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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png

 

 
시일야 방성대곡 >에서 장지연이 지적한 조약 원본은 모두 다섯 가지 조항으로 돼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 한다는 것을 비롯해 일본 천황을 대표하는 통감이 국내에 주둔 하면서 정치, 외교, 재정등 모든 부분에 걸쳐 심리를 담당하겠다는 것이었다 .
심지어 일본 정부를 통하지 않고는 대한제국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조약을 맺을 수 없다는 조항 까지 들어있다.

구체적으로 파고 들면 이렇다

첫째, 일본 외무성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와 그 사무를 통리 지휘하고
둘째,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국가와도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못하게 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완전히 탈취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통감 1 인을 두어 한국의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 한다고 하였는데, 그 조약상의 문면에 따르면 "전혀 외교상에 관한 사항을……"이라고 하였으나 한국의 모든 내정을 관장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이리하여 한국은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인 지위는 말살 되다시피 하였다. 이를 을사늑약(乙巳勒約) 이라고도 부른다

어쨌든 이것은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위한 전 단계인 보호국을 만들기 위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말이 조약이지, 실질적으로는 조약에 필요한 형식이나 절차를 갖추지 않았다. 일본의 일방적인 문서일 뿐이었다 .
보호조약안과 앞서 한일 협약과는 조약상의 절차 부터 문제가 있었다 .
우선 가장 중요한 조약의 제목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

소위" 을사보호조약 " 이라는 이름도 훗날 일본 정부가 임의로 붙힌 것이다.
보통 국제적인 조약의 경우 조약이 성립 된 즉시 함부로 문서를 조작할 수 없도록 봉인을 단단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을사 조약의 경우에는 봉인을 그냥 끈으로 묶어 두어 언제든지 풀 수 있도록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서명 난에도 단지 외부대신 박제순과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의 이름과 도장만이 찍혀 있다.

조약에서 왕을 대신해 정부 대신이 서명 할때는 반드시 왕의 위임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조약은 양국 다 왕의 위임장도 없이 일본의 이등박문과 한국의 박제순만의 정부 대신들 끼리 만이 조인을 했다는 점이었다 .

을사조약이 체결된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에 당시 고종은 이등박문이 가져온 조약에 협조하라는 천황의 친서를 들고 서울에 왔을 때 만해도 친서만 보고 통상적인 인사로만 알았다 나중에 내놓은 보호조약 내용이 극단적인 합병 정책 내용 까지 담겨저 있는 줄 까지는 몰랐다 .

시일야 방송대곡에선 "지난 번 이등박문이 한국에 왔을 적에 어리석은 우리백성들은 인천 항에서 서울 까지 관민 상하가 더할 수 없이 환영하였다
마침 폐하께서 인후에 고통하옵심으로 이등박문의 알현을 거절 하사 가로되, 볼 필요 없다. 나가서 정부 대신과 협의 하라"하면서 내전으로 사라지었고 "외부대신 박제순은 반대를 하면서도 자구를 조금 고치면 인준 하겠다고 하여 조약이 체결 됐다"라고 적고 있다.

그날 분위기도 기록되었는데 "일본 병사가 다수 입궐하여 황제 지척에 겹겹이 둘러 싸고 총칼이 숲을 이루었는데 궁중에도 일본 병사가 숲을 이루어 중명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 했다"라고 했다

최재학이가 황성신문을 사가지고 최익현에게 장지연의 논설문을 뵈웠다 .
"죽일 놈들"
신문 내용을 읽던 최익현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
"선생님 한성에서는 종무관장 민영환 대감과 조병세, 홍만식 대감이 차례로 자결하였다 합니다 "
".................."

5 조약이 체결 된지 한달이 지난 12 월 21 일 일본 정부에서는 소위"통감부 관제"라는 5 개항의 관제를 칙령으로 발표하였다 .

내용은
첫째 서울에 일본 통감부를 둔다
두째 통감은 천황 직속으로서 일본 내각 총리의 추천을 받아 일본 천황이 임명한다
셋째 통감은 한국에서의 일본제국을 대표하고 외국에 대한 모든 것을 통감이 감독한다
넷째 통감은 한국의 치안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 수비군 사령관에 대하여 군대를 동원 할수 있다 .
다섯째 통감은 통감부령을 발할수 있다

완전히 대한 제국을 허수아비로 만들자는 수작이었다

초대 통감 이등박문이 한국땅에 들어 오자 한국 대신들 뿐만 아니라 외교관에게 까지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
"나 이또는 통감으로 부임함에 따라 각국 외교관에게 몇가지 협조하여 줄것을 요구한다 .
조선은 조선이 일본 천황의 보호 아래 있고 외교권도 우리일본에 이양하였으니 앞으로 조선과의 모든 외교는 일본 외무성에서 직접 담당한다 .따라서 지금 조선에 들어와 있는 외국의 사절들은 우리 일본과 다시 외교 관계를 직접 맺어야 한다 "

이등박문이 통감으로 한국에 들어 와서 제일성을 외국공관에 포문을 열은 것은 외국 세력을 한국에서 몰아내고 외세에만 의존하려는 대한제국의 맥을 끊으려는 첫 시도 였다 .

