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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 위로 우뚝 솟았으니 그 공덕 한량없어라

산신각 아래 거북바위 윗면에 새겨진 상공암(相公岩) 각자. 태조 이성계가 원통사 나한전에서 기도를 마치던 날,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고 새겼다고 전해진다.

원통사(圓通寺)는 좌우로 수락산과 북한산을 거느리고 멀리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숱한 풍파를 견뎌온 바위산 위에 자리 잡은 사찰은 기세등등하고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경내에 들어서면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반겨준다. 기암 사이마다 자리 잡은 전각들의 풍경은 한 폭의 수묵산수화와 같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거기다 미륵보살 형상의 관음봉이 병풍처럼 걸려 있으니, 이것이 어찌 부처님의 공덕이 아니겠는가. 원통사는 산속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지만 천 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 경문왕 3년(864년) 도선 국사가 처음 창건해 원통암이라 칭한 뒤에도 고려 문종 때 재창, 조선 태조 때 삼창, 그 후 조선의 말기 고종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중창을 거쳤던 어느 한 시대에 치우치지 않고 숱한 관심을 받았던 사찰이다. 원통사는 글 원(圓), 통할 통(通)자를 쓴다. 이것을 그대로 풀이하면 ‘내 마음과 관세음보살이 두루 통한다’는 의미로 이곳을 찾는 모든 이의 마음이 한 치의 엇갈림 없이 통달하라는 부처님의 뜻이다.

원통사의 범종각이자 일주문인 청화대. 기둥의 높이가 낮아 사찰로 들어가려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기암괴석 깊은 곳에 자리한 산사 원통사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 도봉역에서 내려 무수골을 거쳐 우이암 방향으로 오른다. 도봉산의 많은 능선 중에서도 상당히 호젓한 길이다. 도봉유원지나 원도봉산 쪽에서 오르는 주요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이나 종주 산행자에게 원통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작은 암자다. 그러나 조용히 산책하듯 산사를 찾고 싶은 이에게 원통사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며칠간 추운 날씨가 이어진 탓에 산길은 바람마저 자취를 감춘 듯 고요하고 한적했다. 원통사로 향하는 산길초입에서 8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 옛 정취를 자아내는 무수골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곧 무수골 탐방지원센터가 나오는데, 원통사까지는 1.7km 거리로 뒷짐 지고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자현암 앞길에 들어서면 맑은 계곡이 나온다. 지금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여름철에는 계곡 아래로 피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길을 걸으니 계곡과 숲이 도심에서 묻어온 때를 거둬가는 느낌이었다. 20여 분을 더 걷자 우이암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니 사찰 입구에 자그마한 쉼터가 나오고 바위산 위로 우뚝 솟은 원통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암벽 사이에 지어진 작은 기도처 나한전.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던 곳이다.

도봉산의 남쪽에 자리한 원통사는 좌우로 명산들을 끼고 정면으로는 서울시내와 한강이 보이는 풍수지리상 최고 명당에 위치한다. 사찰이 세워졌던 신라 시대의 지도를 펼쳐보면 정확히 국토의 심장부에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낮은 일주문을 고개를 숙이고 경내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압도적인 크기의 느티나무가 눈에 띄었다. 원통사의 수문장 역할을 하면서 장엄하게 버티고 있는 이 노목은 사찰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미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도 유명해 산을 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장소다. 원통사의 현 주지는 덕조(德照) 스님으로 2015년 9월에 부임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먼 곳에서 온 손님을 걱정하는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경내를 돌아보았다. 불가에 귀의한 지 30년이 넘은 스님도 '원통사처럼 특별한 모습의 사찰은 처음'이라 말한다. 원통사는 거대한 바위산 위, 탁 트인 지형에 자리 잡아 날씨가 좋으면 양평과 남양주, 멀리 남한강까지 보인다. 수락산·불암산·아차산 사이사이로 우리나라 최대의 밀집도를 자랑하는 상계동 아파트 단지와 도봉구, 노원구 일대가 눈 아래에 걸린다. 암자 뒤로는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관음봉이 높은 곳에서 중생들을 바라보듯 솟아있다.

타종은 번뇌를 떨쳐 내기 위한 의식이다.

