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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jpg

 

불의의 참변으로 왕비를 잃은 왕은 지금 까지 일본을 그렇게 까지 보지 않다가 일본을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
그러한 감정은 아버지인 대원군에 대한 불신과 혐오 , 저주로 이어지었다 .

일본은 왕비 시해를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여러 나라 외국 공사가 항의하자 그
때서야 자기들은 왕비 시해를 잘 모르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 조선 훈련대에 가담한 낭인단(浪人團)에 대하여는 죄를 묻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

왕비를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는 베일에 가려진채 일본은 70 명의 난동자들을 일본으로 소환하였다 . 명분상으로는 조선 훈련대에 가담한 죄라 했지만 왕비를 죽였다는 것은 끝까지 부인하였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행동은 내면적으로는 증거를 없애고 이들을 도피 시키려 한것 밖에 다른 이유가 없었다 .

일본은 이 중요한 시기에 일본의 정사를 변리공사로 그대로 둘수가 없었다 .
조선 사정에 밝은 이노우에를 다시 정사로 임명하였다 .
이노우에는 조선으로 출발 하기 전에 조선의 내정을 알아 보았다 .
이노우에는 일본당국이 민비만 없애면 만사가 형통 할 줄 알았는데 각국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가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는 식으로 왕비 시해 사건으로 말미아마 스스로 일본 정부 자신이 위축 되어 있다는것과 결국 조선왕비시해가 일본에게 돌아 온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않을수 없었다
.
다만 이완용등 친로파 세력만 조정에서 없앴다는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일 뿐이었다 .
하지만 그가 노린것은 성취 되었으니 조선 속담에도 있듯이 민비의 벼갯 머리 송사가 없어졌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라 할수 있었다 .

그가 할일은 고종의 후비인 엄상궁을 이용하여 그녀가 벼개 머 리국사에 관여 하지 못하게 하고 어떻 게하면 다음 부터는 조선의500 년 뿌리 깊은 조선왕조를 쓸어 뜨리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느냐 하는 과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그는 세계 각국은이식민지 쟁탈로 혈안이 되어 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다 . 일본은 조선 이야 말로 그들의 탈 아시아 일본 기본 정책의 시험대 정상에 웃뚝서 있는 것이다 .
한데 그에게는 말못할 고충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있어서 조선 왕실을 뒤집어 업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보다 쉬우나 더 큰 문제는 조선의 뿌리깊은 조선사회의 뿌리라 할수있는 사대부들의 저항 의식을 뿌리 뽑느냐가 더큰문제였다 .
뿌리깊은 자존의식이 문제였다 .

(수박 겉 핥기식으로는 조선을 일본으로 만들수 없다 . 근본 부터 파고 들어야 한다 . 조선의 정신을 뜯어 고쳐 놓는 것이 급선무이다 .다음 부터는 무력을 사용하는것이다 )
이노우에는 혼자 무릎을 쳤다
( 조선의 정신을 뜯어 고치려면 조선놈들의 생활 방식부터 흔들어 놓아야 근본적인 식민지화의 밑거름이 된다)

그는 평소 김홍집에게 누차 주장 했던 음력을 양력화 하는것과 상투를 없애자는주장부터 다시 부임하면 주장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일본이 다소 의기 소침 해 있는동안 고종은 그 말썽 많은 훈련대를 끝내 해산하고 시위대에 흡수시켜 친위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

왕비가 죽자 고종은 독이 올랐다 .
왕은 대원군을 멀리하고 김홍집을 위주로하여 일본과 대립의 날을 세우려하고있었다 .
이노우에는 고종에게 직접 알현하여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 대 군주 폐하, 제가 일본에가 있는동안 미우라군 때문에 고통을 당하셔서 그동안 심적으로 고통이 많으셨을 줄압니다 . 이 모두가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
"..................."

