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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에 나타 난 안기영이 왔다는 말을 듣고 최익현은 냉냉하였다 .
그렇다고 서울에서 파주 까지 찾아온 안기영을 문전 박대 만을 할수 없었다 .
우선 안기영을 사랑방으로 들게하여 자기를 찾아 온 연유 부터 물었다 . 자기에 대한 탄핵의 주동자였던 안기영이 불시에 들여 닥친 것도 이상 하였지만 나귀에 싣고온 물건들을 그이 허락도 없이 마당에 내려 놓는것도 못 마땅 하였다 .

"이렇게 먼 거리를 어찌 오셨소?"
최익현은 안기영에게 의례적 인사로 화두를 꺼냈다
"대원이 대감께서 면암 선생을 찾아 뵙고 오라 하여서 왔습니다"
"나는 대원군과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이오 .그분이 나를 왜 만나 보라고 하는거요?"

"그동안 세상이 하 수상하여 선생이 고초를 겪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고 대원이께서 선생을 한번 초대 하고자 한다는 말씀을 전하려 왔습니다 "
"나라의 어려움이 백척간두 놓여 있고 백성의 고통이 누란의 위게 처해 있는 이때 낡은 머리에 고집 스러운 무리들만 거느리고 조정에 복귀 하려는 꿈만 꾸고있는 대원위 같은 과는 상대도 하기싫소"

"허허 , 면암선생, 아무리 대원위 대감께서 고집만 부리시겠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이겠지요.대원위 대감께서 이렇게 하는 것도 그분의 소견으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나라와 조정을 돕고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 하시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소 .그렇게 백성들을 위한다는 대원위 께서 권력을 잡은 10년동안 그래서 온 나라가 떠들석했소? 예를 들면 대원군 집권 이전에는 임금이산하에게 명령을 내리면 신하는 그 명령을 받들어 임금의 뜻을 대신하여 글을 짓는다는 뜻으로 <왕약왈(王若曰)>이라고 하여서 글을 시작하였소 ,그렇지만 대원위가 권력을 잡은 10년 동안은 어땠었소? <왕께서 이르시되> .....가 아니라 < 대원위 분부 >분부 다섯 글자면 만사가 다 통하지 않았소? "

"그것은 아니오이다 백성들은 아직도 대원위 대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
"헛 소리 하지 마시오 . 그래서 경복궁을 시작 하면서 나라의 재정이 고갈 되었고 재정이 고갈 되자 대원위께서는 강제로 전국 8 도에 영을 내려 돈을 갹출 했다는 말이오?
말로는 돈있는자와 돈없는자를 균형 있게 하기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과연 그결과는 어찌 되었소? 돈 있는자들이 모두 파산하니 이 나라의 경제구조가 어찌 되었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경복궁만을 지어 놓으면 백성들의 입에 밥이 생긴 답니까?

그래서 백성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하여 한다는 수작이 원납전이라는 엉뚱한 짓을 했다는 말입니까?"
최익현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었다 .
안기영은 말문이막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대원위 대감께서 작살을 냈었을터인데 .....)

"오늘 나으리께서 남의 집 마당에 주인 허락도 없이 내려 놓은 저것은 무엇입니까?"
"선생, 나으리라니오?"
"나는 일개 촌부에 불과 하지만 조정의 승지께서 이곳 까지 오셨으니 나으리가 아니고 무엇이오?"
"자꾸 그러시니 솔직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전하의 명을 받고 온것이 아니라 대원위 대감이 이 편지를 전해드리고 모시고 오라하여 왔을 뿐입니다 .마당에 내려 놓은 쌀은 대원위께서 선생에게 그동안 유배 생활로 어렵게 사신다는 말씀을 듣고 나귀 한마리와 쌀 가마 좀 가져 왔습니다 .받아 주십시요 "

안기영이 간곡히 권한다 .
최익현은 안기영이 내 놓는 대원군 이하응의 편지를 펼쳐서 읽어 보더니 두말 없이 옆으로 밀어 놓는다 .
"대원위께서 나를 잘못 보았소? 내가 이 따위 나귀와 쌀을 받고 대원위를 딸았다면 내가 이러고 살지 않았을 것이오. 당신 모양으로 호의 호식하고 거들먹 거리며 권력의맛에 도취 되었을 것이오 .

