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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로가 순조 8년에 치룬 반시(한성초시) 때 이야기다 .
그가 20대에 아버지와 사별 한뒤에 과거시험 공부 준비를 위하여 단독 상경 하였을때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서울의 이우신을 찾아 간일이 있었다. 그는 이때 부터 학문과 인격이 출중하여 뜻있는 청년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다 .

그런데 청년들중에 김경현이라는 자가 섞여 있었는데 우연히 그의 집에에 들렸다가 그의 아버지 김병주의 눈에 뜨이었다 .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이항로는 이집 저집 사랑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있던것을 알아채린것을 알아채린 김병주의 눈에 띄어 마침 그집에 숙식을 하며 김경현과 같이 지내게 만들어 주었다 .
김병주는 망나니 같은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비범한 이항로를 눈도장 찍었던것이다

그런데 일거리가 생기었다 .그 집의 아들 김경현은 생각 보다 문제아였다 .
김경현은 공부 보다도 격구 같은 오락에 만 탐닉하여 공부는 뒷전이었다 .
이항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달랐다 .
이항로와 김경현과는 물과기름같은 상황이었다 .
이를 알아챈 아버지 김병주는 이항로를 불러 자기 아들과 가깝게 지내주기를 권하였다 . 이항로를 자기 집에 있게 함으로서 자기 아들의 면학 분위기를 만들어 아들의 버릇을 잡기를 원했기때문이었다
당시 김병주는 당시 조정의 당상관 지위에 있어서 안되는 일이 없다 싶이 하였다 .
안동 김씨 세력의 핵심 멤버였기때문이었다
김병주는 이항로 청년이 과거 시험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들과잘 지내주기만을 염려해 이항로에게 시험 걱정은 말고 자기 아들과 친하게 지내기만 하면 과거 시험따위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시험을 안 보고도 벼슬을 할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는 뜻이었다 .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는 그럴수도 있었다 ,돈으로 매관 매직 하던 시기 였으니 말이다 .
이항로는 단연히 뿌리치고 그집을 나와서 과거 시험을 치뤄 보기 좋게 합격하였다 .
( 이렇게 썩어 빠진 관료사회와 이렇게 부패한 나라에서 벼슬 하면 무엇 하겠느냐? 정말 더러운 나라다)
그는 스스로 서울을 떠나 세속을 피하여 쌍계사, 고달사등 사찰을 옮겨 다니며 사서 삼경과 주자 대전등 성리학 연구에 몰두 한것이었다 .

그후 그의학식과 덕망이 알려지면서 헌종 6 년에는 휘경원 참봉 자리를 주겠다고 하는것을 사양하고 향리에서 제자를 키우는데만 전념하였다 .
이무렵 위정 척사론자로 유명한 최익현, 김평묵, 유중교등 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최익현은 새삼스러히 스승 이항로와 같이 앉아 있으니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
화서 이항로는 최익현을 끔 찍히 아끼었다 .
가난한 한 시골 선비의 아들이었지만 이항로는 최익현을 자기 아들 이상으로 아끼었던 것이다 .
이항로는 제자들에게 항상 제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칭찬, 격려, 경계를 소흘히 하지 않은 스승이었다 .
특히 최익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사제를 능가하는 관계였었다 .
이항로는 항상 손님이 오면 어린 최익현을 가리키며
"저 아이는 장래 큰일을 할 아이입니다 "
하고 최익현에 대한 장래를 들어 내놓고 자랑하였다

또 이항로는 최익현이 열다섯살 되던해에 최익현에게서 면암(勉菴)이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20세때는 관례대로 관건(冠巾)을 씨워준 분이기도 하다 .
과거 시험을 보러 서울 로 떠날때 스승 이항로의 글이 잊어지지 않는다
"면암에게
그대는 어디를 가나 글을 벗하라 ,그대가 읽은 책은 그대 머리의 서고가 될 것이며 열심히 공부 함으로서 얻은 지식은 앞으로 그대의 앞길에 훌륭한 반려자가 될 것이다 .
공부 하는데 너무 암송에만 치우치지 말라 .암송이란 역시 밖에서 머리속으로 강제로 집어 넣는 것이므로 본심을 잃는 것이니 암송에만 너무 치우치지말고 글을 보면 글에서 마음을 찾고 이치를 밝혀야 한다 "
최익현은 과거를 보러 떠날 때 선생의 당부 하시던 말과 그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도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때 초야에만 묻혀 지내셔서 되겠습니까? 이제 넓으신 학문을 나라를 위하여 펴실 때가 되었으니 실천 하신다는 의미에서 벼슬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조두순 좌의정 대감께서도 한번 들리시라는 전갈입니다 "
"................."
이항로는 벼슬을 마다한 사람이다 .

