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블로그

조회 수 2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imagesB7YXINQK.jpg

 

 

 

최익현은 지평에 들렸다가  곧바로  충청도 제천으로 향하였다 .
제천에 있는 창주 정사를 찾았다 .
창주정사 가는 길은  굽이굽이 예순 굽이길의 박달재를 넘어, 제천시의 관문에 나지막이 자리잡은 곳에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항로 선생의 수제자이며  최익현의 선배인  성재 유중교가  조선 고종 26년(1889년)에 창주정사를 세워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


이곳은 의암 유인석이  고종 32년 8도 유림 600여명을 모아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적으로 의병창의를 처음 일으켰던 곳으로 우암 송시열ㆍ화서 이항로ㆍ성재 유중교의 영정을 봉안했고, 후에 의병장 유인석 선생ㆍ이직신의 영정을 함께 모신 의병창의의 성지로 인식되어 왔다

 

.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하며, "단발령"을 단행하는 문화 말살 정책을 강요했다.당시에 제천의 장담 마을에는 유중교의 제자인 화서학파들이 모여서 의병봉기를 결의하고 원주 안창에서 첫 의병을 일으켜 단양지역 전투에서 첫 승리를 얻게 된다.

 

이듬해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제천 의병은 충주와 제천을 넘나 들며 일제에 항거했고, 이 항거가 시발점이 되어 뒷날 무장 독립군 창설의 모태가 된곳이었다 .
 최익현이 찾아간 의암 유인석은 1842년 강원도 춘천시에서 출생하였다. 철종 때의 거유 화서 이항로에게서  아홉살 위인 최익현과 같이   글을 배웠다 .

 1868년 스승인 이항로가  죽자, 중암 김평묵(金平默)과 성재유중교(柳重敎)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힘쓰는 한편, 위정척사 운동에도 직접 참여 하였으며, 뒤에 그 자신도 제천에서 강학하였다.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할 때 문하의 유생들을 이끌고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후 김홍집의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일으켜 충주 ·제천 등지에서 부패 관리들을 죽였으나, 관군에게 패전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귀국하여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회인현에  돌아와 있었다


선배 학우인  최익현을 오래간만에 만나자  두사람은 그동안 나라를 위해 싸운 보람을 새삼 감회에 젖었다

" 면암 선생께서 어떻게 여기 제가 있는곳을 알고 찾아 오셨습니까?"
"선생 이라니 말씀 낮추시게, 의암과 내가 얼마나 나이 차이가 된다고  그러시오"
"여전하십니다 "
"  내가 소문은 듣고 있었네 만은  그동안   일본놈들의 앞잡이 김홍집이 놈이  의암을 역적으로 몰아  그놈과 싸우다  만주로 망명 했다는 말은 들었네 만은 어떻게들어 오셨는가 ?"
" 폐하의 유지가 있었습니다 "
" 유지라니?"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글이 유지  아닙니까?"
" 내 말은 유지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말이오"
" 폐하께서  김홍집 내각 때 의병을 일으켜 부패 관료들을 잡아 죽인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홍집 내각의 부패에 대하여 분연히 이르킨 사건이니  돌아와서  폐하를 도우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
" 그런데 촌구석에서 무엇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 ?"
"................."

" 폐하의 유지가 있었으면 왜 부르지않느냐 말씀일세..."
"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
"허허.....의암도  대신 놈들 농간에 넘어 가고 있는 모르는군....내가  이곳을 오다가 보니  오래 된 노송들이 많더군...노송들 밑을 걸어 오며 생각 해 보았는데  풍상을 견뎌낸  그 생명력에 감탄 했네 . 그러나  그소나무 가운데는 척박한 환경에 이기지못하고  휘고 꼬불아진 나무들도 보이더군.....그렇게 구불 구불한 재목은 대 저택의 대들보 감이되지 못하는 법인데 요즈음  대신놈들은 땔나무감도 못되는  잡목들이 동량재인양 격에 맞지 않게 큰 자리에 들어 앉으므로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워지고 있어 ."
"................"

"내가 의암 께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대신 놈들이라는 것이 모두  그 뒤 틀린 소나무 처럼  망상증에 걸린  놈들이 한두명이 아니야.  이놈들중  총리 대신격인  의정 대신 놈이  나를 중추원 의관이라는  자리로 들어 오라며  뒷방 늙은이로  모셔 놓고 저들은  나랏일을 본답시고  외국에다  철도권이다, 포량권이다, 조차권이다  광업권이다 모두  외국에 팔아 먹고 있는것이야 .

 

 임금에게는  거짓말로 보고하고 저들은 뒤에서 뇌물을 챙기고 .... 그러자니  폐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 하시겠나? 나는  중추원에들어 앉아  그놈들의 뒷 치닥거리 하고 싶지 않아  조정에들어가는것을 거부 하고 지금은   충청도 정산으로 내 몰리어 칩거 중일세 ..."

