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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는 백성을 팔아 정권을 차지하려는 사기성 무리들을 뿌리 뽑아 혼란이 진행되는것를 막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제도를 본따 옛날부터 임금의 과실과 정부의 잘못을 간할 일이 있으면 임금의 과실을 써 붙이는 비방목이라는 나무와 우리나라 세종때의 신문고 같이 억울한일이 있으면 두드리는 진언고라는 북이있었습니다 .

그리고 우리 조선 왕국에는 선비라고 부르는 유생들이 왕의 잘잘못을 간하여 대궐에 나아가 상소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성균관 유생들이 불평이 있을 때 동맹휴학을 하는수도 있었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실로 정부는 일찍이 백성들에게 말을 못하게 입을 막은적이 없었습니다.
유생들은 절제가 있어서 차라리 정사를 비방 할지언정 대신을 협박하여 쫓는 법이 없었고, 차라리 소를 올려 호소할지언정 임금을 협박하여 제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 만민공동회다 보부상이다 하는 자들은 길거리의 무식한 무리들을 불러 모아 선동을 하면서 겉으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다고 위장하여 저희들 마음대로 대신들을 지시하며 오라 가라 하고, 군부를 지탄하여 배척하고 정승을 능멸하며 모욕하고 있습니다 .
밤낮으로 지렁이 처럼 얽혀 다니고 할일 없이 모여 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위세를 부려 백성들의 생업을 어지럽게하고 있습니다

아아 이 어찌 된일이옵니까?
이렇게 백성을 팔아 정권을 차지하려는 사기성 무리들을 제멋대로 행동하게 놔둔다면 조정은 그자들의눈치만 살피다가 장차 어느 한 가지 말이나 일이라도 마음놓고 시행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 한문제 때 대신 가의라는 사람의 상소문에서 “요즈음의 돌아가는 것을 보니 통곡해야 할 일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 둘이요, 한숨을 쉬어야 할 일이 여섯입니다.”라고 하는 글을 읽은적 있습니다 .
꼭 우리나라 그 꼴입니다 '
전하 , 가의라는 대신의 세태 평을 하나 더 예를 들겠습니다
가의는 한무제에게 말하기를 요즈음은 발이 도리어 위에 있고 머리가 도리어 아래 있다.’고 한 것과 같이 불행 하게도 지금의 대한제국이 그때와 같게 되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외국에는의원(議員)이라는 벼슬이있는데 백성들이 뽑은 당이라는것이 있어서, 백성들이 당을 만들어 그들 스스로 대통령이라는것을 뽑아서 백성을 주인으로 여기는 예가 있다고는 합니다.
지금 여기 독립협회사람들 하는 짓을 보십시요
이미 벌써 잘못하는 대신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기들 정책에 맞지 않는다고 대신들을 협박하여 내쫓는 것이 여러 번 있었으니 앞으로 이보다 한층 더한 짓을 하면 했지 더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할것이옵니까?

가령 이 무리들이 자기들 말대로 진실로 전하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한다 치더라도 과연 그들의 주장도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이 나라에는 너무 성급한 욕심입니다 .
전하, 지금 이나라가 필요한것은 부국 강병이 선결 문제입니다 .
잘먹고 잘 산 다음 민주도 찾아야 합니다
더구나 그들은 떠들기만 요란하지 모두 오합의 무리이니 어찌 나라를 경영하는 큰 도리인들 알겠습니까.
비록 혹시 한두 마디 글로 부터 들을만한 말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들은 임금을 그렇게 모독을 할수 있습니까?
이런 작태는 정부의 여러 신하들이 몸을 다해 나랏일을 종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토록 무너져서 분열 되게 만든 것이니, 이는 조정에서 마땅히 스스로 반성 해야 하는 것이지 전적으로 백성들에게만 책임 지울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전하께서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듣자니 앞으로는 그자들을 철저하게 다스리시겠다니 뒤늦게나마 전하의 용단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그 뒷단속을 철저히 잘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복종시킬 수 없을까 염려됩니다

그러시자면 독립협회사람들이 주장하는것을 귀담아 들으시고 우선 임금의 말씀을 널리 내리시되 자신을 깊이 반성하시고 , 정직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모든 폐단을 고칠 뜻을 보이는 것이 낫겠습니다.
전하께서는 그들에게 충효를 일깨워 백성들을 잘살게 하겠다는것으로 그들을 감복시키십시요.
그렇게 설득해서 그중에 주동자만 발탁 하시던가 처벌하시고 나머지는 법사(法司)로 하여금 해산 시켜 보내도록 하소서.

