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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알정_0007.jpg

 

단발령이 공포되자 내부대신 유길준은 막막하였다 .
강제가 아니면 머리를 순순히 깎는 자가 없었다 .
유길준은 일본의 삭발령 진행 과정을 듣고 싶었다 .


일본은 조선 보다 앞서서 머리를 잘랐기 때문이었다
유길준이 이노우에 공사를 찾은 것은 바로 이때었다

"이노우에 공사 왕비 사망사건후 정국이 불안하여 정말 가시 밭에 앉은 것 같소이다"
유길준은 일은 터뜨려 놓고 주무 장관으로서 어찌 할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단발령을 어떻게 처리 하여야 할까 큰 고민이었다 .실상 단발령의 주모자는 그였기 때문이었다 .
그는 고종에게 수시로 단발령을 역설 해왔다
그동안 유길준은 을미사변 뒷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 백성들을 다른곳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이노우에가 무슨 일인가 터뜨려야 한다고 하면서 뻔질나게 일본 공사관에 드나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

" 백성들을 어떻게 삭발을 좀 해야하겠는데 일본의 경우 어땠습니까?"
" 일본이야 강제로 깎았지요. 조선도 어서 경무사 주관으로 가위를 들고 순검을 시켜 강제로 깎는 수 밖에 없서요"
"자신이 없습니다 "
" 허, 대감도 항상 나에게 항상 조선은 개화 해야한다고 했는데 개혁을 하려면 삭발도 과감히 해야지 그렇게 의지가 약해서 어떻게 하겠소"
"..................."


"강제로 해야해요. 그렇게 어물거리다가는 언제 끝날지 몰라요."
"......................."
"일본도 경찰이 집집마다 남자를 수색하여 사정 없이 깎았어요"

방금 말 한 이노우에의 발언은 거짓이었다
일본 백성들의 상투 자르는 일은 이상 하리 만치 백성들이 잘 따라 주었다
일본이 조선의 사정이 다른 것은 일본 정부가 일찍이 서양의 근대 사상과 문명 생활 양식을 자연스럽게 유입 시켜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으로 부터 양복을 먼저 입게 하였고 자연 스럽게 전통 두발 대신 단발 머리가 유행 되도록 유도했다 . 관청 , 회사 은행등은 서양식으로 세워 지고 서양 요리점도 생기었다
또 가스등, 인력거, 철도등도 나타 났는데 이 모두 문명 개화의 상징이었다
조선 모양으로 급작스럽게 개화를 서둘지 않았어도 개화는 진행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개화의 바람은 주로 도시와 상류층에서 사용 하였지 지방 구석 구석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도시에서 지방으로 개화의 바람은 정부가 강제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히 사회 풍조가 전통 문화를 무시 하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

그런데 조선에서의 개화는 일본의 이노우에의 손 바닥에서 놀아 나고 있는 총리대신 김홍집과 내부 대신 유길준, 법부 대신 장박, 군부 대신 어윤중,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 외부 대신 김윤식이 무턱 대고 서두르고 있었다

학부 대신 이도재는 이런식으로 밀어 부치는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역 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유일한 반대론자였을 뿐이었다
이노우에가 일본도 조선 모양으로 강제로 단발령을 내려 깎았다는 것은 순전한 거짓인데도 유길준은 그것을 믿고 있었다 .

" 알겠습니다 . 우리도 별수 없군요"
" 대감 , 만일 이번 단발령을 제대로 밀어 부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명심해야합니다"
이노우에의 반 협박조의 발언은 진심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요리하려면 무엇인가 트집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

유길준.
서유견문록으로 후세에 더 알려진 그는 미국에서 공부 하는 동안 미국의 발전상의 실상을 수박겉 핥기식 견문을 하고 온데다가 이노우에와 자주 접촉하면서 그의 농간에 넘어 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유길준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박규수의 제자로 입문하여 그의 권유로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후 마음이 들떠 있었다 .
그는 고종 18 년 다시 일본에 건너가 경응 의숙에 입학 했다가 귀국, 다음해 외무 랑관에 임명 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을 수행하여 도미 하였다 .
미국에있는 동안 일본서 알게 된 모스 라는 생물학자 로 부터 개인지도를 받다가 대학 예비고등 학교에 입학하였다 나라에서 유학비가 지급되지 않자 귀국하였다.

