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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이구예술단 참가기(29회/허정균)
 


각자 놀던 쇠들이 합금으로 태어나다



 


1

3월 10일 오후 2시, 석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왜 연습하러 안 가냐!”
“그래, 지금 간다”
대답을 해놓고 보니 수학여행 때 사물놀이팀이 구성되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좀 아는 소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자리에서 참여를 종용받은 것이다.  언론계 최초로 한겨레에 풍물팀을 창단하여 언론노조운동에 새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였지만 악기를 만져본 것은 추석 때 귀향하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전어를 구어 먹으며 북두칠성이 엥돌아지도록 놀 때 “어디 내가 한번...” 하면서 꽹가리나 징을 빼앗아 쳐본 것이 고작이었다. 자신도 없었을 뿐더러 매주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부담이 되었다.



 2

방배동 연습실에 도착하니 방음 시설이 된 열 평 남짓한 지하실에서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덩 덩 쿵따쿵 쿵따쿵 쿵따꿍....”



이미 1월부터 연습을 시작한 쌩초보들이 제법 장고가락을 내고 있었다. 부고 시절 작은 키에 부치는 잉글리시호른을 안고 불던 전혁진 중앙대음대 교수(타악전공)가 박승찬 감독이 명명한 ‘志剌發光’ 이라는 이름의 ‘29예술단’ 단장을 맡아 개인의 특성을 이미 파악하여 꽹가리, 북, 장고, 징을 맡겼다. 내겐 꽹가리가 주어졌다. 장구에 승택, 북에 정근과 석준, 징에 윤수가 더 가세할 것이라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힘과 기능을 고려한 배치였다고 생각된다.



장고 / 순희, 미숙, 영실, 미향, 해림, 승택


꽹가리 / 경미, 태범, 준석, 정균


북 / 희근 인숙 재헌 정근 석준


징 / 기은 윤수



전 단장의 제자인 사부님이 아저씨 뻘인 내게 쇠를 잡는 법, 자세, 타법 등 기초부터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태범, 준석, 경미랑 함께 꽹가리끼리 모여 악보를 보아가며 합주를 하였다. 손에 익지 않은 꽹가리채가 각자 놀았다.


“이래가지고 뭐가 될까. 아직 두 달도 더 남았는데, 뭐”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위안으로 삼았다.




 


3



두 번째 연습을 하고 와서는 나름대로 악보를 만들었다. “이놈만 달달 외면 되는 것이다.” 이 악보를 지니고 있다가 지하철 안에서 꺼내어 들고 마음 속으로 쇠를 두드렸다. “깽 갱 개개갱 개개개개윽개갱” 태범이는 운전을 하다가 신호등에 멈춰 설 때마다 핸들을 두들겨대어 핸들에 흠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실전에 나서면 풍물패의 리더격인 쇠가 맞지 않아 합주가 멈춰지곤 하였다.



가장 어려운 것이 어느 가락을 몇 회 반복하다가 다음 가락으로 넘어가는 대목이었다.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와르르 무너져내리고는  그대로 망연자실...  지휘자가 따로 없는 풍물에서는 상쇠가 신호를 보내어 이 일을 수행한다. 가락을 치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이를 헤아려가며 리드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습량이 쌓여가며 이 난제는 차츰 해결되었다. 연습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태범이가 이 일을 맡아 신호를 해주면서 이 난제는 완전히 해결하였다.




정근이와 준석이 윤수, 그리고 이미 수준에 도달해 있는 승택이가 참여하며 풍물팀은 완전한 진용을 갖추어 연습에 임하였다. 특히 정근이가 우렁찬 목소리와 힘을 발휘하며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완전 쌩초보인 그는 처음 ‘나홀로’ 연주로 지적을 많이 당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배를 두드려가며 연습한 끝에 이를 극복하고 아주 훌륭한 ‘북치는 소년’으로 거듭 태어났다. 연습이 끝나면 친구들이 와서 푸짐한 회식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들의 격려 방문이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4



5월 5일부터는 방배동 풍물연습이 끝나면 풍물을 가지고 당산동으로 이동하여 밴드팀과 합류하였다. 풍물을 옮기고 다시 방배동에 가져다 놓는 데에 징잽이 윤수가 그의 봉고차를 이용해 수고를 도맡아 주었다. 색스폰에 종수와 필수, 리드기타에 인철이, 베이스 기타에 영훈이, 트럼펫에 승영이와 원일이, 드럼에 동호 그리고 전자 오르갠에 혜경이가 우리 풍물팀을 맞았다. 싱어로 석구와 미라 그리고 영관이가 참여하여 단장인 혁진이까지 모두 29명이 되었다.



