로 발탁은 하였으나 그도 김씨들에게 지난날 왕따 당하던 사람이었다 .
이하응은 영의정이나 왕실의 웃어른인 조대비가 , 왕이 어리다는 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쥘까봐 궁궐내에 정보망을 거미줄 처럼 눈에보이지 않게 늘여 놓았다 .

즉 이른바 대궐 상궁들의 오빠들인 천희연, 하청일, 장순규, 안필주라는 건달들이었다 ,
이들은 이하응이 파락호 생활을 할때 부터 그가 포섭하여 따르던 건달들이었다 .
이하응은 이들을 통하여 궁궐 내부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정권을 잡은 흥선대원군이 그들을 들어내어 놓고 써 먹을수는 없었으나 자기 집인 운현궁으로 출근하게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계속하여 쓰고있었다 .
흥선대원군이 살던 집은 아들이 임금이 되고 나자 금방 활기가 솟았다 .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이름도 운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창덕궁보다도 운현궁의 위세가 이제는 조선 이라는 나라를 혼돈 속에 빠지게 하는 위인이 탄생한 산실 역활을 하게 될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흥선 대원군은 궁궐 내부를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하여 각 관서에 공무원 신분의 비밀 정보원을 두었는데 윤광석, 이계환, 오도영, 김완조, 박봉래, 장신영, 백낙서, 서은로, 백낙필 같은 인물 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겉으로는 관원(공무원)인척하면서 사실상의 정보원 노릇을 하면서 관청 동태를 흥선 대원군에게 수시로 보고하게끔 하므로서 운현궁에 가만히 앉아서도 나라 안팎의 정보를 훤히 알수 있게 만들었다 .

뿐만아니었다 .
무신들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반정에 대비하여 자기 사람들을 발탁했다.
이경하, 이장렴, 이경우, 신명순을 각각 훈련대장, 금위대장, 어영대장, 포도대장, 등에 임명하였고 이러한 무신들의 벼슬도 공정치 못하다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북인 출신의 임상준을 슬쩍 실권이 없는 훈련대장에 끼워 넣고 과감한 인사정책을 펴는척도 하였다 .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이렇게 당파를 초월하고 평민들을 우대 하는 척하여 백성들의 울분을 달래 주는것 같이 하였으나 이면에는 오로지 왕권 강화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모든 질서는 모두가 썩었다고 매도 하여야 했고 자기의 왕권 강화 정책을 항상 개혁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 하였던 것이다 .
흥선 대원군은 종래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왕 앞에서 이루어지는 경연제도를 없애고 자기 혼자의 머리로 모든 정사를 처리하였다 .

왕이 필요가 없었고 대신들이 유명 무실하였다 .
헌종 때만 해도 헌종이 병약하고 여색에 빠저 정사를 소흘히하자 우의정 정원용 같은 사람은 헌종에게 상소를 서슴치 않았었다 .
"전하, 역대 열성조들께서는 늘 상참을 행하는것은 물론 경연은 날마다 상례로 삼았는데 근래에는 삼강(三講)이 행하여지는것을 보지 못하고있습니다 .
앞으로는 삼강을 꼮하셔야 합니다 .삼강은 조강, 주강, 석강을 쉬지 않고 히심으로서 세전이나 세후의 강독을 반드시 하시는것이 좋겠습니다 "
하였다 .
그러나 서슬이 시퍼런 이하응의위세에 눌려 상소는 감히 누가 낼 엄두 조차 내지 못하였다

헌종때 정원용의 상소는 임금과 대신들의 중지를 모아 임금이 조금이라도 학문과 정사를 소흘히하여 나랏일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
그러나 이하응의 권력 독점은 그 경연제도 조차 쓸모 없는 유명 무실한 제도가 되어가고 있으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찌 되어가고있는지 모를 판이었다 .
아무리 똑똑한 흥선 대원군이라도 나랏 일을 혼자서 처리 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무소 불위의 권력을 마구 흔들 기회가 온 것이다 .
궁궐 내부를 손 바닥 처럼 들여다 보며 궁궐 정보를 매일 같이 관찰 하고 있던 이하응은 이번에는 궁궐 밖 세상을 내어다 보았다 .

그는 그동안 왕권을 추락 시킨것은 유학(儒學) 이랍시고 말들이 많은 학자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
(이놈들이, 유학? 유학이 무엇이더냐 ? 선비 유(儒)자에다가 배울학(學)자를 써서 소위 선비 행세를 하며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세를 잡아 특권이나 노리자는 놈들이 아니더냐? 한다는 짓이 임금에게 상소나 올려 나랏 일이 잘못되었느니 어쨋느니하면서 잘난척 하는 놈들...)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이들의 입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

그러자면 이들의 소굴을 소탕 하여야 한다 .
결국 그가 생각 해 놓은 것은 엄청난 폭력적 서원 철폐라는 카드였다
현대와 같이 학교 같은 교육 기관이 없었던 조선시대의 유일한 교육 기관은 서원(書院)이었다 .
서원은 고려 충렬왕 때 부터 생긴것이 효시로서 마을 젊은이들을 모아 유학을 연구하고 배웠던 곳이었다 .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중종 37 년 되던 해에 주세붕이 고려시대 안향의 학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백운동 서원이라는 교육 기관을 설치함으로서 서원이라는 것이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

