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블로그

조회 수 44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고종(5).jpg

 

1873 년 11 월 5 일 최익현이 제주도에 유배 셍활을 하고있는동안 22 세의 젊은 임금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였다 .친정 선포는 왕이 승정원에 지시하여 조보(朝報)로서 전국에 알렸다 .
따라서 대원군이 대궐로 드나드는 전용문은 완전 폐쇄 되었다 .

11월 6일 고종은 최익현을 처벌 할것을 강력 주장했던 대원군 이하응의 하수인인 돈녕부 홍순목과 영의정은 스스로 사직하게 하고 과 좌우의정 강로와 한계원은 파직시키고 새로 영의정에는 이유원, 좌의정 박규수, 우의정에 대원군의 형인 흥인군으로 갈아 치웠다 .
조영하는 도총사로 임명되고 김병국을 등용하였다 .
대원군이 철폐시켰던 조선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서원을 모두 복원하였다 .

대원군으로는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
대원군은 덕산 조상묘에 성묘 하고 난후 운현궁으로 돌아 가지 않고 양주에 있는 산장으로 직행하였다 .

아무것도 모르는 고종이 분명히 자기를 부를 것이라는 계산하에서였다
대원군이 거의 1 년동안 운현궁을 떠나 있는 동안 국가 정세가 놀랄 만큼 변동이 되어 있었다 .

이사실을 한양에서 들렸다가 돌아와 이승업이가 보고하여 알게 된 대원군은 크게화를 내었다
" 무엇이 어째고 어째? 서원을 다시 복구 했다고? 이휘겸이가 나를 불러 들여야한다고 한마디 했다고 고금도로 귀양 까지 보내? 더구나 일본의 신문물을 받아 들여야한다면서 일본 사신들이 자주 대궐을 드나 든다고?"
모두가 자기가 추진해 온 정책을 360도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

"대감마님 고정하십시요"
이승엽이가 너무 한꺼번이 모든것을 보고 드린것이 잘못 한것 같아 진정 시켜보려하였다 .
그렇다고 대원군 성격에 이승엽의 말에 진정할 사람이아니었다 .
그럴수 밖에 없었다 자기가 싫어 하는사람들이 모두 조정 대신들로 발탇 되었을 뿐만아니라 대원군이 심어 놓은 심복인들은 모두 쫓겨 났으니 말이다 .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

대원군이 조정 대신들 말고도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중전이 아무래도 수상하였다 .
중전이 일가 붙이인 민규호가 좌참판이되었고 민치상이 호조판서, 김병국은 예조판서 , 심이택이 까지 호조 참판이 되었으니말이다 .

그날밤 대원군 이하응은 잠을 못 이루었다 .
(민승호, 이놈 농간이야 . 이놈을 당장.......)
대원군은 일어나 앉았다 다시 들어 누었다 안절 부절하였다 .
다른때 같으면 민승호라는 놈의 약점을 잡아 귀양이라도 보내어야 한다고 상소문을 내어 절해 고도로 귀양이라도 보내어 야한다고 심복들을 시켜 상소라도 올려 여론화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자기의 양팔이나 다름 없는 영의정에서 부터 좌우의정 까지 모두 갈아 치웠으니 완전히 절망 상태였다
.
그렇다고 친정을 선포한 고종에게가서 큰소리 칠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
(앞으로 민승호란놈이 무슨 짓을 할런지 모른다 .이놈을.....)
"승업이"
다음날 새벽 4시는 되었는데 새벽 같이 이승업을 부른다 .
"예 대감님 무슨 일이 온지 ?"
"식혜 있거던 갖고 잠간 들어 오거라 "
"대감 마님 ,알겠습니다 "
식혜 주전자와 작은상에 사발을 들고 들어오자
"내가 네게 긴밀히 지시 할 일이있다 "
하고 이승업을 앞에 앉으라고한다
"정만인을 알지?"
"예 알구 말굽쇼"
당장 정만인을 불러 오라고 지시하였다

대원군이 야인 생활을 할때 10 년간을 틈틈히 풍수 지리설을 공부 해왔는데 어느날 그에게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이라고 자칭하는 정만인 이란자가 나타나서 그에게 왕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명당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묘를 이장하여야한다고 역설했던 인물이다 .
정만인은 이하응에게 말하기를 충청도 덕산 가야산 밑에 2대에걸처 천자가 나오는자리라며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를 선택하여 남연군 묘를 이장 시키게 한 인물이다 .
대원군은 정만인 말대로 묘를 쓴 탓인지 임금이나왔다 .
이하응이 묘를 쓸적에 정만인에게 자네대로 임금이나오면 영의정 자리를 주겠다고 호언을 했지만 정작 자기가 대원군으로 된후 변변한 벼슬을 주지 못하여 항상 미안한감을 갖고 있다가 그가스님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절을 지어 주었다 .