그의 스승인 박규수가 한성 판윤 겸 형조판서로 임명되자, 그는 그 해 말 ·오경석·유홍기 등을 포섭하는 동시 당시 고관 양반들의 집단 거주지인 북촌의 양반 자제로서 약관 20세에 문과에 급제한 김옥균,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를 비롯한 김윤식·홍영식·서광범과 서광범의 조카인 서재필· 박영효의 동생인 박영교·어윤중·유길준 등을 포섭하였다.
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 가 김옥균이 반역죄로 일본으로 망명하자 친일파로 몰리어 구금 되었다가 박규수의 입김으로 다시 풀려났다

박규수는 어떤 사람 인가 하면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수교를 요구 해오자 그는 최익현 등 국가가 일본과의 수교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 하다며 일본과의 수교 반대 하는 주장을 물리 치고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하여 강화도조 약을 맺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의 문호개방 주장은 개항을 위한 조선 내부적 준비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선 일본과 조약을 맺믄것 만이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의 하나 라고 주장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큰 실수였다

어쨋든 그는 사간원 정원, 동부승지,도승지,예조판서, 한성판윤,형조판서등을 두루 거친 권력의실세를 스승으로 모신 덕분에 그의 천거로 유길준은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 등을 지냈고, 김홍집내각의 내무협판으로 있다가 , 1896년 내부 대신에 오른사람이었다 .

인사가 즉 만사라고 했다 .
김홍집 4 차내각 구성에있어서 문제점은 외국으로 돌아 다니면서 국내 사정은 어두운 유길준이를 내부대신으로 임명 되었다는 자체가 문제였다 .
유길준은 허무 맹랑한 이상주의자였다 .

자기의조국 조선의현 위치는 도외시하고 덮어 놓고 일본과 미국식 제도를 조선에 도입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남들이 백년에 걸쳐 이룩한 문명을 하루 아침에 자꾸어 놓겠다는 발상이었다 .
그는 조선의 현실은 무시 한채로 엉뚱하게도 미국식 지방 자치제 까지 주장한사람이었다 .

계단을 올라 가려면 차례 차례로 첫계단 부터 잘 밟아 올라가야 한다 .
그러나 유길준은 허무 맹랑하게도 수박 겉 핥기식 정책 노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일본에 있을때 사귄 경응의숙 동문들과 교류했던 일본 정치인들과도 자주 연락을 취했다 . 그러자니일본 공사관 출입을 자주 할수 밖에 없었다 .

고종이 머리 깎게 민든것도 알고 보면 이노우에의 강력한 권고에 의하여 고종을 쇠뇌아닌 쇠뇌를 한 유길준의 공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노우에는 유길준을 물끄미 쳐다 보았다
" 이노우에 공사 왜그렇게 쏘아 보시오?"
" 대감 진짜 내부 대신으로서 단발령을 시행 시킬 의지가 있는 것이오?"
" 우리나라가 개혁을 하려면 당연 하지요"

" 그런데 이곳에는 왜 오셨소?"
" 일본의 사례를 알아 보러 온것이지요"
" 아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강제가 아니면 안된다고"
" 무조건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놓고 머리를 깎으라는 말씀이오?"
" 일본도 그렇게 해서 성공 했다니까 그러시네 "
"..................."

유길준은 막연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은 머리를 깎았지만 백성들은 꿈적도 하지 않는데 일본 공사는 밀어 부치라는 소리만 반복하니 난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
" 대감 내가 대감께 비결을 가르쳐 드릴가요?"
"무엇이오? 어서 말씀 해 보세요 "
" 조선의 정신은 어디서 나오고 있습니까?"


"글쎄요"
" 충효 사상의근본은 공자 말씀이지만 조선의 정신은 전통적으로 유학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요.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는것은 그렇다치고 아직도 조선 사회는 충효사상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 충효 사상이 무업니까 ?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것 아닙니까? 대감이 우리 일본과 미국에서 배워 온것으로 그러한 충효사상을 깨뜰인다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습니다 . 바위는 계란으로 깰수가 없습니다 , 강력한 망치가 필요 합니다 . 대감께선 단한번에 망치질을 잘하셔야 개혁을 할수있습니다 "
"..............."

