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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최익현이 쓸어저 일어나지 못하였다 병환이 시작하셨다.
같이 잡혀온 임병찬이 최익현의 병을 간호하다가 너무도 답답하고 딱해 걱정스러워지자 다급해서 서울로 전보를 쳤다

이 때에 최제학·고석진이 일본 헌병사령부로 부터 마침 풀려나 석방되어 있었다 ,
이들은 답답한 나머지 평소 최익현을 따르던 한의사 노병희를 찾았다
전후 사정을 듣고 있던 노병희는 만사를 제치고 대마도로 떠나기로하였다 .최익현의 맏아들 최영조에게 만일을 대비해 수의를 준비해 싸도록하고 서울을 떠나기로하였다
10월 27일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하여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자 배가 이미 대마도로 떠났기로 부득이 유숙하게 되었다.
다음날 부둣가 사무실에 찾아가 배편을 물어보니 풍랑으로 배가 떠날수 없다한다 .
세사람의마음은 조급하였으나 어쩌랴?
파도는 멈출줄 모른다 .
매일같이 부둣가에나가 파도가 가라앉기를 기다렸으나 무정하게도 파고는 더음 높아지는것이 아닌가?
서울 떠난지 5일만에 겨우 파고가 조금 잠잠해지었다

11월 3일. 비로소 배편을 얻어 바다를 건너가는데 대마도와 부산사이 절반도 못 가서 갑자기 풍랑을 만나 절영도에 정박하였다.
(아, 하늘도 무정하여라 , 왜이리 답답한 일만 생기는고?.....)
절영도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보니 바다가 다시 잠잠해지었다
11월4일 오후 6시 경에 다시 배가 떠나 이튿날 자정에 비로소 대마도(對馬島)에 당도하여 최익현을 찾았다
환후가 위독하여 얼굴도 붓고 발도 붓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였다.
노병희가 나아가 진찰하고 물러와 말한다
“병환은 바로 풍증(風症)이라 소속명탕(小續命湯)을 써야 하니 약재를 급히 구해야 하겠다.”
고 했다.
그러나 약재가 있을턱이없었다
11월6일
임병찬은 답답한나머지 그동안 일을 털어 놓는다
"선생은 식음을 전폐하고 유언까지말씀하셨는데 심상치 않소"
최재학이 물었다 .
"유언이라니오?"
임병찬이대답한다
"선생의유언은 폐하께 드리는 말씀이었소"
고석진이나선다
" 그러면 유언이아니라 유소로군요"
"그렇소, "
"어떤내용입니까?"
"선생이 대마도로 이감되자 소위 경비대장이란 자가 병정을 4,5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왜놈 하나가 이감된 여러 사람을 꾸짖으며 ‘왜 장관에게 경례하지 않느냐’하고 따라서 갓을 벗으라.하자 선생이거부를 하였소 경비대장이란자가 일본의 밥을 먹을진대 당연히 일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갓을 벗으라면 갓을 벗고 머리를 깎으라면 머리를 깎고 오직 명령대로 따라야 할 것이지 어찌 감히 거역한단 말이냐.” 하자 왜놈이 선생의 갓·망건을 억지로 벗기려 했었소. "
말도중에 고석진이 흥분한다
" 원저런 예의도 없는 놈들 .............."
임병찬이말을 계속한다
"선생은 큰소리로 호령하니 왜놈이 칼을 들어 찌르려는 시늉을 하므로 선생은 가슴을 내밀고 “어서 찌르라.” 고 호통을 쳤소. 이에 대장이란자가 안되겠는지 대장이 나갈 적에 또 선생더러 일어서라고 하는데, 선생이 응하지 아니하니 왜놈이 주먹으로 선생을 치려고 하는 것을 여러 사람이 급히 구출했소"
" 아니 이놈들이"
고석진이 분개 하여 어쩔줄 모른다
"선생이 가쁜 숨결로 나를 돌아보며 내가 저놈들과 30 년 동안 서로 대립한 혐의가 있으니 저놈들이 나를 해치려는 것은 족히 괴히 여길 것이 없다.
더구나 나는 나라가 위태해도 능히 붙잡지 못했고, 임금이 욕을 당해도 능히 죽지 못했으니, 내 죄상은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구차히 오늘날까지 목숨을 연장한 것은 한갓 죽는 것만으로는 나라에 유익될 바 없으므로 장차 대의로써만 천하를 격려할 생각이었다.
일이 성공되지 못할 것은 거의 하던 날에 이미 알았으니, 오늘의 액은 오히려 늦은 셈이다. 차라리 목을 잘려 죽을지언정 머리를 깎이고는 살지 않겠다는 생각은 이미 을미년 겨울 유길준(俞吉濬)에게 잡혀 갔을 때 정해진 것인데, 지금 이 지경에 이르러 그 밥을 먹으면서 그 영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시 의가 아니다,

