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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jpg

 

 

전주 진위대 소대장 김희진이 최익현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황상의 칙지에 ,대감을 압송하라는 명령은  사실 이오니  대감께서는 어서 길을 떠나셔야 겠습니다.”
하고 쌍가마 까지 대기 해 놓았다
먼저   최익현을  보호하는 척하며 그가 찬 칼과 협낭을 끄르려고 하다가 혼이 난 전주 진위대 소대장 김희진은  섬돌 아래에서  사정을 한다

 

“선생님  저는 일본 통감  이등이나 , 일본군 사령관 장곡천의 심부름군이 아닙니다 . 황제 폐하의 어명입니다 "
"어명이라?"
최익현은  김희진의 말을  일단 믿어 보지 않을수 없었다 .
무장 해제를 비록 당하였지만  최익현의 의기는  여전하였다

" 먼 거리를  잘 모시고 오라하여 교자를 준비하였습니다 "


교자란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조선시대에 말이나 사람이 이끄는 가마를 말한다 .
이 가마 라는 것은 조그마한 집 모양으로 생긴 탈것의  하나로 안에 타고 갈 사람이 앉게 되고 앞뒤에서 네사람이 밑에 붙은 가마 채를 끈으로 매어 짊어지게 되어있다 .

 

그런데 최익현을 태우고 갈  가마는 쌍 가마로 앞뒤에  각각 말 두마리 잔등에 가마 네 손잡이를  묶고  가마의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네명의 가마꾼이 네귀 퉁이에서 어깨에 메도록 되어 있었다 .

전라도에서 서울 까지  가마꾼의 힘으로 만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었다 .
 조선 시대 후기에 새로 생긴 말과 사람을 병용한 운반 도구였다

 

가마는 타는 사람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다르게 되어 있었는데 벼슬이 2품 이상이거나 승지를 지낸사람에게 만 허용되는 파격적인  운반 도구였다 .이 쌍가마 라는 운반도구는 고을 수령이 임지에 부임 하거나 자기 어머니나 처자를 같이 태우고 다닐때 쓰이기도 하였다

최익현에게  쌍 가마를 제공 토록한 것은 통감  이또의 수작이었다 .
 최익현을  회유하려면  그에 대한 예우를  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최익현은 김희진의 간곡한 말도 말 이지만  어차피 서울로가서 황제에게 의병 해산 취지를 설명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권력에 집착 하는 다섯 대신들을  몰아 내어야한다는 것을 진언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서울로 올라 가기로 하였다 .

 

 옷을 주섬 주섬입고  서울 갈 차비를 하며  말을 한마리 준비 하라고  임병찬에게  말하였다
김희진이 최익현이  서울로 갈 차비를 하는 것을 보자
"선생님 , 쌍가마를 준비 하였습니다 "
한다
" 내가  반역죄를 저질렀 다고  하는 놈들이  죄인에게도  쌍가마가 있다 더냐?  나는  우리가 타던 말을 타고 가련다"

"선생님 아닙니다 .폐하께서 마련 해 드린  가마입니다  .꼭 타고 가셔야 합니다"
새빨간 거짓 말을  최익현이 알턱이 없었다


임병찬이  옆에서 아뢴다 .
"선생님 ,  폐하의 은총입니다  .타고 가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임장군도 쌍 가마에 같이 탑시다"

최익현은 임병찬과 함께 교자를 타자  김희진은 재빨리 그 나머지 열한명은 줄지어 묶었다 . 앞에서 인도하고 뒤에서 옹위하며 좌·우로 끼고 가는  김희진의 조선 진위대와 왜병은 모두  합해서 80여 명이나 되었다.

 

압송 행렬이 추령(秋嶺) 아래에 당도하니 안의(安義) 선비 이완발(李完發)이 큰 소매 옷과 큰 관 맵시로 엎드려 최익현의 가마 앞에서 가로 막고 통곡한다 .
최익현은  눈을 지긋이 감고 밖에 우는 소리를 듣고만 있다가  포장을 열고 말한다
"내가  폐하에게  상소를 올리려 가는데  그대는 왜 우는고?"
"선생님 ,상소를 하러가는 분이  왜병들은 왜 쫓아가며 부하들은 어찌 된 일이옵니까? "
하고 계속 통곡을하며 가마 행렬을 가로 막고 못가게한다 

 왜병들이  화가 났다 .
"빠가야로, 길을 비켜라"


 이완발를 위협 하여 칼까지 뽑아 들었다.
그러나 이완발은  큰소리로 일본군을 나무란다 .
"이놈들  어째서  선생님 혼자도 갈일을  너희들이  나서느냐?"
이완발이 종시 무서워하지 아니하니 왜병은  강제로  이완발을 우루루 달려 들어  왼팔을 꺾어 꼼짝 못하게 하더니 길 왼편으로 발길로 차 밀어낸다 .

 

저물녘에 임실 갈담역(葛潭驛)에 당도하여 하루밤 유숙했다.
24일 갈담역을  일행이 출발하게 되자 주막집 주파가 공손히 소주 1사발을 최익현께 올리며 눈물을 짓고 안녕히 가시라고 여쭈었다.

