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블로그

조회 수 6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25px-QinshihuangBW[1].jpg

 

 김응남은 사간원 전원을 대동하고 권율의 인사 부당성을 지적한 결의서를 들고 행재소 임금 에게 찾아 갔다.

임금은 도승지로 부터 얘기를 듣고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자, 각도마다 관군과 의병장 간에 불협화 음이 잦아 왜군과 전투에 많은 차질을 갖어 오므로 이를 통합 지휘 토록 하게 하려고 과인이 내린 명령인데 사간원에서 왜들 나서서 그러는거요?"

 

 

 

대 사간 김응남이 아뢰었다

"전하, 이번에 내리신 전라 감사 3도 의병 통합사 건(件)을 걷우시는것이 옳을까 하나이다. 만일 어명 그대로 시행 하신 다면 각도 순찰사들이 제대로 의병과의 관계가 잘 유지 될까 걱정 되나이다"

 

 

 

임금이 차분히 설명 했다

"그동안 관군과 의병 사이 가 원만치 못하여 왜적 토벌 때마다 애로가 비일 비재 하였는바 이번에 권율 에게 경기, 충청 , 전라 3도의 의병을 통합 지휘 하도록 하여 장차 한성수복의 기틀을 마련 하고자 함이오 ."

 

"하오나 , 그렇찮아도 관군과 의병장 관계가 원활치 못하온데 그 위에다 통합사를 둔다는것은 문제가 있나이다. 더구나 권율은 전라감사가 아니옵니까?"

 

 

" 그 동안 관군과 의병장 들간의 불편한 관계를 각도 순찰사 들이 전투에 임하여 제대로만 잘 협조 했더라 면야 과인이 구태어 이런 조치를 내렸겠소?"

 

"전하, 전하의 어명은 백번 옳습니다 ,

 

그러 하오나 지금 권율이 어명대로 통합사로 둔다면 과연 경기 , 충청 의병을 관할할 능력이나 있을지 모릅니다 . 권율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유장에 불과 합니다. 이치 전투 에서 공을 한번 세웠다 하여 너무 중용함은 무리인듯합니다"

 

 

"대사간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게요?. 권율이 어떤 인물 인가는 앞으로 두고 보시오"

 

김응남은 임금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 할수는 있을것 같았다 . 왕은 지금 한성 수복의 꿈을 권율 에게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일 임금 말대로 통합사를 둔다면 의병장도 의병장이지만 권율과 경기, 충청 감사와의 관계도 고려 해 봐야 될 문제 였다 .

 

 

김응남은 임금의 속내를 간파하고 대안을 제시 했다 .

 

 

 

"전하, 이번 어명은 일단 걷우어 주시되, 권율에게 한성 수복의 명을 내려 보내시고 그의 능력을 한번더 점검 해가며 중책을 맡기어도 늦지 않을까 하나이다"

 

 

왕은 조정 대신들의 편견의 한계가 아직도 자신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일단 이번 조치는 보류 하기로 하고 김응남의 말대로 의병문제와는 별개로 권율에게 한성 수복 명령을 내릴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선조의 삼도 의병 통합사 안은 이렇게 하여 발령4일만에 걷우워젔다.

 

 

 

날씨가 추워젔다

한성 주둔 왜군은 6 만명이나 북쩍대었다

 

 

 

. 왜군들은 날씨가 추워진데다가 먹을 군량미 조달이 큰 문제 였다 .

 

왜군들은 잠시 진격을 멈추고 주변으로 나가 약탈 행위를 자행 하기 시작 했다.

 

아래 3도 조선군의 파발마(擺撥馬)가 의주 행재소 까지 연락 되던 교통망이 ,진격의 여념이 없을 때는 방심 했던 왜군이 지방 약탈이 시작 되면서 행재소와의 연락이 며칠씩 끊어지기 일수였다.

 

 

왜군이 서울 점령 한 이래 자기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나 조선군과 내통 하는자라고 의심되는 조선 사람은 가차 없이 목을 처 죽이었다 .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와 한성에서 저지른 만행은 이긍익(李肯翊)이 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잘 기술 되어 있다 .

 

 

"이 시기에 도성안 백성 들이 모두 피난 갔다가 왜군들이 자기 들이 발행한 통행증(帖)을 제시 하면 서울 안 으로 들어 와 살게 하였는데 일본군이 조선인의 생사권을 쥐고 있으므로 그들 에게 절대 복종 하지 않으면 않 되었다 .

 

조선인들 중에는 일본군 에게 아부 하여 그들의 앞잡이가 된자가 적지 않았다. 혹 조선인들 중에 일본인의 횡포에 항거 하여 모의 라도 있으면 앞잡이 들이 밀고 하여 사람 들이 많이 보는 종루(鐘樓)앞이나 숭례문(崇禮門..남대문)앞에서 처 죽이어 남대문 밖에다 불 태워 죽이고 이를 조선인 들이 보게 하였 는데 해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라고 이긍익은 연려 실기술에서는 기술 하고 있었다

 

.

왜군들이 조선 에서 저지른 행위중 제일 잔인한 행위를 오희문(吳希文)이쓴 쇄미록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왜군은 우리 나라 8 도 전역에 걸쳐 나누어 점령 하여 점령지 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성(堡)을 쌓고 산 골짜기에는 터를 닦아 저의들의 거점을 만들었으며 특히 서울 용산 의 용산창(龍山倉), 마포의 광흥창 (廣興倉),풍저창(豊儲倉) 등 중요한 조창(漕倉..배로실어 저장하는곳)은 절대 조선군을 접근 못하도록 하였다 .

 

 

 

만일 이곳에 접근 하여 이상한짓을 하거나 복종치 않는자는 <귀를 자르고 , 눈을 빼며, 살을 도려내고,수족을 절단 하고,가죽을 벗기고, 심장을 도려내고, 몸둥이와 머리를 잘라 긴장대에 매어....등등>인간 으로서 볼수 없는 못된짓을 하여 해골이 쌓여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바다에 넘쳤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

 

 

오희문의 이 글은 전란중 피난 다니며 들은 얘기를 옮겨 쓴 얘기로 다소 과장된 글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왜군의 잔인성과 나라를 짓밟힌 조선 백성들의 침상을 잘 말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할것이다 .

 

 

 

이때 조선의 일본군 주둔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평양근방은 소서 행장,

 

황해도 봉산군 대우길통(大友吉統)

 

,평산(平山) 모리수포(毛利手包),

 

백천군(白川郡) 흑전장정(黑田長政)

 

개성에는 소조천 융경이(小早川隆景)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의병장 조헌은 이우(李瑀), 김봉(金逢), 김경백(金敬白)등과 같이 의병 1000 명을 이끌고 온양 까지 나가 충청 감사 윤선각(尹先覺)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었다

 

 

"공은 충청감사 로서 많은 병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찌 하여 자기 경내만 지키면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착각 하고 있습니까?.

 

의주로 가 계신 임금께는 한성에 돌아 가실 날만 학수 고대 하고 계시거늘 모범을 뵈워야 할 귀공이 그런 태도 때문에 대다수의 충의지사(忠義之士)들도 사기(士氣)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나 있습니까? .

이번에 우리 의병들이 북상하여 한성을 수복 하고자 하는바 동참 바랍니다."

 

 

반응이 없자 조헌은 또 충청감사 윤선각 에게 책망조 글로 원병 요청을 하였다.

 

 

 

조헌의 돌출적 성격을 잘 아는 윤선각은 조헌과 같이 출전 했다가 혹시 선조에게 조헌이 자기 공이라도 먼저 내 세우면 자기는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죄로 문책 당 할것도 걱정 되지 않을수 없었다.

