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by 김진혁 posted Nov 03, 20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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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벨기에 출생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년~1993)은 생전에 영화와 패션의 아이콘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인도주의자로서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헵번은 아카데미, 에미상, 그래미상, 토니 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선정한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100명의 스타"의 여성 배우 목록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6세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였고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 중으로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이 최종 학력이었음에도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를 구사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두 번의 이혼 경험과 만년에 대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64세라는 짧은 생애를 마쳤다.

흔히들 오드리 헵번의 성공은 외모 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헵번은 완벽한 미인형이 아니다. 작은 얼굴과 지나치게 커다란 두 눈과 너무 올라간 입은 사진촬영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헵번의 진정한 성공과 매력은 칼빈주의적 철저한 신앙과 영혼의 거룩함, 내면의 성숙한 인간미 그리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은 아름다운 미소이다.

 

그녀의 아들 도티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밝고 유쾌한 분이었지요.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라는 얘길 많이 하셨죠. 어려운 이들을 돕고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어요. 평범한 어머니이기도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대본 연습을 하는 등의 프로의 면모도 보였죠.”

 

그녀는 죽기 전까지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적입니다.”

 

아름다운 요정 헵번이 숨을 거두기 1년 전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우리 영혼을 울린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