최익현은 주막에서  가마를 타다가 자기를 따르다가 쳬포되어 연행 되어가는 부하들을 그제서야 발견하여  김희진을  불렀다 
 “ 이놈 , 나를  한성 까지 잘 안내해 준다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이  사람들은  그냥   귀가 해라 해도 반드시 나를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떠나 갈 사람들이 아니다 너희들 정말 이럴 작정이냐?.”

하니 김희진이  왜놈과 비밀히 상의 하고서 비로소 열한명 사람의 수갑을 풀어 주고 길을 떠났다.
정자리에 당도하여 점심을 먹었다.


 최익현은  거듭 김희진에게 명하여 열한 사람과 사람간의  허리 묶인 것을 풀어 주라고 했으나  허리에 묶인것 만큼은 끝내 응하지 아니하였다.

  전주가 가까워지니 이 때에 일본인  30 여 명이 전주로 부터 추가로 와 서 시끄러웠다 . 최익현 일행을 구경하러 나온것이다


최익현이 내다 보니 모두가 왜놈들  투성이었다 .
" 이놈들 , 무슨 구경 거리라도 되느냐?  나는 우리나라 황제를 뵈러 가는 길이다  썩 물러거라"
하고 호통을 치자  놀란 왜인들이 최익현의 꾸지람 소리를 듣고 모두 피한다
 왜병들은 혹시무슨 일이라도 있을가하여  총·칼로 가마 호위를 강화 하여  전주부로 들어 가니 길 가에서 관망 하던 백성들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안(鎭 安) 선비 장진욱(張鎭旭)이 울부짖으며 뒤를 따르다가 여러 왜병들의 제지를 받았으나  끝까지 물러 나지 않는다.

 

저물녘에 왜병들은 진위영(鎭衛營)에 당도하여 최익현에게는 따로 방 하나를 거처하게 하고 임병찬 외 열한명의 사람은 한 감옥 속에 구류했다.
저녁 식사는  진안 선비 장진욱이 준비해 올렸다.

 25일  오정 때 왜병이 오랏줄을 가져와서  열한명의 사람을 나누어 묶은 다음 주머니 속에 든 문서를 뒤져 내더니 길을 떠나자고 협박하였다


 최익현은  임병찬과 더불어 가마를 타고 앞서 가는데 호송하는 왜병은  조선군 진위대를 합해서 32 명이나 되었다.

 저물 녘에 여산(礪山) 관청에 당도하여 유숙하었는데 최익현은  70 리를  걸어 온  부하 들을 보고  마음이 이루 형언 할 수 없었다.
 이날 밤에 최익현은  잠이오지 않아  이소경(離騷經),·출사표,·원도(原道), 등 여러 편의 글을 외우며 마음을 안정 시키려 애를 썼다

 

 26일  낮에 연산(連山) 병참소에 당도하여 눌러 유숙했다.
 이 날 밤에 최익현은  잠은 여전히오지않는지라  중용,대학 등 생각 나는 구절을 외우고  잠을 청하였다 .최익현의 암송 소리에  부하들도  외우는 자 있었다.
왜병들은 총을 들고 둘러서서  이들이 외는  소리를  무심히 듣고 있었다 .

 

   27일 오전 10시 경에 진잠(鎭岺) 가수리(佳水里)에 당도하니 최익현의 맏 아들 최영조, 조카  최영설이 최전구,·이명구,·최영호와 함께 최익현을  가마 앞에서 뵈었다.
맏 아들  최영조와 조카  최영설이  길을 막고  길을 떠나지 못하자 왜병이 칼을 휘두르며 쫓아 내므로 아들과 조카도  같이 모시고 가지 못하고 멀리서 수행하였을 뿐이었다.

 

 점심때 공주를 지나  대전 정거장에 당도하니 왜놈들이 구경 하러 나온 자가 일백여 명인데, 그 중 한 명이 문득 사진기를 움직여 촬영 하고 갔다.
 오후에  일본군은 최익현을 강제로 협박하여 기차에 싣고 서울로 향하여 청주,·조치원에 당도하니 임병찬이 암암리에 쪽지를 써서 일행들에게 돌려 보이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들에게는 이제 죽음 밖에 기다는 것이 없다  하지만  절대 일본 놈들에게는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복 하지 말기 바란다  "

  저물 녘에  서울역에 당도 하니 일본  헌병대장 아야마(小山三己)라는자가  일본 헌병 백여 명을 지휘하여 사면으로 포위하는 것이었다.
최익현은 기차에 내리니 일본 헌병대장 아야마  조선인 헌병 오장이며 통역인 박종길을 시켜  최익현에게 께 왜병 사령부로 가자고 청하니 최익현이  화를 벌컥낸다

 

"이놈  너는 누구의 앞잡이냐? 나는 황상의 칙지가 있어 덕수궁으로가련다 . 그런데 , 저 왜놈들은  무엇하는 놈들이냐. "
" 선생을 체포하러 나온 헌병들이오"
"무엇이?내가 구속 된다면 당연히 우리나라  검찰에 갈 일이지 어찌하여  이 최익현이가 왜  일본 헌병대로 간다는 말이냐?.”
헌병대장 소산이 일본 헌병 앞잡이 이자 통역을 맡고 있는 박종길에게 눈짓을한다 .
일본군이우루루 모여들더니  최익현을 부축 하는 척하면서  반강제로  인력거(人力車)에 올려 앉히고 임 병찬은 결박하고 나머지 열한명은 모두 포박하여  곧장 헌병 사령부로 향하였다.

