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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리더와의 차 한잔 노스페이스 생산하는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때론 한 사람의 헌신이 명품을 만든다”
서울 중구 만리동의 영원무역 사옥 7층. 회장실 옆엔 작은 ‘보물창고’가 있다. 방문을 열자 ‘클래식 카메라’ 750여 대가 행진을 펼쳤다. 수십 년 세월의 켜가 쌓인 라이카·콘탁스·니콘…. 두 벽면의 진열장과 방 가운데 탁자를 빼곡히 채웠다. ‘취미실(Hobby room)’로도 불리는 공간의 임자는 성기학(63) 회장. ‘노스페이스’를 비롯한 아웃도어 브랜드로 시장을 꽉 잡은 주인공이다. 그에게 카메라 수집은 그냥 호사(豪奢)가 아니었다. 경영의 영감을 얻고, 때론 인생을 반추하는 동반자. 그런 존재였다.



 


지난 25일 이뤄진 인터뷰는 뜻밖의 방향으로 틀어졌다. “아웃도어 시장에서 남다른 성적을 내는 비결이 뭐냐”고 물을 때였다. 돌연 성기학 회장의 시선이 셔터를 누르던 사진기자를 향했다. “그거 70하고 200에 f/4 아닌가요.” 초점거리와 조리개 값을 물은 것이었다. 잠시 머뭇대던 사진기자가 답했다. “예…. 정확합니다.” 질문하던 취재기자는 머쓱해졌다. 이윽고 성 회장이 제안했다. “옆 방 가서 제 카메라 보여 드릴까요.” 750대의 카메라 화두는 그렇게 나왔다. 준비차 미리 읽은 기존 인터뷰 기사에도, 회사에서 받은 자료에도 없던 스토리였다.


 


 


●수집 규모를 보니 시간이 꽤 걸렸겠습니다.


 


“처음 카메라를 산 게 1963년이었죠. 고등학생 때였어요. 부모님 일을 돕고 받은 돈으로 독일제 콘탁스를 샀어요. 그런데 파인더가 어두워 66년에 니콘F로 바꿨어요. 독일제라고 돈도 더 안 받고 바꿔주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대학 2학년(서울대 무역학과) 축제 때 잃어버린 겁니다. 돈도 없고, 싼 카메라를 하나 샀죠. 그때부터 수집을 시작했어요. 관심을 쏟으니 모으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아마 제가 충무로 카메라 가게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일 겁니다.”


※ “요런 거 정말 예쁘잖아요?” 인터뷰 중에도 성 회장은 ‘ALPA’며 ‘DeJUR’ 상표가 새겨진 카메라를 보며 감탄했다. 즐기며 산다는 것. 덕분에 그는 “스트레스도 줄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공인도 받았다. “스트레스 측정을 했는데 수치가 100점을 기준으로 20~30점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집의 카메라까지 더하면 2000대가 넘는다고 직원이 귀띔했다. 옆의 사진기자도 놀란다. 박물관급이다.


 



 


●혼자 보기 아까울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되팔 생각도 없고, 나중에 ‘갤러리’ 같은 걸 만들어 볼까 합니다. 그냥 전시만 해놓는 박물관은 아니고요. 직접 만져보고 셔터도 눌러보고 이런 체험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경남 창녕에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고택이 있는데 거길 갤러리로 활용하고 싶기도 하고요.”


 


●밖에 나가 사진도 많이 찍습니까.


 


“제가 상과대학 산악반 시절엔 별명이 ‘사진사’였어요. 등반 가면 제가 다 찍어줬죠. 지금은 아니에요. 전문가들이 많은데 저까지 사진 찍는다고 나서면….”


 


●그렇게 애착이 많으니 카메라 역사도 훤할 것 같습니다.


