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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령관 양호는 조선군 사령관이 서슴치 않고 계속 반론을 펴는것이 더욱 못마땅하였다 .

 

일전에 그 의견을 적극 수용 하겠다는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 었다 .

"그럼 그 이유가 뭐란 말씀이오?"

 

"그첫째가 지금은 계절이 동지 섯달입니다 .날씨가 추워 장기전이 아니고 단기적으로 끝내야 하는데 만일 전투가 길어지면 지금 조명 연합군이 입고있는 여름 군복을 가지고는 오래 벋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그래도 지구전을 계속 강행 한다면 병사들의 전투력이 둔해저 그 날카로움이 꺾이게 되는것을 어찌 할것이며,

두번 째는 적들은 그동안 그들이 후퇴를 하면서 내년을 목표로 겨울을 나기 위한 작전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축성을 예년에 보기 힘들게 견고하게 쌓았습니다 .

 

 

 

우리군은 성벽을 기어 오를수 있는 보조 기구를 너무 황급히 진격해온 탓에 준비가 전혀 않되어 있습니다.

성벽 공격용 장비 준비 없이 방어가 철벽같은 성을 공격한다는것은 우리의 희생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희생이 크면 병사들은 피로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예감을 잃게 되어 결국 우리군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다음 세번째이유를 말씀 드리자면 ,지형상에 문제입니다 .

경리 께서는 배수진이라 말씀 하셨는데 이 태화강은 배수진과 거리가 먼곳입니다 .

 태화강과 서생포간은 지척의 거리에 있습니다.만일 적들이 포위된것을 알고 서생포에서 지원군이 우리의 배후를 친다면 큰 낭패를 볼수가 있습니다 . 이번 전투 계획은 조금더 연구후 조선 수군과 합동으로 종합적 공격을 해야 이길수 있다고 봅니다. 재고 하여 주십시요"

 

 

양호는 자존심이 상하였다 .

 울산성공격 계획은 이미 황제에게 까지 보고 된 사항으로 황제가 이를 격려 하기 위하여 상방검 까지 하사 하여 경리 형개를 통하여 받아놓은 상태 였다 .양호는 한시가 급한 전투였다 .

     빨리 적을 깨뜰여 공을 세우고 왜장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운뒤북경에 보내어 황제로 부터 성은을 받고자 하는것이 그의 최후 목적이었다. 이작전을 중지 한다면 자기는 천하의 겁쟁이가 된다.

 

양호는 권율이 점점 미운 마음이 발생하는것을 억제 할수가 없었다.

(조선의 도원수라고 대우를 해주었더니 건방지게.....)양호는 지금 가지 대하던 태도를 바꾸어 발언한다 

 

 

"권장군 , 장군은 참으로 듣기보다는 졸장부요! 그까짓 왜군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지구전까지 간다는 말이오? 그리고 울산성이 뭐 그리 철벽같다는 말이오? 우리 동정군은 요동땅 의 큰성도 함락 시킨 역전의 용사들로 구성된 병사들이오,또 적의 지원군이 서생포를 출발 태화강을 끼고 지원하고 온다면 조선의 수군은 이번 전투에서 놀고 먹겠다는 말이오?

서생포하나 감시 못하는 조선 수군은 무슨 짝에나 써 먹습니까?"

 

 

양호는 지금가지 권율에게 대하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부하 다루듯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양호는 조선의 병권(兵權)이 모두 도원수의 손아귀 에서 나오는줄로 알고 있었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군의 병권은 작전에서 부터 전술에 이르기까지 임금,영의정, 병조판서, 비변사 , 체찰사에 이르기까지 음양으로 간섭이 끊이지 않았다.

 

 

 

전군을 통활 하여야 한다는 도원수직의 상식적인 평가는 절대 통하지 않는것이 조선군의 문제점 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고민은 무엇으로 하소연 할곳이 없었다

 

. 가끔 소신대로 작전을 밀어 부치려 하면 조정에서는 제동을 걸었다.

이번 일도 어디에 하소연 할곳이 없었다.

 

양호는 그의 의견은 더이상 듣지도 않고 제독 마귀를 그자리에서 불러 들이더니 일방적으로 지시 했다.

"제독은 오늘밤내로 울산성 외곽 까지 동정군을 배치완료 토록 하라."

하고 명령을 내리고 권율에게 는

"도원수 께서 지금 까지 한 말씀은 참고 하겠소 . 지금 한시가 급하니 도원수 께서는 여러 이유를 대시지 말고 이번에 조선군도 울산성 전투에 적극 참여시키도록 하시오 ,"

 

하고 명령조로 지시하고 조선 장수의 대답은 더이상 듣지도 않고 순시차 나간다는 핑게로 나가 버렸다.

양호의 느닷 없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조정이 양호에게 연합군 지휘권을 양호 에게 내린 이상 어찌 할수 없는 일이었다.

 

양호의 진막을 나왔을 때는 날이 어두워진 저녁노을이 서산에 가득하였다

 말에 올라 조선군 본진에 돌아 오자 경상 좌병사 고언백과 우병사 정기룡이 기다리고 있었다.도원수의 얼굴이 밝지 않자 고언백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음 , 이번에 위험한 전투에 참여 해야 하니 큰일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양호 경리가 울산성 공략을 너무 서두르고 있소 "

듣고 있던 정기룡이

"무조건 포위만 하면 될줄로 아는 모양이지요?"

"그렇소"

"적들이 지금 김해, 제포, 기장, 서생포에 대규모 병력이 겨울을 지나기 위해 주둔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그 숫자가 6만이 넘는다 합니다 . 이들이 어떻게 나올줄 알고 전군을 울산성에만 집중 시킨다는 말씀 이오이까? "

 

 

"그래서 내가 경리에게 말했더니 이미 황제 에게 보고 하여 윤허받은 사항이니 어쩔수 없다는거요"

"아니 경리라는 사람이 조선군과 상의 없이....."

 

 

정기룡이 화가나서 칼잡이로 손이가자 고언백이 말리었다

그러자 도원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정에 장계를 올려 봤자 소용없는짓임 임을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 더구나 조정은 영의정 류성룡을 체찰사 였던 이원익 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정은 명나라의 눈치만 살피고 명나라 동정군을 하늘같이 떠 받들고 있는 터에 조선군의 단독 작전 계획 이란 꿈 에도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조정은 그동안 조선군은 명나라 동정군의 절제를 받으라 지시 해 왔으므로 권율로서는 그 명을 어길수 없었다. 권율이 할일은 울며 겨자 먹기식 으로 조선군을 양호의 명령대로 울산성 공략에 투입 하지 않으면 않될 입장이 되고 만것이었다.

 

 

조선 조정과 병권 관계를 너무나 많이 당해온 고언백이

"원수님 , 이제 어찌 하겠습니까?조정 에서는 명나라 동정군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 들이라는데 이를 묵살 할수 없는것이 아니옵니까? 어쩔수 없이 이번 전투에 나가지 않을수 없을것 같습니다.조선군 으로서는 전투에 참여 하여 최선을 다 할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두사람은  할말을 잊고 있었다.

 

 

 

12월 23일 제법 날씨가 쌀쌀 하였다

마귀가 지휘하는 동정군 좌중우협군의 명나라 4만명의 전군이 일제히 울산성 60리 밖까지 접근하였다 .

조선군도 도원수를 위시하여   , 좌병사 고언백, 우병사 정기룡과 함께 명나라군과 합세 하였다.

 

 

 

이날밤 명나라 본진에 긴급히 3명의 명나라 장수들을 마귀가 불러 들었다

이날밤 마귀는 참장 양등산 ,유격장 파새(擺塞), 파귀(頗貴), 세사람을 불러 누가 선봉을 설것인가를 묻자 세사람 모두 앞장서겠다고 기염을 토하였다. 마귀는 만족하며 그중 파새에게 선봉지시를 내렸다.

 

 

 

새벽 네시 유격장 파새는 1000여명의 정병을 차출하여 선봉으로 나서고 그 뒤를 양등산의 기마병 2000기가 그 뒤를 따랐다.

왜군은 조명 연합군이 60리밖까지 접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다음날 전투가 있을것으로 보고 경비만 강화하고 깊은 잠에 빠저 있었다.

 

"돌격하라"

 

 

파새의 명령이 새벽 조용한 공기를 뒤 흔들자 적진에 밧싹 접근 해 있던 명 습격병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왜진으로 뛰어 들었다.

왜장 모리수원(毛利秀元)의 부장인 냉천원만(冷川元滿)이 놀라깨어보니 주위가 대낮 같이 밝게 불에 타고 인마의 울음소리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범벅이되어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일본군의 조총소리는 들리지않고 명군이 지꺼리는 소리만 가득하였다.

왜군 부장은 잠이 채 깨지않은 상태에서 숲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새벽 4시에 시작된 공격은 날이새자 왜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11시가 되어 겨우 왜군의 저항이 멎고 사방이조용하였다

대부분의 왜군은 구사 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울산성안으로 도망하여 굳게 문을 닫고 응전 하였다 ,왜군은 시체 460여구만 남기고 첫전투를 완전히 전멸당하고 만것이다 .

 

 

 

명나라 동정군으로서는 규모는 작었지만 처음 전투치고는 상징적으로 성공 한 셈이었다.

파새는 즉시 이사항을 마귀에게 보고 하고 마귀는 양호에게 보고 하였다.

양호는 대단히 만족 하였다.자기의 작전 계획이 척척 맞아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 하였다.

 

 

다음날 24일 새벽 네시에 양호는 직접 태화강까지 나가 직접 진두 지휘 하기로 하였다.유격장 저국기는 절강성 출신 정예 병력3000을 이끌고 울산성 서쪽 성밖에 설치한 외곽 진지를 돌파 하였다. 적의 600여 수급을 베고 말 무기,갑옷등을 노획하여 양호앞에 갖다 놓자 양호는 매우 만족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작은 전투는 모두 울산성 밖에서 일어난 사건일뿐 정작 울산성 은 새로 중축하여 견고함이 이를 데가 없었다.

동정군은 일제히 현지에서 급히 만든 나무 사다리를 사용하였으나 워낙 성이 높고 험하여 기어오르는데 실패만 거듭하였다.

이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 하기 시작 하였다.

 

 

한편 울산성의 총 사령관인 전야장경(箋野長慶)은 부하 장수 목촌심장(木村甚藏) 에게 자기의 준마를 내 주면서 목슴을 내 놓고 명나라 군의 진지를 뚫고 서생포의 가등청정 에게 구원병을 지원 해 줄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 하도록 조치 했다

  가등청정은 서생포 에서 이 급보를 받고 부산 주둔군 사령관에게 지원 예정 사실을 알리고 직접 육로로 명군의 동정을 살피기위하여 야음을 틈타 주위에 20명의 수행 장병을 거느리고 바닷가로 나가 관선(關船..중선)한척을 차출 태화강을 거슬러 올가가 울산성에 먼저 입성 하였다.

 

가등청정이 둘러본 울산성은 성밖 명군 공격을 받고 극도로 사기가 저하 되어 있었다.더구나 군량미가 고갈 되어 2,3일 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가등청정은 서생포에 연락병을 보내 서생포 주둔 병력을 배 30여척에 분승 태화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울산성으로 입성하라고 지시 했다. 가등청정 군이 명령을 받고 태화강에 나타났다.

    강 연안에 잠복 하고 있던 명나라 장수 저국기 병력이 일제히 적함대에 불화살을 쏘아 댔다.

놀란 배 30여척이 울산 성 쪽으로 나가지 못하고 근방 염포로 선수를 돌렸다

 

.

양호가 이를 보고 마귀에게

"적의 지원군이 없을 것으로 보았는데 나타났군 .....겨우 배 30여척의 병력으로 울산성을 지키겠다고?....적들이 울산성 으로 입성 못하게 염포를 집중 공격하라"

하고 명령을 내리자 마귀는 보병과 기마병 으로 일제히 왜선이 정박한 염포를 향하여 집중 공격에 들어갔다.

왜군은 염포로 몰려드는 명군과 육지에서는 결전을 할수 없음을 간파하고 정면 돌파 작전을 써 30 여척의 배를 불 화살 공격을 뚫고 울산성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명군과 조선군이 쏘아댄 불 화살로 4척의 배가 물속에 가라 앉았다.왜적의 함대가 결사적으로 울산성에 도착 하여 상륙 하고 보니24척만이 간신히 강안에 도착 하였다.

 

 

 

명군은 이번 전투 에서도 인명 손실 하나 없이 왜선 6척을 침몰 시키고 기고 만장 하여 만족하고 있자 접반사 이덕형이 칭송 하는 찬사를 늘어 놓자 양호는

"뭘요?, 이까짓 전투를 가지고 어디 승리라 할수 있소? 내가 얘기 하지 않았습니까? 울산성 안의 적군은 독안에 든 쥐 입니다.조선군이 우려 했던 서생포 지원 왜군이 저렇게 패퇴 한 이상 전의를 상실 하여 더이상 대항 못할것입니다 하하"

하고 그 보란듯이 너털 웃음을 웃었다.

 

 

"하온대 울산성은 왜군이 공을 드려 쌓은 성 이므로 유의는 하셔야 할것입니다"

하고 이덕형이 말하자

양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에게 계교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이 울산성 내에는 왜군 병력이 2만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2만여 병력을 유지 하려면 급수 관계가 큰 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사방의 성을 포위 하고 압박 하여 들어 간다면 함락은 시간 문제 입니다"

 

 

이덕형이

"경리께서 그런 훌륭한 계교가 있는줄 몰랐습니다 "

하고 감탄사를 연발 하였다 양호는 더욱 의기 양양하여

"적의 수원지 급수로를 찾아 차단 하려면 조선군의 적극적 도움이 필요 합니다 도원수 권율 장군께 이뜻을 전해 주시오"

하고 주문 하였다.

이덕형은 명나라 진을 나와 조선군 진을 찾았다.

 

 

이덕형의 말을 듣고 권율이 말한다

"양호께서 적을 너무 얏 잡아 보고 있습니다

 

왜군은 지금 서생포 뿐만 아니라 경상 우도 해안 전반에 수만 병력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어 울산성 함락을 묵과 하지 않을것이 분명합니다 가들청정 배 6척 을 침몰 시키고 마치 전투가 끝이라도 난것같이 생각 하는데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덕형이 권율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이덕형은 권율의 의중을 살피었다.

"제 생각으로는 울산성 공격도 중요 하지만 경상 우도 연안에 수없이 포진 하고 있는 왜군 부터 처서 적들이 갈피를 못 잡도록 하고 혼란한 틈을 틈타 울산성을 본격적으로 공략 하는것이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

 

양호 경리 께서는 거두 절미하고 울산성 공략에만 집착 명나라 신종 황제 에게 자기의 공을 과시하려는 욕심에만 치우치는것 같습니다 "이덕형은 권율의 작전관을 짐작하지 않는바 아니었으나 명군이 명군 자체 실력 으로도 능히 울산성 공격이 가능 하다고 본것은 양호와 생각기 같아 권율의 생각을 묵살하기로 작정 했다. .그는 하루 바삐 울산성을 점령 하여 선조로 부터 칭찬을 듣고 싶었다.

 

 

"도원수 께서는 너무 양호 경리사령관의 작전을 가볍게 보시는것 같습니다 .그분도 왕년의 중원을 뒤 흔들던 명장입니다. 그분도 그분 대로의 자존심이 있어 이번 울산성 공략 방침은 바꿀 의지가 없는것 같으니 원수 게서는 고집을 버리시고 이번 양호장군의 급수 차단 작전에 적극 협력 하여야 합니다"

이덕형은 권율에게 더이상 이론을 못하게 막았다 .

그 경리에 그 판서 였다. 병사들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전투에 덮어 놓고 눈앞의 공명심에 집착 양호 작전에 따르라는 이조판서겸 접반사 이덕형의 강력한 주장에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어쩌랴 권율은 입을 다물지 않을수 없었다.

 

 

이덕형은 구체적인 작전 까지 자기 의견을 개진 하였다

"양호 사령관 께서 적들의 상수원을 끊어야 하는데 이곳 지리에 밝은 조선군이 담당 하도록 도원수께 전하라는 부탁을 받고 온것입니다"

 

조선은 문관의 나라 라는 것은 앞서 설명 하였지만 당파로 얼룩진 조정의 권신인 이덕형의 말은 무시 할수 없었다 . 접반사 이덕형은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의 아주 가차운 대신이기 때문이었다 .

