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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계속 북상하고 있었다 . 왜군은 한성을 점령후 계속 북상 했다 , 이항복은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 하자고 했으나 윤두수는 반대 했다 ,

그가 주장 하는것은 조선군이 임진강 만 잘 수비 하면 그동안 아직 격전을 치루지 않은 남도와 북도의 후원병이 도착하게 하여 실지 회복이 가능 하다는 것이였다. 만일 명군을 불러 들인 다면 그들의 횡포를 어떻게 감당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조선 문제는 조선이 해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

결국 임진강 전투도 조정에 패배 소식이 날라 들었다.

5월12일

이덕형을 청원사로 하여 명나라에 원병 요청을 하기로 조정 회의에서 결정 내렸다

일본군은 임진강을 건느자 가등의 2 번대는 강원도와 함경도로 , 소서 행장군은 평안도로 흑전장정 군은 황해도로 기타 부대는 각도의 후방을 경비 담당 하기로 했다.

 

임금은 조정 중신들을 다시 모이게 했다 . 중신들 중 일부는 강계나 함경도로 피하자는 안과 윤두수등이 주장하는 평양 사수론 으로 팽팽히 맞섰다

처음에는 선조가 서울을 떠나면서 평양 까지만 임금이 피난 가는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임금은 좌의정 윤두수 에게 평양 사수를 명령 했던 것이다 .

 

왜적이 어느새 평양 남쪽 대동강 가에 도달 했다 ,

6월11일

 

왕은 함경도쪽으로 처음에는 방향을 잡자 이항복, 이덕형 이 나서서 위험한 생각을 말라며 의주로 방향을 틀었다.

왕이 정주에 잠간 머물때 평양 패배 보고를 받았다

결국 6월23일 임금은 의주 목사 집으로 행궁을 정했다

윤두수와 도원수 김명원은 날랜군사 50명을 뽑아 평양에 침투시켰으나 오히려 패 하고 말았다 , 다행히 이 싸움 에서 적군 일부를 죽이고 말300 마리를 빼앗아 왔다.

 

평양남쪽 강가에 방어를 하다 패하여 북쪽으로 후퇴 하는 조선군이 깊이가 얕은 왕성탄 여울로 건느고 있다는것을 탐지한 척후병들의 보고를 들은 소서행장은 손쉽게 뒤 딸아 평양성에 입성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이덕형의 청원사가 오기전에 자국 경비를 위하여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정은 원병 파병을 명나라에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명나라는 자기 나라에서 왜군과의 전투하는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조선 출병을 결정하였다 1차로 사유(史儒)가 이끄는 1000명의 원군을 일단 요동에 배치되어 있던 명의 국경 수비군을 의주에 대기 시켜 놓았다.자기나라 경비가 목적이었다.

 

 

명나라는 수비군이 1000명으로는 20만의 왜군과는 상대가 되지않을것 같으므로 다시 명나라 황제는 명장 조승훈(祖昇訓)에게 명령 평양에 도착 하였다 야음을 틈타 평양을 공격 했으나 1차 실패 하고 말았다 조승훈은 일본군과 싸우는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조선 조정에다 강화 조약을 맺으라고 압력을 넣었다

조정에서는 외교에 능한 이덕형을 소서행장과 강화를 논의 하고자 했으나 그의 예견대로 명나라 군을 격퇴시킨 자만심에 젖어 있던 소서행장은 그에게 응해 주지를 않았다.

 

명나라 황제는 병부 상서 석성의 건의로 심유경을 보내 행장을 만났다 , 심유경은 평양을 기점으로 서로가 더이상 나가지 말자고 의견 조정을 했다

그러나 명나라 조정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2차 로 명장 이여송을 앞세워 4만 3천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은 완전히 외국군의 전쟁터로 변해 가고 있었다

 

. 명군이 들어 오자 당장 명군들이 요청하는 군량미 조달이 큰문제였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수 없어 식량문제는 다급한 문제였다 .

당초 명은 조선이 왜국과 내통하여 왜군에게 패하는척하고 왜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않는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이것을 이항복이 여러가지 증거를 대며 설명하여 의심은 풀렸다

 

왜군들도 조선의 닥아올 겨울이 적지 않게 걱정이 되었다 . 그들의 군 장비는 겨울용이 아니었다 , 그들이 점령한 고을은 창고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일단 평양에서 멈추고 한숨을 돌려야 했다

한산도 대첩과 안골포 싸움에서 적함을 침몰시킨 이순신은 여수 좌수영으로 와 있었다 . 소강상태를 이용 계속 배를 만들게 하고 조선군의 주 무기인 비격진천뢰와 화약을 점검하였다

권율이 광주에 부임한 때는 꽃 망울이 터뜨리 려고 하는 따뜻한 봄날 기운이 완연 했다. 광주는 한성의 조정이 바삐 돌아 가는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남도의 봄은 따사로운 햇볕이 생기를 돋우고 있었다.

