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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우리 섬·우리 집.. 시간이 빚어낸 '기품있는 풍경'




↑ 안동의 농암종택에서 이참 사장이 옛집을 지키고 있는 종손 이성원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낙동강의 물길과 딱 맞춤한 자리에 지어진 종택에서는 청량한 기운이 느껴진다.
기왓담과 추녀가 만들어낸 선들도 단정하다. 곽성호 기자


↑ 시원한 ‘눈맛’이 일품인 남해 금산의 보리암.


↑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백령도 두무진.


↑ 백제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공주 마곡사.

# 벽안의 한국인이 대한민국 최고 여행지로 꼽은 곳… 경북 안동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여행자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지로 꼽은 경북 안동.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그와 경북 안동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이 사장이 처음 안동 땅을 밟은 건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이었다.
정확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한국 땅에 막 도착했을 즈음'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안동까지는 서울에서 차로 꼬박 8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의 권유로 떠난 길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국땅에서 쉽지 않은 긴 여행이었다.

그가 안동 땅에서 맞닥뜨린 건 '과거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이 막 시작되던 시기.
그러나 안동에서만큼은 오래전쯤에 시계가 멈춰진 것 같았다.
첫번째 방문에서 그는 단번에 안동에 매료됐다.
한옥 고택의 아름다움도 감탄스러웠고, 집성촌의 삶의 방식도 흥미로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안동 땅 곳곳에 자취를 남긴 퇴계 이황과 서애 유성룡을 알기 위해
역사 공부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안동 일대에서는 고려 때부터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그는 그걸 '안동의 자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자연환경이 사람의 심리며 성격을 만드는 법인데,
험하지 않은 지형의 부드러운 산과 유려한 물줄기를 품고 있는 안동의 자연이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고,
그게 수많은 인물이 나는 토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안동을 여행하는 법은 다른 곳과는 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여정인 만큼 안동으로의 여행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여유'다.
고작 하루 이틀쯤으로는 안동의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얘기다.
되도록 오래 머물면서 자연의 기운과 전통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껴야
안동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안동에서는 되도록 이른 아침 새벽시간에 움직이길 권했다.
강변의 아침 안개 속에서 고택의 정취는 더 감격적이고,
새벽시간에는 물소리와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도 더 또렷하게 들린다고 했다.

안동을 처음 방문했던 36년 전. 이른 아침 하회마을 고택을 산책하는 길에 끼어들었던
긴 소울음 소리를 그는 '가장 평화로웠던 기억'으로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 자연을 삶의 도리로 읽는 법… 안동의 병산서원
배낭을 멘 등산복 차림의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함께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병산서원이었다.
하회마을 앞을 지나 낙동강을 끼고 이어지는 비포장길 끝에 병산서원이 있다.
자연과 조화된 건축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다.
강은 소리 없이 느리게 흘러갔고 미루나무 사이에는 미풍이 지나갔다.
강변 어디쯤에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병산서원을 가득 채운 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평화'였다.

병산서원에 들어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백미로 꼽히는 건물인 누각 만대루다.
기둥으로 받쳐 올려 널찍하게 지어낸 만대루는 서원으로 드는 중문이기도 하고 누각이기도 하다.
힘차면서도 간결한 풍모의 만대루는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너머로 이어지는 산자락을 성글게 가리는 자리에 서 있다.

서원의 본채 격인 입교당 툇마루에 기대앉아 유려한 만대루의 지붕 곡선을 바라보던 이참 사장이 말했다.
"만대루가 앞산을 가리니 가까이 있는 산이 뒤로 물러나서 멀어 보인다"
앞을 살짝 가리는 것으로, 뒤편의 경관을 보다 빼어나게 만드는 이른바 '차경(借景)'을 말하는 것이었다.
건물을 가까이 둠으로써 먼 곳의 풍경을 끌어오거나, 가까운 풍경을 밖으로 밀어내는 기교.
그 빼어난 솜씨야말로 병산서원을 찾았다면 꼭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만대루 누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경이 조각으로 나뉜다.
누각의 기둥들 사이로 강변 숲의 녹음이 펼쳐지는데
기둥과 추녀가 액자가 돼서 그 안으로 이런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서늘한 마루에 앉아 강바람 속에서 누각의 기둥을 액자 삼은 일곱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맛이 각별하다.