 

 

도원는 더이상 자기 주장을 단념하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별장 김응서가 이지역 사정에 밝으므로 그에게 병력을 주어 성 남쪽으로 흐르는 적의 급수로를 차단 토록 하겠습니다"

하고 곧바로 김응서 에게 명령을 내렸다.

 

 

26일 명나라 동정군의 작전 5일 째 접어 들었다 .

양호는 성 외곽 에서 전투로 수일 간을 소모 하고 있다가 이제 본격적 으로 울산 본성 공격의 시기가 도래 하였다고 생각 하였다.

양호는 작전 초기 조선군 사령관의  주장이 자기와 다른데 대한 반감으로  조선군 도원수를 지금 까지 자기 옆에 두던 관행을 깨고 대신 접반사로 조정에서 파견된 이조판서 이덕형을 옆에다 끼고 다니었다.

 

 

따라서 조선군 작전은 조선군 사령관이 한다기 보다 양호의 지시에 의한 이덕형 지시(?)가 권율 에게 전달 되어 사실상에 조선군은 모든 통수권을 양호 에게 맡긴거나 다름 없이 되어 버렸다.

양호가 이덕형을 불렀다. "이판께서는 이제 본격적 으로 울산 본성 공격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 하시오?"

양호가 무슨 생각인지 이번 에도 이덕형 에게 묻는 품이 수상적쩍었다

"경리 께서 더 좋은 계략이 있으실 텐데 제가 감히 어디 작전에대하여 말씀 드릴게 있겠습니까"

이덕형이야 무관이 아닌이상 작전 계획을 세울 처지가 못되었지만설사 의견을 제시 해보았자 양호가 독단 할것이 뻔하므로 아예 자기 의견을 내놓지를 않았다. 아니 이덕형은 병법에 대한한 무뢰한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는게 없었다.

"이판,"

"예"

"조선군이 왜적의 식수 공급 차단 작전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까?"

"물론 이옵지요, 감히 누구 명령이온데 ..."

"도원수가 뭐라 하지 않읍디까?"

"........"

 

 

아덕형은 권율이 주장한 울산성 후공격(後攻擊)과 경상우도 해안 선공격(先攻擊)안을 다시 설명 해볼까 했으나 작전 초기부터 양호와 권율의 의견 차이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양호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하여 대답을 않았다.

 

 

양호도 권율의 반응에 대하여는 더이상 묻지를 않고았다

"본성 공격을 개시에 앞서 조선군이 먼저 해주어야 할일이 있는데 이판(李判)께서는 협조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적들의 식수원이 고갈 되기를 기다리실려면 아무래도 시간을 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덕형은 양호의 언동에 어리 둥절 했다 .식수원을 차단 하는 작전은 무엇이고 본성 공격을 서두르는 것은 무엇인가? 또조선군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것인가?

양호가 미소를 띄운다

" 당초의 식수원 고갈 계획은 계획 대로 라면 지구전을 펴야 겠지만 생각 해보니 시간을 이곳 에서 허비 할수는 없습니다 . 식수 고갈 작전은 그대로 진행 시키고 다음은 적극적 으로 공격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덕형은 듣던중 반가운 소리였다 .

 

그렇지 않아도 조정 에서는 년내 적들을 조선 땅 에서 완전히 소탕 하기를 학수 고대 하고 있는 참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조선군의 역활은 무엇입니까?"

"다른게 아니라 항복한 왜놈들을 이용하여 울산성 공격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 입니다"

"왜놈들을 이용하시다니...."

"화공전으로 적들의 예봉을 저지 하려는 계교가 내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온지..."

"공격을 하려고 막상 생각 해보니 울산 왜성은 다른 성과 달라 성이 높고 험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나무 사다리 로는 공격이 쉽지 않습니다 , 잘못 공격 하다가는 우리 군사 들만 희생이 클것 같아서 작전을 바꾸어 우리 동정군이 야음을 틈타 들에쌓아놓은 노적가리와 풀을 베어 성주위에 쌓도록 지시하여 지금 많이 진척이 되었습니다.노적가리와 풀이 쌓이고 나면 화공전을 본격적으로 벌릴계획입니다 ."

"좋은 계획입니다"

 

 

이덕형이 찬사를 보내었다

"이판, 그동안 동정군이 풀을 쌓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전투를 곧 해야 할 동정군이 풀만 쌓고 있어서야 효과적 으로 전투를 수행할지 의문입니다."

"그렀습죠"

"그래서 지금 조선군이 관할 하고 있는 항왜(降倭)병 에게 이일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 동정군이 그동안 밤에만 작업을 시키자니 진척도 되지 않고...."

"하지만 항복한 왜병이라야 몇명 되지 않습니다"

이덕형이 생각 해보니 항복한 왜병 래야 몇명 되지 않은 것을 잘알고 있었다.

"이판, 참 답답도 하시오 , 항 왜병이 풀을 깎고 노적가리를 쌓는 일을 시키면 그들 멋대로 놔 두실 겁니까? 감시를 해야 하것 아닙니까?.천상 조선군이 그들을 감시 할겸 같이 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군 보고 위험한 일을 하라는 말투였다 .

"........"

이덕형은 기가 막히었다.

 

일은 저희들이 저질러 놓고 제일 위험한 일을 조선군 더러 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덕형은 양호의 말에 이론을 제기 할만큼 큼 담대 하지 못했다 , 그는 양호의 막사를 나와 조선군 막사를 찾아갔다.

 

그는 조선군 사령관에게  이사실을 알리고 조선군의 협조사항을 전달 했다 .

양호가 결국은 조선군을 희생양 으로 삼으려 하는 구나 ....조선군이 길을 터주면 힘 안들이고 울산성을 점령 하여 모든 전공을 저희들이 갖겠다는것인데....만일 실패 한다면?.....모든것은 조선군의 잘못 이라고 뒤집어 씌울것이 분명하고.....)

권율은 내심 불쾌 했다 . 굉장히 기분 나쁜 작전이기 때문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식 으로 이덕형의 부탁(?)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제장들을 불렀다

경상 좌병사 고언백이 흥분 하였다

"언제는 저희들이 선봉에 서겠다고 큰소리 치고 지금에와서는 우리를 보고 위험한 작업을 해서 길을 터주라?....."

 

 

우병사 정기룡이 흥분한다

"적의 지원군을 울산성 공격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저들에게 설명해도 듣지 않는자 들인데 우리가 반대 한들 우리 의사를 받아 들이겠습니까 더구나 항복한 왜병이 몇명이나 된다고 .....그들만으로 그많은 풀과 노적가리를 쌓는단 말입니까? 더구나 노적가리가 높이 쌓일수록 적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을것입니다. 이것은 필히 우리를 희생 양으로 삼아 저들의 목적을 달성 하려는것이 분명합니다 소장은 이러한 무모한 전투에 응할수 없습니다 "

 

별장 김응서가 나섰다

"하지만 이판국에 경리말씀이나 접반사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 할수 없는것이 아닙니까? 최선을 다할수 밖에....."

"............"

좌중은 조용해지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말한다 

"좋소, 최선을 다합시다"

 

 

 

조선군이 풀과 노적가리를 쌓는것을 본 왜군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

왜군이 기미를 알고 집중 공격을 가하기 시작 하였다.

풀과 노적가리는 더이상 쌓을수가 없었다.적의 탄환이 빗발치듯이 쏟아저 진전이 불가능 했다.조선군의 사상자가 늘어났다

 조선군은 은 풀쌓기작업을 결국 중단 하고 적들의 사격에 대응하도록 하였다 ,

이를 뒤에서 지켜본 양호는 권율이 고전 하고 있는것에 야릇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보다 못한 부총병 오유충이 양호에게 의견을 말한다

"산성이 험하여 일시에 적을 공격 하는것도 장비 부족으로 불가능하고 화공법도 쉽지 않으니 차라리 왜군에게 울산성 포위 한쪽을 열어주어 적들이 서생포쪽으로 도망게 하고 도망로 중간에 복병을 숨겨 놓았다가 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양호가 이말을 듣고 발끈 했다

"오장군은 기것 생각 한다는것이 적들의 퇴로나 내주어 가등청정 같은 큰 고기를 놓지자는 얘기 아니오? 오장군은 노장 답지 않게 무슨 말씀이오 , 당장 우리 동정군도 공격에 임하도록 하시오"

"........"

오유충은 양호의 대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유충은 양호의 속셈을 누구보다도 더잘알기 때문에 더이상 얘기를 않기로 했다

양호는 언양에 주둔 하고 있는 오유충의 예비 병력 까지 울산으로 불러 들였다 .

 

 

울산의 12월 26일과 27일은 양호가 울산성 공략을 방해 라도 할듯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조선의 남쪽 이라지만 날씨조차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겨울비 치고는 엄청난 강우량 이었다 . 따라서 양호의 급수 차단 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되었다.그동안 가물어 나오지 않던 우물 마다 물이 그득 하였다

게다가 명나라 군사들은 동복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양호는 울산 포위 작전은 해 놓았지만 초조 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

양호는 총 공격 명령을 내리었다 . 동정군은 아침 부터 성주위 삼면을 에워 싸고 화포와 화전(불화살)을 쏘며 사다리를 걸치고 성을 기어 오르다 왜군들이 조총을 쏘아 모두 성밖으로 떨어지었다.희생자가 불어 났다. 회수로 보아 7차에 걸처 성벽을 기어 오르도록 명령을 내렸지만 적들이 총과 대포로 와강히 저항하므로 함락을 한다는것은 어려운 일로 변해 있었다.

연합군의 희생자가 쉴새 없이 발생 하였다

조명 연합군의 희생자가 수없이 늘어났다 .

 

남병(南兵)유격장 진인(陳寅)이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당하여 한성으로 실려갔다.

양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 했다

 겨울답지 않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다가 내린비가 곧바로 얼어 붙어 성벽을 기어 오르면 급방 미끌어젔다 . 하늘이 돕지 않는것일까 .아니면 양호의 울산성 공격이 잘못되었던가 둘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병사들이 동상까지 걸렸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까지 들리었다

양호는 이덕형을 불렀다.

"이제와서 생각 하니 성을 함락 시킨다는것이 쉽지 않소이다 .더구나 왜군간의 지원이 불가능할것으로 보고 성을 포위는 해놓았지만 야밤을 이용 구원병이 계속 증강하고 있으니 왜군수가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이덕형은 양호가 약한 마음을 가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자 당혹감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양호가 군사를 걷우어 물러간다면 당초 울산성 공략을 성공 시켜 적이 스스로 저의 나라로 물러갈것이라고 선조에게 아뢴것이 거짓이 되어 임금의 실망을 줄것이 우선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가등청정이 포위당하여 지금 옴짝 달싹 못하고 있는것은 그야 말로 천명이 다 한것 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런 천우신조의 기회를 버리고 철수 하실 생각을 하신다는것은 잘못 생각 하신것입니다 .보십시오 . 다시는 그자를 잡을 기회가 올것 같으신가?

결국 고선군은 본의 아닌 울산성 공격의 고삐를 쥐게 되었다.

조선군의 화포와 불화살을 총동원 했다.

이덕형의 성화에 날씨개일 때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곧바로 총 공세에 들어 간것이다.

 

 

빗바람과서풍이 심하게 불었다. 거센 빗바람이 차가운 겨울 바람과 함께 조선군의 옷속을 파고 들었다 .

조선군이 단독으로 공격을 한다는 말에 양호는 조용히 지켜 보기만 하였다

 

 

울산성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공격을 하자 또다시 차가운 겨울비가 억수 같이 퍼붓기 시작 하였다 .

왜군은 최대한 비를 피하며 조총을 콩볶듯이 쏘아대기 시작 하였다 .조선군의 화포와 화전이 비에젖어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조선군이 여기저기 총탄에 맞아 나둥그러지고 죽는자와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비는 내리자 마자 얼어 붙어 도저히 전투다운 전투를 할수 없었다

"전투를 중단 하라!"

조선군 사령관은  공격중지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날씨가 활짝 개었다.

 

 

울산성밖은 언제 전투있었냐는듯이 적군과 조명연합군간에 조용한 하루의 해가 밝았다.

멀리 민가에서 닭우는소리가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오후가 되도록 전투가 없었다 ,그러나 왜군들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맑은 날씨에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밤 10시경이 되자 일제히 성밑에 쌓아놓은 건초더미에 일제히 불릏 놓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울산성 외곽이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뜨거운 열기가 주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조명연합군은 막사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가 건초타는 온기에 오히려 몸을 말리는 신세가 되었다.

 

 

 정유년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이 왔다

 

 

왜군은 고립 되기는 커녕 오히려 병력이 더욱 증강 되었다,와도직무의 병력 1000명, 죽도에 있던 협판안치병력 200명, 남해안에 있던 봉수하가정의 병력2000명이 속속 서생포와 울산성을 배로 서로 교대 왕래 하며 근무 하고 있었다 .말로만 태화강 경비였지 육전에 익숙해온 명나라군은 배위에서 쏘는 왜군의 조총과 항해술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태화강을 오르 나려도 속수무책이었다 ,

 

 

무술년(戊戌年)1월 4일 양호는 다시 총공격령을 내렸다

추위에 떨고 사기가 저하될대로 저하된 명군이 제대로 전투 해주지를 못하였다 고육지책으로 전투에 소극적인 유격장 이화룡(李化龍)까지 여러 군사들 앞에다 묶어 꿇어 앉치고 다그치자 처음에는 자극을 받아 싸우는척하다 포기하고 말았다.이지경이니 그 견고한 성을 함락 한다는것은 꿈 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적들은 가덕, 안골, 죽도, 부산등지에서 11명의 장수들과 6만 병력을 추가 하여 새까맣게 태화강을 배로 거슬려 올라와 울산성으로 모여들기 시작 했다 .

양호는 겁이 더럭 났다.

"철수 하라"

이번에는 이덕형 뿐만 아니라 장수들과도 의론 없이 전격 명령을 내렸다

동정군이 철수를 하기 시작 하자 이제 까지 배위에 있던 6만 왜병이 일제히 명나라 동정군의 뒤를 상륙과 동시 맹렬히 추격해오기 시작 했다 .

 

 

"아니 끝가지 싸워 성을 함락 시키겠다는것은 언제이고 .....조선군과 말한마디 상의 없이 철수를 하다니....."

철수보고를 받은 권율은 양호의 좌충우돌식 작전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권율은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라고 생각 하고 조선군 일부에 명령을 내려 철수하는 명군 길목에 복병 200며을 배치 시켜 놓았다.

동정군이 도망치듯 왜군의 추견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가며 철수하고난 길목 숨어 있던 조선군이 기습하여 적의 기습 선봉군을 쓸어 뜨리고 수십명의 목을 베자 왜군의 추격이 멈추어지고 철수하였다

 

 

 

양호는 경주까지 간신히 철수를 완료 하였다.

결국 명나라 동정군은 울산성 공격을 포기하고 성주, 남원, 안동에 분산 배치하고 전열을 다시 정비에 들어갔다.

양호는 한성 으로 돌아와 명나라 신종 황제 에게 철수 했다고 차마 할수가 없어서 울산성 에서 대승을 걷우고 한성으로 귀환 했다고 보고 했다.

.

명나라 조정의 찬획주사(贊劃主事)로 정응태(丁應泰)란 자가 있었다.

 그는 유격장 파새와 남다르게 친한 사이였다. 그는 명나라 조정의 명령에 의하여 한성에 머무르고 있다가 느닷없이 양호가 철수 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 하였다

" 경리는 조선 동정군의 총 사령관 으로서 큰 소리만 치고 알맹이가 없어"

전선에서 돌아온 파새와 술잔을 나누는 참에 파새로 부터 나온 불만의 소리였다.

 

"자넨 아는가?.이번에 사령관이 명 조정에다 울산성 에서 대승을 하고 귀환 하였 다고 보고 한것을 ....."

정응태가 들은 사실을 말한다

"무슨소리야, 대승 이라니? 철수를 자기 멋대로 명령 해놓고 대승을 걷우 었었다니 말이 되나"

"그래? 그러면 양호의 보고는 허위보고였다는 말이야?"

"그렇다니까..."

