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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문[1].jpg

 

 

 

유중교는 최익현을 바라보았다 .
"면암 , 지금이야 말로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소?"
"내가 그 말씀이외다 ., 조선이 자주 독립국가라고 하는 수작도 좋고 3 개항을 개항하여 저희들 마음대로 들어 오겠다는것을 백번 양해 한다손 치더라도 우리와 저희들간에 시비라도 붙을 경우 저희나라 사람은 저희들이 재판 하겠다는 것은 무슨 심뽀요? .우리나라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우리나라 법에 따라 야지"

"그러니 말씀 이외다 .완전히 조선을 송두리째 요리 하겠다는 얘기지요"
"성재, 저놈들이 우리를 보고 독립 국가라고 전제 한놈들이 이를 테면 우리 백성이 저희 나라에가서 죄를 저지르면 우리 관원이 일본에 파견되어 재판을 하게되 는것입니까?"
"허허.... 저 같은 사람이 그 원리를 알겠습니까?.훌륭한 조정 대신들이 이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하고 있는모양입니다 . 그런데 그놈들이 내 놓은 조약문 내용은 그렇다치고 그 조약문 첫머리가 걸작이랍니다 "
"걸작 이라니오?"
"우리임금에게는 조선국왕전하 라고 호칭 하면서 말미에 쓴 저희나라 왕의 호칭은 대일본제국 황제 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
오만 불손한 일본의 태도 임에 틀림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했답니까?"
"일본측에 국왕이니 황제니 하는 말은 빼자고 절충안을 내자고 조정에서 공론중이랍니다"
" 정말 주객이 전도 되었구먼 .....왕의 칭호도 그렇지만 저들의 군대를 우리 허락도 없이 제물포에 일방적으로 상륙 시켜 수작을 부리는데도 수수 방관하고 있으면서 조정에서 공론만 떠들고 있으니 그게 어디 조정이 할일을 다 하고 볼수 있는거요?"
"정말 무능한 조정입니다. 차라리 대원군 시절 만도 못합니다 "
"성재 , 방금 뭐라하셨소? "
"대원군 시절만도 못하다고요"
이말에 최익현이 유중교를 노려본다

" 정말 성재 답지 않으외다. 지금 조선이 이 모양 이 꼴이 된것이 누구 탓인데 그런 말씀 하시오 ?
대원군 이라는 작자 말이오. 그작자가 우리도 왜놈들 모양으로 서양의 선진 문화를 일찍 받아 들여 군사력을 강화해 놓았으면 감히 어떻게 우리 허락도 없이 왜놈들이제물포에 상륙하였겠습니까?
그 많은 세금이다 어디로 가고 빈 껍데기 조선을 만들어 놓았습니까? .

병신 같은 조정은 일본과 수교만 앞장 세우는 모양인데 정말 한심합니다 . 이번에 수교는 때와 장소가 적합치 않습니다 .
청나라와 구미각국의 정세를 살펴보고 청나라와의 긴밀한 의논을 거친후 수교를 맺어도 늦지 않습니다.외교 라는 것은 결국 기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한것이오
예를 들어 중국의 새로 일어났던 요나라 가 고려를 침공 하려하자 고려시대 서희장군은 .52세의 나이로 몇몇의 수행원만 대동하고 소손녕을 직접 만났는데 오만불손한 요나라장수 소손녕이 한다는 소리가 고려의땅을 요나라에 베어 바치고 조공을 하면 전쟁을 끝날 것이오.라고 하자 이에 서희는 의연한 자세로 그렇지 않다고하면서 .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를 옛 터전으로 하였으므로 고려라 이름짓고 평양을 도읍으 로 한 것이다.
만약 지계(地界)로 논한다면 당신의나라의 수도인 동경(東京)도 모두 우리 영역 안에 있는 셈인데 어찌 침식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지오

또 압록강 안팍도 역시 우리 영내였는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을 장악하여 간악한 짓을 하므로 도로가 막히고 어려움이 바다를 건느는것보다 심하다. 이 모든 것이 여진 때문이다. 만약에 여진을 쫓 아내고 우리의 옛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가 통하게 된다면 두나라는 선린을 유지할수있다 라고 답변 하였다합니다 .

이것은 고려로서는 당연한 주장이었습니다 . 서희장군의 의 당당하고도 논리정연한 변론을 들은 소손녕은 더 이상 고려에 강요할 수 없음 을 알고 저희나라 황제에게 고한 후 군사를 되돌렸으며 이어서 고려는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였합니다 .

그래서 고려는 거란으로부터 '고려 경내에 있 는 요군의 전면적인 철수와 압록강 유역인 강동6주를 할양 받는 조건'으로 강화를 받아 들이고 요나라와 국교를 수립한 역사가 있습니다 .
그후요나라는 고려와 강화함으로써 배후의 위협이 제거 되었다고 판단하 고 공격의 방향을 송으로 돌린것이아닙니까?

그래서 고려는 요나라가 송을 공격하는 10여년동안 고려는 그사이에 압록 강 유역에 성축을 강화하고 관제개편과 군사기구를 강화하여 하여 거란의 2차 침입에 대비할 수 있지않았습니까?

그런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조정은 일본놈들 하나쯤 해결 못하고 굴욕적인 수교를 맺으려 한다니 한심한 사람들 아닙니까? 세치의 혓바닥 하나로 나라의위기를 극복한 서희 장군의 외교술을 배워야 합니다
.
방금 말씀 드린대로 요나라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고려는 내실을 기하여 요나라가 감히 침범을 못하도록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
성재 , 두고 두고 보니까 참을수없습니다 "
최익현의 결연한자세에 유중교는 방금전 대원군시대를 그리워하는듯한 발언이부끄러웠다 .

