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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jpg

 

 

일본은 조선을 건드리기 전에 중국을 의식 하지 않을수 없었다 .
일본은 스믈 아홉살의 청나라 공사인 모리(森有禮)가 마침 결혼으로 국내에 들 온것을 알고 내무경인 오쿠보를 통해서 청나라 이홍장에게 운요호사건이 일본의 잘못이아니었다 것을 설명 하라고 지시 하였다 .

고종12 년 10 월이었다 .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나가 있는 산동반도에 모리가 도착 하였을때는 이미 조선의 영의정으로 청나라에 갔던 주청사 이유원 이홍장을 만나 보고 다녀 간 후였다 .
(조선의 영상이 무슨 소리를 지꺼리고 갔나 모르겠군,,,,)
모리는 한발 늦은 것이 후회 되었다 .
"조선의 영상이 왔다 갔습니까?"
"그렇소"
이홍장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않았다
"결혼 하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축하하오."
이홍장이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
"그런데 결혼을 하셨으면 재미나 보시지 이곳 까지 벼란간 웬 일이시오?"
이홍장이 모리의 속을 다 알고 있다는 투의 말이었다 .
모리는 이미 이유원이가 무슨 소리인가를 헀을것으로 간주 하고 대담히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 하겠습니다 ,여기 온 이유는 조선 문제 때문입니다"
"조선 문제를 나와 협의 해야 한다는거요?"
"조선은 귀국의 속방이 아닙니까?"
"속방? 어째서 속방이오?"
"조선이 왕세자 책봉을 귀국에 주청하러 영의정이 왔다 간것 만 보아도 그렇지않습니까?"
"허 그것은 조선과 우리 중국과의 오랜 전통으로 인사차 다녀 간것 뿐이오"
"............."

모리는 이홍장이 당하기가 벅찬 대상임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전번 조선 강화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혹시 조선의 영상이 뭐라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일본의 주청 공사로서 한 말씀 드리려 온것입니다"
"말씀 하시오"
이홍장이 내용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대답은 없고 모리에게 다그친다 .
노련한 북양 대신의 노회한 수법이었다 .
젊은 모리는 이홍장의 이러한 태도에그냥 넘길 외교관이 아니었다 .
그는 일찌기 미국 유럽에서 수학한 당시 일본에서는 알아 주는 엘리뜨 29세의 청년 외교관이었다 .
"잘 아시겠지만 우리 배 운양호가 조선 해헙을 거쳐 귀국으로 항해중 조선 포대에서 이유도 없이 포격을 해오므로 우리배에서 할수 없이 응사 한 사건을 설명하려고..... "
" 모리공사, 다 알고 있소, 방금 말 하셨는데 일본배가 우리 청나라에는 왜 오려 하셨소?"
"상선이기에....."
"상선에 대포 단 것을 보았소?"
" 영국에서 사들인 배라놔서,,,,,,"

"어쨋든 포를 쏘았으니 군사 충돌은 분명하지요"
"충돌은 만부득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배가 조선 부산 초량에 정박 했을때도 그냥 물러 나지 않았습니까? "
"허허, 귀국배가 돌아 가면서 무인도에다 대고 함포 사격 까지 했다면서요?"
"아니 그건,,,,,,"
"구실을 붙이지 마시오 , 남의 나라에 와서 대포를 쏘아 댄다는 것은 조선을 위협하자는 얘기 아니오?"
"아닙니다 , 그건 오해이십니다"
뻔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정치가의 속성인가 보다 .소위 일본의 엘리뜨라는 청년 외교관의 하는 짓이었다 .
이홍장이묻는다
"모리공사 , 표면과 속은 다른 법이지요 ?"
"무슨 말씀이신지 ?"

