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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1880, 고종17) 중암 김평묵이 최익현이 칩거하고 있는 포천으로 찾아 왔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안성에사는 정사인(鄭士人)도 다녀갔다.
최익현은 새삼 그동안 아버지를 잘모시지 못하고 자식들을 제대로 거두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부끄럽게 생각 하였다.

그는 자신의 한 몸과 마음을 수습하고 정돈 하므로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전 같이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 같지 않았다 .왔다간 김평묵과 정사인으로 부터 나라 걱정하는 소리를 한 바탕 듣고 나면 마음만 뒤숭숭하였다

농사일을 거두며 여가의 시간이 있을 때 전에 숙독 한적이있는 사서(四書)를 가져다 음미하였으나  왜그런지 마음은 항상 조정에 가 있었다

계미년(1883, 고종20) 은 고종의 나이가 32세요 최익현은 51세였다 .
청나라 사람 황준헌의 조선 책략을 보고 감동을 느낀 조정이 일본의 술책에 정신없이 빠저 들고 있던 김홍집과 조정에 대하여 이에 보고 놀란 영남 유생들의 만인소를 올렸고 조정이 이를 묵살하자, 이를 보고 참지 못한 최익현의 오랜 사우(師友)였던 김평묵이 조정에 부당 하다는 소를 올렸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타서 유배 된것을 보고 최익현은 지난날 자기 재판을 보는것 같아서 누구 보다도 마음 아팠다 .

김 평묵은 최익현으로서는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사람이자기 모양으로 남쪽 외딴섬으로 유배를 또 떠났으니 유배 생활의 선배격인 최익현으로서도 가슴이 아프지 않을수 없었다 .

최익현의 유일하게 스승으로 삼을 만한 벗인 김평묵은 본관이 청풍 김씨로 호는 중암(重庵)이다 .최익현과의 동향으로 경기 포천 출생이며 최익현과 같이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었다.
그는 1880년(고종 17) 선공감감역(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881년 이만손(李晩孫)을 비롯한 1만여 명의 영남 유생들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상소문을 올리었는데 정부가 이를 묵살하자 그 해 7월 다시 ·척왜의 소를 내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고 유배 된 사람이었다

나이는 최익현 보다 14 살이나 위였으나 김평묵은 최익현을 스스럼 없는 친구처럼 대하여 주었으며 최익현은 그를 이항로에 못지 않는 스승으로 삼을 만한 친구로 대하였다 .
최익현은 붓을 들어 편지를 썼다

"가서 뵙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편지를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인데도, 중암께 소식을 전한지 어언 3 년이나 되었습니다.
제가 무심하게도 중암께서 귀양 가 있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하고 , 대수롭게 보고 평범하게 여긴 것은 제가 흑산도며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한탓 때문에 이를 얏잡아 본 탓이 아닌었던가 생각 합니다 ,

제가 이런 외람 된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본것은 사우님이 저 보다 연세가 더 많았던 것을 잊었던 탓이 아니었나 생각 합니다 .
황송하고 부끄러워서 스스로를 용서 할 수 없습니다.
중암 께서는 제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평소에 돌보아 주시기를 한 집안 같은이 하셨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니 더욱 무슨 모양의 인사라도 하겠습니까.

지나간 곡절은 말하기가 이미 늦었으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가을이 한창인데 험한 귀양지에서 혹시 병환 이라도 없으십니까?
저도 귀양살이 맛은 일찍이 고루 맛보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사우께서 귀양 가신후 자주 찾아 주시지 않으니 마음을 열고 회포를 보일 곳이 전혀 없습니다.

저도 중암 께서 의지 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충(忠)과 의(義) 뿐이라는 것을 잘압니다
중암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 앞에서 굽힌 것은 한정이 있으나, 뒤에 펴는 것은 장차 천백 세로 갈것이다"라고 ,
.
다만 상소 사건이후 있던 이후로 중암께서 기상이 떨어지고 쇠약하여 기를 펴지 못하고 계시겠지만 , 기운을 내십시요 참되고 변함 없는 마음을 우리 임금이나 정승들에게 할말을 하시는 의기 만큼은 꺾여서는 안됩니다 .

저 수천 마리 모기 처럼 떠들어 대며 괴이한 짓을 하여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은 말할 가치 조차 없는 자들입니다 .
그곳에 가 계신 동안 . 홍재학(洪在學)이 임금께 충신들의 바른 말을 들으시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능지 처참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비록 처참하게저세상 사람이되었으나 그도 살아 생전에 배운 것은 저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익현은 운명이 매우 불행하여 작년 7 월에 맏형께서 뜻밖에 돌아 가시니 저의 한 몸도 이제는 의탁할 데 없는 신세가 된것 같습니다 .
저의 부친께서는 늙어 아들이 먼저 타계를 당하자, 기운이 꺾이고 마음이 상하여 자주 편찮으시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생계까지 곤란하여지자 아버님을 봉양하는 것도 뜻대로 하기가 어려우니, 밤낮으로 송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는 일없이 분주하여 책 읽기도 그만두어 버렸읍니다 ,
세월이 나를 위해 머물러 주지 않으니, 참으로 비탄할 일입니다.

