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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1).png

 

28일 일본 장기항에 개선한 운양호 선장 이노우에(井上)은 정부에 이번 사건의전모를 보고 하였다 .
내용은 운양호가 해도를 따라 중국으로 향하는데 조선측이 불법 공격해왔다는 것이었다.
조선측의 사격이 너무 맹렬하여 할수 없이 응사하 였다는 것이었다 .

일본 조정에서는 이 사건에 있어서 운양호선장 이노우에의 행동이 너무 성급했다고 하는 논쟁이 벌어 지었다 .
유력한 실력자인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이오우에 선장이 가볍게 행동 한 처사 이라고 일본왕에게 말하였다 .
" 조선을 요리 하려면 명분 없이 함부로 행동 하여서는 않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은 ...... ."

일본 왕은 다카모리를 신임하는 편이었다
" 그러면 운양호 선장이 명분 없는 짓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 폐하 그렇습니다 .조선국 측이 먼저 맹렬히 포격 했다는데 노획물로 대포 36문과 화승총을 다수 노획했다는 보고와 앞뒤가 일치 않는것이 석연치 않습니다 "
"그렇다고 승전하고 돌아 온 이노우에를 문책 할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본왕도 고종과 나이 차이가 얼마 안된다 .젊은 일본왕은 노련한 정객에게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한다
"그렇습니다 . 싸움에서 이긴자에게 사기를 떨어 뜨리는 조치를 할수 없습니다 .문제는 조선국과의 외교 문제가 대두 될 것이 걱정입니다 "

"글세말이오. 짐이 보기에도 우리측에서 명분 없는 짓을 한것 같습니다"
"폐하 ,별 도리 없습니다 .명분을 세워야 합니다 "
"어떻게요?"
"명분을 세우려면 먼저 세계 각국의 여론을 감안하여 중국으로 항해 하던 중이라 하지 말고 해변 측량중이었다고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
"조선이 허가 없이 측량 했다고 발끈 할터인데..."

"폐하, 측량은 만국이 공동으로 인정 된 측량입니다 .설사 허가 없이 들어 갔다 하더라도 큰 흠이 되지를 않습니다 .적당한 사신을 조선에 정식으로 보내는 보는것이좋겠습니다 .그런다음에...."
"그런 다음에 어쩌자는것이오?"
"무력을 사용 하는 것입니다"
"무력을?......"

일본왕은 다카모리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 보았다
"폐하 ,당장 무력을 사용 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무턱 대고 무력을 사용 하다가는 청나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것입니다 .우선 오쿠보 (大久) 참의에게 명하시어 주청공사를 천진(天津)으로 보내 청나라의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을 만나게 하고 개척 대신 구로다(黑田)를 조선에 특사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선의 12월이면 동지가 낀 아주 추운 날씨이다 .
한강물이 얼어 붙고 창경원과 경복궁에는 그림 같은 눈이 함박 내리었다 .
조선 조정은 일본의 운양호사건을 잊은듯 화기 애애 했다 .
주청사로 중국에 갔던 영의정 이유원이 청나라 황제에게 세자 책봉을 하였다고 알리었는데 청나라 황제도 매우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는 전갈이었다 .
민비가 뛸듯이 기뻤다 .

궁안이 봄날 처럼 분위가가 따사로웠다 .
그러나 중전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였다 .
음흉한 시아버지가 앞으로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중전은 생각 해 본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시아버지 대원군과 와 백부 되는 이최응이 와의 성격 어쩌면 그렇게다를가 하는 점이었다 .

시아버지 대원군이 늑대라면 백부 이최응은 망아지였다 .
중전 민비는 늑대가 싫었다 . 차리리 순수한 망아지가 나았다 .
민비가 오늘 따라 고종 앞에 새초롬하게 미소를 지었다 .
고종에게 항상 무슨 의미 삼장한 말을 하고자 할때는 짓는 표정이었다 .

"전하 , 이유원 영상께서 큰 일을하셨습니다 "
"우리 조선은 그놈의 주청사는 중국에 왜 보내야만 하는지 원......"
"전하 , 중국에 주청사를 보낸다고 그들에게 굴복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구하게 중국놈들에게 세자 책봉 같은 문제로 꼭 다녀 와야 하니 문제아니오?"
" 청나라와 선린 관계를 맺으려면 어쩔수 없지요 "
"하긴 그까짓 세자 책봉 문제로 청나라와 긴장 할 필요는 없지..."