 

 

 

윤선각은 조헌의 1000 여 병력 으로는 한성 수복은 꿈도 꾸지 못할것 임을 잘 알고 있었다 . 더구나 지금 한성에는 왜군 정예군60000 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윤선각 으로 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아예 처음 부터 생각 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조헌은 윤선각이 충청 감사로 오기전 좌승지 시절 부터 조헌이 수시로 임금께 각종 상소를 올려 곤욕을 치룬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윤선각은 조헌의 한성 수복의 북상 행위를 막아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

윤선각은 조헌 참모 장덕익 (張德益)을 불러 들였다.

 

 

 

"내가 당초 에는 조공과 서로 사이 좋게 지내 왔는데

 

그 뒤 의 잡인들의 간언 으로 말미아마 그와 사이가 벌어 지게 되었는데 내, 이제 이것이 후회되오 .

 

금산의 왜군 에게 의병장 고경명 공이 패하여 죽은뒤 왜군이 다시 창궐 하여 호서 지방과 호남이 위험 한 지경에 이르렀소 ,

 

그러니 근왕 북상(勤王 北上)은 우선 금산의 적 부터 친다음 힘을 모아 근왕 해도 늦지 않으니 이점을 조공에게 전해 주시오"

 

하고 장덕익을 후히 대접해 보내 었다 .

 

 

평소 윤선각을 탐탁치 않게 생각 하고 있던 조헌은 윤선각 군의 지원없이는 단독 행동이 불가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윤선각과 합동으로 금산 왜군 부터 먼저 치기로 결정하였다 .

 

 

 

충청 감사 윤선각은 조헌이 데리고 온 의병중 관군 출신자 부터 골라내어 강제로 관군에 다시 편입 시켜 자기 지휘를 받게 하였다 .

 

 

조헌은 이같은 윤선각의 행위에 즉각 반발 하여 윤선각과 뜻을 같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 하였다

 

 

윤선각은 한술 더떠 관군중 에 조헌군에 합세한 청양 현감 임순을 공주옥에 가두어 놓고 이를 군율로 다스리겠다고 하며 다른 수령들도 이와 같이 하면 엄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

 

 

 

또 자기 말에 잘 동조 않고 의병고집을 하는 자들에게는 그 가족을 트집잡아 하옥 하기도 하였다.윤선각은 충청도 각읍에 공문을 보내 어 의병과 협력을 하지 말것을 지시 했다.

 

 

관군 으로 있다가 의병 으로 가담 했던 자들을 원대 복귀 시키는등 의병 대부분이 관군에 편입 되자 조헌은 편입을 거부하는 의병을 모아 보니 겨우 700 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

 

 

윤선각은 조헌 의병을 해체 위기 까지 몰아 놓고도 자기가 제안 했던 금산성 전투는 꿈도 꾸지 않고 않았다 . 조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었을 뿐이었다 .

 

 

"윤감사, 금산성 왜군은 언제 칠려 하오?"

 

 

하고 조헌이 다그쳐 물었다 .

 

 

"조공 , 적은 일본군 중에도 풍신수길이가 제일 신임하는 정예군 이라는것을 명심 하시오 .

 

적장 소조천융경 이나 안국사 혜경은 비록 이치령 전투에서 권율군 에게 패하기는 했읍니다 만 아직도 병력이 적지 않습니다 .

 

 

 

조공도 아시다시피 맹자께서도 천시는 불여지리(天時는 不如지利)라 하였습니다

 

. 지금 조공 께서는 너무 서두시는것 같습니다

 

 

 

.적이 지금 금산성에 주둔하고 있읍니다 만 이치령 패전을 만회 라도 할듯 이를 갈고 경비에 임하고 있어 그들의 동태 파악 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적과의 결전장소나 시일을 파악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 합니다. "

 

 

" 그렇다면 감사께서는 적을 치지 않겠다는 말씀이오?"

 

 

"어찌 눈앞에 적을 두고 치지 않겠 습니까? 다만 그들과 전투 할 장소와 때를 파악 하기 위하여 시간을 벌자는 얘기입니다"

 

 

조헌은 윤선각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감사와 같이 하겠다는 것이 잘못이었소

 

, 지금 행재소 에서는 일각이 여삼추 (一刻이 如 三秋)와 같이 왜적을 몰아 내기를 기대 하고 계시거늘 감사께서는 그래가지고 언제 적을 치겠다는 얘기요? 나는 나대로 가리다,"

 

 

 

충청감사 윤선각에게 실망을 느낀 조헌은 즉시 700 명의 의사(義士)만을 데리고 청주성 함락시 같이 싸웠 다가 유성 에있는 사찰로 돌아 갔던 영규가 있는곳을 향하여 떠났다 .

 

 

유성으로 향하여 같이 가던 전 참봉 (前 參奉) 조광륜(趙光輪)이 말한다

" 주장(主將)어른 , 금산의 적은 이치령 에서 패 했기는 하지만 그들은 일본군의 정예군 입니다 .적들의 숫자는 아직 정확히 모르를뿐만 아니라 그들의 방비 테세 를 파악 할수 없습니다 , 기회를 보아 행재소의 분부를 기다린후 치는것이 옳을 듯합니다. "

 

조헌의 생각도 조광륜의 생각에 동의 하지 않는바 아니나 탄식 비슷이 대답한다

 

 

"그대 말은 옳기는하나 상 께서 의주 까지 쫓겨 가시어 고생을 하고 계신데 어찌 신하로서 일각이라도 헛되이 승패 여부만 따지고 소일한단 말이오?

 

보시오 왜군들이 우리의 성을 빼았고 노략질을 일삼는데 기고 만장한 왜놈들을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이오 ?내 기어코 놈들을 몰아내고야 말겠오 ,

 

내게는 오직 한번의 죽엄만 있을 뿐이오, 별장은 내 심정을 이해 해주기 바라오.".

 

 

조광륜은 조헌의 얼굴을 보니 그의 각오를 꺾을수 없음을 알고 자기 스스로도 조헌의 의사에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부하 제장 들을 불렀다 .

 

 

여기에 출석한 주요 장수들은 다음과 같다

 

 

전라 병사 (全羅兵使) 선거이(宣居怡)

전라 소모사(全羅召募使) 변이중(邊以中)

전라도 조방장(全羅道助防將) 변사정(邊士貞)

악산군수(益山郡守) 황진(黃進)

전라도 도사(全羅道 都事) 최철견(崔鐵堅)

의병장( 義兵將) 임희진(任希進)

편비(編裨) 위대기(魏大奇)

편비(編裨) 공시억(孔時億)

 

 

권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 .

 

 

"금산에서 참으로 훌륭한 의병 두분을 잃었소

 

, 조헌공과 영규 대사가 바로 장본인들이오 , 제장들도 잘 아시겠지만 조헌공은 이번에 한성 수복을 목표로 하다가 충청 순찰사 윤공의 권유로 금산성을 먼저 치기로 하였다 가 참화를 당했고 , 그리고 영규 대사는 당초 나와 같이 한성 수복의 약속 까지 이미 받아 놓은 상태 였는데 조공과 같이 전투중 장열히 죽은것이오 .모두 하늘의 뜻이니 어찌 하겠소?

 

 

어찌 하였던 돌아 가신분 들은 모두 근왕 의 길을 항상 주장하신 분들 이라는 것은 틀림 없으니 그분들의 뜻을 기리는 의미 에서도 한성 수복은 필히 해야 겠소

 

 

 

최근 까지도 평양 이남은 모두가 적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는 데 이러고 만 있을수는 없는 것이오 .

한성은 우리 조선의 근본이 되는 땅인데 이를 왜적 에게 유린 당한지 벌서 수 개월이 흘렀소.

 

 

 

더구나 적들은 평양과 함경도 까지 처들어가 보급로가 한없이 길어 지자 주변 민가를 덮쳐 약탈 행위가 끊이지 않으니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수만은 없는 일이아니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곳 전라도는 왜적이 아직 점령 당하지 않아 왜적들의 만행을 겪어 보지 못 하였지만, 들리는바에 의하면 경상도지방 만해도 백성들이 길위에 부황이나서 죽은 시체가 즐비 하다 하오.