그렇게 정치를 바르게하시면 , 백성들이 볼때 전하께서 처음 부터 끝까지 한결 같이 진실하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된다면, 저 해외의 오랑캐라 할지라도 장차 옷깃을 여미며 와서 복종할 것이니, 어찌 백성들이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습니까.

그렇지않으면 저 지극히 우매한 백성들은 모두 복종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고서 도리어 전하를 원망하는 생각을 기르게 되는데 그들을 갑자기 탄압하면 큰 화를 불러올수 있고 반대로 불문에 붙이려고 하면 무지한 백성들이 오만을 기를 것이니, 두 가지가 모두 나라를 망칠 수 있습니다.

옛말에 ‘백성은 물과 같고 임금은 배와 같으니,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으나 또한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귀 담아 들을 만 합니다 .
신은 바라건대, 전하께서 이를 거울삼아 정사를 보신다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다고 생각 하겠습니다.

여덟째는 부모의 상을 소흘히 하는 풍속을 바로잡기 바랍니다.

유명한 시 구절중에 ‘아버지는 나를 낳게 하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도다. 그 은덕을 갚으려니 하늘과 같이 끝이 없도다..라는 구절이있습니다 대체로 자식이 태어나는 것은 부모의 막대한 은혜를 받은 것이니, 비록 생존하였을 때 날마다 세 가지 고기로 봉양하고 돌아가신 다음에 종신토록 복을 입어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에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신은 듣건대, 요사이 관청에 소위 부모 상을 치르는 기일이라는 복기(復期 )라는 것이 있어서, 부모의 초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곧 상복을 벗고 뻔뻔스럽게 나와서 벼슬하며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옛부터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 충성하는 사람이있다는 말을 신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홉째   쓸데 없는 비용을 절약하여 국가의 쓰이는 길을를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국가에 있어서 예산이란 사람에게 있어서는 핏줄과 같습니다 . 핏줄이 마르면 사람은 죽기마련이고 예산이 떨어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니, 이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 우리나라의 재정은 오직 세금 밖에 없는데 이 세금은 모두 백성들로 부터 나옵니다.
백성들은 해가 다하도록 부지런하게 고생하여도 몇 식구의 1년 양식에 충분하지 못한데 오히려 그 절반을 팔아서 세금으로 바칩니다.
진실로 백성의 그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면 비록 한 알의 곡식이나 한 푼의 돈이라도 어찌 함부로 남용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요사이 탁지부의 재정이 항상 부족하여 왜국에서 차관(借款)하는 데 이르렀다고 들었습니다 .
재정이 금년에 부족하다고 해서 차관을 하여 빚을 지고 명년에도 부족 하다해서 차관을 얻어 빚을 지면, 차관은 갚을 겨를이 없고 국가의 재정이 더욱 군색해져서, 필경에는 땅을 분할하여 그들에게 팔아먹어야 합니다 . 빚진 나라에 땅을 분할하여 주었는데도 부족하면 또한 장차 온 나라를 빚진나라에 가져다 주어야 할 것이라는것은 만고의 이치입니다

신은 바라건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시급하지 않은 공사를 중지하고 공(功)도 없이 잘 한것도 없는데 잘했다고 성과금이나 나누어 먹고 , 나랏돈으로 제돈이라도 되는양 사치나 부리고 나랏돈으로 제좋은곳에 제 개인돈 모양으로 생색을 내어서야 되겠습니까?
항상 나라에서 쓰는 돈이외에는 쓸데없이 명목을 붙여서 쓰시지마십시요 이모두 백성들의 피땀 어린 돈입니다 , 나랏 돈을 개인의 소장으로 삼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면, 천만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열 번째는 군기를 바로 잡아 국방을 튼튼히하십시요

신은 삼가 생각건대, 나라에는 군대가 있어야 남의나라가 넘보지 못합니다 . 그런데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는 군대 다운 군대가 없습니다 , 군대들은 유사시에 는 장차 쓸수가있어야 군대라 할수 있는것인데 우리 군대들은 아무 쓸 데가 없습니다.