이항로는 속담에 언덕에 오르면 마을이 보인다는 말을 생각했다 .
(그렇다 , 나도 너무 은둔 생활 탓에 이런 꼴을 당한것이다 모든 일은 단순히 생각하면 안된다 .여러 각도에서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그런데 이렇게 숨어 살고 보니 김순성 같은 소인배가 자기 집 까지 드나들고 한차례 역모 소동 까지 일으킨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한낮에는 촛불이 필요 없다 . 우물 쭈물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는.....)

초야에 만 묻혀 있다고 깔보는것 같아서 최익현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선생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좌의정 대감께 진의를 올리겠습니다 "
최익현이 양평땅에 까지 온것은 차제에 이항로를 조정으로 끌어 들여 자문을 받고자 함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나라 안을 살펴보자 ,
그 즈음 조선 반도에는 새로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
일본에 발 붙이지 못한 천주교가 바다를 건너 대마도와 제주도에 발을 붙이기 시작한것이다 .제주도 뿐만이 아니었다 . 진도 해남 까지 들어와 있었다 .
조금 후에는 황해도 평안도 까지 경기도 강원도 만 빼고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
조선 왕조가 모르는 사이에 교세가 확장 된 것이었다 .

서양 각국은 경쟁적으로 동양에 식민지 화쟁탈 전을 벌렸는데 이제 남은 것은 운둔의 나라 조선 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세력의 전위 역활을 한다 싶이 한것이 천주교였던 것이다 .
그 예로 헌종때 프랑스 전도본부가 중국에있었는데 한국 전도 총관으로 피에르 모방신부를 먼저 입국 시키었고 모방신부는 여러명의 조선인 신도들의 안내로 서울 까지 잠입하였다 .
교두부를 확보한 그와 함께 온 젊은 신부 샤스탕이 전도에 열을 올리었고 그다음 해에는 앵베르신부가 추가 입국하여 9000명의신도를 서울서 확보 까지 하였다 .
실로 놀라운 숫자였다 .

세 사람은 참수되어 순교 하였지만 천주교도 수는 줄지 않았다 .
모방, 샤스탕, 앵베르 무덤이 관악구 신림동 삼성산 자라게 지금도 무덤이 나란히 있다 . 교황 방문시 시체를 모두 명동성당으로 옮기었다고 하나 50 년동안 묻혀 있던 세사람으 무덤은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 지금은 성지화 되어있다 .
이하응은 궁도령 시절 부터 천주 교도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남종삼 이라는 천주교 신도는 철종때 승지까지 지낸 사람이었는데 열렬한 천주교 신자가 되어있었다 .
남종삼은 부인을 통하여 이하응의 처인 민씨에게 까지 접근하여 전도까지 한사람이었다 .
안동 김씨들의 세력에 눌려 왕족 이면서도 거지꼴로 건달 행세를 해오던 이하응이 대원군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된것은 1863년 12월 13일 이제 겨우 열두살 밖에 되지 않은 흥선군 의두째아들 이명복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 부터 였다

조선왕국의 제 26 대 고종인 것이다 .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 대원군 이하응은 1864년 4월 영의정 김좌근에게 그자리를 내 놓게하였다 그는 대신 광주부 유수(廣州部 留守)라는 직책을 주었다 .모욕적인 인사였다.일반인들은 좌천 이라지만 김좌근에게는 교수형이나 마찬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영의정이 저 지경이 되자 영돈녕부사 김흥근은 아프다는 핑계로 조정에 전혀 나오지를 않았다 .아직 벼슬 자리에 남아 있는 김병국, 김병교는 대원군 이하응의 눈치만 보면서 언제 쫓겨 날가 전전 긍긍하고 있었다 .

대원군 이하응은 조대비의 허락을 받아 좌의정 이었던 조두순을 영의정에 임명하고 ,좌의정에는 안동 김씨 이면서도 이하응을 끝 까지 감싸 주었던 김병학을 .우의정에는 유후조를 임명 하였다 .
대원군 이하응은 공정한 인사 라는 말을 퍼뜨리며 소리 없이 안동 김씨들을 제거 한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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