참으로 통탄할 일이오 .

 

 

 

어서 한성을 수복하여 임금을 모셔 놓아야 왜적들이 조선이 있을 곳이 못되는줄로 알고 저의 나라로 돌아갈것인즉 우리가 이러고만 있을 때가 아니오."

 

.

 

병사 선거이가 나서서 말 한다

"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 임금께서 저렇게 의주까지 가셔서 환도 못하고 있는것은 그 책임이 임금을 모시고 있는 신하 장령들 에게 없다고 할수 없는 것 인즉 근왕군을 구성 빠른 시일내로 출동 함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

 

 

 

소모사 변이중이 일어나 걱정스러운듯이 말하였다

" 하오나 혹시 경상도에 진을 치고 있는 왜병들이 우리가 서울로 올라 간사이에 전라도를 공격 하지 않을까요?"

 

 

조방장 변사정이 말하였다

"소모사 말씀도 옳은 말씀 이오나 그것은 적의 동태를 잘 알고 말씀하셔야 됩니다 .

 

적의 주력 부대는 모두 한성 과 평양에 총 집결 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는 적의 보급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 밖에 없습니다

 

.적의 경상도 경비 병력만 으로는 경상도를 뒤흔들고있는 곽재우 의병 때문에 경상도를 떠날수가 없습니다 .

 

 

 

설사 우리가 서울로 향 하고 있는 도중에 라도 적이 전라도를 칠 의사가 있다면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 주력 부대가 이곳으로 내려 오지 않고는 성사 시킬수 없습니다

 

,그런데 적 주력 부대가 볼때 우리가 서울로 진격하고 있는데 우리를 막아야지 전라도로 내려 오겠습니까?"

 

 

권율이 조방장 변사정의 말을 받아 말한다

"과연 조방장 생각이 내 생각과 일치하오 .

 

우리가 북상 하는 데도 불구 하고 적들이 이 남 쪽으로 내려 온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경기도 지방에는 옛날 과 달리 경기도 안성 지방에 의병장 홍계남 장군이 버티고 있오 .

 

홍장군과는 나와 서신 을 몇번 씩이나 주고 받은 관계이니 적들과 싸움에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오.

 

그분도 우리 대군이 북상하여 적들을 한성에서 몰아 내고 임금을 서울로 모셔 올것을 여러번 간청 하고 있오"

하고 말하였다 .

 

 

전라도사 최철견이 반론을 편다

"하오나 전라도를 비워 둘수는 없는것 아니옵니까?"

. 권율은 이말에 한참 망서리 다가 황진에게 지시한다

" 황장군, 황장군은 전주 감영을 지키셔야 겠소 "

 

 

이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요양 하도록 하고 있던차에 호출을 받고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황진은 권율의 느닷없는 한마디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듯이 잠간 어리 벙벙 하였다.

 

 

황진은 출진에 동참 할것을 간청 하였다

"아닙니다 , 이제는 저의 부상이 이 이렇게 쾌차 되어 이제는 얼마던지 옛날 과 같이 전투에 임할 자신이 있습니다 . 이번 출진에 저도 같이 출전 하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 저의 소청 이옵니다."

 

"황공은 부상된 몸으로 아직 후유증이 있을지 모르니 원거리 장정에는 부적합하오.

 

전주감영은 이치와 웅치만 잘 지키면 큰 걱정 될일은 아니니 그대로 하시오"

 

 

황진은 못마땅한 얼굴로 권율을 바라 보고 있었다 .

"하오나......"

"다른 말은 필요 없오, 명령이오"

권율은 단호하게 황진의 말을 막았다 .

"........."

 

 

황진이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있자 권율이 재차 지시한다 . 황진의 부상을 고려 해서 하는 말이었다

" 황장군이 아니면 이곳을 지킬 사람이 없소

 

, 꼭 전선에서 싸워야만 근왕의 길이 아니오 ,

 

이곳을 지켜 주어야 우리 군이 안심하고 서울을 수복 할 것인즉 내 말을 명심 하시오 .

 

대신 문제가 있는 것은 아직도 금산에 는 소조천 융경과 안국사 혜경 왜군이 남아 있어 혹시 내가 북진중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이번 북상길은 웅치를 넘어 진안을 거처 금산에 있는 소조천 융경의 잔당 들을 완전히 소탕 하고 온양 방면으로 진군 할것이니 그리 아시오"

 

 

황진은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

 

 

 

권율은 다시 한성 수복에 관하여 화두를 바꾸었다

 

 

" 전주성 문제는 그렇고 , 서울을 탈환 하려면 우선 적의 동태를 파악 해 야 할 것인즉 한성 가까이에 접근 하여 적들과 대치 하여야 적들의 간담 이 서늘 해질것 이오, 옛말에 不入虎穴이면 不得虎兒 (호랑이 굴에 들어 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소 .

 

 

지금 경기도 관군은 의병장 홍계남을 제외 하고는 거의가 강화도에 들어가 한성 수복을 노리고 있는모양인데 그것이 문제인것이오 .

 

 

나도 처음에는 강화로 갈것도 생각 해보았지만 한성수복 의지와는 동떨어진 생각이라는것을 느끼었소 . 우리는 적의 코 앞인 수원을 거처 한성으로 정면 돌파 할것이니 제장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오"

 

 

권율은 정병 (精兵) 1 만명을 이끌고 한성수복을 목표로 북상 (北上)길에 올랐다 .

 

먼저 웅치를 넘어 진안 으로 진군 하였다 .

 

 

권율 로서는 감개 무량한 날 이었다 .

 

지금은 적의 수중에 있는 서울 인왕산 밑 에서 있는 집을 회상 하고 있었다.

권율은 적홍색(赤紅色)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고 동철 (銅鐵) 투구를 머리 위에 쓰고 백마 위에 높게 올라 타 고 진군 하기 시작 했다 .

 

 

 

제장들이 말을 타고 그 뒤를 딸았다 .평소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권율군들은 눈빛이 번뜩여 그 위세가 대단 하였다 .

 

조헌군에게 혼이 난 소조천 융경은 성밖에 쌓여 있는 조선 의병 들의시체 들을 끌어 모아 화장 시키고 자기들의 유기된 시체도 성안으로 끌어 들여가 화장 하였다 .왜군들도 적지 않게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찰대로 지쳐 있었다 .

 

 

 

안국사 혜경이 소조천융경 막사에 급히 찾아 왔다

 

 

" 전주에 있는 권율군이 웅치를 넘고 있다는데 소식을 들었습니까? "

" 금시 초문인데요?"

"방금 조선군 첩자인듯한자를 잡아 문초 해본결과 권율군이 분명히 이 웅치를 넘어 진안 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그 위세가 대단 하다 합니다 , 아마 우리를 목표로 오고 있는것 같습니다 "

 

 

" 음 , 권율이라....."

소조천융경이 이치령의 악몽을 잊지 못하는지 한숨을 깊게 쉬고 말을 꺼낸다

" 권율군은 우리가 직접 싸워 봤지만 그 용의 주도한 전술을 당할수 없는자 아닙니까 ? , 더구나 우리는 조헌 의병들 과 전투 후유증으로 수습 조차 되지 않은 상태인데"

 

 

" 장군, 지금 이런 상태로 적과 부디치면 우리는 그나마 지금 살아있는 장병들 까지 모두 잃을까 두렵습니다 . 이치령 전투때 생각하니 치가 떨립니다 "

"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 일단 성주로 후퇴 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

 

 

" 그래도 한번도 싸워 보지도 않고 후퇴 한단 말이오?"

"知者之慮 必雜於利害 ( 지혜 로운 사람은 이해<利害>를 함께 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치령 싸움과 조선 의병 과의 싸움에서 엄청 나게 물질적 으로나 정신적 으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

 

적은 지금 정예 1만 대군 입니다 ,

 

우리는 조선 의병 과의 전투 에서 병력의 많은 손실을 보았 습니다 ,

 

일단 물러나는 것이 상 책입니다 "

" ......."