 

광주는 호남의 중심지다 ,

권율이 청년 시절 관직에 몸둔지 얼마후 이곳에 전라도사로 부임 하여 전라도 각처의 관리 들의 부정행위를 규찰하며 기강을 바로 잡던 일을 했던곳이다.

권 율은 전라도 땅 이야 말로 조선의 생명 줄 이라고 생각 했던 곳으로 이곳 아니면 전 조선군의 군량미를 댈 곳이 없는곳이라고 평소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가 도사로 있었을 때 이 지방에 있는 산성을 눈여겨 봐왔었는데 나라가 시끄러워 지고 나니 새삼스러운 감 없지 않았다

 

당시 남원에 있는 교룡산성(蛟龍山城)등 을 들렸을때는 조선은 태평성대에 빠저 성벽은 허물어저 잡초만 무성 했었다

 

권율이 한성을 떠나 오기전 사위 항복 에게서 들은 왜국은 녹녹히 봐서는 않될 대상국 임에도 불구 하고 조정은 명나라를 방패 삼고 항상 왜국을 없인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를 편견으로 보아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

 

실상을 파악하여 적절하게 강(剛)과 유(柔)를 적절히 사용 왜국을 통제 할수있어야 한다고 생각 했다.전쟁이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이긴다는것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 시키는것이 최상의 방법 일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현실은 어떤가? 전쟁 일보 직전에 와 있는것이다

 

,권율은 부임 업무를 끝내고 곧바로 광주 근방에 있는 담양(潭陽)의 금성산성(金城山城)과 남원부(南源府)의 교룡산성(蛟龍山城)을 우선 둘러 보았다 ,

산성은 예상대로 허물어진채로 잡초만 무성 했다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은 탓이다. 새삼스러이 다시 보는 산성은 산성의 위치가 모두 천연의 험지에 쌓여 있어 신라나 고려시대의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

권율은 산성의 수축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와 다름이 없는 데도 누구 하나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었다 담양은 광주 동북쪽에 위치한 왜적이 만일이라도 침공시에는 표적이 되는곳이다

 

다른곳은 그쪽 현감이 할일이지만 담양만큼은 율이 직접관여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담양군수를 만나 현재 조정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수축 문제를 협의 했다 , 문제는 인력과 비용인데 방법이 없었다 . 인력은 백성을 동원 해야 하는데 때가 씨를 뿌리는 봄철이라 도원 문제는 쉽지 않고 더구나 비용은 대책이 없다

 

권율이 생각해낸것은 산성내 사찰이나 암자를 짓도록하고 승려들에게 산성 수축과 보존을 책임지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 이방법은 사찰 로 부터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았다 율이 생각하는 축성의 관심은 그의 독특한 전쟁관에 연유 한다.조선조나 명나라나 왜국 등은 성(城)을 빼앗느냐 , 빼앗기느냐 의 전쟁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사실 고구려와 당나라가 안시성 싸움 에서도 당태종이 당시 공격자 입장 이었지만 결국은 안시성을 함락 시키지 못하고 당태종은 눈한쪽을 잃고 병사들은 피로가 겹쳐 물러 났고 당나라는 결국 수나라에게 망하고 만것이 그 예 라고 생각 했다.

 

그가 성을 수축 할때는 항상 물을 중요시 했다, 산성의 존립 가치는 식수에 있다는것이 그의 지론 이었다. 산성의 물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아야 했다 .옹달샘으로는 많은 군사가 일시에 주둔하면 문제가 생긴다 , 그래서 율은 계곡물 말고도 우물을 곳곳에 파도록 하고 작은 방죽도 만들었다 .

 

권율은 광주 산하 장병 들과 담양군 과 합동으로 특별 훈련을 하기도 했다 아전 들은 신관 삿도의 돌출 행동에 당황 했다 . 하긴 아전들이야 지금 조정에서 어떻게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것을 알턱이 없으니 불평이야 있을법 하긴 했다 ,

권률은 병법에서의 정보 즉, 지피지기(知彼知己...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는것)로서의 적정을 항상 파악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법에

賢將이 所以動而 勝人하고 成功 出於衆子는 必取於人知敵之情者也라

(훌륭한 장수가 전공을 세우게 되는 것은 간첩을 이용 적정을 사전에 파악했기 때문 이다 ) 라는구절도 잘알고 있었다.