 


“사실 배우는 게 많습니다. 예컨대 콘탁스는 첨단 과학자들이 여럿 모여서 만든 거죠. 그런데 라이카를 보세요. 오스카 바르낙이라는 비교적 무명의 장인이 탄생시켰어요. 그 혁명적 카메라를요. 엠퍼러(황제)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는다고 ‘명품’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때론 한 사람의 ‘헌신’이 그걸 가능케 하는 거죠. 카메라를 모으면서 제품의 흥망성쇠나 생명주기 같은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아웃도어 옷에도 접목해 보곤 하죠.”


 


●실제로 영원무역 제품과 노스페이스가 명품으로 불리고, 1등을 달리는데요.


 


“1등을 어떤 각도로 정의하느냐, 이럴 필요가 있긴 합니다. 다만 우리가 쓰는 자재는 최상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죠. 재봉 ‘실’ 조차 가장 좋은 것들로 씁니다. 특히 다운재킷이 평가를 많이 받는데, 일반 소비자들이 검증하기 어려운 속재료를 양심적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전문업체가 뭘 넣든 일반인들이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요즘 아웃도어 붐이 한창이라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합니다.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브랜드가 좋은 제품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오래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서로 잡아먹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다른 영토까지 가서 ‘시장의 외연’이 커지죠. 아웃도어 경쟁이 치열할수록 피해가 커지는 건 캐주얼 웨어, 골프 웨어고 신사복 업계도 그럴 수 있어요.”


 


※ 그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보면 비즈니스는 예단할 수 없어 요.” 캐논이 니콘을 누른 게 그렇다고 했다. 캐논은 렌즈와 자동초점 등에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성 회장은 “일본 골드윈과 합작해 97년 미국 브랜드인 노스페이스를 들여올 때도 아웃도어 시장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했다. 현재 영원은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노스페이스 제품의 40%를 생산한다.


 


●상과대를 나왔는데 그런 패션업의 감(感)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원래 등산을 즐겼죠. 고교 때부터 소요산이나 북한산에 많이 갔어요. 대학교 땐 설악산·지리산을 다녔고요. 남대문 시장에서 군수품을 사서 등반했어요. 아이젠 같은 건 대장간에서 만들어 썼죠. 아마 67년으로 기억해요. 설악산 겨울 등반을 했는데 참 추웠죠. 우린 잔뜩 옷을 껴입었어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요. 그런데 ‘양폭산장’에서 일본인 등반객과 조우했어요. 모두 프랑스제 다운재킷을 입었더라고요. 옷을 벗으니 안엔 홑겹 내의 하나만 있고요. 등반 속도도 2~3배 빨랐어요. 그때 단단히 감명을 받았죠. 창업을 한 뒤 우리 회사가 76년에 처음으로 다운재킷 중 고급 상품을 시장에 내놓았어요. 그때까진 유사 다운재킷이 주로 많았죠.”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처음엔 서울통상이라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당시 삼성물산보다 더 큰 업체였죠. 그때 수출품이라곤 1위가 동명목재의 합판, 2위가 서울통상의 가발 이런 정도였어요. 그때 서울통상이 스웨터로 사업구조 균형을 잡으려 했는데 세일즈를 담당했죠. 말이 판매지, 당시엔 현장의 생산 감독부터 납품·마케팅까지 다 맡아야 했습니다. 그때 일을 많이 배우고, 경영감각을 키웠고요. 그런데 마침 알고 지내던 유럽의 바이어가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온 겁니다. 일을 돕다가 제 친구까지 끌어들여 의기투합해 영원무역을 만들었죠.”


 


※ 성 회장은 회사 이름을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 ‘더 영 원스(The Young Ones)’에서 따왔다고 했다. 영원(永遠)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길 영(永)에, 으뜸 원(元)을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원하다는 단어는 너무 평범해서요.”


 


●처음부터 순항을 했습니까.


 


“창업자 세 명이 어느 정도 금액을 투자한 데다 업(業)에 대한 경험도 많아 어렵진 않았어요. 그런데 후발업체이다 보니 아직 실적이 없어 수출 물량에 제한을 받았어요. 결국 해외 진출로 눈을 돌렸죠. 방글라데시·자메이카(이후 엘살바도르로 이전)·중국·베트남에서 차례차례 공장을 세웠어요. 섬유업체론 ‘파이어니어(개척자)’ 다운 일이었죠.”


