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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2.jpg

 

                                   송병선

 

병오년 대한 광무 1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
대궐에서는 최익현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고종 황제가 황제 다운 위엄을 뒤 늦게라도 지키기라기도 하려는 듯이 수옥헌(漱玉軒)에 나아가 내각을 바꾸었다.
궁내부 대신에 이재극, 시종원 경에 민영휘, 의정부 참정 대신에 박제순, 내부 대신 이지용, 탁지부 대신 민영기, 군부 대신 이근택, 법부 대신 이하영, 학부 대신 이완용, 농상공부 대신권중현, 중추원 의장 민종묵을 친히 임용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전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임용이었다 .
왜 그럴까 그것은 통감부 이또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병오년 1월 18일 대궐에는 최익현이 아닌 대전에서 올라 왔다는 한 늙은 선비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겠다고 부복하여 있었다 .

고종이 시종관에게 물었다
" 또 최익현이가 부복 했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 송병선이라는 늙은 선비 입니다 "

송병선 이라면 명문세가의 후손으로 한말의 거유(巨儒)이다. 그는 송시열의 9 대 후손으로 대전 동구 성남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행이 뛰어났으며 주위의 명망이 높아 일찍이 제주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이어 서연관·경연관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는 주로 향리의 사제에서 학문을 닦으며,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주시하며 몸가짐을 바로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여덟 번이나 대사헌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날로 기울어져가는 정국에 나아감이 선비의 택할 바가 아니라는 의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1905년 11월 18일인 일본의 책동에 의해 강압적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비보에 접한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나라가 망하고 도가 망하였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통분해하였다.
그는 나라가 위급하게 되자 곧 서울로 올라왔다.
선생은 임금 앞에 나아가 필연코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촉구하기로하였다
그가 임금에게 십조봉사라는 글을 올려 나라를 바로 잡을 것을 간하기로 작정하였다 .
대궐 밖에 있다는 전갈을 받은 고종은 송병선이 고종도 일찌기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마다하고 학생들만 가르치던 인물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종은 송병선의 상소문을 읽어 보았다

"폐하 ,나라가 곤경에 처하여 폐하 께서 밤낮으로 정사를 골몰하는 이때에 나라가 되어가는 꼴이 하 수상하여 신하의 분수와 의리상 감히 편안히 제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쓰러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떠나 병든 몸을 이끌고 추위 속에서 눈길을 걸어 열흘 만에 여렵사리 당도하여 곧바로 승정원에 나왔습니다.

삼가 청컨대, 한번 폐하를 가까이 모시고서 속에 있는 생각을 대략이나마 진술하고 물러가 초야에서 죽도록 해 주소서. 이것이 신의 필생 소원입니다.”
고종은 대궐 문 앞에 있다는 송병선을 임금은 반갑게 맞아 들이라하였다 .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 가게 된 마당에 외로운 임금은 바른 말 해 주는 선비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

고종은 송병선을 경연장으로 나오게 하였다
" 마침 보내 온 소장을 보았다. 이제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쁨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겠는가. 응당 즉시 곧 경연에서 만나겠다.”
임금의 비답이 떨어지고 송병선은 경연장으로 나갔다 .

고종 황제는 경연장이 있는 수옥헌에 가며 동궁도 나와서 송병선의 강의를 들으라 하였다
고종이 부복한 송병선에게 묻는다
“이 처럼 어려운 때를 당하여 경의 소견을 듣게되니 여러 가지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되기를 짐은 몹시 바라는 바이다.”
송병선이 아뢴다
“이것은 시골에 파묻혀 있는 신하가 감히 아뢸 문제가 아니지만 이러한 나라의 큰 변고를 당하여 집에 편안히 누워 있을 수 없었기에 비록 오랜 병환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였으나 무릅쓰고 올라 왔습니다.”

