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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

 

일본 관백 막부 대장군  풍신 수길이가 조선과 명나라를 치겠다고 호언을 했다

 

일본의  정무를 총괄하는  관백 자리에 오른  풍신 수길은 , 태정 대신 자리와  좌대신,일본 왕의  섭정을  갖는  관백이라는 이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등장한 인물이었다  

 

관백은 보통 태정 대신과  일본왕 사이에  정치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관백이   수석 대신 역활을 해서  왕이 하는일을 조정을 했다 

그러나   풍신 수길은  관백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사실상 일본 왕의 섭정이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풍신수길이  일본의  중요  정책을 주관하는 태정관 회의까지  장악함으로서 정무를 총괄하는 그의  위력은  감히 누가 넘 보지 못했다 

 

관백은  대신들 마저 조선왕에게  불리워지는 전하(殿下)라는 호칭 까지 받을 정도 였다

 

그의 정적이었던  덕천 가강도  관백에 오른 풍신 수길의 권위에는 굴복할수 밖에 없는   명실 공히  풍신 수길 시대 였던 것이다

풍신 수길은이 관백 자리에 오르자  정적인  덕천가강이  반란을 꾀하지 못하게 하기위해    덕천 가강의두 째 아들을  인질격인 양자로 삼는가하면  풍신 수길의  이복 여동생을  덕천가강의  정실로 보내어   덕천 가강이  반란의  마음 먹지 못하게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더구나 풍신수길이  덕천가강에게는  은인이나 다름 없는 것이  지난 날 덕천가강을 따르지 않고  막강한  저항을 하고있던   호죠라는 자가  덕천 가강을  포위해 위험 한 지경에 있을 때  풍신 수길이  이를 구원   항복을 받게 해준 인물이기 때문에  덕천 가강은 풍신수길에게 마음 의 빗을 갖고 있었다

 

풍신수길은 덕천 가강이  일본의 서울격인 경도(京都)에  덕천 가강을  입성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점령지인 호죠의  소전원성(小田原城)에 머물하고 했다 

그러나  덕천 가강은 지금의  일본의 서울인 동경인  강호성(江戶城...에또)에  머물면서  성을 쌓는둥 풍신 수길이가  머물고 있는  대판성 (大阪城-오사카)에는 얼씬도 하지않았다

 

 풍신 수길이가 수도로 삼은 대판성은  일본의 천년 수도인 경도(京都..교또)의 외항으로 성장하여 오랫동안 일본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일본을 통일한 풍신 수길은 이곳에  거대한 오사카성을 쌓고 이곳에 머무르면서 정치 중심지로서의 지위까지 가져오게  만들기도 했다 

훗날  덕천가강이  풍신 수길이 사망후  허허 벌판이었던  지금의  일본의 서울인  도꾜에  막부를 세우기전 까지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중심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을 통일한  풍신 수길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일 과정에서  급속히 불어 난 휘하 영주들에게 나눠 줄 땅을 확보하는 것이 큰 문제 였다

 

또  비대화된 군사력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이놈들에게  먹여 살릴  땅이  일본땅은 좁다는 말이야 )

 

우리 속담에 배운 도둑질 못 버린다는 말도있듯이  풍신 수길은  평생  남을 죽이고  빼앗는 일로  관백의 자리 까지 오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훌륭한 성군이 된다는 것은  눈을 씻고 보기 어려운 법이다  

 

(명나라가  땅이  넓기는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고  엣날 부터  조선에 일본 땅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이 땅을 확보해서  영주들을 이주 시키면......)

 

여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풍신수길은  부하에게  조선  지도를 가져 오라고 한다

 

한참 눈이 뚫어지게  조선 지도를 보고있던  풍신 수길은 갑자기  부하를 부른다

 

"요시 , 대마도 당주 소 요시토시를 부르라"

 

소 요시토라면  대마도 도주로 조선에서는  평의지 (平義智)라고 부르는 종의지(宗義智)였다

 

조선 문제만 나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종의지였다

그의 영지가   조선과 일본의 중간에 끼 어있어서 행여 조선이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하기 때문인 데다가, 무역의 거의 모두를  조선에 의존 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종의지는  풍신 수길이  오사카로 부른 이유를  알아 보나 마나 뻔했기 때문에  오사카 성에 들어서자  마자  먼저  풍신수길에게 대들듯이  먼저  말을 걸었다

 

" 태합 전하 , 어찌 부르셨습니까?"