 

 

파새는 당초 철수령이 내려저 있을때 한성 까지 올라올 생각없이 경주에 머물어 있겠다고 하였으나 양호는 각 장수들에게 일부 병력만 각지에 남겨 두고 한성까지 일단 철수하라고 강력히 명령 하였다.울산전 에서 승리 했다 는것을 뵈워 주기 위한 방책이었다

양호가 명나라 조정에 개선 장군으로서의 허위 보고를 하기위한 수순을 밟기위한 또하나의 술책이었다.

 

 

"이러다가는 임진년 왜군이 한성 까지 처들어와 다시 수모를 당할지 모를 일이 생길것이네"

"그러면 양호는 개선 장군 이되어 본국 으로 귀환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 다니까"

"........."

기가 막힐 일 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 간다면 개선 장군인 양호만 중용될것이 분명하이, 그렇게 되면 동정군이 모두 철수 한마당에 왜군이 다시 처들어 오지 않을것이라고 누가 장담 할것인가? 그동안 우리가 세운 전공은 다 어디로 가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호랑이잡고 볼기맞는 꼴이 되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나는 끝 가지 철수 해서는 않된다고 주장한 사람이야"

"안되겠어, 적들이 임진년때 모양으로 한성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다시 처들어 온다면 그때는 양호는 명나라 조정에서 편안히 조선의 동태를 보고 큰소리 치고 있을 것이고 나는 직무 유기에다 자네는 패장이되는 신세가 되고 말지"

 

 

"그러게 말일세 자네의 직책이 양호에게 말할수 있는 직위에 있으니 만나서 철수의 부당성을 말해 보게"

 

정응태는 울산성 패전에 대한 사후 대책을 상의 하러 양호를 찾았다 .

양호는 정응태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의기 양양하게 울산서 대승을 걷운것이지 실패한것이 아니라고 큰소리첬다.

정응태가 분개 하였다

("종이도 네귀를들어야 바르다"라는 말도 있듯이 무슨 일을 하던 서로 힘을 합쳐야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저런 독선적인 자가 동정군의 총사령관에 있어 일을 그릇치고 있으니 한심하구나)

 

자기 숙소로 돌아온 정응태는 명나라 조정에 보고서를 작성 하였다

"경리 양호는 명나라 병을 사병(私兵)처럼 부리고 있나이다,울산성을 공략 계획을 세웠을 때도 적들이 조선의 경상우도 해안가에 곳곳에 주둔병력이 있으니 이들부터 처서 전의를 상실케 하여야 한다는 조선군 도원수 권율의 건의가 있었으나 이를 묵살 하고 자기 멋 대로 울산성 공격만 고집 하였습니다 .

 

 

 

경리는 경상도해안가에 주둔한 적군은 곁 가지에 불과할 뿐이니 적의 주력군인 울산성의 가등청정을 사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장 가등청정만 바로 잡으면 만사가 다 이룰 것 같이 말 한것입니다 ,

 경리의 그 저의는 명분있는 큰성하나를 처서 가등청정같은 이름난 왜장을 잡아서 폐하께 신임만 얻겠다는 공명심 때문이었습니다 . 그러나 경리는 가등청정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울산성에 왜군의 병력이 더 증강만 하도록 빌미만 주었습니다 .

 적들은 오히려 우리 조명연합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어 우리의 전사자가 가 1000여명에 이르고 부상자가 3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울산성 전투가 대승을 걷웠다고 보고 한것은 폐하를 업신 여긴것이 아니고 무엇이 겠사옵니까?

 

 

천하에 죄치고 많은 사람을 죽게 하거나 황제를 업신여기거나 불효를 행하는것이 큰 죄라는데 경리 양호는 이러한 죄를 짓고도 버젓이 큰소리 치고 있나이다 .더구나 지금 울산의 왜군은 더 기세가 강하여저서 임진년의 수모를 또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 하겠나이까? 적의 추격에 저항한번 못하고 한성으로 돌아온 뒤를 권율의 조선군이 오히려 물리처 적들의 추격이 멈추었다 합니다

 

 

이런 모두 명분과 의리를 헌신짝 다루듯 하는 방약 무인 한자는 마땅히 목을 베어야 마땅 할줄로 아옵니다 .

또 경리 양호는 음흉하고 사나와서 부하를 다루기를 제 사병 다루듯 하며 조선군과도 독선과 무능으로 작전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번번히 실전을 거듭하여 왔습니다, 당연히 처벌토록 하여 주옵소서 "

 

 

정응태의 장계를 읽어본 명나라 신종 황제는 대노 하여 양호 뿐만 아니라 실전 책임을 물어 마귀와 이여해 까지 죄상 28건과실 10건을 찾아내어 처벌 하였다. 당초 신종 황제는 양호를 참수까지 하려다 이를 감하여 삭적으로 끝내었다

 

 

 

무술년 2월 3일 명나라 조정은 경략 양호를 형개(邢介)로 바꾸었다

 

 

조선 조정 에서도 인사 이동이 있었다.영의정에 류성룡을 이원익으로 바꾸고 좌의정은 울산성 공략의 공신 으로 수고 했다 하여 이덕형을 세우고 , 우의정에는 이항복이 임명 되었다.병조 판서에는 김명원으로 바뀌었다.

 

 

우희다수가는 풍신수길 에게 이번 양호의 울산성 공격에 대하여 명이나 조선 에서 집착을 갖는것 같으니 미련을 갖지 말자고 건의 했으나 풍신수길은 오히려 성을 재 보수하고 더욱 경비를 강화하라고 지시 하였다.그러면서 합천의 초계와 산청군의 안음, 남원을 공격 점령하고 계속 명군과 조선군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8월17일 임진란의 주범 풍신수길이 이유 모를 병을 얻어 벼란간 죽었다 .

풍신수길이 죽고난 왜국 원로회의 에서는 조선에서의 철수 문제로 갑론 을박 시끄운일이 생기었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 에게도 풍신 수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왜군 들은 철수 되기를 원하는자가 거의 다수였다. 다만 본국의 철수 명령이 언제 떨어질것이냐와 철수 방법이 언제일것이냐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소문은 조선군과 명군에게도 전달 되었다.

 

 

이소식에명나라 동정군 사령관 형개는 힘을 얻었다 그는 휘하 장수인 제독(提督)유정(劉綎)을 불렀다.

"그동안 우리 동정군은 울산성 에서 많은 희생만 치루고 전투 다운 전투를 치루지 못하였거늘 황상께서 대노 하시어 우리 동정군 장수들은 몸둘곳이 없게 부끄러운 지경이오.

 

듣자니 왜국의 관백인 풍신수길이가 죽었다는 보고 가있어 확인 한바 사실 임이 확인 되었으므로 명예를 회복 하기 위애서라도 반드시 왜군의 항복을 받아 내라는 황상의 명령이 있오 , 적들도 사기가 저하되었을것이 분명 하니 이번에야 말로 좋은기회가 온것이니 그대가 이번에 공을 세우도록하라"

하고 명령을 하였다

 

 

 

동정군을 대대적 으로 다시 재 편성 하였다 .

동,중,서, 수로(水路)등 소위 4로(路)병진 전투 계획 이란것이었다.조명 연합군 총병력 14만의 대군 이었다

조정에서는 각도의 병력을 차출,동정군과 합세 토록 지시했다.

 

 

평안도와 강원도에서 차출된 병력과 경상좌도 병력 5500명은 동로군에, 경기, 황해, 경상우도 병력2500명은 중로군에 ,충청, 전라병력 1만명은 서로군에 이순신과  명나라 진린이 지휘하는 수군 7300명은 남해 바다로 나누어 명군과 합세 하라고 지시 하였다 .

 

 

 

본군은 유정과 권율이 지휘 하기로 하였다. 명분상 으로는 그럴듯한 편성 이었다 숫자적 으로는 엄청난 대군 으로 편성 된것이다 . 이편성은 경상도에 나와 있던 도원수 권율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우의정이된 이덕형과 비변사가 편성시켰다.

 

 

 

유정이 한성 에서 출발 할때 조정은 우의정 이덕형을 이번에도 따라나서게 하였다 .조정은 이덕형 에게 풍신수길이 죽었으니 남은 왜장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기필코 왜적을 조선땅에서 물러가게 하도록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당연한 명령이었다.

 

 

 

유정은 동정군을 다시 이끌고 전주성에 입성 하였다.그러나 유정은 무슨 이유 에서 인지 더 이상 남하 할 생각은 않고 전주성에서 술잔이나 벌려 놓고 소일만 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덕형에게 유정이 나가지 않는이유를 알아 보고 하라고 다그쳤다.

이덕형이 유정을 찾았다.

새벽 유정은 대장 기를 높이 세우고 명군을 일제히 총공격령을 내렸다 왕지한이 성밑에 육박하고 기병대 1만여기도 뒤를 따랐다.

 

왜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루에 올라 대포를 퍼붓고 항전하였다 비 오듯 쏟아지는 조총 탄이 명군 진영을 어지럽혔다

 

 

명군은 성벽에 기어 오르커녕 진퇴 유곡에 빠지고 말았다 .

왜군은 왜교성 서문밖으로 나와 명나라군 진영을 흔들어 놓고 잡히는 명나라 군을 잡아 끌고 들어갔다 잡히지 않은 명군은 총에 맞아 죽었다.

그나마 몇개 않되는 비루(飛褸)와 포차(砲車)는 왜군이 쏘는 포탄에 맞아 박살이 고 부링 붙었다.왜군은 명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유유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8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왕지헌은 사태가 위험하자 유정의 의 지시도 없이 군사를 일단 철수 시켰다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유정은 왜적들의 용감성에 혀를 내둘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 한척했다

"이놈들이 우리가 수륙 합동작전으로 섬멸이 코앞에 닥친줄모르고 함부로 날뛰어 ....서두를 필요가 없어 ...일단 본진으로 갔다가 적의 형세를 관찰 한뒤 다시 공격하겠다"

큰소리 치며 본진으로 귀대 하였다

 

 

유정은 소서행장 체포작전 실패와 진린의 공격 제의 악재가 모두 실패로 끝나자 본진에 돌아와 갚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육지와의 연락없이 하는 전투이니 명나라 수군 사령관 진린도 공격시기를 서로 의견 없이 서두른것을 후회하고 다시 공격시기를 알아보러 군관을 보내어 알아 보도록 하였다

 

 

유정은 진린이 보낸 서신을 읽고 나서 흥분한다

"한심한지고 오늘 새벽 우리는 죽을 고비를 치루고 싸웠거늘 지금에 와서야 공격 시기를 물어와?"

왕지헌이 간한다

"어찌하겠습니까"

"그래 두고 보자 , 이자가 나를 우롱 했어 "

하면서 벼루와 먹을 가져오라 하여 답서를 아래와 같이 써주었다

"오늘 저녁 총공격을 할것이니 수군도 협공 해주오"

왕지한이 물었다

"제독님 낮의 전투에 모두가 피로 해있습니다 . 전투란 자기가 손해를 보고 상처입기만을 위해서 하는게 아닙니다 ,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왕지한은 전투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진린 군관에게 써준 답서를 못마땅하게 생각 하였다

 

 

유정이말한다

"이봐 , 진린이 우리를 골탕 먹였으니 저이들도 혼이 나야지.... 오늘저녁 공격 하는척하며 군사들을 모야 놓고 함성만 요란하게 지르도록 하게....."

왕지한에게 눈매를 보내며 알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 저녁전투는 실제 없는것입니까?"

"그렇다니까..."

 

왕지한은 낮의 악몽같은 전투를 저녁에까지 연장되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알고 저녁 식사후 연병장에 전장병을 모이라고 부하 장수들에게 지시 하였다

해가 서사에 넘어가자 진린은 성저쪽 육지쪽 에서의 육군의 함성 소리를 듣고 고무되어 이순신을 선봉대로 앞세워 명나라 수군과 조선수군이 일제히 상륙 공격을 감 행 하였다

 

 

그러나 군사수가 분산되어 성공격이 쉬울줄알았던 진린의 계산은 적이 쏘아대는 집중 포화와 조총에해안가 성벽을 기어 오른다는것은 불가능했다 . 진린은 왜군이 성 북서쪽 으로 전군을 투입시킬것으로 알고 해안가 성벽은 쉽게 함락 하리라고 장담 했던 것이다

 

 

더구나그사이에 왜군이 점점 불어나 더니 성밖까지 왜군이 몰려 나와 수군에게 조총을 쏘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었다

 

진린은 사태가 육군 쪽에서 비협조로 성함락이 어렵게 되는것은 모르고 마음이 조급 하였다

 

 

게다가 썰물이 밀물로 바뀌기 시작 하였다

이순신이 진린에게

"아무래도 일단 바다로 물러났다가 다시 공격 계획을 세워야겠습니다"

하자 진린이 화를 내며

"장군 , 지금 물러나다니오?"

"지금 물이 빠지고 있어요"

명나라군의 요란한 함성소리에 놀라 전선에 나와 있던 우의정 이덕형이 접반사 김수를 불렀다 .

 

 

"아니 저게 무슨 함성 소리요?"

"글세 말씀입니다 ,낮에 전투가 치열하여 다시 전투가 있게되면 우리에게 통보가 있을터인데요..."

"왜군이 처들어 온것은 아니고......"

도원수에게서서도 연락이 없었소이까?"

"그렇습니다"

"좌우간 도원수 막사로 갑시다 '

권율도 이상한 함성에 놀라 유정 막시로 급히나갔다고 한다 .

 

 

 

유정 막사에급히 가니 권율도 막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선군 측에서 세명씩이나 들여 닥치자 유정은 이럴줄 알았다는듯이 여유있게

"웬 일들이십니끼?"

하고 시침이를 떼고 세사람을 바라 본다

"적이 다시 침공했습니까?"

"예 적이 우리를 공격 하는것이 아니라 조명 수군이 해안에서 적에 대하여 오늘 저녁 공격 총 공격령을 뒤늦게 내린 모양입니다 "

 

 

우의정 이덕형이 말한다

"그러시다면 우리도 공격을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영상은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요 용병의 최상의 방법은 사전에 적의 계략을 간파하여 그것을 처부수는것이외다 , 적을 치려면 구체적인 계획없이는 불가능한것이오 . 그런데 수사(水使)들은 그런 사전의 계획도 없이 급하게 치자고 하여 시작은 했으나 보시다시피 낮의 공략전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지금 군사들은 낮의 전투로 지쳐 있어 전투에 내 보낼수 없어요 두고 봅시다 . "

 

"하지만 수군의 힘으로만 성을 공격하게 놔둘수는 없는것이아닙니까?"

하고 이덕형이 다그치자

유정은 콧방귀도 꾸지 않고 대꾸를 않고 있기만 하였다.

권율이 보다 못하여 말한다

"정 명군을 동원 못하시겠다면 조선군 단독이라도 동원 하겠습니다 "

하자 유정이 말한다

 

 

" 이번 출전시 조선의 장령들이 명나라 명령을 절대 복종 하시겠다는 서약을 잊으셨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 핀잔을 주었다 .

권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 단독이라도 할수 없지요"

 

 

하고 나가려 하자 우의정 이덕형이 가로 막았다

"도원수, 전하가 명나라 장수들의 지시를 따르라는 간곡한 어명이 있었으니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 맙시다 "

하고 타일렀다 .

김수도 권율에게 닥아와

" 유정 제독은 그나름대로 하느라고 하고 있습니다 ,잘못은 사전 협의 없었던 진린 도독이 문제 였습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시지요 지금 조선군 만으로 전투하는것도 옳으나 정의감에만 사로잡혀 큰것을 그르칠수는 없습니다 "

하고 말린다

"........"

권율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아무말 없이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기만 하였다

 

진린이 지휘하는 수군은 조수 간만의 차가 바뀐다는 말에 마음이 걸려 철수를 결심하었으나 마음이 조급하였다.

"각선은 철수시 적선 1척씩을 나포하라"

하고 명령했다

 

이순신이 진린에게

"도독 , 조만간 조수가 빠집니다. 빨리 서두르십시오"

하자 진린이

" 통제사 , 우리가 성을 함락 못했으니 적선이라도 가능한한 많이 나포 해 물러나야 하지 않겠소?"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

 

 

이순신은 조수가 밀려 나가 진흙이 들어나는 썰물이 걱정이 되어 진린 에게 다그 첬으나 현지 사정에 눈이 어두운 그는 이순신의 말에는 관심 없는듯 하였다.

