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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가 일본으로 도망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흥분 한 것은 민비였다
"이 나라에는 군사도 없고 경무청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도대체 새로 임명된 안경수란자가 뭐하고 있는 것이옵니까?"
민비는 박영효 체포에 실패한 책임으로 신임 경무사 안경수를 파면 하라고 고종에게 요구하였다.

고종 입장에서는 당장 그를 파면 할수 없는 입장이었다 . 왜냐하면 임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도망치게 한것도 알고 보면 안경수에 책임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일본 공사관에는 그동안 대리 공사로 있던 스기무라 서기관이 물러 나고 전에 공사로 있었던 이노우에가 다시 조선에 부임하였다 .
이노우에가 조선에 다시부임 할때는 일본을 한 때 떠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저있었다 .

조선에는 각국 공사가 모두 들어와 있었다 . 그들은 일본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있었다 .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 날 이노우에가 아니었다 .
이노우에는 각국 공사를 자극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선을 요리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
우선 국왕을 내 편으로 만들 던가 아니면 국왕을 감싸고 있는 자들을 몰아 내는 방법이었다 .
더구나 조선에는 민비가 도사리고 있었다 .

어쨋든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 드냐 ?
조선이 일본을 가깝게만 해 준다면 대원군이고 민비고 다 필요 없는 존재들인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니 문제였다 .
이노우에는 고종이나 민비가 일본을 지금 까지 멀리 하는 것이 일본의 최근 정책을 다시 돌아 볼 계기를 만든 것이다 .

그동안 일본은 청나라나 조선에 서구 제국의 제국주의적 사고 방식을 그대로 모방 두나라에 군사력을 이용 압력을 가하여 전쟁을 이르키되 전쟁에 진 두 나라에 배상을 요구 하는 것이 상례였다 .
주지는 않고 빼앗기 만 한 것이었다 .

지금까지 조선에 대한 압력은 일본의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이노우에는 고종과 민비가 같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하루는 지금 까지의 일본 정부의 태도와는 정 반대의 제의를 해왔다 .
"전하, 우리 정부에서 조선 재정의 어려움이 모두가 일청 전쟁의 영향으로 피해 본것으로 보고 우리 정부가 조선 정부에 300 만원을 원조 해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
물론 본국의 허락도 없이 던진 말이었다 ,

고종과 민비가 예상 외의 일본이 도와 준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지었다 .
그럴수 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은 지금 형편으로 백성들로 부터 세금을 뜯어 낼 입장이 못 되었다 . 내탕금도 바닥이 나서 보통 곤란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
조선은 대원군이 이미 돈주머니를 비워 놓았다 .
돈 주머니가 빈 나라에 재정의 축적이란 있을 턱이 없었다 . 백성들로 부터 걷는 세금 보다도 쓰는 것이 많으니 남아 도는 돈이 있을턱이 없었다 .

매일 뺏을 궁리만 하던 일본이 300 만원이라는 돈을 원조라는 형식으로 기부 해준다니 이 얼마나 좋을까? .
아, 조선, 왜 이 지경 까지 되었을까 ? 최익현이 일본공사의 이러한 제의를 들었더라면 어떻게 나왔을까? 그는아마 불의의 재물은 뜬구름 만도 못하다고 갈파 했을른지도 모른다 .

여하튼 고종도 민비도 다한께 기뻐하며 모두가 일본공사의 덕택이라고 칭찬을 잊지않았다 .
이 모두 소위 개혁을 떠들며 온 나라의 경제를 파탄 시키고 백성들로 부터 세금 걷기에 혈안 되었던 대원군의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하 이번에 드리려는 돈은 공개적으로 드리는 돈이 아니라 비밀리에 드리는 돈으로 제국 국회에서 다른 명분으로 의결을 받아 야하기 때문에 늦게 드리면 효력이없을것 같아 가급적이면 예비비에서 우선 비밀히 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예비비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우선 먼저 준다는 뜻인 것은 고종이나 민비도 알아 채렸다
"뭐 그렇게 까지 서두르지 않으셔도 괞찬습니다 "
고종은 어서 빨리 돈이 왔으면 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않았다
"아닙니다 , 제가 일본에 신병 치료차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또 총리와 만났는데 조선의 혼란의 원인이 대원군의 실정 때문이 아니냐고 하시면서 지금은 조선 왕께서 친정을 하시면서 조선 사정이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재정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데 도와 주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선은 왕후폐하의 내조가 주효하여 나라 가 안정 되니 조그만 원조 해 드리면 일어 날수 있다고 상주하여 얻어 낸 결과입니다 "

"고맙소"
이노우에의 말에 고종보다 민비가 더 좋아했다 .
궁중의 내탕금의 고갈로 고통을 받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
야삭 빠른 이노우에는 물러 나오면서 값진 보석을 하나 받치는 것을 잊지않았다 .
고종도 민비도 오래간 만에 일본공사에 대한 선입감을 없앴다 .