 

 

소조천 융경은 할 말이 없었다 .

 

여기서 죽느냐 아니면 후일을 기하느냐 그것 뿐이었다 .

 

왜장은 성주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

 

왜군은 권율군이 금산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주 방면으로 퇴각 하기 시작 했다 ,

권율군 대 부대가 북상 중인것을 보고 무주부(茂州府)와 옥천 (沃川)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들도 잇 달아 철수 하기 시작 했다

 

 

권율은 적의 저항에 대비해 척후병을 보내어 동향 파악을 시켰 으나 적이 모두 도망 갔다는 것이었다

 

 

 

권율은 피 한방울 않 흘리고 금산성을 점령 하였다 .

병사 선거이가 의견을 말한다

" 지방민 얘기를 들어 보니 적들이 성주 방면 으로 도망 가고 있다 하온데 그들이 행군 지역은 계곡이 험한 지역이므로 우리가 복병 이라도 배치 하여 적을 섬멸 하고 난후 북상 하면 어떻 겠습니까 ? "

하고 건의 했다.

 

 

 

권율이 말한다

 

"그건 않되오, 용인(龍仁) 전투 때도 한성 수복 을 눈앞에 두고 , 당시 전라 감사 이광 공이 작은 공(功)에 집착 하다가 큰 과오를 범한 것을 생각을 해 보시오 . 우리에게는 한성 으로 행군 하는것이 더급하오 "

하고 한성을 향하여 북상길을 재촉 했다.

 

 

권율이 진산(珍山)을 거쳐 고산(高山)이르자 체찰사 (體察使) 종사(從事) 황붕(黃鵬)이 마중나왔다 , 그는 권율군이 한성 수복 근왕병을 이끌고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체찰사 정철의 명을 받고 마중 나온것이다..

 

 

권율은 정철의 종사관 황붕을 식사를 나누면서 마중 나와 고맙 다고 인사를 나누자 황붕이 권율 에게 체찰사 정철의 의견을 전해 주었다.

 

 

" 체찰사 께서는 지금 북상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저에게 이를 중지 하도록 해 보라는 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

 

체찰사 께서 걱정 하시는것은 지금 왜군이 평안도와 황해도 를 완전히 왜군이 점령하고있어 임금이 계신 행재소와 연락이 두절 된 상태에 있고 언제 적이 전라도를 칠지 모르니 이런 때는 공격 보다 임지를 수비 하는 것이 상책이라 하십니다

 

 

체찰사의 의견도 일리 있으시지만 지금 임금께서 파천하여 계시고 종묘와 사직이 왜군에게 짓 밟혀 있는데 신자(臣子) 로 있는자가 어찌 편히 전주만 머물러 있겠는가?

 

내 한성 수복의 신념은 불변이니 그리 전해 드리시오 "

 

 

하고 권율은 가슴이 답답 하여 막걸리를 가져 오라 하여 단숨에 한사발을 들이 켰다 .

 

 

황붕은 권율의 신념을 꺾을수 없음을 알고 자리 에서 일어나 밖에 세워놓은 말을 타고 체찰사가 머무르는 아산으로 향하였다 .

 

권율의 소신에 혀를 내두른 채챂사 종사관 황붕은 정말 앞으로 저런 장군이 있는한 희망이 있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서울을 수복하겠다고 결의에 찬 권율의 모습과 비교하면 왕명을 받고 아산에 머물고 온양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체찰사를 생각하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속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

 

아무리 자기의 생관이지만 목욕탕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지시만 일삼는 체찰사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 없었다

 

 

 

체찰사란 왕대신 전선에 나가서 일반 군 업무를 총찰하는 군사 책임자로서 보통 재상이 겸임하는것이 보통이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맡은 체찰사라는 사람이 전란중에 온양온천이라는 온천지역에서 온천욕이나 즐기고 있으니 이게 될일인가?

 

그들은 말로만 대쪽 같다느니 국가에 충성을 다하느니 하고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왜란 전부터 동인 서인하면서 당파 싸운을 일삼고 있었으니 왜군들이 온국토를 유린해도 방법이 없을수 밖에 없었다

 

 

 

권율은 즉각 붓과 먹을 갖어 오라 하여 손수 음서(陰書...임금과 장수가 남이 알지 못하게 서로 통지 하는 문서를 작성 하였다 .

 

 

"삼가 아룁니다 ,

 

 

오늘날 나라 형세는 하루 앞을 내다 볼수 없이 바뀌고 있아 옵니다.

 

 

신이 광주 목사로 부임 한 이래, 재주 없는 몸으로 중책을 맡아 있던중 이치령 에서 적을 물리친 것이 큰공도 아니 옵는데 전라도 순찰사로 제수 까지 하시어 그동안 여러 고을을 찾아 민폐를 찾은바 있습니다 .

 

 

전하께서 한성을 떠나심 으로 부터 인심이 허물 어저 지나는 곳 마다 민심이 자리가 잡히지 않아 민심이 흉흉 하나이다. 백성들은 사전 대비를 하지 않아 왜란을 일으키게한 나라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결국 원망 받고 있는자가 원망하고 있는사람을 다스리게 되는 격이 되는것이니 이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역 하고 있는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또 이것은 모두 조정이나 우리 같은 장수들이 전하를 잘 보좌 해드린 탓이 아니고 무엇이 겠습니까 ?

 

 

 

전하, 원망하고 있는 백성들을 잘 다스리려면 그들을 평안케 해주어야 합니다 .백성을 평안케 하려면 빨리 왜군을 몰아 내야 합니다 .왜군을 몰아내고 전하께서 한성으로 돌아 오시어 옥좌에 앉아 계셔야 백성들은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고 천하는 태평 하게 될것이옵니다

 

 

 

.전하께서 한성에 돌아 오시어 제자리로 돌아 오신다는것은 고기가방죽을 얻고 새가 수풀을 얻는것과 같을 것이옵니다.

신이 이번에 거병하여 한성 수복을 결행 하고 북상중에 있사온데 쳬찰사께서 북상을 중지 하고 지역에 머무는것이 좋다고 체찰사 종사원을 통하여 신에게 권고 함으로 신이 이를 어찌 할까 모르겠나이다

 

 

전하, 신은 한시 바삐 한성을 수복 하여 왜적을 몰아 내고 임금 께서 환도 하시기를 갈망 하고 있나이다 .임금께서 환도 하시어야 임금의 권위가 사해 에 떨칠 것인즉 어찌 북쪽 에 계시면서 만 백성을 다스릴 수 있나이까 ?

 

최근 명나라 심유경과 왜국의 소서행장이 조선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어찌 이런 모욕을 받아야 되겠습니까?

 

조정 대신 중 에는 적의 주력군이 너무 강대 하므로 관망 하자고 만 하므로 장수들은 무얼하는 사람들 이냐 하면서 꼼짝 못 하고 모욕 만 당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장수의 모욕이 아니라 전하의 모욕입니다 ,

 

 

 

신은 어떤 모욕이 있더 라도 몸과 마음을 받처 왜군을 이 땅에서 몰아 내고 주상을 서울 한 복판 으로 모시겠 나이다 .

신이 한성 수복 계획을 잠간 말씀 올리면 이전의 전 전라 감사 이광이 광교산 전투와 용인 전투를 할때 적의 동정을 충분히 파악 않고 무턱대고 한성 으로 직행을 한일이 있었습니다.

 

 

 

그런일 때문에 적 에게 패한 일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수원 근방 에서 기습과 공격의 양면 작전을 써서 적의 예봉을 꺾은 다음에 새롭게 작전 계획을 새웠습니다

 

 

 

광교산 , 양천 , 강화 통진 , 에 지원군을 을 배치 하고 적의 동향을 파악 한 다음 주력군을 금주를 경유, 한강을 도강 하여 공덕리 뒷산에 진을 치고 소의문과 돈의문으로 돌입하여 한성 수복을 할까 하나이다 .