대체로 군대란 병영에서는 장수에게 죽음을 바치고 적진을 앞에 두고는 적에게 죽을 것을 각오해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군대는 그렇지 못하여 모두 친위대나 시위대라하여 궁궐만 지키는것이고작입니다 .
군대가 아니라 궁궐 경비대라야맞습니다
이 궁궐 경비대가 훈련원에서 훈련을 할때 교관이 훈련병에게 기합을 주면 졸병들은 그의 장수를 만만하게 보며 말하기를, 저게 무슨 대장이야 하면서 ‘내 몸에 친 자(親字 친위대 표시)가 보이지 않느냐 시 자(侍字 시위대 표시)가 보이지 않느냐 ?어찌 감히 시위대를 나를 매질하는가.’라고 하면서 대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위대나 친위대 처럼 궁궐을 수비하는것이무슨 큰 벼슬이나되는것처럼 장수가 명령으로 제재 할수 없으며 , 장수의 명령에 제재 받으려 하지 않는 자가 있는한 적에게 죽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군대라고 있으나 군대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비록 있기는 하나 모두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군기를 잡아야서 전하의 은혜와 위엄을 병행시킨 연후에라야, 팔이 손가락을 부리고 ,입이 혀를 부리듯 , 장수와 졸병들은 비록 끓는 물에 들어가더라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바라건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옛날 5영(五營)과 절도사(節度使)의 제도를 복구하고, 친위(親衛)ㆍ시위(侍衛)ㆍ원수라는 명칭을 없애며, 장수들에게 각기 군사를 거느리되 생사를 전담하여 무예(武藝)를 가르치고 충의를 권장하도록 하여, 위급할 때에 쓸 수 있게 하신다면, 천만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열한 번째는 원수와 역적들의 죄목을 들추어 다부지게 나무라시어 대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전하, 을미년(1895, 고종32) 8월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생각해보십시요 ? 얼마나통탄할 일입니까?그런데 그사건이있은후 3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왜놈들을 원수 갚을 계책을 마련 못하고 있습니다.지금부터라도 한 가지 일이라도 실행하여 토죄와 복수를 하여야 할것입니다 .
그런데도 누구하나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이없으니 웬 일이옵니까?

신이 진실로 알 수 없지만, 조정에서 좋은 계책이있는데 않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충언을 외부에서 듣지 못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서 아량 있고 관대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까?

대체로 한사람의 평범한 남자 나 한사람의 평법한 여자가 남에게 살해를 당하면 그의 자식들이 모두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5 백 년 된 선왕의 종부(宗婦)이며 삼천리 강토 민생들의 자애로운 국모께서 이렇게 망극한 변을 당했는데도 오히려 평범한 남자나 평범한 여자가 생명을 잃는 것만도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살해당한 자는 겨우 김홍집ㆍ정병하 두 역적뿐인데 오히려 그 죄를 밝혀 바로잡지 못하였고, 유길준ㆍ조희연ㆍ장박ㆍ우범선의 무리는 비록 도망쳐 잡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들의 부형이나 처자가 있는데도 아직도 뻔뻔스럽게 생활하며 반성이 없으며 김윤식 같은 괴수 역적은 능지처참 해도 모자랄 자이고 왜적 삼포오루(三浦梧樓)는 군사를 풀어 시역하였는데도 알아보아 잡아 오지도 않고 있으니, 어째서 역적에게는 후하고 국모(國母)에게는 박하게 하십니까?

지금 전하께서 하늘에 사무치는 원수를 이미 조금도 보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늘에 계신 명성황후 께 원통하고 한스러운 혼에 조금도 위로 되지 못할 것입니다.

대체로 왜적들은 여러 번 큰 변란을 일으켜 역적들을 모두 도와주고, 도망간 사람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진실로 우리나라 백성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 못할 철천지 원수입니다.
비록 왜국의 수도를 빈 터로 만들고 왜놈 종족을 멸종시키더라도 우리의분한 마음은 영원히 씻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의 군사가 적고 세력이 약하여 갑자기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토죄하지 못하나, 다만 말을 정당하게 하고 의리를 밝힘으로써 여러 역적들을 묶어 보내고 삼포오루를 잡아 바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춘추》에서도, ‘간악한자를 보호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 하였으나 저들이 아무리 교활하고 간사하다 하지만 천하의 공론만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대의를 밝히고 더욱 선비들의 분노를 격동시켜,죄를 물어야할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는 큰 원수를 잊어버리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정사가 잘못되어 백성이 흩어져도 구제할 줄을 모르며, 외국의 걱정거리가 예측할 수 없고, 내부의 붕괴가 날로 심해집니다.