"전하 , 우리와 청나라는 별개의국가입니다 . 일본이 자꾸만 우리 보고 청나라의속국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우리를 자극하고있는데 조금도 흔들려서는 않됩니다 .
우리나라는 엄연히 독립 국가입니다 .일본도 저희 임금을 천황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우리나라 보고 청나라 속국이라고 폄하 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

청나라에 물어 보십시요 .청나라 조정에 물어보면 일본도 저의 청나라 속국이라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소위 중화 사상이라는 전통적 사상이 그렇게 만든 것 뿐입니다 "
중전의 말에 시무룩 했던 고종의 얼굴이 확 펴지었다
"정말 청나라나 일본놈들 ,웃기는 놈들이오 "

중전이 마음에 품었던 말을 꺼냈다 .
영의정이 늙은 몸으로 대원군의 모함으로 지친데다가 중국 까지 다녀 오느라고 고단할것이니 좀쉬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
이 말은 영의정을 갈아 치우자는 얘기나 다름 없었다 ,

그렇지 않아도 영의정으로 처음 세웠을 때 부터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이유원을 모함하는 상소를 올려 골치 아팠는데 좋은 생각 이라고 느꼈다 .
"그렇기는 하오, 그러면 신하들 중에 누구를 영의정으로 삼는 것이 좋겠소?"
"흥인군 이최응 대감이 어떻실른지 ....."

중전 민비가 대원군의 친형인 이최응을 영의정으로 추천한것은 호쾌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도때도 없이 호시 탐탐 조정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고 임금을 자 기마음대로 좌지 우지 하려는 대원군을 견제 할 사람은 아무래도 친형인 이최응이 적합 하였기 때문이었다 .

"백부님을?"
"예 흥인대감은 아버님의 친형 이시고 그동안 좌상으로 국정 경험도 풍부 하시니 그러 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
한참 생각 하던 고종이 결정을 내린다

"그렇기는 하오, 아버님이 물러나 앉아 계신 마당에 ,백부 가 앉아 계신다면 아버님이나 어떤 대신들이나 뭐라 말 할 사람이 없을것이오"
"그런 인척 문제를 떠나서라도 성격상 백부님이 훨씬 나을것입니다 . 일본의 운양호사건도 일본이우리를 얏잡아보고 우리의 대응 태세를 보려고 먼저 시비를 걸은것인데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나이 많은 이유원대감으로는 역 부족입니다 .
말끝마다 .척화(斥和),척화하시는 아버님에 비하면 앞으로는 외교 관계를 잘 풀어서 흥인군이 정치를 하시면 전하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그러게 말이요, 그렇게 하는 편이 국내와 정세를 보아 좋겠소"
운양호사건으로 일본에서는 조선 사신을 보낸다 , 중국의 이홍장을 만난다 하며 부산을 떨며 소위 조선을 집어 먹겠다는 정한론에 들떠 있을때 조선 조정은 태평스럽기만 하였다 .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지었다 .
일본이 운양호사건을 조선이 먼저 발포하여 운양호가 파손을 당하였으니 운양호사건을 문책 하기 위하여 일본의 특명 전권대사 구로다와 대신으로 있는 이노우에를 조선에 파견하겠다는 서한이조선 조정에 들어왔다
"그놈들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를 문책한다고?"
영의정 이최응이 대답 하였다
"문책은 무슨 문책이옵니까? 무슨 다른 꿍꿍이 속이 있겠지요"
"그렇기는 하오 . 그놈들 보통 음흉 한 놈들이 아니니까...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문책을 한다고 합디까? "
"손해 배상을 하랍니다"
"배상은 저희들이 해야지 우리 보고 배상 하라고?"

"그놈들이 억지 부리는것입니다 . 최근 서양 문물을 받아 들여 최신 무기로 군비를 확장하더니 눈에 보이는 것 이 없는가 봅니다 "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고?"
"전하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일본이 얕보지 못하도록 무장을 해야합니다 "

말이야 좋다 .지금 조선 왕국의 재정은 파탄 지경이 된것을 잘 파악 하지 못한 영의정 이최응의 발상이었다 .
이미 흥선 대원군이 있는 돈 없는돈 다 써 버리고 그나마 당백전이니 원납전이니 결두전이니 하는 것을 다 없애버린 껍데기만 남은 나라이니 말이다 .