예상대로 주한 각국 외교 사절들은 공관을 철폐하고 속 속 귀국 해 버리었다 .
이등박문에게는 이제 무서울게 없었다 ,
이등박문은 부임 하자 마자 우선 대한 제국의 대신들을 통감부로 불렀다 .

회의 명칭은 소위 대한제국 개혁에 관한 제1회 협의회라는 것이었다
이등박문은 대신들 앞에서 첫 마디를 꺼냈다
"이제 조선 조정도 개혁을 할 때가 왔소""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꾼들의 단골 메뉴인 개혁 타령이 이 일본인 입에서도 발동 된 것이다 .

대원군이 조선의 파락호 출신 이었 듯이 일본의 파락호 출신인 이등박문도 본색을 들어 낸 것이다 .
개혁 타령을 내 세운 이등박문의 개혁 제1회 협의회 라는 것은 이등박문의 어전회의나 다름 없었다 .

법부대신 이하영이 고종 보다도 더 무서운 이등박문 앞에서 말을 꺼내었다 .
" 이또 각하 , 일전 경의선공사때 일본 당국이 철도 부지를 확보 하면서 토지 보상비를 너무 적게 주어 농민들이 불만이 많은데 대책을 말씀해 주십시요"
"허허, 법부 대신이라는 분이 고작한다는 소리가 그것뿐이오? 우리 통감부가 알아서 할터이니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돼요"
"..................."

대신들은 엉뚱한 대답에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말하는자가 없다 .
이등박문이 계속 말한다 .
"앞으로 조선은 통감부의 허락 없이는 무슨 일이고 못할것이니 명심하시오 . 듣자니 조선은 광산권 때문에 조정에서 문제가 많다는 말을 들었소 . 예를 들자면 조선의 대신들이 광산 채굴권 문제로 외국과의 체결시 막대한 뇌물을 챙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러한 부정부패는  용납할수 없는것이오 .그런면에서 앞으로는 외교권이 통감부에 넘어 온 이상 대감들은 통감부 허락 없이는 함부로 거래 하시면 안되오 . 나도 도꾜에서 조선으로 부임 직전에 조선인 망명객에서 들은 얘기인데 조선의 대신들은 완전히 부패 집단 이라고 들었소이다 .나는 앞으로 그러한 부패를 용납할수 없소 ,"
"....................."

대한 제국의 대신들은 부패 운운하는 이등박문의 서슬이 시퍼런 발언에 모두 몸 둘바를 모른다 .
"나는 반 부패 운동을 벌려 조선 조정을 바로 잡겠소"
정치꾼들의 단골 메뉴인 부패 타령도 잊지 않고 이등박문 입에서 쏟아저 나왔다 .

부패로 말하자면 이등박문이 조선 대신들에게 말 할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이등박문의 정치는 뇌물로 얼룩진 정치였기 때문이었다
이등박문의 본명은 하야시 도시스케[林利助]이다 .
산구현에서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하급무사의 집안인 이등가(伊藤家)에 양자로 들어갔다. 그는 길전의 송하 촌숙라는데서 수학하고 존왕양이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명치 신정부 성립 후 정계에 투신하였다.

그의 사고 방식을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은밀한 계책이 아니면 모든 일을 성취시킬수 없다 (非陰計,無以成功)" 가 그의 행동 철학이었다 .
그는 그의 정치 철학인 "은밀한 계책"을 성취 시키기 위하여 선물이라는 이름 하에 뇌물 주고 받기를 밥먹듯 하던 사람이었다 .
그런 인물이 한국의 대신들을 모아 놓고 반부패 운동 운운 한다는 것은 정말 서천개가 웃을 일이었다

그후 이등박문은 이런 수법을 단골로 사용하여 일본 조정의 기성세력 을 몰아내고 명치 정권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였다.
그는 초대 내각 총리대신이 되고, 다음 추밀원 의장에 취임하였으며, 국회의 개설과 동시에 귀족원 의장이 되었다.
러·일 전쟁 후인 1905년 조선에 통감부가 설치되자 초대 조선 통감으로 부임했던것이다 .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있다 .
이 속담 대로라면 말하면 이등박문은 반부패 운운 할자격이 없다 .
이등박문 부터 추방 되어야 할 인물이기때문이었다 .

그러나 정치란 고금을 막론하고 부패의 고리와 멀어 질수 없는 숙명을 타고 났나 보다 . 사실 알고 보면 대한제국의 대신들의 부패는 이등박문의 부패 행위에 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이등박문은 걸핏하면 회의를 열었다
한편 한국의 대신들은 이등박문에게 잘 보여 일신의영달을 꾀하려고 하고 있었다 .

나라가 이지경인데 한국의 백성들은 어땠을까? 이나라 애국 지사들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드디어 일어났다 .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치려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송병준 , 이용구가 만든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하여 설립한 대한자강회 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 하였다
최초의 사립학교가 생기었다 .
민영휘의 휘문학교와 엄귀비의 양정학교와 진명 숙명 여학교였다 .
정산에 있던 최익현이 서울로 올라온것도 이무렵이었다 .
을사보호 조약을 그냥 두고 볼수 없었던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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