진린의 지시로 명나라 수군은 왜군이 부두에 매어 놓은 밧줄을 걷우고 왜선에 상륙 하여 빈배로 있는 배 안에 있던 왜군 경비병들을 잡아 죽이고 예인 줄을 명군 배에 붓들어 매고 있었다

바닷물이 급물쌀을 타고 빠지고 있었다

 

이순신은 진린과 판옥선에 있다가 그들이 타고 있던 배부터 먼저 바다 깊숙히 먼저 빼었다

"늦었다"

누군가가 진린과 이순신 옆 에서 뇌까리는 소리가 났다

 

명나라 배 23척이 바닷물이 조수 간만의 차로 빠지자 모두 진흙 위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올라 앉게 되었다

 

때를 놓질 세라 왜군 들이 각배에 개미떼 처럼 기어 오르고 배에 오르자 마자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고 조총을 쏘아 대었다

명군은 졸지에 공격을 당하자 여기 저기 갯벌 진흙 으로 뛰어 내리었으나 살아 남는자가 얼마 되지 않고 모두 뭍 으로 기어 나오다 왜군 에게 붓들려 성 안으로 끌려 들어 가고 말았다

다음날 만조가 되었다 ,

 

부두 에는 임자 없는 왜선과 명군 배가 어제 어제밤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리리 저리 떠다니고 죽은 명군의 시체가 떠 다니고 있었다

 10월 4일

 진린의 체면에 찬물을 끼얹은 이번 참패에 울화가 치밀어 어쩔줄 모르고 있자

"도독 께서는 지금 헛 수고를 하시고 계십니다 , 지금 육지 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한다고 되시겠습니까?" 하고 이순신이 진린 에게 말 하자 진린이 그제서야 정신 번득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제독이 그동안 전혀 꿈적 않 했단 말이오?"

 

 

"방금 저의 군관 한명이 육지 소식을 알려 왔는데 육군은 전혀 전투 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그건 통제사 께서 잘 모르는 말씀 이오 , 어제 아침만 해도 적들과 싸우는 소리가 육지 저쪽 에서 요란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오전 얘기 이시고 정작 우리가 공격 개시한 저녁 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

".........."

진린의 얼굴이 순간 확 달라 지었다 .

 

 

"배신자!"

 

진린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진린이 손수 배를 내어 유정이있는 육지로 상륙 하여 유정을 찾았다 .그는 유정 진막에 들어 서자 마자 눈을 부라리며 유정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

 

엄연히 진린은 유정 에게는 군 계급상 하위이다 . 유정은 느닷 없는 진린의 화난 얼굴에 당황 하였다

순간 진린이 옆에 세워 놓은 장수기(帥旗)를 찢어 내동댕이 치며 말한다

"제독 , 내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소, 합동 작전을 하자고 해놓고 우리 수군은 피 흘려 싸우고 있는데 도대체 어찌 하려고 이러시오? 내 이번 일을 경략게 보고 하여 잘 잘못을 가리고 말겠소이다 "

 

 

유정은 진린이 이러한 무례한 행동 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가 졸지에 당하자 당황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는 그의 성격을 짐작은 하고 있던 터이라 잠간 할 말을 잊고 있다가

"도독, 도독은 왜 사전에 나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어찌 했다고 화를 내느거요?"

하고 진린을 나무 랬다, 진린은 유정이 이번 작전에 대한 사전 협의가 왜 사전에 없었느냐는 말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

 

 

"그것은......"

"그것이 어쨌 다는거요?..."

이번 에는 유정이 언성을 높혔다.

"조수 간만의 차이 관계로 협의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

 

 

 

현지 사정에 눈이 어두웠던 진린도 이번 조수의 간만의 원리를 뒤 늦게터득하고 유정에게 써 먹었다 .

 

" 조수 간만 이라는 것이 10월 3일 하루만 생긴다 합디까? 한나라가 전쟁을 하려면 전투에 임하기 전에는 많은 사람과 물자에 대한 생사가 걸려 있는 중대사 이므로 신중 하게 하지 않으면 않 되는것 인데 도독과 같이 그렇게 경솔 하게 시작 해서야 전투에 승리 할수 있다고 보오?"

하고 진린을 나무 랬다 .

 

 

"그렇다고 바다 한 구석 에서는 적과 혈전이 벌어 지고 있는데 어떻게 태연하게 그러시고 있으시면 되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오 , 우리 동정군 육군도 도독이 우리와 사전에 상의 한마디 없이 이미 해안가 에서 작전을 시작 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 하였었으나 그날 오전에 즉각 대응 한것이오. 내가 이 자리가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한마디 하겠소.이 왜교성을 공략 하는 경우를 생각 해 봅시다 . 전투에 앞서 장수가 해야 할일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오?

 

 

우선 병사들의 추위와 더위를 생각 해야 하고 배고픔과 배부름을 생각 해야 합니다 병사들의 상태를 고려 해야 설사 적이 강해 장수가 일방적 으로 후퇴 하려 해도 병사들이 스스로 "왜 철수 하느냐 ? "소리가 나오는 것 입니다 , 그래야 병사들은 전투에 임해서 장수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아무리 높은 성에서 화살과 조총탄이 날아 와도 앞을 다투어 싸울수 있는것이외다

 

 

도독은 육군과 수군의 전투 형태를 혼동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육지 라는 곳은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 잡지 못하면 언제라도 도망 할수 있는 곳이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군이야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배라는 영역내 에서는 언제나 장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물에 빠저 죽어야 하던가 아니면 싸워야하는 두려움 때문에 수군에서는 장수에게 절대 복종하여 장수만 잘 지휘 하면 되지만 그런 면에서 육군과는 통솔면에서 전혀 다르지요..."

"......."

진린이 유정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다가

'아까는 제가 너무 흥분 했나 봅니다 "

하고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하며 막사를 빠저 나갔다.

 

 

 

진린이 물러간 다음 유정은 처음에 진린이 대장기를 찢고 난리를 치룰 때와는 달리 기분이 썩 좋았다 .

진린 문제는 해결 되었으나 어제 저녁에 권율이 조선군 단독으로라도 적을 치겠다고 벋히었던 사건이 마음에 계속 남아 자존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유정은 이덕형, 김수, 권율을 불러들였다

"방금 진린이 들어와 행패를 부려 타 일러 보냈소 "

하며 유정이 생각 밖으로 밝은 표정을 하였다

이덕형이 묻는다

"무슨 말씀들이 있었습니까?"

"글쎄 어제 저녁 공격에 우리가 가담 않 했다고 진린이 와서 장수기를 찢고 난동을 부리기에 타일렀지요"

이덕형이 두 사람간에 일어났던 사건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다

"어제 일은 제독 께서 도독이 상륙 전을 폈을때 이쪽 에서도 적극 공격 했어야 옳지 않았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유정은 금새 얼굴이 바뀌어 노기를 띄우며 말한다

 

 

"우의정께서는 참으로 답답하오 ,아직까지 내뜻을 모르시는구려 .병법에 將與士卒共寒勞饑飽(장수는 병사들과 추위와 더위 수고로움과 괴로움 배고픔과 배부름을 같이 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소이다 .우리가 사전 준비도 없이 있는 사이 느닷없이, 진린이 해안선에 나타나 군관 한명을 보내 밀서라고 내밀며 우리보고 합동 작전을 해달라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소이까? 그래서 마지 못해 싸운 전투는 어땠습니까? "

하고 이덕형을 노려 보았다

"........"

이덕형은 말문이 막히었다 ,

 

유정의 말을 듣고 보니 딴은 그렇다.이덕형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때는 이때 라고 생각 한 유정은 시선을 김수와 권율 에게 보내며 말한다

"도대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조선군은 어쩌자는것 입니까?내 듣기에 조선군은 늙은자, 병든자, 약한자가 태반 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영상들 께서는 어떻게 모병을 하셨기에 그런 병사들이 차출 되어 왔다는 말씀 입니까? 지금 조선은 국난 위기에 너도 나도 나서야 할판에 권력과 돈 좀 있는자 들이 이리 저리 핑게 대고 군사 되기를 기피 하는자 들이 부지 기수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이래 가지고 우리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도와 줄 기분이 나겠습니까

 

 

 다시 말 하지만 국난을 당하여 병사에 대한 업무는 나라의 대사라 할수 있습니다 .

국가의 존망이 장수의 움직임 여하에 달려 있는것입니다 . 그렇다면 병사의 생명을 책임지고있는 장수에게 국가는 어떻게 해주어야 합니까? 국가는 훌륭한 병사감을 군을 지휘하는 장수에게 선별 해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조선 조정이 한게 무엇 있습니까? 도대체 조선 조정은 전쟁을 하시려는 건지 말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의정 께서는 아무나 군인을 뽑아 장수들 이나 군인들이 목슴이나 바치면 되는줄로만 아시는지 모르 시겠지만 그런 전쟁은 이미 낡은 전쟁관 입니다 .

 

 그런데도 그동안 조선 조정은 그런 모병은 않 해주고 장수들 더러 열심히 싸우지 않는 다고 만 하는것 같은데 그래서야 장수들이 제대로 싸울수 있습니까? 당장에 늙고 병들고 약한 병사들은 귀향 시키고 산이 꺼저도 움직일수 있는 정예 병사 들을 키워 전투다운 전투가 되도록 해주시오"

 

이덕형은 얼굴이 새 빨갛게 달아 올랐다 .

 

사실 모병 문제는 조선 조정이 제대로 한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병 문제는 이덕형도 할말이 없었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망신 만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

 

 

 

진린과 유정간에 왜교성 합동 작전 실패를 가지고 일어난 사건을 뒤에 이순신은 일기에 "통분하다"라고 써서 한숨을 쉬엇다는 기록을 남기 었는데 이순신도 두 사람간의 관계를 보고 답답한 나머지 쓴 일기였을 것이다 .

 

 

 

권율로서도 이번 사건은 유정의 말과 같이 졸지에 진린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사건인 만큼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 만일에 그가 진린의 돌출적 작전을 미리 유정이나 권율에게 보고만 해주었어도 이번 사건과 같은 패배는 없었을것이었다 이 모두 조정 에서 명군의 눈치만 보게 만든 조정의 탓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수 있었을까

 

 

 

유정은 10월7일 권율을 불렀다 . 유정은 권율이 어떤 인물 인지는 명나라 본국에 있을때 부터 그 명성을 듣고 있었는 지라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였다.

"장군 , 우리가 이곳에 이러고만 있어서는 않 되겠 습니다 . 우리 군이 너무 피로 해요"

유정이 엄살을 떨었다

 권율은 유정의 의사를 전적으로 받아 들일수 없었다

그나마 명군이 철수 하면 언제 다시 공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찌 하시렵니까"

"일단 순천으로 물러 났다가 다시 전열을 가다 듬어 공격 하도록 합시다"

"하지만 적들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철수를 하신다는 말씀 입니까? 동정군 이나 먼저 철수 하시지요 조선군만 이라도 단독으로 남아서라도 적을 지키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유정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었다.

 

 

"내 이 말을 또 해야 겠습니다 원수께서는 출전 직전에 교련장에서 한 제기의예(祭旗의 禮)를 잊으셨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켜 주셔야지요 ,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조선군이 협조를 않는 다면 우리 동정군은 한성 까지 철수 해서 라도 선조께 아뢰고 난다음 명으로 돌아 가겠습니다."

유정이 협박조 말이었다.

권율은 유정의 이 협박 조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렇지 않아도 유정이 자기 복장 까지 거짓 으로 입혀 소서행장을 체포 하려 한짓을 못마땅히 하던 터이었다 .

(참으로 비겁 한자 이다 , 외교 관례도 모르는 무식 한자와 얘기거리가 않된다 )

권율이 말없이 유정을 노려 보고 있자 김수가 나섰다

"장군 제독 말씀 대로 일단 물러 났다가 순천에서 재충전후 다시 재 공격 하시지요 , 병법 에서도 성을 포위 한지 열흘이 넘어도 뜻대로 되지 않아 하늘이 도우지 않으면일단 철수 했다가 다시 치는것이 상책 이라 했습니다"

"......"

권율은 더 이상 말을 않고 막사를 나왔다

이날밤 조명 연합군은 모두 순천으로 철수 완료 하고 말았다.

 

다음날 왜군은 동정군의 동태가 너무 조용 한데도 명 진영에 대하여 더 알아 보려 하지도 않고 조용히 지내었다 . 그것은 명나라 유정이의 기책(奇策)에 휘말릴까 우려 해서 였다

 

 

 

11월이 되었다

유정은 그가 처음 부터 주장한 화,전 (和,戰)양면 작전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소서행장을 그만 큼 속이고 서도 한편 으로는 꾸준히 그 와의 대화로 전쟁을 마치려 했다

 

 체포 작전 사건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 지만 유정은 서신 말고도 꾸준히 금 폐백 까지 보내어 소서 행장을 달랬다 .

풍신수길이 이미 죽은 상태 에서 소서행장도 더이상 희망이 없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보장만 해주면 좋은데 그동안 조선에 저지른 악행으로 조선군 때문에 감히 엄두를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기대 할수 있는것은 신뢰는 할수 없지만 유정밖에 는 방법이 없을것 같았다

유정은 소서행장의 이런 속성을 누구 보다도 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소서행장을 믿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심복인 가정 (家丁)들 30여명을 인질로 보내면서 까지 소서행장을 달래 었다

소서 행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소서행장은 유정 에게 밀서를 보내었다

"일전에 제게 한 행동에 대하여 실망 했었으나 제독께서 그동안 이를 후회하고 저의 대한 관심을 계속 쏟아 주신데 대하여 고맙게생각 합니다. 솔직이 말해서 우리는 관백께서 서거후 조명 연합군과 싸울 기력이 저하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군이 가로 막고 있는 길만 터 주신다면 미련 없이 왜교성을 내드리고 철수 하겠습니다 . 떠나면서 많은 수급과 무기를 남기고 가겠습니다 고려 해주십시요"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처음 유정은 소서행장 으로 부터 풍신수길이 죽었 다는 서신을 받고 반신 반의 했다

.남을 잘 속이던 유정 이니 남이 정직 하게 알려도 고지 듣지 않는 것은 당연였다 .

더구나 조선과 명나라는 풍신수길이 죽었 다는 풍문과 왜군철병설이 믿어야 할지 무시 해 버려야 할지 막연 하였다.

 

 

명나라 동정군은 적장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유일 하였 으나 서로가 불신 하여 믿지 못하였다 .

 풍신 수길의 사망 정보는 군사 운영상 절대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을 가장 서생포와 부산등 가등청정이 있는 곳으로 정탐꾼을 내보내어 그쪽 소식은 익히 듣고 있었다. 한가지 이상한것은 서생포에 비축 해놓았던 군량미를 부산포로 옮겨 매일같이 배에 싣고 있다는것이었다

 

 

도원수는  경상감사 정경세(鄭經世)를 불렀다 .

"정감사 동부 지역의 적들의 동태가 수상하오 ,소문에는 풍신 수길이 죽었 다는 소문이 던데 사실이오?"

조선군이  주둔 하고있는 왜교성은 전라도 지방 이니 동부의 경상도 해안 소식을 잘 모르리라고 생각 했던 정세경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권율은 듣던 대로다 .....왜교성 전투 와중에도 동부 소식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으니...)

"어저께 왜국에 포로로 붓 들려 갔다가 도망 처 나온 조선인이 있어 잡아다 물어 보니 수길이 지난 7월 사냥을 나갔다가 더위에 피로 해서 쓸어진 줄 알았는데 그후 앓아 드러누어 일어 나지를 못 하였다 합니다 ."

"무슨 병이라하였오?"

"이름 모를 괴질 이라 합니다 "

"그래서 수길이 어찌 되었다 하오?"

"결국 죽었다 합니다 "

 "그런 중요한 정보를 도원수인 나에게 빨리 알려 줄일이지 ...그동안 내가 알아 본 풍문과 어제 제독이 소서행장의 서신을 받고 수길이 죽었 다는 것을 말 하기에 공을 부른 것이오 . "

"조정에 먼저 보고 하고 원수께 보고 하려고....."