 

전하 께서는 신의 이 계획을 윤허 하여 주시옵소서 "

 

 

 

권율은 이 음서를 왕 에게 비밀히 보내야 하겠으나 ,정작 믿을 만한 인물이 없었다 .

 

 

 

권율은 잠시 망설였다가 깊이 생각 끝에 정충신을 불렀다 ,

 

 

정충신은 권율이 광주 목사로 있었을때 부터 데리고 다니는 17세 의 통인으로 있는 정충신은 광주 아이로 그의 소년 심복 으로서 성격이 차분하고 재빠르며 대담하고 명석 하며 사리 분별이 분명한 믿을만한 소년이었다 .

 

 

"충신아 , 이리 오너라 , 내가 음서를 의주에 계신 임금께 올려야 겠는데 너 밖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 . 이 음서를 의주까지 가지고 가서 병조 판서 이항복 대감 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느니라. 네 자신 있느냐?"

 

 

"예 알겠습니다 , 걱정 마시옵소서"

 

 

정충신은 17살 소년 답지 않게 선뜻 대답한다 .

"네가 정말 꼭전달 할수 있겠지?"

권율이 재차 다짐 질문을 하자

"어르신 , 걱정 마십시요 , 저를 믿어 주십시요"

하고 권율의 얼굴을 자신 있게 바라 보았다.

 

 

 

권율은 음서를 봉하여 충신 에게 건네 주면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네가 이글은 절대 누가 보든지 왜군이 알면 우리의 작전 계획이 모두 들통 나게 되느니라, 명심 하라"

"네 알겠습니다"

정충신은 선뜻대답하고 음서를 받아 들었다.

 

 

날이 어둑 해 지자. 정충신 이 권율에 찾아 왔다

 

 

"아직 안 떠났 느냐?"

"네 , 지금 떠나려고 인사 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네 행색 이 그게 뭐이며 내준 음서는 어쨌느냐?"

 

 

권율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렇게 소중 하게 간직 하라는 음서는 몸에 지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무꾼 행색에 망태기 하나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제가 나무꾼 모양으로 망태기 안에가 덧 붙여 감쪽같이 위장하였습니다 "

 

"................"

 

권율은 정충신의 재치에 더욱 놀랐다

" 그럼 잘다녀 오거라"

 

 

 

정충신을 선조에게 보낸후 권율은 충청도 아산, 천안을거처 직산으로 향하였다 .

 

 

직산을 순시중이던 정철을 만났다 .

 

 

 

정철은 종사원 황붕의 전갈을 받고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는 계속 권율에게 북상을 중지 하고 자기와 같이 있자고 하였다 .

 

채찰사의 권위를 무시하는듯한 권율의 태도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권율도 할수 없이 체찰사의 의견을 무조건 거역할수도 없어 의주로 보낸 정충신이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

 

권율은 직산에 주둔하고 병사 들을 쉬게 하였다 .

 

정충신은 단신 경기, 황해 평안도의 왜군지역을 거처 의주에 간신히 도착 했다 .

 

 

병조 판서 이항복은 충청도에서 평안도인 이곳 까지 걸어서 나타난 정충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

 

 

 

그많은 적진을 뚫고 온것도 그렇지만 음서를 망태기 속을 겹으로 짜서 그속에 아무도 모르게 가저온 기지에 적지않게 놀랐다

 

병조판서 이항복은 임금께 음서를 올렸다

 

. 왕이 손수 내용을 읽어 보더니 권율의 충성심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오, 장 하도다 , 왜적을 물리 치고 한성을 수복 하겠다니 .....병판의 장인 이야 말로 충신중의 충신 이로다 , "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선조는 그동안 이광을 비롯하여 연안의 고언백(高彦伯), 장단 , 삭녕의 이정향, 이천, 여주,죽산의 성영(成泳), 파주,양주, 광주, 의 심대(沈垈)에게 명하여 한성 수복군을 편성 하려 했었으나 모두 접전 다운 접전을 못 하고 포기 한 상태 였다.

 

 

"병판 , 이 음서 내용을 보니 체찰사가 한성 진격을 반대 하는 모양이구먼....이것 보오"

 

 

이항복이 읽어 보았다.

" 이것은 상황이 곤란하니 지역 방어나 에 힘쓰자는 내용같습니다.

 

하오나 병법에 兵勝之術은 密察人之機하고而速乘其利하며復疾擊其不意라(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은밀히 적의 기밀을 살피고 이로울 때 신속히 적이 생각 치도 못한 곳을 급습하는것) 라고 했습니다

 

 

 

한성수복의 길은 험란 합니다.

 

범을 잡으려면 범의 소굴로 들어 가야만 한다는 속담대로 적이 올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

 

적의 동태를 파악치 않고는 항상 적 에게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하 께서 어명을 내리시옵소서 ."

 

 

"그렇게 하오,

 

그런데 이 음서는 어떻게 이곳 까지 갖고 왔는고?. 적병들이 사방에 깔려 있을 텐데 ..."

 

 

"정충신이란 열 일곱살 난 아이가 나뭇군으로 위장하여 망태기 속을 덧씨워 넣어 가지고 왔나이다 "

 

 

"호 , 갸륵 한지고 , 그런 아이는 장차 중히 쓰도록 하면 좋겠소 "

 

 

" 알겠습니다"

 

정충신은 하룻밤을 묶고 체찰사와 권율 에게 내리는 교서를 받아 들고 적진을 뚫고 직산 까지 무사히 돌아 왔다

권율은 정충신이 무사히 돌아 오자 반가워 끌어 않으며

" 오, 충신아 , 네가 큰 일을 해냈구나 "

하고 반가워 했다 .

 

 

 

권율은 임금의 교서를 읽어 보았다.

 

한성 수복을 기어코 완수 하라는 간곡한 교지였다 ,

 

 

(아 , 드디어 한성 수복의 길은 열리 었구나.....) 권율은 감격 하였다 .

 

어서 왜적을 몰아내고 그리운 한성 땅을 다시 밟아야 하겠다는 희망이 용솟음 첬다 .

권율은 정충신이 가저 온 것 중에서 체찰사 에게 보내는 교서를 따로 보자기에 싸서 정철 에게 보내 었다

 

.

정철은 임금이 보낸 교서를 읽고 다소 놀래 었다 .

 

왕이 천리 밖 의주에서 어떻게 권율군이 여기 까지 진군 한것을 알며 먼저 체찰사가 권율에게 머무르게 한 내용을 알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

 

 

그것은 순수한 문관 출신인인 정철은 비밀한 작전 문서를 가지고 왕과 장수가 남이 알지 못하게 상호간에 통지가 오가는것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

 

그것은 병가(兵家)의 관행 처럼 내려오는 임금과 고위 장수간에 연락 하는 통로라는것을 문신들은 알턱이 없었다.

 

 

체찰사 정철도 왕의 명령이 한성 수복에 있으므로 더이상 권율에게 직산에만 머무르라고 할 명분이 없어 젔다 .

 

 

 

선조는 권율에게 한성 수복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묘향산에 은둔중인 서산대사 휴정(休靜)에게 서찰을 보내어 국난극복의 묘책을 물었다 .

 

 

73세 의 노승은 임금의 서찰을 받아 들고 박쪽 임금이 계신곳을 향하여 합장을 한뒤 개봉한다

 

서찰을 읽고난 휴정은 즉각 동자승에게 가사를 가져 오라하더니 숨 쉴 틈도 없이 문을 나선다

 

영문을 묻는 승려들의 질문에

" 왕께서 의주까지 가시어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우리 불자 들이 안일하게 이렇게 사찰에 만 앉아 불공만 들여서 되겠는가 ? 국난 극복의 묘책 이라 합시고 편안히 앉아 임금께 글 몇줄써서 보내서야 되겠는가 "

하고 다른 스님들의 만류에도 불구 하고 묘향산을 떠나 압록강까에 있는 의주 행재소 까지 찾아 갔다 .

