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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때에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있는 화서(華西) 아항로(李恒老)의 집에 한양에서 선비 한사람이 찾아왔다 .
이항로의 집은 손님을 접대 하는 사랑과 사랑과 붙어 있는 하인 방이있는 데 하인이 집안채에 있는 안채에 들어와 주인에게 고한다 .
"손님이 누구라 하던고?"
"최익현 이라는 선비입니다 "

"무엇이라고 면암이 왔다고?"
이항로는 침울하던 얼굴와 활짝 밝아 지었다
이항로는 급히 옷을 매만지고 사랑채로 나가 최익현을 맞이 하였다
이항로가 경기도 양평 땅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비하면 자기의 제자인 최익현은 이미 서울까지 진출하여 지평 벼슬 까지하고 있었다 ..

최익현이 맡고 있는 지평이라는 벼슬은 정5품이지만 사헌부(司憲部)속관으로 조정의 정치시비에 관한 언론 활동과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풍속에 대한 교정, 억울한 일을 풀어 주는 일 등이었다 .
지금 공무원 급수로 따지면 4급 서기관급이지만 실무자로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직책이었다 .

최익현은 18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아버지 최대(崔垈)의 두째 아들로 태어났다 .
최익현이 세상에 태어 났을때는 순조33 년 되던 해로 서울 장안에 거지들이 들끓어 이들을 잡아다가 자기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을 한참하고 있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가난으로 찌들던 시기였다 . 문전 걸식하는 거지들은 그래도 신사적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쌀값이 올라 대낮에도 싸전을 공격하는 난민들이 강도로 돌변하는 때였다 게다가 전국에 전염병 까지 퍼저 아사자 병자가 속출하였다 .

그해 10월에는 창덕궁에 불 까지 나서 대조전과 희정당이 불에 타자 온나라가 뒤숭숭하였다 .
기록에만 보아도 순조 34년에는 서울에 전염병이 퍼저 길가에 널린 시체가 1천여리에 달하고 해골이 800여리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이 조금 과장된 기분은 들지만 그만큼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

국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청나라는 영국과 청나라가 아편 전쟁으로 나라가 극도로 혼란에 빠저 있었다 .
최익현의 집안은 신라 최치원을 조상으로 하는 뼈대 있는 집안 이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네살때 충북 단양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된다 .그후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간 최익현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성리학의 거두였던 이항로 문하생이 된다.

부친의 명령에 따라 이항로의 문하생이 된것이 14세였다
그는 이때 부터 성리학의 거두인 화서 이항로로 부터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위정 척사 의사상을 이항로로부터 익힌다 .
여기서 최익현은 이항로로 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자기만의 특별한 사상 쳬계를 수립한다 .
즉 충의사상과 춘추 대의론에 의거한 자주적 민족 사상이었다 .

23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는데 명경과 갑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을 하였는데 그의 위정 척사의 기본적 사상을 관직 생활에도 그대로 반영하였다 .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은 글자그대로 정직 한 것을 지키고 사악 한것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바른 것을 지키고 옳지 못한것을 물리친다는 사상이다

.최익현이 지금 까지 배워 온 유교 사상과는 진 일보한 새로운 유교적 정치 윤리 사상이었다 .
조선 왕국 초기에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세운 이래로 성리학에 이르러 꽃을 피웠으나 형삭적이고 너무나 전통을 고집한 성리학에 대하여 실학이 대두 되면서 실사구시의 유교로 변모 하였던 것이다 .최익현은 옛날과 다른 자기 나름대로이 위정 척사 사상을 고취했던 것이다

최익현은 그동안 순강원 수봉관, 을 거쳐 사헌부 지평자리 까지 승진했다 .
그런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철종 13 년 최익현의 나이 33세되었고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때 오랜 스승이었던 이항로가 이하응의 친형이었던 이하전의 옥사사건과 관련 수감 사건이 발생하였다 ,

이하전(李夏銓)옥사 사건이란 헌종 15년 헌종이 색을 너무 밝혀 젊은 나이에 죽고 후사가 없자 새로 임금을 세우는 문제로 조정에서 말썽이 되었을때 부터로 얘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강화도 섬에서 데려온 강화 도령 나뭇군 출신 철종은 왕이되자 어느누구와 대작할만 사람이 없었다 .무식한 철종은 장인 일족이 모든 정치를 해주는 덕분에 할일리 없었다.
철종의 하루 소일거리라고는 평소에 눈여겨 보아 두었던 궁녀들을 불러 들여 재미보는것 이외에는 할일이 없었던것이다.