그런데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니, 이는 신이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신이 말할 것이 있습니다. 을미년(1895, 고종32)에 일어난 동남 지방 민병(民兵)을 지금은 비도(匪徒)라고 하나 이는 옛적의 이른바 의병(義兵)입니다.

신하들이 모두 역적들의 앞잡이가 되어 받들어 모시기에 바쁘니 보복할 마음을 가지려 하였겠습니까.
다행히도 천리와 인륜이 완전히 추락되지 않았는지 동남 지방의 유생들이 의병을 이르켜 왜적을 성토하였다는 소리를들었습니다

아아, 바야흐로 천지가 깜깜하게 막혔는데, 만약 이들 의병들의 호령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천하에 할 말이 거의 없을 뻔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한갓 의병의 하류배가 난동 부린다고 보고 드디어 비도(匪徒)라 부르고 막연하게 분별해 보지 않으니, 이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몰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성상께서 오직 근심하고 두렵게 생각하시어, 이미 국경 넘어간 신하를 도로 소환(召還)하시고 그 나머지도 차례차례 죄를 용서하여 주셨으니, 진실로 성덕(聖德)을 지니셨습니다. 그러나 소환하고 난 뒤에 그의 말을 채용하지 않아서 잘못되어 방랑하는데도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니, 덕을 끝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망한 여러 사람들은 비록 모두 초야의 미천한 선비들이기는 하나, 역시 모두 의사와 열사로서 순국한 사람들이니, 조가(朝家)에서 인륜을 배양하는 도리에 있어서 역시 표창하여 돌보아 주는 절차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체로 인심을 수습하고 충의를 격려하는 이유는 뒷날에 복수하는 터전이 됩니다. 오직 성명께서 재결(裁決)하신다면 매우 천만 다행일 것입니다.

열두 번째는 문명과 와 야만 의 구분을 엄격히 하여야바랍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태초에 천지가 개벽될 적에 올라간 기운은 하늘이 되었고, 내려간 기운은 땅이 되고, 그땅에서 사람이 출생하여 사람들마다 질서를 지켜야 하기때문에 인ㆍ의ㆍ예ㆍ지(仁義禮智)의 천성을 모두 구비하게 됩니다 자연히 측은한 마음 ㆍ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착하지 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ㆍ공경하는마음ㆍ시비의 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자ㆍ군신ㆍ부부ㆍ장유ㆍ붕우의 관계도 자연히 부모에게는 친(親), 군신 사이에는 의(義), 장유 사이에는 서(序), 부부 사이에는 별(別), 붕우 사이에는 신(信)이라는 법칙이 있게 되었습니다.

성인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여러 가지 아름다운 덕을 모두 갖추었으나,
어떤사람들은 서로 접하되 친하게 되는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교육하는 법을 제정하여 천하를 교화시켰으니, 예(禮)를 만들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사귀도록 하였고, 낙(樂)을 만들어 신명과 사람이 화합하게 하였으며, 형벌을 만들어 간특(姦慝)함을 다스리고, 학교로 인륜을 밝히고 ,제사로 조상에게 보답하고 군사를 키워 포악한 난리를 막았습니다.

선비는 인의와 도덕을 밝혀서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이며, 농부는 조ㆍ쌀ㆍ베ㆍ비단을 생산하여 위에 공급하는 사람입니다.
공업은 쓰는 기구를 대는 사람이며, 상인은 있고 없는 것을 유통시키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문명입니다

그러나 야만이란 문화가 뒤떨어진곳에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권력만 최고이며 교활하게 남을 속여야 먹고 사는 세계입니다 많습니다. 비록 사람이란 인ㆍ의ㆍ예ㆍ지(仁義禮智)의 천성은 있는것인데도 그들은 구하여 밝히고 실천하고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
그들은 , 부자 사이의 친함, 군신 사이의 의(義), 장유 사이의 순서(序), 붕우 사이의 믿음(信)을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돈 많은 사람만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학문을 하였지만 오로지 권력과 돈만을 숭상하며, 잔인하고 방자하여 우리 유학(儒學)에서 말한 마음을 바로 잡아 사람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없습니다.

하늘을 공경하지만 하늘과 사람이 하나의 이치라는 묘미를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복만을 구합니다 , 드들은 돈과 권력 때문에 귀천과 상하의 분별이 없습니다.
심지어 남녀의 분별이 없고 내외(內外)를 하지 않으며, 이치에 어둡고 강유(剛柔)와 존비(尊卑)의 차례를 방치하니, 또한 금수의 행동과 다름이 없습니다 .