고종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 일본 공사고 무엇이고 모두가 보기싫었다 '
"폐하 .그렇지 않아도 왕비 마마 시해에는직접 관련은 없지만 궁궐에서 조선 훈련대 반란을 도운 죄목을 문죄 하기 위하여 구스세, 미우라, 스기무라, 아다찌 등 관련자 70명을 히로시마 감옥에 구금하고 재판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 노여움을 푸십시요 ."
"................"

신북의 최익현에게 김평묵이 찾아온 것은 바로 이무렵이었다
김 평묵은 최익현의 사랑방에 들자 바로 입을 열었다 .
"면암 , 나라가 이 지경인데 촌구석에 만 쳐 박혀 있으면 어찌 하려고 하오?"
" 그렇지 않아도 중암께 찾아가 뵈오려 하던 참인데 잘 오셨오"
" 왕비가 시해 되었다는 사실이나 알고 계시오?"
" 알다 마다요"

" 그런데도 태연 하시니 참으로 한심 하시구료"
" 대원군과 일본 공사 놈이 전하를 잘 보필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오? 허허 "
중암은 면암 답지 않게 너털 웃음을 웃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다 .
" 지금 하신 말이 진정인가?"
" 진정이 아니면 거짓 이옵니까?"

" 예끼, 농담도 유분수지 면암 입에서 어찌 그런 말씀이 나오시는가?"
" 맞습니다 , 지금 까지 한 말은 어느 역적이 짓꺼린 말로 알아 들으십시요. 설마 이 최익현이가 나라 걱정을 소흘히 하겠습니까? "

" 그래, 그동안 어찌 지내셨오?"
" 왕비마마를 일본 낭인들이 시해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상소문을 올릴가 했지만 조금 더 두고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
"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신중 해야 하오"
" ..................."

" 듣자니 면암이 두문 불출하고 독서 삼매에만 빠저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아직도 못 읽은 책이있소?"
" 중암, 요사이 제가 읽는 책은 해국 도지라는 책인데 그 책을 읽고나니 정말 우리나라는 우물안 개구라 라는 속담이 걸 맞습니다 "

" 어떤 책 이이기에....."
" 해국도지라는 책은 중국 청(淸)나라 때 위원이 지은 세계지 인데 내용은 세계 각국의 지세 ·산업 ·인구 ·정치 ·종교 등 다 방면에 걸쳐 서술한 것으로 정말 우리나라도 정신 차려야 하겠습니다 "
" 나도 어렴풋이 듣고 있으나 책은 읽어 보지 못하였소"
" 중암도 한번 읽어 보십시요 , 서양을 비롯하여 동남아 각국, 러시아, 구라파 , 미국등 광범위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 흥미로운것은 서양각국의 중국 서력 이동표(中國西歷 異同表)라는 것인데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 전쟁후에 서양을 보는 견해가 달라지 고 있다는데 의미 있는 책입니다 ."

" 허허, 내용은 무엇 이오?"
" 이 책을 지은 청나라 학자 위연의 서술 태도가 새롭기 때문입니다 "
"뭐슨 태도가 새롭소?"
"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서양의 입장에서 서양을 보려고 한점이 이색적이었소"
"면암은 어떤 점이 서양적 시각으로 봅니까? "

" 제가 최근 서양 책을 읽어 본 것중에는 사회 제도의 유형 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혼인 종교 같이 자연스럽게 사회가 구성되어 가는것도 있고 의도적으로 나라가 백성들을 교육을 시켜 사회가 구성 된다고 하였습니다 .