 

헌병 사령부의 문간에 들어서자 최익현은 또 크게 꾸짖으며
 “여기가 군부(軍部)냐, 법부(法部)냐.”
하자 일본 헌병이 최익현을 부축 하는척하며  대청으로 돌여 앉힌 다음 갓·망건을 벗기고 북쪽 감방 11호실에 구금한다 ,
 바로 지난 을사(乙巳)년에도 구금되었던 곳이다.

 최익현의 갓 망건을 벗기어 진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한  최익현은  이번에는 점잖은 말 소리로 말한다
 “빨리 내 갓과 ·망건을 가져 오거라.”
하고 말하자 헌병대장 아야마가  망건을 주라 눈짓한다
이에   일본군 압잡이 박종길이 와서 최익현의 갓·망건을 갔다주었다 .

 왜병들은 이내 병찬 등 열두 사람의 도포·갓·망건·버선·허리띠 등속을 모두 벗기고 차례로 나누어 남·북 감방에 구금했다.


 이에 앞서 홍주(洪州) 의병 문석환(文奭煥) 등 80여 명이 역시 이 곳에 구금 되었는데, 이 날에 왜병이 머리깎는  이발기를 가지고 와서 방금 그들의 머리를 깎으려 하다가  최익현의  호통이무서워  이발사들이 모두 허둥지둥 달아 나므로, 요행히 머리 깎이는 욕을 면하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이윽고 왜놈이 저녁 식사를 올리니 최익현은 물리 치고 먹지 않으며
“나는 너희들의 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
고 하였다.

   28일 . 오전 10시 경에 감옥을 맡아 보는 왜병이 와서 최익현의 성명을 묻자 최익현은 목침(木枕)을 들어 문턱을 치며 꾸짖었다 
 “네가 내 성명을 알고 싶으면 당연히 너희들의 상관인 이등이나 장곡천에게 물을 일이지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어찌 감히 무례하게 구느냐.”


  하니 왜병은 남쪽 벽 밑으로 물러 서서 저희들 끼리 엄지 손가락을 들어 사람에게 말하기를
 “조선의 제일 가는 사람이다.”
하는 말이  최제학의 귀에 까지 들렸다

 최익현은 다음 날도 역시 왜놈의 밥을 물리치고 먹지 않았는데, 기운과 얼굴이 평상시와 같아서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29일 최익현은 음식을 물리치고 3 일 동안 물 한 모금도 안 마시니 왜놈들이 강제로는 안 될 줄을 알고  조카 최영설과  조선인 ·이완발 등의 청원을 받아 들여 비로소 아들과 조카들이  만들어 올리는 음식을 허용했다.


 그래서 최만식이 음식 보살 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경에 일본 헌병대 취조실에는  취조관 히라다(平田次郎)·, 헌병대장 아야마(小山三己) 등이 각각 문초 받을 장소를 마련하고, 차례로 열두사람을 끌어 내어 고문을 하면서  반역 죄를 시인하라 하였으나  여러 사람들이 시종 굽히지 않았다.

   왜병들은  김기술·임현주 ·최제학·유해용등은  따로  북쪽 감방으로 옮겨 가두었고 임병찬·문달환· 양재해·고석진·조영선· 조우식·이용길·나기덕을 남쪽 감방에 가뒀는데 모두 사이에 감방을 한칸씩 뛰어 넘어서 각기 딴 방에 거처하게 하였다.

 

 이날, 최제학을 조사실로 나오게 한 다음, 조사관 히라다가 형구(刑具)를 벌여 놓고  일본군 앞잡이이며 일본군 헌병 오장으로 있는 조선인  김종원(金宗元)을 시켜  의병 봉기에 대한 것을 캐 묻기 시작하였다
“의병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냐”
 하므로 최제학이 조선인 헌병 오장 김종원에게 먼저 흴란한다

" 이놈  네 자손 만대에 죄를 저지를  일본 앞잡이를 하는 주제에  감히 누구 앞에서 떠드느냐? 죽이려면 어서 죽이라. 나는 잡히는 날에는 반드시 죽기로 작정 한지 오래 되었다. 물어서 무엇 하느냐.”
하니 김종원이 눈을 부릅 뜨고 큰 소리로 위협한다 
" 병신 같 은놈 , 대한 제국은  이미 기운이 다 되었다 . 네가 혼자 나라를 일으킨다고 될 일이냐?   사실대로 진술만 하면 너를 석방시 키도록  우리 사령관에게 요청 하겠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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