그들은 집을 짓고 사는것을 보면 집이나크면 제일인것 같이 자랑이나 늘어 놓고 있어 모두 성인들에게는 버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짐승만도 못한 야만적 오랑캐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도(大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말류(末流)의 폐단만 보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신기하고 이상한 기술 문명을 보게 되니,그것을 개화나 문명이라고 떠들면서 면서 도리어 어둡고 캄캄한 속으로 들어가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아아, 어찌하여 이런때를 만나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입니까
비록 그러하나 .하늘은 그러한 것들이 오래가게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 군자들은 비록 지극히 어지러운 때를 만났어도 그 마음을 경망스럽지가 않고 성질을 참으며 더욱 덕업을 힘썼습니다 , .

불행하게도 왜놈들과 양인(洋人)들 무리가 이러한시기를 틈타나라를 집어 삼키려 하는데 , 당시의 일을 맡은 신하들이 깊은 식견과 원대한 생각이 없어 왜국모양으로 준비없는 문호를 무조건 개방하여 걷잡을수 없이 되었습니다

조약 하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외국이라면 절절매어 못하여 나라의모든 잇권을 넘겨 주고 결국에는 화와 실패가 앞에 닥치게하고 변고가 겹쳐 일어나게 하였고 심지어 이나라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머리를 깎이는 등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역적들을 잡아 죽여야 한다는 말은 이미 올렸습니다.
그러나 머리 깎는 일은 성명께서 김홍집과 유길준의 무리에게 협박당하고 할 수 없이 하신 것에 불과하며, 성상께서 본래 즐겨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을미년(1895, 고종32) 12월 28일의 조서로 백성들을 깊이 애통하게 여기시는 뜻을 보이시어 김홍집이내린 단발 폭거에 대하여 다시 머리를 기르거나 깎거나 자유의사에 맡기게 하시였고, 의복에 이르러도 편리한 대로 하라는 전교가 있었으며, 또한 김홍집 역도들이 머리 깎을 때에 내렸던 거짓 조칙을 회수하여 없애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전하의 마음이 어떤것인지 어찌 청천백일 처럼 환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군인과 학도는 예전처럼 머리를 강제로 깎게하니 니, 이것은 또한 누가 시킨 것입니까? 소매 넓은 옷을 영영 폐지하고 입지 못하게 하는 것도 누가 금하는 것입니까? 온 강토의 끝까지 모두 왕의 신하인데, 저 군인과 학도들은 유독 같은 임금의 신하가 아니겠습니까. 신이 그제야 비로소 요사이 명령 받은 신하가 크게 충성스럽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줄을 알았습니다.

대체로 임금이 못되면 오히려 마땅히 대신들이 인도하여 개명시켜야 하는 것인데, 임금께서 잘 해보려는데 대신들이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입니까.

또한 전하께서 명을 내린 뒤에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보고서도 봉행하지 못하는 신하를 죄 주지 않으니, 이는 전하께서 또한 참으로 잘못 하시는 것인데도 직무유기를 함과 다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을미년의 머리를 깎은 것은 전하의 과실이 아니기는 하겠지만 , 지금 머리를 깎는 것에 대하여 뒷날 역사의 기록을 맡은 사람들은 전하를 어떻게 평가 하겠습니까?, 그런 경우 전하는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머리를 깎아야 한다고 의논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온 천하의 견문이 새롭고 온 천하의 마음을 한결 같이 하여, 각자가 분발하고 격려할 수 없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역적 유길준이 하던 논법입니다.

위에서 학문을 좋아하면 모두 학문을 익히고, 위에서 부지런하면 모두 부지런하게 일을 하고, 위에서 검소하면 검소한 생활을 하며, 위에서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면 모두 청렴한 사람이 되고, 위에서 사심이 없으면 공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데 지금 같이 조정이 바르지 아니하고 백성이 감화하여 진작되지 않았다는 것은 예로 부터 지금 까지 없었습니다.