서양의 사회제도는 왕이나 백성들이서로 의존 하는 것이므로 여러 제도로 분화 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분화는 권력 행사와 관련된 정치 제도, 돈과 일의 분배와 관련된 경제 제도, 예술과 사상에 관련된 문화제도, 가족제도를 꼽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외에 종교제도, 예술제도, 교육제도, 언어제도 등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전체 사회를 유지한 한다는 것입니다 "

"허... 면암은 어디서 그런 책을 구하였소? 우리 조선과는 동 떨어진 꿈 같은 얘기들이오"
" 중암도 한번 읽어 보십시요 이러한 제도 문제는 당장 이나라에고 바람이 불어 닥칠것 입니다 "
" 그건 그렇고 . 면암 , 일본놈들의 사주를 받은 김홍집이 매일 같이 개혁한다며 쏟아내는 정책 마다 이 나라가 일본인가 아니면 과연 조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 말 끝마다 개혁 개혁 떠드는데 한다는짓이 수박 겉 핥기 식이지요""
" 김홍집이가 도대체 개혁 , 개혁 떠드는데 어떤 개혁이라고 생각 하오?
"
" 개혁은 무슨 개혁입니까? 소위 저들이 말하는 명치 유신을 본 받기 위한 내용들 뿐이지요"..
" 그래도 김홍집은 이 조치가 우리나라가 근대화 해가는 과정이라고 큰 소리 치던데..."
."알맹이는 없고 수박겉할기시식 정책이 근대화라 할수 있나요? 전부 일본놈들의허수아비 노릇이나 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개혁만 떠들뿐이지요?"

" 듣기 보다는 면암의 세계관이 영 딴판이로군....세상에서는 면암은 보수적이고 고루한 유학자로서 청나라를 따라야만 유일한 조선의 살길이라고 보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매도 하고 있는데 보기 와는 딴 판이로구려..."

" 매일 같이 잠만 깨고 일어 나면 개혁 개혁 떠드는 자들이 하는 짓이란 모두가 그 반대 되는 짓만 하면서 누구를 보고 고루하니 어쩌니 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 났기 때문에 이 기회에 전하의 지위를 중국의 황제와 대등한 지위로 올려 보자는 사람입니다 .
우선 용어를 공식적인 칭호에서 군주를 대군주로, 전하를 폐하로 높여 부르고 , 명령을 칙으로 , 국왕 자신의 호칭을 짐으로 부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

"군주 얘기가 나와서 말이네 마는 일본도 자기네 왕을 천황이라고 떠드는 모양인데 우리도 저들에게 뒤 지지 않으려면 황제 칭호도 고려 해 보아야 겠구먼..... "
" 당연하지요 .그런 칭호를 쓰려면 지금이 제일 좋은 때 입니다 . 청나라가 물러 나고 일본이 의기 소침해 있는 이때가 아니면 않됩니다 "
" 면암 우리나라가 황제 국가로 명실 공히 새로 명명 한다면 무슨 호칭이 좋을 까?"
" 그야 대 조선 제국도 좋고 , 대한 제국도 좋죠"
"대한 제국이라니?"
" 대한이란 세계에서 제일 큰 강국이라는 뜻이지오. 일본이나 청나라는 자기 나라를 대청국이니 대일본 제국 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나라가 대한 제국 이라면 놀라겠지요 "
" 허,,,,,, ."

" 중암 ,저는 평소 부터 이런 생각을 해 온것 뿐입니다 "
" 면암 , 대한의 한이 무슨 뜻인가?"

" 한은 원래가 단군, 고구려 신라, 백제 시데 대대로 전해 오는 말에서 나온 말이지오 ..고려때 세계를 누비던 성길사한(成吉思汗...징기스칸)도 이름 뒤에 한이라 부르는데 이 모든 말도 알고 보면 고구려 지배하에 있던 선비족이 고구려의 크다는 말을 그대로 원용하여 사용한 한이라는 말이 고구려와 일맥 상통한다고 봅니다 "
"하지만 나라 이름 만 바꾼다고 강국이 될수 있는오?."
"물론이지요 .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 차리 라는 옛 말이 있지요 . 이런때일수록 우리만의 조선 정신이 필요 합니다 . 저는 최근 읽은 해국 도지라는 책에서도 흥미로운 어느 나라에 관한 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 .