필수는 원래 밴드부 출신이었으니 잘 할 것이고... 색스폰을 부는 한화그룹 상무이사인 종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종수야 ! 도레미파솔라시도 잘 나오냐?”


“아녀 임마, 나 잘 해”


직장 잘리면 밤무대라도 뛰어볼 요량으로 이미 1년 전부터 틈틈이 시간을 내어 색스폰 레슨을 받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훈이와 인철이는 언제 그렇게 기타를 익혀두었는지 맘껏 실력을 내보였고 동호의 힘있는 드럼 연주가 지하 연습실을 꽝꽝 울려댔다. 혜경이가 연습실 구석에서 전자 오르갠으로 화음을 넣어 완성도를 높였다. 다들 재주도 있지만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들이다.



석구의 열창이 더해져 제법 그럴듯하게 협연이 이루어지자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작품이 돼 간다.” 모두 희열과 자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에 의상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오르가니스트 혜경이가 디자인하여 제공한 단복을 입혀 놓으니 다들 우쭐해지며 진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든 듯 하였다. 그러나 공연일자가 다가오면서 전 단장은 내심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부터 사부 연제호(국립국악관현악단)는 풍물팀에 ‘강약’과 ‘완급’을 지도하였다.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그의 지도를 충분히 소화하였다.


 


 


 


 5



마침내 5월 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노천극장. 하늘은 푸르렀고 관악산은 온통 신록으로 뒤덮였다. 최종 리허설을 마친 우리에게 사부 연제호가 마지막 지도를 하였다.


“북은 동작을 크게 하여 혼신을 다하여 치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하십시오.”


“장고는 그저 힘껏 자신있게 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쇠는 처음 신호가락 칠 때 ‘갱--갱--갱--딱’ 하면 전체가 늘어지게 되니 ‘갱-갱-갱-닥’ 이렇게 좀 빠른 듯하게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박감독이 마지막까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여러분 할 수 있습니다. 15분만 참고 정신 집중하면 됩니다.”



전 단장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사부 연제호에게 쇠를 들고, 부사부 김형석에게는 북을 들고 무대에 함께 입장하도록 하였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깜찍한 교복을 입고 입장한 미라가 관중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았고, 교복을 구하지 못한 석구와 영관이는 교련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 ‘이구동성’ 깃발을 단 헬기가 관악산 능선 위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무대에서 바라보았다.


 



 


6



드디어 밴드팀의 반주에 맞추어 석구, 미라, 영관이가 ‘나 어떡해’를 열창하였다. 이어 풍물팀 단독 공연 “허이! 허이!” 정근이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앞북소리(전고)가 시작 되었다. 둘로 나뉘어 1회씩 치다가 마지막 세 번째 6개의 북이 일시에 울릴 때는 병풍처럼 둘러선 관악산 자락이 움찔움찔하며 놀라는 듯 하였다. 일순 적막이 흐르며 관중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됨을 느꼈다.



적막을 깨뜨리는 준석이의 쇠가락으로 시작하여 모든 악기의 난타가 휘몰아치는 1채연주를 마치고 다시 준석이의 ‘갱-갱-갱-닥’ 신호가락이 울렸다. 연제호 사부가 마지막으로 지도한 대로 휘모리 장단이 시작되었다. “갱 갱 개개갱 갱- 개개갱- 갱”으로 한바탕 회오리를 정리하고 경미가 “갱   갱   객갱” 하며 영남사물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처음 약하고 길게 시작하여 6차례를 반복하는 동안 점 점 빠르고 세게 연주하였다. 실수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하게 다음 가락으로 넘어갔다.


