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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01.01 09:33

바벨탑의 비극

조회 수 362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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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고장 났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수신이 되는데 나의 목소리는 상대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방은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나의 말을 수신 못하는 상대를 보며


나는 또 얼마나 답답하던지..


아예 말소리가 수신이 전혀 되지 않을 때도 있어 전화기를 바꾸어야지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이 전화기가 때때로 정상을 되찾을 때도 있으니 이거야!


나의 이 휴대폰은 5년째 사용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소위 '무기'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전화기를 최신 기종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문자판이 손에 익어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더 소비하고픈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뜨는 이름이 반가워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까


염려된 나는 수화기를 입에 가까이 대고 `여보세요`를 크게 외쳤다.


마침 그 때 정상을 되찾은 전화기는 상대에게 너무도 힘차게 전달되었나 보다. 


친구는 깜짝 놀라 “내가 어디 도망가니?”한다.



 


어릴 적 기억에 나의 친할머니께서는 정물처럼 늘 한 자리에 앉아 계셨다.
두 무릎을 곧추 세우고 그 사이에 얼굴을 얹으시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큰아버지와 함께 사셨는데 당시 싸전을 하고 있었고 방문은 가게 안을 가로질러


길가를 향해 항시 열려 있었다.



 


할머니께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귀가 어두워 외치다시피 해야 조금 알아 들으셨다.


그러나 알아들으시는 것도 잠시 곧 “누구세요?” 하고 되 물어왔다.


이러한 할머니를 두고 사람들은 망령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어감이 주는 분위기는


할머니가 마치 몹쓸 짓이라도 하고 있는 듯해서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을 입으로 내지 않았다.


할머니의 병환을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귀에 거슬렸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은 할머니가 계신 자리든 안 계신 자리든 개의치 않고 할머니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몰라라 할머니의 의식은 먼 길을 떠나


어디 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80여년의 오랜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래고 화석처럼 굳어졌으나 분명히 현존했던


할머니의 역사를 따라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니 할머니의 눈에는 늘 눈물이 그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눈물이 흐르는 길에 고장이 생겼던 것이지만 나는 그런할머니가 측은하고 가여웠다.


기운차던 옛날과 비교해 늙고 힘없어진 당신의 현실이 슬퍼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할머니를 마주 할 때면 나는 눈물을 닦아 드리는


대신 할머니의 큰 귀를 만지고 두터워진 손을 잡으며 할머니에게 말을 시켰다.


“누구세요?”라는 말로 어린 손녀를 당혹해 하는 할머니였지만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할머니는 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혼자된

여자의 몸으로 아들 셋,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아내느라 온몸 구석구석에 박힌 고된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세상과의 수신을 스스로 거부하고 바벨탑을 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몇 년을 바벨탑을 쌓고 그 안에 당신을 고립시키던 할머님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돌아가셨다.



치매라고 하는 이 병은 뇌세포에 이상이 생겨 기억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라 한다.


약으로 진행을 유보시킬 수는 있지만 아직도 치료제 하나 변변치 못하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노인성 치매를 앓았지만 치매라는 병이 노인에게만 국한된 병이 아니라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고 느낄 줄 알아야 하거늘,


자기의 정체성을 잊고 생각하는 기능을 소멸시키는 이 무서운 병마를 비켜가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



 


잠시 말썽을 부리던 나의 전화기는 A/S센터 기술자의 손이 가니 곧 정상을 되찾고


나의 말이 상대에게 또렷이 전달되는 시원함을 주었다.
이렇듯 현실에 새롭게 세워진 바벨탑의 비극 속에서 사시는 노인들을 치료하는


A/S센터는 어디 없을까? 나는 전화기의 이상으로 통화를 하지 못했던 지인들을 향해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했다.

  • 버지니아 1970.01.01 09:33
    할머님의 치매와 전화기를 비유한 후배님의 글을 통해 돌아 가신 어머님 생각이 났어요. 6년간 치매로 다른 사람이 되어서 온 가족을 황당 하게 하시고, 틈만나면 아버님 몰래 집을 뛰쳐 나가셔서 할수없이 양노원에서 계시게 한것이 아버님께 슬픔을 주고,끝내 엄머님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신 아버님의 심정...5시간의 비행시간을 마다하고 찾아 뵐때 마다 당신누군데 날붙잡고 우냐고 호통치며,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몇마디씩 하시며 이놈의 영어 공부가 왜이리 힘이드는줄 모르겠다고 불평도 하시고...한국으로 가시겠다고 하실때 붙잡지 말걸 그랬다고 언니랑 통곡도 하고 언젠가는 전화기 처럼 치매도 간단히 손 봐주면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 그러나 1970.01.01 09:33
    저의 폰에서는 아무소리도 안낫읍니다. 지난 선농축전때 뵙고는 이글이 처음이라 매우 반갑습니다. 치매는 똑똑한 인간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일깨워주는 교훈이라고 봅니다.똑똑한 인간들은 치매인이 있기때문에 자기가 똑똑하다는걸 알고 최선을다해 그들을 도와야할 당연한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25회 팬올림.
  • heyhelena 1970.01.01 09:33
    25회를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수원생 1970.01.01 09:33
    서여사의 글이 너무 아까워 글을 널리하고 인쇠하고싶엇읍니다.
  • 수원생 1970.01.01 09:33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글이 좋은 것은 보통 1000년이 지나야 "아!, 그랬구나 "로 대충 가려지는것으로 이해합니다. 서여사님의 글은 껄끄러운데가 아직은 없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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