중암도 잘아시피 요사이 우리나라에도 천주교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그들의 종주국인 유대교의 발상지에 대한 역사 기록입니다 . 소아시아에 있었던 유대 민족에 대한 것인데 이들은 한때 그 지역에서 나라를 세우고 잘 살았었는데 로마의 침공 하자 대다수의 유대인은 전 세계에 분산 되어 퍼저 살게 됨으로서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서양에서는 나라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큰 유대인들을 보고 유대인은 민족이 아니다. 라고 까지 비하 하고 있읍니다 .
이들은 생활력이 강한 탓에 남의 나라에 들어가 그런대로 잘 살고는 있으나 그들을 각국에서 좋게 보지 않는것이 문제입니다 . 급기야에는 그나라에서는 유대인들과섞여 사는것을 싫어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탄압 하는 나라 까지 생겼습니다 .

나라 없는 설음이겠지요 .
그에 비한다면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도 4천년을 꾸준히 지켜온 나라 입니다 .
제가 계유년 동부승지로 발탁 되었을 때만해도 전하의 춘추가 불과 22세로 세상 물정을 모르고 대원군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을때가 아니었습니까?

그때 저는 동부승지로서 전하에게 불려가 이런 저런 얘기로 소일 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일과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마치 청나라가 종주국 이라도 되는양 청나라에 의존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
그때 저는 전하에게 우리나라는 청나라의 영향권에서 벗어 나야 한다며 조선을 대한국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습니다. "

" 지금 같이 일본놈들의 허수아비 노릇하고 있는 주제에 나라 이름만 바꾸면 나라가 강해진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저는 나라 이름을 바꾸자고 구태어 강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조선이면 어떻고 대한국이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조선의 정신을 일본이나 청나라에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에는 대화 정신 이라는 것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고구려와 신라 백제시대의 정신 유산이 있지 않습니까? . "
" 그대 말이 옳소 . 나도 가끔 그런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만 요사이 일본 공사와 대원군 하는 짓들을 보니역겨워서 ...."
" 듣자니 전하께서는 최근 국명을 대 조선이나 대한으로 바꾸자 하셨다는데 괜한 말씀이 아니었구먼 ........"
" 그 나라 국명은 계유년 전하의 춘추가 22세때 동부승지로 있으면서 제 소견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
"................"

"나라이름은 그렇고 김홍집이가 개혁을 한다면서 일본식으로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고 상투 머리도 자른다는 조치를 연구 중이라는데 그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오?"

" 국명을 대조선 제국으로 바꾸든, 음력을 양력으로 하든 , 상투를 단발하든 얼마든지좋으나 조선 사람의 조선 정신 만은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 나라가 부국 강병이된다음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서두른다면 큰 화가 올것은 뻔합니다 "
" 면암은 조선 정신 ,조선 정신이라고 자꾸만 그러시는데 조선 정신이란 무어요?"
" 앞서 전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저는 부국강병 국가가 되기 전에는 개혁 개혁 하면서 위기감을 조성하여 서두르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
"구체적으로는....?"
"조선은 아직도 대원군 이라는 망령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경복궁을 짓기위하여 백성들로 부터 세금 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내던 장본인이 경제 파탄 책임을 반성 하기는 커녕 오히려 뻔뻔스럽게 일본 놈들과 같이 사인교를 타고 경복궁에 나타나 이 나라의 국모 까지 살해 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

" 그래도 대원군을 지지하는 놈들은 면암을 보수 꼴통이라고 욕지거리하며 오늘도 개혁 개혁하면서 백성들의 눈을 속이고 있지 않소? 그놈들이 오늘 면암과 나의 대화를 들었다면 기절 초풍 할거요...."