"망치로 바위를 깨려면 아무데나 때리면 안됩니다 .정조준을 해야겠지요 "
"정 조준은 어디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보수 꼴통부터 쳐야지요"
"보수 꼴통이라니요?"


" 최익현이 말입니다 . 전국 방방곡곡을 주름 잡는 유림의 두목 말입니다 "
" 말씀 과하시오 . 아무리 최익현이가 밉기로서니 꼴통이니 유림두목이니 하시는 말씀은 ...... ........."
"허허 대감 , 내가 잠간 흥분하기는 했는데 그 부분은 사과하겠소 . 그러면 대감은 이대로 나갈것이오? 본국에보고하여 무슨 조치를 해도 해야겠는데......"


본국에보고하여 조치한다는 말에 유길준은 당황하였다 .자기를 밀어주는 일본 공사의 말을 거부 했다고 찍히면 그나마 내부 대신 자리라도 빼앗길가 두려워서 였다 .
"알겠습니다 . 내 최익현이의 상투를 잘라서 보이겠습니다 "큰 소리는 치고 나왔지만 유림 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그는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 탁지부 대신 어윤중과 유림에 대한 당면 문제를 우선 상의 하기로 하였다 .\


당면 문제란 유림을 굴복 시켜 단발령에 따르게 하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설득 아니면 강권 발동 밖에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
유림 사회 대표자나 대유(大儒)로서 영향력 있는 선비 최익현을 굴복 시키면 기타 선비들이나 샌님들은 따라 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

그러나 단발령을 시행 하려면 유림만 가지고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않았다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이의를 제기한다 .
" 유림만 가지고 안 됩니다 . 우리 대신들 부터 문제가 있어요 . 모두들 머리를 깎았는데 학부대신 이도재 대감만은 끝까지 머리를 깎지 않는다는데 유림을 앞장서 설득해야 할 사람이 저러니 일이제대로 되겠습니까? "
정병하가 묻는다 .
" 도대체 이도재 대감이 머리를 깎지 않겠는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도 일본과 같이 발전 해 보자는 것인데.... "

어윤중이 대답 한다
" 우선 학부대신이 주장 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위급하여 임금이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도 부족 할 판에 소위 개혁 정부가 연호를 벼란간 바꾼 다는 것은 왕조나 임금이 바뀔 때나 쓰는 개원을 하자는 것인데  개혁 이라기 보다 기득권적인 벼슬 자리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얕은 수작이라는 것입니다 .또  단발을 하자는 것도 일본 공사가 군대를 동원하여 위협을 가하면서 개혁 하라고 구실을 붙여 우리나라 내정을 간섭 하려는 계획이니  그러한  음흉한 계획에 절대 말려 들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


유길준이 되묻는다 .
" 대신이 되어가지고 무슨 낯으로 벼슬자리만 차지 하고 앉아서 국가의 녹은 꼬박 꼬박 받아 먹으면서 내각의 시책은 따르지 않겠다는것은 무슨 심뽀 입니까? 단발령도 전하께서 시범을 뵈이셨는데도 말입니다 "


" 그의 주장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머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풍속이 있어서 하루 아침에 이를 강행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무대신 유길준이 내밷듯이 말한다
" 보수 꼴통 같은 ......"
어윤중이 놀라 묻는다


" 대감 , 학부 대신을 보고 그런 막말을 해도 됩니까? 그래도 같은 동료 끼리..."
" 동료는 무슨 동료요? 개혁을 거부하는 자들은 없애 버려야해요"
" ......................."

유길준 입장은 학부 대신 이도재에 대한것 보다도 이제와서 이미 공포 단행 하기 시작한 단발령을 철회 할수는 없었다 .
"강제라도 밀어 부치지 않으면 안되오"
정병하가 어윤중에게 묻는다 .


"최익현이가 지금 사액서원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
"왜요?"
" 서원 토지를 몰수 해서라도 압력을 가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
" 그 사람 전하가 토지를 주어도 토지를 받을 사람입니까? 그사람  국가에서 받은 토지가  있을턱이 없어요. 국왕께서 지난 날 국내부 특진관으로 불르려 해도 오지 않았고 ,의정부 참정 대신을 준대도 싫다 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 관찰사를 제수 한대도 싫다 한 사람 아닙니까?"

