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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교수.jpg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을  들렸다
눈에 뜨이는 책을 발견하고 서가에서  뺀 책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은사였던 김성배 선생님이 쓴  "민속의 뒤안길"이라는 책이었다 .
" 아니 언제 선생님이 이런 책을 쓰셨어"

반가운 마음에   그 좁은 헌책방에서  페이지를뒤적이다가 65쪽에  김성배 선생님의  회고 기록이  눈에  뜨였다.
그렇지않아도   학교에서 자주 뵈웠을 때 그분의지나온  회고담을  듣고 싶었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분의  첫 머리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결혼 한것은  정확히 따저서  1939년 1월   14일.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45년전   내나이  24세때였다
한국의 풍습과 모든것이 보수적인 충청도 지방의 관례로 보아  늦계 결혼한 편이다 .대개 그당시만 해도 남자는 빠르게 15.6세  여자는 14.5세 늦어도 남자 20세 .여자는 18세 면 결혼 할때 였다 .

우리 부모님은 50을 넘은 분들이라  더욱 걱정이 심했다
며느리. 손자 못보고 죽겠다, 늙은 총각 못 면한다는등 여간 보채는 것이아니었다
21세 되던해 나는  충청도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선생을 하면서도 장래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1939년 1월 14일 나는  나의 집사람과  공주 처가 댁 넓은 마당에서 구식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그 전날  눈이많이 내려서 온천지가  은세계로 변해 있었고 나는   첫날빔을 처가에서 보내고 다음 날 며칠전 맞추어  예약했던  택시를 타고  나의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바로 온양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신정관 호텔에 투숙했다
나는  혼례식을 전후하여 약 2주간 신혼생활을 한셈이다

결혼후 처가댁도 일차들려 인사하고 집에 들렸다가 나혼자만  근무 하는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나는 결혼후 서로 입씨름 한변도 안하고 43년간을 원앙새처럼살았다 .

나는  지금 까지 초중고등학교 교원 8년 대학교수 37년 합해서  45년간  교육계학계 몸을 두었다 한때 아내도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낳자  그만 두었지만 청빈한 학자의집으로 집으로 시집와서 고생도 많이했다 .

부부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몇가지덕목을  나름대로적어본다
즉   진실해라 ,진(眞), 착하여라,선(善), 아름다게살아라 미(美)를  강조하고싶다

그리고 부부생홀 하는데에는 

지혜로워라 지(智) , 정이있어야 한다 정(精),  뜻을 맞추어라 (意)
를 강조하고 싶다
요사이부부들 얘기를 들어보면 걸핏하면 이혼 한다고  야단들인데  일단 부부가 된 이상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투거나  헤어저서는 안된다
이것은 만고의진리다

이혼을  않으려면  서로 잘못을 따지지 말고 관용 (寬容) 해야 하고  양보(讓步)와   인내 (忍耐)
그리고  동정(同情). 사랑 으로 상대방을 서로 감싸 줄때 그 가정과 부부는 늘 행복해질수 있다
나는 약한 여지니까 아내니까 나는 사내대장부이니까 라면서 자기에게만 일방적으로  위의몇가지를 상대에게 강요 하면  안된다

지금 세상에 악한 여자가 어디있고  무지막지한 남자가 어디있는가?.
나는  나의가정에 대해서 만은  자부심을 갖고있다
그래서  나는  이세상에서  결혼을 잘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 하며  살고있다

이글은  그분이 쓴글을  요약한 글이다 
.
선생은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서울 사대부속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서  동국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문학박사에다 동국대 교수겸 사범 대학장을   하셨다
그외   교육문제 연구 소장, 한국 국어 교육학회장 ,노산문학 회장, 한글 학회이사 .외솔회 부회장, 국어 국문학회 대표이사, 문교부 국어심의위원을  역임 했다.

주요저서로는  신국어 교육론, 국어 교육의 연구, 현대 실용 문법, 한국어의  금기어 ,길조어, 한국 수수께끼 사전, 한국의 민속등 논문이  많다


아깝게도 선생은  1985년  1월 16일 작고 했다

1917년 부여에서  출생 하시어 짧고  굵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향년 68세



이글을 쓰는 필자와의 인연은  성봉 김성배  생님이  서울사대 부속 중학교  교사로 계셨을 때 내 은사로 모시고 있었을 때 였다

 