이 후부터는 일체 단식하고 말겠다. 칼날에 죽지 못하고 단식해서 죽는 것도 역시 운명이다. 내가 죽거들랑 그대는 나의 뼈를 거두어 내 자식에게 보내 달라. 그러나 이 역시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일이냐라고하셨소 .그러시면서 내 평생이 임금을 잘모시고 하고 나라를 부지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으나 능력이 부족하여 능히 천심을 돌리지 못했다. 지금 내가 죽으면 다시 충성된 말을 우리 임금께 올릴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 그대는 살아 돌아가서 반드시 우리 임금께 올려 달라. 하셨소"
고석진이 통곡한다
"저런 저런......"
최제학이 냉정을찾는다
"임대장님 , 선생님을 실리셔야지요"
" 살리셔야지요"
가만히 듣고만있던 노병희가 계속 최익현을 돌보고있을것이니 최재학과 고석진이 부산에나가 약을 구해오라하였다

그러나 부산으로 나갈 배가 없었다
오후에 일본군 군의관이 와 진단하고서 하는 말이
“듣자니 한국 의사가 왔다는데 간호하는 것은 좋지만 약을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 만약 약을 쓰려거든 반드시 대장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는 것이었다.
11월8일
최익환은 병환이 조금 차도가 있었다.
곁에 모신 사람들이 서로 최익현이정신을 차리자 반가워서 하자
최익현이 묻는다
"오늘이 며칠인고?"
“오늘이 동지(冬至)입니다 .”
하고 주위에서 말하니 최익현은 동지라니 팥죽 생각이났는지 목안에 든 소리로
“팥죽…… 팥죽.....”
하며 두번이나 되풀이한다
본 정신이 약간 돌아 온듯하였다
“ 내 옷이 흩어지지 않았느냐 .”
고 했다.
병중에도 조금도 일본놈들에게 자세를 흩어지지 않게 보이려는 생각때문이었다
임병찬이 너무 침통한 모습을 피하려는듯 최재학에게 최익현이 서울 감옥에서 지은 시 열네수를 보여 주었는데 글을 쓴 취지를 다음과같이쓴 글이었다

" 나 최익현은 서생의 신분이지, 본시 나는 군인 신분은 아니다.그런데 나 최익현은 80세 이 나이에 에 전쟁에 나설 신분이 아닌데도 나라가 위급 한데도 위로 조정으로부터 아래로 초야(草野)에까지 있으면서 불구자를 제외하고는 집에 처박혀서 나라야 어찌되든 말든 모르는 척하는 자는 짐승만도 못한놈이다 . 아, 그러나 내가 저지른 허물로 제군에게 누가 미쳤으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제군에게 각각 오언절귀(五言絶句) 1수씩을 주니 후일의 기록을 남기기바란다
시한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같다

배 타고 바다로 가고 싶다는 한탄은,
동해를 밟겠다는 기풍이나 다름없네
이 두 가지 이치가 같으냐 안 같으냐는,
저기 저 하늘과 늙은이에게 물어 보소.

11월9일 최재학 고석진은 배편을 얻어 도로 부산으로 향하면서 노병희와
“부산에 도착하게 되면 전보로써 서로 통하기로 합시다 , 만약 선생의 병환이 위중할 경우에는 ‘병중(病重)’이라 하고 전보를 쳐주십시요 ,만일 차츰 회복되는 경우에는 ‘병가(病可)’라고 전보를 쳐주시기바랍니다 만약 ‘병중’이란 전보가 오면 최영설씨와 함께 상의하여 장사에 쓰일 모든 기구를 사서 보내겠오.”
고 약속 하였다.
전화가 없는시대이니 전보가 유일한 통신수단 이었기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으로가는선편도 없어 민망하기짝이 없었다

최재학과 고석진이 저물녘에 부산에 당도하여 초량진(草梁津) 상무사(商務社)에 기숙했다.
이 상무사는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점잖은 상인들의 상무를 의논하는 곳인데 사장 이유명(李裕明), 사무장 김영규(金永圭)는 본시 선생을 숭배하는 사람인지라 이들도 이 소식을 듣고 애석한 마음을 가누지못한다

최익현이 대마도로 건너갈 적에 상무사에 있는 여러 사람들도 최익현이 대마도로 붓들려간것을 까마득히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최재학과 .고석진의 전후 사정을 듣자 만나자 서로 붙들고 통곡하였다
“아,하느님도 .... 어찌 선생으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가게하는가?.”
하면서 통곡하였다 .
이후로 상무사사장들은 최익현을 위해 대마도로 가는 자에게는 빠짐없이 모두특별 대우를 잘해 보냈다.
11월10일 오후에 마관(馬關)으로부터 ‘병중’이라는 전보가 있으므로 최재학과 고석진은 약재료 몇 가지를 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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