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라이터'를 만나다]
[3] 쉽게 쓰는 역사와 철학… 독자와 소통하다
인문교양서 저술가 남경태씨
15권 저술… 105권 번역 15년간 왕성한 활동
"쉽게 쓰는 것 만큼 어려운 게 없지요"
15년 동안 저술한 책이 15권, 번역한 책은 105권. 가장 많이 팔린 저서가 8만권, 가장 많이 팔린 번역서는 3만부. 최근 5년의 평균 연 수입 8000만원.
역사와 철학 등 인문교양서 분야에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펴고 있는 남경태(48)씨의 이력이다. 첫 저서 《상식 밖의 한국사》(1994)에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역사》(2008)까지, 첫 번역서 《레닌의 제국주의》(1988)부터 《인간이 로봇이 될 수 있을까》(2009)까지 수많은 책이 하루 24시간을 자신의 의지 아래
관리하는 프리랜서 저자 남씨의 작품이다.
이 가운데 동양사·서양사·한국사로 나눠 집필한 《종횡무진~》 시리즈(1998~2001)와 《개념어 사전》(2006)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저 스스로 '지식 보급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상아탑에 몸 담고 있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용어와 논리로 무장한 글은 제 관심 밖입니다. 일기를 제외한 모든 글은 '소통'이 생명이기에, 저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행복한 만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학사(서울대 사회학과) 학력이 전부인 남씨는 오히려 '전문성'이 없기에 이 모든 저술 작업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역사서를 번역하다 보면 이름을 대면 알만한 학자들이 중국의 연(燕)과 당(唐)을 구분 못할 정도로 무지한 사실에 놀라게 되지요.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파편화된 공부만 하다 보니 통사(通史)에 약한 거지요."
대학 졸업 후 남씨는 사회과학 출판사에 4년여 근무했다. 처음 번역한 《레닌의 제국주의》는 뜻밖에도 1만5000부나 팔렸다. 1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지만 본인이 골라서 출판사에 들고 간 책은 《사람의 역사》(아서 니호프 지음·전2권)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생계를 위한 '주문 번역'이었다.
"번역을 하면서 특정 분야의 저작들을 꼼꼼히 읽다 보니 저 자신이 직접 관련된 책을 쓰고 싶어지더군요. 책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지요. 번역가에 대한 처우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높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요인이었고요."
투여한 노동시간에 비례해 바로바로 산물이 나오는 번역과 달리 저술은 상당한 준비 기간과 자료수집을 요구한다. "교양서를 쓰기 위해 교양서를 참고하지는 않습니다.
주로 대학교재를 택하지요. 주제를 정하면 먼저 관련서적 중 가장 '똘똘한 놈' 한두 권을 3회 정도 정독합니다. 전 학자가 아니니까 제 나름대로 읽고, 자유롭게 씁니다. 학문적 비판을 받을 걱정이 없기에 지적 상상력을 동원해 되도록 생동감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관심이 많은 역사는 동양사나 서양사처럼 범주가 큰 주제를, 철학은 현대철학을 중심으로 주제를 잡는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제일 취약한 부분"이라 여긴 까닭도 있다. 《현대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그런 경우다.
유난히 힘든 분야도 있었다. 서양사 통사를 쓸 때 중세가 제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관련서 10여권을 색색의 종이를 붙여가며 읽어냈더니 그 책 가운데 중세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됐다는 것이다.
"세계적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왜 교양서를 쓰고 있나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왜 일반인을 위한 《시간의 역사》를 썼을까요.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본 분은 알겠지만, 쉽게 쓰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매해 한 권씩 책을 내고자 하는 남씨의 소망은 고전의 재해석이다. "가령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21세기 현재를 사는 푸코의 입장에 서서, 즉 주어를 '나'로 해서 다시 쓰는 거지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정말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신용관 기자 q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