내가 듣기를 원하는 것은 겉으로 들어 난 것 말고 그 속에 있는 진상을 알고 싶어서 하는 말이오. 내가 단도 직입적으로 묻겠소 , 지금 귀국의 행동이 조선이나 우리나라와 친근하게 지내자는 것이오 ? 한 바탕 싸움을 하자는 것이오?"
" 평화롭게 지나자는 것이지요"
"평화? 의(義)로움이 없는 귀국과 당하는 조선과의 평화관계는 난폭한 권위 주의라는것을 모르오"
"그것은 조선과의 친선을 위함 이었지 결코 군사 목적은 아니라는 것만은 저의 진실이오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
"좋소 이번만은 나도 불문에 부치겠소 , 그렇지않도 충승도(沖繩島....오끼나와)문제와 대만(臺灣) 문제로 우리청나라 군사를 동원하려고 했는데 조정 공론이 만류하는바람에 참고는 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니 명심하시오 ,
만일 귀국이 조선을 건드리기 만 하면 우리 청나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요"
"가만히계시지 않겠다니요?"
"내 말이 아니라 청조(淸朝)를 대변 한것이오"
"방금 조선을 건드리면이라고 하셨는데 아까 하신 말씀과 틀리는데요?"
"뭐가 틀린다는 말이오?"
"조선이 청나라의속방이 아니고 중국과의 오랜 친선 관계였다고 하신 말씀 말입니다 "
".................."
이홍장은 말문이 막히었다

사실 그랬다 . 모리 공사 생각 으로는 조선은 항상 청나라의 눈치를 보아 온 이상 독립 국가로 볼수 없다고 착각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자기네 나라도 청나라 눈치를 보아 온 주제에 말이다
순간 청년 모리공사는 무슨 일이있어도 중국과 조선의 친선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더구나 듣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나라인지라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것을 물고 늘어지면 자존심이 강한 조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

(그렇다 조선은 내 손 아귀에있다 .그러자면 우선 청나라와 충돌해서는 않된다 )
"각하 , 제가 도를 넘은 소리를 주제넘게 말씀 드렸나 봅니다 .어쨋든 일본은 청나라와 친선 관계를 원합니다 .조선 문제는 이 정도로 마무리져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이홍장도 청나라 국내 사정이복잡한지라 더이상 일본과 긴장관계를 원치 않았다 .
"알겠소이다 ,지난일을 가지고 왈가 불가 해보았자 양국간에 불화만 생기는것이니 그만 두기로 합시다.대신 조선이 귀국과 수교를 거부 한다니 수교를 맺도록 힘있는데 까지 노력해 주겠소 .어쨋든 우리나라와 조선과 일본이서로 충돌 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오"

"하온데 조선이 우리 일본과 수교가 쉽겠습니까? "
"어려울 것은 무엇이오?"
"말을 듣기에 조선 곳곳에 척화비 라는 것을 세워 놓고 외국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하면서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데요"
" 걱정 할것 없어요 . 그것은 조선의 국내 사정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이오. 조선의 흥선 대원군 이라는자가 우물안 개구리 모양으로 우물 안에 들어 앉아 세계가 우물안 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 하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미국이나 영국의 상선을 물리 친것이 무슨 큰 공적이라도 되는듯이 척화비를 세워놓고 큰소리 치었는데 정말 한심한 사람이지요. 이제 그자는 물러났습니다 . 엇그저께 다녀간 이유원 대감 말에 의하면 친정을 하는 조선의 고종 임금은 아직 젊지만 보통 분이아니라 합니다 "
"그렇군요.... 그러시다면 수교가 가능 하겠습니다"
"글쎄 내가 수교 하시도록 도와 드린다니까 그러시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청나라 북양 대신과 일본 공사의 설전은 끝났다 .
그동안 흥선 대원군이 흔들어 놓아 약해질 때로 약해진 조선이라는 나라를 도마 위에올려 놓고 양 강대국이 요리를 하려는것이었다 .
이렇게 청나라와일본이 조선을 놓고 저들마음대로 말이오고가는동안 조선의 대궐은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

일본의 전권 특사인 구로다가 군함을 이끌고 조선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
경기감사 민태호가먼저 장계를 내었다 .
정체 불명의 외국배 6척이 경기 남양만 도리도에 정박중이라했다
보고에 의하면 남양부사 강윤이 알아 보니 일본배 였다고 했다 . 강윤이 그 배에 닥아가 가 어느 나라 배냐고 물어 보니까 일본의 배 라고 답변 하였다한다 .

