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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jpg

 

 

사천년 맺은 결심 마음속에 새겼 거늘
운명이 가야 할 슬픈 길인가?
들에 핀 들국화야, 모진 눈보라가 친다해도
나 그대로 이 자리에 서 있겠노라
다가 오는 새 봄이 올때 까지

사천년 맺은 결심 마음 속에 새겼거늘
운명이 가야 할 슬픈 길 인가?
아, 이 순간은 아름다운 고통
나 이제 가노라 ,다시 서리라.이땅에
다가 오는 새봄이 올때 까지

사천년 맺은 결심 마음 속에 새겼거늘
운명이 가야할 슬픈 길인가?
한송이 두송이 쏟아지는 눈송이
세월은 낮 설어도 눈 송이는 낮 익어
나 이제 그대로 이 땅에 서 있겠노라
다가 오는 새 봄이 올때 까지


왜놈 헌병 취조관 히라다(平田) 최제학에게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를 친다
“네가 감히 사실을 숨기려 하느냐.”
최제학이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같이 부릅뜬다
" 무엇을 숨긴다는 것이냐"
"너희들을 조종하는 사람 말이다 "
"조종을 누가 누가 한다는 말이냐 ? 내가 쓸어저가는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 한 일이다"

히라다가 다른 헌병에게 눈짓을 한다
다른 왜병이 노끈으로 최제학의 두 손목을 매고 따귀를 때리고 다리를 차곤 하면서 바른 대로 대라고한다

“ 이놈들 너희들이 을미년에 우리 국모를 시해하고 을사년에 우리 임금을 협박하여 우리 강토를 빼앗고 우리 삼강 오륜을조차 무너뜨렸기 때문에 나는 스승님을 모시고 군사를 일으켜 너희 원수놈들을 섬멸 해서 우리 민족의 원한을 씻으려는 것이다.”
하였다.
히라다가 다시묻는다
“그러면 배후 없이 너희들 열 세명 만이 모두 공모 했다는 얘기냐.”
“그렇다.”
“누가 주모자냐.”
“내가 주모자다.”
" 이놈 ,네가무슨 주모자야? 주모자를 바로 대란 말이야"

히라다가 말하는 주모자는 크게는 고종을 지칭 하는듯하고 작게는 최익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
또 고문이시작되었다 .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숨을 쉴 수 없었다.
최제학이 기운을 가다듬고 반박한다

“이 교활한 왜놈들아. 어찌 네 칼을 뽑아서 내 목을 치지 않느냐. 내 목은 칠 지언정 내 뜻을 빼앗지는 못한다. 빨리 나를 죽이라.”
고 하니 히라다가 조선 앞잡이이종원을 시켜 가둬 두게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밝혀 내라고 지시 하였다
30 일 . 왜적 히라다가 또 최제학을 끌어다가 문초하였다 .
“김기술·고석진이 혹시 주모자가 아니냐.”
“어찌 꼭 김기술과·고석진 두사람 만이겠느냐. 이 일행 중 열 세명이 모두 주모자다.”

“네 스승 최익현이가 의병을 일으킨 주모자가 확실 한데 분명히 너희들은 의병 이라고 주장 하지만 분명히 역모인데 80 세 가까이 늙은 너희 스승이 나서겠다면 말리지 않고 도리어 너희들이 앞장 섰다니 너희 죄를 네가 모르겠느냐?.”
최제학이 눈을 부릅뜨고 말 한다
“너희들도 역시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인간인 이상, 당연히 어떤 일이 충성 된 일이고 어떤 것이 역적질 한다는 것은 구분 할줄 알 터인데, 네가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비록 네가 어둡고 세상 일을 모른다고 치부 하더라 라도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른단 말이냐.”

“네 스승이 상소 할 적에 집필한 자는 누구며, 가져다 바친 자는 누구냐.”
“사람 마다 각각 제 임금을 위하고 제 나라를 위하는 법인데, 우리 스승이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임금에게 상소한 것인데 네 왜적 놈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나는 이미 알아 보았는데 혹시 . 방조자가 최영설이 아니냐.”

" 우리스승이 우리 임금에게 직접 상소 했다는데 선생님 조카 이름은 왜 들먹이느냐? "
“너는 초모관(招募官)이 되고, 고석진은 참모관이 되고, 안병찬은 중군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는데 어째서 바른 대로 대지 않느냐.”
“나는 모르는 일이다. 네 마음대로 해석하라.”

"너희들은 죄가 있다는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무슨죄가 있다는 얘기냐? 돈을 떼어 먹고 도망을 갔다는 얘기냐? 사기를 쳐서 남을 속였다는 얘기냐?"