필자의 머리속에 아직도생생한것은  선생님의   엄한선생님이라기 보다 그인자했던 모습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사대 부중고시절 문예반을  이끄시었는데 선농단이라는  교지와   학교 신문을  직접  말간하여 지도하시던 선생이었기에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쓴 연대를  살펴 보니 1995년 6월 6일자 종로구 와룡동 소재 집문당에서  출간한 책으로  1판1쇄 인것을 보면  그리 회자 되던 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쨋든 나에게는  이책을 귀중이 보관하고있다
선생님이 그리울때면  책 이면 표지의 있는 김성배선생님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다음은 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김성배 선생님에 대한  회고 담이다

 

성봉 김성배 박사께서 '85년 1월 16일 새벽에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선생께서는 평생을 학문에 몸담고 계시며 국어학계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을 뿐 아니라, 본 국어연구소가 생긴 이래로 연구소의 운영 위원으로 계시면서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애써 오시던 중 할 일을 많이 남겨 놓고 돌아가심에 깊은 애도의 뜻을 올린다.


    금년 1월 15일 오후 3시부터 새벽 6시까지, 서대문 적십자병원 응급실에서 다섯 사람의 의사가 밤새워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였으나, 아무런 보람도 없이 숨을 몰아 쉬시는 성봉 선생님에게서 끝내는 산소 마스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치의사를 대동하여 집으로 모셨으나, 6시 50분 마지막 큰 숨소리를 남기시고 영면하시니, 1917년 음력 7월 27일 충남 부여에서 나시어 향년이 68세였다. 아직도 너무나 정정하셨고, 그 높으신 학덕으로 아직도 하실 일이 너무 많으셨기 때문에 친지 동료 제자들은 빈소에 모여 한없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당뇨의 지병이 있기는 하셨으나, 한결같이 철저한 식이요법으로 노당익장의 건강을 유지하시어, 누구도 성봉 선생님이 이렇게 졸지에 떠나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신 병명은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식도 정맥 파열'인데, 당뇨병으로 지혈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년 설에는 내환으로 인하여 해마다 드리던 세배를 궐하여 송구스러워하던 중, 1월 3일 사모님과 함께 오히려 제자의 집을 찾아 주심에 더욱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날의 찾아 주심이 마지막 길이 되실 줄이야!

 

지금도 그 때 누워 있는 내자를 가리키며 "무엇보다도 아내를 사랑해야 하네."하시던 온화한 말씀이 귀에 쟁쟁한데, 유명을 달리하셨음은 참으로 믿을 수 없다.


    성봉 선생님은 남달리 제자를 사랑하셨다. 결코 의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타고나신 온화함과 다정다감으로 어버이 같은 사랑을 베푸셨다.

 

제자를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랑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졸업 후의 취직 알선까지도 희생적으로 돌보셨으며, 쌍을 맺어주는 중매일까지도 애쓰셨으며, 결혼 주례는 천 쌍이 넘었다고 자랑하셨다.

 

주례를 하시면서도 반드시 손수 예물을 마련하여 가지고 가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일생 교육에서 무엇보다도 후진 양성에 힘쓰셨으니, 크게 나누면, 광복 전 부여 일대에서의 국민학교 교사 시절과 광복 후에는 국어교사 시절, 서울문리사범대학에서 국어과 교수 시절, 동국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과 교수 시절 등으로 이어진다.

 

선생님의 최대 즐거움은 집에 들면 슬하에 5남 2녀의 기라성같은 자녀들이 끌밋하고, 밖에 나가면 국내외에 초등학교로부터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옛날 공자의 제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제자들을 가진 것이라고 자랑하셨다.

 

교육계에 있으면서 아무리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스승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제지간이 허다하지만, 성봉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누구나 졸업 후에도 잊지 않고 찾음은 무엇보다도 그 고매한 인품과 온돌같이 따사로운 인간미에 저절로 우러나는 숭배심에서 였다.


    성봉 선생님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근면성을 선천적으로 지니셨다.

대학 강의, 국어 순화, 방송 출연, 원고 집필, 각종 회의 참석, 주례 등 거의 한가로운 틈이 없으신 데도, 제자의 편지 한 장, 연하장 한 장도 그저 받고 마는 일이 없으셨다.

 

또한 형식적인 회답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가 보낸 글월보다도 더 소상하고 정성스러운 답장에 제자들로 하여금 황송스러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또한 집에 돌아오시면, 150여 평의 정원에 온갖 과목과 화초를 심어, 전문 정원사 이상으로 손질하시고 가꾸셨다.

또한 제자들이 오면, 이렇게 정성 들여 가꾼 화초를 손수 캐어 나누어 주시면서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흐뭇해 하셨다.


    바쁘신 중에도 그 많은 회원들에게 보내는 통지서에도 그 독특한 필체로 직접 쓰셨다.

그래서 많은 회원들이 그 분의 지극하신 정성에 감복하여 월례 연구 발표회에 나왔다고 한 이도 많았다.

