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납북 피해자법' 7년 만에 통과 이끈 이미일씨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중략)… 한 많은 미아리고개."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하 가족회)의 이미일(61) 이사장은 옛노래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를 부르며 아버지 잃은 슬픔을 달래곤 했다. 서울 청량리에서 유기공장을 하던 아버지 이성환씨는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9월 북한군에 납북됐다. 당시 30세였다.
딸은 지난 2일 기쁜 소식을 들었다. '6·25 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 이사장은 2000년 가족회를 설립, 2003년부터 6·25 때 납북된 사람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는 법 제정을 위해 진력해왔다. 납북자들의 사연과 관련자료를 모아 총 2000쪽에 이르는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을 내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힘써왔다. 1952년의 우리 정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 납치된 한국 민간인은 8만2959명이나 된다.
이 이사장은 "16대 국회 때인 2003년부터 법 제정을 추진했는데 17대 국회까지 두 번이나 회기를 넘겨 법안이 자동 폐기됐었다"며 "7년 노력 끝에 겨우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그는 "청량리에 있는 가족회 사무실도 과거 아버지의 유기공장 바로 그 자리"라며 "가족회 활동을 시작한 2000년에 북에 계실 아버지 연세가 80세였는데, 이후 벌써 10년이 지났다"고 아쉬움 섞인 한숨을 쉬었다.
이번 법안의 골자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6·25 전쟁 납북피해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를 두고, 희생자 추모 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납북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개별 보상은 제외된 대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납북자 가족으로 구성된 단체 등에 대한 예산 지원도 가능해졌다.
이 이사장은 "명예회복과 보상은 진상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한데 그간 정부는 '법이 없어서 실태조사도 못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