이 사장은 병산서원에서는 주위의 풍경과 그 풍경을 다루는 옛사람들의 솜씨에
눈길을 빼앗기게 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너머'에 있다고 했다.
'풍경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이 사장은 "옛 선비들이 말하는 자연이란 타자(他者)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그저 유희로만 바라보지 않고,
흐르는 물이나 피어난 꽃에서 올바른 세상의 이치와 삶의 방향을 찾은 것이다.
예컨대 물이 웅덩이를 다 채우고서야 넘쳐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며 학문의 깊이를 생각했고,
더 낮은 데로 흐르는 물에서 겸손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산과 강, 나무와 물과 조화롭게 사는 방식을 궁리해온
안동의 옛 선비들의 정신과 향기가 옛 건축물에서 짙게 느껴진다고 했다.
거의 모든 고택에서 이런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점. 그게 소위
'계급장을 뗀' 순수한 여행자의 입장에서 안동을 꼽은 최고 여행지 목록의 맨 앞에 올린 이유였다.

# 한옥의 선이 빚어내는 기품있는 아름다움… 농암종택
병산서원을 들렀다가 체화정을 거쳐 청량산 자락 아래 도산면 가송리의 농암종택을 찾았다.
500여 년 전쯤 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말년을 안동 땅에서 자연을 벗 삼아 소일했던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다.
본래 지금 있던 자리에서 남쪽으로 10㎞쯤 떨어진 예안면 분촌리에 있었다는데,
안동댐 담수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건물 일부는 잠겼고,
다른 건물들도 안동 곳곳에 뿔뿔이 흩어지고 만 것을 농암의 17대 후손인
이성원 씨가 1976년 이곳에 새로 터를 잡아 건물을 옮겨 세웠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찾아냈을까.
후손 이 씨는 지금의 종택 자리를 "10년 가까이 헤매다가 찾은 곳"이라 했다.
옮겨 잡은 낙동강변의 자리는 무엇 하나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건물이 자연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본래의 자리가 이보다 훨씬 더 나았다'는
후손 이 씨의 말이 좀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농암종택의 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별당인 긍구당이 눈길을 붙잡는다.
검소한 듯하면서도 기품있는 선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이참 사장은 종손 이 씨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바로 긍구당의 마루부터 올라섰다.
그는 "긍구당을 찾을 때마다 오랫동안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고 했다.
긍구당은 낙동강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서 있다.
툇마루에서 낙동강의 물길이 보일 듯 말 듯했고 강물소리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모든 게 '저만치'에 있었다. 줄자나 계산기 따위로는 도저히 잴 수도 없는 거리.
긍구당은 자연과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바로 '저만치'의 거리를 두고 자연과 마주보고 있다.

이 사장의 한옥 예찬이 이어졌다. 그는
"한옥처럼 사람을 중심에 놓고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한 건축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했다.
유럽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게 성당과 수도원인데,
이런 건물들은 인간 대신, 신에 대한 존경이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서구 건물의 중심은 인간이 아닌 신이었고,
건축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도 인간의 삶이 아닌, 종교의 엄숙함이나 신의 영웅담이었다.
하지만 한옥에서는 천(天), 지(地), 인(人), 즉
하늘과 땅과 인간과의 적절한 거리와 조화가 느껴진다고 했다.

고택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분강서원이 있고 그 너머에 애일당이 있다.
농암종택을 간다면 그 앞으로 이어지는 '녀던 길'을 밟아보지 않을 수 없다.
퇴계가 생전에서 안동과 청량산을 오가며 걷던 오솔길이다.
그 길이 사유지의 울타리에 끊겨 아쉬웠는데,
근래에 강 건너편에 강과 딱 붙어 지나는 옛길이 새로 조성됐다.
배낭을 메고 이 사장과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녹음으로 가득한 강변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줄곧
옛 선비들의 삶의 태도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음은 물론이다.

