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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임금이   해야 할일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도덕적인 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그는 도승지에게 하루에도 세번씩 경연을 열라고 하였다

 

경연이라는 것은  왕이  특강을 듣는 시간으로  아침 점심 저녁 세변씩 하게 했는데  협찬관   대간, 사관 특진관등 10여명이  동석 하였는데 왕은 북쪽에서 남향을  향해 앉고  대신들중  1품은 동쪽에서 서향을  향하고 ,  2품은 서편에 동향, 3품 이하는 남쪽에 앉았다.

 

강의 교재는 사서와 오경 및 역사책인 자치통감,·자치통감강목과  그 밖에 성리대전 ·근사록 ·소학 심경 대학연의 정관정요 국조보감  등의 특강을 듣는 순서였다

 

강사는 주자학을 깊이 연구한 영남 학파의  대스승이라고  칭송 받고 있던  이황(李滉)이었다.

 

선조는  이황에게 벼슬을 내리어 그로 하여금 나라를 바로 잡아 보려고  하였다

대제학이라는  벼슬이었다

 

그러나 이황은 벼슬을 사양하였다

 

"전하 전하의 뜻은 황공하오나 신의 나이 이미  칠십이 가까워젔습니다.  .게다가 건강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대제학의 무거운 책임을 다할수 없습니다 "

 

" 건강이 그러시다니  몸조리를 잘 하셔야 겠기에  과인도 어쩔수 없구려 , 낙향을  하시더라도 나라를 위한 마음은 버리지 마십시요"

선조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한다

 

" 전하 낙향하는 마당에 말씀 드릴것이 있아옵니다"
" 말씀 해 보시오"
" 전하  황공하오나  부디 매사에  의(義)를 지켜 주십시요. 나라를 위하는 척 하면서 사사로운  이익만 찾는 무리들은 멀리하시고 의를 찾는  젊은 선비들을 널리 발탁하여 쓰시옵소서"

 

"옳은 말씀이오 ,그런데 조정의 대신들중에 누가  쓸만 하다고 생각 합니까?"


" 영의정 이준경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지 마십시요  훌륭한 인물입니다 . 이준경외는  동인 서인 하면서  자기들 벼슬자리만 노리고 싸움질만 하는  현 난국을  이끌어서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영의정 이준경은  이황의 말대로  파란 만장한 인물이었다

 

이준경은  일찌기 홍문관  수찬이었던 이수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

 

그가 여섯살 때  연산군이 저지른 갑자사화로  그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자 형 이윤경 과 함께  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중종때 과거 급제 하여 아버지가 맡았던  홍문관 부수찬이 되었는데   하필이면 경연장에서  기묘사화때 죽은  사림파의  억울한 점을  강조하다가  세력을 잡고 있던 김안로로부터  파직을  당했던 인물이다

 

김안로가 죽임을 당하자 중종은 그의 곧은 성격을  인정하여  재 기용되었는데  홍문관 직제학, 승정원 승지까지 발탁 되었고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었다.

그후 명나라를 다녀와   형조 참판이 되었고  다행히  이때 을사사화가있었는데  마침 평안도 관찰사로 있었기 때문에 화는 면하였다

 

명종때는 병조 판서를 지냈지만  모함을 받아 충정도 보은에 유배 되기도 했다

 

그는 그 다음해 풀려나  중추부 지사로 있었는데 이때 함경도 지방의 야인들이 출몰하자  명종이  당황하여 이준경이  병조 판서 시절에  들었던 경연을 기억하고 여진족을  물리치라면서   함경도 순변사로 임명 하였는데   성공적으로  책임을 다하 였다

그후 을묘 왜변이 또 일어나자 전라도 순찰사로  임명돠어  왜적을 격퇴하였다

 

명종은  이준경의 사람 됨을  인정  병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으로  발탁한다

 

 

명종이 사망 직전  후사가 없자 영의정이었던  이준경은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아들 덕흥 대원군의  삼남  하성군이 평소  범상치 않는  인물로 보고  있었는데 당시 다른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명종에게  하성군을 옹립하도록 진언  명종의 유언을 받아 낸 인물이었다

 

이준경은  글 뿐만 이니라 문정왕후가 죽었을 때 윤원형  일파를 숙청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던 인물로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성리학을 조선 왕국의  정치이념으로 확고히하도록 만들기도 했고  그동안 겪은  파란 만장한  경험을  토대로 그렇지 않아도 탁월한 안목과  공정한 인사를  하여 선조를 받들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이준경은  자기의 아들이 홍문관 관리 후보로 명단이 올라 오자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도 과거를 보고   거쳐 오지 않은 자는 자격이 없다면서  후보 명단에서 삭제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황이  이준경을 극찬한것은  이와같이 그의 과거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효원이나  심의겸 일파에  흔들리지않고  자기 소신껏  밀고 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준경 같은 인물을  선조에게적극  추천했는지도 모른다 .