지난 해에는 구사정(具士正)이 방문 하였는데 국가에서 경사가 있을때나 사우께서 전하가 은전을 베푸는 사전(赦典) 이라도 있어야 풀려 나실거라는 얘기를 나눈적이있습니다 만 대단히 근심 스럽고 답답합니다.
하늘이 살펴 보고 돕는 일이 생길 것이니 너무 걱정 하시지 마십시요

그동안 안부 편지는 1 년을 따저보니 게을러서 몇번 못 하였습니다 ? 아뢰고 싶은 것은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마는 지루하여 모두 줄입니다.
이 편지를 보내 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눈물이 흐르고 슬픔이 북받칩니다. 삼가 몸을 조심하시고 마음을 편히 드시기 빕니다."

이렇게 최익현이 고향땅에서 칩거고 있을때 조정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정국은 눈코 뜰새가 없었다 .

임오년은 조선 왕국에게는 불행한 한 해였다

밀린 월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구식 군인들에게 나라에서 준다는 것이 모래가 반인 쌀을 나누어 주었다 . 분노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구식 군인들은 여세를 몰아 이같이 된 원인이 신식 군대를 훈련시키는 일본 때문이라고 하여 일본공사관을 공격하였다 .

군인들은 궁궐에 난입하여 영의정 이최응과 민겸호를죽이었다 .
대원군 이하응이 평소 구식군인들이 대우 못 받는 것이 민겸호를 감싸 주는 민비 때문 이라는 말을 은연중 퍼저 놓은 탓으로 반도들은 즉시 민비를 죽이라고 아우성 치었다

곧민비는 변장하고 충주 까지 도망치었다 .
드디어 대원군이 그제서야 다시 입궐 하더니 반란군들을 무마한다.

결국 반란군들에게 쫓겨 갔던 일본공사가 화가나서 일본군을 이끌고 다시 입국하였다 .
이것을 본 청나라가 뒤질세라 청나라 오장경이 청나라군 6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경기도 남양만에 상륙하였다 .오장경은 구식 군사를 이용하여 조선을 불안하게 하였다하여 대원군을 납치하여 청나라로 호송한다
8월에 죽었다고 대원군이 소문 퍼뜨린 민비가 다시환궁한다 .

왕은 조선의 반군이 일본 공사관 습격을 사과하는 뜻에서 수신사로 박영효를 일본에보낸다 .
다음 해인 계미년에는 조선왕국에 처음으로 태극기가 제정 되었고 조선책략 대로 미국과 수교 하기 위하여 전권대사로 민영익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
일본과 조선왕국이 같이 쓸수 있는 공동화폐도 만들었다 .
공동 화폐로 조선 상인들을 통하여 재미 보던 일본인들이 이번에는 직접 활개치고 다니며 조선시장의 이익을 모두 챙겨가자 조선 상인들은 울상이 되었다 .

일본 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이 이러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청나라의 상무위원 까지 들어와 자기들도 일본과 같이 조선 시자에서 장사를 마음대로 해 달라고 강권 하였다 .청나라는 그런 조건으로 청나라 상해와 항로도 열자고 했다 .

갑신년이 되자 조선과 영국이 수교를 하였다 .
계속 하여 러시아와 이태리와도 수호 조약을 맺는다 .
황준헌의 조선책략 이라는 교과서가 이렇게 급속도로 조선과 외부 세계간에 개방이될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이런 와중에 우정국 개설 장소에서 김옥균 박영효라는자들이 일본 공사(公使)의 사주를 받아 정변을 일으키었다 .
이들은 일본 공사의 조종을 받으며 자칭 개화당 이라고 스스로 자칭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 권력을 잡으려고 꿈꾸는자들은 개혁이니 개화니 하면서 상투적인 구호를 즐겨 쓴다

김옥균 일당은 일본군을 이용하여 왕을 경우궁(景祐宮)으로 옮겨 놓고 일본군이 완전히 궁궐을 포위하게 하고 제멋대로 일본식 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래놓고 개혁이라고 떠들었다
이에 앞서 일본 공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이들은 민영목 민태호등 6 명의 대신들을 모두 때려 죽이었다 .

일병과 청군의 전투는 일본군에게 불리해 저 일본군이 창덕궁에서 쫓기자 왕은 다시 청나라 병영으로 들어가 청나라 병사들의 보호를 받게된다 .
이렇게 되자 일본공사의 앞잡이 김옥균과 박영효는 일본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일본도 뒤지지 않았다 일본에 갔던 일본공사가 다시 조선에 돌아와 조선에 항의를 하였다 .
이 숨가쁜 사건은 모두가 1884년 고종 21년에 일어난 단 1년사이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

을유년이 되자 임금은 청나라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
청나라는 일본이 다시 조선 조정에 세력을 뻗히려하자 대원군을 다시 조선에 돌려보내어 일본을 견제 하려는 속셈에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대원군을 8월에 돌려 보내었다

모두가 최익현이 고향에 칩거하면서 나라를 걱정 하고 있는 3 년 사이에 일어 난 사건들이었다 .
나라가 얼마나 힘이 없었으면 청나라와 일본에게 휘둘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다행히 대원군이 구식 군인들의 반란으로 대궐에 환궁 했을때 대원군 이하응의 배려로 그의 절친한 글벗인 김평묵이 사면 되었다는 것이 소득 이라면 큰 소득이었다 .
이하응은 김평묵의 척왜 상소를 매우 반기었던 모양 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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