 

 

임금은 휴정이 찾아 왔다는 말을 듣고 즉시 들어 오라 한다

 

 

" 대사 께서 먼거리에 이렇게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찾아 오실 줄은 몰랐 습니다 .그럴줄 알았으면 과인이 묘향산 으로 찾아가 뵈워야 하는데....."

 

" 임금 께서 이곳 까지 피난 오시어 고난을 당하고 계시 온데 소승이 그동안 찾아 뵙지 못한것을 용서 해 주시옵소서 "

" 별 말씀 다 과인 이 부덕한 탓이지요.나라가 존망 지척에 위기에 처하여 대사의 고견을 바라오니 적극 협조 해 주십시오"

 

 

" 지금까지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우리가 해야 할일을 소승 들이 너무 소흘히 한것 같습니다

 

. 앞으로 전국 사찰이 일어나 나랏 일에 적극 돕겠습니다

 

 

 

, 허나 우리 승 들이 해야 할일이 무엇이냐 하는문제에 봉착 하게 됩니다 .

 

고려때 몽고군이 처들어 왔을 때 승려들은 대장경 이나 파면서 불경 이나 외우고 있었습니다 .

 

그런고로 수십년을 강화도 에서 나오지 못하고 백성들이 얼마나 고초를 당했나이까?

 

 

조선은 그동안 고질적 당파싸움 때문에 피페 해진 국정으로 왜군을 불러 들인결과 가 되고 말았습니다 .

 

우리 승려 들이 할일은 창과 칼을 들고 싸우는 일이외는 뾰죽한 수가 없습니다.

소승이 돌아가 격문을 돌려 늙고 병들은 스님들은 사찰을 지키게 하고 젊은 승들은 총 동원 토록 하겠습니다 ."

 

 

" 그러시면 우선 이번에 전라감사 권율이 한성수복길에 나섰는데

승군을 동원 해 주셨으면 합니다 "

"네 , 알겠습니다 , 우선 소승의 수제자인 처영(處英)이 지리산 사찰에 있는데 당장 권율군에 합세 하도록 하겠습니다 "

" 고맙습니다 , 대사에게 팔도 십육 종도 총섭(八道十六宗都 總攝)으로 임명 하겠사오니 승병들을 통솔 하시어 충성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 "

 

 

 

권율이 진위로 접어 들때쯤 멀리서 일단의 승군들이 뿌연 먼지를 리으키며 권율군에게 닥아 오고 있었다 .

 

"제게 어느 군사이냐?"

 

권율은 혹시 자기의 작전계획이 왜군에게 알려지어 복병이 나타난줄 알고 약간 당황하였다

알아보니 처영의 승군이었다 .

 

권율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지난날 이광 밑에서 한양수복을 위해 광교산에서 곤욕을 치루었던 생각이나서 그쪽은 바라보기도 싫었다

 

 

한편 왕은 정충신을 떠나 보낸후 다음날, 병조 판서 이항복을 불러 들였다.

 

" 그 아이가 잘 들어 갔겠오?"

임금은 17세 소년에게 아무 호위도 없이 보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 걱정 마시옵소서. 그아이기 얼마나 영특한 지는 장인어른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임금은 별안간 선전관을 들라 했다.

 

선전관이 임금 앞에 들어오자, 임금은 친히 곤룡포에 차고 있던 보검을 풀어 선전관에게 주며 영을 내렸다.

 

 

" 선전관은 들어라. 이 보검을 갖다가 근왕 대장 권율에게 전하여, 적 과의 전투때는 군사들에게 왕이 내린 보검임을 알리고, 평소 지휘시에는 만일 근왕 대장 권율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이 칼로 목을 베어 군령을 세우도록 하게하라.

 

 

 

그리고 앞서 한성수복에 대한 교서를 다른 인편에 보내었는바 잘 받았는지 확인 하고 못 받았을 경우에 대비 하여 과인이 별도의 교서를 내릴 것이니 근왕 대장에게 전하도록 하라."

하고 영을 내렸다.

 

 

이항복은 임금의 돌발적 행동에 당황 하였다.

 

 

" 전하, 지금은 적들이 서울 이북에 물샐틈 없이 가로 막고 있어 보검을 전할수 없나이다. "

하고 이항복이 말했다.

 

 

" 병판, 병판은 참 답답 하오.

 

이 보검은 근왕 대장 권율이 지금 같이 군사들의 사기가 왕성 할때 내려야 효력을 발하는 것이오.

 

선전관은 과인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이 보검을 받고 배를 타고 서해 바다를 돌아 강화도를 거쳐서 남양만으로 하여 수원 근방으로 가서 근왕대장을 만나도록 하여 이 검과 추가 교서를 전하도록 하라. "

하고 어명을 다시 내리었다.

 

 

" 명령 대로 거행 하겠나이다."

 

 

선전관은 두 손으로 칼을 받아들고 물러 나갔다.

 

 

병조 판서 이항복은 순간 임금의 얼굴을 쳐다 보기가 낯이 뜨거워 졌다.

 

임금이 이렇게 까지 장인 권율에게 기대를 갖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어사검(御賜劍) 까지 하사 하시고 구체적으로 전달 방법 까지 알려 주는등 한성 수복을 염원 하시는 용안을 차마 바라 볼수가 없었다.

 

 

" 병판은 과인을 바라 보오. 내가 좀 흥분 했나보오."

임금은 아까와는 다른 차분한 어조로 바뀌였다.

 

 

" 전하, 소신이 전하의 그런 깊은 뜻을 모르고 적이 가로 막고 있다는 말만 늘어 놓아 불충된 말을 하여 황송 하나이다."

 

" 아니오, 병판도 걱정이 되어 그렇겠지 . 과히 심려 마시오"

 

임금은 이항복이 무안한 태도를 가라 앉히고 자리를 일어났다.

 

 

 

선전관은 왕의 보검과 교서를 들고, 서해 바다를 돌아 진위(振威)부에서 권율을 만나 어사검을 하사했다.

 

 

 

권율은 어사검을 받아 들자 땅에 잠시 놓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어 엎드려 큰 절을 올린다

" 전하, 기어코 전하의 뜻을 이루겠 나이다.".

권율의 눈에는 어느새 결의(決意) 에찬 눈물이 약간 맺혔다.

 

 

권율은 즉각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 전라 조방장 조경(趙敬)소모사 변이중(邊以中), 의병장 변사정(邊士貞)의병장 임희진(任希進) 의승장 석처영(釋處英) 과 작전 회의를 가졌다.

 

 

 

권율이 이 자리 에서 임금의 어사검(御賜劒)을 내 보인다

 

" 제장 들은 들으시오, 아까 행재소 에서 임금 께서 어 사검을 내리시며, 선전관 에게 이르기를 한성을 기필코 수복 이루라는 간곡한 어명이 계셨소. 또한 임금 께서는 교서를 내리 셨는데 한성의 적을 물리치라는 특명이 내렸소.

 

 

 

전하께서는 전하가 항상 옆에 두고 아끼던 보검을 내려 주시며 만일 영을 거역 하는자는 이 칼로 단죄 하라는 특명이오

 

 

제장들은 각오를 철저히 하되 앞서 용인 에서 오만의 근왕군이 크게 패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한성으로 직집 처올라가지 않고 우리가 지금 주둔하고 있는 진위 에서 서북 쪽에 있는 독성산성 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작전계획이니 그리들 아시오".

 

 

 

말을 마치기 바쁘게 권율이 보검집에서 칼을 뽑는다

 

칼날 끝이 빛에 반사하여 금방이라도 내려치면 무엇이라도 추풍 낙엽처럼 날아갈듯 싶다

 

모두가 숙연 해지었다 .