보시오 한때 궁도령이라는 말 까지 들어 가며 수모를 겪었던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백성들의 호주머니를 든든하게 만들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 호주머니나 노리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소? 새로 생긴 세금 이름만 해도 외울수가 없는 지경이오. 그러고도 백성들이 대원위 대감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어서 나귀와 쌀을 다시 싣고 돌아 가시오 ."

추상 같은 말 한마디에 안기영은 안절 부절하였다 .
(이 꼴통 같은 영감이...)
꼴통은 대원군이 꼴통이 되어 버린지 오랜데 안기영은 아직도 대원군이 써 먹던 개혁이라는 그럴듯한 구호에 아직도 잠에서 깨어 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라는 동물은 매일 같이 변한다 .

대원군이 자기 권력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말끝 마다 개혁이라는 말로 백성들을 현혹 시킨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10 년이 넘은 것이다 .
안기영도 그런면에서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는 오로지 출세에만 눈이 어두워 악역을 마다 하지 않는 것이 흠이기는 했지만 .....
"선생의 말씀을 이해는 합니다만 대원위 대감의 작은 성의 만은 받아 주십시요 "
"싫소이다 "
최익현은 단호했다
안기영은 포기했다 .다시 쌀을 싣게 하고 마지막으로 권한다 .
"대원위 대감을 한번 만나 뵙지요"
"싫소이다 "
단 한마디로 끊었다

안기영은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 가지고 온 것을 가지고 되 돌아 가는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생께 할 말이있습니다 "
"말씀 하시오"
"청주에 화양 서원이라고 있었지요?"
"알고 있소"
"이 화양 서원이우암 송시열 선생의 주창으로 세워지었지요"
"그렇소만"

" 화양서원이 많은 인재를 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때 그곳 관리자가 화양서원의 세도만 믿고 돈을 뜯어 내는등 행패를 부린것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최익현이 당대의 유학자임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 안기영이 마지막으로 최익현을의정곡을 찔러 보려는 수작이었다

""허허 , 권력이 없던 지난 날 대원군이 화양서원에 들렸다가 원생들로 부터 모욕을 당했던 일을 가슴 깊숙히 원한을 품고 있다가 뒷날 권력을 틀어 쥐면서 그곳의유생들을 모두 죽이고 서원을 철폐 하라 하지 않았소?
그 따위 얕은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 개혁 개혁 떠들었던 일을 내가 모르는줄아오? "
안기영은 더이상 최익현과 논쟁을 벌렸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것 같아서 최익현의 집을 나왔다 .

운현궁에 돌아온 안기영은 대원군에게 차마 최익현이 한 말을 액면 그대로 옮겨서 보고 할수 없었다 .
" 합하 께서 보내 주신 나귀와 쌀은 감사 하나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
"편지를 읽어 보고 뭐라 하던가?"
"그냥 옆에다 밀어 놓더니 자기는 이제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이 없으므로 찾지 말아달고 합니다"
"다시는 정치에 관여 않겠다는 얘기군...."
" 그렇습니다 "
대원군은 차라리 회유 보다도 정치를 포기 한다는 것과 다름 없다는 최익현의 말을 전하는안기영의 말에 만족하였다 .

(그놈 꼴통은 꼴통이로군....)
누가 누구를 보고 하는 소리인지 대원군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대원군이 권태중래의 꿈을 꾸고 있는 동안 강화도 조약으로 인한 조선에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시작하였다.
개항 이래 일본의 값싼 상품이 마구 들어와 일본 상인과 상대하는 조선 상인들이 날개를 단것이다 .
농업을 근본으로 삼고 상인을 천시 해온 조선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 온 것이다 .
장삿꾼들이 많은 이득을 보았다.
일본으로 부터 수입한 물건은 거의가 비단, 시계, 옻칠한 물건 등이었고 조선의 수출 상품은 쌀, 콩, 피혁, 금,은, 등이었다 .