머리만 깎으면 나라가 강해지고 훌륭한 국가가 된다면 백번이도 머리를 깎겠습니다
설령 머리를 깎으면 잘살고 깎지 않으면 멸망된다 하더라도, 예부터 멸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 더구나 천하 만고에 강제로 머리깎았다고 별안간 강국이 되었다는 말을 듣지못하였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조령을 널리 내리시어, 모든 군인과 학도의 머리 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사에 맡기고 또한 의복 제도에 소매를 넓게 하는 명령도 자유 의사에 맡겨 주신다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다 하겠습니다.

아아, 이 나라에는 할 일도 많고, 요즈음 나라의 정세는 급박합니다. 진실로 마땅히 구제해야 할 정책들을 찾으려면 어찌 여기에 진달한 10 여 가지 일에 그치겠습니까.

여러 정당한 시책을 잘 실천하여 온갖 정사가 성실하게 되도록 하소서.
가령 조정으로 말한다면 임금의 마음이 근본이며 한 나라의 근본으로 말한다면 조정이 바로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에게 말씀 들일때에는 ,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아 조정을 바로 잡고, 조정을 바로 잡음으로써 백관과 만 백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몇 마디 말은, 이미 천고로 부터 답습해 오는 진부한 말이니, 들어도 귀가 뜨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말해도 신기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일은 근본을 바로잡지 않고서 그 끝을 제대로 된것이 없습니다.

진실로 마음은 만 가지 변화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학문을 힘쓰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고, 조정을 바로 잡으려면 현명한 사람을 쓰고 불초한 사람을 물리치지 않으면 바로 잡을 수 없으니, 이것을 어찌 진부한 말이라고 해서 소홀히 여기고 다시 체득하여 실행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시어 밝게 살피소서.

신은 조정에 나오느냐 않느냐를 헤아려 보았지만 앞에 나설 싶은 마음이 없으니, 우러러 궁궐만을 바라 보고 다만 간절히 눈물을 삼킬 뿐입니다.

만약 다시 전하의 큰 덕을 입어 신의 형벌을 면하게 해 주시려면 시급히 신에 대한 발령을 걷워 주시어 신이 마음 편하게 살다가 죽어 가도록 하게 하여 주소서.
간절히 두 손 모아 절하며 마음속으로 올리면서 ,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윤치호 대통령설의 최초 진원은 독립문 벽에 누군가가 대자보를 써붙인것이 문제가 됐다 .
"왕실은 퇴폐에 빠저있고 대신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신하 답게 전하를 보필할사람이 없다 . 어제 만민 공동회에서 회장이 이르되 우리나라 임금과 같은 서양에도 대통령이 있는데 대통령은 백성들이 뽑은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 .

다만 우리나라는 서양과 달라 임금이 계시지만 임금 역활을 못하니 그 원인이 어디있는가? 이모두 대관들이 벼슬이나 하고 앉아서 백성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사리사욕이나 취하면서 백성들을 우습게 보는 고관 대작들 때문이라 할수 있다 .
지금 이나라는 고관 대작들이 백성을 알기를 우습게 생각하니 서양식으로 따지자면 백성들의 어버이인 조선의 대통령인 임금을 무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미루어 보건대 만민 공동회가 백성의 마음이나 다름 없으니 만민 공동회장은 서양의 대통령과 무엇이 다를고? "
이벽보 사건을 사전 모의 한것은 찬정 조병식과 함께 만민공동회에 참석했던 대신들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군부 대신서리 유기환과 ,법부 협판 이기동등 이었다

그들은 대신들이 독립 협회 주최 만민 공동회에 대신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말을 하루전에 듣고 시정 잡배를 시켜서 익명의 글을 광화문과 관청 주변에 붙이게 하였던 것이다 .
왕에게처음 보고 한 것은 대자보를 뜯어서 조병식과 유기환과 이기동 이 왕에게 보고 일러 바치었다.

" 서양에서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자 만이 대통령이 될수 있다는 내용과 조선에도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만인 공동 협회장이니 그가 내 통령이 아니냐? 라는 내용에는 고종 황제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 당장에 윤치호를 대역죄로 잡아 죽이고 독립 협회 간부들을 모두 잡아 들이오. 그리고 대신들을 모두 해임 하도록 하오 . 그리고 조 찬정은 즉시 새 내각 명단을 가져오도록하오"
하고 엄명하였다 .

결과 윤치호는 도망가고 간부들은 체포되어 갔지만 오히려 체포를 무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열열한 결의를 보여 주었다
"간부를를 석방하라 아니면 우리 백성들을 모두 구속하라"
만민 공동회는 오히려 밤낮 없이 정부를 규탄하였다 .