 


“개개개 개개개 개개갱-개개”


태범이가 날리는 신호를 보고 가락을 바꾸어가며 쇠가 바스러지도록 두들겼다.


“개개개개개개 갱 갱 으갱 개갱개갱 갱갱- 갱- 갱갱- 허이”


“갱-갱- 개개갱 개개개개 윽개갱 개개갱 개개갱 개개개개 으개갱”


별달거리로 넘어왔다. 옆을 슬쩍 보니 다들 잔잔한 몸동작을 하며 숨가쁘게 가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됐다. 어려운 고비 다 넘긴 것이다.”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선배님들 이룩하신 자랑스런 천하부고


갱 갱 개개갱 개개개개으개갱


후배님들 이어받아 더욱 길이 빛내오니


갱 갱 개개갱 개개개개으개갱


선배사랑 후배사랑 한자리에 모두모여


갱 갱 개개갱 개개개개으개갱


오늘하루 즐거운날 신명나게 놀아보세“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아주 잘 끝난 것이다. 이어 동호가 내려치는 드럼소리를 시작으로 밴드가 울리고 ‘젊은 그대’라는 노래가 시작되었다. 북이 가세하고 두 소절이 지난 후 장고가 가세하였다. 마지막으로 꽹가리가 가세하며 밴드와 풍물의 퓨전 협연이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혼신을 다해 지휘하는 전 단장 옆에서는 흰 연기가 치솟아 흥을 돋구었다. ‘우리의 희망이’ 하는 부분에서 전 단장이 주먹을 힘껏 쥐자 일시에 모든 연주가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가는 기교를 보이며 “갱-개개으개갱 개개개개으개갱”의 4박자 반복리듬을 신명나게 이어갔다. 일시에 악기의 연주를 멈추며 끝마무리를 하자 박수가 터져나오며 앵콜을 외쳤다.



미리 준비한 앵콜곡 아리랑을 연주하였다. 밴드의 전주에 이어 노래를 시작할 때 풍물도 함께 들어가 느린 3박자의 세마치 장단을 연주하였다. 1절이 끝나고 “갱-갱-갱-갱 개개개개 개개개개”의 쇠가락을 신호로 장구가 “덩 따다 쿵더쿵”의 휘모리 장단을 연주하며 4박자로 변곡된 빠른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점차 빠르고 강한 템포를 이어가며 아리랑은 우리악기와 양악기의 조화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석구가 고무신을 벗어 땅을 치면서 열창을 하는가 하면 관중석 앞으로 나아가 다 함께 부르도록 유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유를 부리며 쇠가 깨지도록 휘모리 장단을 쳤다. 마지막


 “발~     병   난   다”


를 싱어들이 홀로 노래하고 난타 끝에 전 단장이 갑자기 힘껏 쥔 주먹을 내밀며 일시에 멈추었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해낸 것이다.


생초보들인 우리가 기어코 해 낸 것이다.
각자 놀던 쇠들이 강력한 합금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동기들 모두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 letter 31 1970.01.01 09:33
    허정균선배님!'이구동성'회보 만드느라 고생하셨는데 인터넷 편집(?)도 잘 하시네요? 잘 보고갑니다^^
  • 이인숙 1970.01.01 09:33
    환호하던 우리친구들의 모습 지금보면서도 감동입니다. 우리도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친구들의
    얼굴에서 생생히 보이니까요. *^-^*
  • 이인숙 1970.01.01 09:33
    혜진씨~! 그날 한참동안 리허설할때 시원한 물 갖다줘서 참 고마웠어요.총동에서도 준비하느라고 고생도 많았겠어요. 총동창회장님, 국현선배님,혜진씨 그리고 또한분 계시던데..애많이 쓰셨습니다. *^-^*
  • letter 31 1970.01.01 09:33
    ㅎㅎ 그날 본부석용 얼음물 글루 다 갖다줬다고 혼났답니당! ㅋ~
    언니가 모르는 후배는 총동사무처 회계담당 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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