 

 

어쨋든  이황은  어전을 물러 나왔다

 

그리고  성리학의 줄거리를  알기 쉽게 적어서  앞으로 정치를 하는데 참고 해 달라면서 선조에게 올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훌 훌 내려간다 .

 

영의정 이준경은   하성군을 보위에 올려 왕으로  올려 놓았지만   은근 히 걱정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개국 이래  첫 방계 승통 임금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이었다 .

 

방걔 승통이란 조선같이  왕가의 혈통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었던 세습 군주 국가애서  있던 제도 였다 . 

 

대를 이어가면서 왕가의 혈통은 왕의 아들, 즉  왕이 임종 직전 아들이 없다든가 적통으로 세습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왕의 적통은 아니지만 왕가 주변에서 왕위에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 세습하는 방계 승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자가 바로 14대 왕 선조였던 것이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아들 중에서도 셋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이었다.

왕가에서도 비교적 먼 방계 혈족이었던 하성군(훗날 선조)은 원래 이름이었던 이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명종의 세자 항렬을 따라 고치며, 34살에 죽은 명종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된것이다


조선 왕조 개국 이래 첫 서손  출신  선조 ......

 

이준경 뿐만 아니라  나라를 걱정 하는 대신들은  선조의 보위가  소위  정통성이라는 것 때문에  혈통을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적통을 중시한 조선은 서자에게는 어미의 신분을 따르게 하여, 양반의 자식이라도 어미가 천민의 신분이면 천민이 되었던 철저한 신분제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왕의 아들이 아닌, 그것도 후궁의 소생인 아버지를 둔  하성군이 하루 아침에 왕이 된 선조의 처지가 어땠을까?

조선은 왕가의 혈통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었던 세습 군주 국가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왕가의 혈통은 왕의 아들, 즉 적통으로 세습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적통은 아니지만 왕가 주변에서 왕위에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 세습하는 방계 승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자가 바로 14대 왕 선조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아들 중에서도 셋째 아들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이었다. 그렇게 왕가에서도 비교적 먼 방계 혈족이었던 하성군(훗날 선조)은 원래 이름이었던 균을 버리고, 명종의 세자 항렬을 따라 고치며, 34살 이른 나이에 죽은 명종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혈통을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적통을 중시한 조선은 서자에게는 어미의 신분을 따르게 하여, 양반의 자식이라도 어미가 천민의 신분이면 천민이 되었던 철저한 신분제 국가였다.

왕의 아들이 아닌, 그것도 후궁의 소생인 아버지를 둔  하성군이 어느날 갑자기 왕이 된 선조의 처지가 어땠까?

 

 어린 선조가 보위에 오르자 마자  그때 까지  조정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공신들의 이라면서  대대로  영화를 누리던  훈구 세력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학문에 깊은 소양을 가진  선비들을 끌어 들이는 것을  대신들이  보자  신하들은   선조야 말로 장차 성군(聖君)이  될것 같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실 그랬다

선조는  임금이되자  흥분된 마음 두려움 반으로  임금의  자리르 어떻게  유지해서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가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선조가  하성군 시절 부터  나라를 걱정 한 것은  나라의 근본 문제 였다

도대체 이나라가  백성들의나라냐  아니면  일부  권세가들만이 나라냐?

 

나라를 고려로 부터  역성 혁명을 이르켰다면서  대대로  벼슬을  해가면서 온갖 영화를  누려온  인간 들을 조정에서  어떻게 하여서 몰아내는가  하는 것이 그의  첫 과제 였다 

그래서 선조는 그 방편의 하나  서슴치 않고  이황이나  이이 같은 인물을  경연장으로 불러 들여  그들로 부터   정치 하는 법을 공부 했고   또 그들에게 벼슬 자리를  주어  실천 해보고자 한것이다  

 

그러나 무슨일이고 혁명적인 일에는  부작용이있는 법이다  

 

젊은 선조가  학문에 조예가 깊은  선비들을 대거 끌어 들이자  기득권을 갖고있던  훈구 세력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갖고있던  온갖 특권을   순순히  내놓을리가 없었다 

자연히  조정은  두조각으로 세력이 갈라지기 시작했으니  개혁파성향인 동인들과  수구파 성향인 서인들로  갈라질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조선 조정은  무엇인가 달라지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조선을  콩가루 같은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발 하는 신하들도있었지만  젊은 선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손 출신에다가 조선 역사이래 첫 방계  승통 임금이 된 정통성이 없는 임금이라면서  깎아 내리려던 신하들은  학문에 깊은  소양을 보이는 선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하들도  우려와는 달리  왕의 행보가  헌신적이었고 매사에 법도에 어긋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를 좋아해서 경연에서  신하들과  학문 논하기를  즐길 뿐만아니라   그렇다고 임금의 체통을 어긋 나는 일은 하나도 없이  위엄있는 군주가 되기 위해 끊임 없는  노력을   신하들과 백성들은 높이 사고있었다

