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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jpg

 

 

14일  이른 아침에 최익현은  미리 준비 했던 술과 고기를 내 놓으라 하고   손수 잔을 들어 다음 목표인 정읍 공격을 위하여  한잔씩 들라고 하였다 .
임병찬이 아뢴다 .
"선생님  칼과 활, 창은 죽창 까지  합하여 충분 하오나 총포가  일본군 만 못하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
" 태인읍  무기고에서 나온  총이  몇정이던고?"
"아홉 자루 뿐입니다 .... 총을 다루려면  능수 능란한 사수가 필요한데  탄환도 부족하고....."
" 탄환은 얼마나 되는고?"
" 모두해야 100 발정도가 고작입니다"
"  총과 탄환은  정읍을 점령하면  무기고에서  어느정도 확보 되겠만   총을 다룰수 있는 포수가 있어야  되겠지 않겠나?"
" 그렇사옵니다 "
" 누가 구할수 없나?"
" 있기는 하옵니다만 "
" 누구인가?"
"  흥덕의 고용진이 사는 곳에 최근 조선군이 해산 되면서  낙향하여  있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고용진에게 설득하여 데려 오도록 하면 쾌히 응할것 입니다"

 

고용진 이라면 전라 북도 고창 사람이다 , 1905 년 일제가 강제로 을사 조약을 체결하자  무성서원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키자는데 동참 하자고 나선  인물이었다 .
최익현은  고용진에게사 편지를 띄워 포수를 설득 하여 의병에 가담토록  요청하였다

최익현은  동헌에 좌정하고 의병들에게도  마음껏 식사를 하라고 지시 하고 있을때  임병찬이 흥덕 선비 고용진의 형이 된다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 고공의 형이라 하였소?"
" 예 그렇습니다.고석진이라 합니다 "
최익현은  고용진이 오지 않고  형이왔다는 말에  의아했다
"동생께 내가 서신을 보냈는데  형께서 웬 일이오"
" 동생 고용진이  우선 포수30 명을 확보 하였다고  선생님께 보고하여 드리라는  전갈을 받고 왔습니다 "


포수30명을 확보 하였다는 말에  최익현이 반색을한다 .

"오, 포수 30 명이라 ....그렇지 않아도   태인 무기고에서 나온  총기를 다룰 사람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잘 되었소 . 그래 고공과  포수들은 지금 어디있소?"
"내장산에 집결 해 있습니다 "
" 잘 되었소 .우리가  정읍을  점령후  순창으로 진격 할 예정인 즉 그 곳에서  준비나 잘 하고 있으라 하오"


"선생님 , 또 한가지 간청이있습니다 "
" 무엇이오?"

"우리 집안에 형제들이 모두  의병에 가담 하려 하오니 받아 주시겠습니까?"
동생인 고영진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동분 서주 하는것을 본 형 고석진, 아우 고예진 등이  적극 나서자  그의 집안인 고광순,고광채,까지도 동참하기로 약속 한 것이다 .
" 오,  고맙소 .나라를 위한 일에  고씨 가문에서 이렇게 적극 나서는 것을 보니 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오"

 

이날  창의군은 행군하여 30 리를 가서 정읍 외곽  한교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점심을 먹이었다
임병찬은  정읍으로  진격하여 들어 가기전에 의병들을 시켜 소문을 퍼뜨렸다 ,
( 면암 최익현 선생이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정읍으로  입성한다 . 조금이라도  일본군에게 협조 하는 자는  입성후  모두 처단하려한다 )
( 충신 최익현 선생이  임금을 모시고 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하여 정읍에 입성 하신다)
( 충신 최익현 선생은  모두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 오리를  처단 하려 오신단다  )
정읍 읍내에 집집 마다 소문이 파다 하게 떠돌았다 .

 

정읍군수 송종면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방이  송종면에게  아뢴다
"삿도 , 큰일 났습니다 . 반란군이  우리 정읍 한교에 도달하여 식사 중이라합니다 "
".............."
송종면은 생각 해 보았다 .
면암 최익현은 당대의 유림의  거두이자  임금에게도 서슴치 않고 바른 말을 서슴치 않는  충성스러운 인물이다 .
그러나  지금의 박제순 정부에서의  최익현은  이방의 말대로 엄연히 반란군에 불과하다 .
송종면은 망서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가 선택 할수 있는것은  태인군수 모양으로 도망을 치던가  아니면 최익현을 맞아 들여야 한다 .

 

송종면은  그렇지 않아도  일본군이 자주 군수실로 나타 나 위협을 가하는데 기가  질린사람이었다 .
( 그래 나라가 망하면 군수가 무슨 소용있으랴.....)

송종면은 최익현을 맞아 들이기로서니 죽이기랴  마음 먹고  결단하여  동헌문을 활짝 열어  놓으라 하였다 .
그리고  동헌 섬돌 아래 자리를 깔라 하고  대기 하고 있었다 .
최익현의 창의군이  정읍에 입성 하자  주민들이 나와 대 환영을 하였다 .

이윽고 말에 올라 탄 최익현이 동헌에  들어섰다 
 동헌 아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송종면이  최익현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오실줄 알고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최익현이  말한다
" 송군수 , 일어 나라  . 대역무도한  역적들과 극악 무도한  왜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창의 하였으니 적극 동참하라"
그제서야  송종면이 자리에서 일어나  최익현을 동헌  대청으로 안내한다 .

최익현이 명령한다
" 무기고가 어디 있는고?"
송종면이 이방에게 눈짓을 한다 .
이방이  대답한다
" 예 ...저쪽입니다"


최익현은  즉시 명령을 내려 군기(軍器)·화승(火繩)·탄환 등속을 거둬 들이게 하였다

최익현은 읍내 곳곳에 뜻 있는자   솔선하여 의병에 입대하라고 방을 써 붙이도록하였다 ,
이에 모집에 응한 자가  정읍내에서만 백여 명이었다.
여기서 최익현은  화력이 우수한 일본군이 나타 난후에 벌어질 상황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었다 .
고석진의  포수 30 명을 대기 시켜 놓은  하루라도 빨리 내장산에 들어가  대비하는 것이 시급하였다 
 오후에 행군하여 30리를 가서 내장사(內藏寺)로 들어가 좁은 목을 파수하게 하고 유진하여 밤을 났다.

 

예정대로 흥덕선비 고용진의 형석진이 김재귀,강종회(姜鍾會)와 함께 포군 30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성세가 더욱 떨쳤다. 군사를 점고 한 바 3 백여 명에 달했다
15일  이른 아침에 좌·우익을 갈라서 손종궁으로 하여금 한 바탕 전투 연습을 시키니, 군의 모습이 차차 정돈 되기 시작하였다


온 군사에게 명령하여 조반을 먹게 한 후 다시 순창으로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도중에  귀암사(龜巖寺)로 들어갔다. 지세가 험하고 튼튼하여 군사를 주둔할 만하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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