이무렵 대원군이 칩거하고 있는 별장 아소정에 귀양 살이에서 사면 된 이준용이 찾아왔다 ,대원군은 손자를 얼싸 안았다 .
이 모두가 자기 탓이었기 때문이었으니말이다 .
종손이 이지경이 되게한 민비, 대원군 이하응은 자기의 권력 까지 탈취 당하다시피하게한 며느리 중전이 새삼 더 미워지었다

이하응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다시 권력을 잡아서 며느리에 대한 원수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 하였다 .
이번에 종손 이준용이가 석방 된것도 알고 보면 일본공사의 덕택이었다 .
일본정부가준다는 300만원이 고종에게 전달 되기 전에 일본 공사 이노우에가 일본정부로 부터 전격 교체 명령이 떨어지었다 .
정말 웃기는 일본이었다 .

이노우에공사 후임으로 온 미우라라는자는 군대에서 제대한 장교 출신으로 무뚝뚝한자였다 .
스기무라 서기관에게 조선 조정의동태를 보고 받은후 고종에게인사만 하고 새로 이사간 남산 밑에 있는 왜성대 공사관에서 책만 읽고 있는 외교관으로서는 이노우에와정반대 성격의 소유자였다 .
기증금 300만원에 대한 말 일언반구도 없었다 .

그렇다고 고종과 민비가 먼저 300 만원이 어찌되 었느냐고 물어 볼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 이노우에가 분명이 300만원은 비밀히 예비비로 준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이놈들이 기증금 300만원 감언이설을 하여 바람을 집어 넣고 공사를 전격 교체하여 흐지부지 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민비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
돈 쓸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
고종도 차마 새로 부임한 미우라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하기 싫었다 .

"중전 , 돈 쓸 곳이 많은데 곤란 하시겠소"
"아닙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교활 한지 몰랐습니다 . 일본을 멀리하고 돈 많은 미국이나 러시아가 있지 않습니까? 정 뭘 하면 두나라에 원조를 요청 해도 괞찬습니다 "
"미국과 아라사를 가까이 하기가 곤란한점이 있어요 .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아서...."
"전하 , 코가 크고 키만 컸지 왜소한 일본놈들 보다 났지요"
"허허....."

두 사람은 일본 공사 교체로 돈을 못받자 허탈한 웃음을 웃을 일 밖에 없었다 .
미우라가 두문 불출 한다고 해서 미우라를 이노우에 보다도 비활동적으로 우직한 사람으로 보았다가는 큰 코다친다

미우라는 무슴 꿍꿍이 속인지 일본 공사관 직원을 통해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 소위 정동 클럽에 드나 들며 서양인들과 접촉이 빈번 하다는것, 훈련대의 동향, 대원군의 불만 어린 칩거, 러시아 공사가 본국과의 빈번한 출입국 상황등 ..
미우라는 이러한 조선의 최근 동향을 그대로 방치해 둘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

서울의 정치 판도가 밀본에게 불리하게 돌아 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그가 수집한 정보 분석이었다 .
그는 우선 최근 러시아 공사와 자주 접촉 하는 민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
또 조선 조정의 모든 의사 결정은 민비의 입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도 인지 되었다
조선 속담에 천길 물속은 알아도 계집 마음속은 모른다했다 . 그에게 설명하는 스기무라 서기관의 민비관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자로 설명하고 있다 .
"각하 , 수레와 여자는 쉽게 움직이지 못 한는 다는 속담이 있지요 민비를 생각대로 조종 할수 있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
이러한 스기무라의 말을 미우라는 동의하지 않았다 .

( 이노우에와 네 가 그따위로 했기 때문에 민비가 만만히 보고 우리를 가지고 노는것이야........)
미우라는 스기무라를 경멸의 눈으로 쳐다 보았다

미우라는 군인 출신이다 .
앞서 공사로 있었던 이노우에가 조선의 오래 근무하면서 조선인들의 생리에 맞게외교 활동을 벌려 왔던 반면에 그는 그는 전형적인 일본인 근성으로 조선에 접근하고 있었다 .