6월4일

어명이 온양에 도착했다,

 

이광은 어명을 두 순찰사 에게 뵈고 북진 길을 결정 하였다 ,충청도군과 경상도군은 직산을 거쳐 진위현(지금의 평택군진위면)으로 직접 진출하여 수원으로 ,주력군인 전라도군은직산에서 안성방면으로 진출하여 진위현에서 일단 만나 용인쪽으로 진군 하기로 하였다

 

4일동안 푹쉰 조선군은 전라도군을 주력군으로 하여 기세도 당당하게 온양을 출발하였다

 

전라도 군 4만명은 그 위세가 대단했다 .타도와는 달리 전란 피해를 직접받지 않은 탓에 물자와 군량미 준비가 충분히 준비된데다가 운반하는 우마차도 다른도 보다도 많은 수레를 확보 하였다

전라도 군의 4만 병사들과 군수 물자 수레의 대열이 장장 40리를 뻗히어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각 군은 천안을 거쳐 직산에 접어들자 병졸들이 피로가 들기 시작 하였다 , 차령산맥 골짜기를 거쳐 올때는 그래도 덜 피곤 했으나 직산을 지나 평택벌에 들어서니 가도 가도 긴 벌판이 펄쳐 있었다

더구나 50여리에 뻗혀 있는 조선군의 행열은 맨 앞에서 내린 명령이 맨뒤까지 하달 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군 통솔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

 

이 진군(進軍) 모습을 박동량(朴東亮)은 그가지은 기제 사초(寄齊史草)에서 지적 했듯이 "군사들은 행군 규율이 없고 앞과 뒤가 서로 맞지 않아 마치 양떼를 몰고 목장으로 가는것같다"고 하고 유성룡은 그가 지은 징비록(懲枇錄)에서 "軍行에 如春遊 하여 安得不敗者也리오"(군대 행열이 마치 봄놀이 가는것 같으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라고 개탄 하고 있다

 

이광은 군사가 숫자 많기만 하면 언제든지 적을 섬멸 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훈련 않된 병졸들을 걱정하여 조방장등이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 했어도 고집을 꺽지 않고 자기 주장대로만 하는 둥 너무나 자기 도취에 빠저 있었다.

 

일본군 협판안치(脇坂安治)는 수군 1600 명을 거느리고 서울에 주둔하고 있었다 .

 

그중 한성에 1000명을 주둔시키고 600명은 협판좌병위(脇坂左兵衛)에게 맡겨 용인 북두산성(北斗山城.....용인 남쪽 10리 밖)에 소루(小壘...작은성)를 쌓아놓고 용인지역을 경비토록하였다

 

이광이 이끄는 전라도군은 안성에서 양성을거쳐 진위천을 따라가가 다가 진위천과 운학천이 분수령이 되는 작은 고개마루에 도달했다 고개위에서 산 정상쪽을 바라 보니 산 중턱에 돌로쌓은 얕은 성벽이 보이고 왜군의 깃대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광이 곽영 에게 묻는다

"이곳에는 성이 있다는말을 못들었는데 저 성이름이 뭐라 하오. "

"신라시대때 북두산성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은 고성입니다 . 왜군들이 보수 해서 급히 쌓은 소루(小壘..작은성)인모양입니다 "

"곽장군, "

벼란간 이광이 곽영을 불렀다.

"저성을 치도록 하시오 "

하고 소루에 불과한 왜성을 가리켰다.

 

권율이 옆에 있다가

" 별로 높지 않은 성에 깃대 몇개 꽂아 놓지 않고 있는것을 보면 왜병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 성벽을 험한 바위에 잇대어 쌓았으므로 아래에서 위를 공격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저렇게 적은 왜병을 공격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상께 한성 수복을 하겠다고서약 하여 어명을 받고 북진중입니다.차제에 한 도(道)의병마를 모두 이끌고 올라 오신 장군의 일거수 일투족은 조선의 존망이 걸린 일이 오니 신중을 기히심이 옳를듯 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고 적들의 숫자가 아무리 적다고 하여 적들을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치긴 좀 ........"

"아닙니다 이제 이러한 하잘것 없는 왜병을 공격하다가 혹시 치지 못하고 패하는경우에는 앞으로 장군의 위엄과 임금을 모시는대사(大事)

가 그르칠까 걱정이옵니다. "

권율이 걱정이 되어 진언했다.

 

이광은 권율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선봉장 백광언을 불러 즉시 적을 치도록 명령을 하였다

 

백광언이 주위 상황을 알아 보고 돌아와 이광 에게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으나 경사가 가파른 데다가 올라 가는 길이 나뭇군 한명이 지나갈 정도의 소로 외길 뿐입니다 . 칡 넝쿨이 너무 우거져 우리 같이 큰 병력이 군사 행동 하기에는 적합치 않습니다. "

하고 보고 한다.

 

이광이 화를 벌컥 내며

"무슨 소리야? 군대가 이런것쯤 하나 극복 못하고 무슨 전투를 하겠다는거야, 칡이 엉켜 있으면 끊어가면서 올라 가면 되지 , 당장 적을 섬멸조치 하라"

 

곽영이 권율을 보면서 불평한다

"이공께서 저리 외 고집을 부리시니 이번 일은 순탄치 않을 것 같소이다.