 

나는 외국에 8년 있는 동안, 해마다 벼르면서도 천성이 게으른 나는 꾸물거리다가 늘 선생님의 연하장을 먼저 받고는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선생님은 혹 필요한 곳에 쓰라며 쓰지 않은 연하장을 몇 장씩 더 넣어 보내 주셨다. 나는 이 따뜻한 여유에서 언제나 하해 같은 스승의 정을 느끼며, 그 경지에 미치지 못함을 참괴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전국 국어국문학회 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시고,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개척자로서 「신국어교육론」을 비롯하여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기셨지만, 무엇보다도 길이 남을 중요한 업적은 한국국어교육학회의 회장으로서 남기신 업적이다.

 

1963년 9월 한국국어교육학회가 창립된 이래 작고 시까지 20여 년간 회장을 역임하시며, 98회의 월례 연구 발표회를 개최하고 40호의 「새국어교육」학회지를 발간하셨다.


    「새국어교육」은 학회지로서 40호라는 지령뿐만 아니라,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국어 교육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교 일선 국어과 교사들의 지도상에 있어서 실제 문제에 대한 토론과 연구 발표의 장으로서 그 구실을 다하여 왔다.


    학회장으로서 20여 년간 이러한 실적을 쌓기에는 남모르는 애로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학회 운영비의 조달이었다. 회원들의 회비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창기에 '전국 고교 국어실력 경시대회'를 개최했을 때는,
    일등 수상자에게 금메달을 주기 위하여, 사모님께서 금반지를 흔쾌히 내 놓으신 일도 있었다.


    학회로서 영원히 감사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은 성봉 선생님께서 1982년 동국대학교를 정년퇴임하면서 받으신 퇴직금의 전액에 평소 저축금 까지 합쳐 천만원이란 거금을 학회기금으로 기부하신 일이다

 

이 일을 어찌 학회 내의 공헌으로만 기릴 것인가.

마땅히 우리나라 국어 교육계 전체에 대한 공헌으로 높이 기려야 할 것이다.


    성봉 선생님의 또 하나의 업적은 누구보다도 '한글만 쓰기'의 실천가로서 솔선수범하신 일이다.

 

사석에서 동료들과의 우정을 무엇보다도 돈독히 지키시면서도 '한글만 쓰기'의 시비에서는 촌보의 양보도 하지 않으실 만큼 철저하셨다.

그래서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이들도 성봉 선생님에게 보내는 글에는 모두 한글 전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국어순화운동의 선봉으로서 강단에서는 물론, 방송을 통하여 주장하시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시며, 간판 하나의 잘못까지도 지적하시는 순회강연을 하셨다.


    성봉 선생님의 회갑 기념 논문집에서, 이선근 선생은 "성봉 박사만큼 학문을 사랑하고 학문의 사회화라 할 수 있는 국어에 대한 사랑을 혼신의 정열로 표현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하였고, 김동욱 교수는 "학자 사회에서 옛날 선비의 철학이 자꾸 퇴색해 가는 오늘날, 성봉과 같은 실천적인 교육자를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라 하였으며, 정한모 교수는 조사에서 "국어국문학회 발전사의 중요한 장을 차지하실 성봉 선생의 이름을 우리는 물론 우리 뒤에 오는 후배들도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한 바 있다.


    이 분들의 가감 없는 찬사로써 성봉 선생님의 영정을 여실히 그릴 수 있고, 기념탑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성봉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도, 스승으로서도, 학자로서도, 선비로서도, 한글 전용 운동 실천가로서도 성공을 다 거두시고, 한 시대를 살고 가신 영원한 거인이시다.

 

  <聖峰(성봉) 김성배박사 약력>


▲17년 충남부여 출생

▲52년 동국대 국문과卒(졸) ,   53년 서울사대부중고  국어교사

▲55년 서울大(대) 師範大(사범대), 高麗大講師(고려대강사)

▲57년  동국대 석사과정수료

▲58년부터 65년 까지 명지대교수 겸 國文學科長(국문학과장)․敎務處長(교무처장)․

          文學部長(문학부장) 등 역임

▲61년  동국대 大學院(대학원) 博士課程(박사과정) 國文科卒(국문과졸)

▲65년 동국대교수 겸 學生處長(학생처장)․敎養學部長(교양학부장)․學生指導部長(학생지도부장)․

             圖書館長(도서관장) 등 역임

▲73년  동국대에서 文博學位(문박학위) 받음

▲75년 大韓民國(대한민국) 대통령 褒賞(포상)․國民勳章(국민훈장) 冬栢章(동백장)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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