" 그러면 국가에서 하사 받은 토지가  전혀 없다는 말이지요?"
" 자기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것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
" 정말 골치 아픈 사람이구먼 ..."


" 그렇다면 그 사람 달래는 방법은 단 한가지 길 밖에 없어요"
" 그것이 무엇입니까?"
" 강압적으로 압력을 가하든가 실력행사 밖에 없어요"

" 그건 그렇고 단발령을 내려 놓은이상 이렇게 최익현이 얼굴만 쳐다 보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무슨 조치라도 해야지..."
" 맞아요 . 최익현은 유대감께서 책임지고 하시되 백성들 전체에 대한것은 군부대신과 유대감께서 일본 공사의 힘을 빌려 일본군과 협조하여 전 백성들을 상대로 단발을 밀어 부칠수 밖에 없어요 . 다만 최익현은 좋은 말로 타일러 보다가 끝까지 듣지않을때는 그때는 순검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잡아오는수 밖에 없어요"

다음 날 경무사 허진(許璡)은 경찰들을 거느리고 장검을 휘두르며 길가는 사람 만나는 족족 잡아다가 상투를 잘랐고 집에 까지 도망치는자는 쫓아들어가 벽장 속에 숨은 사람 까지 잡아 내 만인 앞에서 상투를 잘랐다.

지방에는 체두관(剃頭官)이라는 급조 벼슬을 만들어 파견, 시장에 오는 사람 붙들어다 상투를 잘라 버리는 바람에 장날이 폐시가 되어 물화 유통이 멎고 생계가 위협받기까지 이르렀다.

백성들은 멋도 모르고 집을 나왔다가 집에 까지순검들이 수색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수색을 피해 산에 숨어 노숙하는 바람에 빈 마을이 생겨나기 까지 했다.
서울 장안은 울음소리로 충천하고 시골 선비들은 잘린 상투를 두 손으로 받들고 ‘애고애고’ 통곡을 하며 성문을 나섰으며 큰 거리에서는 상투를 잘려 머리를 나풀거리고 다니는 진풍경까지 자아냈다.

어쨋든 시끄러운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단발 저항 전쟁이 팔도로 번져 갔기 때문이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함경도 까지 번져나가 춘천, 안동, 충주 관찰사가 살해 당하고 의성, 영덕, 예천, 청풍, 단양, 천안, 양양, 고성, 삼수, 저평 군수가 피살 당한 것만 미루어도 민중 분노의 농도를 짐작 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분노 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깎는것 만을 분노한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전통 파괴라는 명분 과 그 아래 깔린 일본 침략 의도를 모두 감지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단발령은 계속 되는 일본공사와 일부 친일 대신들의 집요한 단발 압력에 못이겨 고민 하다가 겉으로는 고종의 자의 라지만 사실상 일본당국과 친일 각료의 압력에 할수 없이 표면상 머리를 깎은것이다.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몇사람을 빼고 내각 전체의 의사도 이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야만적인 행동에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분개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러한 진상을 잘 모르는 백성들 중에는 당시 일본군의 앞잡이 유길준이 일본군에게 궁성을 포위 하게 하고 대포를 설치 하는등 생길지 모르는 백성들의 분노의 폭발에 대비하게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뒤 유길준등이 임금에게 협박하여 정병하가 직접 임금의 머리를 깎게 했다고 뜬 소문이 자꾸 퍼저나갔다 .
태자도 유길준이 직접 대들어 깎았다고 파다하게 소문이나 있었다.

꽃밭에 불 지르듯 유길준은 내부고시를 통해 당일로 전국 방방곡곡에 일제히 단발령을 포고하였고 그와 동시에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에 걸쳐 정부 각부의 관료와 이속, 그리고 군인·순검 등의 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단발을 단행 하였던 것이다.