조금있으면 날도 저물텐데 ......"

군사들이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산위로 올라가기 시작 했다

 

안개가 산 주위로 끼기 시작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숲속은 칡넝쿨과 야생 찔레 넝쿨로 엉켜한발도 내딛기 힘든 상태였다.군사들은 수풀을 헤쳐가며 한발 한발 소루(小壘)를 향하여 접근 하기 시작 했다 .

 

조금 올라 가다 보니 10 여명의 왜군이 물을 긷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군이 별안간 나타나자 당황 하여 산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물을 받다가 미처 도망 못간 왜병이 조총을 쏘려고 장전 하는순간 조선군 이 내려치는 칼날에 힘없이 쓸어지고 도망치는 왜군 8 명도 목을 쳐 죽이었다 ,

 

"이놈들 , 조선군이 어떤 군사 들인 줄 알고 , 하루 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날뛰어"

조선군은 의기 양양 하였다, 조금 더 올라 가다 날이 어두워 지고 안개가 자욱 하여 일단 올라가는것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하고 하산 하였다 .

 

적의 10명 수급을 벤 조선군은 일본군을 업수히 여기기 시작 했다.

백광언도 자신이 붙었는지 이광에게

"아무리 날이 어둡고 안개가 끼더라도 저에게 50명의 정예병 만 주시면 적의 루책(壘柵)을 급습 하여 돌아 오겠습니다"

 

하니 이광은 기뻐 하며

"역시 조방장은 용감 하시 구려 , 하지만 지금 사방이 어두운 밤10시인데 가는 하겠소?"

"걱정마십시요 , "

백광언은 똑똑하고 날쎈 병졸 50명 을 추려내어 소로를 딸아 정상쪽으로 올라갔다.

 

소로로 한참 올라 가니 적의 루책(壘柵)이 보이고 불을켜 놓고 밑에 조선군이 와 있는 것을 모르는지 , 아래 내려갔던 동료 10명을 기다리고 있는지 저의들 끼리 떠드는소리가 들린다 예상 외로 적은 몇십명 되지 않는듯 했다

 

백광언은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빼어들어 루책을 뛰어넘어 적의 보루(保壘)속으로 뛰어들자 뒤따르던 병사들도 뛰어들어 단숨에 적의 목을 30여급을 베인다.

달아나는 적들을 여기 저기 토끼 사냥하듯이 내려치니 선혈이 낭자 하다 , 넘어진 광솔 불이 주위에 붙기 시작 했다 적은 총한번 변변히 쏘아 보지 못하고 40여명의 시체만 남기고 안개속으로 사라젔다 , 불길은 삽시간에 적의 보루를 태우기 시작 했다

 

밑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광은 산위에 화광이 중천 하는것을 보고 매우 만족 스러운 얼굴로 곽영과 권율을 번갈아 보며

"역시 우리가 잘 생각 했지 , 적을 두고 그냥 지나치고야 갈수 없지..."

하고 그 보란듯이 산위 불빛을 바라 본다.

 

보루를 조선군이 점령 했다는 급보를 받은 일본군 수장(守將) 협판좌병위(協坂左兵衛)는 즉시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협판안치에게 보고 했다.

"장군 , 지금 조선군이 구름떼처럼 용인 방면으로 진군 해오고 있습니다 . 날이 어두워 적의 규모는 잘 모르겠으나 적진의 불빛을 보아서는 적지 않은 대군입니다 .

 

워낙 군대수가 적지 않아 우리 600명의 군사로는 조선군을 대적 할수 없사오니 원병을 보내 주십시요 , 지금 저의들은 용인 북부에 있는 문소산 소루(小壘)에서 진을 치고 있으니 즉각 구원병을 보내 주기 바랍니다 "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아든 일본군 급사(急使)는 한성을 향하여 캄캄한 어둠속을 뚫고 질주를 시작 했다 .

 

"그렇지만 , 광교산 아래는 지금 충청군과 경상도 군이 와 있어 엄청난 대군화(大軍化) 되어 있습니다"

"대군이라는 개념을 잘모르는군 ,대군은 바로 우리요, 우리가 어떤 군대요 ,

태합을 모시고 일본 열도를 통일한 역전의 용사들이요 .

전투경험과 조총 ,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의 승리 는 호재요 당장 추격 합시다"

 

왜군은 조선군 퇴각로 로 따라 가지 않고 다른 지름 길을 이용 하여 광교산 높은 곳에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

작전 회의가 조선군 진영에서 열렸다

두 선봉장을 잃은 조선군 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전투를 하지 않은 윤선각이 말을 꺼냈다

"지금 광교산에 집결해있는 적군의 병력은 2천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

 

이장군께서는 마음의 상처가 크실텐데 이번 전투는 우리 충청군이 선봉을 서겠습니다 ."