" 자네가  종의지인가?"
" 예 "

" 왜 태도가  그래?"


풍신 수길은  종의지의 태도에 처음 부터  시비를 걸었다

 

" 태합 전하  별 말씀을 ...저의 태도가  잘못 보이셨다면  사과 하겠습니다 "

" 요사이  조선 사정이  어떤고?"
"  소인이 듣기에는  정여립이라는 자의 반란과  세자 책봉 문제로   동인 서인 으로 나누어 어수선한 분위기 입니다 "

풍신 수길은  관백에게  쓰는 경어를 무시하고 자신을  소인이라고 호 칭하는 것이 귀에 거슬렸다 .


" 이사람  관백을 어떻게 보고  자신을 소인이라 하는가? "


소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대인이라고 불려야 마땅하지 않는가 하는 열등감에 사로 잡힌  풍신 수길.....

 자기의  젊은시절 대인이라는 작자들에게 박대 받던 생각과  결부 되면서  은근히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종의지가  눈치를 빨리채고 말을 바꾼다

 

" 하,  잘못 했습니다 . 소신이 잘못 했습니다 "

풍신수길은  그때서야  표정을 바꾸고 묻는다


"그래  조선 왕은 어떤 사람인가? "

 

" 훌륭한 사람입니다 . 조선의 선대왕들은 대부분이  독단적으로 정사를 처리 해 왔는데 이분이  왕이 된후에는 천하  선비들을  불러 들여  정사를 독단히 처리안하고  대신들과 항상  협의 하여  처리 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 소리는  듣고 있지만은  만사가  협의 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야 .... 조선의 왕이 못나서 매사 판단을  못하고  대신들에게 의존 하니까 그렇지....  왕이 똑똑하면   어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는가?"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조선에는 훌륭한 대신들이많이 있습니다 "


" 대신들? 다 소용없는 법이야 , 왕이 똑똑하던가  아니면  우리 일본 모양으로  똑똑한 관백이 있으면 몰라도"

 

" 태합 전하 . 옳은 말씀입니다.  조선의 약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 왕이 그렇게  자기들의 의견을 존중 해 주면  서로  도와 그를 보좌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깎아내리고  헐뜻고 하면서  왕을 난처하게 만듭니다 "


" 바로 그거야 이럴 때 조선을 치는 거야"


무심코 나온 소리는 분명히  아닐 진대 엄청난 소리를 하는  관백의 말에  종의지가 깜짝 놀란다

 

" 태합전하 , 조선을 친다고요?"


" 그래 , 과거 조선 땅의 일부는 원래 우리 땅이었었지  그런데  과거 신라가  그 땅을  먹어 버렸다는 말이야 "


" 태합전하  그것은 잘못된  풍설입니다 .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라는 나라는 대마도를 가리킨 이름입니다 조선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형성 되기전에  이미 가야국이라고 있었다는데  가야국은  일본 땅이 아닙니다 "


" 이사람 ,정말 말 상대가 안되는군 ,일본 땅이라고  우리 학자들이  고증을 했는데도 아니라는 거야?"

 

"전하 .일본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국(任那國)이라는 나라는  조선반도에 있던 나라가 아니고 고구려 , 신라, 백제가  들어서기전 이미 고대에  대마도에 있던  다른  지역 이름입니다

임나는  처음에는  대마도 서북쪽 섬에 세웠던 계지라는  소국(小國)이었섰는데  후에 대마도 전체를  합병 임나 라고 한것입니다."


풍신 수길은  대마도의 역사를 모른다 . 

풍시 수길은   대마도에 대한  연혁을 대마 도주인  종의지의  설명릏  통해 귀담아 듣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 종의지 , 그러면   그 임나가  대마도에 있었다면  어느나라 속국인가?"

 

"  태합전하 , 고대에는   속국 개념이 없었습니다  . 임나는  신라와 일본사이에서  무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라라는  호칭을 썼을 뿐입니다. 물론 일본 본토와 조선에서 많이들  대마도로 건너와 살았지요 "

 

" 그러면 언제 부터  일본의  속국이 되었나?"