" 역모죄라는것을 모르는가?"
"네 놈들에게 항거 했으니 역모죄라고 ?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라 .너희 들은 멋대로 해석 하지만 우리는 폐하에게 충성을 다했을 따름이다 "
"멋 대로 해석해?"
"그렇다.우리는 너희들이 말하는 파렴치범이 아니다 .당연히 우리의 주권을 찾기 위하여 일어선 의병이다 "

히라다는 두 왜병을 시켜 독한 매를 수십 대나 때리게 한다
"이놈 전주 대장 한성교(韓聖敎)의 너희들에 관한 조사 보고서가 여기 있는 데도 역모가 아니라고 너는 끝 까지 부인해?.”
“네가 정히 알고 싶으면 왜 한(韓)가 놈에게 물어 보지 않았느냐.”
“이용길의 비밀 칙지 사건도 모르느냐.”
“모른다.”
"이용길이가 그러는데도 그런 말을 부인 해?"
"그런 음해 하는 배신자 놈을 앞세워 꾸며댄다고 우리가 넘어 갈상 싶으냐?"

“네 스승 에게도 비밀 칙지가 있다고 하니 반드시 정부 대관 중에 서로 내통하는 자가 있다. 너는 아는바 있느냐.”
“ 어떤놈이 그런소리를 해?"
"너희들 동족이야"
"나는 모른다 . 그런 말하는 놈은 한국인이 아니다 .설사  비밀칙지가 있다해도, 비록 뼈가 가루 되어도 말 할수 없다 .”

히라다는 웃음을 띠고 그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다음 담배를 권하며 음성을 낮추어 묻는다
“면암 선생이 대 여섯명의 대관과 뜻이 잘 맞는다는 과연 그런가.”
“대 여섯명의 대관이 누구냐.”
하라다는 품 속에서 쪽지를 꺼내어 보여 준다 .
읽어보니 민병한(閔丙漢)·민경식(閔景植)·이봉래(李鳳來)·민형식(閔亨植)·김승문(金昇旼) 등이었다. 
하라다가  평소에 일본에 협조 않는 감정이 많은 한국의 인물들을 엉뚱하게 끌어 들이기 위한 수작이 분명했다

“내 비록 매를 맞아 죽을지라도 얘기인데 그런사람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 ”
말이 끝나자 히라다는 안 되겠는지 또 두 왜병을 시켜 다시 북쪽 감방에 구금하게 했다.

5월 초2일 아침식사 후에 왜병이 최익현을 끌어 내어 인력거에 싣고 갔다가 오정때 감방으로 돌아왔다
명동(明洞)사령부에 데려다가 신문한 것이다.

이날,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가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킨 취지를 물었다 ,
이 자리에서 최익현은 언성을 가다듬어 하세가와에게 꾸짖었다
“이놈들 나의 소신은 모두 상소와 격문 그리고 네 나라 정부에 보낸 기나긴 글에 내용에 다 들어 있는데 새삼스럽게 물을 것이 또 있느냐.너희들 같이 개 돼지 보다도 못한 놈들과는 얘기 할것이 없다 ”

하고 의자와 탁자를 들어 집어던지었다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리니 여러 왜병들은 어찌 할 줄을 몰라했다 .

초4일 .최익현 의 종질 최영설이 최익현을 구제 해달라는 윤4월 12일에 상소한 사건으로 구금 되었다.
유생 정한용(鄭瀚鎔)·이도복(李道復)이 일본인 헌병대장 오다까(大姮丈夫)에게 편지를 보내어 최영설 구속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전찬정(前賛政) 최익현은 는 우리 나라 원로 중신이요, 유림(儒林)의 영수로서 늙은 만년에 조국이 장차 망할 것을 보고 원통히 여겨 의병을 일으켜 너희 원수들을 토벌하려 하였으니 직분상 당연한 일이었다 ,
그런데 너희들은 면암을 사기꾼이나 파렴치범 이라도 되는 양 죄를 뒤집어 씨우려 하는바 이 어찌 대일본이라고 자칭 하는 자들의 할 짓이냐?

더구나 우리 임금이 위에 계시어 칙명이 엄연한 이상, 죄를 다스리고 용서하는 것은 우리 왕명으로 재결할 것이어늘, 네 나라 헌병대가 무슨 법률에 의거하여 면암 선생 뿐만 아니라 조카 까지 사적(私的)으로 가두고 사적으로 공갈치느냐…….더구나 최영설은 면암 선생의 조카로서 당연히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하여 면암의 구명 운동을 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구속을 시키는가? 너희들은 부모도 없는가?"


12일 유생들의 편지가 들여 먹혔는지 조카 최 영설은 석방 되었다
조카 최영설은 석방 되자 이에 굴하지 않고 면암이 일본 정부에 대해 열 여섯가지 죄를 들어 성토한 글월을 만들어 각국 공사관에 전달했다.

17일 하늘도 답답했던지 오래도록 가물다가 비가 내리었다 .
일본 헌병 가나(柯羅祥)란 자가 칼집으로 땅을 그어 시 한 귀절을 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 아, 하늘이 그대들의 충성에 감동하여 비가 내리네 ,
이 비는 비가 아니라 그대들의 눈물이 아니던가?"

25일 최익현은 낮에는 주역(周易)을 보고 밤이면 중용(中庸)·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 등 서적을 외우는데 소리가 모든 감방에 까지 들렸다.