 

 

 

임금이 보검 까지 대장에게 내렸을 때는 모든 군사에대한 전권을 권율에게 맡긴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장수들도 체찰사 때문에 명령계통이 들어 먹히지 않는 혼선이나 작전을 제지 받을 일도 없어 좋았다

 

 

선조는 조신들을 행재소로 나오도록 하여 회의를 열었다..

 

의주 관아 행궁은 임금과 조신들이 모여 논의 하기는 너무 비좁았다.

 

 

" 지금 한성 남쪽에는 전라 감사 권율 에게 과인이 근왕 대장 으로써 한성 수복에 전념하라 고 지시해 놓고 있소.

 

권율공이 계획 대로만 선전 할수 있다면 한성 수복의 꿈은 깨지지 않을 것이요. 하지만 북쪽에 있는 우리 군이 왜군을 막지 못한다면 적들이 남쪽으로 집중 공격하게될 우려가 있소.

 

듣기에는 8월 중에 명나라 이여송 제독이 요동에 도착하여 경략 송응창과 작전 회의 중이라는 전갈을 받았었소.

 

명군이 오기 전에 북쪽을 방어 하고 있는 조선군의 대책등 시국 수습책을 말해보오."

 

 

바깥 날씨가 차가운 탓에 관아 대청에 모인 대신들도 속옷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추위를 느끼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첫마디를을 꺼내었다

" 전하 , 명군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되면 일국의 존망을 타인의 손에 송두리째 넘겨주는 한심한 결과를 주게 되는 노릇 이오니, 명나라 동정군이 올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오라, 우리가 먼저 적을 쳐서 대책을 세워야 할것이 아닐까 하나이다. "

 

 

"경의 말이 옳소 그러면 비변사에서는 8도의 선전관을 급히 보내 순찰사와 각 장령 들에게 명나라 군의 지원이 조만간 있을 것이니 힘을 내어 싸우라고 전달 하오."

 

 

우찬성 최황이 아뢰었다.

" 전하, 명나라 군대가 올때만 기다리라고만 해서는 않되옵고 , 우선 각군에게 군사를 더 모아 병력을 강화하고 질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 이므로 지금 황해도 중화, 봉산, 황주등 평양 남쪽의 군사들을 철수하여 평안도 순안의 집중 방어할 필요가 있나이다. "

 

 

"왜장 흑전 장정이 황해도 일대를 노략질 하고 있는데, 그나마 세곳에서 조차 물러나면 백성들이 어찌 한단 말이오 "

 

 

선조가 백성 들을 걱정 하였다 .

 

 

사간원 정언 (司諫院 正言) 황극중(黃克中)이 나섰다 .

"전하 그것은 백성 들이 더 중요 하므로 인심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 우찬성 말씀은 무리가 있나이다.차후 도원수와 상의 처리 함이 가한것으로 사료 됩니다"

 

 

이문제는 이것으로 끝났다 .

 

왜군이 북상을 심유경의 협상으로 잠간 멈춘 탓이었다 .

 

 

 

예조 판서 윤근수가 명나라에 다녀 와서 중국 명나라 동정군(東征軍)파견에 앞서 행재소 임금을 경호하기 위한 명나라 군 선발대 2000명이 조선 의주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들은 전방의 왜적이 시시 각각으로 진격해 들어 오고 있는데도 평양방면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임금을 경비 한답시고 유격장 갈봉하(葛逢夏)는 음식점인 의순관에 숙소를 마련하여 놓고 술로 세월을 보내고 꿈쩍도 않고 있었다

 

 

임금이 외교 수완이 있는 공조 판서 한응인을 불러 갈봉하 에게 명나라 군대가 언제 들어 올것인 가를 알아 오라 하였다

 

 

한응인이 의순관에 도착 하여 갈봉하를 만나자고 하였다

종사관이 갈봉하 에게 면접 여부를 묻기 위하여 방에 들어 갔을 때는 술이 덜 깨었는지 귀찮다는 태도로

" 누가 왔다고?"

"예 , 조선 공조판서 한응인이라는 대신 이라 하옵니다"

" 공조 판서라?"

"예"

 

 

"아니 내가 이나라 를 위하여 이렇게 와 있거늘 공조 판서나 만나라 ..... 내 바빠 못 만나겠다고 하라 "

한응인이 몇번을 만나려 시도 했으나 갈봉하는 만내 주지 않았다 .

 

 

 

왕은 답답하였다 .영의정 최흥원을 불렀다

" 공조 판서 한응인을불러 갈봉하 에게 명군 파병일자를 좀 알아 오랬더니 문전 박대만 한다 하오 , 영상 이것 답답해서 ....참"

" 전하 갈봉하가 전투 하러 오질 않고 전하를 경비 하러 온자입니다

그런자가 어떻게 명조의 일을 속속 드리 알겠습니까 ? "

" 그래도 명군의 관한일은 그를 통해야 하지 않소?"

 

 

" 물론 그렇긴 하옵니다 , 저자가 공판을 거절 한것은 전하나 신이 직접 찾지 않고 일개 공판을 보냈느냐 하는것 같습니다 . 제가 그를 찾아 보겠으니 걱정 마시 옵소서 "

" 아니오, 영상 영상이 지금 찾아가면 저자가 사사 건건 과인 아니면 영상을 찾을것이오 , 버릇을 잘못 드릴 염려가 있습니다 . "

" 그러 하오면 대책이 있기는 하옵니다 "

 

 

" 말씀 해보시오""전하 , 명나라 군은 , 먼저 평양 전투 에서 왜군 에게 패 한것을 거울삼아 섯뿔리 조선 전에 대들지 않고 신중을 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

듣기에는 이여송과 송응창의 회담중 먼저 조승훈 의 실전은 조승훈의 지휘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무기 체제의 잘못이 더 크다고 인정하고 포살법(砲殺法)에 의한 전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

 

 

" 포살법이란 어떤것이오 ?"

"네 전하 포살법이란 중국 남방 의 전투 형식으로 포수가 중심이 되어 싸우는 전법입니다 .주로 화포에의한 전투형식으로 왜군같은 조총을 갖고 있는 부대를 치는데 아주 적격입니다 ."

왕이

 

 

"화포를 득수 부대 까지 있다면서 즉시 라도 조선으로 나올것이지 왜 시간을 끌고 주춤거리는 게요?"

하고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

"전하, 명군은 지금 왜구와 전투 경험이 많은 절강 , 복건성에 주둔하고 있는 남방군을 조선전에 투입 하려 하는것 같습니다 .

 

중국은 땅이 커서 남방에서 북 쪽으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아까 방법이라고 했는데 영상께서 한 말씀은 무엇이오?"

 

 

"네 전하 , 유격장 갈봉하가 공판의 면접을 거절하는것은 지기들에 대한 예우를 논하는듯 하오니 조선도 그에 상응 하는 인물을 내세워 대접 하는것이 어떨까 하나이다."

 

 

"그래, 누구를 함이 옳겠소"

 

 

"신의 생각 으로는 유성룡을 내세움이 어떨까 하나이다."

"그는 전란 초기에 체찰사 임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벼슬을 삭탈하지 않았습니까"

"하오나, 그는 한때 영상의 자리 까지 있다가 물러난 인물로 그대로 두기 보다는 앞으로 명나라와의 빈번한 외교 관계를 생각 해서라도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는 책임을 맡기는게 어떨까 하옵니다."

 

 

"유성룡공 이라고 대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옵니다. 유성룡도 전쟁 초기의 그가 아닙니다 . 전 영의정의 명함이 있으므로 저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듣고 보니 영상의 말이옳소. 그런데 유성룡공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순찰사 이원익공과 함께 순안(順安) 지구 안주(安州)에 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를 불러 들여 명나라 장수 접대를 맡기도록 합시다."

 

 

임금은 11월8일 평안도 안주에 나가있던 전 영의정 유성룡을 불러 명나라 장수 접대를 맡기로 하였다.