" 아까 중암께서 걸핏 하면 갑오 개혁 운운 하셨는데 만일 그들 말대로 개혁 다운 개혁을 하려면 나라를 지킬 군사력 부터 강화 해야 하는데 군사에 대한 조치는 없었고, 대부분 일본이 조선을 침략 하기 위한 발판 만 만들어 주는 꼴이 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정말 한심한 인간 들이지요 더구나 지금 조선의 군사력은 말 할 필요 없이 형편 없는 수준 아닙니까?
그예로 신미 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사망 200여명, 부상 21명이라는 피해를 입었지만,미군의 피해는 사망 3명에 부상 8명이 전부가 아니었습니까? . 일본놈들의 운요호 사건 때도 그래요 ,조선군은 사망 3여명 포로 10명에 달했지만 , 일본군은 겨우 부상자 2 명이 전부가 아니었습니까?
군사력의 뒷 받침이 없는 나라는 대한제국이 황제고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말라 빠진 개혁은 다 무엇입니까?""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에 잡혀 갔을때도 조선군이 아무 저지도 못한 것을 보아도 한심한 나라가 아닙니까?
.지금 하는 짓들을 보면 정말 역겨워 볼수가 없어요"
"허허 ..... 나는 면암댁 에만 오면 할 말이 없소"

요즈음 고종은 심기가 매우 불편 하였다 ,
불의 참변으로 왕비를 잃은 고종은 모든 것이 싫었다 .
대원군도 옛날에 기고 만장하던 대원군이 아니었다 . 정권 탈취를 위해 힘 쓴 이노우에가 시키는대로 김홍집을 시켜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고 훈련대 해산과 친위대 와 진위대로 바꾸는등 수박겉 핥기식 소위 그들이 입 버릇 처럼 말 하는 개혁을 서두르고 있었다.

고종은 정사를 대원군과 김홍집에게만 맡겨 놓고 앞서 왕후를 폐 한다는 조칙서를 다시 가져 오라고 하여 읽어보고 있었다
"과인이 임금으로 있은지 30 여년이 되었지만 과인이 부덕하여 왕후 민씨가 외척들을 끌어 들인후 과인의 총명을 가리게하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하고 개혁 정치는 뒷전이었다.
과인은 이를 통탄히 여기었던바 이 모두가 민씨의 잘못이라 ,

그런데 이번에 나라안에 불온한 사건이 터진 후로 생각 해보니 왕후가 임오년에 충주 까지 피신하었다가 환궁 한 것과 똑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 그러나 왕후가 이번에는 과인을 떠나 끝내 나타나지 않으므로 부득히 왕실의 전례에 따라 왕후 민씨를 폐하고 서인으로 삼는다
개국 오백 사년 팔월 이십 이일

고종은 조칙을 다읽자 훽 바닥에 집어 던지었다 .
"총리 , 이 조칙서를 누가 작성 하였소?"
대원군과 이노우에가 왕비 폐위 발표때는 아무 소리 없던 왕이 자기만 있는 자리에서 조칙서를 바닥에 집어 던지자 김홍집은 당황하였다 .
"대원군께서 ......"
"듣기 싫소 , 승하하신 왕후를 복위 하도록 하오"
김홍집은 더욱 당황하였다
" 대원군께서 직접 내린 조칙인데....."

" 무엇이? 이 나라의 주인은 과인이오 . 잔 소리 말고 즉각 복위 조치 하도록 하오 "
8월달 민비를 서인으로 폐한다고 하는 조칙을 내린 것이 어저께 같은데 채 두달도 안되어 10월 10일 임금의 복위 명령이 떨어 지었으니 폐위에 서명했던 자기는 무엇이며 각부 대신들의 얼굴은 무엇인가?
김홍집은 난감 하였다 .

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 독이오른 고종은 대원군과 말 한마디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대원군과 가까운 군부 대신 조희연을 어윤중으로 바꾸라고 명령 하였다 .이어 대원군이 세워 놓았던 대신들을 내쫓고 차관 격인 협판에서 대신으로 무더기 승진 시키었다 . 그들이 바로 내부 대신에 유길준 ,장박을 법무 대신에 ,정병하를 농상공부 대신에 임명 하였다

김홍집은 대원군을 찾았다 .
자초 지종을 들은 대원군은 입을 열었다
" 쯧 쯧 임금이 이래가지고......"
"합하 ,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 전하가 정 그러시다면 어찌 하겠나? 총리가 일하기 힘 들겠지만 나와 잘 상의하여 처리 하면 차질은 었을거야 . 왕비 복위 문제는 왕비가 다시 살아 돌아 오는 것도 아니니 두고 보지.... "
"................."
김홍집을 돌려 보내 놓고 대원군은 탄식한다
( 정말 이제는 안되겠군.......)