"..............."

모두 말이 없었다

권율이 나서서 말한다

"앞서 용인 전투에서도 그랬습니다만 광교산은 용인과 달라 산이 높고 험한 곳이 많습니다 . 저들은 우리 보다 유리한 위치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용인 전투때 보니 적의 조총의 위력이 대단 했습니다 .

실전을 해본 장수래야 조총의 위력을 알수 있습니다.

이자들은 전투 경험이 많아 평야에서는 전투를 하지 않고 꼭 지형 지물을 이용하여 전투를 하려 합니다 .그러는 이유는 군사 숫자 면에서는 우리 군과 상대가 않되니까 , 최대한 지형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

 

그러니 적이 어느 골짜기에 매복 시켜 공격 할지 모르니 좀더 신중을 기하여 공격 하는것이 좋을듯 합니다"

그러자 이광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한다

"중위장은 그게 탈이오 , 항상 신중히 해야만 하다가 먼저도 식사중에 당한것 아니오"

 

 

이말에 항상 이광의 말에는 거역 않던 권율도 격한 소리로 말한다

"어째서 그렇단 말씀입니까. 그때도 식사 도중에 적이 언제 내습을 할지 모르니 만반의 경계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안했습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하며 이광을 불쾌하지만 표정을 바꾸며 권율을 바라본다

 

그때 권율의 말대로 경계군을 별도 배치만 했어도 그런 망신은 당하지 않 했을 것이 었다

이광이 입을 열었다

"내말은 광주 목사가 잘못 했다는 얘기가 아니고 , 지금 우리는 근왕군으로 한성 탈환이 시급한 문제인데 권장군이 신중 신중 하며 시간을 끌다가 적에게 또 공격의 기회를주어 참패 당할까 걱정되어서 한말이오

"이장군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

 

그렇지만 적과의 전투는 너무 서두르시면 않됩니다 .만일 이 광교산 에서 조차 적에게 패한다면 한성은 고사 하고 조선군 전체가 묺어 지는 위기를 맞는다는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광은 권율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아까 나를 보고 충청 순찰사가 후방에 있으라 하셨는데 엄연히 이번 근왕군의 사령관은 나입니다 .

 

어명에 의하여 필히 한성 수복의 특명을 받고 나왔는데 이렇게 뒤로 밀려난 장군 노릇 만은 할수 없는 일이오

이번 전투는 내가 나서서 섬멸하고 올테니 중위장은 당신 부대나 거느리고 여기 가만히 계시오 , 내가 나가면 이놈들 쯤이야....."

 

이광은 광교산이 자기 명예를 회복 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

그는 작전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나주 목사 이경복, 방어사 곽영,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공격 하라"

이광이 백마를 타고 이번에는 공격을 직접 선봉장이 되어 지휘하고 있었다

"와, 와, "

조선군의 함성이 광교산 산하를 흔들어 대었다 .

 

병졸들이 광교산을 향하여 달려들기 시작 했다.

 

벌떼 처럼 골짜기 로 몰려 올라가는 조선군을 보고 권율은 중위군으로 선봉부대 가 무너지면 다음에 공격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기 하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

권율은 부디 선봉군이 이번 만은 승리 하기를 바랬다 .

예상 밖으로 일본군은 너무나 조용했다

 

조선군의 절반이 산 중턱에 도달 했을 때 적은 조총을 난사 하기 시작 하였다 , 조선 군의 대오가 흩어 지기 시작 하고 조총의 위력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올라가던 군사들 밑으로 되돌아 서서 도망 하기 시작 하였다

"자. 도망하지 말고 공격 하라." 이광은 칼을 빼어들고 고함을 지르나 소용이 없었다

순간 총알 한발이 이광의 말에 맞자 백마가 힘없이 넘어 진다 . 이광이 말에서 떨어젓다 , 다행히 목슴은 건젔으나 적이 계속 접근 해오고 있었다 , 이광 은 적들의 목을 치며 도보로 도망나 왔다 .

 

권율이 보니 이광이 갑옷을 벗어던지고 중위군 쪽으로 도망 왔다

"어서 적들을 치시오"

이광은 그 꼴에 전라 감사라고 위엄을 지켜 다급하게 권율에게 지시 했다

권율군은 그렇지 않아도 양쪽 협곡 야산에 모두 매복 하고 있었다.

적은 파죽지세로 중위군이 매복 되어 있는 협곡으로 도망 치는 조선군을 향하여 뛰어 들기 시작 했다

왜군이 협곡 중간에 들어 서자 매복 되었던 권율군 500여명이 일제히 활 시위를 당겼다 . 난데 없이 날아든 화살에 놀라 일본군은 조선군 추격을 잠시 멈추었다

 

권율은 이 와중에서도 이 모양을 보고 몹시 가슴이 아팠다

(조선 군사들은 훈련만 잘 시키면 모두 일본군 보다도 강한 군대가 될수있다 .

