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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기(閔泳綺)는 1879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다.
그는 1898년에는 군부대신에 임명 되었으며, 서재필의 독립협회에 대항하는 황국협회를 결성하여 독립협회를 해산 시킨 장본이이며 1905 년 을사 조약 당시, 탁지부 대신으로서 조약  체결에는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1908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부총재가 되었고, 이왕직 장관에도 임명 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 된 후 조약 체결에 세운 공을 인정 받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 부터 남작 작위까지 받은  위인이었다.
그는 1916년 조선 총독부 무단 통치 시기에 결성된 대정친목회가 1921년 총독부 문화 통치 시기에 발맞추어 조선인 위주의 친일 단체로 변신할 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같은 해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에도 임명되었던 인물이었다

군부 대신 민영기에게 최익현이 한가닥 희망을 가졌던 것은 1905 년 을사 보호 조약 당시 탁지부 대신으로 있으면서 조약 쳬결에 부(否)를 찍었던 경력 때문이었다 .
그러나 민영기에 대한 임병찬의 생각은 달랐다 .

"선생님 , 군부 대신 민영기가 어떤 사람인데 그 놈에게 우리와 조선 진위대가 합작하여 일본을 치자는 글을 올리십니까? . 그놈 반드시 일을 저지를 놈 입니다 .을사 조약에 부(否)를 찍은 것도  사실은 백성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교활한 수작일 뿐입니다 . 두고 보십시요 "

과연 임병찬의 말이 맞았다 .
후일 민영기는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 노릇을 했으니말이다 .
어쨋든 최익현으로서는 사면초가 신세가 되어 있었다 .
서 북쪽에 위치한 광안리 금산(錦山)에는 일본군이 ,남쪽에 있는 대동산(大同山)에는 전주 관찰사 한진창이가 지휘하는 조선 진위대 . 옥과면에는 광주관찰사 이도재가 지휘하는 조선 진위대가 기회 만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

전주관찰사 한진창은 옥과에 머물고 있는 광주 관찰사 이도재가 의병을 해산 하라는 임금의 칙지를 최익현으로 부터 거부 당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코 웃음을 쳤다
" 병 신 같이....."
한진창은 후일 한일 합방으로 순종이 하야 할때 주도적 역활을 한 인물이었다
뒷날 1907. 8. 1일 훈련원(을지로 6가)에서는 한국 군대 해산식이 있었는데 최익현 창의군 토벌에 혁혁한 공로가 있다 하여 군부 협판으로 승진한 한진창이 순종의 " 한국 군대 해산 소칙"을 낭독 하면서 주위에는 중무장한 일본 헌병과 함께 조선 관군의 계급장을 떼고 약간의 여비를 지급하고 해산 시키게 앞장섰던 주동적 인물이었다 .

최익현은 이러한 한진창에게 편지를 띄었으니 답장이 올 턱이 없었다 .
"네가 일본놈들 이었다면 당장 에라도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동족 이므로 차마 싸울 수 없으니 즉시 물러 가라"
옥과에 주둔 하고 있는 이도재에게와 똑 같은 글을 보내었던것이다 .
한진창에게서 회답이 왔다 .

"원컨데 대감은 민병을 해산 하십시요 .만일 해산을 않으면 내란죄로 물어 토벌을 할 것이니 그리 아십시요 ."
최익현이 한진창의 글을 보니 괫씸 하기 짝이 없다 .
"내란 죄? 적반 하장도 유분수지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팔아 먹는 놈이 내란 죄인가 아니면 나라를 구하려는 우리가 내란 죄인 인가? 임장군 말 해보오"
하고 한탄 한다
"선생님 , 배신자......,................."
임병찬이 눈 시울을 붉힌다
"아, 눈앞의 영달을 위해 큰 몫을 모르는 한심한 동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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