어린 고종의 첫 외교적 시련이었다 .
보다 못한 중전 민비가 묻는다
"전하 어째 심경이 좋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
"중전 ,일본이 운양호 사건을 트집잡아 우리 보고 배상을 하라니 큰 걱정이오"
"배상을 않으면 어쩌겠다는것입니까?"
"그 놈들이 최근 군사 력이 강해졌으니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지요"
"전하 ,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 강화도 초지진 포대에서 먼저 대포를 쏘았다지만 운양호는 맞지도 않았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는 보고는 받았소"
"그렇다면 그것이 적반 하장이지요 ,부서진 것은 오히려 우리 포대이니 그들이 우리에게 배상을 해야지요"
"그야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이런때 아버님 이라면 어떻게 처리하실까?"
이말에 민비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커진다
"전하, 또 그 나약한 말씀입니까?"

좌의정에서 일약 영의정에 오른 이최응은 영의정이 되 자마자 일본의 압력을 받고있어도 속수 무책이었다 .
경복궁 공사에 모든 것을 받친 탓에 국고가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
일본이 언제 강화도에 또 침범 할지 모르는데도 대책이 없었다 .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가 용의 주도한 악마라면 흥인군 이최응은 떠들기만 요란한 떠벌이에 불과했다 .

그런 이최응이가 영상 자리에 앉고보니 왕과 왕비 이외에는 눈에 뵈이는 것이 없었다 .
그 아우에 그형이었다
호기와 고자세가 극열하게 나타 났다 .
재물에 대한 욕심을 발동한것이다 .뇌물 상납으로도 모자라서 승진을 미끼로 돈을 서슴치 않고 받아 먹었다 .물론 고종이 그정도 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
형의 성격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 흥선대원군은 이최응의 성격을 잘알고 있었다
(또 지랄병이 도졌구나...)

흥선 대원군과 흥인군은 자랄 때 부터 별로 사이가 좋은 편이아니었다 .
더구나 대원군은 실각후 운현궁에서 찾아 오는 사람도 없는데 흥인군의 문턱은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흥선대원군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대원군이 심복 신철균을 또 불렀다 .
신철균은 민영묵의 사위로 대원군 집권시 한때 병사(兵使)벼슬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직에서 쫓겨나 할 일이 없는 건달이었다

앞서 민비의 친정 오빠인 민승호 병조판서 집을 폭파할때 폭탄을 만들어 준 장본인이었다 .이번에도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대원군이 부른 것이다 .
건달 세계에는 건달 끼리 의리 라는것있다 .
한때 파락호생활을 했던 대원군과 신쳘균 사이에 맺어진 관계는 대원군이라는 직위 이전에 건달세계의 의리라는 것으로서 맺어진 사이였다 .

"자네 오늘 시체 쌓인곳에 가서 화장을 좀 해야겠네"
"예, 시체 화장이라니요?"
"허허 이사람 말귀를 못아 듣는군....흥인군 창고에 있 는 쇠고기 생선고기 오리고기가 남아 돌아 썩는 냄새가 나는데 는 시체가 아니드냐? "
"......................."
신철균은 흥인군이 뇌물을 잘 받아 먹는다는 소문은 들어 잘알지만 대원군의 느닷 없는 말에 어리둥절 하였다
"자네 흥인군집에 가서 그 시체들 좀 화장시켜드려라"
"................"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냐?"

"대감 어른 ,그러면 흥인군 댁이 불타 없애 버리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신철균이가 망설이자 대원군이 말한다 .
"알았어 , 나중 후환이 두려워서 그렇지? 내가 책임진다 . 내가 다시 권세를 잡는 날에 너를 알아서 해 줄터이니 그문제는 걱정 말거라"

결국 야음을 타서 신철균이가 흥인군 저택에 불을 질렀다
그날밤 영의정 이최응의 거대한 저택은 불에 온통 불 타 버리었다
영의정 흥인군의 집에 불탔다는 소식에 임금과 중전은 크게놀랐다 .

한나라의 재상인 영의정 집에 불이났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
임금은 왕실 사저 한채를 흥인군에게 떼어 주었다 .
임금과중전은 대원군에게 혐의가 의심되었으나 섣뿔리 대원군을 지목 할수 없었다 고종이 방화범을 색출하라고 지시는 하였으나 대원군이나 신철균이를 방화범이라고 지적 못하는 한 방화범이 잡힐리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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