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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으로 된 대형 압력솥. 그 안에서 하얀 듯 맑은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설렁탕 국물은
 장시간의 인고 끝에 이렇게 태어나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고 위안을 준다.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 온 친근한 음식 설렁탕에 깃든 역사와 맛의 비밀을 알아봤다



설렁탕 음식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1920년대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부터 살펴보자. 
사회 밑바닥 인생의 팍팍한 삶에 얽힌 애환이 뭉클하게 느껴져서다. 
설렁탕은 서민의 대표 음식이 아니던가.

가난에 찌든 채 겨우겨우 살아가는 인력거꾼 김 첨지.
 그에겐 병약한 아내가 있었다. 
설렁탕 국물을 먹고 싶다는 아내였지만 열흘 동안 단 한 푼도 벌지 못한
 김 첨지는 이날도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며 병석의 아내에게
 ‘오라질 년'이라는 욕설을 퍼붓고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침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저녁에 세어보니 당시로는 거금인 30원이 손에 쥐어져 있다. 
횡재했다 싶어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김 첨지는
 설렁탕을 사서 들입다 집으로 내달린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이란 말인가! 
기다리고 있는 건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내였다. 
김 첨지에게 어쩐지 ‘운수 좋은 날’이다 싶던 이날은
 억세게 ‘운수 나쁜 날’이었던 것이다.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설렁탕. 현진건의 소설에서 보듯이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에 설렁탕은
 서민들의 삶과 소망을 함축한 탕반의 대명사였다. 
일상에서 고기 음식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터라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은
 고달픈 마음을 일거에 따뜻이 다독여주는 위안의 힘을 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누구라도 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친근한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 설렁탕의 백미는 뼈다귀 국물, 불 조절이 맛 좌우

설렁탕은 소뼈와 소고기가 중심이 된 탕류 음식이다. 
검은 그릇에 담긴 하얀 국물. 여기에는 역시 하얀 색깔의
 쌀밥과 소면이 담겨 있어 그릇과 절묘한 흑백 대비 효과를 낳는다. 
이와 함께 머릿살과 양지, 만하바탕 등의 고기가 얹히고
 대파와 후추, 소금 등의 재료와 양념이 추가되면
 특유의 맛깔스러움을 더욱 깊게 한다. 
기본 반찬은 깍두기와 배추김치로 비교적 소박·단순한 편.

설렁탕의 백미는 역시 맑은 듯 깊은 맛이 느껴지는 뼈다귀 국물이다. 
커다란 압력솥에 머리 부위에서 다리 부위까지 소뼈를 담고
 물을 넉넉히 부은 뒤 가스 불로 14시간가량 정성껏 끓인다. 
무쇠솥에 장작불이나 연탄불을 지폈던 시절에는
 이보다 10시간이나 더 긴 꼬박 하루 2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의 설렁탕 식당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은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이문설농탕’. 
이 식당의 조리실장인 김학주(61) 씨는
 “설렁탕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불이에요,
  불! 어떻게 끓이느냐가 핵심이지요”
라고 비결을 살짝 귀띔한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탕을 끓이고 재료를 넣는 모습에서 장인의 깊은 연륜과 여유가 느껴진다. 
김 씨가 설렁탕 조리에 뛰어든 것은 1971년께로,
 무려 45년 동안 설렁탕과 함께해왔단다.

 ◇ 임금이 농사의 신에 제사 지낸 선농단이 유래

서양식 퓨전 음식이 날로 각광 받는 시류 속에서도 설렁탕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하다. 
나이 많은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서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식당에서 만난 70대 중반의 손님은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는 설렁탕집에 와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찾았고요.
 그만큼 입맛이 깊게 배어서겠지요”라고 말한다. 
30대 후반의 김 모 씨도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인데도 담백합니다.
 한 그릇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참 커요. 어렸을 때부터 먹어봐서 그럴까요?”라며 웃는다.