"전하 강화도 접견 대관이 일본과의 조약안이라는 문서를 올렸다면서요?"
중전 민비가 고종에게 물었다

" 일본인들이 내 놓는 문서는 무엇이 그리 까다로운지 조목 조목 조약을 맺자고 하니 정말 골치 아픈 사람 들이오"

"전하, 권리를 용감히 주장 하는자가 권리를 갖는다 했습니다 . 저들이 자기네권리를 주장 하려니까 조목 조목 조항을 넣어 조약을 맺자고 하는것입니다 . 그자들이 그런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대응을 하셔야지요"
"그렇기는 하오"
" 조정의 공론은 어떻게 돌아 가고 있습니까?"
"영의정은 무턱 대고 신중히 해야 한다면서 조약안을 수용하자는 얘기인지 말자는 얘기인지 흐리 멍텅하니 답답합니다 . 아버님의 형제간인데 두분의 성격이 왜그리다른지.... 차라리 아버님이셨다면....."

대원군 말이 나오자 중전 민비의 부드럽던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
"전하 , 또 아버님 타령이십니까? 내우외환은 어느 누가 정치를 해도 다 있게 마련입니다 . 지금 전하께서 친정을 하시는 마당에 이것을 스스로 극복 하셔야지 걸핏하면 아버님을 찾으셔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나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전하께서 꼭 아버님이 필요 하시다면 모셔 오십시요 .

아버님이 다시 정치를 개시 하신다면 말라 빠진 짚섭에 불지르는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
아버님이 그동안 저지른 실정을 또 반복 하시려는 것입니까? 백성들의 피땀 어린 세금이나 마구 걷워 들여 정치를 하라면 누구는 못합니까? 세금이라면 거저 생긴 공돈 쯤으로 생각하고 엉뚱 한곳에 돈을 퍼부어 나라가 이꼴이 된 것이 누구 탓입니까? ."

중전 민비의 신랄한 대원군 비평에 고종은 할 말이 없었다 .
따지고 보면 고종이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와 관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도 대원군이 국내적으로는 세금에 혈안이 되어 백성들로 부터 배척을 받고 국외적으로는 군비를 강화하여 외세에 대비를소흘히하고 시대 상황을 망각하여 서양의 선진 문물을 배척한 탓이다 ,
그러나고종은 이렇게 된 마당에 무엇 부터 먼저 해야 할지를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업친데 덥치는 격으로 내일이면 청나라 칙사가 모화관에 도착하는 날이다.
모화관은 태종 7년 고려시대 영빈관을 모방하여 지금의 서대문 밖에 지었는데 처음에는 모화루(慕華樓)라 하였다. 모화루 앞에 영은문(迎恩門)을 세우고, 남쪽에 못을 파 조경용으로 연꽃을 심었다.
세종 11년 규모를 확장 ·개수하고 나중에 모화관이라 고쳤다.
연산군 때에는 사신 영접에 여자와 음악을 연주하여 사신을 영접 하기도 했다

통상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는 왕세자가 모화관에 나가 맞아 들였으며, 돌아 갈 때는 백관이 모화관 문 밖에 서 있다가 정중하게 보냈다.
이번에도 영접시 세자를 보내야 하는데 때가 1월 22일 이니 보통 추위가 아닌데다가 나이가 어린 탓에 나가기는 않기로했다 .대신 왕이 객관을 찾아 뵙기로 하였다

중전 민비가 말했다
"전하, 일본과의 조약안을 어떻게하시렵니까?"
" 글쎄 , 나라 안팎이복잡하여 갈피를 잡을수 없구료"
"다시 여쭙겠는데 조정의 공론은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까?"
"나라의근심은 항상 있는 것이니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자는 신하도 있고 어떤 신하는 탄식만 늘어 놓는자도 있고 어떤 신하는 결정도 못하면서 신중론 만늘어 놓고 있오
그래서 생각 해 본 것인데 일단 강화도에 나가 있는 신헌이 돌아 온뒤 말을 들어 보고 판단 해야겠습니다 "
"..................."
중전 민비가 한참 생각을 하다 멈추고 말을 꺼냈다 .
"전하 내일이 청국 사신이 오는 날이 아닙니까?"
"그렇소만..."
"청나라 사신들과 상의후 처리하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인도그렇게 생각을 하고있었소"

다음날 청나라 사신 영접은 시작되었다 .
일본과의 조약 얘기가 나오면 반발 할줄 알았던 청나라 사신은 강화도에 설관(設館)을 하지 않는 대신 일본과 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 하라는 말 까지 겻들였다 .
중국의 북양 대신 이홍장이 이미 조선에가서 사신에게 일본과 수교를 맺도록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

중국 사신이 돌아 가고 나니 일본과 조선은 조약이 체결 되리라는 것이 확실 해지었다
대원군은 이소식을 듣고 발끈 하였다 ,
애써 척화비 까지 쎄워 서양과 일본의 침투를 막아 내자고 했건만 고종이 일본이 일본 수교 요청을 들이고야 말것 이라는데 화가 났다 .앞서 상소문을 내도록 시킨 장호근도 전라도 흥양 땅 사슴섬으로 귀양을 보낸것도 불만이었다 .
대원군은 허탈감에 빠젔다 ,자기가 저질렀던 과거의 모든 행악을 반성은 하기는 커녕 오히려 고종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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