 

임금이되기전 신하들은  선조가  하성군 시절에 어떻게  지냈었는지가 궁금 했었다

보통은  임금을 지근에서  모시는 사람 이외에는  접근 할수 없는 지엄한 존재로만 알았는데  선조는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기를 즐겨 하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적 특성을 읽을 수 있었다

 

즉  세조가 단종에게 대하듯이 뻔뻔함이 없었고 태종이 고려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때려 죽인것 같이  괴팍하지도 않았으며 연산군 모양으로 방탕과 교만함도  그에게는 손톱만치고도발견 할수 없었다

신하들의 눈에는  종전 까지 느꼈던 권위적인 임금이라기 보다도  항산 겸손한 임금으로 보였고 지나치리 만큼  매사에 성찰  하는 버릇이 몸에 배인  임금으로 비쳐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조는 조야의 시선과 관심을 받는  임금으로  등극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선조 자신도  부담감을 갖지 않을 수도 없었다

 ( 아. 내가 어떻게 지존의  이자리에 까지 왔는가?  내가 원해서 온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많은 상소문은 무엇이며 그리고  이많은  대신들과  궁녀들 ...그리고  우리 백성들....)

 

젊은 선조는   기득권자를 조정에서  몰아내고 개혁적인  선비들을 끌어 들였지만  또  한가지 해야  할것이있었다 

대군 시절 부터 그가  생각하고있던  조선왕국의  정통성 문제 였다

그가   알고있는 조선의정통성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태조 이성계의 대대의 계통을  200여년간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세계(世系)를 고쳐 달라고 주청했던 사건으로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부탁을 들은체만체 무시 하고있었다 

 

그 내력을 보자면 이러하다

 

 고려 말 공양왕 2년  고려의 장수로 있었던 이성계가 그의 정적이었던 윤이·이초라는자 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를 타도하려는 목적으로, 공양왕이 고려 왕실의 후손이 아니고 이성계의 인척이라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윤이, 이초라는 자들은 고려  공양왕과 이성계가 공모 해서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면서, 이성계의 가계에 관해서도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후손이라고 거짓을 고하여 그것이 명나라 대명회통(大明會通)에 까지 기록함으로써 발단이된것이다

    

조선 태조에 관한 이러한 표현은 겉으로는  명나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 건국 직후의 조선으로서는 왕통의 합법성이나 왕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조선측에서는 이 사실을 안 태조때부터  대대로 명나라 사신 황영기의 귀국편에 명나라 황제에게 변명하는 글을 지어 사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고쳐 주지 않았다

 이후 조선에서는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어 시정을  요구했다.

이것을 조선 왕조 실록에서는   종계 변무(宗系 辨誣)라 부른다

 

선조는  대제학 황정욱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을 부사로 파견 해 일차로 명나라에  관심을 보인뒤  다음에는  홍순언을 종계변무사절의 역관으로 파견 했다

그런데 조선의여인과 결혼 해서 재상이된 당시 명나라 예부상서였던 석성이  명날 황제게  적극 건의가 성사돼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이  드디어 수정됐다.

 

 이로써 이성계는 엉뚱한 이인임의 아들에서 이자춘의 아들로 정정된것이다

이는  태조 정조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에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까지 12대의  임금이  대대로  명나라에  사정 했었으나  무시 되어 왔던   역사 왜곡을  시정하게 만  큰 사건이었다

 

이사실을 역사는이렇게 기록하고있다

 

 일찍기 본국의 반적이었던 윤이•이초가 태조 초기에 중국에 들어가서 국계를 무고하였다.

(宗系辨誣 初本國反賊 尹彛李初 太祖初 入中國 誣告國系)

 

선조 17년 갑신에 주청사 황정욱이 돌아왔다  

명나라  예부상서 진경방은 이렇게 대답했다   ,

 “개정 편찬한 문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간행 되면  곧바로 초고를 뽑아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명나라 황제의 성지를 받들어 원하시는 대로  써서 조선 임금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칙서에는 “ 앞의  사유가 그대가 원하는 글과 서로 합치되니, 책이 완성되면  짐(황제)이 보기를 기다려서 반포하는 날에는 관원을 보내어 그대의 나라에 보낼 것으로 먼저 알려 주노라 , 그리 알라.” 하였다., 기록자: 서장관 한응인,

(十七年甲申 奏請使黃廷彧回 禮部尙書陳經邦等題曰 改纂文詞 未經進覽 刊行應付抄示 奉聖旨准寫與王 勅曰 前項事由 與爾原奏相合 候書完進覽 頒行之日 差官齎送爾國 先諭爾知之<上同 書狀韓應寅)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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