정세경의 말이 권율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사 들은 전란 초기 부터 지금 까지 조정의 눈치만 살피 기만 하고 정작 일선 에서 긴급히 판단 하여야 할 작전에 알리는 일은 뒷전이니 말이다

 

 

"그러면 감사는 수길이 죽었다는 사실과 왜군의 철수설을 어떻게 보오? 과연 왜군 들이 수길이 죽었다고 전쟁을 끝 내고 순순히 철수 할것인가 말이오 , 내가 파악 하기에는 서생포의 왜군 군량미를 부산포로 이동 하여 배에다 선적 하고 있는것을 보아

서 철수설이 타당 한것 같은 데..."

"이닙니다 , 왜놈들이 수길 하나쯤 죽었다고 철수 하겠습니까?

이놈들이 위장술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듣기에는 명나라 조정에서 특별히 일본의 사정을 잘알고 전투에 능한 명나라 남만(南蠻)군을 왜국 녹아도에 상륙시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병력을 그쪽으로 따돌리기위한 양동 작전이 아닌가 합니다"

"......."

 권율은 정세경이 근거 없는 장광설을 늘어 놓는것을 가만 히 듣고만 있다가 감사로 부터 더이상 믿을 정보가 없다고 생각 했다

" 공은 잘못 알고 있소이다 , 설사 명나라 동정군이 복건성을 출발 왜국 본토를 치고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제독이 모를리가 있겠소. 내가 판단 되기에는 남만군 상륙설은 사실무근이고 적들이 양곡을 싣는다는것은 그것과는 무관 하오"

"그러시다면 적들이 순순히 우리나라에서 빼앗은 양곡을 싣고 가도록 두고만 보시겠습니까?"

"........"

권율은 고민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까짓 왜군의 양곡 선적 습격쯤 이야 조선군 몇 백명이면 기습 하여 능히 해 낼수 있는 일이다 . 그러나 사사 건건 명나라 제독이 제동을 거는 마당에 조선군 단독 작전 이란 그리 쉽지 않은 난제였다 ,

최근 뻔질나게 소서행장의 사자들이 유정의 진영을 드나 드느것을 보아도 제독은 반대 할것이 뻔 하기 때문 이었다..

 

 

정세경은 권율의 모습을 훔처보며

" 이 기회에 조선군 단독 으로 라도 부산포 에서 배에 싣고 있는 양곡을 습격 하여 야적 되어 아직 싣지 못한 쌀 이라도 불을 질러 그동안 원수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정세경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혼자 제 말만 늘어 놓고 있었다.사실 정세경도 사천에 머무르고 있는 명나라 동정군 사령관 동일원(董一元)앞에서는 맥을 못추는 주제였지만 권율앞 에서는 큰소리를 쳤다 .

"......."

 권율은 경상감사 정세경의 발언에 침묵을 하고 있다가

"알았소,일단 돌아가 울산과 서생포, 부산포를 잘 감시나 하시오 "

하고 돌려 보내었다

 

 

 

정세경을 보내고 난다음 권율은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 (조선군 단독 작전 이란 근본 부터 잘못 만든 조선 조정 비변사의 선택이다, 권율이 단독 으로 할 기회는 정세경 말대로 부산 기습 공격 밖에는 좋은 기회가 없는데 이번 작전을 조선군 단독으로 하겠다면 과연 유정이 동의 할까?......그렇다고 왜놈들을 그동안 조선 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보아서 순순히 돌려 보낼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

 

권율은 유정을 찾았다

" 경상감사 정세경을 만났는데 적의 서생포에 야적된 조선에서 약탈한 군량미를 부산포로 옮겨 싣고 있다 합니다 . 수길이 사망한 이래 왜군은 전의를 잃고 철수할 의사가 분명한 모양입니다

 왜놈들이 믿고 있는 것은 싣고간 다음부산에 야적된 쌀이 전부 일텐데 이것을 조선군이 단독으로 라도 습격 불을 질러 적들이 더 곤궁에 빠지게 해놓고 적들을 압박 하는게 상책이 아닐까 합니다"

 

 

유정은 권율이 자기를 지원하고 있는 군에 소속된 조선군을 빼돌려 동일원군을 지원 하겠다는데 기분이 상했다

"그쪽에는 동(董)제독이 지휘 하고 있지 않습니까?사천성에 는 모국기(茅國器)같은 훌륭 장수가 선봉을 서고 있고 그곳에 병력중 부총병 인 조승훈(祖承訓)같은 쟁쟁한 장군이 많은데 구태어 내가 지휘하는 데서 조선군을 빼 돌리려는 의도가 뭡니까?"

"동(董)제독 군은 왜군 에게 대패 하여 유격장 팽신고(彭信古)부대 같은 경우3000명가운데 2400명을 잃었다는 보고 입니다 .선봉 유격장 모장군도 선봉대 3000명가운데 700여명을 잃었다 합니다 .지원군인 조선군도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러하온대 대인이 거느리신 우리 조선군 원수부 부대가 가만히 보고 만 있겠습니까?"

하고 조선군 사령관이  간곡히 말하였다

 

 

"도원수 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이오이까? 정 그러신다면 우리는 한성으로 물러 나겠소이다 . 내 이사실을 선조에게 알리고 더이상 전투를 할수 없다고 형개 경략에게도 보고 하겠소이다 .원수께서는 지금 나와 같이 이전쟁의 핵심 인물인 소서행장을 견제 하기 위하여 순천 까지 내려 온것이 아니오니까? 사천성 대패로 우리도 지금 위기에 처해 있어요 .수로군(水路軍)진린 도독도 참패 당하지 않았읍니까?

 

 

사로(四路)동정군중 동로군(東路軍)군 마귀제독은 울산전에서 고전 하고 있고 아까 얘기한 중로군(中路軍)동일원 제독도 사천에서 대참패를 당했어요 .오직 서로군(西路軍)인 나와 도원수 조선군만이 아직 큰 피해가 없읍니다.

이판국에 잘못하여 서로군(西路軍)마저 대패를 당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더구나 도원수 께서 내 곁을 떠나 부산 습격을 직접 지휘 하시겠다니 .....동의 할수 없습니다

진정 하시고 좀더 기다려 보십시요 ,소서행장과 담판을 하겠습니다"

최근 유정과 소서행장간에 이상한 흥정이 오고 간다는말을 전라병사 이광악으로 부터 수차 들어 온터이었다 .

 

 

유정이 소서행장에게 저지른 먼저 사건을 덮으려고 자기 심복 가정(家丁) 20명과 선물을 보내 소서 행장을 달랬다 , 소서행장은 더욱 마음이 초조 했다 , 진린과 이순신이 광양만 묘도에서 500여척이 가로 막고 옴짝 달싹 못하게 막고 있고 북쪽에는 화해 하자고 하면서 거짓말 잘하는 유정의 마음이 언제 돌변 할지 모르고 , 특히 조선군 총사령관인 권율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가 문제였다

 

소서행장은 울며 겨자먹기식 으로 유정 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냈다 . 가지고 있던 보도며 패물까지 정중히 싸서 유정 에게 바치었다

권율이 두말도 못하고 유정 진영을 나오며 또 한번 한숨 을 몰아쉬었다

(한심한지고 , 소서행장 사절이 제독의 진을 부지런히 드나 들더니만 .....)

 

 

 

왜군의 본격적인 철수 명령은 일본에서 덕영(德永)과 궁본(宮本)이라는두 사자(使者)가 부산에 도착한 이래로 사천에 주둔하고있던 도진의홍(島津義弘)에게 먼저 전달 되고 ,왜교성의 소서행장에게 전달되고, 다음 울산성에 있던 가등청정 에게 최종 전달을 마치었다

내용는 11월 15일 까지 모두 부산포로 각지 에서 함선으 로 이동 집결하여 일제히 일본으로 돌아 오라는것이었다.

이제 왜장들이 할일은 화의와 철수라는 방법 밖에 없었다 .

 

 

그다음은 군사들을 무사하게 빼돌리는방법 뿐이었다 .이제 싸움은 무의미 해 진것이 되었다 .

 

가등청정이 제일먼저 서둘렀다 ,그가 일찍 서둘수 있었던 것은 울산, 서생포 방면 에는 명나라군이 감히 얼씬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울산, 서생포, 양산, 죽도에 주둔 했던 왜장들이 일제히 성채에 불을 질러 온 바닥가 연기로 뒤덮였다

 

 

사천에 주둔한 도진의홍은 명나라 동정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주고 대치중에 철수령이 떨어지자 처음에느 누구의 장난인가 반발 하였다가 철수 할것로 마음을 굳혔다 .도진의홍 도 사절을 중로군 사령관 동(董)제독에게 보내 철수 할것이니 철수의 안전을 보장 하라 약속을 요구하였다 . 반가워 한것은 동일원이었다 .

그느 요구 치도 않은 유격장 모국기의 동생 까지 인질로 보내어 도진의홍 에게 철수 안전을 보장 했다

 

 

유정은 뒤질세라 그의 친척인 유천작(劉天爵)을 인질로 보내어 가며 화의를 맺었다 , 임진란중 왜군이 제일 믿는것은 인질이었다 . 유교 사상에 투철한 조선이나 명나라가 모두 유교 국가이므로 자기 형제 들을 수족 같이 알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이용 혈육의 정에 약한 조선과 명나라를 최대 한도로 전쟁에 이용 한것이다.

 

 소서행장은 광양만 앞바다를 가로 막고 있는 수군 500여척과 뒤를 호시 탐탐 노리는 조명 서로군(西路軍)에대하여 제일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 소서행장은 고성의 입화통호(立花統虎)와 남해에 주둔중인 종의지(宗義智)와 사천에 주둔하고 있는 도진의홍(島津義弘)에게 서시을 보내 밤중에 몰래 남해에서 만났다.

 

 

도진의홍이 말했다

"울산 서생포 , 양산, 죽도 주둔중인 동부 군이 모두 부산포로 함선을 집결 완료 했다 합니다 , 우리도 철수를 서둘러야지오"

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듯이 말하자 소서행장이 굳은 표정으로

"진린과 이순신의 수로군(水路軍)이 광양만에 대기중에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느 섬입니까?"

"송도근방입니다 "

조선8도를 유린하던 살기 등등 하던 왜장치고는 힘이 빠저 있었다 .

 

 

도진의홍은 사실 이번 조선 침략전쟁에서 소서행장의 그늘에서 별로 빛을 못보고 있는터에 왜소한 얼굴로 기어드는듯한 말투로 말하는것이 속으로 웃으웠다

"명령대로 함선과 병사들을 태우고 철수 하려면 조명 연합 함대를 깨뜰이지 않고는 철수가 불가능 할텐데요 ..."

"그래서 고민입니다, 장군께서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 도웁지 않으면 모두가 철수 할수 없습니다"

"유정이 도와주지 않읍디까?

"그자는 믿을 만한자가 못됩니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자입니다"

"......."

 

 

여기서 도진의홍이 어깨가 으쓱 하였다.지금까지 조선전에서 명성을 날리던 소서행장이 아니던가? 그런 인물이 이제 독안에 든 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장군은 진린의 해상 상륙전을 용케도 물리 치셨던데요?"

하고 도진의홍이 추켜 올리자

"진린이 경솔해서 육군과 손발이 않맞은 덕분에 우리만 재미 본것이지요 . "

하고 소서행장이 겸손을 떨었다

 

 

"그러면 육군쪽은 걱정이 없겠네요 차라리 육지로 고성까지 나오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않됩니다 유정은 이질도 잡아놓고 선물도 먹혀 들었지만 조선군 도원수가 문제입니다 .먼저 사절을 보내었더니 만나주지도 않으므로 돌아 오다 조선군 경비병이 사절인줄 모르고 살해만 당했습니다 "

"그래도 명나라 사령관인 유정이 있는데 ...."

 

 

"그러나 조선의 도원수외 통제사 들은 우리를 살려 보내지 않으려고 작정 한 모양입니다 "

"그러면 큰일이네요"

"유정과 진린은 어느정도 화의가 된 상태인데 문제는 조선군입니다 , 우리가 무사히 빠지게 명나라가 길을 터주더라도 조선군이 먼저 싸움을 걸어 오면 명나라도 어쩔수 없이 명분 때문에 우리를 공격 않는다고 장담 할수 있겠습니까?. "

"그게 문제 로군요"

 

 

도진의홍도 자기경우보다 막강한 조선군 과 명군이 육지와 바다에서 협공지세로 노리고 있는 형국을 모두 알고 나니 겁이났다

"아까 잠간 얘기 했었지만 차라리 육지를 통해 진주 사천 김해 부산으로 철수 하면 어떻겠습니까?"

"않됩니다 육지로는 서로군 말고도 중로군 , 동로군이 겹겹히 지키고 있습니다 , 이들과 전투 벌리다 가는 모두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대책은 수로밖에 없소이다"

"......"

 

 

소서행장은 도진의홍이 자꾸만 육지전을 거론하여 심기가 불편했다가 수로로 밖에 대책이 없다는 결론이 도달하자 얼굴이 밝이 지었다

도진의홍이 제의 하였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사천에 정박 중인 우리 함선을 이끌고 광양만 으로 나갈것 이니 장군 께서는 우리 배와 합세 하여 내일 아침 날이 새면서 출발 하수 있도록 준비나 해 놓으시오. 그 다음 조명 연합 함대를 개뜰이고 나가면 됩니다"

도진의홍군이 노량 해협을 통하여 나아가서 소서행장과 같이 정면 돌파 하겠다는 내용 이었다

이날 권율 진영에 해남 현감 유형(柳珩)이 찾아왔다.

 

 

유형은 권율이 아끼는 장수중 한 사람 이나 지금은 해남 현감으로 이순신 휘하 에서 수군 으로 참여 하고 있었다 .

 

그는 일찌기 무과에 급제 하여 선전관 으로 있을때 왕이 사냥을 나가 무신들을 불러 누가 나르는 학을 떨어 뜨리겠느냐고 하자 그가 나서 단 한발에 정확 하게 쏘아 떨어 뜨려 임금이 특별히 그에게 전마(戰馬)를 하사 받았던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유 현감이 웬일인고"

" 통제사 께서 도원수께 보고후 의견을 알아 오라는 지시가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보고 인고?"

"사천에 있는 왜장 도진의홍군이 직접 부산으로 철수 할줄 알았는데 500 여척중 2 척만 부산 으로 향하고 490 여척은 왜교성을 향하여 오려는지 창선도로 집결 하고 있다 합니다 , 통제사 께서는 분명히 이들이 노량 해협 으로 진입 할것이 분명 하고 이들이 광양만 으로 진입 하면 분명히 왜교성 으로 입성 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게 되면 도진의홍군과 소서행장군의 군사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면 이들은 힘을 얻어 육지던 바다 이건 돌파구를 찾을 것입니다 "

"그렇겠지....."

"통제사 께서 제게 내린 부탁은 도원수 께서 어떻게 함이 옳을가 하는 의견을 알아 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

 

 

권율은 아무말 없이 잠시 있다가 입을 연다

"왜군들이 지금 내 세우는 명분은 안전한 철수라 했지...."

"그렇습니다 . "

"진도독의 태도는 어떻던가?"

 

 

"최근 들어 부쩍 왜놈들의 사자가 드나드는 품이 수상 적습니다 왜교성 상륙 실패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술 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큰일이야 .....명나라 동정군은 육장 이나 수장 이나 다를바 없어 듣기에 풍신수길이 죽어 왜국내 에서 철수론이 더 우세 한 모양인데 대세는 철수 쪽이지.... 하지만 도진의홍이란 자가 문제야 이자가 사천에 있을 때도 거느리고 있는 병력 1 만명중 일부 병력 400 여명이 진주에서 전라도 장수현을 거쳐 충청도 황간과 영동 으로 하여 북상 했다가 금산(김천)으로 하여 합천을 거처 돌아 왔다는데 이놈들이 전쟁을 하러 조선에 온 것인지 도적질을 하러 온 것인지 가는곳 마다 노략질을 하고 부녀자들을 겁탈 하는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못된자지 ,"

 

 

"저도 섬에만 있었지만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자와 소서행장의 1만5000명의 병력을 합치게 놔 둔다는것은 왜군 에게 엄청난 힘을 주는것이 되는것이야 , 합치지 못하게 해야 해, 도진의홍군이 무슨일이 있어도 노량 해협을 통과 못하게 하여야 하네 "

"네 알겠습니다 "

"....."

 

 

"그런데 도진의홍군이 노량 해협 에서 전투를 하게 되면 소서행장군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텐데요 우리의 배후를 치면 우리 수군은 모두 고기밥이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게 복안이 있어 , 소서행장도 지금쯤 도진의홍이 이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 하고 있을 것이니 ,우리 육군 정예병을 투입 소서행장의 배후를 급습 하도록 할것이니 뒤 문제는 걱정 말게 "

"명군도 합세 하겠지요 "

"........"