유길준은 전국이 단발령이 더 시끄러워 질수록 최익현을 회유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
그는 비장한 각오로 경무청 경무사 허진을 불렀다
경무청은 1894년 갑오 개혁 때 좌·우 포도청을 통합해 신설한 관청이었다.
이곳의 으뜸 직책은 처음에는 경찰사라 부르다가 곧 경무사(警務使)로 개칭한 벼슬로 내무대신의 지휘 아래 한성부의 경찰 사무를 총괄 하는 직책이었다
" 허 경무사, 오늘 특별 임무를  하나 부여 하겠소"
" 예, 대감님 무슨 지시입니까?"
" 단발령 시행에 따른 문제 인데....."
" 걱정 마십시요 , 잘 해 보겠습니다 "
" 백성들이 머리를 순순히 깎으려들 하던가?"
계속

큰 소리는 치고 나왔지만 유림 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그는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 탁지부 대신 어윤중과 유림에 대한 당면 문제를 우선 상의 하기로 하였다 .
당면 문제란 유림을 굴복 시켜 단발령에 따르게 하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설득 아니면 강권 발동 밖에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
유림 사회 대표자나 대유(大儒)로서 영향력 있는 선비 최익현을 굴복 시키면 기타 선비들이나 샌님들은 따라 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

그러나 단발령을 시행 하려면 유림만 가지고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않았다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이의를 제기한다 .
" 유림만 가지고 안 됩니다 . 우리 대신들 부터 문제가 있어요 . 모두들 머리를 깎았는데 학부대신 이도재 대감만은 끝까지 머리를 깎지 않는다는데 유림을 앞장서 설득해야 할 사람이 저러니 일이제대로 되겠습니까? "
정병하가 묻는다 .
" 도대체 이도재 대감이 머리를 깎지 않겠는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도 일본과 같이 발전 해 보자는 것인데.... "

어윤중이 대답 한다
" 우선 학부대신이 주장 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위급하여 임금이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도 부족 할 판에 소위 개혁 정부가 연호를 벼란간 바꾼 다는 것은 왕조나 임금이 바뀔 때나 쓰는 개원을 하자는 것인데  개혁 이라기 보다 기득권적인 벼슬 자리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얕은 수작이라는 것입니다 .또  단발을 하자는 것도 일본 공사가 군대를 동원하여 위협을 가하면서 개혁 하라고 구실을 붙여 우리나라 내정을 간섭 하려는 계획이니  그러한  음흉한 계획에 절대 말려 들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
유길준이 되묻는다 .
" 대신이 되어가지고 무슨 낯으로 벼슬자리만 차지 하고 앉아서 국가의 녹은 꼬박 꼬박 받아 먹으면서 내각의 시책은 따르지 않겠다는것은 무슨 심뽀 입니까? 단발령도 전하께서 시범을 뵈이셨는데도 말입니다 "
" 그의 주장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머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풍속이 있어서 하루 아침에 이를 강행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무대신 유길준이 내밷듯이 말한다
" 보수 꼴통 같은 ......"
어윤중이 놀라 묻는다
" 대감 , 학부 대신을 보고 그런 막말을 해도 됩니까? 그래도 같은 동료 끼리..."
" 동료는 무슨 동료요? 개혁을 거부하는 자들은 없애 버려야해요"
" ......................."

유길준 입장은 학부 대신 이도재에 대한것 보다도 이제와서 이미 공포 단행 하기 시작한 단발령을 철회 할수는 없었다 .
"강제라도 밀어 부치지 않으면 안되오"
정병하가 어윤중에게 묻는다 .
"최익현이가 지금 사액서원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
"왜요?"
" 서원 토지를 몰수 해서라도 압력을 가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
" 그 사람 전하가 토지를 주어도 토지를 받을 사람입니까? 그사람  국가에서 받은 토지가  있을턱이 없어요. 국왕께서 지난 날 국내부 특진관으로 불르려 해도 오지 않았고 ,의정부 참정 대신을 준대도 싫다 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 관찰사를 제수 한대도 싫다 한 사람 아닙니까?"