일본인들은 남양 부사라는 말을 듣고 배에 오르라고 하더니 댓자 곳자로 조전 조정에서 나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
자기들은 조선 조정에 이미 통보 했다고 했다 .
배 숫자를 물어 보니 함선 이여덟척이오 사람은 800명 정도라고 했다 .
배안을 둘러보니 좌우에 대포가 셋이요 가운데는 큰 대포가 정면을 조준하고 있다고했다 ,어디로가느냐고 물었더니 강화도로 간다고 했다 .

다음날은 강화유수 조병식으로 부터도 장계가 올라왔다 .
조정은 일본 배가 무슨 짓을 할지몰라 어전회의가 급히열렸다 .
어전회의에서는 인천부사 윤협과 부산 훈도 현석운을 일본 군함에 파견하기로 하였다.
일본측에서는 부사와 훈도 와는 상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대관을 만나야겠다고 하였다 .

조정은 다시 긴급 어전회의를 열고 어영대장 신헌을 판중추 부사로 임명하여 접견대신으로 임명하고 도총부 부총관 윤자승을 부사로 임명 일본인들과 만나게헸다 .
강화도에서 만나려 했는데 일본은 방자하게도 제물포(인천)에 일방적으로 상륙하였다 .

울며 겨자 먹기로 인천 부사 윤협과 맞닥드렸다 .인천 부사 윤협, 일본 외무관 모리야마, 통역관 우라 세 세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
일본인들은 자기네 전권대사가 불원 강화도로 올것인데 전 같이 불상사가 일어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것이었다.
양국의 대신들이 정식으로 첫 회합을 가지었다.

고종은 접견 대신으로 임명된 신헌을 불렀다 .
신헌이 그동안 일본인들의 동태를 파악한 사항을 보고 하였다 .
"전하, 일본의 배는 전에 서양 사람들의 상선과 다릅니다 .배 마다 대포가 여섯문이나설치 되어 있고 첫배를 살펴 본 즉 쌀과 석탄이각 50 석, 쌀200 석, 총과칼이 280자루 ,화약이 35 궷짝 ,대형 포탄이 280 여개나 됩니다 .
우리나라가 그동안 준비가 너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섣뿔리 싸움이 붙었다가는 보통 불리 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어찌 하면 좋겠소?"

" 우리가 국방력을 우선 키워야합니다 .그동안 대원군 께서 무조건하고 외국과 수교를 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 먹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로 가득찬 것인가를 증명하고있습니다 "
"과인도 그렇게 생각 하고 있소.그런데 그자들이 요구 하는 것이 무엇이오?"
" 처음에는 운요호 사건으로 배상 하라는 것입니다 "
"배상 하라니? 정말 상대 못 할놈들이 구먼...."
고종은 일본의 행위가 괫씸하였다 . 적반 하장도 보통 적반 하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신헌이 왕의 표정을 살피며
"전하 , 외람된 말씀이오나 조금 굴욕적이기는 하나 일본을 신이 잘 타일러 볼것이니 일본과 수교 하시겠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
"배상 하라는데 지금 나라의 돈이 어디 있다고 그 놈들과 수교 한다는 말이오?"
"배상을 포기 한다는 조건으로 수교를 맺자고 하면 응할것 같습니다 "
"..............."

신헌은 벌써 일본인이 배상을 포기 하는 조건으로 암암리에 조선과 통상할것을 제의받았던것이다 .
결국 운요호사건은 일본과 조선이 무역을 허락 하면 불문에 부치겠다는 조건을 요구한 일본의 의사를 받아 들여 조약을 맺기로 방침이 굳어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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