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사자가 됩시다”… 스피드·효율·소통·경쟁 문화로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지난해 베트남 냉연공장에서 생산한 첫 냉연제품에 기념문구를 적고 있다. 포스코는 의사결정 과정을 대폭 줄이고, CEO가 직접해외시장을 발로 뛰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등 조직 내에 ‘스피드 DNA’를 심고 있다. [포스코 제공] | |
정준양호의 색채는 이 말에 잘 녹아들어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정 회장은 포스코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키워드는 ‘스피드’였다. 사내 의사결정은 물론 고객 응대 등 모든 면에서 속도를 낼 것을 독려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넘치는 국내 철강시장의 특성상 그동안 편하게 먹이를 먹던 공룡에게 ‘살 빼고 뛰라’고 주문한 것이다.
정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경영관리 주기를 분기에서 월 단위로 단축한 것이나, 모든 보고서를 1쪽으로 줄이고 모든 간부와 영업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해 대면결재를 온라인 결재로 바꿔나간 게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어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무리다는 말은 하지 말라. 일단 시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포스코의 현금성 자산이 6조원이 넘는 등 재무구조가 탄탄해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그동안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포스코에 스피드와 효율·소통·경쟁의 DNA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한 마케팅에서 잘 드러난다. 정 회장은 틈날 때마다 “포스코 마케팅팀은 지금까지 항상 모자라는 제품을 배분한 것이지 고객 만족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는 고객과 회사의 이익이 상충할 때 회사의 이익을 버리고 고객의 신뢰를 얻으라”고 말한다. 포스코가 마케팅과 제철소 조직을 통합해 탄소강 사업부문을 신설한 것도 마케팅과 생산 간의 유기적 협업을 통해 보다 빠르게 고객의 소리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다.
포스코는 금융위기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2007년 3032억원이던 R&D 투자비는 2008년 4427억원, 2009년 4543억원으로 계속 늘었다. 올해는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감한 투자는 싼 원재료로 고품질의 철강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으로, 그리고 이 기술력은 다시 원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포스코는 2006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올해도 1조1500억원의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자세, 무사안일의 공기업 생리에 머물렀다면 이런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포스코의 개혁은 아직 미완성이다. 외국인 주주 지분이 48.77%인 글로벌 민간기업이지만 공기업 성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오너가 없다 보니 몇 년마다 바뀌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외풍에 약하고, 과감한 결단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포스코 김동만 상무는 “조직 내에 신뢰의 문화를 확산하고, 스피드 DNA를 접목하면 포스코가 추구하는 3.0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