훈련대의 해산 , 민비 살해 사건과 일본 공사의 뻔질나게 궁궐을 드나드는 꼴과 최근의 임금이 민비의 폐위사건을 복위 하는등 일련의 사건을 지켜 보고있던 훈련대 대대장이었던 참령 이도철이 친구인 시종원 시종 임최수와 자주 회동을 하였다 .
이들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대하여 임금의 처지를 매우 개탄하고 있었다
두사람 모두 왕비 시해사건을 목격하였고 대원군이 일본군 호위 아래 경복궁으로 입성 한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시종 임최수는 궁내부에서 임금의 비서로 임금으 일거수 일투족을 받드는 위치에 있었고 참령 이도철은 해산된 훈련대 영관 계급의 대대장이었다

어느날 두사람이 이도철이 자기 집에 임최수를 초대하여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임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이참령, 자네 왕후마마가 어떻게 돌아 가셨는지 모르지?"
" 내야 경복궁 정문에 나가있었으니 옥호루 사정을 알턱이 있나? "
" 나야 말로 죽일놈이야..."
"무슨 소리인가 ?"
" 옥호루 왕비마마와 궁녀들이 일본 낭인들 칼에 맞아 죽는 현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막지 못했었으니 말 일세"
" ............"
" 천인 공노할놈들이지 왕비의 시체를 끌어내어 화장 까지 장면을 멀리 문틈으로 숨어서 보고도 전하께 아뢰지 않았으니 나야 말로 죽일놈아닌가?"
" ..............."
"지금 전하께서는 왕비마마 폐위후 이틀만에 복위 시키는 한편 대원군의 심복 대신들을 모두 협판자리에 있던 인물들로 대신을 바꾸어 놓았으니 대원군과 이노우에가가만히있겠나? "
" 전하의 목슴도 노릴지 모르지..."
"노릴지 모르지가 무엇인가? 군부대신자리에서 쫓겨난 조희연이 대원군과 이오우에가있는 일본공사관을 드나들고있다는거야 . 이놈들의다음 시해대상은 전하야"
" 큰일날소리, 전하를 시해하다니 ..."
" 틀림없다니까 그러네 . 참령 , 이제야 말로 우리가마지막으로 전하와 조선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때이네"

이런 만남이있은지 5일후 1895년 11월 28일 새벽, 시종원 시종 임최수와 훈련대 대대장을 지냈던 참령 이도철을 비롯한 군인들이 안국동 네거리에서 경복궁 동쪽 출입구인 건춘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왕비 민씨가 일본인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이래 한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커녕 자신의 목숨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불안에 떨고 있는 고종을 궁궐에서 구출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 전날 밤 임최수는 은밀히 훈련원에 모인 30여 명에게 칙령을 받들어 국왕을 동소문 밖으로 모신다고 말한 뒤 친위대가 주둔하고 있던 동쪽 별영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거사 계획은 일단 훈련원에집합하여 동별궁(東別宮)으로 이동한후 그곳에서 두 중대장이 인솔한 군사와합세하여 안국동을 거쳐 경복궁 대궐을 점령하는것으로 되어 있었다.
궁궐을 점령후 국왕을 모시고 동소문 밖으로 모셔 가되 사정을 보아서 미국이나 영국, 독일,또는 러시아 공사관에 안전하게 모시자는 내용이었다

이어 그들은 친위대 제 1대대 중대장 남만리와 제2대대 중대장 이규홍에게 궁궐로 들어와 국왕을 구출하라는 고종의 비밀 칙지를 전달하고 '의병을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 하자고 독려했다.