현재의 모습은 1928년 비구니 자현 스님이 중건한 것이다. 자현 스님은 원통사로 부임하면서 퇴락해가던 사찰을 보고 탄식하며 중건하겠다고 결심을 한 뒤, 설악산에서 수행 중이던 춘성 스님을 청하여 천일관음기도를 시작해 이듬해 원통보전을 개축했다. 1931년 여름에는 천일관음기도를 마치고, 그해 겨울 지리산의 보웅 스님과 함께 만일염불회를 시작했으며 1933년에는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1936년에는 자현 스님이 다시 큰방과 법당을 중수했는데, 이때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로 바꾸기도 했다. 보문이란 ‘완만하게 두루 융합하는 모습’과 같다는 불교 용어로 산세에 묻힌 사찰의 고요한 모습에서 지었다. 다시 원통사라고 불려지게 된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절에서 발견된 70년대 범종에 한문으로 보문사라 적혀있어 80년을 전후로 바뀌었다고 추측된다.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던 관음도량의 성지 원통사는 도봉산의 사찰 중에서도 신도가 많기로 손꼽힌다. 그러나 느닷없이 찾아온 추위에 일요법회가 아니면, 몇몇 등산객을 제외하곤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원통사는 조계종에서 관음도량으로 지정한 사찰이다. 절 위쪽 봉우리에 있는 관음봉(우이암) 덕분이다.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의 관음봉은 자애로운 얼굴과 단정한 몸가짐을 한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어 사모봉이라고도 불렸다. 그 아래로 호랑이, 코뿔소, 두꺼비, 학 등 동물의 형상을 한 바위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다. 도선 국사가 원통사를 창건할 때도 이 모습이 흡사 세상 만물에 공덕을 베푸는 부처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 것이 전해진다. 그러나 관음봉 혹은 사모봉이라 불린 이 바위는 일제 강점기, 수유동에서 소시장(현재의 우이시장)이 성했다는 데서 우이암으로 낮춰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의 공덕이 한순간 소의 귀가 돼 버린 것이다. 덕조 스님은 '종교라는 큰 관념을 떠나 잘못된 잔재를 바로잡고 원래 이름인 관음봉으로 바꿔 불러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관세음보살 탱화.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원통사를 이름난 명사로 만든 또다른 공신은 태조 이성계다. 그는 나라를 세우기 전, 이 사찰의 나한전에서 기도를 올렸다. 암벽 사이에 지어진 작은 기도처는 만공, 동산, 춘성 같은 근대의 고승이 수행하던 청정 가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도량이다. 태조 이성계도 이 조그마한 법당에서 조선건국의 꿈을 품었다. 기도를 마치던 날, 이성계는 천상의 상공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게 되고 원통사 산신각 아래 거북바위에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씨를 새겨놓게 된다. 커다란 글씨는 아직도 바위에 선명히 남아있어 사찰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둘러보는 장소다. 그러나 이 글씨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정확히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 하룻밤 인연도 오래도록 향기로 남네 상공암에서 돌계단을 올라 원통사의 가장 서쪽 끝으로 가면 삼성각이 마련돼 있다. 도봉산은 예전부터 산신 기도가 성했던 곳으로 민간신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산이다. 원통사도 사찰 내에 삼성각을 짓고 민족전통 토속신앙의 맥을 이어가게 했다. 민족 토속종교를 존중한 불교의 포용력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타종교에 대한 배려는 자신과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석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사찰 한편에는 신도들의 기도를 빼곡히 적어놓은 기왓장이 있다.

관음암으로 향하는 등산로 바로 옆에는 원통사의 범종각이 나 있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자리에 멈춰서 돌이켜 보는 곳이다. 범종각의 이름은 청화대(淸和臺)로 구한말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승 청화스님의 법명에서 따왔다. 세월의 흔적으로 부식된 건물을 최근 다시 보수한 곳으로 특이한 것은 범종각과 일주문이 하나로 합쳐있다는 점이다. 이는 원통사가 보문능선을 일주문으로 보고, 따로 입구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종각 아래서 사찰로 들어서는 문턱은 매우 낮다. 때문에 사찰로 들어서려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법당에 들어서기 전, 고개를 숙이며 자연스럽게 예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바위산 뒤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더니 산사에도 밤이 찾아왔다. 덕조스님이 청화대에 올라 타종의식을 진행한다. 청아한 소리가 산중에 무겁게 깔리고 곧 어둠이 찾아왔다.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리는 스님을 따라 대웅전에 들어섰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이 봉안돼있다. 원통보전 좌측의 관세음보살 탱화 앞에는 신자들의 소원이 빽빽이 적혀있다. 어려운 글자로 쓰인 기둥의 주련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족’, ‘평화’, ‘화목’ 등 신도들이 적어놓은 글귀를 통해 그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글귀 위로는 촛불이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윽한 향이 대웅전 전체를 감싸고 목탁 소리는 더욱 커져 마당까지 울렸다.

원통보전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는 덕조 스님.