 

 

명군 합세 여부에 대한 것에는 권율은 굳게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 권율은 왜군과 최후 결전이 될지, 아니면 조명 연합 작전 약속을 을 깨었다는 모함을 받을지 모를 위험한 도박에 뛰어 들기로 한것이다

 

 

권율은 유형을 보내면서 그 뒤를 한참동안 넋빠진 사람처럼 바라 보고 있었다 . 환갑이 넘도록 온나라를 동분 서주하며 뛰어다닌지 어언 7년이나 흘렀다 .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저 산지도 몇해이던가 ? 권율은 갑자기 허탈감에 빠저 있었다

 

"방금 다녀간 해남 현감과 무슨 말씀이 있었습니까?"

 

 

조카 권승경이 옆에서 묻는 말에 그제서야 권율은 소스라치게 정신차리며

"음 , 네가 왔는가?. 전라 방어사 원신(元愼)을 내 게 오라고 해"

권율은 원신 에게 500여명의 사수를 차출하라 하여 왜군이 정박하고 있는 배 주위산 높은곳에 매복 하게 하고 노량 해협 쪽에서 봉화로 연락과 동시 그 때를 이용 불화살을 일제히 왜선을 향하여 쏘라고 지시 했다. 물론 이번 작전은 명나라 제독 유정에게 알리지 않았다

 

 

 

무술년 11월 11일 도진의홍군 선단 500여척이 광양만 으로 향하여 서서히 서진 하여 나가기 시작 했다 왜군 함대는 일단 노량해협에 들어가기전에 창선도에 임시 대기 하여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한밤중에 조명 연합군이 눈치 못채게 통과하기 위함이었다 ,

이때 진린이 이순신을 불러 들였다

 

 

왜교성 참패 이후 요사이 진린이 왜군에 대한 결사 항전의 의지가 눈에 띄게 약해저 있었다 .게다가 소서행장의 사자가 그동안 뻔질나게 드나 들은 이후 부터 수상한 짓을 하였다

 

 

이순신은 진린이 왜 부르는지 벌써부터 느끼는점이 있어서 다시묻는다

"어찌 하여 부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소서행장이 철수를 스스로 할터인즉 길을 터달라는것입니다 "

하고 이순신의 눈치를 살피었다 .

 

 

 

 

이순신이 가볍게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띄우며 말한다

"노야 께서는 未見形而戰 雖衆必敗(적을 모르면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이길수 없다) 라는 말을 아시지요? 소서행장이 그렇게 우리를 신뢰 하며 철수 하겠 다면 도진의홍군의 500 척의 배가 왜 지금 노량 해협 가까이 서진 하여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

"그래요? 도진의홍군이 이쪽 으로 오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분명히 광양만을 향하여 노량 해협 으로 항진 하여 오고 있다고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

 

 

진린은 방금 이순신이 확인 해준 새로운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렇다면 그동안 소서행장의 사신이 뻔질 나게 드나 들며 오갖 선물 공세 에다 스스로 철수 하겠다고 읍소 까지 하고 있는것은 새 빨간 거짓 이란 말인가?)

 

 

"도진의홍의 선단 500 여척과 소서행장의 선박 300 여척이 합치면 벌서 숫자 면에서 우리는 열세 입니다 . 절대로 도진의홍군이 노량 해협을 통과 못하게 해야 합니다 "

명나라 수군 사령관 진린이 생각 해보니 큰일 날뻔 했다

 

 

"그러면 어찌 하오리까?"

"노야 께서는 좌협 이되어 죽도 에서 대기 하시고 저는 우협 이되어 남해도 관음포에 대기 하겠 습니다 이미 제가 노량 해협에 복병을 배치 시켜 놓았습니다 신호가 오는대로 총 공격 하시면 됩니다 "

 

 

"그렇게 되면 소서행장군이 우리 선단의 후미를 공격 하면 어찌 하시려고 ....."

"그것은 걱정 마십시요 ,도원수 께서 우리가 공격에 때 맞추어 소서행장군을 기습 하기로 되었습니다 "

진린은 깜짝 놀래었다 , 유정 제독 으로 부터 아무런 약속이 없이 조선군 간에 이루어진 계획임을 직감 하였다

 

 

"제독께 의론 한바 없는데....."

진린은 얼마전 왜교성 상륙전 악몽을 떠 올랐다

"노야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이 지금 노량 해협 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

 

진린은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밤새워 숨을 죽이고 있는 조명 연합군이 있는줄 모르고 새벽 어둠이 채 밝기전에 왜 선단이 노량 해협에 들여 닥첬다

매복장 이순신(李純信...이순신과 동명이인)이 불 화살을 일제히 쏘아 올리자 노량 해협 양쪽에 대기 했던 연합군이 북을 울리고 대포 탄환이 왜선단을 향하여 불을 뿜기시작 했다 쌍방이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었다.

조수의 간만을 이한 이순신의 작전에 휘말린  왜선들은 혹은 불에 타고  혹은 부서졌다

 

철갑선인  거북선은  자기나라로 도망하기에 바쁜  왜선의  후미를  향하여  불을 뿜기 시작했고 이곳 물길에 익숙치못한  왜선들은 노량에 있는 수많은 암초에 부디쳐 부서진것이한두척이아니었다

 

(한놈이라도  일본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 너희들도  조선땅에 와서 많은 사람을 학살 했듯이 오늘 너희들 을  모두 물귀신을 만들리리라 )

이순신의 의지는 결연하였다

 

이때 적장 소서행장의 선단에 조선 수군이  집중적으로 불 화살을 쏘아 부치자 때 아닌 공격에 당황하였다

소서행장의 배가위험에 빠지자  왜선은 노량진 목으로 빠저 나가려고 안간 힘을 쓰고있었다

싸울 기운과 뜻을 잃은 왜선은  어디든지 뚫린 수로만  본다면  빠저 나갈 궁리만 하고있었다

 

 

결국그들은  관음포 쪽으로  도망치기시작한다

그러나 관음포란 곳은 어구에서 보면 저쪽 바다로 뚫린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후미가막힌 곳이었다

" 적선을  하나도  놓아 보내지 말아라"


날이  환하게 밝았다

이때 명나라함대는 조선 수군과  일본 함대가  한밤중에 대 격전이일어나는 것을 관망만 하고 있었다

명나라 제독 진린은 부하 장수에게 圍師 必厥 窮寇勿迫( 적을 절대로 궁지에 몰아넣어서는 안된다)이라면서 " 조선 함대가 다 망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알아보니 쫓기고 부서지는 것은 일본 배요 이순신의  조선군이 아님을 알고 일면 무안하고 일면은 자기가 공을 세운 것이아니라  이순신의  공을세운 것이 분하여 곧 함대를 몰고 관음포로  왔다 .

 

관음포로들어오니 이순신은 언제  치열한 전투가있었느냐는 듯이  제자리에 진용을 정제 하고있었다

한가지다른 것은 배 숫자가 줄어들었고  배마다  핏자국이  물들어 저 있다는 점이었다

 

이싸움에서 이순신의  함대도  60여척이잃고 천여명의 수병이전사했다

진린이  다 알고있으면서 태연히 묻는다

 

" 적선이 다어디로갔소?"

이순신이 깨어진 뱃조각들을가리킨다
" 100척을  수장  시키고  나머지는 저쪽을 갔소이다  "

 

"아니 그놈들 왜 놓아보냈소?"
진린이  이순신에게 갑질을 하자는 얘기였다

" 소서행장의  배는 어찌 되었소?"


진린은  소서행장과 협상을 한다면서 한번  인연을 가졌었다는 뜻에서   소서행장의  거취가 궁금 했다

" 그놈은 먼저 도망갔습니다만 독안에 든 쥐입니다  "


진린은  체면을 지키려고

" 이장군 , 수고 했으니  남은 적은 내가  전멸 시키겠으니  저쪽에가서  휴식이나 취하시오"

하고 관음포로 들어가려한다

 

"그만 두시오  독에 갇힌 쥐는 가만 두었다가 나갈때  모조리  잡앋호 늦지 않습니다 "
이순신이  굳이 말렸으나  진린은 그의 함대를이끌고  관음포로 향한다

 

갈곳을 잃은  일본 함대는 자기 뒤를 쫓자 오는  진리의 함대를 보자 죽기 살기로 진린 함대를 공격 하면서 배를 포위당하고 백전 노장 등자룡을 위사하여 수군 변사 70여명이 전사 한다

 

관음포는 워낙 바다가좁은 탓에 쫓가는 신세가 되었다

진린이  위태로운 것을  본 이상 이순신으로서는 피해가많은   함대지만  배를 끌고  진린을 구하려고 나갔다

독안에 든쥐 왜군은  이순신의  기함을 향하여 집중 사격하기시작 한다 .

 

이순신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 한놈이라도  일본으로 못 돌아 가게 하라"
도망 하려 해도 도망  할길이 없는  왜군은 죽기 살기로 
 이순신이 탄 배에  조총  집중 사격을  하고있었다 

 그틈을타서  명나라 제독 진린은  위기를 면하여  왜군들에게  포위된 배를 무사히 빠저 나온다

" 와,,,,,둥둥둥둥"

조선군의 배에서  쉴새 없이  독전 북이 울려댄다

"쾅, 쾅, 쾅 ........"

북소리와  함성이  하늘을   뒤흔들고  대포에 발사하는 화약 냄새와  활 시윗 소리 , 조총소리가 바다를 뒤집어 놓는 것 같았다

 조선 수군은  용기 백배 하여 닥치는 대로  적선을 침몰 시켰다

왜군들은  철군 길을 가로 막는  조선수군을 향하여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조총 탄환이비오듯 쏟아지는 데도 여전히 기함  맨 앞에나서서  싸움을 지휘하고있었다

왜군 배는 대마도 방향으로  일제히 뱃머리를 돌리면서   조총을 쏘아 댔다

자기나라로 도망가자는 것이 분명했다

" 저놈들이  달아난다 . 어서  추격하라"
이순신이  더 크게 소리 친다

왜군은 달아 나면서도  연실  조총을 쏘아 댔다

순간이었다

적의 총탄 하나가  이순신의  가슴을 맞혔다

" 음......"
이순신은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쓰라진다

 

"장군님...."

주위에서 용감히 싸우고있던  몇몇 병사들이  이광경을 보고  이순신 주위로 몰려 들었다

 

"왜들 이리 모여 드느냐  어서 제자리로 못 돌아가겠느냐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리를 지켜라 .나는 괞찬다.그리고  싸움이 끝날때 까지 내가  쓰러졌다고 말하지 말라 "

하고  말하는 동시  옆에 있던 조카 이완에게  재차 당부 한다

"완아 내가 쓰러지었다는 말을 말고 계속  독전 하라 . 왜놈들,한놈이라도  살려서 일본으로 돌려 보내서는 안된다"
이어  이순신은  곧 숨을 걷우고  말았다.

 

이렇게 이순신이  숨을 걷우니 때는 선조31년 ,1598년  11월 18일이었다

향년 54세

 

하늘도 무심하지  이 나라를 그토록 지킨 바다의 영웅  이순신을  이렇게 허무 하게 죽게 하다니 ....

 

 

노량 해협에서는 새벽 부터 시작한 전투가 정오에 가서야 쌍방간의 전투로 벌어진 교전의 소리가 멈추었다 .

 적선은 거의 불타 버렸고 배는 깨지거나 암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나머지 50 여척만 도진의홍이 앞서서 이끌고 거제도로 도망  일본으로도망치었다

 

어쨋든  이나라  위대한 별이 하나 지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 통제사인 이순신이 적탄에 맞아 죽고 말았으니 말이다

뒤늦게 진린이 이순신을 찾았 을때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

  " 노야 ....이 어찌 된 일이요?" 

 진린이 대성 통곡을 하니 병사 들도 따라 울었다

 

한편 순천 왜교성 에서 도진의홍 군을 기다리고 있던 소서행장은 때 아닌 조선군 공격에 20 여척의 배를 불 태우자 일이 이미 그르쳐진것 으로 알아 차리고 노량 해협이 아닌 다른 해로를 통하여 300 여척의 배에 병사 들을 태우고 남해섬 남쪽 으로 멀찍히 뱃머리를 향하여 도망 하기에 바빳다

소서행장이 나머지 배를 이끌고 부산으로 향하던중 노량 해협에서 참패한 도진의홍 선단과 만났다

 

노량 해전으로 도진의홍군이 거의 전멸 하다 시피 했지만 소서행장군은 배 20여척만 손해보고 겨우 철수에 성공 한것이다

 왜군은 11월24일 1차로 가등청정의 동부군이 일본으로 떠났고 이틀후인 11월 26일 도진의홍과 소서행장이 거느리는 일본군이 모두 부산포를 빠저 나갔다

이리하여  7년에 걸친  왜란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선조는  이순신이 장렬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 위대한 충신이 하나가  죽었구나.... 이순신이야 말로  기울어저 가는  이나라를  떠받힌 우리역사상  위대한 인물이었다 .

 시신을 잘 수렴하여  만고에 빛나는 그의  업적을  묘비에  기록하도록하라 . 오호슬프구나"

선조가 애통하여  한번도 보이지않던  임금의 용안에 까지   눈물 까지 흘린다

 

그랬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조정이 당파 싸움만  일삼다가 무려 7년동안이나 왜군에게  적군에게  짓밟혔던  이나라를 수호한  수호신이었다

 

 한편 ,명나라 장수들은 왜군들이 다 퇴각하여 텅 빈 성이 된 울산성을 동로군 사령관 마귀가 입성하고 , 서생포 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점령해 들어갔다.

또 중로군 제독인 동일원도 도진의홍이 버리고간 빈성을 유유히 개선 장군 처럼 으쓱대며 들어갔다

 

 

유정도 소서행장이 완전 철수한 빈 왜교성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입성하였다

수로군 사령관 진린은 뒤늦게 거제도에 상륙하여 미처 도망 못간 왜군 수십명을 잡아 참수 하고 명나라 조정에다 "대첩"을 이루었다고 보고를 했다 .

 유정, 동일원 . 마귀도 뒤질세라" 대첩"을 이루었다고 보고 했다 ,역시 싸움보다도 공이 더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도원수 권율도 이순신을 무척 이나 아끼던 장수가 죽은것을 애통히 여겨 며칠 동안 아무와도 만나지 않다가 유정과 작별 하고 진주성에 있는 도원수 병영이있는  진주병영에 들어 가서 꼼짝 않고 두문 불출하였다 .

 

 

7년이라는 길다면 긴 전쟁터를 하루도 쉬지않고 누비었으니그까짓 며칠않되는 두문 불출이야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권율로서는 이렇게 바깥 공기를 하루도 않쐬어 본적이 없었다

 

이때  임금에게 경상도의 유우순이라는  선비의  상소문이 들어왔다  

 

"전하.

황석 산성은 경상도 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가기전에 있는 성 입니다.

지난 정유년 7월 에 이 성의 수장 으로 곽준(郭埈)이 지키고있었습니다. 곽준은 평소 효가 지극 하여 과거에 나갈 마음은 갖고 있지 않고 스스로 성현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 하는 독학 하는 인물이었는데 마을 선비들이 천거하여 안의 현정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

 그러다가 정유 재란을 맞아 안의 현감으로써 조정의 청야 지책에 의하여 성주변 마을 백성 들을 황석산성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자 곽준과 백성들은 성에  들어 가기를 꺼려 했는데   부사 백사림이 곽준 3형제보고  백성들을  성안 으로 백성들을  들여 보내도 아무 탈이없을거라면서  압력을 넣어  백성들을  입성 시켜놓았던 것입니다    "

 

여기 까지 읽고난 선조가 상소문을 읽기를 멈추고 묻는다

"당시 이산성에 관군이나 의병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옵니다"

"........"

 

임금의 용안이 약간 변했다

도승지가 머쓱하며 대답한다

"전하 ,당시 조정에서는 왜군이 전라도 전주를 치기위하여 설마 그 험준한 육십령을 택하랴 하고 방심 하고 있었던듯 합니다 . 당시 비변사 에서는 상주를 통해 왜적 들이 조령을 넘어 충청도로 넘을것으로 생각하고 왜군을 절대 넘게 하면 면 않된다 하여 상주 목사 정기룡 에게 인근 9 개군의 군사로 선산 땅 소재 금오 산성을 철저히 지키라는 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당시 과인이 비변사에 전선 시찰을 먼저 해 보고 매사를 결정하라 하지 않았던고?"