일본인들은 본래 자세한 부분을 중시하는 반면에 전체를 보지못하는 특성이있다 .
미우라야 말로 전형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
그는 평소 군대 생활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 까지 파고 드는 일본 군 장교 다운 세밀함이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이야말로 다른 일본인과 다른 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쨋든 그도 전형적인 세부만을 중시하는 나머지 전체를경시하는 발상을 하게된다 .
그것은 그가 읽던 책을 집어 던지고 혼자말로 짓거린 말에서 나타 났다
"그래, 당장 여우를 사냥해서 없애야한다"
여우란 민비를 지칭 하는 말이었다 .

(민비를 당장 해치우면 조선 조정은 갈팡 질팡 할것이고 여기에 실세였던 대원군을 끌어 들인후 개혁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세워 모든것을 일본 천하화 한 다음에 그다음에는 대원군을 몰아낸다 ....다음은 ...)

그이 현실적 각본은 그럴듯하게 보일런지 모른다 .
그러나 세계각국의 여론과 새로운 세력인 러시아 그리고 조선 국내의 유생들은 염두에두지않은 외골수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군대 물만 먹고 있었던 미우라의 좁은 시야가 도박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

(여우 사냥을 한다...........)
미우라는 혼자 창밖을 내다 보았다.
(그렇다면.... 군대를 동원해?)
그것은 안되는 소리였다 , 군대를 동원하면 여론이 더 악화되어 역효과를 가져 올지모른다 .
(암살?)
그러나암살도 쉽지않았다 . 궁궐 은 민비에 충성하는 시위대가 첩첩히 지키고있기 때문이었다 .
미우라는 일본군 특유의 정면 돌파 방법인 돌격 전법을 생각해 내었다 .
그러자면 결사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선에 나와 있는 일본군 중에는 그럴만한 위인들이 없었다 .
이런생각을 하고있다가 책상위 한쪽에밀어놔두었던 한성 신보라는 신문에 눈길이갔다
(아다치 겐조?)
아다치 겐조 (安達謙藏)는 한성신보(漢城新報) 사장이다.
한성신보는 확실한 창간 날짜는 알 수 없으나, 1894년경 일본어로만 발행 하다가 1895년 1월 22일 부터는 4쪽 가운데 3쪽은 국한문 혼용기사였고, 1쪽은 일본어로 발행 하고 있는 신문이었다 . 이 신문은 일본 외무성이 한반도의 침략을 위하여 기밀 보조비를 지급해서 경영을 도웁고 있었다 ,
말이 신문사 이지 조선에 나와 있는 소위 저들이 말하는 낭인,건달들의 집합소나 다름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아다치 겐조 등 민간인이 맡아 운영하였으나 일본 정부의 조선 침략을 위한 신문이었다 .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보다 먼저 창간 된 신문이었다

미우라는 아다치를 일본 공관으로 불렀다 .
"아다치군, 듣자니 한성신보에 용감한 친구들이 많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사실이오?"
"예 , 미우라 각하"
"각하? 내가 어째서 각하인고?"
"외무대신 께서 공사님을 각하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
"그래......"
미우라는 외무 대신이 자기를 각하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말이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별로 싫은 소리가 아니었다 .
일본이라는 나라는 둘만 모이면 상하 관계가 생기는 특질이있다 소위 오야붕과 꼬붕으로 나누어진다 ,
이것은 그들의오랜 지배와 복종의 문화의유산이었다 , 둘 이상만 있으면 절대로 동등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며무조건 오야붕과 꼬붕.이 성립된다 정말 웃기는것은 친구 들사이에도 그런관계가 성립된다

미우라는 조선을 자기들 관계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자기들은 오야붕이고 조선을 꼬붕으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지금 오야붕 미우라와 아다치는 꼬붕으로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고 있었다.
미우라는 조선이 자기네들과 다른 대등관계에서 조선인의 특성상 강압에 굴복하지 않고 잡초 처럼 일어나는 민족이라는 것을 미리 간파 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후일 일본의 가혹한 식민정치 앞에서도 3.1 운동 등 불굴의 독립운동을 펼친것이아닌가?