새벽기도를 마친 스님이 타종을 위해 마당으로 나왔다. 산사에서의 삶이 어떠시냐고 묻자 큰 덕이라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에 있다고 힘든 것은 없어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편하게 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상을 목적으로 오르지만 저희는 산을 오를 때도 부처님의 도랑을 걷는다고 생각하며 일종의 수행을 하는 것이죠.' 새벽의 공기는 무겁다. 산도 숲도, 그리고 도시의 불빛도 모두 사라져 아직은 어둠에 잠겨있다. 이 무게감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건 타종소리다. 스님의 손끝에서 나온 소리는 크고 부드럽게, 다시 멀리멀리 퍼졌다. 종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모든 사물들이 제자리를 되찾아 가는 듯하다. 맑은 소리는 아주 천천히, 아쉽도록 은은하게 옅어져 간다.

밤이 찾아오면, 산사는 가장 먼저 어둠을 받아들인다.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것도 이곳이다.

*도봉산의 사찰 도봉산은 산의 크기에 비해 사찰이 많은 산으로 작은 암자까지 합치면 60여 개가 넘는다. 이토록 산자락 안에 많은 불교사원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봉산이 풍수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옆으로 산을 끼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며 서울 시내를 내다 볼 수 있어 수양지로 손색이 없는 장소로 신라시대부터 지어진 고찰들이 많다. 대한불교조계종이 33개의 사찰을 선정한 ‘33 관음 성지’ 순례프로그램으로 원통사와 천축사가 관음성지 순례 사찰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약사 순례지로 만월암이 있다. 도봉산의 암자들은 산을 찾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어 생활불교 도량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통사 창건연혁 신라 경문왕 3년 (864년) 도선 국사가 처음 창건해 원통암이라 불렀다. 고려 문종 7년(1053년) 관월 대사가 중창하고, 조선 순조 10년(1810년) 청화 대사가 3번째로 중수했다. 조선 광무 24년(1887년) 응허 대사가 4번째로 중수하고, 현재의 모습은 비구니 자현 스님이 1928년부터 1938년까지 중축·중수한 것이다. 현재 본전인 관음보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9년 건립되었으며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상과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있다. 불화는 아미타탱화가 모셔져 있고 신중탱화 1점과 소종 1점이 있다. 상공암 각자 원통사 산신각 아래 거북바위 윗면에는 상공암(相公岩)이라고 큰 바위글씨가 새겨있다. 세로로 새겨져 있는 바위글씨는 먼저 세로75cm 가로230cm 크기의 직사각형 선을 자연 바위 면에 그린 후 그 안에 큰 글씨로 새겨 놓은 것이다. 이 글씨는 ‘원통사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을 새겼다고 하나 , 누구에 의해서 언제 새겨졌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원통사 10경 영춘화조(迎春花鳥) 봄을 맞는 꽃과 새 적하송간(適夏松澗) 여름에 적합한 솔숲에 흐르는 물 추산상엽(秋山霜葉) 가을 산의 붉은 단풍 동천설악(冬天雪嶽) 겨울 하늘의 눈 덮인 산봉우리 편주괘범(扁舟掛帆) 돛단 조각배 형상 만호점등(萬戶點燈) 만호의 불빛 정교취우(長郊聚雨) 너른 들판에 쏟아지는 소나기 모사한종(暮寺寒鐘) 겨울 저녁 산사의 종소리 무중부도(霧中浮島) 안개 속의 섬처럼 떠있는 봉우리 월하공산(月下空山) 달빛 교교한 텅 빈 산 천축사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이 창건했으며 옥천암이라 명했다. 현재의 이름은 조선 태조 7년(1398년)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예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리면서부터다. 이곳에는 참선도량인 문무관이 있는데, 근래에 세워진 이곳은 부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을 해야 한다. 방문 밖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고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며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격하다. 광륜사 673년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사찰 이름은 만장사였으며 천축사, 영국사와 더불어 도봉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성장했다. 그러다 조선 중기 이후 쇠락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국정을 보기도 했다. 불전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만 두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묵으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금강 선원을 중심으로 요사채가 많다. 구봉사 도봉산 문사동 계곡의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구봉사는 도봉산에서도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문사동 계곡의 핵심지역에 있어 특별한 문화재나 문물은 없지만 풍경이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당인 무량수전과 작은 요사채, 작은 종각이 전부인 작은 사찰이며,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이 있으며, 무량수전 옆에 큰 야외 불상이 있는데 금동의 미륵불이다. 도봉사 고려 시대인 광종 19년(968년)에 혜거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971년 광종이 여주 고달사와 희양산 봉암사, 양주 도봉사와 함께 특별 선원으로 삼았던 곳이다. 2층 크기의 대웅전은 삼존불이 있으며, 중앙이 석가모니불이고 좌우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다. 또한 도봉사 길가 담 벽에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여러 번 소실됐지만, 조선 말 고종 때 벽암 스님이 법당과 부속 건물을 복원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새벽에 바라 본 원통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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