 선조는 다시 상소문을 다시 읽어 나갔다

 

"왜적은 16 일밤 중추 달밝은 밤을 이용 하여 이 산성을 일제히 공격을 했습니다 .우리 백성 들은 활과 돌로서 항전 하였습니다 성 주위에 감히 접근을 못하게 했는데 이때 왜병 중에서 조선말 할줄 아는자가 큰소리로

"너희들 중에 오늘 밤 안으로 이 성에서 나가는 자들은 추격않고 살려 주겠다"

라고 소리 쳤습니다

성안에서 한동안 반응이 없이 조용했는데 이때 일부 백성들과 백사림이 행방 불명이 되고 북문이 열리어 있었습니다 이틈을 타 숨어 있던 왜적들이 성내로 처들어와 성내에서는 치열한 백병전이 일어 났습니다

결국 곽준도 죽고 백성들은 거의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을 버리고 도망침 으로 인하여 많은 희생자를 낸 백사림이야 말로 "敗軍失城罪(전투를 패하게 하여 성을 빼앗긴죄)의 죄인이 아니고 무엇 이겠나이까?

 

 전하

이 산성 싸움에서 왜적의 총 칼에 쓸어진 고혼 을 위로 하는 뜻에서 라도 백사림을 엄중히 처벌 하여 주시옵소서 "

왕은 상소문을 다 읽고나서 조용히 용안을 을 감고 있었다

 

이때 영의정 입시라는 보고가 들어 왔다

 "들라하라"

하고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자 영의정 이원익이 들어 왔다

 

왕은 영의정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도승지 에게 지시 하여 경연(經筵)장으로 대신과 중신 들을 입시 하라 지시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이원익은 임금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조금 당황하였다.

 경연장에 각대신들과 중신 , 경연관 , 사관등이 모두 들어와 엎드렸다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과인이 경상도 선비 유우순 으로 부터 상소문이 올라 왔기에 읽어 보니 정유년 황석 산성 전투 에서 일어 난 사건 으로 내용이 심상치 않아 백관들도 알아야 할 일이 있기에 공표하는거요 .

 

 

내용을 보니 왜군이 애초 부터 전라도를 목표로 두었던 듯한데 그당시 비변사가 과인 에게 보고 한것을 기억해보니 왜적들이 경상도 상주를 지나 조령을 넘어 충주 용인 으로만 처들어 올것이라고 하는 보고만 했었소

 

 

그런데 정작 왜적 들은 조선군이 판단하고 있던 조령을 넘지 않고 경상도 에서 전라도로 빠지는 육십령을 넘어 전주로 넘어가려 했던 것이오

그런데 조정에서는 황석산성에는 이 중요한 지점에 일개 현령만이 지키게 방치 하고 있었소 .

 

그것도 현령은 관군 지원은 전혀 없이 주민들 스스로 백사림 같은 패장을 도별장 으로 추대하여 성을 지켜 달라고 했었다 하오 , 결국은 백사림은 왜적을 피하여 도망간 모양이오

 

 

경상도 선비는 백사림을 처벌 해 달라고 하나 백사림은 김해에서 이미 패하여 행방 불명 이었던 자로 황석 산성에 나타 났던것으로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미 장수 로서의 자격은 상실한거요.이자가 변변한 군사들도 없이 적들을 상대 했으니 어찌 되겠소?

영의정은 당시 체찰사로 경상도에 나가 있었으니 이 상황에 대하여 대답해 보오"

 

 

 

사실 영의정 이원익은 임금의 말을 듣는동안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이었다 .

".........."

 

 

이원익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임금이 순차적으로 하는 얘기를 듣고 당시 상황이 떠올라 악몽을 꾸는듯 하였다 ,

 

당시 체찰사 였던 이원익은 권율과 같이 금산(영천)에 있었다

 

 

 

이원익은산성 으로 백성들과 군사를 모아 적들과 싸우게 하는 방식을 주창한 전 영의정 류성룡의 청야지책(靑野之策)을 고루한 중국 방식의 전법이라고 하며 반대 하고 있었는데 이원익은 조정의 질책이 두려워 권율의 매복전을 반 대 해 왔던 것이다

 

 

 

당시 왜군도 조선군이 성안에 처박혀 싸우러 나오지 않고 성 안에만 벋히고 있는것을 보고 처음에는 전진을 하려면 차례로 성을 함락 해야 한다고 생각 했으나 조선군은 성에 틀어 박혀 전혀 싸우려 하지 않자 오히려 방침을 바꾸어 성을 비껴가는 전법법을 쓰기로 했다

 

 

 

왜군은 2만 7000명을 십만 대군이라 위장 하여 북 서진 하여 창녕현으로 들려 보니 읍 전체가 텅텅 비우고 경상우도 조방장 곽재우는 낙동강 주변 4개군병력을 이끌고 조정의 명령 대로 화왕 산성(火旺山城...창녕 동쪽)에 들어 가서 꼼짝 않고 있었다 조정에서 지시한 청야지책을 충실히 이행 하고 있는셈이었다

 

 

 

왜군들은 곽재우의 무용을 잘 알고 있는 터 이었으므로 성공격은 하지 않기로 하고 화왕 산성을 비껴 북상 했다.

왜군은 조선군 저항을 한 군데도 받지 않고 전진 할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권율은 적이 전라도 쪽으로 움직이리라는 예측을 하고 육십령과 황석 산성 밖에 복병을 배치 하고 성내는 곽재우군을 일부 배치 할것을 체찰사 에게 강조 했지만 당시 체찰사

이원익은 조령과 죽령을 더 중요한 지역을 손 꼽고 있었다

 

 

 

"어서 말해 보시오"

이원익이 황석산성 건으로 정신을 온통 한군데로 생각에 빠저 있는데 임금의 목소리가 떨어 지었다

 

"........."

 

 

역시 이원익이 답변을 못하고 우물 쭈물 하자 좌의정 이덕형이 보다못 하여

"영상 께서는 당시 상황 으로 보아 조령 쪽으로 적들이 처들어 온 상태 이었으므로 미처 적들이 별안간 진로를 바꾸어 육십령 쪽으로 움직여 전주부 까지 점령 할줄 몰랐 던것 같습니다.

황석산성 실전 책임은 상소 내용 대로 전적으로 김해 부사 백사림의 비겁한 행동 때문 이옵니다.

 

 

신이 알기에는 이때 곽준 같이 장렬히 죽은자가 있는가 하면 제목슴 하나만 살겠다고 도망친 자가 바로 백사림이 아니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그를 처벌 하여 일벌 백계 함이 마땅 한줄로 아옵니다 "

하고 임금께 아뢰 었다

 

 

왕은 이덕형의 말이 마땅치 않았다

"적들이 별안간 진로를 바꾸었 다는데 미처 대처를 못 했다는 것이 문제요 "

임금의 용안이 편치 않았다

병조판서 김명원이 나섰다

"전하, 이번일은 도원수의 잘못이 분명합니다 ,

 

도원수 같이 병법에 능한 장수가 왜군 들이 말하는 자칭 10만 대군이 김해를 거처 함안 , 의령, 합천 까지 진격 하고 있을 때는 진격 경로를 보아 이를 정확히 판단 신속히 적들이 합천에 도착 하기전에 황석산성에 군사를 배치하고 육십령과 성 외곽에 복병을 배치 하는등 기계(奇計)를 썼어야 했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도원수는 황석산성 경비는 뒷전 으로 하고 상주군 관하 아홉개 군(郡) 군사들을 금오산성(金烏山珹)에 집중 투입하고 조령과 죽령 경비에만 힘쓴 것이 잘못 입니다 . 이는 도원수가 작전을 한 탓이옵니다 "

 

 

당시 권율과 체찰사간의 기묘한 갈등 관계를 모르는자 들이 모든것이 권율이 저지른 일로 덮어 씌우고 있었다 .

 

왕도 당시 비변사 에서 보고 받기 에는 죽령과 조령 및 각산성 경비 정도 밖에 육십령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었다

 

임금도 병조 판서의 말을 듣고 보니 어느 말이 진실인지 용안이 모호 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예조 판서 심희수(沈喜壽)가 거들었다

"전하 병판의 말이 맏사옵니다 .

 

도원수 권율은 사람 이야 말로 좀 우둔 하고 겁이 많아, 지략이 모자라는 장수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영상 이었던 권철(權轍) 대감의 아들 이라는 허명으로 그동안 출세 하여 도원수 까지 되었지만 그동안 전공 세운것이 기껏 해야 행주산성 에서 한차례 승첩을 얻은것 이외에는 무슨 공적이 있아옵니까?

 

그동안 적들과 대치중에 좋은 계책 하나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금산에서 정기룡 만 믿고 있다가 적들이 진로를 바꾸어 육십령을 넘도록 까지 방심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겁많은 장수가 아니고 무엇이오니까?"

하고 아뢰었다.

 

 

 

왕은 심희수의 말이 떨어 지자 용안이 일그러 지고 노기가 서리었다 .

 

사실 선조는 권율만 큼은 굳게 믿고 있는 장수가 어디에도 없었다 .

 

 

 

더구나 대신들이 그동안 동인 서인 서로가 헐뜯어 온것은 익히 잘알고 있었지만 아무 파에도 속하지 않은 권율 에게 까지 서슴치않고 험담을 늘어 놓는 대신들의 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대신들은 전쟁중에도 일선에서 일어 나고 있는것은 새까맣게 모르고 동인과 서인으로 서로 붕당을 만들어 나라의 환란을 끌어 드리는 것이 자기 들인 데도 모든 책임은 일선에 나가 있는 장수들에게 덮어 씨우기가 일수였다

당시 조선의 전선에는 체찰사라는 제도가 병폐 인 데도 대신들은 그것을 정략에 이용하고 있었든 것이다

 

 

 

체찰사(體察使)는 독자들도 눈익은 직책이다

체찰사란 특히 왜란을 맞이 하여 국가의 전란이 일어났을 때 왕을 대신 하여 일선에 나가 군무를 총괄 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 도원수는 직무상 체찰사의 감독하에 있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 군 직책을 맡고 있는 수령이나 장령 들은 실질적으로 도원수를 거쳐 보고 하는것 보다 자연히 체찰사와 직접 대면하기를 좋아 했다 그러니 자연히 도원수의 지휘권이 종종 소외 될수 밖에 없었다 ,

 

 

게다가 조선군의 군량미 관계를 보면 각도 관찰사 들은 스스로 자기 관할 에서 양곡을 확보 할수 있었으나 도원수 부는 각도의 병영 이나 감영 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애로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

 

전쟁 으로 농사가 않되어 세금이 걷히지 않으니 각도 관찰사 자체 조달도 잘 않되는 판국에 원수부 까지 공급은 더욱 힘들었다. 군량미 공급 부족은 원수부 인원을 줄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렌데 다가 명군 수뇌부 에서는 조명 연합군의 지휘권을 독단 하려 하였다 독자적인 작전 지휘에 있어서도 조정 에서는 체찰사가하려 들었고 , 연합군의 군 지휘권은 명나라가 가로 막고 있었는데도 대신들은 일선 에서 동분 서주 하고 있는 권율을 헐 뜯고 있었으니 나라 꼴이 어찌 될것인가는 하늘만이 알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임금은 원수부의 이런 애로 상황을 알턱이 없었다 .

 

누구 하나 임금 에게 도원수의 애로 사항을 얘기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단지 권율의 그동안 행적을 누구 보다도 더 신임 있다는것과 권율도 자기를 믿고 있는 선조의 힘때문에 그나마 벋히고 있는것 뿐이었다

 

 

 

당시 조정은 이렇게 권신 들이 일선에는 그림자 한번 나타나지 않았으면 서도 임금의 판단을 흐리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무책임 하게 발언 하면서 자기네 패 들을 위한 붕당을 일삼았던것이다

 

 

 

이찌 됐던 영의정 이원익은 당시 체찰사로 있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었다 .

당시 권율은 조정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청야지책(淸野之策)에의한 방어 개념을 찬동 하지 않았다 .

 

그는 산성에 틀어 박혀 있는 김응서와 곽재우를 황석 산성과 육십령 주변에 잠복 시켜 왜군과 대회전을 강구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체찰사 였던 이원익은 육십령 복병론에 대하여 경상도와 충청도를 포기하려는 어리석은짓 이라며 금산과 합천 등지의 산성 배치 주력군을 황석산성주변에 분산 배치를 못하게 하였다.

 

 

 

그는 그후 전주 침공을 당하자 크게 후회 했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러히 백사림 사건 으로 이원익은 임금 앞에서 난처한 입장이 된것이다 .

 

백사림이 처벌 된다면 이원익도 그 책임을 면할수 없다 .

 

백사림은 당시 정식 으로 조정의 명에 의하여 황석 산성 에 배치한 인물이 아니다 .

 

 

 

당시 황석 산성은 조정 으로서는 무방비 상태의 성 이었다 단지 청야 지책에 의해 잠시 산성으로 피했던 비무장의 주민들이 대부분 이고 거의가 안의현 관원민이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백사림은 자기 가족만 데리고 황석산성으로 피난온 피난민에 불과할뿐이었다.

 

그런그가 데리고온 군사 라고는 한명도 없이 곽준이 본의 아닌 추천으로 수성 장군으로 되었던 것이다 .

 

 

영의정 이원익은 이 상소 사건이 엉뚱 하게 발전 해 가는데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선조는 대신들 입에서 마구 쏟아 낸 말 잔치를 듣고 심기가 불편하였다

"지금 경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과인은 참으로 실망을 느끼지 않을수 없소 .

 

도대체 경 들은 그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했다고 그런 말들을 하오.그렇게들 정사를 잘 보아 임진, 정유재난 을 경들의 힘으로 잘도 막아내어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는거요?

 

 

남의 얘기라고 도원수를 그렇게 함부로 도마위에 올려 놓아 서야 되는게요 ?.

 

그래서 과인이 도원수 권율이 영상 권철대감의 아들이기 때문에 과인이 한일도 없는 사람을 도원수에 앉쳐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거요?

 

권율은 장수의 재목이 있기 때문에 그를 도원수 자리에 스스로 앉치게 된것 뿐이오

 

 

솔직이 말해서 권율 도원수가 아니었으면 이나라는 왜국의 발굽에 헤어나지 못하였을 것이오 그가 아니면 이 나라를 지킬 장수가 없어요.그가 명나라 장수들과 체찰사와 힘을 합처 작전을 수행 하는데는 애로가 전혀 없다고 볼수 없어요

 

 

경들은 조정에 편히 앉아서 국사를 논하고 있지만 일선 장수들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절박한 환경에서 싸우고 있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그를 성품이 어떻고 하는데 도원수와 같이 과묵하고 관인한 장수가 있거던 어디 천거 해보오

도원수가 마치 겁쟁이 인양 얘기들 하고 있는데 도원수 보다 더 용맹한 장수가 있다면 이 자리 에서 말해 보오

 

 

과인이 그당시 상황을 보건대 과인이 보고 받기로는 비변사와 체찰사가 작전에 깊이 개입한것 으로 듣고 있오 ,

다시 강조 하지만 육십령 문제는 비변사가 잘못 명령을 내린것이오 .일부 에서는 칠천량 전투 때도 도원수가 원수사 에게 압력을 넣었다느니 한다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오 . 그것도 현지 사정도 알아 보지 않고 도원수 와도 사전 협의 없이 비변사에서 잘못 내린 명령 때문 이오 .이 모두 제신들중에 자기 책임을 남에게 떠 넘기려는 악습 이라고 보면 틀림 없소

 

 

과인이 보건대 도원수는 하나도 탓할바 없는 사람이니 이후 도원수 공과를 또 거론 하는 자는 그자의 공과를 논하여 처벌 하겠노라 "

임금의 추상같은 경고 어명이 떨어 지자 모두 고개를 떨 구고 모두 입을 봉하고 말았다

 

 

주위가 조용 해지고 누구 하나 입 떼는자가 없자 사안이 자기의 체찰사 시절의 얘기로 사태가 심상치 않은 고로 이원익이 입을 열었다

"전하 , 신도 당시 작전에 참여 했습니다 만 모든 것이 신의 과오 인지라 처분 하여 주시옵소서 "

 

 

"모두가 지난 일이오 , 왜군이 물러난 마당에 지금 어찌 하겠소

백사림이 황석산성 에서 도망한것은 조정의 명령에 의하여 수행한것이 아니니 그에게 중한 죄를 물을수는 없고 다만 도망한것은 비겁하니 그 자를 잡아들여 국문 하도록 하오"

 

 

결국 영의정 이원익은 임금의 배려로 백사림만 잡아 들이라는 선에서 문책을 면하게 되었다 .엉뚱하게 도원수 권율만 도마위에 올렸으나 선조의 한마디로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만것이었다.

