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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33

시 아버님의 눈물

조회 수 384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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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 생신 날, 아침나절 흐렸던 날씨가 단장이라도 하듯 말끔하게 개이다. 모여들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버님은 이제 머리카락 전체가 백발이 되셨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안의 정신적 지주이시다.


시아버님. 내가 남편과의 결혼 생각을 굳히면서 남편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린 분이다. 아버님이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 하는 내게 남편이 전하는 말은 '총명해 보이더라.' 라는 단 한마디였다.




아버님은 1919년생이다. 아버님은 일찍이 경찰에 뜻을 두고 1공화국 때부터 오랜 세월 공직생활을 해 오셨다.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소규모의 사업을 하고 계셨지만, 공직생활을 하면서 아버님의 몸에 밴 자세와 생활방식은 아버님을 더욱 어렵게 느끼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갓 시집온 막내며느리는 아버님께 점수를 따고 싶었다.


숭늉을 좋아하시는 아버님께 구수한 숭늉을 만들어 드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구두 닦아놓기 같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일이지만 정성을 드리며 아버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아버님은 친절히 대해주시기는 하였지만 내 마음에 흡족치가 않았다. 물론 공유하는 세월이 바탕이 되어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여야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을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시집 식구가 되어 귀여움을 받고 싶은 조급함이 있었다.




첫아이를 낳고 이듬해, 식구들이 시골에 계신 시할머님을 뵈러 갔을 때였다. 당신은 아흔 둘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아흔 넷이라고도 하는 할머님은 진지도 잘 드시고 건강하다 하셨지만, 관절이 불편하셔서 보행은 고사하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아만 계셨다.


할머님은 서울에 사는 아들집에 가 보기를 원하셨고 아버님 또한 할머님을 모시기 원하는 마음이었으나 거동이 불편하여, 진지 수발부터 변을 받아 내야하고 일상의 모든 일에 사람의 손이 필요한 할머님을 모신다는 일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까지는 서울 집에 오시게 되면 할머님 수발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어머님이었을 텐데 어머님은 아버님 회사에서 일하는 일꾼들 식사 준비하는 일만해도 시간이 넉넉한 분이 아니었다. 혼자되시어 오랜 세월을 할머님과 함께 하셨다는 큰어머님은 할머님과 함께하는 일이 곧 생활이었으나 우리에게는 큰 프로젝트인지라 아버님은 늘 다음으로 미루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할머님을 모시자 청했다.


갑자기 결정된 상황에 동네 장정들이 할머니가 앉아계시던 캐시미론 이불 네 귀퉁이를 잡아 앉은 채로 들어 차에 모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함께 하고 싶어 하던 아드님과의 한집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약 한 달여를 서울에 기거하시던 할머님은 다시 시골 당신 집으로 가기를 원 하였으며 본댁에 내려가신 할머님은 그 해 여름 영원히 떠나셨다.


할머님의 꽃상여를 붙들고 통곡하시던 아버님의 울음이 하도 애절해 내내 함께 울었다.


할머님이 떠나시고 장례가 끝난 며칠 뒤,아버님은 나를 부르셨다."아가, 나는 네가 총명해 보여서 아꼈다. 그러나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아니하는 것처럼 너의 빈 데가 없어 보이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정이 덜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봄에 할머님을 모시면서 나는 너를 다시 보게 되었구나. 요즘 젊은 아이들이 냄새나고 손이 많이 가는 노인네들 곁에나 오려 하겠느냐. 그런데 너는 즐거운 마음으로 할머님을 씻기고 변을 받아내며 종일토록 시중을 들어주고 말벗을 하여주었으니 이제 내가 너를 다시 보겠구나. 할머님이 네 얘기를 그리 자주 하시더구나"


아버님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치하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할머님을 모시고온 다음날, 할머님이 주무신 방에 들어갔더니 정말로 익숙지 않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님을 위해 목욕물을 데웠고 거동 못 하시는 할머님을 위해 욕실에서 방으로 물 나르기를  수차례. 머리를 감겨 드리고 세수를 시켜 드리니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얘, 아가야 내 몸에 뭐가 났지?" 할머님의 엉덩이에는 검정색 점 같은 작은 돌기들이 여러 개 솟아 있었다." 그런 거 나면 오래 산다더라." 노인들이 일찍 죽어야겠다는 말과 상인의 밑지고 판다는 말, 노처녀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이 3 대 거짓말이라고 하더니 할머님은 오히려 오래 살고 싶은 의중을 드러내셨다. 나는 공연히 안쓰러워나도 그런 말을 들은 바가 있으니 할머니 오래 사실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만족해하는 할머님을 위해 이번에는 점심을 차려드리고 한 술씩 떠 넣어 드렸다. 운동이 없던 할머님은 하루에 한 알 변비약을 드셔야 했고 용변은 받아 드려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변을 받아 보았다.하루,이틀,사흘,일주일,이주일.......시간은 흘렀고 나는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면서 마음에 공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끔씩 노인성 치매로 정신이 흐려지곤 하시던 할머님은 특유의 아들 사랑 법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낮에는 나의 시중을 받으시다가 아버님이 들어오시면 다른 가족에게는 시선한번 주는 일없이 아드님의 시중만을 즐거워하시는 것이었다. 식사 때에도 아버님의 수저만 받고 저녁 내내 아버님만을 곁에 두고자 하셨다.


나는 은근히 서운했다. 나를 칭찬하는 마음이 무색해지며 이제 할머님이 시골로 가신다고 하면 잡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할머님이 언제 본댁으로 가시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머님은 서울에 오신 뒤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시골 당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아버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할머님 모시기는 할머님이 서울 집에 기거하시던 한 달을 같은 마음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렇게 나를 칭찬해 주시고 마음에 담아 두셨으니 할머니보다 눈이 밝았던 내가 할머니의 마음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나였으니 아버님의 눈물 앞에서 떳떳할 수 없었고 스스로 부끄러웠던 것이다. 드러내어 표현하지 않아도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삶을 보며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웃음은 상대를 곧 즐겁게 하지만 그 웃음으로 인한 표정은 오랜 세월 쌓여 그 사람의 인상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사람의 인상을 보며 지니고 있는 성격과 살아온 과정을 읽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할머님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에 담아 칭찬하는 당신의 깊은 속내로 아버님으로 하여금 나를 비로소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신 것이다.




아버님 생신이라고 찾아오는 우리 아이들이 몇 대가 모여 살며 끈끈하게 만들어내는 일상의 묵은 정을 알까?


가을날, 먹거리로 장만한 김치를 땅속에 묻어 묵은 맛으로 봄날의 입맛을 돋워내듯. 부대끼며 마음에 담아 만들어내는 묵은 정이 봄날의 따스함을 이루어 낸 힘이 된다는 것을 알까?



  • 이상한 1970.01.01 09:33
    참 좋은 글을 올려주셨읍니다.
  • 장은숙{22} 1970.01.01 09:33
    저하고 입장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네요.수고많으셨습니다.
  • heyhelena 1970.01.01 09:33
    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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