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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북문인 진송루를 성 안에서 바라본 모습. 따로 현판이 달려있지는 않다.

강화도에 스며든 유구한 우리민족의 역사

강화도에는 ‘유구한 우리민족의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타제석기 등 선사시대 유물들이 여러 차례 수습된 바 있으며,
 청동기시대의 표지유물인 고인돌 역시 다량으로 퍼져있다. 
특히 강화도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단인 참성단이나 강화산성 같은 관방유적들도
 우리 민족사의 의미를 되살려 주는 살아있는 자료들이다.

강화도는 백제·고구려·신라가 모두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한 곳이다. 
백제는 원래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나라였던 만큼 이 섬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았다. 
고구려도 강화도에 ‘혈구(穴口)’라는 이름을 남기고 이곳이 자신들의 영역이었음을 증명했다. 
신라도 나중에 이 섬을 차지하였는데,
 남양의 당항성과 더불어 이곳에 혈구진을 두어 중국과 교류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남문에서 남산 남장대를 따라 가파르게 올라가는 성벽.

특히 고려와 강화도의 관계는 더욱 밀접하였다. 
우선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이곳의 거리가 가까운 점이 중요한데,
 강화도 정북방으로 흐르는 예성강을 통한 교통 조건은 국방이나 교역 등
 여러 측면에서 강화도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고려는 대몽항쟁기를 통해 수도를 강화로 옮겨 39년간이나 유지하기도 했다. 
수전에 약한 몽골군의 약점을 간파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가장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인 남산 구간의 성벽.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강화도는 요지였다. 
개국 이래 도호부나 유수부 등으로 특별 관리되면서
 서해를 통한 조운의 핵심 역할을 했다. 
1627년 후금의 침략을 당하면서 강화 관아지는 피란행궁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이후 강화산성은 또 다시 재건되었다. 
청에게 인질로 끌려갔다 귀환해 왕위에 오른 효종과 숙종, 영조 등
 왕에 의해서 다시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령 효종은 강화도 전 해안에 53개의 진·보·포대 등을 설치하여 강화를 요새화했다. 
그 다음 숙종은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고려궁의 외곽 강화중성을 기반삼아 여기에 강화산성을 세웠다. 
또 갑곶진에서 초지진까지 이어진 외성도 석성으로 새롭게 쌓아올린 기록이 있다.

이처럼 강화산성은 고려궁을 포함한 고려시대 축성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후 재건은 완전한 신축으로 이어졌다. 
즉, 고려시대에 쌓았던 원래의 토성은 완전히 파괴되어 평지로 돌아갔고,
 조선에 들어와(숙종 37년-1711년) 새로 쌓은 성은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었다.



남산 정상에 위치한 남장대. 최근 복원되었다.

강화산성 둘러보기

강화산성의 들머리는 다양하다. 
먼저 강화공용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고려궁지를 둘러보고,
 동·서·남·북 어느 문이든 기점을 잡고 산성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성곽만 따라서 돌아도 된다. 
필자는 남문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봉수대 등이 위치했던 곳으로 판단되는 남장대의 남쪽 공간.

강화산성 남문은 안파루(晏波樓)이다. 
숙종의 처남인 민진원이 강화유수로 있으면서 세운 문으로,
 1956년 호우로 붕괴되었다가 1975년 재건될 때
 당시 국무총리의 글씨로 새롭게 편액이 걸렸다. 
남문은 견자산을 이어 동문과 연결되고,
 또 남쪽으로 남산의 꼭대기인 남장대로 이어지는데,
 견자산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무너져 흔적이 희미한 반면에
 남장대로 이어지는 성벽은 상태가 양호하다.
남문에서 남산을 타고 오르는 산성 답사는 웬만한 등산과 비슷하다. 
산등을 타고 오르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간혹 돌로 이루어진 체성이 잠깐 사라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성벽 상태가 온전하다. 
성벽은 몇 번이나 S자 형태로 휘어지기를 반복하며 고도가 점차 높아진다. 
대략 6-8부 능선에서 동북쪽 구릉을 내려다보면
 염하 너머 문수산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봉수대 등이 위치했던 곳으로 판단되는 남장대의 남쪽 공간.

남산의 정상부에 세워진 남장대는 2010년에 복원되었다. 
남장대 주변에 널린 암반에 기둥이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막사나 창고 등의 시설이 있었던 것이라 짐작된다. 
바로 옆으로 장방형의 공간도 보이는데,
 이를 통해 기록에 나오는 봉수대의 위치가 이곳으로 추측된다. 
현재 남장대 남쪽에는 성 밖으로 목제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강화나들길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벽은 남장대 주변에서 거의 직각으로 꺾여 서쪽으로 향한다. 
답사 당시 그 아래쪽으로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지점에서 암문이 보였다. 
현재 남장대는 4개의 산성 전체 암문 중 유일하게 형태가 남아있는 곳이다.