 


●섬유업을 다들 사양산업이라고 합니다.


 


“그게 사양 업종일 수가 없어요. 특정한 섬유기업이 사양 업체일 수는 있겠죠. 그러나 패션·섬유업은 가장 선진국형 사업의 하나예요. 이탈리아를 보면 알 수 있잖습니까. 80년대 후반에 관료들이 섬유를 너무 쉽게 사양이라고 규정해 한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줬어요. 군대 차트병이 섣불리 도식화하듯 말하면 업종에 정말 폐해를 많이 끼칩니다. 전체적인 비즈니스의 얼개도 알고, 세계적 추세도 꿰고 그래야죠.”


 


●도전적으로 사업을 해왔는데 저력이 뭡니까.


 


“기업이란 게 이모저모 따져보고 계산은 해야 되지만, 무조건 안 된다고 겁낼 필요는 없어요. 준비되고 ‘계산된 리스크(Calculated risk)’라면 항상 떠안아야 하죠. 노스페이스 도입이 그랬어요. 다른 브랜드들은 거의 사업을 접을 때였죠. 저는 아웃도어 상품이 거의 죽을 때 새로운 걸 가져와서 시장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그걸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그의 ‘인생 뷰파인더’는 헐벗은 곳을 향해 있었다


 



 


# 고교 1학년 가을이었다. 성기학 회장은 경기도 동두천의 산으로 캠핑을 갔다. 옆엔 미군 부대가 있었다. 밤 9시쯤. 초병 몇 명이 왔다. “여기선 캠핑이 안 됩니다.” 짧은 영어로 사정을 설명했다. 무척 추웠다. 갈 곳도 없었다. 결국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뜻밖의 초대까지 받았다. “아침을 먹으러 오라”. 다음 날 아침 따뜻한 스크램블드 에그와 베이컨을 처음 맛봤다.


 


# 1876년 병자년 흉년 때였다. 창녕에 살던 성 회장의 고조부는 땅을 팔아 굶주리던 인근 지역 사람들의 구휼(救恤)에 나섰다. 서울에서 살던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 때문에 창녕으로 내려간 뒤 농민들에게 ‘양파 같은 환금 작물을 키우라’며 밤늦게 설득하고 다녔다. 원래 출판사를 했던 부친은 1963년엔 경화회라는 농민단체를 결성했다. 지금까지 농민자조 운동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성 회장은 월드비전·적십자사 같은 단체와 손잡고 1년에 30만~40만 장씩 방한의류를 만들어 제3세계의 빈곤 아동들에게 보낸다. 산악인 지원도 왕성하다. 히말라야 14좌를 최단기간에 완등한 박영석 대장의 든든한 후원자다.


‘추위+타인+고생→베풂’. 성 회장의 ‘인생 뷰파인더’엔 이런 기록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뭐든지 관심을 갖고 하다 보면 버릇이 된다”고 했다. 카메라 수집처럼 말이다. “추운 데 있는 아이들이 옷이 없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잖아요.” 특히 성 회장은 ‘짬’의 기부학을 얘기했다. “마침 아웃도어 업체들이 동절복에 주력하다 보니 하절기 생산 때엔 바쁘지 않아요. 4개국 공장에서 6만 명 직원들의 짬 나는 시간과 남은 원단으로 기부 옷을 만들어요. 인력이며 재료 모두 짬을 활용하는 거죠.” 그는 “그렇게 기부하니 직원 모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산악인 지원도 박영석 대장을 비롯해 97년부터 100번 넘게 해외 원정을 후원해왔다. 국내에선 지난해 1000명의 고교생에게 6억2300만원의 장학금도 지원했다. 아웃도어 방한복 과 좀 더 따뜻한 세상, 잘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2010.08.28 00:23 입력 / 2010.08.28 00: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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