"조병식, 민종묵, 유기환, 이기동, 김정근등 5 흉적을 처단하라 "
이런 구호도 나왔다 .
놀란 조병식은 그 동안 체포되었던 17 명에게 고등 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관대한 처벌로 석방 시켰다 .
독립협회는 간부들이 석방 되자 더욱 격렬하게 새 정부 대관들을 불신임 결의 까지 하였다 .

조병식은 만민 공동회 대표들에게 중추원 의관으로 추천 해 주겠겠다고 사탕 발림을 하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보따리 장수 출신 보부상 3000 여명을 서울에 집결 하도록하고 독립협회는 충군 애국을 모르는 역적배라고 몰아 부치고 곤봉 하나 씩 나눠 주고 만민공동회 군중에 뛰어 들어 유혈극을 벌리었다 .

종로로 퇴각한 만민공동회 군중들은 반격을 가하였다 .
이 군중의 앞에는 이승만과 양흥묵의 웅변이 군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
보부상 본거지인 서대문으로 향하다가 군인들과 보부상에게 밀려 종로로 후퇴하였다 .
흥분한 군중들은 조병식, 이기동, 민종묵, 홍종우, 김영수, 유기환 . 유용선 , 집을 습격하여 집안을 쑥대 밭을 만들었다 .

고종 황제는 놀라 ,수습책으로 공동만민회가 요구 하는대로 조병식 내각을 해임하고 다시 내각을 개편 하게 되었다 .
의정부 참정대신 민영환
내부대신 박정양
찬정대신 이종건
중추원의장 서정순
이 이외에 유임된 대신들은 만민 공동회 6 개조에 서명했던 대신들이었다

대신 만민 공동회장 윤치호 에게는 체포 영장 취소와 함께 중추원 부의장에 임명한다고 하고 조병식을 포함한 소위 독립협회다가 주장하는 5 흉적들에게는 모두 유배조치 하라고 하였다 .

마포 보부상은 해체하라고 명하였다 .
그러나 조병식 일파에 대한 조치에 반발한 보부상들이 쉽게 해체를 쉽게 할리가 만무였다 .
또한번 독립협회와 유혈전이 벌어 지었다
고종 황제는 보다 못하여 친유(親諭)라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
양쪽 대표를 고종 황제가 직접 불러 양쪽 의견을 물었다 .
그리고 양쪽을 무마 하려 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와 보부상패의 의견은 팽팽하였다 .
독립 협회는 5 흉은 절대 석방 하면 안되고 독립협회 부활을 인정하며 , 황국협회는 해산 하고, 앞서 6개 결의안을 받아 들이라는 내용이었고 보부상 패 대표들은 만민공동회 해체 , 조병식등 5흉을 흉적이라 하지 말고 무죄로 할것 , 등 서로 의견이 팽팽하였다.

고종은 두 단체를 잘 타일러 돌려 보내었다.
고종은 이번에야 말로 양측의 의견을 존중 한다며 양쪽 의사를 실천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내각을 개편하겠다고 하면서 개각을 또 단행하였다
개각 내용은 두 세력의 연고를가진 사람들을 각각 대신에 임명하였다
즉,
군부대신 심상훈
탁지부대신 민영기
내부대신 이근명
법부대신 이윤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박종양
독립협회는 심상훈과 민영기를 다시 대신으로 기용 한것에 대하여 성토를 시작하였다
고종은 독립협회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중추원 부의장 사표를 제출한 윤치호를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 판윤으로 앉히었다 .
파격적 대우였다 .
그런데 문제가 생기었다
물러난 윤치호 자리 였던 중추원 부의장에 일본으로 망명한 박영효나 서재필을 임명하자고 중추원에서 결의하여 정부로 이송 된것이다

대역 죄인 박영효나 서재필을 부의장에 임명 하자는 얘기가 나온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
서재필이나 박영효를 장차 서구식으로 대통령으로 임명하려 한다고 소문이 나돈 것도 이때였다
조정은 마치 대통령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았다 .

그 서재필과 박영효의 대통령설에 미루어 볼때 필히 독립협회측의 음모 일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었다

드디어 독립협회 탄압령이 떨어지었다.
독립협회 간부들은 모두 살 곳을 찾아 제 각각 흩어지었다.
윤치호는 서울을 떠났다.
고영근 , 임병걸은 일본인 거리로 피신하였다 .
이승만은 어느 미국인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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