28일 이날에 김기술·임현주·나기덕·최제학·유해용을 북쪽 13호 감방에 합쳐 가두고, 문달환·양재해·고석진·조영선·조우식을 남쪽 5호 감방에 합쳐 가두고, 임병찬·이용길을 7호 감방에 합쳐 가두었다.
그런데 문달환은 혹독한 형벌을 받아 두 무릎이 마비되어 기동을 하지 못하고, 유해용은 매맞은 독으로 부스럼이 생겨 볼기 살이 다 녹아 났으나 태연하게 지냈다.

6월 16일 왜병이 여러 죄수를 끌어 내어 차례로 사진을 찍어 그 얼굴을 헌병대 사무실 안 기둥 아래 붙였다.

18일 임병찬의 아들 임응서(林應瑞)가 아버지를 석방 해 달라는 청원장(請願狀)을 가지고 헌병대에 들어와 자기 아버지를 만나 보고 갔다.

19일 선생의 맏아들 최영조(永祚) 들어와 최익현을 뵈었다.

20일 . 최익현 이하 구금된 여러 사람들을 장차 모두 일본 은기도(隱岐島)로 압송할 모양이라고 한다.

21일 아침나절 왜병이 최익현을 부축해 갔다가 얼마 후에 또 감방으로 돌아와 다시 가두었다.
이날 밤에 최익현은 평일과 같이 글을 읽는데 음성이 조금 변해 있었다.
목이 쉰 사연은 이렇다.
최제학이 조선인 통역 김종원으로 부터 말을 들은 얘기에 의하면 최익현이 취조실에 들어 서자, 저쪽의 소위 일본의 고관(高官)이라는 자가 최익현을 향해 먼저 절을 하였다는데, 최익현은 답례는 하지 않고 크게 그 일본 고관을 꾸짖었다 한다

이때 최익현은
“네 임금 목인(睦仁)이 아비를 죽이고 임금 자리에 들어섰고 이등박문이 너희 임금을 시해 하고 정권을 빼앗았었는데 , 지금 네 놈들이 우리나라 박제순, 이완용등 역적을 도와 폭거를 자행하니 모두 똑 같은 종류가 아니고 무엇냐?

내가 비록 감옥 안에서 죽을 지라도 내 나라는 반드시 너희들 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 다행히 만약 이곳에서 살아 돌아 가게 한다면 나는 다시 군사를 일으켜 박제순.이완용 같은 역적 놈들을 무찔러 없애고야 말겠다.”

하면서 목침을 들어 마루판을 치며 탁상의 홍보를 끌어 땅에 던지니 저 쪽의 소위 고관이란 자가 한참 동안 밖에 나가 있다가 헌병을 시켜 감방에 단단히 가두게 하였다는 것이다.

25 일 오후 4시 경에 파수 보는 헌병이 감옥 문을 열고 구금 된 열 두명의사람을 끌어내어 뜰 앞에 열지어 세운 다음, 쌍 노끈으로 연대에 묶어서 필동(筆洞)으로 향했다.

최익현은 의관을 단정히 하고 인력거를 타고 앞서 가서 진고개(泥峴) 사령부에 당도하니, 저쪽의 소위 육군 이사관(理事官)이라는 자가 선생을 부축하여 의자에 앉혀 서로 향하고, 임병찬 이하 열 두명의 사람은 모두 북으로 향하여 열지어 섰다.
이윽고 세명의 왜놈이 나란히 앉아서 선고서(宣告書)를 읽는데 그 선고서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피고 최익현은 평소 유생에 대하여 세력과 명망을 지닌 것을 기화로 역도들을 규합하여 통감부 사령부를 비난하고 , 홍주 폭도(暴徒) 민종식(閔宗植)과 내통하여 내란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나 정상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하는 것이다.
최익현은 대마도(對馬島) 감금 3년, 임병찬은 대마도 감금 2년, 그리고 고석진·최제학은 앞으로 본서 감금 4개월, 양재해·이용길·임현주·김기술·문달환·조두식·조영선·유해용·나기덕은 모두 매 백 대를 때려 석방한다.’"
선고서를 읽고서 모두 바삐 좁은문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선고가 끝나자 헌병들은은 도로 여러 사람을 전에 있던 곳에 가두었다.

26일 오전 10시가 넘도록 아침 밥이 들어오지 않았다.
두 왜 헌병이 이 갑자기 감옥 문을 열고 최제학·고석진을 끌어 내어 딴 방에 함께 가두고 김기술·문달환 등 아홉명을 따로 끌고 갔다.

이윽고 앞 뜰에서 왜놈의 호령 소리가 들리었다
“너희들을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나 이또 통감이 특별히 관용을 베풀어 매 백 대로서 처리 하는 것이니, 만약 다시 범죄 할 경우에는 단호히 용서를 않겠다.”
이들은 태형을 받고 일단 석방 되었다


27일 조선 신보라는 일본인 신문에 최익현을 대마도로 압송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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