고종이 묻는다
“최근 일에 대하여 군신이 어디 따로 있고 위 아래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모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수습 해 나가야 할것이오. "
송병선이 고종의 얼굴을 들어 뵙고 얘기 할 것을 간청한다 .
부복한 상태에서 말을 할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러러 성상의 옥안과 동궁을 뵙고 말씀 직접 올려도 되겠습니까?.”
“처음 보는 것이라면 앞으로 나와서 보고, 동궁의 얼굴도 보오.”
송병선이 앞으로 나와서 임금을 우러러 본 다음 물러나 엎드려 아뢴다
“폐하 ,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박제순등 나라를 팔아 먹으려는 다섯 도적들을 처벌 해 줍시사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폐하 .막상 폐하 앞에나와서 말씀 드리려니 기가 막히고 정신이 혼몽하여 폐하 앞에서 일일이 구두로 이야기를 올릴 수 없습니다.
삼가 짧은 차자를 마련한 것을 직접 올리니, 이 글을 보신 다음 속히 처분을 내리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며 송병선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 것을 내 놓는다
“무엇인고?. 비서감 승(祕書監丞)은 받아 오라.”
송병선이 다시 아뢴다
“ 폐하 이 나라에는 엄연히 국법이 있는데도 박제순등 역적 신하들은 국법과 국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조약을 체결 하였으니, 그 죄는 천인 공노 하고도 남습니다 .
듣자니 박제순등 5 적들은 나라를 팔아 먹은 조약에 대하여 비난이 비등하자 그들의 변명하는 상소에서 거리낌 없이 폐하를 협박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었겠습니까?
우선 5 적들을 처단하는 것이 국법에 맞을 것 같은데 아직도 윤허하는 명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나라의 법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지금 나라가 바로 서느냐 망하느냐는 어떻게 이역적들을 없애 버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이 중대한 문제와 관련 되는 만큼 다른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즉시 변통할 것이 그리 아오. "
" 폐하 , 즉시 조치 하셔야 합니다 "
"경의 말에 대하여 누가 옳지 않다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짐도 생각하는 것이 있소. 차자를 자세히 읽어 본 다음에 또한 속으로 생각해 볼 것이니, 물러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마땅히 엎드려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고종은 5조약문제로 한두명의 상소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
“연석 중에 엎드려 있을 필요가 없소. 차자를 자세히 본 다음에 짐이 비답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으니, 경도 그것을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경의 성실한 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이제 물러가오 .”
고종은 송병선의 얘기를 들을 수록 마음이 뒤집혀저 말을 더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송병선은 할 말을 다 하겠다는듯이 속에 들어 있는 말을 모두 쏟아 놓는다

“요사이 일본에 대신들이 자주 드나드는데 우리 대신들을 일본에 들여 보내는 일은 무엇 때문입니까? 저들이 우리를 노예나 첩으로 만들고 있는 판에 무엇 때문에 일본에 들어가 비굴하게 그놈들에게 굽실거립니까? ”
“이런 일은 각국에서도 하고 있는 의례적인 외교 활동의 일부이니 과히 걱정마오.”

“폐하 듣자니 우리나라의 원로들이나 유생들이 상소를 올릴 때마다 일본 놈들이 반드시 위협하고 잡아 가두는데, 그런법이 국제법에 있습니까?
일본놈들의 무례하기가 이 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대한제국 조정에서는 모른척하고 있으십니까?
폐하 박제순 5적 처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 한 것은 일본놈들이 더 급한 문제 입니다 .
폐하 다른 일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송병선은 궁중에서 일단 물러나왔다.
송병선이 고향으로 돌아 가려고 거리로 나오자 이 때 경무사 윤철규가 교자를 가지고 나타났다
경무사 윤철규는 이미 일본 헌병대로 부터 명령을 받고 송병선의 사전 상소를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기회를 놓쳤던것이다
교활한 윤철규는 헌병대로 부터 송병선이 서울에 머물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는 송병선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뉘시오? 나는 댁을 모르겠소만"
"경무사 윤철규 입니다 "
"하, 그렇소? 왜그러시오"
" 어디로 가십니까? "
" 사복동 친척집에가는 길이오"
"선생님 제가 모시겠으니 교자에 오르시지요"
"됐소, 걸어서 가겠소"
" 일본 헌병에게 걸리면 선생을 그냥 두지 않을것입니다 어서 오르시지요"
그러나 교자에서 내려 보니 그곳은 사복동이 아니었고 남대문 밖이었다.
경무사 윤철규에게 속은것이었다
교자에서 내리자 마자 일본헌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각을 불며 송병선을 부른다 .
"송병선 맞소까?"
일본헌병이 서툰 한국 말로 묻는다
"그렇소마는?"
" 조선황제 폐하의 명령이오 어서 기차를 타시오 "
일본 헌병은 송병선을 강제로 열차에 태워 대전역에서 내리게 했다.
대정역에 내리자 송병선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 걸음 옮기면 한 걸음 옮기는 치욕이 있고 두 걸음 옮기면 두 걸음 옮기는 치욕이 있다)하고 한탄하고 통분하면서 석남촌(지금 동구 판암동)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왔다.

송병선이 집에 돌아와보니 포천의 최익현이 생각났다 .
( 면암도 나처럼 일번 헌병놈들에게 수모를 당했겠지 ....)
송병선은 삶의 가치를 잃었다 .
(나라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몸만 욕을 입었을 뿐이다.)
그는 포천에있는 최익현에게 편지를 쓰기시작하였다

그리고 순국 자결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그는 의관을 정제하고 북쪽을 향해 재배하였다. 최익현에게 보내는 글을 쓰고 난 다음 유소를 쓰고 또 자제, 문생 그리고 전국 유림에게 고결하는 유서를 만든 다음,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때가 음력으로 1905년 12월 30일의 일이었고, 양력으로는 1906년 2월달이었으며 그의 나이 70세 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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