" 그러면 국가에서 하사 받은 토지가  전혀 없다는 말이지요?"
" 자기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것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
" 정말 골치 아픈 사람이구먼 ..."
" 그렇다면 그 사람 달래는 방법은 단 한가지 길 밖에 없어요"
" 그것이 무엇입니까?"
" 강압적으로 압력을 가하든가 실력행사 밖에 없어요"

" 그건 그렇고 단발령을 내려 놓은이상 이렇게 최익현이 얼굴만 쳐다 보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무슨 조치라도 해야지..."
" 맞아요 . 최익현은 유대감께서 책임지고 하시되 백성들 전체에 대한것은 군부대신과 유대감께서 일본 공사의 힘을 빌려 일본군과 협조하여 전 백성들을 상대로 단발을 밀어 부칠수 밖에 없어요 . 다만 최익현은 좋은 말로 타일러 보다가 끝까지 듣지않을때는 그때는 순검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잡아오는수 밖에 없어요"

다음 날 경무사 허진(許璡)은 경찰들을 거느리고 장검을 휘두르며 길가는 사람 만나는 족족 잡아다가 상투를 잘랐고 집에 까지 도망치는자는 쫓아들어가 벽장 속에 숨은 사람 까지 잡아 내 만인 앞에서 상투를 잘랐다.

지방에는 체두관(剃頭官)이라는 급조 벼슬을 만들어 파견, 시장에 오는 사람 붙들어다 상투를 잘라 버리는 바람에 장날이 폐시가 되어 물화 유통이 멎고 생계가 위협받기까지 이르렀다.

백성들은 멋도 모르고 집을 나왔다가 집에 까지순검들이 수색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수색을 피해 산에 숨어 노숙하는 바람에 빈 마을이 생겨나기 까지 했다.
서울 장안은 울음소리로 충천하고 시골 선비들은 잘린 상투를 두 손으로 받들고 ‘애고애고’ 통곡을 하며 성문을 나섰으며 큰 거리에서는 상투를 잘려 머리를 나풀거리고 다니는 진풍경까지 자아냈다.

어쨋든 시끄러운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단발 저항 전쟁이 팔도로 번져 갔기 때문이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함경도 까지 번져나가 춘천, 안동, 충주 관찰사가 살해 당하고 의성, 영덕, 예천, 청풍, 단양, 천안, 양양, 고성, 삼수, 저평 군수가 피살 당한 것만 미루어도 민중 분노의 농도를 짐작 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분노 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깎는것 만을 분노한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전통 파괴라는 명분 과 그 아래 깔린 일본 침략 의도를 모두 감지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단발령은 계속 되는 일본공사와 일부 친일 대신들의 집요한 단발 압력에 못이겨 고민 하다가 겉으로는 고종의 자의 라지만 사실상 일본당국과 친일 각료의 압력에 할수 없이 표면상 머리를 깎은것이다.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몇사람을 빼고 내각 전체의 의사도 이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야만적인 행동에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분개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러한 진상을 잘 모르는 백성들 중에는 당시 일본군의 앞잡이 유길준이 일본군에게 궁성을 포위 하게 하고 대포를 설치 하는등 생길지 모르는 백성들의 분노의 폭발에 대비하게 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뒤 유길준등이 임금에게 협박하여 정병하가 직접 임금의 머리를 깎게 했다고 뜬 소문이 자꾸 퍼저나갔다 .
태자도 유길준이 직접 대들어 깎았다고 파다하게 소문이나 있었다.

꽃밭에 불 지르듯 유길준은 내부고시를 통해 당일로 전국 방방곡곡에 일제히 단발령을 포고하였고 그와 동시에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에 걸쳐 정부 각부의 관료와 이속, 그리고 군인·순검 등의 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단발을 단행 하였던 것이다.

유길준은 전국이 단발령이 더 시끄러워 질수록 최익현을 회유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
그는 비장한 각오로 경무청 경무사 허진을 불렀다
경무청은 1894년 갑오 개혁 때 좌·우 포도청을 통합해 신설한 관청이었다.
이곳의 으뜸 직책은 처음에는 경찰사라 부르다가 곧 경무사(警務使)로 개칭한 벼슬로 내무대신의 지휘 아래 한성부의 경찰 사무를 총괄 하는 직책이었다
" 허 경무사, 오늘 특별 임무를  하나 부여 하겠소"
" 예, 대감님 무슨 지시입니까?"
" 단발령 시행에 따른 문제 인데....."
" 걱정 마십시요 , 잘 해 보겠습니다 "
" 백성들이 머리를 순순히 깎으려들 하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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