비록 조총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활도 잘만 쓰면 적의 상대가 된다는것을 .증명 하는것이 아니냐 ,

그러자면 훌륭한 지휘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감 께서는 이러한 비겁하고 무능한 장수들만을 믿고 한성 탈환 할날만 기다리고 있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권율군의 500 영 사수가 쏜 화살에 많은 피해를 보자 왜병들은 어느쪽에서 날아온 화살 인지 몰라 우왕 좌왕 하다가 다시 눈 앞에 이광군의 도망치는 조선군 에게 조총을 난사 하며 뒤를 쫓았다 .

재차 권율군이 쏜 500여 화살이 양쪽 산에서 날아들자 왜군들은 뒤로 서서히 물러 나기 시작했다 .

 

왜장 협판안치는 왜군 선봉대가 자꾸 쓸어지는 모습을 산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가 말한다

" 아니 우리 병사들이 벼란간 쓸어 지는 이유가 뭐요?""

수치가 대답한다.

"조선군 선봉은 완전히 문허 젔습니다 ,다만 중위군이 정면 대결을 않고 매복시켜 우리군을 괴롭히는 모양 입니다"

 

"중위군 장수가 누구요?"

"광주 목사 권율이란 자입니다.

 

용인 전투에서도 우리 군을 괴롭히더니 이곳에서도 같은 매복작전을 쓰고 있습니다."

 

 

 

"음 , 조선에도 무시 못할 장수가 있었군, 그자를 생포 할수 없을 까 ?"

" 어림없는 말씀입니다 , 지략이 뛰어난자이고 용맹하여 감히 그를 잡는다는것은 하늘에 별따기 나 다름 없습니다. "

" 저렇게 달아 나는 조선 군사를 쫓다가 오히려 우리가 함정에 빠지기 쉽소

비록 패잔병 이라 하나 너무 좇아서는 안되오 ,

 

잘못 하다가는 조선 중위군 함정에 빠질 염려가 있으니 군사들을 일단 걷우도록 하시오"

일본군이 벼란간 공격을 멈추고 도주하는 조선군을 바라 보고 있었다.

 

왜장이 말한다

"원래가 도망가는 적군이 우리 보다 몇배로 많을 때는 도망갈 구멍을 내주는법이오 ,

도망 가던 쥐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에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 든다는 속담이 있지 않소? ,그때는 우리의 희생이 예상 외로 클것이 뻔할 것이오 "

 

일본군은 패잔병이라 해도 조선 대군(大軍)의 어마 어마한 병력과 계속 전투 한다는것은 불가능 하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또 만일 친다 해도 중위군 이 벋히고 있는한 어려울것 이 뻔했다.

조선군은 3도 근왕병 10만이라 자랑하던 군사들이 다죽고 포로로 잡히고 겨우 1만 5000명도 않되었다

서울 탈환이 목전에 올것 으로 예상 했던 의주 행재소 에서는 광교산 패배 소식을 듣고 탄식만 오갔다.

 

영의정 최흥원이 임금께 아뢰 었다,

"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이번 근왕군 명령을 받고 5 만대군으로 겨우 2 만도 않되는 왜군에 게 참패 당하여 한성 수복의 임무를 수행 못한것은 전적으로 이광의 지휘 부족입니다, "

 

좌의정 윤두수가 거든다

"영상 말씀이 옳습니다 , 듣건대 , 이번 전투 초기에 광주 목사 권율이 이광 에게 권하기를 적은 적에 구애 됨이 없이 서울 수복을 목표로 용인 지방을 지나쳐 서울과 임진강 방어에주력한 다음 마지막 으로 한성 을 점령 할것을 건의 했는 데도 이광은 몇 안되는 왜적을 건드려 서울에 주둔 하던 협판안치라는 왜장 1500 명을 불러 들여 화근을 자초 하였다 합니다 .

 

서울 탈환의 큰뜻을 저버린 이광 에게 그 죄를 물어야 마땅 하옵니다," .

"그러면 우리 조선군은 희망이 없다는 말 아니오?"

"수군이 있지 않사옵니까? 이순신의 수군이 연전 연승 하고 있으니 걱정 마옵소서" 우의정 유홍이 임금을 위로 하였다.

 

 

" 바다도 물론 이겨야 하겠지만 ,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은 땅을 뺐느냐 빼았기느냐의 싸움이 아니오 ,

바다 만 지킨다 해도 배를 대려면 육지가 있어야 하는것이니 육지 없이는 바다 에서 아무리 이긴다 해도 물거품에 불과 할것이오 .