" 신라는   임나국을  국가로 인정 하지않고   신라시대에는  단순히  속도(屬島)라고 불리웠는데  신라가  고구려와백제를 멸망 시킨후에  대마도도 제주도나  거제도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천무 (天武) 12년 신라가  당을 몰아 내기 위해  전투를 벌릴때였습니다.

 우리 일본은  신라와  탐라가  신라를 돕겠다고 신라에 제의 했었는데  신라가 거절 하는 바람에  대마도 까지  가서 대기 하고있던 우리  일본이  할수 없이 내친김에  대마도를 비롯하여  다네 , 야쿠 , 아마네등 4개섬을  우리일본에 복속 시킨것입니다 "

 

" 그러면 대마도는  원래 일본 땅이아니었구만....." 



" 태합 전하  이 종의지는  조선에 대하여 너무 잘 압니다 . 그것은 소신이  조선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는  주장입니다"

"....................."

 

풍신수길은 조선 사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종의지의 말이  일단 맞다고  생각을 바꾸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풍신 수길의 야망은 멈추지 않는다

 

" 종의지 , 영주가 되고 싶지 않은가?"


" 전하 대마도는 가등 청정께서  다이묘가 아닙니까?"

 

"내 말은 그말이 아니야  대마도 같은  군단위 보다도 더큰 영지를 가지라는 말이야"


 "어떻게말씀입니까?"

"조선의  하3도를 수중에 넣자는 얘기야  그러면 넓은 영지가  생기지 "

" 하삼도라니오"
" 충청도 , 전라도 , 경상도 .말일세"


"전하  그러면 조선왕은  어떻게하라고요?"
" 조선 왕이야  경기도를  내 주니까  상 5개도면  충분하지 ....이 사실은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조선 왕이 땅을 빼앗기고 가만 있겠습니까? "
" 그러니까 조선왕부터  잡아 들여야해"

" 어떻게 조선왕을 잡습니까?  조선에는 많은 백성들이있는데 "


"조선 왕만 잡으면  백성들은 다 굴복하게 되어 있어 "

"................"


종의지는 겁이더럭 났다

 

아무리  하삼도를 점령 한다 하지만  조선 왕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조선왕을 어떻게 체포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어떻게 할것이며  조선왕은 발이 없는가 ? 그렇게 쉽게 잡히게 ....

 

종의지는  풍신 수길에게 마지막  간청을 한다

 

" 전하  생각을 걷우십시요  세상에  내 땅을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왕이 어디있습니까? 그리고 조선 왕이  그렇게 쉽게 잡히겠습니까?""
" 조선왕을  왜 못 잡아?  "

 

"조선 왕을 잡으려면  조선 땅 전부를  손아귀에 넣지 않고는 불가능 합니다. 더구나 명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명나라가  가만히있겠습니까?""

 

" 명나라가  왜 나서?"


" 조선은  자기나라의 세자 하나를 세우는데도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나 다름 없어서 명나라의 눈치나 보는 나라입니다"  

 

" 허허 , 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 우리가  조선에 명나라를 치겠 다면서 군사를 동원하여 압박을 가하면서  우리가명나라의 간섭을  막아 독림 국가로   만들어 줄터이니  명나라 로가는 길을 터 달라면  터 줄것 아냐?"

 

"아닙니다  , 조선은  전통적으로  중국을  숭앙하고 우리 일본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버르장 머리를 고쳐 주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힘으로 밀어 부칠 방법 밖에 없지 "


" 조선은  삼천리나 됩니다  언제  그땅을 점령 하겠습니까?"


"3년이면 된다 . "


"전하  하기는  조선에는  부산 지방에 3000병력과  경상 전라도에 수군이 있으나 미미 한편이기는 합니다 ."