"각하, 별안간 용감한 친구들은 왜 찾습니까?"
" 이사람 내가 전투에는 용감 하기로 소문난 사람 아닌가? 쓸곳이 있어서 그러네..."
"결사대를 말씀 하시는 군요"
" 죽음을 각오 하는 결사대 말이야"
"물론 있습지요"
"그러면 됐네 .그 자들을 시켜서 여우 사냥 좀 해야 겠서"
"예?....여우 사냥 이라니오?"
"옥호루의 그 여우 말이야...."
아다치는 미우라의 말 뜻을 알아 채리고 또 한번 놀란다 .

"민 중전을요?"
"그래 해 치우는 것이야"
"하지만 한 나라의 국모를 ...."
"국모는 무슨 얼어빠진 국모야 ...이명령은 이또 총리로 부터의 명령이다 "
미우라는 큰소리를 버럭지르면서 벽에 걸어 놓았던 일본도를 잡아 뽑는다 .
"이또 총리의 지시는 천황 폐하의 명령이나 다름 없다 . 우리는 오로지 천황 폐하를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여야 한다 . 만일 자네가 내 명령을 거역 한다면 천황폐하의 명령을 거역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거부하면 이칼로 천황 폐하의 이름으로 네 목을 베겠다 알겠나?"

아다치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
금방 이라도 자기목을 내려 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
이날 일본 공사관 밀실에서는 미우라 공사를 비롯하여 스기무라 서기관, 아다치 한성신보사장, 구스세(楠瀕幸彦) 중좌, 아다치 꼬붕인 낭인 두목 오까모도 (岡本 柳之助)가모여 조선 왕비를 죽일 어마 어마한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
미우라의 여우 사냥 작전 계획을 설명하자 구스세가 의견을 내 놓는다 .
"미우라 공사 각하 , 민비를 죽이는 것이나 쉽지 않으나 그 후의 대책을 어찌 하시렵니까? 우리 일본인들이 조선의 왕비를 죽였다면 조선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 하겠습니까?""

" 걱장말라 , 대원군과 민비가 사이가 나쁘 다니까 대원군을 이용 하려는거다 .먼저 이일을 꾸미기 전에 우리 교육을 받은 조선 훈련대가 민비를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킨것 처럼 해야하기때문에 물론 대원군을 앞장 세워야 하겠지...하지만 그 훈련대 놈들 믿을수 있나? 다 조선놈 들이라 언제 배신 할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행동을 개시 하되 성공 하면 즉각 대원군을 다시 정계에 복귀 시키면 된다 .그러면 조선 백성들은 이모두가 대원군 짓이라고 의심 한다는 말이야. 그렇게되면 우리 임무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끝나지 ...."
"................"
모두가 긴장 되어 말을 못 받는다

미우라는 답답 하다는 듯이 다짐 받는다 .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
미우라는 당장 공덕리 별장에가서 대원군의 의중을 떠 보라고 하였다. 이 일은 오까모도가 맡았다 .
오까모도가 대원군을 찾았다
"자네 웬 일인가?
"한성신문 기사감 좀 취재 하려 왔습니다"
"골방에 갇혀 있는 내가 취재 대상이나 되는가?"
"오늘 나에게 취재감은 무엇인가?"
"사실은 "

오까모도가 오늘 따라 태도가 이상하다
"대감님 ,오늘 찾아 뵈온 것은 다름이 아니 오라 조선의 부스럼을 도려 내는 것이어떨까해서 여쭤 보려 왔습니다 "
" 조선의 부스럼이라니?"
"중전께서 매일 개혁이니 쇄신이니 하면서 조선을 사지로 몰아 넣고 있으니 부스럼이 아닙니까"
비록 일본인 이지만 오래간 만에 자기 마음을 알아 주는 실속 있는 말에 오까모도의 말이 마음에 닥아왔다
"그래서...."
"우리 공사께서 부스럼을 도려 내겠답니다 "
".................."
대원군이 이 말에는 무응답이었다
" 대신 합하를 다시 모시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

"이사람,나는늙었네 "
" 조선의 국모를 해치우겠다 ....."
" 조선의 국모는 무슨 국모입니까? 교활하기 짝이 없는 ....."
"이 사람 말조심하게"
" 대원위 합하, 오랜 염원이든 국정 개혁을 방해하는 여우를 없애 버리고 직접 친정을 하시어 야지요"
" 여우 라니"
"이번 공작을 여우 사냥 이라고 했습니다 "
".................."
"저희들도 생각하다 못하여 선택 한것입니다 "
결국 대원군은 이 사실을 사전 알고 있으면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자기가 일본인 들로 부터 이용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시 권력의 자리로 돌아 갈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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