 

"허.... 그렇습니까?  저는  그동안  몸을 피하여  중국으로 러시아 땅으로  돌아 다니다가  폐하의 유지를 받고  어명만 기다리고  있는 참인데  사정이 보통 심각 한것이 아니군요 ..."
" 의암 , 유지가 내렸다 하지만   그  대신놈들, 그놈들 정신 상태가  옳바른 놈들 몇명되는줄 아는가? "
"성재는 다르지 않습니까?"
" 이도재말인가 ? 그런 얼빠진 놈 , 나를 보고 조정에 나오라고 사정하던 놈인데   진짜얼 빠진친구야 ."

"지금 무엇을 맡고 있습니까? "
"학부 대신인가하고 있었나 본데 겨우 한달만에  이종건에게 대신자리를 넘겨주고 집에 처박혀 있다는 말을 들었네"
" 한달만 대신 자리를 주고  또 갈아치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대신 놈들 마다 뱃속이 달라......나라를 위해 대신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신자리를 이용하여  사사 이익이나 챙기려는 놈들 뿐일세 "
" .................."

"  이쯤 얘기 하면  이놈들을 내가 아까 망상증 환자들 이라고 말한 뜻을 알겠나?"
" 잘 이해가 안갑니다"
" 허허.... 중국 물을 먹더니 도저히 조정의 생리를 모르는군 ... 내가 그놈들을 망상증 환자라고 하는 것은  그놈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대할 적에는 자기 이외의  모두를 적으로 간주 해 본심을 잘 들어 내지 않고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편은 아니라  그래도 얕은 지식들은 있어서 말로는 모든 현상을  이론화하고  합리화하며  계열화하여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  편가르기식  정치를 잘하는 명수들이라는 얘기요

 

그놈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싸움 대상이지..... 걸핏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의 때가  되기만 하면  임금은 뒷전이고 백성들에게는 세금이나 먹일 생각이나 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모독하는 말을 서슴치 않고  겉으로는 안그런척하면서 경찰사를  이용하여  우리 같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감시 시키는 일이  고작이니 말이오"
"................"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조정은 경연을  없앤지가  벌써 얼마나 된지가 모르고 폐하와 대신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을 마저 없애 버린지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른다네 .  그것이 진보 정치라네,,,,, 나 같은 사람은 보수 꼴통이고...."
" 정말 큰일입니다 . 그런 놈들이 나라는 팔아 먹지 않겠습니까?"
" 벌써 시작 되었어 . 금광이 외국인 손에 넘어 가는 것을 시작으로 철도,전기, 통신, 등등  모두 외국인손에 넘어 가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나라는 안 팔아 먹겠나?"
" 그렇습니다 , 선배님"

" 정말  한심한 놈들이 앉아서  큰일이야"
" .............."
" 요사이  어전회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모두가 적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막말과 저급한 수작을 마다 하지 않는다니  이게 나라 망할 징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말 그런 줄 몰랐습니다 "
"의암  ,내 부탁이있소 "
"무엇입니까? "
" 김홍집 내각에 반기를 들었던  그때 보다도 더 심각한 사태가  일어 나고 있어 ..."
"무엇입니까?"
" 의암은  지금 전국  목마다  일본 헌병대가 나와 있는것을 알지요?"
" 알고 있습니다 "

 " 내가있던  정산에서  홍성의  왜군 헌병대를 습격 하겠다는 것을 말리고 왔는데  전국 유림이 들고 일어 나서 일본군을 몰아 내도록 전하께 상소를 일제히 올리도록 추진 좀 해주시오 .
 손자 병법에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기는것이 진정한 승리라 했는데  일본놈들의 기관포 라는 것이 무서운 위력을 발 한다는데 희생이 클까 해서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 볼까 해서   이렇게 전국을 돌고 있소 "

" 면암 선배님 , 일본놈들이 순순히 물러 나겠습니까?  제가 러시아에 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이미 러시아는 중국의 요동반도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인천 앞 바다에서 일본 해군에  패하고  의기 소침해 있다는 소식입니다 .
이대로 일본 놈들이 순순히 물러 갈 것 같습니까?"
"..................."
이번에는 최익현의 말문이 막히었다

유인석이 약속한다 
"면암 선배님 ,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 제가 여기 있는한  옛날 동지들을 규합 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습니다 . 면암 선배께서  전국을  다니신다니  저도 비밀히 준비를 하겠습니다 "

 

최익현은  제천을 떠나 이번에는  죽령을넘어  도산 유사에 들려 참배를 하고  혼자 남 모르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감추었다 .
다시  경주로 자기의 조상인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 유사에 들려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받치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왔다.
다시  최익현은  정산으로 돌아 오는 길에 옥천 이지당에 들려 송시열의9 대손인 송병선(宋秉璿)을 찾았다 .
송병선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양성 하고 있었다 .