일행 중 안경수가 갑자기 "나는 잠시 다른 곳에 갔다가 돌아 와야겠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안경수는 즉시 친위대 대대장인 이진호에게 이사실을 보고 되었다 .
안경수가 돌아 선 것은 고종의 비밀 칙지 라는 것을 의심이 나서 몰래 훔쳐 보았던 것이다 .
그가 알아 본 결과 고종의 비밀 칙지는 엉뚱 한것이었다

놀란 이진호는 즉각 군부 대신이 된 어윤중의사랑으로 헐레 벌떡 찾아들었다 .
" 대감 , 큰일났습니다 "
" 무슨일이야?"
"정동에 있는 외국 공사들이 조선 관료들을 선동하여 전하를 왕비 마마 모양으로 시해 하려 한다며 폭동을 일으키게 하였답니다 "
"누가 그따위 소리를해?"

" 친위대원 중 거사에 가담 했던 안경수라는 자가 몰래 빠저 나와 알려 왔습니다 "
"주동자가 누구야?"
"이도철 이라는 자입니다 "
"그놈이 누구인가?"
" 훈련대 대대장으로 있다가 훈련대 해산 되면서 쫓겨난 놈입니다 "

"죽일놈 , 정동에있는 외국인 구락부라는데서 관여 한것은 맞나?"
"외국인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조선 군인들이랍니다 "
"혹시 조선 친위대 고문인 다이가 끼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합니다 "
"그러면 그것은 정동 외국인 구락부가 주동이 아니야 . 이도철이 주동자야"
어윤중의 판단이옳았다 .

그는 이진호에게 궁궐에서 역도들과 호응 하는 척하면서 경비를 삼엄히 하라고 한후 조복을 갈아 입고 급하게 궁궐로 향하였다 .

"전하 급히 아뢰올 일이 있사옵니다"
"아닌 밤중에 웬일이오?"
" 전하께서 정동 구락부에서 전하를 모신다는 일이 있었습니까?"
" 무슨 소리요?"
" 황공 하오나 혹시 친위대 교관인 다이에게 무슨 언질이라도 있었습니까?"
"허, 무슨 소리를 하는지 ?"
" 황공하오나 혹시 친위대에 비밀 칙지라도 내리신적이 있으십니까?"
"무슨소리요? 점점 한다는 소리가 ...."

어윤중이 생각 해 보니 임금의 밀지고 친위대 고문 다이의 장난도 아닌것이 분명했다
" 전하 , 역모가 분명합니다 . 지금 그놈들이 동별궁을 점령하고 경복궁으로 닥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어서 대처하오"
어윤중은 대충 방어 계획을 왕에게 설명하고 그들이 건춘문을 통과 한다하니 이쪽에서 매복시켰다가 역도들을 받아 들이겠다고 보고 한후 급하게나갔다 .

한편 전참령 이도철 들은 미리 탄로 난것을 모르고 경비중인 순검의 칼을 빼앗았다.
하지만 건춘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태화궁의 북쪽 담장문 근처의 담을 넘어 춘생문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친위대 대대장 이범래와 이진호 들이 춘생문을 열고 서로 내응하기를 기다리는 순간, 궐내에서 갑자기 포성이 울려 퍼졌다.

궁궐을 지키던 숙위병이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이에 거사 기담자들은 당활해 뿔뿔이 흩어졌고, 이규홀과 이도철 등 10여 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날이 밝은 뒤 임최수와 이재순를 비롯한 다른 가담자들도 붙잡히고 말았다.

12월 30일 특별재판이 열렸다. 총 33명의 피고 가운데 주모자로 지목된 임최수. 이도철은 사형, 적극 가담자인 이민굉. 이충구 등 4명은 종신유배형, 이재순. 안경수. 김재풍 등은 태 100에 징역 3년을 각각 선고 받았으며, 나머지 군인들은 무죄로 풀려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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