종의지가  조선병력 상황 설명이있자 풍신 수길도 나름대로  조선에대한  얘기를 꺼낸다

 

"조선에는  양반들이 있다지만  문관들만  떠 받들고 있지만 무관들은 개 밥에 도토리라면서?  자고로  국가의 안보를  등한시 하는 놈들의나라는 망하게돼 있어 "


" 누구 한테 들으셨나 모르지만  개밥에 도토리는 아니고 개국 이래  태평천하로 한번도 큰전쟁을 치룬 적이없어서 준비가 돼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

 

선조가 즉위 할적만 해도  선비들은 도를 논하고 수신 제가를  당연한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선비들이 분열되고난 후 부터는 저마다 서로 헐뜯고 남의허물을 캐내어 서로가서로를 공박하더니 나라애 충성하고  후했던 인심이 박해져 가고있습니다 ,

 

그렇다고  선비들만 있어서  국가 안보를  소흘히 한것이 아닌 것은 계미년 이후부터는  선비로서  장수를 삼는 유장(儒將) 제도로   유장을   선조가  채용 했기 때문에 모든 유생(儒生)들이  활을 쏠줄알고 .병법(兵法)을 담론하였기 때문에  선비들의집에는 집집마다  활과  화살 , 검이  항상  있었는데 최근 수년이래로는  활과화살은 커녕  칼도 없는  선비들만 속출하여 벼슬만 바라보고 청탁에 혈안이되어  대관들은  왕실의인척과  줄만 댈 생각만 하고 있어서  아첨과  염치를 모르는 선비가  수두룩한 편입니다 .

 

조선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어  상하가  서로 뜻이  통하지않아신하들도 동인서인으로나뉘어   서로 협조조차 어려운 지경입니다  선조가  선비들을  끌어 들인것이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선비들을 문과무를 겸비하도록 하는 등 조정에 대거 포진 시킨 것인데  이렇게 변질 될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

 

종의지의  조선 강의를 열심 히 듣고있던  풍신수길이 감동 한다

" 경은 참으로  쓸만한 인물이다 . 어찌  이렇게조선의 사정을 잘아는가?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무리 똑똑하고  총명한  임금이  나온다 해도  못된 신하놈들을  만나면 도리가 없군....쯧쯧 . 경의조선 강의를 듣고 보니   그유장이라는 제도는 문과무를  모두 갖추는   참 좋은 제도인데  그것을 못 살리다니 ....."

 

풍신 수길이  조선 의 사정이 자기의 일인양   혀를 챈다 .

" 종의지 "


" 예 "
풍신 수길이  결심 한듯  결론 짓는다

 

"  지금 우리는  30만 군대가있고 배만 해도 1000척이나  되는데  이것들을 먹여 살리고  유지하려면  조선이 필요 해 ...... 조만간  조선으로 출동한다 .그리 알라"

"..............."


 

임진년 3월 14일부터 동원하기 시작한 28만명의 병력은  속속 대마도로 집결 하기 시작했다  

 

한달 만인 4월 12일  소서행장, 종의지 , 평조신 ,등이 선봉장이 되어 병선 4만척이  새까맣게 부산 앞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4월 14일  그날은  부산 앞바다가 자욱히 안개가 끼어있었다

그 자욱한 안개속에 왜병들이 부산진에 나타 난것이다

안개와 어둠속에서  왜병들은 부산진성 주변에 파놓은  구덩이에 나무 뿌리, 돌등닥치는대로  집어 놓고 메꾸더니 사다리를 몰래  성멱  밑으로  옮기도 있었다

 

이때 까지도 조선 병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부산 첨사  정발이 바로 전날  사냥을 나갔다 돌아 오고있었는데  왜군이  안개속에 부산진 앞바다에 나타 난줄도   새까맣게 떠있는  배들을 보고  깜짝놀랐다

 

" 저게 무슨 배가 저리도 많단 말이냐 ? "
하고 군관에게 묻자  군관은 안개속인지라  잘 못본듯이

" 삿도 고깃배이겠지요"

한다

 

" 아니 저게  고깃배라는 말이냐?"
" 이상합니다 , 왜놈들 배 갔습니다 "
" 빨리 가보자"


일행이  부산진성에  도착 했을 때는 부산진성은 이미 포위를 당하고 있었고  정발은 성벽을 기어 오르고 있었다 

 왜군에게  활로 대항 하라고 명령한다

3천병력이나 되는 조선 병력을 가고 있어도  여기저기  분산 배치 되어  부산진성을 철통 같이 지킨다고  위용을  자랑하던  정발군도  10만명이나 되는  왜군 1진 병력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활만 가지고 싸우는  조선군은 조총이라는 일본본군의 신무기를 감당 할수 없었다

 

조선군이 쏘는  화살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조총탄을  맞으면 그자리에서 즉사 한다

 

하루낮 하루밤을   정발은  군사들을 지휘하여 싸웠다 .