한치의 땅이라도 적에게 빼았기면 않되는 시점에 우리는 육지에서 계속 패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니겠소 ,우리는 지금 훌륭한 육장(陸將)이 필요 하오 , 영상은 빨리 이나라를 구원할 장수감을 추천 하시오"

".............."

임금의 비통한 말에 제신들은 할 말이 없었다 .

 

영상 최흥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광은 본래 용열 하고 비겁한 인물로 , 곁 들여 고집이 세다고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어떤 상황이 떨어 지면 조정에 청하여 일일히 조정의 지령을 받은 다음 에야 움직이니 항상 상황 변화에 대처 하지 못하고 한발 늦기가 일쑤라 합니다

 

또 광주 목사 권율이 이광에게 당초 3 도 관군 5 만을 동원 계획을 세우면서 행재소에 장계를 올린대로 한성 탈환 부터 목적 대로 먼저 행할것을 누차 건의 했는데도 이광은이를 묵살하고 적은 공에 눈이 어두워 적을 용인 까지 끌어 들여 큰 뜻을 저버리게 한것이라든가 용인 전투에서도 권율이 경솔하게 나가지 말고 싸울것을 건의 했는데도 묵살 하여 많은 군사와 물자를 잃게 하였다 합니다

 

반면에 광주 목사 권율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광주 목사로 부임 하고 나서도 축성 , 무기 관리, 군사 훈련, 등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가 , 이번 서울 탈환 대임을 앞두고 근왕군 의 중위군으로 참전 하여 조선군을 그나마 안전하게 철퇴 했기 때문에 이광이하 전군이 궤멸 되었는데도 권율군만이 건재하다 합니다

이는 광주 목사 권율이 지휘력이 탁월하다 할것입니다 .

차제에 권율에게 전라도의 육군을 통활 하는 전임직 도 절제사 로 임명하시어 단병사(單兵使)로서의 권율에게 군사 지휘권을 행하도록 하심이 옳을줄 아옵니다 "

 

"그러면 지금까지 이광이 겸직하고 있던 겸병사(兼兵使)직을 단병사(單兵使)직으로 하여 병사 지휘권만을 권율에게 주자는 말씀아니오?"

 

"예 그렇습니다 , 본래 장수란 육도서(六韜書)에 의하면 , 오재(五材)를 갖춘자라야 했습니다 , 오재란?용(勇), 지(智), 인(仁), 신(信), 충(忠)이라 했습니다 ,

 

이광은 이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차제에 전라도의 군사 지휘권 만은 제승방략 대로 권율에게 맡겨야 옳을것으로 사료됩니다."

조정에서는 다음날 권율을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로 발령을 내렸다 .

 

 

왜장 협판안치는 쫓기는 이광군의 대열을 멀리서 바라 보다가 , 어디서 나타 났는지 또다른 조선 부대가 질서 정연 하게 집결 하더니 대열을 만들고 있는것에 놀란다

 

"부장, 저놈들이 어디서 또 나타난 놈들이오."

"아. 적의 중위군인 모양입니다 ,

우리가 추격을 않으니까 , 필히 우리를 시험 하기 위하여 저러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게 산에 매복 하여 활로 우리를 공격 하던 자들이요 ? 조총으로는 사정거리에 못미쳐 소용 없으니 기병을 내보내 치도록 합시다"

 

"않됩니다 , 적장 권율이란자는 주의 해야 할 인물 입니다 ,

먼저 용인 전투에서도 우리의 희생자를 많이 나오게 한자 입니다,

보십시요 , 저놈들이 자신 만만 하게 대열을 짓는것은 아무래도 수상 합니다"

"저것 보게 ,저북소리는 무엇이고 , 저많은 깃발은 왜 저리 늘어 놓는것이요, 그리고 조선군의 뒤를 쫓네"

 

"적이 북을 울리며 후퇴 하는것은 우리의 이목을 현혹시켜 기이한 계교를 부리려는 권율의 술책이 분명 합니다.

분명히 . 이놈이 우리의 눈을 속여 군사들을 매복 시켜 놓고 는 짐짓 물러 나는척 하고 무슨 흉계를 꾸미는것이 분명합니다.

조선 포로들을 심문하여 물어 보니까 이번 전투에 참여 한 군사중 권율군과 충청군 경상군은 아직 전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충청도 조선군의 약점은 오합지졸로서 훈련과 실전 경험이 없는것이 흠입니다

 

,그러나 권율이 거느린 중위군은 다르다 합니다 . 함부로 나갈일이 아닙니다"

부장의 말에 협판 안치가 말한다

"맞는 말이오 , 내가 실수 할뻔 했소"

 

권율은 이광의 지시로 충청군을 포함한 전군이 후퇴 하는것에 당황 하였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까지 중위군이라도 남아 남아 장열하게 전사 하는 길이라도 택 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어명을 위하여 후일을 기해야 하느냐로 한참 망설이고 있었다.