# 바다를 향하는 '시원한 눈맛'… 남해 보리암
안동에서의 발걸음이 한껏 늦춰진 탓에 이 사장이 꼽은 나머지 세 곳 여행지를 얘기하자니 글이 좀 바쁘다.
이 사장이 안동에 이어 꼽은 여행지는 경남 남해였다.
그가 한국에 정착한 뒤 적지 않은 한국인 친구들이 남해 여행을 권했다.
이 사장은 "한국사람들이 남해를 여행지로 권한 건 아마도 남해대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1973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경남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660m 길이의 남해대교가 세워졌다.
국내 최초의 현수교이자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다.
개통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참석했을 정도로 남해대교 건설은 국가적 사업이었다.

그런 만큼 한국인들은 남해대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외국인들에게 이 다리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독일에서 막 한국 땅에 온 이 사장에게는 그러나 남해대교는 심드렁한 풍경이었다.
그는 남해대교 대신 금산에 올라 보리암에서 남해의 바다풍경을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광경을 그는 '시원한 눈맛'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남해의 작은 해수욕장들의 풍경도 그림엽서 같았고,
비와 땀과 눈물로 농사를 짓는 가천마을 다랑논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남해에서는 마늘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의 입맛을 이어받아 어릴 때부터 유독 마늘을 좋아했다는 그는
독일에서 살 때는 '마늘냄새가 난다'고 해서 선생님에게 불려 갔던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근래 들어서는 이 사장은 남해의 독일마을을 자주 찾는다.
남해의 독일마을 사업은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의
귀국 거처를 마련해주면서 시작됐는데 관광지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당초 50가구 이주를 목표로 한 것이 25가구만 유치한데다
그마저도 다 떠나 다섯 가구만 남았다고 했다.
이제는 딱 한 가구만 여기 정착하고 나머지 네 가구는 다른 곳에 거처를 두고 오가며 살고 있다.
이 사장은 "생활공간이 아니라 카페로 변한 게 아쉽긴 하지만,
여기 독일마을에 올 때마다 고향의 어머니 생각이 나곤 한다"고 했다.

# 접적 지역에서 평화를 만나다… 백령도
이 사장이 세 번째로 꼽은 곳이 충남 공주의 절집 마곡사다. 그가 마곡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절집의 목조건물이 지금껏 단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곡사는 수많은 전란에도 약탈이 한 번도 없었고 불이 난 적도 없다.
마곡사 일대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십승지' 중의 하나.
십승지란 전란의 틈입이 없다는 10곳의 이상향을 말한다.
공주가 옛 백제 땅이어서인지 마곡사의 건물에서도 부드럽고 여성적인 백제의 멋이 느껴진다.
이 사장은 미곡사에서는 최소 이틀 이상의 템플스테이를 권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장은 백령도를 비롯한 인천지역의 섬들을 여행 명소로 꼽았다.
백령도는 최북단 접적 지역의 긴장이 흐르고 있는 곳이지만,
막상 섬에 당도하면 평화스러운 분위기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섬은 대개 생활리듬이 느린 편인데, 백령도는 특히 더 그렇다"며
"주민들뿐만 아니라 섬에 발을 디딘 여행자에게도 백령도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고 했다.
백령도에는 단단한 백사장으로 이뤄진 사곶천연비행장,
잔돌이 깔린 콩돌해안 등의 명소가 있는데 특히 두무진의 압도적인 모습이 단연 최고다.

이 사장은 또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병사들의 탄탄한 근육과 매서운 눈빛도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섬 곳곳에서 젊은 병사들의 굵은 팔뚝의 근육과 펄펄 뛰는 기운이 느껴지니
젊은 여성들에게는 이만한 여행지가 또 있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또 "백령도행 여객선은 자전거를 싣고가는 요금을 따로 안받는다"고 귀띔하며
백령도를 간다면 꼭 자전거를 가져가라고 권했다.
이사장은 백령도 말고도 인천의 굴업도와 승봉도를
'한국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여행지'로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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