세금에 찌들렸던 백성들은 이제는 일본 상인과 내국인 조선 상인들의 농간에 휘말려 백성들의 생활은 점 점 더 어렵게되었다 .이중고를 겪고 있는것이다 .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대원군 시절 만들어 놓은 세금 제도가 대원군이 물러 난후 어느 정도 없어지기는 하였으나 형식에 불과했고 한번 만들어 놓은 세금은 없어지지가 않았다 .
이것이 세금의 속성이다 .

대원군이 개혁 한다며 떠들 때 박수 치던 백성들에게 돌아 온 것은 과중한 세금이라는 고통 뿐 이었다 .
백성들은 토지에 대한 세금만 내는 것이 아니었다 전부(田賦)라는 토지세가 있었고 구부(口賦)라는 개인세가 있었으며 정역(丁役)이라는 것을 근간으로 하여 임금에게 받치는 세금인 상공물(上供物)이란 것도 있었고 그외에도 삼수미(三手米)라는것도 있었는데 총과 활 쏘는자를 사수라 하고 포를 쏘는 병사를 포수라 하고 창을 쓰는자를 살수라 하는데서 특별히 쌀을 걷우었는데 일종의 특별세였다 ,

세금의 근원을 어떤 학자는 고대 시대에 강자가 약자를 약탈 하였다는 데서 나온 낡은 유물에 불과 한것이라고 갈파했다 ,
약탈의 시대에서 백성을 잘 살게 해 주는 시대로 변해야 할 시기에 별 볼일 없던 궁도령 대원군은 권력을 잡자 어느새 강자로 둔갑하여 약탈자로 변하여 있었고 백성들은 약자로 변하여 있었던 것이다 .

세금이란 한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을 뿐 더러 또 다시 폐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 최익현은 이러한 조정의 폐해를 누차 상소로서 시정 할것을 올렸으나 겨우 당백전과 통행세 정도 없어진 것 뿐이었다.

이럴즈음 1880년(고종 17)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가져 온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고종에게 받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조선은 중국·일본·미국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읽어본 대신들 중 이에 동조하는 대신들에 의하여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고, 외국과의 교섭이 빈번 해지자 이에 자극을 받은 조야에서 비판과 반대의 소리가 높아졌다.

이때 이만손 이라는자가 조선책략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황준헌이 중국인이지만 사실은 일본을 위하여 세객노릇을 하는 자라고 비난한 내용의 소를 썼다.
1881년 2월 그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전 참판 강진규·이만운, 전 승지 이만유 등 상주·안동 등지에 사는 영남유생들이 연서하여 이른바 ‘영남 만인소(嶺南 萬人疏)’라고 불리는 상소를 고종에게 올렸다.

그 내용은 주로 김홍집의 죄를 탄핵하는 것이었지만, 영의정 이최응을 비롯하여 권력을 잡고있던 민씨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
결국 이들의 의도는 실질적으로는 조선책략 정책을 규탄하고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었으므로 조정의 관리들이 이를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특히 민씨 세력의 중심인물인 민태호는 이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달에 재차 상소를 올리려고 했다가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전라도 강진의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 최익현과 함께 화서 이항로로 부터 수학하던 홍재학이 불같은 상소를 올렸다가 34세 나이로 서대문 밖 형장에서 능지처참 당하는 일까지 생기었다 .
상소 내용은 조선책략이 천주교를 끌어 들임으로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말려 들지말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자 채동술, 권정호, 이철구, 이풍래등이 안기영을 찾아와 전부터 암암리에 대원군과 진행 되어오던 고종을 폐하고 흥선 대원군의 서자. 고종의 이복형(異腹兄)인 이재선을 왕으로 추대 하려는 모의가 만인 소사건을 기화로 구체화 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거사자금·군대 동원·요인암살 등 세밀한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1881년 8월 28일 광주산성의 장교 이풍래의 밀고로 탄로 되어 안기영·권정호·이두영 등 많은 관련자가 사형되고, 이재선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사사(賜死)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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