 
서문 남쪽으로 이어진 석수문은 성 밖에서 흐르는 물이
 성 안쪽으로 흐르게 하는 통수시설로이다.

남장대 부근 성벽 모서리 부분으로부터 600m쯤 내려왔을까, 
다시 성벽의 형태가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경사도가 많이 급해진다. 
아래 깊숙한 곳으로 성벽이 실금처럼 북으로 기어 내려가고,
 그 최저부에 서문인 첨화루(瞻華樓)가 조그맣게 보인다.

이후로도 한참을 내려와 서문 가까이 도달하니,
 조금 못 미친 곳에 아담한 홍예식 수문이 나타난다. 
강화산성의 최저부를 동-서로 관통하던 동막천의 수문이다. 
원래 동막천 물길은 서문에서 남문으로 흐르던 줄기였는데,
 지금은 거의 복개되어 묻히고 이 문의 좌우만 노출되어 있다. 
서문 안쪽으로 꽤 너른 공간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연무당 옛터이다. 
연무당은 강화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전술전기를 연마하던 곳으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산성 서문인 첨화루. 성 밖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서문에서 북문까지 이르는 경로는 조금 복잡하다. 
서문에서부터 급격히 성벽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들어선 건물들에게 성벽의 뿌리를 모두 내주고 말았다. 
특히 정수장 구간은 완전히 성곽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이 구간을 지나 진고개를 넘을 즈음에는 다시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석성이 아니라 토성으로 쌓은 구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석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다음부터 북문까지의 구간 역시 성벽의 윤곽을 완전히 잃었다. 
국가시설이 자리하고 있는 구간이어서 출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잠시 산자락의 솔숲을 질러가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보니 문득 북문인 진송루(鎭松樓)가 나타난다. 
진송루는 성벽을 안으로 최대한 오그린 다음,
 그 안쪽에 문루를 세움으로써 성문 밖에서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 적을
 협공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로 세워졌다.



서문에서 북문으로 올라가는 성벽은 몇 번의 굴곡을 만들며 길게 이어지는데,
 석성벽이 무너져 마치 토성벽 같은 상태로 보인다.

북문을 통과하면 다시 성벽이 언덕을 타고 오른다. 
그러다가 지세를 따라 북산(또는 송악산) 정상까지 거의 평탄하게 이어진다. 
북산은 고려궁지의 조산이기도 한데, 북문~북장대~북산 정상부가 거의 수평이다. 
하지만 북장대는 남장대와 다르게 아직 복원되지 못했다.


 
강화산성 북문은 성벽을 성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여서 세움으로써,
 성문의 방어력을 높였다.

북산 정상을 지나 성벽은 방향을 틀어 동문을 향해 크게 호를 그리며 내려온다. 
그러나 한 교회 주변에서부터 다시 성곽의 흔적이 사라져
 오직 감으로만 동문으로 향해야 한다. 
강화중학교 남쪽 동문로 주변에 다다르면 동문인 망한루(望漢樓)를 만날 수 있다. 
연미정이나 황형장군 묘를 찾아가는 동문로 주변이다.

동문에서부터 산성은 견자산으로 이어진다. 
견자산 주변은 원래 고려 무신정권의 권력자들이 몰려 살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한때 이곳은 땅을 파기만 하면
 그들이 매립한 고급 청자들이 쏟아져 나온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산성의 자취마저도 흐릿해 그저 작은 동산처럼 보인다. 
현충탑에서 남문까지 이어지는 성벽도 온전한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무너진 토성 같은 자취를 따라서 내려오다 보면
 어느새 출발점인 남문이 나타난다.


 
북장대 자리에서 북동쪽 방향을 바라본 풍경. 무인도인 유도가 앞으로 보이고,
 그 뒤쪽으로 개성에서 내려오는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 물이 합쳐진다.

Information - 교통

서울 신촌에서 강화를 오가는 버스(강화운수 3000번)가 10분의 간격으로 많은 편수가 운행된다. 
신촌 기준으로 오전 5시 40분에 첫차가 출발하고, 오후 11시 20분에 막차가 출발한다. 
자세한 정보는 강화운수(032-934-4343)로 문의하면 된다.

영등포에서 강화를 오가는 88번 버스도 15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일산에서 강화산성 서문까지 운행하는 96번 버스 역시 2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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