송병선 ,그는 기울어져 가는 국가를 되살리기 위한 성리학자로서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행동양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충남 회덕의 석남(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태어났고, 은진송씨로 선대 가운데는 조선 성리학계에 두드러지는 인물이 었다. 

그의 조상  가운데 주목되는 인물은 그의 9대조인 송시열이다.

 

  송시열의 의리정신은 9대손인 송병선에게도 가학적 전통으로 계승되었고, 이러한 가학의 전통은 국망의 위기 속에서 그가 국권회복의 기치를 올릴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가학의 전통은 권상하와 한원진을 거쳐 송능상·송환기·송치규,송달수,송근수등의 후손들을 통해 기호학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송병선은 9세 때부터 백부 송달수에게 『소학』을 배우고, 숙부 송근수 밑에서 수학하였다.

  송시열대로부터 이어지는 이러한 가계와 학통으로 말미암아 송병선은 19세기 말 외세 위협의 대외적 위기 속에서 유학자로서 행동해야 할 바를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그 고민의 결과는 위정척사사상으로 나타났다

 

그 실천으로 송병선은 1867년 옥천 이지당에서의 강회활동을 시작으로 기국정 1889.8), 영산의 풍천당( 1893.4), 금산의 용강서당( 1898.9), 임피의 낙영당( 1901.4),   이밖에 영동의 빙옥정에서 강론하였고(1891.4), 그해 7월 무주 구천동에 서벽정을 중건하여 매년 봄,가을로 선비들을 모아 강학하였다. 이러한 명망에 무주군수 조병유는 인근의 선비들을 모아놓고 송병선에게 강론을 청하기도 하였으며(1897.4), 경남 거창의 병산서재(1901.9), 등지에서도 활발한 강론 활동을 펼쳤다.

 

 최익현이 그를 찾은 것은  활발한  그의 강론으로 결집 된  선비들을  장차 있을지 모를 의병 활동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
대원군의  저주의 굿판인지 미리 먹는 제삿 밥인지 모를  서원 철폐령으로  된 서리를 맞아  신음하고 있을때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송병선은  서원을  다시 일으켜  무식한 조선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나라를 위한 인재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최익현이야 말로 송병선에게는  은인이 아닐수 없었다 .

유생을을 모독하고 서원을 때려 부수고   선비들에게 실망을 주었던 대원군을 상소 하나로 물러 나게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


송병선은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때 당시 대원군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
파락호라는 풍상의 한을 고스란히 안고  고함을 지르며  막말과  투쟁적 어투, 그리고 저급한 몸가짐을  서슴치 않았던  대원군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었다 .
그때 선비들은  나라가 망할 징조가 제발 되지 않기를 바랬던 그들의 마음에 희망 조차도 이제는 모두 사라지지 않는가 했었다 


그러나 송병선의  활발한 강론은  선비들 뿐만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송병선은  이 끔직한 대원군의  폭거를 잊을 수가 없었다 .
그 이하응이가 이제는 땅속에 고혼이 되고  그의 은인이라 할수  있는 최익현이 나타났으니  그야 말로  반갑지 않을수 없었다
계속

 

  1. 18Jan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Date2022.01.18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2. 17Jan

    온종일 웃음꽃 피어나시길

    Date2022.01.17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3. 17Jan

    오늘도 건강과 행복 가득하세요

    Date2022.01.17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4. 14Jan

    가슴뛰는 한 나이는 없다

    Date2022.01.1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5. 14Jan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금요일

    Date2022.01.14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6. 12Jan

    행복의 원칙

    Date2022.01.12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7. 11Jan

    좋은 사람은 언제나 행복을 줍니다

    Date2022.01.11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8. 11Jan

    행복의 문에 활짝 열렸습니다

    Date2022.01.11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9. 11Jan

    웃음은 고통을 지우는 지우개, 기쁨으로 하루를 여세요

    Date2022.01.11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0. 09Jan

    오늘도 힘찬 출발

    Date2022.01.09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1. 07Jan

    건강이 최고입니다!

    Date2022.01.07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2. 07Jan

    좋은 하루보내세요

    Date2022.01.07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3. 07Jan

    나눔은 영원합니다.

    Date2022.01.07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4. 06Jan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Date2022.01.06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5. 03Jan

    복 배달왔습니다.!!!

    Date2022.01.0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6. 03Jan

    영육간에 강건한 새해 보내세요!

    Date2022.01.0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7. 03Jan

    힘찬 새해 맞으세요

    Date2022.01.0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8. 03Jan

    1월에도 변함없이 더불어 사는 삶

    Date2022.01.03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19. 29Dec

    내년에 쓰실 돈과 행복 들어갑니다.

    Date2021.12.29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20. 28Dec

    2021년 종착역이 다가옵니다. 2022년 건강 행복의 열차 타세요

    Date2021.12.28 By사무처 Reply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41 Next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