 

 

 

12월 8일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로 들어갔던 지중추 부사 (知中樞 府使)정곤수가 북경에서 돌아왔다. 왕은 그를 접견하여 명나라 동태를 직접 듣기로 하였다.

 

 

"명나라 사정은 어떤고?"

"네. 신이. 북경에 들어가 명 조정에 주문(奏文)을 바치고 조선을 도와 줄것을 병부에도 들어가 간청도 했나이다. 상서(尙書) 석성(石星)도 직접 만나 눈물로서 애소 한 결과 발병의 윤허를 받았나이다.

 

지금 송시랑(侍郞)과 심(沈遊擊)격이 서로 만나 조선 출병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줄로 아옵니다."

 

 

"그러면 송응창과 심유경(沈惟敬)은 어떤 인물인가?"

"송시랑은 원래가 중국 남부 절강성 (折江省)사람으로 병부 우시랑(兵部右侍郞)으로서 왜군을 치도록 명령 받은 장수 입니다.

 

신이 만나본 송시랑은 군량(軍糧)이 준비되지 않았고 중국 남방군이 요동성으로 집결하는데 시간이 걸려 기다린 연후에 출병 시기를 결정 한다 하옵니다.

 

 

 

또 심유경은 석 상서(石 尙書)의 사람으로 만나본결과 왜군이 일단 화(和)를 청하면 화(和)를 할것이고 만일 이를 거부 하면 왜군을 칠 것이라 하옵니다. "

 

 

"명나라 조정은 왜군이 단순히 우리나라 만을 치고 말것으로 생각하고 있던가?"

하고 정곤수 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석 상서(石 尙書)가 조선에 출병할것을 황제에게 주청 하였는데 황제가 허락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래,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의심 하지 않던가?"

"처음과 달리 지금은 모든것을 이해 납득 한듯 하나이다."

 

 

"그래?, 이여송(李如松)은 어떤 인물인고?"

"훌륭한 명장이라 합니다."

임금은 그제서야 답답한것을 풀고 깊은 잠에 빠졌다.

 

 

 

왜군은 조선의 심장부인 한성(漢城)을 선선히 내 놓을 수가 없었다.

 

 

 

한성은 조선 8도를 지휘 할수 있는 천혜의 도성으로서 함경도와 평안도, 경상도,전라도를 통할수 있는 중앙에 위치한 중요한 곳으로 풍신수길은 조선 주둔 총 사령관을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에게 주둔케하여 풍신수길과 직접 연락하고 있었다.

 

 

우희다수가는 한성입성시 당초 거처를 궁궐로 정했었으나 궁궐이 이미 모두 불에타 쟂더미로 변해 할수 없이 종묘를 주둔군의 본부로 삼았다.

 

 

 

우히다수가는 요사이 꿈자리가 좋지 않았다

 

. 밤에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꿈속에서 조선 장수가 나타나 자칭 신병(神兵)이라고 지칭하며 그의 목을 내리치려하므로 깨어 보니 꿈이었다.

 

 

 

또 울창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조선왕조의 선조들의 위패가 자기 목을 내리누르는 듯 하여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다 병졸들의 실수로 화약이 폭발하여 폭사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히다수가는

"이 종묘에는 신령(神靈)이 나를 괴롭혀 오래 거처 못하겠다. 당장 불을 질러버리도록 하라."

하고, 남별궁(南別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우히다수가는 종묘를 불태우니 조금 불안한 심기가 가시는듯 하였다.

 

 

 

당시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들의 주둔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우히다수가(宇喜多秀家)-남별궁(소공주동)

단후수(旦後守)-소공주동(소공동)

포후수(浦後守)-소공주동(소공동)

풍전 수가리(豊前守家利)-회현동 정사룡(鄭士龍)의 집

부천 기의수(富川紀伊守)-정릉동(현재 정동)

장선 기의수(長船紀伊守)-정릉동(현재 정동)

화방 조병위(花房助兵衛)-정릉동(현재 정동)

명석 소두수중(明石掃頭守重)-정릉동(현재 정동)

강원 병고수(江源兵庫守)-정릉동(현재 정동)

화방지 마개직지(花房志摩介職之)-정릉동(현재 정동)

부천 현번윤(富川玄番允)-미색동(美穡洞)(현재 롯데 호텔 주변)

석전 삼성(石田三成)-명례동(明禮洞)(현재 명동)

대곡 길계(大谷吉繼)-묵사동(墨寺洞)(현재 묵동)

증전 장성(曾田長盛)-주자동(현재 주자동)

전야장강(前野長康)-호현동(好賢洞)(현재 회현동)

가등 광테(加藤光泰)-장흥고동(長興庫洞)(현재 내자동)

 

 

풍신수길은 서울 점령 장기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우히다수가 에게 영을 내려 서울 도성민을 성내로 들어와 살도록 무마책을 썻다.

 

 

 

우히다수(宇喜多秀家)가는 방(傍)을 써붙였다.

 

도성내 백성들은 들으시오. 복(僕)이 우리 전하의 명에 의하여 여러 조선 백성들을 잘 살게 하라는 명을 받아 여러분들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하니 속히 옛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충실하시오. 절대 우리 일본군을 의심하지 마시오."

하고, 선무(宣撫) 공작을 펴기도 했다.

 

 

우히다수가는 여기에 끝나지 않고 조정이 도성을 버리고 북행길에 오른직후 한성이 텅텅 비자 왜군들은 경기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입성을 권고 하는 방을 써붙여 많은 백성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중에는 왜군에 붙어 그들의 향도 노릇 하는 자 까지 생겼다.

 

대신 왜군은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자나 조선군과 내통 의심을 받는자가 있을 시에는 가차 없이 목을 쳐 죽이었다.

 

왜군들은 처음에는 조선 백성을 위하는척 하다가 점점 표변 하기 시작한것이다.

경기감사 심대(沈岱)가 양주 목사 고언백(高彦伯)과 함께 서울 탈환전을 벌이다가 패하여 사살된 사건이 있었는데 한성 도성민들이 그의 시체를 끌어다

 

잘 묻어 주자 우히다수가는 명령을 내려 시체를 파내어 할관 참시(割棺斬屍)시하고 종로 네거리에 50여일 현수 (懸首)수하였는데 이 사건이후 왜군들은 도성민에게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꾸어 속과 겉이 다른 태도로 돌변 도성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7)

계속


  1. 28Dec

    코로나 조심하세요!

    Date2021.12.28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2. 28Dec

    최고로 멋진 날 되세요

    Date2021.12.28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3. 28Dec

    쌀쌀해진 날씨 건강 잘 챙기세요

    Date2021.12.28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4. 25Dec

    송년인사

    Date2021.12.25 By권일강 Reply0
    Read More
  5. 24Dec

    감사하는 마음

    Date2021.12.2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6. 24Dec

    행복한 하루

    Date2021.12.2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7. 24Dec

    천년향처럼 변함없는 우정

    Date2021.12.2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8. 24Dec

    따뜻한 당신에게

    Date2021.12.2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9. 24Dec

    좋은 일 많이 생기길 기원드립니다.

    Date2021.12.2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0. 20Dec

    따스한 겨울되세요

    Date2021.12.20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1. 20Dec

    1년 내내 감사합니다.

    Date2021.12.20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2. 20Dec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Date2021.12.20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3. 20Dec

    살아온 날이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Date2021.12.20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4. 20Dec

    사는 동안 아프지 말기

    Date2021.12.20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5. 16Dec

    추운 날씨지만 행복으로 가득하세요

    Date2021.12.16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6. 16Dec

    바램

    Date2021.12.16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7. 16Dec

    감사는 모든 것을 이기는 힘

    Date2021.12.16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8. 13Dec

    코로나 조심하시고 12월 14일 오후 5시 , 자랑스러운 부고인상 시상식에서 만나요

    Date2021.12.1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9. 13Dec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

    Date2021.12.1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20. 12Dec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세요

    Date2021.12.12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41 Next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