친숙한 맛과 부담 없는 가격 덕분인지 설렁탕은
 정치인들의 서민 행보에서도 하나의 상징이자 단골로 곧잘 등장하곤 한다. 
특히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의
 설렁탕 식당 앞에는 끼니때마다 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된다. 
한 야당 대표는 새 수장이 된 뒤 나선 첫 민생 행보 때
 재래시장의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식사했다. 
그만큼 소탈한 서민음식의 상징인 것이다.

그렇다면 설렁탕은 언제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용어도 ‘설렁탕’, ‘설농탕’ 등으로 다양해 그 역사와 배경이 궁금해진다.

먼저 표기부터 살펴보자. 설렁탕은 한때 ‘셜넝탕’, ‘셜렁탕’, ‘설넝탕’, ‘설녕탕’,
 ‘설농탕’(雪濃湯)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다가 요즘은 ‘설렁탕’, ‘설농탕’이 대세를 이룬다. 
이 가운데 ‘설렁탕’이 더 일반적이지만
 ‘이문설농탕’에서 보듯이 음식점에 따라 전통의 명칭을 고수하는 곳도 많다.

설렁탕의 유래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선농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직접 농사짓는 시범을 보인 장소인 선농단(先農檀)에서 비롯했다는 것. 
경칩 때인 양력 3월 5일이나 6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수고한 조정대신과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만든 국밥을 내렸다.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이라고 해 ‘선농탕’에 이어 ‘설농탕’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에서는
 매년 봄에 선농대제(先農大祭)가 열리고 참가자들에게 설렁탕을 나눠주는 행사도 진행된다. 
지명인 ‘제기동’(祭基洞)’은 ‘제사를 지낸 터’라는 뜻이다.

이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설렁탕이 몽골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설도 있다. 
몽골에서 고깃국을 ‘슐루’라고 했는데 이 말이
 한반도에 들어와 ‘슐루탕’에서 ‘설렁탕’으로 음운 변화를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어떤 일을 대충대충한다’는 뜻의 의태어인
 ‘설렁’과 한자어인 ‘탕’(湯)이 결합해 이뤄진 말이라는 설도 있다.
 ‘설렁설렁 끓인 탕’이라는 뜻이랄까.



아무튼 설렁탕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듭난다. 
특히 서울에는 ‘이문옥’, ‘대성관’, ‘사동옥’, ‘이남옥’ 등
 유명 식당들이 번성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식당은 ‘이문설농탕’의 전신인 ‘이문옥’. 
1904년 종로구 공평동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 음식점에는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을 비롯해
 마라톤 선수 손기정, ‘장군의 아들’인 김두한 등 유명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이문’이라는 이름은 마을을 드나드는 작은 문이자 초소였던 ‘이문’(里門)에서 연유했다. 
현재는 1960년에 이 식당을 인수한 유원석(2002년 작고) 여사의 아들
 전성근(68) 씨가 1980년에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이 지금의 견지동 자리로 이전한 것은 2011년.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에는 서울시에 의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설렁탕은 뼈, 곰탕은 고기 고아 만들어

시대 흐름과 함께 설렁탕의 조리 기구와 재료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 왔다. 
조리 기구의 경우 무쇠 가마는 압력솥으로, 연탄불은 가스 불로 바뀌었고,
 해방 후에 추가된 국수사리에서 보듯이 일부 음식 재료도 새롭게 넣곤 한다. 
물론 과거의 목조 건물 또한 대부분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에서 음식이 조리된다. 
하지만 기본 재료와 조리 방법은 대동소이해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설렁탕과 비슷한 음식으로 곰탕이 있다. 두 음식은 어떻게 다를까? 
설렁탕은 솥에 사골, 소머리 등 주로 뼈를 넣고 끓여 먹는 탕이라면,
 곰탕은 뼈보다는 소꼬리, 양지, 내장 등의 고기를 넣고 오랫동안 푹 고아서 만드는 탕을 말한다. 
설렁탕 국물이 가볍고 담백하다면 곰탕 국물은 무겁고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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