1550 년 명종은 백운동 서원에 본격적으로 교육 기관임을 인정 하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액자 까지 임금이 직접 하사하여 교육기 관임을 공인 까지 하였던 것이다 .
이때 명종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람이 퇴계 이황이다 .
이황은 흥선 대원군이 보는것 같이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
이황은 승문원 권지 부정자 까지 했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경상도 안동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친사람이다 .
이퇴계 라고도 불리우는 이황은 공직자로서는 깨끗한 청백리였으니 조정으로 부터 79 번이나 벼슬 제의가 있었으나 사양하고 의연했던 사람이다.그는 교육을 하자면 맨 입만으로는 할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서원 건립을 임금에게 상주 하였던 것이다 .그는 손수 교과서도 만들었고 학문하는 태도의 모범을 보였을 뿐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선비상 까지 제시하였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문학자로서 2 천편이 넘는 시를 남기었을 뿐만 아니라 사상가로서 성리학의 삼성론을 주창 하였으며 일본에 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
그는 형식 보다도 합리성을 존중하였고 사적으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
교육 기관을 운영 하였지만 역시 젊은이들을 교육 하자면 돈이 필요했다 . 사심 없는 이황에게 국가에서는 유학에 관한 서적과 전답을 내리게 까지 하여 서원은 활기를 띠우게 되었던 것이다 .

우리나라 같이 교육열이 대단한 나라가 세계 어느곳에도 없다 ,
그 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 곳곳의 서원을 통계를 내어 보니 650여곳이나 되었다 .
흥선대원군은 이들을 못 마땅하게 생각 한것이다 .
자기도 알고 보면 여섯살 때 천자문을 배운것과 열두살때 논어를 배웠고 그후 사서 삼경 까지는 공부했으나 그것을 마지막으로 기껏해야 붓으로 대나무 그리기에취미를 갖고 있는것 이외에는 별로 공부한게 없다.
그가 서원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것은 조선말기 황현이 쓴 매천 야록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권력이 없던 지난날 야인시절 화양동서원에 들렸다가 일어 났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
그가 야인 생활을 하고있을때 충청도 청주에있는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에 간 일이있었다 .
충정도 화양 계곡은 속리산 뒷 쪽에서 발원하는 화양천이 선유동 계곡을 경유하여 흐르는 계곡이 하도 수려하여 소금강 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조선의 중기 대학자인 송시열이 이곳에 교육기관을 차리었는데 화양서원 및 만동묘비,암서재등 있는 뛰어난 경치 좋은 계곡이다 .

그는 우연히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만동묘에 제사 지내는 날 그곳에 갔었다 무심코 손에 부채를 든 채 서원의 돌층계를 오르게 되었다 .
이때 위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저런 불경(不敬)스러운 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무엄하게 부채를 든 채 올라가느냐?”
하고 유생(儒生)과 서원 청지기가 달려와서 멱살을 잡고 끌어내렸다.
이하응은 별안간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였다 .
"왜들 이러시오. 구경 좀 왔수다"
"왔수다? 그놈 말 버릇 하나 건방지다 "
"제사 구경 좀 하겠다는데 뭐 안되는 것 있수?"
“네가 어떤 놈이냐? 성명을 대라.”
“성명이랄 게 있는 사람도 못되오.”
“뭐, 성명 삼자도 없는 놈이라고? 무엄하다 .엄숙한 제례에 에의도 모르는 놈이 감히 부채를 든 채 이 서원의 층계를 올라?”
하지만 이하응이 너무나 당당 한데에 유생과 청지기도 약간 움찔했다
“성명을 대어보아라, 보아 하니 상놈은 아닌것 같은데, 어디서 온 누구냐?”
“서울서, 이 서원의 제향이 유명 하다기에 구경 좀 왔소.”
이하응은 마지 못해서 대답했다.
“이놈아, 제향 구경을 하려면 제대로 격식을 차려야지 네 부채 든 태도가 무엇이냐?"
" 날씨가 더워 부채 좀 부쳤거니 뭐 잘못 되었소?"
" 네, 조상 제사 지낼때도 건방지게 부채질하면서 제사를 지냈더냐? 성현의 제향엔 경건히 참배하는 법이다. 야, 이놈아 어디서 굴러 먹던 놈이야.”
하고 유생은 대짜 고짜로 이하응의 뺨을 후려갈겼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구경좀 한다는데 뺨을 때려?)
이하응은 분한 마음을 꾹 참고 그들의 행패를 피해서 도망 치듯이 서원을 뛰어나왔다. 목에 피멍이 퍼렇게 들었고 뺨 따귀 맞은자리가 얼얼하고 귀도 며칠 동안 멍하였다

그때 그가 왕족이라는 신분을 밝혔으면 봉변을 안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설사 몰락한 왕족의 신분이라고만 밝혔더라도 가짜라고 만 추궁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왕족이 그런 예법도 모르냐고 모욕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하응은 그때, 자신이 권력 하나 없는 백성으로 자처 했으며 또 세상의 갖은 모욕을 꾹 참고 지내는 시절이었으니 할 말이 더 없었다 .
그러니 천하를 한손에 쥔 흥선 대원군이 그때 그일을 잊을 수 없었다 .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그당시 이하응이 당한일을 이렇게 짤막하게 적고있다
"권력이 없던 지난 날의 대원군이 화동 서원에 들렸다가 원생에게 모욕을 당한 뒤 가슴 깊이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그가 권력을 틀어 쥐면서 그곳의 유생을 죽이고 서원을 철폐하라고 명령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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