더구나 궁중에는 왕족들이라고는 아무도 자기를 찾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선대의 과부가된 왕비들은 있었으나 무식한 철종과는 대화 하려 하지 않았고 궁녀들이래야 잠자리에 불러 들여 애무 하는 정도 였으니 잠자리에서 그들 입에서 신통한 얘기거리가 나올것 도 없었다 .
다만 가까운 종친으로서 경평군 밖에 없었던 것이다 .

철종은 같은 핏줄인 경평군을 불러서 회포를 풀곤하였다 .
경평군은 철종이 무식한데 비하여 글솜씨도 좋았고 배운것이 많아 철종에게는 임금을 떠나서 좋은 벗이 하나 생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
이때 처가인 안동 김씨들이 똑똑한 경평군이 철종에게 드나드는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
안동김씨들은 궁중 출입을 못하도록 막았다 .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돈화문 앞에 이상한 대자보가 붙었다 .
"이씨 왕조가 김씨 세도로 망한다 .타성이 이씨를 망하게 하니 나라의 말세가 온다"
희한한 글이었다 .
이것은 안동 김씨들 뿐만 아니라 철종 까지 왕위를 빼앗기게 된다는 글이었다 .
궁중은 이사건을 계기로 경계가 삼엄해지고 안동 김씨들은 범인을 찾아내려고 혈안이되었다 .

이런때 경평군이 하루는 안동김씨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짓꺼렸다가 큰 화근을 만나게 되었다 . 엄연히 왕족인데도 그 흔한 자리도 없을 뿐아니라 궁중 출입 마저 통제를 받으니 화가 났던것이다
"이 나라는 외척이 라를 망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이씨 왕국이냐? 김씨 왕국이냐? "
이말은 금방 안동 김씨들 귀에 들어갔다 .
김씨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즉각 철종에게 모함하였다 .

"대군이면 가만히 눌러 앉아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친으로서 대궐을 문턱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법이 아니며 정사에는 관여 할수 습니다 . 그런데 최근 대궐 밖에 이상한 대자보를 붙여 대왕을 모독하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글도 경평군을 따르는자들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경평군을 마땅히 처벌하여 히 다루어야 합니다 "
"과인이 보기에는 그럴 사람이 아니던데 앞으로 나와 만나지 않을터이니 처벌만은 그만 둡시다"
"아니옵니다 차제에 처벌 않으면 반드시 반역을 할것입니다 "
".............."

임금으로서 같은 핏줄인 경평군을 처벌한다는 것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
철종이 우물 쭈물하는 것을 못마땅히 생각한 안동 김씨들이
"그러하오면 전하 마음대로 하십시요 저희들은 모든 관직을 물러 나가겠습니다 .경평대군과 정치를 잘해보십시요"
이번에는 헙박조다

철종은 할수 없이 경평군을 전라도의 바닷가인 신지도로 귀양 보내 도록하였다 .
이렇게 종친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
이당시 천주교가 서울 장안에 퍼뜨려저 양반집들 까지 믿는 수가 늘었다.

김순성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천주교 신자였다.그런데 그에게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다 .이자는 건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기는 궁전을 지키는 오위장이라고 떠들면서 거들먹거리며 건달로 애꾸진 술만 얻어 먹고 다니었다.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주막에서 이하전의 아버지인 완창군 이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

완창군도 수입이 신통치 않은가난한 왕족으로서 술잔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술만 들어가면 철종과 안동 김씨들을 불평했다 .
그런데 그에게는 이하전이라는 똑 똑한 아들이 있었다 .
완창군과 오위장이라고 자칭하는 김순성과는 자주 서로의 집에 초청하여 술을 먹으면서 세상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 놓았다