 왜군의  전방군이  쓰러지는가 했더니  어느덧 후속부대가  벌떼 같이 몰려 왔다

 

부산진성은  이제 왜군으로  겹겹히 싸고 있어서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됐다

 

하루밤을 더 견딘 아침이 되자 조선의 군사들의 화살마저 떨어졌다 .

 

부산진서  한모퉁이가 무너지는가 했더니 적병들이 까맣게 몰려 들기 시작했다

 

부산 첨사  정발은  할수 없이 남은  화살 하나로  적장 하나라도 쓸어 뜨리겠다면서  시위를 당기다 적병이 쏜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장렬한 죽음이었다

 

전장에서 주장이 죽으면 그 군대는  사기를 잃게 마련이다 

부산성은 이렇게 힘없이 무너졌다

 

 임진년  4월 14일

부산성안으로 들어 온 왜병들은  군인 민간이 할것 없이 사정 없이 닥치는 대로 칼로 쳐 죽이고 창으로 찔러 죽였다

 

드디어  부산성은 일본군의  군기로  가득 메우게 됐다

 

부산을 점령한  왜군들은  잠시 쉴틈도 없이 동래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동래 부사  송상헌은  최후 까지 항전을 하다가 순절한다

 

부산과 동래의 병력을  거의 모두 배치하고 있던 조선의 군대가 완패된것은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잠간,

임진 왜란을  이르킨  도요도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누군가 일아보자 

 우리나라에서는  풍신 수길이라고  불러야 잘 알아 들을수 있다

 

풍신수길, 과연 어떤 인물인가?

잠간 알아 보자

 

 

풍신 수길은  농민 출신이라고 알려진 아버지 목하와 나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그의 친아버지 아버지 목하가  전쟁에나가 전사 했다 ,

 

미망인이된 어머니 나카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였지만, 양아버지와 수길 관계는 험악하여 언제나 양 아버지로 부터 학대를 받았으므로 수길은 8세때  집을 뛰쳐 나와  길에서  사무라이를 보고 무사가 되기로 결심 한다  

 

길거리레서 방황하던 어느날 광명사라는 절 중이 아이를 보고 절로 데려가  중을 만들려 했지만 곧 뛰쳐나왔다,

그는 다시  삼촌에게 찾아가 죽은 아버지의 유산 일부를  내 놓으라고  항의하여  돈을 좀 마련하여 방랑 하는  신세가 됐다

 

1554년 무렵  직전 신장(職田 信長-오다  노부나가 ) 집에서 하인으로서 일 하게된다 . 

 

그는 주인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잔일을 도맡으면서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선조실록에는  풍신 수길에대한  일화를  이렇게 소개 하고있다

 

그가  직전 신장(職田 信長-오다 노부나가) 집안에 에게 고용되기 전에 일이었다 

직전신장이 행차하는 길 앞에서   한 소년이   옷을 벗고 드러누워 있었다는 것이었다 

 

직전신장의 부하들이 길을 비키라 했는데도  당돌한 수길은  들은 척도 않고 들어 누어있었다 

직전 신장의 부하들은  수길을  괫씸한놈이라고 죽이려고 했다 

이때 이 것을  내려다 보고 있던 직전신장이  제지하고 나서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길이 "도저히 제가 가난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직잔신장은  어린 아이가  달돌한지라   시험을 하기 위해 그에게 변소직이  일을 시켰더니, 그가 청소한 변소에서 냄새는커녕 티 하나도 나지 않게 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직전 신장은   하나 더 시험 해보려고   자신의 신발을 만들도록 시켰더니 정성을 다해 신발을 만들어 바쳤는데  직전신장은   감동하여 그때 부터 하인으로 썼다는 것이다 

 

어쨋든 그는 그때부터 직전신장의 총애를 받아 점점  승진하여  호위 무사로  출세길이  확 열렸다

   