 

(적에대하여 끝까지 남아 공격 한다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그러나 그것만이 계책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다음 작전을 위하여 일시 후퇴 하는것도 상책이 될수 있다

 

전투에 임하여 장수가 해야 할 중요 임무중 가장 중요한것은 적의 의도를 신속히 파악 하고 거느리고 있는 부하들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장수는 상황 판단을 위하여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장수가 지혜롭지 못하면 군사들은 장수를 믿지 못하여 도망병이 생기고 전투 할 의지가 상실 된다 .

 

장수는 부하 장병들의 생사를 맡은 자이기 때문에 사생결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이번같은 전투에서 싸우다 장열히 전사 한다는것도 충(忠)이 될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불충도 될수 있는것이다. 오냐, 오늘은 그냥 물러 가리라 다음에 기어코 설욕 하리라, )

권율은 입술을 깨물고 중위군 전원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대오를 정열 시키되 맨 후위 에 정예 병사들이 사주 경계를 하도록 하고 앞줄에는 깃대를 앞세우고 고수는 북을 치면서 행군 대열을 갖추도록 하되 행선지는 광주니라"

 

옆에 있던 나주 목사 이경복이 권율에게

"아니 장군 , 깃대를 앞세우고 북을 치다니오 , 아 . 우리가 전승 군입니까? 북을 치고 나가는것은 적에게 우리를 더 알리는것 아닙니까 ?"

하면서 말을 타고 뒤쫓던 다른 장수들도 놀란 표정을 짓는다 .

 

사령관 이광이 앞서 도망 친 바람에 그래도 침착하게 행동하는 권율이 믿어워 그뒤를 쫓던 장수들은 당황 하지 않을수 없었다

"옛글에 詭伏設奇하여 遠張誘者는 所以破軍擒將也(적의 눈을 속여 군사를 매복시켜 짐짓 물러서는척하여 적장을 사로 잡는것)라 하였오 .

우리 중위군이 두번이나 매복 작전을 썻기 때문에 또 그런 전법을 또 쓸것이라는 예측을 하겠끔 하여 적이 함부로 우리 뒤로 추격 못하게 함이오 .

적장이 겁이나서 우리를 추격 못 해야 우리는 우리의 희생을 최대한 막으면서 후퇴 할수 있는것이오 "

 

왜장 협판안치는 광교산 멀리 사라지는 조선군을 바라 보며 말 한다

 

"부장 , 저 조선군 공격을 한번 더 하는것이 좋지 않겠소? 아까 얘기 한 부장 생각도 옳지만 패퇴하는 조선군이 다시 공격 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 할수 있소?"

"아닙니다, 만일 우리 군이 연전 연승에 마음이 들떠 무턱대고 공격 하다가는 우리군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후퇴 하는 조선군을 추격 하려면 추격하여 무엇인가 얻는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적들은 지금 전의(戰意)를 잃고 물러나는 군대이지만 우리는 조선국의 왕도인 한성을 이미 얻고 있습니다 .

적들이 얻고자 하는것도 한성 수복입니다.

 

적들은 목적 달성을 못 했고 우리는 한성을 지킨것입니다.

또한 , 우리는 적들의 계략에 빠질지 모른다고 아까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적의 계략을 전혀 모르는 상태 에서 우리의 동정(動靜)을 모두 노출 시켜 적과 싸운다는것은 이미 패퇴 하는 이광 군이 문제가 아니라 권율군 에게 이용 달할까가 문제 입니다.

 

그간 , 우리 일본군은 원근 지계(遠近之計)를 써서 용인에서 광교산 까지 적보다 뒤에 용인에서 출발하였지만 목적지인 광교산에 먼저 도착 매복 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적과 일전을 다시 한번 또 전투를 한다고 가정한다고 치면 살펴 보건대, 수원, 용인 남쪽 지형은 높은 산이 없는 구릉지형 낮은 산들이기 때문에 선제의 유리한 점을 잡아 싸울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과 우리가 허(虛)와 실(實)이 모두 노출된 이상 계속 추격 한다는것은 실익이 없는 전쟁 입니다 . 일단 한성으로 돌아가는것이 좋습니다"

 

"과연 그렇구료, 내가 생각을 잘못 했소 , 적들이 버리고 간 유기품을 모두 불태우고 한성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

조선군은 10만 군사라고 자부 하던 5만군사가 맥없이 흩어 진것이다.

오직 권율군만 온전한 군사를 이끌고 광주로 향하였다 ,

 

이광은 갑옷을 벗어 던진 상태로 처량하게 부하가 내준 말을 타고 전주 감영으로 내려 갔다. 이경복은 나주로 , 충청도군은 공주로 , 김수는 경상도로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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