"아드님이 똑똑한데 과거라도 보도록 하시지 왜 않으십니까?"
"그까짓놈의 과거는 봐서 뭘해? 안동 김가놈들 끼리 다해 처먹고있는데 미관 말직이나 얻어서 고생하려고?"
"하긴 그렇습니다 . 배경이 없으면 미관 말직으로 있느니....."
김순성의 말이 채떨어지기전에 완창군이 말을 받는다
"세상이 바뀌면 몰라도,,,,"
"세상이 언제 바뀝니까? 우리 늙어 죽은 다음에도 불가능 할겁니다.차라리 당장 반정이라도 일으켜 뒤집어 엎어 버리고 대군께서 왕이라도 되셔야지요 "
"허허 목아지 달아날 궁리만 하는구려 ...오위장이 그런 소리하면다가 목슴이나 잘 부지 하려고 그런 소리 함부로 하오?"
완창군도 술이 취한 모양이었다
"오위장이요 저는 오위장하다가 집어 치운 사람입니다 안동 김가놈들은 쌀밥에 고깃국 먹고 있는 동안 우리는 월급이 안나와서 며칠을 죽만 먹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집어 치웠지요 "
"세상 잘 만나서 오위장도 못해먹겠는 모양이구려, 하지만 내자식 만큼은 과거를 보이기는 보여야 하겠지 .설마 철종께서 내아들 까지 무시하려고?"
"나으리, 무식한 사람이, 아드님 글인지 어떤놈의 글인지나 읽을 줄이나 알겠습니까? "
"아니 무식하다니...."
"천자문도 다 못뗀 제일 높은 사람 있지 않습니까?"
철종 보고 하는 소리다
"................"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철종이야 말로 무식한 임금이 아니드냐?
"그렇지만 그분이 직접 과거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시험관이 따로 엄연히 있지않은가?"
"시험관 있으면 뭘합니까 ? 시험이라고 둘러리만 세우고 제 자식들만 모두 합격시킬텐데요"
"아냐 , 아냐 과거 시험만은그렇지 않아"
완창군은 애써 김순성의 말을 부인하여 들어었다

드디어 과거시험이 있었다
완창군의 아들 이하전도 시험장에 나갔다
그런데 이하전의 옆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 완창군 도련님께서 귀하신 몸이 벼슬 하려고 여기 나왔나? 우리야 과거 급제 못하면 밥먹여 줄 사람이 없어 큰일이지만 왕족이면 양반중에 양반인데 과거는 무엇하러 치루려 하누?"
"무엇이?"
이하전이 눈을 흘겼다
"그래 왕족이면 나라에서 주는 봉록이나 받아 먹고 살지 벼슬해서 백성들 호주머니나 노릴려고 나왔냐?"

왕족을 알기를 우습게 아는 김가들의 자제들이었다 .이하전은 20 대 젊은 혈기 왕성한 청년이다 .
안동김씨 청년들의 말이 끝나자 발끈했다
"그래..... 내가 과거에 응시 하려는 것은 장차 벼슬하여 세상을 바로 잡고 불상한 임금을 잘 모시려고 왔다 . 어쩔래?"
"무엇 이라고 불상한 임금을 모시려 한다고? 철종 대왕께서 어쩧다고 불상 하다는 것이냐? 얼마나 편안하게 잘 모시는데....대군 이라고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건방진놈 저놈 진짜 역적이네.........."
"에잇 정말 버러지 같은놈들"
이하전은 붓을 꺾어버리고 시험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런 이후 이하전은 벼슬 할 생각을 포기하였다 .건평군 사건때 희생된 사건도 있고 안동 김씨들과 대결하였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 근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건달 기질을 가진 오위장 출신 김순성이었다
김순성은 이하전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동안 비밀히 이하전을 왕으로 추대하고 철종을 갈아 치우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김순성은 현감 노릇을 하다가 안동 김씨들에게 상납을 소흘히 하던 탓으로 관직에서 물쫓겨난 불평분자 이긍선(李兢善)을 만나 안동 김씨들을 조정에서 몰아 낼것을 상의하였다
김순성은 각 지방으로 돌아 다니며 불평객들과 만나 안동 김씨 타도 계획을 이야기 하였다 .
김순성은 전국을 돌아 다니다가 양평에 있는 이항로의 사랑방에도 들렸다.거기서 김순성은 차마 이항로의 명성으로 보아 이 일에 참여 할것 같지 않아 말도 꺼내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
후에 김순성이 이항로의 사랑채를 거쳐 갔다는 것이 나중에 큰 화가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행히 김순성은 임일회 ,이재두.고제유, 정유성,등과 손을 잡고 장사들과 매수해서 이하전을 왕으로 세우자고 약속한후 거사 계획을 착착 진행하였다

김순성은 이긍선을 찾아갔다
",제가 지방에 돌아 다녀 보니 세상 민심이 안동 김가놈들로 부터 모두 떠나있습니다 .아무래도 거사 할때가 온것 같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무슨 힘으로 안동 김가들을 뒤집어 엎는다는 말인가 ? 안동 김가 놈들만 뒤집어 엎어서야 일이 되겠는가? 임금은 어쩌고..."
"물론 그 무식한 임금도 갈아 치워야지요"
"무엇? 임금 까지?"
"돈녕 도정 이하전 대군을 추대 하여야겠습니다 "