권율은 조정에서 자기에 대한 온갖 말들이 오고 가고 있는지 모르고 노구 에도 불구 하고 경상도 각 지역의 전후 산성 실태를 알아 보기 위하여 왜군이 정유 재침때 조정에서 내린 청야지책의 산물인 화왕산성(火旺山城..창영),악견산성(岳堅山城..삼가),공산산성(公山山城..대구),정개산성(鼎蓋山城...하동).황석산성(黃石山城..안의)등을 둘러보았다

 

 

권율은 새삼스러히 각성 수어장대에 올라 그동안 왜군들이 조선의 산성 대책을 조롱 이나 하듯이 종횡무진 한것을 되 새기고 있었다 ,

 

조정은 너무나 안이 했다 , 백성 들을 성안에 가두어 놓고 어쩌자는 것이었을가?

 

결국은 성과 성간이 단절되고 고립무원만 만들고 말았던것이 아니었던가?

 

 

당시 조정이 그의 산성 무용론만 채택 해주고 그의 작전만 딸아주었더라도 왜군이 도성 가까이 까지 올라가지 못하였을 것이고 적들의 퇴각을 앞당기었을른지 모를 일이었다

 

 

당시 조정은 산성을 과대 평가하고 있었던것은 사실이었다.

 

 

권율은 산성수축에 공들이것 만큼 이나 읍성(邑城)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전투를 치루었다면 어떤결과를 가져 올가를 생각 해 보았다.

왜적이 읍성이라는 장애물을 비워 놓고 떠난 성을 파죽지세로 점령한다음 산성을 고수 하고 있던 조선군을 비웃고 북상의 길을 터주었던 사실은 백번 조정에서 변명할수 없다고 생각 했다.

 

 

 

여기서 춘파당명록(春坡堂明錄..선조실록5)에 기록된 당시 청야지책에 따른 산성에 대한 기록을 읽어 보자

 

 

"정유년 조정 에서는 전라감사 황신(黃愼)과 일본을 자주 드나드는 자들이 가등청정이 다시 처들어 올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각읍의 백성들 에게 명령 하여 그들의 부모 처자와 권속들을 데리고 각읍 부근에 있는 산성에 들어 가게 하였는데 가재와 곡물까지 모두 들어가게 하였다.

 

백성들도 청야지책에 따라 적을 대처 하게 하게 하였는데 산성으로 들어가라는 조정의 지시에 가지고 있던 곡물과 가재를 다가지고 갈수 없어 산속에 묻기까지 하였다

 

 

 

도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이 한양에 들여 임금 선조를 뵈웠다

 

 

왕이 왜적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으니 어찌 하겠 느냐는 말씀을 을 드리는 이원익의 상신을 올렸는데 백성들을 산성 으로 백성들을 들여 보내 지키게 하면 왜적 들이 성을 공격 하다 지쳐 스스로 물러 가고 말것 이라는 "청야지책"을 쓰고자 하오니 걱정 마시옵소서 하였다

 

 

임금은 이원익의 방책에 감동하여 눈시울 까지 붉히며 적을 막는일을 경 과 같이 철저히 하는데 경과 같은 신하가 있있었던들 어찌 나라가 이꼴이 되었으리오 .

 

 

 

"이제 왜적이 다시 처들어 온다니 그들을 막아 내는 일을 경만 믿겠 으니 경은 다시 경상도로 내려 가서 적을 막아 내도록 하오 ,

 

과인으로 하여금 다시는 의주로 피난 가는 재앙과 액운이 없도록 하게 하기 바라오

하였다 " 라고 기록 하고 있다

 

 

당시 조정이 생각 하고 있는 청야지책 이라는 것이 얼마나 과대 평가 하고 있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표시하는 대목 이었다

조정 에서는 이른바 견벽청야지책(堅壁淸野之策)이라는 대책만 세워 놓고 안일 하게 지내고 있을때 권율은 다른 대책을 내 놓고 있었다

 

.

권율은 善戰者致人而不致於人(전투를 잘 할수 있는 자는 사람을 잘 조종 할줄 알아야 하고 사람 에게 조종당하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 왜군 과의 전투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조선은 왜적이 이나라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점을 최대한 살려 조선군이 주도권을 잡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 그위 지론 이었다 .

 

 

산성은 왜적들 에게 항상 노출된 공격 목표가 될수 있다 .청야지책이야 말로 자기를 노출 시키지 않고는 싸울수 없는 고육지책이 아닐수 없다 .조선 조정이, 현지 경험도 없이 한성에 앉아서 내리는 명령 만으로 어찌 나라를 지킬수 있다는 말인가?

 

 

권율은 황석산성 에서 내려 오면서 잠시 산 아래 넓게 전개된 평야를 내려다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권율은 다시 육십령 으로 향하는 길을 더듬어 보았다 . 60명의 장정이 뭉처서 같이 넘어야 넘을수 있다는 험한 고개 ....산적들이 곳곳에 숲속에서 숨어 있다가 자나는 길손을 털었다는 험한 고개를 왜 활용을 못하고 왜적 들을 순순히 넘도록 했던가?

 

 

권율은 새삼스러히 당시 매복전을 강조 했던 자기 주장을 묵살한 지금은 영의정 자리에 앉아 있는 이원익이 원망 스럽기 까지 하였다.

 

 

권율은 육십령 주변을 둘러 보며 勝可爲也敵雖衆可使無鬪 策之而知得失之計(싸움 에서 승리는 만들기에 딸린 것이다.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이 쪽에서 유도 하여 적들을 싸울수 있도록 만들 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을 철저히 관찰하여 적들의 동태 여하에 따라 아군의 득실을 정확히 판단 하지 않으면 않된다 ) 라는 병서의 문구를 다시 한번 되 새기었다

 

 

 

권율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며 육십령 주변을 되 새기고 있는동안 조정 에서는 백사림 사건 으로 불거진 황석산성 패인 문제로 엉뚱 하게 정작 성토 당하여야 할 이원익은 뒷전이고 권율을 성토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주위 만을 돌아 보고 있었으니 세상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하지 않을수 없다

 

 

 

권율의 앞서 장계문이 올라 왔다.

 

선조는 권율이 자꾸 거론 되는 마당에 권율의 장계를 받아 보고 내심 씁쓸한 마음을 가눌수 없었으나 그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럼 그렇지 , 과연 도원수야 말로 충신 중에 충신 이로다 . 이렇게 나라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 하고 나라를 걱정 하는 대신들이 얼마나 있단 말인고 . ....."

 

 

선조는 다음날 권율이 보고한 유랑민에 대한 대책 으로 다음과 같은 어명을 내렸다

 

 

그 내용 일부를 선조 실록에 나타나는 한 대목을 잠간 읽는것으로 대체 하자

"선조 32년 1월7일 선조는 관원을 경상도 로 보내어 떠돌아다니는 백성 들을 모아 씨앗과 농기구를 나누어 주고 정착을 하도록 하였다 "(선조실록108권)

 

 

권율은 병영으로 돌아와서 각산성과 읍성을 돌아 본 소감을 왕에게 종합적 으로 작성 또 장계를 올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니 군사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않된다

 

2. 특히 적이 언제 재침할지 모르는 것이니 중요 요충지인 부산, 울산, 한산도,에는 정예 상비 병력을 배치 하여야 한다

 

 

3. 왜란 으로 파손된 진영 을 전면 보수 하여야 하며,특히 충주 좌우영 , 조령 죽령의 영루 보수는 해 두어야한다 .

 

4. 읍성, 산성 할것 없이 대대적 보수가 필요 하며 .특히 평 양성은 적들을 1차 막아낸 곳이니 대대적 보수가 필요 하다

 

 

5. 항간에 일본군은 육전에 능하고 해전에 약하다고하나 . 그러나 왜군들도 예전의 수군과는 다르니.이번 전쟁 에서 자기네들 배가 가 고조선배는 육중하여 패한것에 대하여 자극받아 조선배 보다 더 육중한 배 110 여척 이나 다시 건조 하고 있다는 말이 항 왜자들 에게서 들려오므로 대책이 필요 하다

 

 

6. 인재를 잘 골라야하며 . 조정의 중신 들은 궁중 안에 서 입씨름만 하지 말고 국내 중요한곳을 수시로 현지 답사하 여 유사시에 어떻게 대처할것인가를 생각하는 체제를 갗추어야 한다

 

 

7. 군량미를 적시에 비축했다가 유사시에 쓸수 있도록 해야 한다

 

8. 군사들이 싸움이 없으면 민폐와 나태 해지기 쉬우니 훈련이 외에는 둔전병화하여 병력을 효율성 있게 사용해야 한다

 

 

 

선조는 계속되는 장계문에 자극받아 각종 새로운 어명을 내리도록하였다 .

 

그 내용의 요지는 주로 국방에 관한 지시였다

 

 

1. 전쟁에 대비 유능한 장령선발에 힘쓰라

 

2. 군사훈련을 소흘히 하지 마라

 

3.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라

 

4. 산성에 치우치지 말고 읍성도 수리하되병기와 탄약 준비도 소 흘히 하지 마라

등이었다

 

 

 

이렇게 권율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전후 복구와 전쟁재발에 대비 동분 서주 하고 다녔었다 .

 

 

아무리 강철같은 체력이라도 한계가 있는법이다 ,

역시 권율도 한 인간에 불과 했다

병이 든것이다 . 63세의 나이는 속일수 없었다

 

 

하늘도 그의 조선 구국의 임무를 마친 것을 알리었음 인가 갑자기 찾아온 병마는 금빛 투구에 갑옷을 입고 백마에 높이 올라 천군만마를 호령 하던 장군도 어쩔수 없었다.

 

권율은 임금에게 도원수로서 는 마지막 으로 긴 상소문을 작성 하기 시작 하였다

왕의 용안을 보고 도승지는 눈치만 살피 었으나 옆에 있던 사관은 이미 장계를 읽은 탓인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 사관이라면 모든 붕당과 떠나있어야 할 자이지만 이자도 붕당의 범위에서 벗어 나지를 못하여 권율의 쓰디쓴 장계내용이 혹시나 자기 파에 영향을 미칠까 속마음은 다른데 가 있었다 .

 

 

도승지와는 생각이 딴판이었다.

선조는 한참 생각 하다가 도승지에게

"도원수의 건강이 그리 나쁜고? 무슨 병이라던고?"

"담증(痰症)이라 하옵니다"

 

 

"담증이면 어떤병인고"

"열이 나고 가래가 심 하옵고 식욕이 떨어저 식사를 제대로 못한다 하옵니다 "

"무슨 좋은 약이 없다던고?"

"신이 알기에는 진피(陳皮)를 끓는 물에 넣어서 우려 낸 다음 마시시던가 까맣게 볶아서 사용하면 효험이 있다고 들었 사옵니다"

"진피(陳皮)라면 귤 겁질이 아니던고?"

 

 

"그러하옵니다 , "

"귤이 육지에는 없는 식물 인데 어디서 구할고?"

"귤은 따뜻한 제주도 밖에는 없사옵니다"

" 당장에 제주 현감에게 명령하여 귤을 구하여 도원수에 게 보내주도록 하라"

"전하, 왜적이 언제 재침 할지 모르는 상황 하에 노구에 병이더 중하게 될지 모르오니 도원수의 사의를 어찌 하올지 ...."

"도원수를 한성 으로 불러 올리라 "

 

 

 

결국 선조는 권율을 서울로 불러 올렸다

 

 

권율은 담증으로 고통중에도 갑옷을 입고 일부러 백마에 높이타고 한성 으로 향하였다

임진년 왜란을 막아낸 권율이 한성에 입성 하는날 길가에는 소문을 듣고 나온 백성들이 나와 그를 바라보고 눈물을 글성거렸다 . 백성들은 자기네 들을 다시 왜적의 만행 에서 해방 시켜준 장군과 그동안 고생을 생각 한데 대한 연민의 정때문이었으리라

어느 충청도 고을을 지날때. 한 노인이 권율의 앞에 나와 울며 길에 업드려 막았다

"장군 , 왜적이 언제 다시 침공할지 모르는데 어디로 가시 나있가?"

 

 

종사관이 노인을 이르킨다

"장군게서는 나이가 환갑을 넘기 셨고 지병으로 더 견딜수 없어 어명으로 한성 으로 가시는 길이니 길을 비켜 주시오"

"장군 , 우리가 누구의힘으로 나라를 보존 해왔습니까? 도원수 대감이 아니시면 오늘날 상감 께서 한성에 어찌 돌아 오실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왜적이 언제 처들어 올지 모르는데 장군께서 아무리 노구이시라 하시지만 그냥 물러나시면 않되옵니다"

 

 

길옆의 백성들도 같이 업드려 막았다 .

 

얼마나 왜적에게 혼이난 백성들이기에 병들어 물러가는 도원수에게 하는 간곡한 요청이었을까?

종사관은 권율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권율은 백성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고생들 많으셨어요 , 왜적이 언제 처들어 올지는 잘 모르나 분명한 것은 왜국의 풍신수길 이라는 자가 죽어 예전 같이 함부로 재침은 없을것 같습니다 .

 

만일 다시 처들어 온다 해도 7년전 왜군이 침공 해 올때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

 

안심 하십시요 . 왜적이 다시 쳐들어 오면 이 늙은 몸도 다시 이끌고 여러분 곁에 다시 서겠습니다 .

 

지금은 상감 께옵서 명을 받고 상경 중이니 어서 일어나 생업에 안심하고 일하시오"

 

 

백성들은 권율의 당당한 답변에 안심 되는듯 모두 일어나 장군이 가는 길뒤를 따라 동구밖가지 딸아 전송 하였다

권율은 오래간 만에 서울 땅을 밟았다

 

 

 

권율은 행촌동 자택 으로 늙고 병든 몸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왜적을 치러 나갈 때의 그 당당한 풍모는 간직한채 돌아온것이다 ,그동안 사위 이항복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온 할머니가된 부인 조씨가 맞이 했다

 

 

권율은 다음날 정능동 임시 궁궐로 향하였다

 

"권장군 노구를 무릅쓰고 7년 동안 일선 에서 노고가 많았소 이제 나이도 63세이고 병도 치료 할겸 편히 몸 조리하도록 하오 "

선조는 만조 백관이 모인자리에서 친히 용상에서 내려와 권율의 손을 잡고 반가워 했다 ,

 

 

 

임금이 용상 까지 내려와 손을 잡자 대신 들의 마음은 붕당을 떠나 잠시 늙은 장군의 늠름한 모습에 마음이 잠시 숙연 해지었다

 

 

 

집으로 돌아온 권율의 담증은 점점 더 심하여 지었다 .

 

임금의 명령으로 제주 에서 갖어온 감귤도 별 효험이 없었다

권율은 공기 좋고 풍취있는 고향 강화에가서 쉬어 보았다

 

 

 

그러나 병의 차도가 없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조용히 세상을 하직할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

 

7 년전쟁의 구국의 상징인 권율이 이제 임무를 마치었다는 뜻이었을까? 하늘은 그를 불러 들였다

 

 

선조 32년 7월 12일 시커먼 구름이 온 하늘을 덮자 사방에 여름 소낙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로 어두워지고 서쪽하늘에 붉은 노을이 물들였다

권율은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고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위기의 조선을  구출한 바다의해신(海神) 이순신에 이어,  육지의 신(陸地神 ) 권율도  이제  이땅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것이다

 

 

 권율의 나이 향년 63세 였다

어둡던 하늘에 천둥 소리 요란 하더니 하늘 에서 굵은 빗줄기가 권율의 앞마당에 퍼부었다 .

누군가가 중얼 거렸다

"이런 날은 지상에서 용이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솟는다던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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