1582년  6월1일  직전 신장이  자주 방문 했던 본능사에서  직전 신장이  역신 명지 광수(明智光秀)라는 부하에 의해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직전 신장의 본가인  경도 저택에서 이 소식을  들은   수길은  직전신장의  대군을 몰아   산기라는 곳의 전투에서 역신 명지수광(明智光秀)를 잡아죽이고 대승을 걷운다

 

 

본능사 사건은  직전 신장(오다노부나가-職田 信長)이  경도 북쪽에 있는 에 있는  본능사라는 절에 묵고 있 었는데 그날 밤 역신(逆臣)명지광수(光秀)가 본능사를 습격하여  신장(信長)을 살해 시킨 사건이었다 .

 

명지광수를 진압한 공으로 그는 1586년 조정으로부터  관백(関白),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임명 되었다.

그 후, 대판성(大坂城-오사카성)을 쌓았으며  천민 출신의  수길이 조정으로부터 풍신豊臣-도요토미)이라는 성(性)까지  하사 받는다

 

 1587년 수길은  이때부터 스스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일본 서쪽 구주를 공략한다.

이렇게 하여 서일본 전역은 수길의 세력하에 놓이게 된다.

 

1590년 수길은  육군, 수군을 합친 총 병력 21만의 대군을 이끌고 관동으로 출병, 호조 가문의 거성인 소전원 성(小田原城)을 포위했다.

 

그리고 최후의 적 고호조 가문을 굴복시켜 일본을 통일하여 수길은  오랫동안 계속된 전국시대를 마감시겼다.

 

 

정권은 잡았으나  풍신수길은 출신이 천민 출신이지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신이 없고 막부를 세워 장군의 권위로 통치하는 것도 불가능 하자 풍신 수길정권의 불투명한 나머지 한치의땅이라도확보 영지하사를 통한 정권안정을 확보 하기 위해  말로는  명나라를  치기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남쪽 땅을  차지 하여 새로운 영지들을 무사들에게 하사함으로써 정통성이부족한 까닭에 늘 불안했던 가신관계를 굳건히 만들고자 했던것이다

 

그러한  풍신 수길의 본심이들어난것은 훗날 정유 재란때  명나라가  일본과전쟁을  끝내기위해  심유경을 일본에 파견했을 때  풍신 수길이 제일먼저 들고나온것이 조선 8도 중에 남부의 4개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으로 증면되고도 남았다

 

 

풍신 수길의 이러한  교활한  계획을 간파한 장군 덕천가강(德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은

 

조선침략을 반대하는 종의지(宗義智-소 요시토시), 소서행장(小西行長-고니시 유키나가), 이달정종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도진의홍(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등과 같이 반대를 했으나  풍신수길은 이들의반대를 출진을 강행했다.

 

 풍신수길은  자기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장군들을 전장에 몰아넣기위해 교묘한 수법을썼다 

즉  소서행장은  로마 가톨릭, 가등청정은  불교를 믿고있는 것을  알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소서행장은  온건파, 가등청정은  급진파로   앙숙이라는 사실까지  간파했기 때문에  그 둘을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

 

 물론  풍신수길의 교활한 수법은  두 장수가 서로 경쟁하게 하여 최대한 빨리 조선을 점령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풍신 수길은  전투 부대의 병종을 기병과 보병 두 가지로 대별 하였고 사무라이 대장(侍大將)의 지휘 하에 기병, 총병, 궁병, 창검병 등의 단위대를 편성한 후에 각조 지휘관으로서 기사와 보사를 두었다.

 

이렇게 증강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여 1586년 무렵에 대규모 건조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조선 침공 직전에 전함 천여 척을 이미 확보 임진란 동안  3천여 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을 보유할 수가 있었다

 

 또 풍신수길은 해전보다  육전에  조선군을  효과적으로 공격해서  조선왕을 먼저 생포 하여야  성공할수 있다면서 조선을 침공하기 직전인 1591년에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서 육전 병력 33만을 동원할 준비가 완료 된것이다

 

 

 

이 무렵 일본군은 대포, 창, 궁시, 일본도를 충비하고 있었으며, 장수와  병사간에  간단결력이 막강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실전 경험이 풍부하므로 전쟁에서 탁월한 전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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