"흠 ....임금 감으로는 이하전 대군 같은 인물이 없지 ...."
"걱정 마십시요 황해도 곡산에서 정유성도 허락을 받아 내었고 전라도 해남의 임일희에게서도 승락을 받아 왔습니다 . 지방에서 장정과 무기를 준비토록 했습니다 거사 날자는 7월 5일이어떻습니까?"
"그런데 이항로 같은 분을 끌어 들여야 하는데 만나 보았는가?"
"만나 보기는 하였습니다만 너무 근엄하여 차마 얘기도 못 꺼냈습니다 .이유는 혹시 그의 제자들이 조정의 요직에 많기 때문에 혹시 우리 계획이 누설 될까 두려워서....."
"그래도 이항로 같은 분을 끌어 들여야 하는데...."
"이 거사는 신중 을 기하여 일거에 해치워야지 너 무 떠벌려도 안됩니다 "
"................."
거사 날자는 7월5일로 정하였다

그런데 이재두가 생각을 해보니 거사 계획이 너무나 허술하였다 김순성의 건달 기질이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
혹시 잘못하여 거사에 실패하는 날에는 역적질로 몰리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포도청에 밀고를 하고 말았다 .
포도청에서는 김순성을 잡아다 고문하였다
고문결과 이하전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던 전모를 밝혀 내었다

영문도 모르고 있던 이하전이 포도청에 불려가서 문초를 받았다 .
21세의 이하전은 떳떳하게 대답하였다 .조금이라도 변명하려면 오히여 더 큰 화가 올지모르므로 있는그대로 대답 했다 .자기는 자기 아버지와 김순성이 같이 술을 먹는것은 보았지만 자기는 연령차로 보아서 그와는 그와 같은 모의를 한적이 없다고 결백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

취조관은 이하전과 김순성과는 나이 차이로 보아 모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것을 인지하고 동시에 김순성이 일방적으로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말을 인정하여 이하전은 일단 석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순성과 이긍선은 역적죄로 참형에 처하였고 다른 거사에 참여 하려 했던자들은 전국적으로 체포령이 내리었다 .
안동 김씨들은 이하전을 그냥 두면 안된다고 하였다 . 아무리 나이가 차이 나는 사이라지만 이하전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기회에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염려 된다는 것이었다
.
결국 철종도 안동 김씨들 성화를 이기지못하고 마지 못하여 이하전을 제주도로 귀양보내게 하였다 .
나중에는 이하전을 대역죄로 사약 까지 내리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엉뚱하게 이항로에게도 불똥이 튄것이다 .
이하전 옥사사건으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것이었다
이항로에게 사사 받은 최익현은 이항로가 어떤 사람인가를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있다 .
사헌부 지평으로 있던 최익현은 안동 김씨들과는 얘기가 통하지 않을것 같아서 좌의정 조두순을 찾아가 이항로의 인품과 억울함을 설명하였다 .
김순성이 이항로의 집을 다녀갔으나 역모에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는것을 설명하였고 또 그의높은 학식과 덕행으로 보아 역모를 꾀할정도로 무모한 사람이아니라는것도 설명하였다 .
만일 이항로가 역모를 하였다면 자기가 대신 처형 받겠다는 말 까지 하였다
사헌부 지평이라면 요사이라면 조선의 검찰이나 다름 없다 사헌부는 임금이 월권을 해도 거침없이 탄핵할수 있는 자리이다 .
그런사람이 이항로의 구명을 요청하는것이라면 믿어도 된다
최익현이 이항로에대한 애틋한 사제 의 정에감복한 좌의정 조두순은 철종에게 말하여 이항로를 무죄로 석방 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에 시시비를 잘 가려 주어서 고맙군 "
"별 말씀을 제가 한일이 뭐 있습니까? "
" 중요한 시기에 나 까지 폐를 끼쳐서 해서 미안하오"
"별 말씀을 ....
이항로가 최익현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화서 선생님은 옛날이나 조금도 다른바 없습니다 "
"..............."
이항로는 최익현이 자기가 그동안 치룬 옥고를 위로차 방문 한것을 눈치채었다

이항로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세살때 천자문을 떼었고 여섯살때 이미 십팔사략을 뗀 신동이었다.
순조 8년 되던 해에 한성시(漢城試)에는 합격 했었으나 벼슬 받기를 거부 한사람이었다 .
벼슬 받기를 거부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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