대원군 이하응은 무슨일이 있을적마다 비공식으로 그와 자주 만났다
정만인은 이름만 스님이지 실제로는 풍수지리와 점술가에 불과한 가짜스님인 셈이었다 .
이하응은 대원군이 된 후에도 그를 자주 불러 어려운 일이 있을 적 마다 밀담을 나누었다 .
그 정만인을 갑자기 부르는 것을 보니 대원군이 무슨 술책을 꾸미는지 아무도 알턱이없었다
이승업에의하여 불려 온 정만인이 나타 났다 .
대원군은 정만인니 나타 나자 금방 표정이 밝아지었다
"대사 오래간 만이오"

"천하 흥선 대원군께서 이양주 산골에만 계시다니오"
대원군은 안으로 들어 온 정만인에게 부드럽게대한다 .
"대사 , 내가 영의정을 그동안 못시켜 주어서 많이 욕하였겠지"
"원 별 말씀을, 나 같은 중놈이 감히 정승 노릇을 할수 있습니까?"
"대사 , 지금 내가 이 산골에 왜 와 있는지 아시지"

"암요 , 그놈의 민가 놈들 때문이 아닙니까?"
정만인은 벌써 대원군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있었다
"역시 정대사야....."
"대감님 , 민가놈들중 다른 민가 놈들은 다 소용없습니다 . 민승호가 나라 정치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
"그건 대사도 잘 모르는구먼 , 내 생각은 중전이 문제야"
"대감님 ,그렇다고 중전을 어떻게하시겠습니까? 요즈음 모든 돌아가는 사항을 중전께 일일히 보고하는 사람은 민승호 밖에 없습니다, 민승호를 없애야 하는데 지금은 때가 늦었습니다 . 지금 그들을 견제할 대감의 심복들이 모두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방법은 민승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
"어떻게....?"

두사람은 곧 주위를 살피며 귓속말로 무슨 말인지 나눈다 .
"신철균이에게편지를 써 줄터이니 많나보게 그리고 신철균이가 선물 보따리를 싸주거든 갖다 민승호에게 주기만하면 돼 "
다음날 정만인은 서울로 올라가 신철균을 만났다 .
과연 묵직한 선물 보따리 하나를 받아 들었다 .

한편 민승호는 중전으로부터 좌찬성 자리를 제수 받을것 같다고 부부인에게 자랑하고있었다 .
마침 이때 청지기가 민승호에게 어떤 스님이와서 선물 상자를 주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
민승호는 정만인을 맞아 들였다 .
"소승이 대감께 이것을 바치려고 왔습니다"
"고맙소만 스님이 어찌 이런 것을....."

"변변치못하오나 이 선물에는 복이 들어있는 선물이라 잡인이 없는 식구끼리만 열어 보셔야 만복이 깃듭니다"
정만인이 물러 가고 가족이모두 모여 보자기를 풀고 함을 열자 상자는 요란 폭음을 내고 폭발이되고 말았다 .
"쾅"
민승호와 아들과 부부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쓸어지었다 .
그것은 선물 상자를 가장한 폭탄이었다 지금 종로구 재동에 있는 민승호 대감의 집은 박살이났다 .

이날이고종11년 11월 28일이었다
중화상을 입은 부부인이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그녀도 결국 죽고 말았다 .
민비의 친정 어머니와 오라버니 하나 밖에 없는 조카가 하루 밤에 불귀객이 되고 만것이다 .
계속

 


  1. 21Mar

    勉庵 崔益鉉(68)- 日本과 淸나라 사이에서 -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2. 21Mar

    勉庵 崔益鉉(67)-濟州島 귀양을 마치고-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3. 21Mar

    면암 최익현(66)-日本과의 修交-

    Date2016.03.21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4. 17Mar

    勉庵 崔益鉉 (65) -武力과 外交속에서 -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5. 17Mar

    勉庵 崔益鉉(64)-鎖國 政策-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6. 17Mar

    면암 최익현 (63)-大院君의 國防觀- -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7. 17Mar

    면암 최익현(62)-大院君의 苦悶-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8. 17Mar

    勉庵 崔益鉉(62) -復古-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9. 17Mar

    勉庵 崔益鉉(61)-濟州島 流配 生活

    Date2016.03.17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0. 17Mar

    광피리 끼니 ~~♡

    Date2016.03.17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11. 16Mar

    When my Dad was young ~~♡

    Date2016.03.16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12. 14Mar

    면암 최익현(60) -귀양 가는 날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3. 14Mar

    면암 최익현(59)-竄配-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4. 14Mar

    勉庵 崔益鉉 (58)-淸貧한 公職者의 條件-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5. 14Mar

    勉庵 崔益鉉(57)-石坡亭의 가을-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6. 14Mar

    勉庵 崔益鉉 (56)-臣下라고 다 臣下가 아닙니다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7. 14Mar

    勉庵 崔益鉉 (55)-揚州 곧은골 -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8. 14Mar

    勉庵 崔益鉉 (54)- 收布代役-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19. 14Mar

    勉庵 崔益鉉 (53)- 上疏-

    Date2016.03.14 By권영환 Reply0 file
    Read More
  20. 11Mar

    When I was young ~~♡

    Date2016.03.11 By성광필 Reply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 241 Next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